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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역할?

#1. 교사의 전문성은 ‘교과교육’에만 한정되어야 하는가?


교사의 전문성을 수업내용과 수업방법과 같은 구체적인 교과교육에 한정지어야 한다는 주장의 배경에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교사에게 주어지는 과도한 업무부담을 줄여보고자 하는 문제의식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숱한 ‘다른’ 업무에 치이느라 정작 ‘중요한’ 교과교육에 힘을 쏟지 못하게 되는 것은 해결해야할 중요한 문제이지만, 한편으로는 “교사의 전문성은 교과교육영역에서 드러난다”라는 명제가 교사의 자율성을 오히려 침해하는 이데올로기로 변질될 수 있는 지점이 있다. 작년 여름 “국기 경례를 거부한” 이용석 교사가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경기도교육청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어 정직 3개월 조치를 받았던 사례나, 전교조 교사들의 연가투쟁에 대한 보수세력들의 반응(“교사는 자신의 주관적(‘정치적’) 견해에 따라 행동을 해서는 안 되며 오로지 학생들을 위해 (중립적으로) 교과수업에 충실히 임해야 한다”)에서 확연하게 드러나듯이, 교사의 역할과 전문성을 수업교과영역으로 한정시키는 것은 정치적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

교육은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가치편향적인 행위이며, 서로의 인격적 만남과 변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교육활동이 한정된 수업과 교과라는 틀 안에 구속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2. 교사를 어떠한 존재로 볼 것인가?


모든 군인은 군인이기 이전에 인간이기 때문에, 혹은 모든 여성이 여성(어머니)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듯이, 모든 교사는 교사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보편적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다른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임금노동자인 교사들만 유독 특수한 존재로 여기면서 교사의 노동3권 중 단체행동권을 보장하지 않는 이유 중 가장 전형적인 것이 “교사는 성직자(스승)이다”라는 말이다.

교원평가제 도입을 반대하며 연가투쟁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표출한 교사들도 “아이들의 교육”을 위함이었고, 반대쪽에서는 또한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교원평가제를 도입해야하고 연가투쟁을 한 교사들을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분명히 “진짜 교육”이 있고 동시에 “가짜 교육”이 있다는 것인데, 이 논란 역시 “교사상”에 대한 상반된 가치관에서 비롯한 것이다.

예전 군부독재정권에 의한 ‘반(反)중립적’ 교육과정에 대한 반성에서 도출된 ‘교육의 중립성’이라는 테제는 여전히 유의미하지만, 한편 교육은 궁극적으로 ‘탈(脫)중립적이고 가치지향적’일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 현실에서 교사들에게 필요한 것은 객관성과 중립성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교육관을 구속받지 않고 실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자율성과 이에 대한 지원이 아닐까? ‘진정한 교육’, ‘참교육’은 절대로 존재할 수 없으며, 교육의 질은 구체적인 관계 속에서 학생들의 판단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3. 변화하는 시대에 교사의 역할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근대적 ‘국민 만들기’ 프로젝트로 시작되었던 학교교육은 시간이 흐를수록 동네북 신세가 되어만 가고 있다. 이념의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지금은 누구나 학교교육에 대해서 비판을 하고 있지만, 학교 교사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갈수록 많아지는 어찌보면 아이러닉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후기 근대(post-modernism)는 거대한 명분에 의해 움직이는 시대가 아니라 작은 행복에 의해 움직이는 시대이다. ‘소품종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이라는 탈근대적 생산방식으로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이에 따라 아이들 역시 날이 갈수록 ‘개인주의적’ 삶의 방식에 익숙해져가는 상황에서 여전히 ‘집단적 사고’를 고수하고 ‘공부’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교사는 아이들과 소통의 가능성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미 탈근대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을 근대적인, 실증적 합리주의를 기반으로 한 교과들이 가르쳐지는 획일적인 학교에 붙들어 매려는 것은 아이들에게 행하는 어른들의 폭력이며,1) 이것이 곧 ‘공교육 붕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내일 학교가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 아니라면, 학교 교사들에 대한 역할기대는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기성의 보편타당한 지식을 선험적으로 상정하고 이것을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존재로서의 교사와 아직 미성숙하고 어른들의 보호를 받아야하는 존재로서의 학생(청소년)을 상정하는 도식은 더 이상 매력이 없다. 입시에서의 성공, 더 나아가 인생에서의 성공이라는 획일적인 가치관으로 잠식된 학교현장에서 교사는 학생들 각자가 내면의 욕구와 꿈을 찾을 수 있도록 관계를 맺어야 한다. 중립성이라는 미명하에 행해지는 학생에 대한 쿨함(무관심)과 사랑이라는 명분 속에 행해지는 구속 사이의 긴장 관계 속에서, 교사는 학생들을 동등한 인격적 주체로 바라보고 기꺼이 그들과 삶을 나누고 소통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교사의 사명이며, 전문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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