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2008/11/24

* 지금 하우스메이트는 체코에서 2주간 공부하러 온, 두 아이를 둔 아저씨이다. 나이를 듣고 나서 전혀 그 나이로 보이지 않는 인상 좋은 아저씨이다. 19살 먹은, 아마 한국 나이론 20살이나 21살일 딸은 'floor hockey'(?) 국가대표급 선수라고 한다. 7살 연상의 부인과 결혼을 했고, 자신을 닮은 틴에이저 아들을 두고 있다.

그렇게 인상이 좋아보이는데 자신은 공산주의가 싫다고 말한다. 내가 그동안 만난 사람중에 공산주의를 싫어하는 사람은 다들 꼴통보수에 얼굴도 greedy하게 생겼기 때문에, 이 체코 아저씨가 하는 말은 자뭇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무슨 맥락에서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1988년에, 이 아저씨의 표현에 따르면 'revolution against communism' 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곧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갈라졌고. 이 아저씨는 그 당시에 직장에 갓 들어가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이 혁명이 일어나고 나서 바로 월급이 100파운드에서 400파운드로 올랐다고 한다. 우와, 아저씨 그럼 생활이 무지 넉넉해졌겠네요, 했더니 월급이 오른 만큼 생활물가도 무진장 올라서 실상 생활에 큰 변화가 있는 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저씨가 공산주의보단 지금이 낫다고 말하는 이유는 뭘까.
'spy' 라는 표현을 썼다. 영어가 무척이나 서툰 편이어서 자신의 의사전달을 정확히 하는 편이 아닌데, 아저씨가 스파이란 말을 했을땐 바로 무슨 얘긴지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공산주의가 붕괴하고 나서 스파이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freedom'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그리고 'holiday'를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삶을 즐기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말을 했다.
'idea of communism'은 좋다고 아저씨가 말했다. 하지만 흔히 들어왔던 것처럼, 실제로 당간부들의 삶과 뭇 사람들의 삶은 너무나 달랐다고 한다. 이런 저런 맥락으로 볼 때 아저씨는 그 상황이 너무나 싫었던 것 같다. 차라리 대놓고 빈부의 격차를 인정하는 것도 아니고 겉으론 민중이니 정의니 말하면서 실제론 간부들만 살찌우는 그런 시스템을 긍정하기는 쉽지 않을게다. 예전에 러시아 학생을 만나서 들었던 얘기와 비슷하게, 체코에도 자본주의가 본격화되면서 이런 저런 문제들이 나오고 그에 따라 나이 많은 사람들 중에는 공산주의에 대한 향수들도 사회적으로 묻어나오는 것처럼 들렸다. (문득 오늘 호스트맘이 말하던 'the grass on the other side is greener than here.' 이 문장이 떠올랐다.)

아저씨가 말한 얘기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건, 법/질서에 대한 뭇 사람들의 멘탈리티에 관한 얘기였다. 처음엔 아저씨가 자꾸 'order' 얘기를 하면서 비유를 들어서 못 알아들었는데, 나중엔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요지인 즉은, 공산주의 하에 있던 시절 사람들 사이에서 당의 결정에 대한 불신이 워낙 극에 달해서 뭔가 법이나 질서가 만들어지면 그걸 무시하는 게 일상적이었는데, 그런 마인드가 시스템이 바뀐 지금에도 여전히 남아있어서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아저씨의 얘기를 들으며,  일상적인 차원에서의 부정부패를 떠올렸는데 얼추 아저씨의 얘기의 맥락에 부합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저씨는 그렇게 당의 질서에 저항(?)하는 것이 당시엔 자랑스러운 일로 여겨졌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도 사람들의 그러한 습속이 남아있어서 문제가 된다는게 아저씨의 의견이었다.

이런 저런 경험으로 비추어보면 '유드리'와 '근대성'은 반비례 관계에 있는 것 같다. 유드리는 푸근한 정이 될 수도 있지만 무원칙으로 여기지기도 한다. 한편 근대성은 질서정연하고 모든 것이 예측가능하지만 대신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오래된 나라일수록 차갑고 딱딱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게다. 일본 한 캠핑장에서 일주일 전에 받아야 하는 허가를 못 받았다고 아무도 없는 텅 빈 캠핑장을 뒤로 한채 나왔을 때의 그 기분이 떠오른다. 흥미로운 건, 전근대성이 대개는 가부장적 질서와 연결된다는 점이랄까. 그래서 더욱더 근대성에 대한 고민을 할때면 이런 저런 생각이 겹치곤한다.

아저씨의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그리고 언어적 장애로 인해 원활한 의사소통이 되지 못한 대화였지만, 아저씨의 이야기가 나에겐 전근대적인 가치(법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를 무기로 전근대적으로 운영되던 공산주의를 붕괴시켰다는 말로 들렸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글로 막상 쓰고 나니 나의 이런 느낌이 어떤 유의미한 맥락을 더 이상 파생시키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암튼 아저씨가 지금 체코 사람들의 가치관을 말하면서 문제라고 했을때, 공무원들을 못 믿는 한국 사람들의 분위기도 떠오르고 한편으론 법치주의를 끊임없이 반복해대는 경찰, 법무부, 정부 등등의 모습이 떠올랐다.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공산주의 시절의 빈부격차보다는 자본주의 하에서의 빈부격차가 그래도 더 낫다고 말하는 아저씨의 얘기를 들으며 무언가 반응하고 싶은 욕구가 꿈틀하는데 그게 정확히 무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자본주의에서 자유는 소비할 자유에요 아저씨, 하고 말하기엔 아저씨 경험의 무게 앞에서 내 생각이 한갓 머릿 속의 불면 휙 날아갈 가벼운 관념처럼만 느껴졌다.

한국에선 갈수록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했더니 아저씨가 그럼 주변 나라에서 구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을 했다. 난 그동안 한국으로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나 영국 등 소위 1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변국 출신 노동자들만 떠올렸지 나 자신을 이주노동자로 위치지어본 적은 없었기에 아저씨의 그 말에 꽤나 자극을 받았다. 한국에서 직장을 구하기 힘들면 유럽에 와서 구하면 되지 않냐고, 내가 유럽은 너무 멀다고 그랬더니 그럼 주변국인 일본이나 중국에서 구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물론 나 자신이 일주일에 5일씩 일하는 보통의 직장에 취업할 생각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아저씨가 말하는 게 바로 이주노동자들의 삶 아닌가싶은 생각. 예컨대, 이란에서 영국으로 건너온 노동자는 이주노동자라는 개념틀에 적합해보이지만, 영국에서 한국으로 영어를 가르치러 온 사람은 흔히 말하는 이주노동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러고 나니 한국이 세계 경제규모 10위(11위?)의 1세계국가인거구나생각이 든다.

불과 약 20-30년전까지만 해도 영국에 '통금시간' 비슷한 법이 잇었다고 한다. 펍에서 요일마다 약간씩 다르긴 하지만 보통은 밤 10시 반, 금요일은 11시면 모든 펍이 문을 닫아야 했다고 한다. 그래서 문닫기 5분 전인가 30분 전에는 펍마다 종을 치며 문닫기 얼마 전이니 마지막 주문들을 하라는 광고를 하곤 했다고. 이 통금시간이 엄격하게 적용되는 건 일요일이었는데, 그 이유인 즉은 사람들이 다음 날 출근을 하는데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초기 자본주의 형성 과정의 역사에 관한 책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가 불과 30년전까지 존재했던 셈이다.

얼마전에 켄 로치 감독의 <자유로운 세계>를 봤는데 런던에 즐비한 수많은 동유럽 노동자들의 모습이 나온다. 온갖 규율을 통해서 자본주의적 질서가 성공적으로 잡힌 국가의 자본들은 싼 노동력을 찾아 소위 말하는 3세계 국가로 이동을 한다. 그리고 3세계 국가의 노동자들은 거꾸로 1세계 국가로 목숨을 걸고 넘어온다. 이게 무슨 아이러니인걸까. 그런데 이렇게 웃기게 돌아가는 자본주의가 세계적 불황이라며 위기라고 한다. 세상에 영원한 것이 없다면, 200년을 갓 넘겼을 법한 자본주의도 곧 종말은 언제쯤 올려나. 이런 왠지 사치스럽고 추상적인 고민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