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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생활 후반전을 맞이하며

한 일주일 정도 블로그에 글 올리는 걸 쉰 것 같다. 처음 이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이유가 다름 아닌 사람들과 소통하며 시공간의 괴리가 불러올 고립감을 좀 벗어나고자 함이었는데, 그래서 더 열심히 이 곳에서 무얼 하며 지내는지를 마치 일기처럼 기록으로 남겼던 건데,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최근 일주일은 무지 바빴던 한 주였던 것 같다.

일단 지난 주 수요일? 응 수요일엔 지난 번 critical mass 에서 만났던 칠레 친구 집에 찾아가서 자전거를 받아왔다. 이 친구가 그동안 다른 사람들이 버린 자전거들에서 뜯어 모은 것들을 다시 재조립해서 새로운 자전거를 하나 만들었는데 그걸 나에게 빌려 주었다. 덕분에 프레임부터 브레이크 기어 핸들바 등등 기본적인 것들부터 다 다시 맞추는 작업을 했다. 빨간색 프레임에 싸이클 핸들바, 얍실한 바퀴. 생긴 것에 비해 그렇게 속도는 안 나지만(내 엔진이 부실해서 속도가 안 나는 것일지도ㅎ) 나름 페니어를 메달수 있는 짐받이까지 있어서 이것 저것 갖출 건 다 갖췄다.

막상 자전거가 하나 생겼지만 사무실까지 왔다갔다 한건 일주일 중에 한 이틀밖에 안 된 것 같다. 지난 주말에 공교롭게도 이런 저런 약속이 생기는 바람에 너무나 정신이 없었다. 반년 넘게 스케줄 없이 혼자 띵가띵가 하던 주말에 익숙해져 있다가, 한달에 한 번 있는 퀘이커 비폭력 트레이닝 워크샵부터 wri 비폭력 핸드북 출판기념파티, 그리고 정현이가 마침 같은 주말에 런던에 놀러오게 되어서 이리 저리 내가 가진 에너지를 잘 분배하느라 애를 먹었다. 마치 예전 서울 생활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하루에도 스케줄이 여러 개씩 있는 생활 패턴 말이다.

주말의 마지막 일요일 저녁엔 헤이스팅스 친구들까지 만나게 되어서 월요일엔 정말 하루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막상 추근하고 나니 어느 새 또 몸이 적응을 한다. 살짝 놀랍기도 하다.  지난 주엔 1년에 세번 있다는 wri 운영위원들 미팅이 있어서 이 사람 저 사람들이 런던으로 왔다. 주요 의제들 얘기에 별 관심이 없어도 사무실 분위기 상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직접 듣거나 건너건너 듣거나 하게 되는데 알면 알수록 피곤한 주제들도 많아서 결국 어딜 가나 사람 사는 데 갈등 양상은 똑같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마틴 아저씨가 3월 초에 자기 집에 한번 놀러오라고 초대를 했다. 4월 초에 한국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고 했더니 나 가기 전에 한번 자기 집에 놀러오라면서.. 다른 사람들을 초대한 것도 아니고 이런 분위기라면 나 혼자 놀러가게 될 것만 같지만, 전철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보니 새삼 마틴 아저씨의 호의가 고맙기만 했다. 사실 아빠보다 더 많은 니이를 가진 분인데 이렇게 잘 지낼 수 있다니, 난 그렇게 나이 먹으면 나보다 새까맣게 어린 20대 친구들과 이렇게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틴 아저씨나 하워드 얘기를 듣다보면 그들이 20대였던 70년대의 운동에 대한 얘기도 듣게 되고, 그러고 보면 한국 평화 운동이 여기보다 적어도 30년은 늦나보다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지금 고민하는 것들이 사실은 오래 전에 다른 사람들도 했던 것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가 있는데 적어도 여기에는 문서로 남겨둔 역사들과는 별개로 직접 과거의 경험, 고민, 이야기들을 들려줄 수 있는 살아있는 창구들이 있으니 부럽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스러운 사실은 여기에도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죄다 남자라는 거다. 연령대가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남성의 비율은 거의 절대적인 것 같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새삼 질문이 제기된다.

2월은 늘 그렇듯 너무나 짧아서 어느 새 또 2월 말이다. 서울에 돌아가면 어떤 기분이 들까 슬슬 이런 생각들도 들고.. 여기서 남은 하루하루가 점점 더 아쉬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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