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는 교육시장화와 싸우는 중

호주는 교육시장화와 전쟁중

: 호주 교원노조 부의장 안젤로 가브리엘라토(Angelo Gavrielatos)와의 대담


미국의 진보적 교육잡지 <리씽킹 스쿨> Rethinking School 이 작년 겨울에 호주 교원노조 부의장과 만나 호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육시장화 흐름, 특히 사립학교에 대한 정부의 막대한 지원정책을 두고 대담을 나눴다. 다른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호주에서도 이른바 보수주의자들이 공교육 헐뜯기에 앞장서면서 사립학교에 대한 정부지원을 이끌어냈다. 그 결과 현재는 전체 학생들의 약 1/3 가량이 사립학교에 다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수주의자들은 사립학교에 정부가 지원을 함으로써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아이들도 질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게끔 한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가난한 아이들보다 부유한 아이들이 사립학교에 더 많이 다니고 있음이 드러났다. 보수주의자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교육과정에까지 손을 뻗쳐 자신들의 의도대로 교육과정을 고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한 가지 특이할만한 점은 뉴사우스웨일즈주(州)에서는 노조가 무능한 교사를 보호한다는 보수주의자들의 비난에 대응하기 위해 주와 노조가 단체협약을 맺고 교원평가 절차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자질이 의심스러운 교사를 교장이나 관리자가 10주간 평가를 해서 계속 있게 할 것인지, 아니면 나가도록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절차다.

호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우리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 특히 공립학교와 교사들에 대한 불만을 조장하면서 정작 열악한 환경의 아이들로부터 교육기회를 박탈하고 소수 특권층을 보호하는 차별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교육시장화의 요체이다. 다행히도 이에 맞서 대항하는 노조가 있다는 사실이 반갑기는 하지만, 일부 주에서 교원노조가 교원평가를 제도화함으로써 보수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비껴가는 전략을 쓴 것은 자칫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또한 교원노조가 엘리트주의 그 자체를 문제 삼지 않고 그저 기회의 평등을 주장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인다. 일면 보수적으로 비치는 의제는 신자유주의 개혁 의제로 충분히 흡수․수렴될 수 있고, 역사가 증명하듯 자유주의 세력은 여기에 동조하기도 한다.

신년 벽두에 호주 교원노조가 던져주는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지배계급의 공세에 대해 자유주의적인 개혁의제를 자신의 과제로 삼을 것인가, 급진적 기치로 신자유주의에 정면으로 대항할 것인가. 2007년 한국의 전교조는 또 어떻게 할까. <역자주>

 

원문보기
http://www.rethinkingschools.org/archive/21_02/aust212.shtml

Q : 호주에서 사립학교에 지원되는 정부지원금의 규모는 어느 정도 되나요?
A : 호주에서는 기본적으로 주정부가 교육에 대한 책임을 지는 동시에, 연방정부가 추가로 지원을 해줍니다. 존 하워드가 총리로 있는 동안 연방정부는 사립학교의 핵심적인 지지자 역할을 해왔습니다.

연방정부의 사립학교 지원은 극적으로 증가해서 2005~8년 동안의 재정지원계획에 따라 공립학교보다 더 많은 돈을 받게끔 되었습니다. 참고로 약 2/3 가량의 학생들이 공립학교에 다니고 있지요.

연방정부의 지원은 미국처럼 바우처 방식은 아니지만, 결과는 똑같습니다. 학생수에 따라 학교에 직접 지원하는 방식입니다.


Q : 연방정부의 사립학교 지원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A : 지난 1960년대에 사립학교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가톨릭 학교가 벌인 캠페인의 결과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가톨릭교회는 시드니 서쪽지역에 있는 자신들의 학교를 폐쇄하겠다고 협박했었는데요, 실제로 공립학교는 특별히 우수한 학생들을 당장에 다룰 수 없기 때문에 공립학교가 전체 교육체계를 망쳐놓을 것이라며 정부를 상대로 공갈을 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정부는 사립학교에 지원을 하기 시작했고, 우선은 과학과 도서관에 돈을 지원했습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지원액이 늘어나, 이제는 정기지원(학생수에 따른 지원)이라 불리는 지점에 도달했습니다. 필요에 의해 시작된 정치적 운동이 이제는 사립학교가 공공자금을 지원받을 자격이 자동적으로 부여된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제도로 정착되었습니다. 2005 ~ 2008년 동안 연방정부는 사립학교에 대한 정기지원금의 75%를 지원할 계획입니다.


Q : 연방정부의 지원 결과 사립학교 체제는 성장을 했습니까?

A : 30년 전만 해도 사립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15%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수가 두 배가 되어, 전국적으로 대략 32%의 학생들이 사립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연방정부가 재정지원을 한 결과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을 사립학교에 몰아넣으려는 보수주의자들의 꿈이 재촉되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게다가 공공자금으로 말이죠.


Q : 사립학교가 역할을 잘 하고 있다면, 정부의 지원을 받을만하지 않나요?

A : 예, 말로는 그렇죠. 그런데 현실은 모든 학생들, 특히 특별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아이들, 원주민 아이들이나 가난한 아이들을 교육해야 하는 어떤 의무나 책임감도 없는 사립학교에 학생들과 돈이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것이죠.

이 때문에 공립학교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물론 공립학교에 문제가 있고, 이는 세계적으로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양질의 공공제도의 목적을 지지합니다. 그 목적을 채택하는데 실패한 정부는 최고급의 공립학교제도를 제공할 수 없거나 꺼려한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입장은 명확합니다. 정부의 역할은 모두에게 열려있는, 무상, 보통 공립학교제도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Q : 사립학교는 특별한 어려움에 처해있는 아이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주고 있나요?

A : 이론적으론 사립학교는 이들을 위해 봉사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현실을 보죠. 이 아이들의 80% 이상이 공립학교에 다니고 있는데요, 이는 공립학교에 다니는 학생 비율(68%)보다 훨씬 높습니다. 즉 사립학교는 이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자기 학교에 다니지 말 것을 종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죠. 공립학교 학생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원주민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립학교는 극적으로 증가했지만 학교운영에 돈이 많이 드는 변두리나 고립된 지역에는 아직도 사립학교가 별로 없습니다.


Q : 사립학교들은 정부지원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 수업료를 부담시키나요?

A : 물론이죠. 예전에 그들이 주장했던 것 중 하나는 노동계급에게도 교육기회를 주기 위해서 정부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죠. 연구에 의하면 고소득층 학생의 50% 이하가 공립학교에 다니는 반면, 저소득층 학생은 78% 정도가 공립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결국 정부의 사립학교 지원은 사립학교의 접근성을 높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엘리트주의를 강화시켰죠.

게다가 많은 사립학교들이, 특히 더 많은 혜택을 받는 학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수업료를 올렸습니다. 최근 <시드니 모닝 해럴드>는 일부 사립학교의 수업료가 올해에는 2천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끔찍하죠.


Q : 정부지원을 받는 사립학교는 회계를 공개해야 합니까?

A : 아뇨, 그게 큰 문제입니다. 우리는 사립학교가 공공자금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부의 역할은 가능한 한 최상의 공공제도를 위해 지원하는 것입니다. 즉 사립학교가 더 많은 책무를 다 하도록 해야 합니다.


Q : 호주에서는 미국보다 교육사유화 움직임이 25년 정도 앞서는 것 같네요.

A : 불행하게도 호주가 이 분야에서는 최첨단을 달리고 있죠.


Q : 미국을 위해서 호주의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말씀해주신다면?

A : 우리는 항상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봐야 합니다. 40년 동안 우리는 어떤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가? 우리는 사회적으로 결속력있고, 관용적이며, 민주적인 사회를 원하는가? 아니면 파벌적이고, 갈등적이며, 분리주의적인 사회를 원하는가?

제가 보기엔, 사립학교는 주의 지원을 받는 분리주의의 좋은 예입니다. 사립학교에서 인종, 민족, 계급, 종교에 따른 분리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상황은 악화되어 최근 연방정부는 모든 학교에 목사를 두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런던 폭파사고가 일어난 지 일 년 쯤 후에 언론에서 ‘토착민’ 테러리스트를 다룰 때, 호주인들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왜 정부는 이슬람 학교에 재정지원을 할까?” 우리는 논쟁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정부가 어느 종교에 지원하는지 구별할 수 없을 거란 점도 분명히 했죠. 이슬람 학교와 가톨릭 학교, 그리스정교 학교의 토대를 구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관점에서 보자면 심각한 종교적 편견에 빠져들기 때문이죠.

정부재정지원은 공립학교에 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유일하고도 유효한 답입니다.


Q : 노조가 무능한 교사를 보호하기 때문에 공립학교의 성적을 떨어뜨린다는 비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 보수주의자들은 사립학교로 돈을 몰아주려는 자신들의 정치적인 목적을 추진하기 위해서 공교육의 불신을 조장하는 시도를 계속 해왔습니다. 이 전략은 당연히 계획적이었죠.

공교육의 불신을 어떻게 조장했느냐면, 우선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고 주장을 합니다. 물론 어떤 연구결과나 통계자료를 제시하지도 않지요. 그 다음엔 이 저급한 교육은 노조가 무능한 교사들을 보호해주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들은 순전히 거짓말이기 때문에 이에 맞서 싸우는 것은 언제나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거짓말에 맞서 어떻게 싸울까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제 고향인 뉴사우스웨일즈에서는 주정부와의 단체협약의 일환으로 능력이 의심스러운 교사 문제를 처리하는 절차를 마련했습니다. 이 절차는 몇 가지 요인에 의해 자극을 받았는데요, 학부모의 불만, 학생의 불만, 동료교사나 교장의 염려가 바로 그것입니다. 절차에 따르면, 해당 교사는 교장이나 부교장 또는 비슷한 위치의 다른 사람에게 10주 동안 평가를 받습니다. 그들은 해당 교사와 그의 수업, 교육과정, 학급활동을 관찰합니다. 10주 후에 교사의 성과가 개선된 것으로 판단되면, 모든 것이 만족스럽게 끝납니다. 그런데 10주 후에도 여전히 불만족스럽다면 퇴출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노조가 무능한 교사를 보호한다고 말하지만, 아닙니다. 우리는 정당한 절차를 보호하고 있을 뿐입니다.


Q : 사립학교에 대한 정부의 지원정책 이후, 뒤따라올 보수적 정책의제는 무엇입니까?

A : 보수주의자들의 다음 목적은 자신들이 ‘국가공통교육과정’이라 부르는 것을 강제함으로써 가르치는 내용을 통제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보수주의자들은 주별로 만들어진 현행 교육과정이 좌파 이데올로기에 의해 습격당했다고 주장하는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작년 10월초 교육부장관은 현행 교육과정의 주제가 ‘마오쩌둥으로부터 직수입’ 되었다고 주장할 정도로 극단적입니다.

또 보수주의자들은 학업성취도가 떨어지고 있다며,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비판적 분석능력을 가르치기 때문에 아이들을 세뇌시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역사에 관해서 보자면,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역사가 설명적이고 구조화된 방식으로 가르쳐지지 않고 의문으로 남겨진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도 잘 알다시피 역사란 항상 논쟁적이며, 해석의 여지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눈에는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그들은 ‘공식적’인 역사를 가르치기 원합니다. 그들이 ‘공식적’ 역사를 운운할 때면, 전체주의와 파시즘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처럼 느껴져요.


Q : 희망적인 나라나 그런 싸움을 하고 있는 곳이 있나요?

A : 분명히 있죠, 남미를 보세요. 우리가 10년 전만 해도 예측하지 못했지만 일정한 수준의 의식과 정치적 동기가 있어요. 특히 선거를 통해 집권한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칠레를 보면 말이죠.

호주를 보면 제가 느끼기에 대중들은 정부가 너무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호주의 국내, 대외 정책은 공포, 속임수, 외국 혐오증, 인종주의에 의해 좌우되어 왔습니다. 하워드 정부가 부시 정부의 일원처럼 활약했던 이라크 전쟁이 그 한 예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아마 호주사람들은 정부가 지나치다고 말할 것입니다. 저는 급진적이거나 진보적인 사람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전 다만 평균적인 사람들을 얘기하죠. 그게 사실 희망적이죠.


Q : 이라크에 대해서 말인데요, 호주교원노조는 부시의 전쟁을 지원하는 하워드 정부를 비판하는 활동을 상당히 두드러지게 해왔습니다. 그런데 그게 노조를 둘러싼 정치적 문제를 유발하지는 않았나요?

A : 우리는 호주 정부의 행위가 국제적 공동체의 관점에서 보자면 한 국가에 해당하는 우리 교원노조를 죽이려는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부가 조장하는 공포와 외국 혐오증을 비판하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최우선에 놓을 것입니다. 그리고 큰소리로, 떳떳하게 활동을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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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3 17:11 2008/02/13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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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선택권과 학업성적

 

학교선택권 확대는 학업성적을 높이나?

 

얼마 전 서울시 교육청은 고등학교 선택권을 확대하는 방안을 담은 연구용역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이 보고서가 주장하는 바는 일반계 고등학교 진학 시 현행 학군제에 따라 학생을 배정하지 않고 서울시 전역 내에서 지원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사실상 서울시 전체를 단일한 학군으로 만드는 방안이라 할 수 있다. 작년에도 부동산 문제로 한창 시끄러울 당시 김진표 장관이 서울시 학군 조정 문제를 잠깐 언급한 바 있었는데, 최근 부동산 문제를 빌미로 중대한 교육정책의 변화를 꾀하려는 시도가 다시 재현되고 있다.

 

집값을 못 잡으니 교육정책이라도 바꿔보자?

 

이런 방안은 ‘학교선택권’ 확대라는 그럴싸한 말로 포장되곤 하는데, 이 주장이 가정하고 있는 중요한 전제는 다음과 같다. 현재 중학교에서 일반계 고등학교 진학 시 학군 내에서 근거리 배정되는데, 사실 학군마다 교육여건이나 효과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불만이 표출된다. 특히 소위 ‘강남 8학군’은 대학입시에서 우수한 성과를 내기 때문에 강남지역에 살지 않는 사람들은 우수한 8학군 효과를 누릴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하는 셈이다. 따라서 학교선택권을 보장하여 낙후된(!) 지역의 학생들도 강남의 우수한(!) 학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주장의 요체. 게다가 강남 입성 경쟁 때문에 덩달아 집값까지 오른다며 학군을 조정하든지, 다른 지역에도 입시명문고를 지어 경쟁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난무한다.

강남의 효과는 학교효과가 아닌 사교육이나 가정배경의 효과이기 때문에 강남에 있는 학교로 옮겨갈 수 있다고 해서 대입경쟁에서 유리한 것이 결코 아니다. 이에 대해선 반론의 여지가 없지만 선택권의 확대가 학교 간에 경쟁적 환경을 조성하여 결과적으로 좋은 성과를 낸다는 믿음은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있다. 이번 서울시 교육청의 연구보고서도 이런 믿음을 뼈대로 하고 있다. 하지만 학업성적을 높이는 것이 지상의 목표인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서라도 과연 선택권의 확대가 실제로 학업성적을 높이는 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연구자는 선택권 확대를 전제로 구체적인 시뮬레이션까지 했으나 정작 왜 선택권을 확대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실상 국내에서도 학교선택권 확대의 타당성을 다루는 연구물을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선택권 확대 주장은 평준화에 대한 공격논리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신화에 가깝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의 사례는 어떨까? 특히 우리보다 앞서 자유시장 원리를 적용하여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한 영국과 미국의 사례를 통해 반면교사를 삼도록 하자.

 

 

사례1. 잉글랜드 초등학생의 선택권과 학업성취도

 

현재 잉글랜드에서는 1988년 교육개혁법 이래 많은 지역에서 선택권이 확장된 결과, 거주지배정 방식과 선택권 방식이 공존한다. 잉글랜드의 모든 공영학교는 관할권 내의 학교에 대한 책임을 지는 지역교육청을 통해 중앙정부로부터 상당부분 재정지원을 받는데, 결정적으로 학생 수에 따라 지원을 받는다. 이렇게 선택권이 확대된 결과 학교는 살아남기 위해서 성취수준을 높임으로써 학생들을 유인해야만 한다. 따라서 선택권의 확대는 자연스럽게 학업성적을 높인다는 믿음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런던대학 경제학부의 스티븐 깁슨과 동료들은 선택과 경쟁의 지지자들이 말하는 학업성취에서의 유리함에 관한 실증적 증거를 밝히려고 하였다. 그래서 이들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을 제기했는데, 1) 학생들은 자신의 거주여건 하에서 학교를 고를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주어진다면 성적이 더 높아지는가? 2) 학생들을 더 끌어들이기 위해 많은 학교들과 경쟁해야 하는 학교에 다닐 경우 학생의 성적은 더 높아지는가?

연구자들은 잉글랜드의 공영초등학교 2,412개교 201,034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거주지에 따라 선택권과 경쟁 지표를 정의하고 그것이 학업성적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였다. 결과는 예상과 달리 부정적이었다. 즉 선택권과 학업성취 사이에는 별다른 연관관계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경쟁과 학교성적 간에는 약간의 상관관계를 찾았는데, 이것이 경쟁 때문인지는 근거가 없었다. 이는 학교의 위치나 배정된 학생의 영향일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선택/경쟁과 학업성취도 간에 인과관계를 찾을 수 없었다는 결론이다.

 

사례 2. 캘리포니아 차터스쿨이 공립학교에 미친 영향

 

미국의 차터스쿨은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1992년에 최초로 개교된 이래 현재는 41개 주(워싱턴 DC 포함)에서 약 3,400개의 학교가 운영되고 있을 정도로 급격히 팽창했다. 차터스쿨 또한 학생들을 유인하기 위한 경쟁적인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기존의 공립학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주장을 내세웠다. 즉 자유시장 하에서 소비자의 선택은 공급자 간에 경쟁을 유발하고 그 결과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공급자의 질이 높아진다는 자유시장 신봉자들(밀턴 프리드만, 처브, 모우 등)의 믿음이 차터스쿨이나 바우처 제도와 같은 선택권 확대 정책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었다.

 

리차드 부딘과 론 짐머 두 연구자는 캘리포니아 주에서 차터스쿨 때문에 경쟁적 환경이 조성되었는지, 그리고 학생들의 성적이 높아졌는지를 조사하였다. 먼저 연구자들은 지난 2002년에 주내에 있는 200여 개 공립학교와, 차터스쿨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6개 학구를 골라 그 학구 내에 있는 30여 개 공립학교 교장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였다.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차터스쿨에 다니는지, 차터스쿨 때문에 학교내부의 변화가 있는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물었다.

 

설문조사 결과 대략 50% 정도가 차터스쿨에 다니고 있는데, 실제로 교장들은 차터스쿨이 공립학교에 미친 영향은 별로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차터스쿨 때문에 교원 인사(고용/해고), 연수, 보상, 그리고 교육과정 등에서 변화가 일어났는가 하는 질문에 교장들은 절대다수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재정적 안정, 필요한 자원을 획득하는 능력, 교사채용과 유지, 학생 유인능력 등에서 차터스쿨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질문에 교장들은 네 가지 항목 모두에서 차터스쿨의 효과는 없다고 답했다. 다만 6개 학구의 교장들은 교사 채용과 유지 항목에 있어서 차터스쿨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대답했다. 결과적으로 캘리포니아 주의 공립학교 교장들은 차터스쿨 때문에 공립학교가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별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연구자들은 110만 명의 1997/1998 학년도부터 2001/2002 학년도까지 읽기와 수학 성적을 토대로 선택권 확대 정책이 공립학교 학생들의 성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추적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선택권의 확대는 학생으로 하여금 다양한 선택지를 보장하기 때문에 기존의 공립학교는 학생 모집에 있어서 경쟁의 압력을 받기 마련이다. 따라서 공립학교는 차터스쿨에 학생들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성적을 높일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공립학교에 미치는 이 경쟁의 효과를 살펴보기 위해 연구자들은 몇 가지 지표를 고안했는데, 차터스쿨까지의 거리(학생에게는 차터스쿨까지 거리가 가까울수록 공립학교가 느끼는 압력은 세다), 4km 이내에 차터스쿨의 존재 여부(일정한 경계 내에서 경쟁자의 존재여부), 4km 이내에 차터스쿨의 수(경쟁자의 수), 4km 이내에 있는 차터스쿨의 학생 점유율, 4km 이내의 다른 학교로 옮겨간 학생 수(전년도에 차터스쿨로 전학 간 학생 수), 이 5가지 지표로 공립학교가 겪는 경쟁 압력의 정도를 측정하였다. 결과는 교장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마찬가지였다. 차터스쿨이 공립학교 학생들의 성적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왔다. 초등학생의 읽기 성적에서는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즉 캘리포니아에서는 차터스쿨이 유발한 경쟁효과는 공립학교 학생들의 성적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학교선택권 확대는 학업성적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적어도 외국 사례에 비춰봤을 때, 학교선택권 확대(그리고 경쟁효과)가 학업성취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한국에서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 뻔하다. 대학입시를 기준으로 선호/기피(또는 명문/똥통) 학교가 확연히 갈라지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연구책임자인 박부권 교수가 직접 말했듯이 “기피하는 학교는 도태시켜야” 하는 게 선택권 확대의 궁극의 목적이다. 교육불평등이 문제의 핵심이라 했을 때 선택권 확대는 그 원인 처방이 될 수 없을뿐더러, 자유시장이라는 가정은 지극히 비현실적이므로 선택권이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학교구조조정이라는 무시무시한 발톱을 숨기고 있기 때문에 결국 선택권 확대는 오히려 불평등을 악화시킨다.

 

외국에는 이와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실증적 연구물들이 숱하다. 허나 한국에서는 변변한 연구물도 없고, 정책입안자나 관료들은 타당한 근거도 없이 어설픈 주장을 앞세워 정책을 밀어붙인다. 당연히 갈등과 논란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곡학아세가 무서운 이유다.

 

<연구 결과 요약>

선택과 경쟁, 그리고 학업성취

스티븐 깁슨 외
2006. 7.

 

  최근 몇 년간 교육에서 선택과 경쟁은 정책결정자와 학자들에게 지지를 받아왔다. 그러나 시장원리에 터한 교육개혁의 실제 효과에 대한 증거는 애매모호하다. 선택과 경쟁의 경제학적 근거는 명쾌하지만, 이제까지 연구들은 두 개의 개념을 구분하려하지 않았다. 이번 연구는 잉글랜드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폭넓은 선택권이 주어졌을 때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학업성취가 더 나은지, 그리고 학교가 경쟁적 조건에 더 많이 노출되었을 때 성적이 더 높은지를 알아보고자 했다. 단순회귀모형을 사용한 결과, 선택권과 학업성취 사이에는 별다른 연관관계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경쟁과 학교성적 간에는 약간의 상관관계를 찾았다. 그러나 이는 학교의 위치나 배정된 학생의 효과일 수도 있다. 실제로 입학 학군의 불연속성에 터한 도구변수방법은 학교 간 경쟁이 치열할 경우 학교성적은 제한됨을 보여준다. 다만 학생선발과 운영이 자유로운 종교계 자율학교의 경우 경쟁과 학생들의 성취도 간에 약한 상관관계를 발견했다.

 

원문보기

 

<연구 결과 요약>

캘리포니아 차터스쿨은 공립학교의 학업성취를 높였나?

리차드 부딘 & 론 짐머
2005. 9.

 

  본 연구는 차터스쿨이 공립학교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았다. 차터스쿨 정책은 차터스쿨 재학생의 성적을 높이는 직접적인 효과와 함께 공립학교와 경쟁적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공립학교의 성적을 높이는 간접적인 효과에 밑바탕 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사례를 바탕으로 공립학교 교장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차터스쿨이 유발하는 경쟁 효과가 공립학교 학생의 성적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였다. 그 결과 공립학교 교장들은 차터스쿨이 경쟁효과를 조성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마찬가지로 차터스쿨 경쟁효과가 공립학교 학생들의 성적을 높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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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3 17:09 2008/02/13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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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학교 효과'의 진실

 

'사립학교 효과' 정말 있나? - 2003 미국 학업성취도평가 결과의 교훈

주지하다시피 대략 20년 전부터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교육개혁의 대상은 바로 공립학교다. 근래에 국제 학업성취도평가에서 미국은 해마다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사회경제적 배경이나 인종에 따른 불평등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상황인데 이 모든 비난은 공립학교에 돌려졌다. 따라서 국가의 관리와 통제로 인한 공립학교의 비효율성과 관료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선 자율과 선택을 앞세운 시장원리의 도입이 절실하다는 믿음이 교육개혁의 이념과 지향으로 자리잡았다. 실제로 사립학교, 특히 가톨릭계 학교가 공립학교보다 학생들의 성적이 더 높다는 몇몇 연구결과(콜맨, 1982)가 이를 뒷받침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차터스쿨과 바우처 제도를 통해 공공자금을 지원하여 학생들을 공립학교에서 사립학교로 빼냈으며, 특히 부시정부는 ‘낙오학생방지법(NCLB)’을 통해 공공자금을 들여 사립학교 전학과 공립학교의 차터스쿨 전환을 지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와중에 올해 초 미국에서 아주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사립학교에 대한 일반적인 믿음, 즉 ‘사립학교는 공립학교보다 학업성적을 높이는 데 더 효과적이다’는 믿음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는 연구결과가 나온 것이다. 기왕에 바우처와 차터스쿨 제도가 기존의 열악한 공립학교를 더욱 더 나락에 빠뜨려 불평등을 한층 심화시킬 것이라는 비난이 일고 있는 마당에 이번 연구결과는 현행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에 일격을 날릴 것으로 보이며, 국내의 학교 시장화 흐름에도 따끔한 조언을 해줄 것으로 보인다.

 

 

‘효과적인 학교’ 연구와 신자유주의 교육개혁

 

‘사립학교가 공립학교보다 학업성적을 높이는 데 더 효과적이다’는 일반적인 믿음은 이른바 ‘효과적인 학교’ 연구와 자유시장원리에 기초한 신자유주의 교육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효과적인 학교’ 연구란 기존의 학교효과 연구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하는데, 기존의 학교효과 연구는 이른바 ‘투입-산출’ 모델로서 학교에 대한 투입(시설, 재정, 자원)을 변화시킴으로써 산출(학업성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허나 이는 실제 교육이 일어나는 학교내부의 과정에 무관심하다는 비판이 일었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투입자원이 학생들의 학업성취에 거의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역설적인 결론을 얻었다. 이후 연구자들은 과거 연구의 한계를 지적하며 학교의 내적 특성에 따른 학업성취도 차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더 나아가 학업성취가 높은 학교(효과적인 학교)와 낮은 학교(효과적이지 못한 학교)의 내적 특성을 비교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높은 학업성취를 보이는 학교는 성적에 대한 강조, 교사의 적극성, 교장의 리더쉽, 높은 수준의 교육과정, 높은 기대수준 등과 같은 조직적 특성과 문화적 풍토에서 차이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하였다. 또한 이러한 특성은 사립학교, 특히 가톨릭계 학교에서 두드러짐으로써 사립학교가 더 높은 학업성취를 낸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효과적인 학교’ 연구의 결론은 자유시장원리와 결합되어 교육시장화 정책으로 귀결된다. 국가의 간섭과 개입을 절대 악으로 여겼던 밀턴 프리드만의 이론을 수용한 시장주의자들은 학교를 더 이상 국가에 맡기지 말고, 시장에 맡기자는 주장을 하기에 이른다. 국가의 관리와 규제를 없애고, 학교간 경쟁을 유도하여 질을 높이며,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부여하여 질 좋은 교육을 받게끔 하자는 것이 이들의 주장. 그리하여 차터스쿨, 마그넷스쿨 등을 설립하여 국가의 관리운영체제를 폐지하고, 끊임없는 평가를 통해 학생간, 교사간, 학교간 경쟁을 유도하며, 바우처 제도를 통해 사립학교를 지원하고 나섰다. 그리고 최근 부시 정부는 ‘낙오학생방지법’으로 공립학교의 구조조정과 사립학교 전학을 지원하고 있다. 이것이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육개혁의 주요 흐름이다.

 

 

2003년도 전국단위 학업성취도평가(NAEP) 결과

 

미국은 지난 1969년부터 학생들의 성적을 높인다는 목표로 전국의 4, 8, 12학년을 대상으로 학업성취도평가(NAEP)를 해왔는데, 지난 2003년도 평가결과를 보면 수학성적에서 사립학교가 공립학교보다 높은 것으로 나와 ‘사립학교 효과’ 믿음이 여전히 지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사립학교의 높은 성적이 과연 사립학교에 내재한 고유한 효과 탓인지, 아니면 그저 우수한 학생들이 모여 있는 효과일 뿐인지는 관심 밖의 대상이었다.

 

일리노이 대학의 루벤스키 교수와 동료는 바로 이 점에 주목했다. 그들은 2003년도 평가결과 자료를 재분석하여 학생개인의 배경(인종, 사회경제적 배경)과 학교의 위치(대도시/소도시, 북동부/남부/서부) 변인을 통제했을 경우에도 ‘사립학교 효과’가 여전히 나타나는지를 보고자했다. 연구자들이 수학성적을 분석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수학은 다른 과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정배경의 영향을 덜 받는 과목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7,485개교 190,000명의 4학년 학생들과 6,092개교 153,000명의 8학년(중 2) 학생들의 수학성적 자료를 재분석하여 올해 1월에 <차터, 사립, 공립학교와 학업성취도: NAEP 수학성적 자료에서 얻은 새로운 증거> 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새로운 증거>가 보여준 결론은 놀라웠다. 학생 개인의 배경과 학교의 위치 변인을 통제하지 않았을 경우, 즉 표면적인 성적만으로 비교했을 경우 예상대로 가톨릭계, 루터계, 보수 기독교계 학교들과 여타 사립학교들의 성적이 공립학교보다 많게는 11점 정도 높았다. 8학년의 경우 루터계 학교는 공립학교보다 21점이나 높았다. 즉 ‘사립학교 효과’로 알려진 일반적인 믿음이 그대로 확인된 것이다. 하지만 학생 개인 배경과 학교의 위치를 통제한 후에 다시 학교간 성적을 비교해보니 놀랍게도 사립학교들의 성적은 오히려 공립학교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유형별 성적 차이 : 4학년

학교유형

원점수

개인배경, 학교위치 통제 후

가톨릭계

9.5

-7.2

루터교계

10.7

-4.2

보수 기독교계

4.2

-11.9

기타 사립

11

-5.6

차터

-6.1

-4.4

* 공립학교 점수를 0으로 했을 때, 사립학교의 상대적 성적

 

 

 

학교유형별 성적 차이 : 8학년

학교유형

원점수

개인배경, 학교위치 통제 후

가톨릭계

14.3

-3.8

루터교계

21.2

1

보수 기독교계

5.4

-10.6

기타 사립

14.3

-2.3

차터

0.9

2.4

* 공립학교 점수를 0으로 했을 때, 사립학교의 상대적 성적

 

 

즉 학교별로 학생 개인간의 차이와 학교의 위치 차이가 없다고 가정했을 경우 학업성취도 면에서 사립학교의 효과는 오히려 공립학교보다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거꾸로 유추해보면 통상 사립학교의 높은 성적은 이처럼 ‘형편없는’ 사립학교 효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모인 우수한 학생들 덕택인 셈이다. 자유경쟁 체제에서 ‘선택권’이란 개인의 노력 여하가 아닌 사회경제적 배경에 달린 문제라 실제로 사립학교를 선택한 학생들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우수한, ‘선택받은’ 학생들이다.

한편 차터스쿨에 대해서는 상반된 결과가 나와 연구자들도 차터스쿨의 효과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즉 4학년의 경우 학생 개인배경과 학교 위치를 통제하지 않았을 경우나 통제했을 경우 모두 공립학교보다 성적이 뒤처지는 것으로 나왔는데 비해, 8학년은 두 경우 모두 공립학교보다 약간 성적이 높게 나왔다. 8학년의 경우 차터스쿨 표본의 한계로 인해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신중한 결론을 내린 듯 하다.

 

또한 이번 연구에서 인종간 가정배경간 불평등도 확인되고 있는데, 4학년 학생가운데 비슷한 가정배경일 경우 흑인학생들은 백인학생들에 비해 무려 15.8점이나 점수가 낮게 나왔다. 그리고 점심급식지원을 받는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7.2점이 낮았다.

요컨대 미국 공립학교는 사립학교에 비해 학업성취도에서 전혀 뒤처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교육불평등과 성적부진의 주범으로 낙인찍혀왔다. 정작 문제는 공립학교의 실패가 아니라 인종간/계층간 불평등의 심각성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차터스쿨과 바우처 제도의 확대를 통해 불평등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데에 있다. 즉 공립학교에 지원할 자금을 사립학교로 돌림으로써 돈이 없어 공립학교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계층에 더 악영향을 미쳐 불평등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패한 공립학교’는 없다

 

우리 사회에서도 ‘효과적인 학교’에 대한 맹신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일류 학교’ 또는 ‘명문 학교’에 진학하면 학업성적이 높아져 상위권 대학 진학이 자동으로 보장된다는 믿음이 사회적으로 널리 퍼져있다. 이 같은 맹신은 소위 ‘8학군’ 진입 경쟁이나, 특목고 진학 열풍으로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8학군 학교나 특목고의 고유한 학교효과를 실증적으로 분석한 연구결과는 없다. 즉 8학군이나 특목고 등이 학업성취에서 실제로 높은 성과를 내는지도 확실치 않으며, 만약 높은 학업성취를 보여준다 하더라도 과연 그 요인(학생의 가정배경인지, 학교의 내적 특성인지)은 무엇인지 아직 밝혀진 것이 없다. 그럼에도 맹신은 무서운 것이어서 8학군 때문에 강남 집값이 떨어질 줄을 모른다며 평준화제도를 없애자는 허무맹랑한 주장이 난무하는 동시에 한편에선 지자체마다 너도나도 자사고, 외고, 국제고, 자율학교 등을 유치하겠다며 부동산 투기 열풍을 조장하고 있다. 공립학교도 ‘특별한’ 학교처럼 혁신하라는 살풍경도 벌어진다. 괜스레 공립학교들만 욕을 먹으니 교사건, 학생이건 닦달을 당하기 일쑤고, 근거 없는 패배감과 무력감에 한숨만 늘어간다. 어설픈 ‘미국 따라하기’가 부른 비참한 현실의 단면이다.

 

공교롭게도 바우처 제도의 강력한 주창자였던 밀턴 프리드만이 며칠 전에 세상을 떴다. 선택과 경쟁을 통해 학교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다던 그의 이론이 현실에서 얼마나 잘 부합되었는지 적잖이 의문이다. 인생의 말년에 바우처 제도가 위헌판결을 받고, 선택과 경쟁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운 사립학교가 별 볼일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니 저승길이 그리 편치만은 않았을 성싶다.

 

<연구 결과 요약>

차터, 사립, 공립학교와 학업성취: NAEP 수학성적 자료에서 얻은 새로운 증거

 

2006. 1.

연구자: 크리스토퍼 루벤스키 & 사라 루벤스키 | 일리노이 대학

 

“수학 성적 자료를 분석한 결과, 사립학교에 유리한 계층의 자녀들이 다닌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공립학교 학생들의 성적은 눈에 띠게 높으며 사립학교와 차터스쿨을 능가하기도 한다.”

최근 학교 유형별 학업성취도 문제가 주목받고 있다. 2004년도에는 차터스쿨 학생들이 공립학교 학생들보다 더 낮은 성적을 냈다는 보고서가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당시 다른 연구는 차터스쿨이 배움에 있어서 더 많은 성과를 낸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비슷하게 바우처에 관한 연구물들은 바우처가 특히 가난한 학생과 소수자 학생들의 학업성취를 높이는지 여부에 관해 뜨거운 논쟁을 야기했다.

 

일반적인 믿음과 과거 연구들은 사립학교가 더 나은 학업성취를 보인다고 여겼다. 사립화 모형이 우수하다는 가정은 바우처, 차터, 그리고 NCLB 법에 고스란히 깔려 있다. 이러한 가정에 따르면, 선택에 근거한 독립적인 학교 모형이 공립학교의 낮은 성적을 높이는 데 가장 좋은 형태라고 본다. 시장원리에 기초한 학교선택 제도는 학부모들로 하여금 질에 따라 학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학교 간에 서로 경쟁을 통해 질을 개선시킬 수 있다는 전제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광범위하고 종합적인 성적자료로부터 새로운 결과를 얻었는데, 이는 사립학교의 수월성에 관한 믿음을 심각하게 뒤흔들고 있으며, 나아가 사립학교들 간에도 학업성취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이 밝혀졌다. 이번 분석은 2003년도 전국 학업성취도평가(NAEP) 결과를 바탕으로 해서 공립, 사립, 그리고 기타 사립학교 간에 수학성적을 비교하였다. 다른 과목(예컨대 읽기)에 비해 수학은 가정에서의 경험보다 학교에서의 경험에 더 영향을 받기 때문에, 수학성적을 비교하는 것이 학교 유형에 따른 상대적인 학업성취도 차이를 좀 더 정확히 볼 수 있다. 2003년도 학업성취도 자료는 예년에 비해 약 10배 정도 규모가 큰데, 4학년의 경우 7,485개교 190,000명(2000년도에는 13,855명), 8학년의 경우 6,092개교 153,000명(2000년도에는 15,930명)을 대상으로 한다. 예전에 이 자료를 기초로 차터스쿨에 대한 연구결과가 나왔었는데, 연구자들이 웹 상에서 제공되는 정보에만 의존함으로써 학생과 학교 수준에서 다양한 변수들을 동시에 분석하지 못한 결과 연구의 신빙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완벽한 원자료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위계적 선형 모형을 사용하여 학생 간 인구통계학적 차이를 통제한 후 학교 유형과 수학 성적의 관계를 연구하였다.

 

주요 연구 결과

학생 개인 간 배경 차이를 통제하지 않았을 경우, 예상했던 대로 사립학교가 공립학교보다 높은 성적을 냈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학교 간에 성적 차이가 나는 이유가 공립학교에 불리한 계층의 학생 비율이 높기 때문인지 알아보았으며, 또한 학교, 학생 수준의 잠재적 변수들, 즉 학생의 사회경제적 지위, 인종, 성, 장애, 영어능숙도, 그리고 학교 위치 등의 변수를 통제한 후에도 학교 간 성적 차이가 나는지를 밝혀보고자 했다.

 

“종합하면, 공립학교와 사립학교 학생들 간의 인구통계학적 차이는 상대적으로 높은 사립학교의 원점수 그 이상의 것을 말해준다. 실제로 학생들 간의 인구통계학적 차이를 통제한 결과, ‘사립학교 효과’는 사라지고, 오히려 그 효과는 대체로 역전된다.”

 

학생의 인구통계학적 차이와 학교 위치 차이를 통제한 후 주요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공립학교가 두드러지게 가톨릭계 학교보다 성적이 높았다.(4학년에서는 7점, 8학년에서는 4점)

- 사립학교 중에서는 루터계 학교가 성적이 가장 좋았다. 4학년에서 루터계 학교는 공립학교보다 약 4점 정도 낮았고,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은 아니지만 8학년에서는 1점 높았다.

- 사립학교 중 최근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보수 기독교계 학교는 가장 낮은 성적을 보였다. 4학년, 8학년에서 모두 공립학교에 10점 정도 뒤처졌다.

- 차터스쿨의 경우 4학년에선 공립학교보다 4.4점이 낮았고,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은 아니나 8학년에선 2.4점 높게 나왔다.

 

공립학교가 뛰어난 성적을 보이고 있다는 이 결과는 통계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책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지던 사립화 모형이 이번 종합적인 연구에 의해 지지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립학교가 실패했다는 주장에는 근거가 없으며, 시장원리에 따른 선택과 경쟁기제에 근거한 현행 학교개혁의 기본 전제에 대해 커다란 의문을 품게 된다. 더 나아가 사립학교 시장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보수 기독교계 학교의 가장 낮은 성적을 감안할 때, 선택에 의해 성적을 높일 수 있을 것이란 가정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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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NCLB 내용과 문제점

 

미국의 교육시장화 정책 현황과 문제점: NCLB를 중심으로

 

 

지난 2001년 현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에 입성하자마자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하여 "No Child Left Behind Act(NCLB)" 라 명명하고 이듬해인 2002년 1월 8일 이 법안에 공식 서명함으로써 NCLB는 명실상부 미국의 유초중등교육(K-12)을 관장하는 연방 법이 되었다. NCLB는 말 그대로 전국의 모든 공립학교에서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도록' 학생들의 학력수준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제 각 주는 저마다 나름의 학력기준을 정하고 2014~2015 학년도까지 주의 모든 학생들이 100% 이 기준을 통과하도록 해야 한다. 학력기준을 통과했는지 여부를 판별하는 수단은 물론 끊임없는 평가시험이다.

이렇게 모든 학생들의 학력수준을 높이기 위해 NCLB는 학교, 학생, 교사들에게 상당히 강한 책무성을 요구한다. 이를테면 학력기준에 미달한 학생들에게는 사교육(과외)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준다거나 사립학교로 전학 갈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준다. 교사들에게는 퇴출이라는 무시무시한 제재조치가 기다리고 있다. 또한 실패한 학교에게는 차터스쿨로 전환하거나, 학교운영을 민간업체에 위탁해야 하는 벌칙이 주어진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도 NCLB의 효과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일고 있으며, 부정적 영향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NCLB가 교육시장화라는 숨은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전략이 아니냐는 비난도 있다. 그래서 교육시장화 정책이라는 맥락 속에서 NCLB를 분석하고 이것이 주는 의미 있는 시사점을 발견하고자 한다. 또한 그간의 경험으로 미뤄 짐작컨대 한국의 정책입안자들이 본국에서도 논란이 진행중인 정책을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서도 똑같은 논란을 야기시켜왔기 때문에, NCLB의 핵심요체와 문제점을 정확히 전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 여겨진다.

 

 

1. NCLB 추진 배경

 

NCLB 법이 주요 ‘개혁’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 바로 ‘타이틀 Ⅰ’ 이라고 하는 연방재정을 지원받는 학교다. 타이틀 Ⅰ 이란 저소득층이 밀집해 있는 지역의 학교를 지원하는 연방재정을 말하는데, 통상 저소득층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 교육기회에서 많은 차별을 받고, 교육여건도 형편없으며, 학업성적도 낮기 때문에 교육‘개혁’의 집중 대상이 되고 있다. NCLB가 강요하는 높은 책무성은 바로 이 타이틀 Ⅰ 학교가 대상이며, 즉 지원된 연방재정만큼 학업성적을 높이라는 주문이다. 받은 돈 만큼에 상응하는 성적을 높이지 못할 시에는 응당한 제재조치가 가해지는 건 뻔한 일이다.

 

미국은 대체로 경제력에 따라 거주지가 분화되어 있어, 경제력이 높은 중상류층은 도심 주변에 발달한 교외(suburb)에 모여 사는 반면, 흑인이나 히스패닉계가 주축을 이루는 저소득 빈민층들은 주로 도심의 집값이 싼 지역에 모여 산다. 이처럼 사회계층이나 인종에 따라 주거지의 구분이 명확하기 때문에 해당 지역 주민의 재산세로 조성되는 교육재정은 지역에 따라 현격한 격차를 보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교육재정의 격차는 교육자원, 교육시설 및 여건, 교사임금 등에 있어서 차이를 낳고 이것이 결국 지역간 학력격차를 낳는다. 이렇게 내재된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어떠한 처방도 없이 부실한 공립학교에 무시무시한 벌칙만을 강요하는 것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며 오히려 학교를 시장화하려는 음모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부시는 역사적으로 아프리카계로부터 가장 낮은 지지를 얻은 반면, 부유층과 재계로부터는 상당한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다. 교육은 공화당 대통령이 가난한 유색인종사회(특히 공교육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와 긴밀한 동맹관계를 맺은 척 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분야다. 그래서 부시는 교육을 인기영합적 전략으로 활용코자 하였다. 부시가 자신의 교육개혁전략을 선거에 적극 활용한 기가 막힌 사례가 있었다. 2001~2002학년도 당시 부시가 텍사스 주지사였던 시절에, 휴스턴에 있는 샤프스타운 고등학교의 교장인 로드 페이지는 자기 학교 학생들의 중도 탈락률이 0%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한 적이 있었는데, 이는 텍사스 주의 엄격한 학업성취도 평가 정책의 공으로 돌려졌고 ‘텍사스의 기적’이라고 까지 불려졌다. 이후 대선에서 부시가 당선되었고, 로드 페이지는 초대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 후 사프스타운 고등학교의 중도 탈락률 0%는 거짓이었음이 밝혀졌다. 결국 로드 페이지의 속임수 덕에 부시가 당선되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이 속임수의 공로로 교육부 장관에 임명되었던 것이었다. 결국 부시 정부는 ‘강한 책무성’ ‘높은 학업성적’ 이란 화려한 수사를 동원하며 NCLB를 자신의 선거전략에 적극 활용했고, NCLB는 부시 대통령에 뒤이어 국민적 지지를 얻어 통과되었다. 실제로 NCLB 법이 의회에서 통과될 당시 민주당, 공화당을 초월하여 초당파적 지지를 얻었다.

 

 

2. NCLB의 핵심 내용

 

NCLB가 추구하는 전략은 전형적인 당근과 채찍 전략이다. 즉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시험을 치르게 하여 기준에 미달하는 학생과 그 교사, 학교에 대해서는 가혹한 제재조치를 취하고 반대로 통과하였을 시에는 재정적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다.

NCLB의 핵심 내용을 알아보기 위해 각 주가 따라야 할 의무사항과 그에 상응하는 보상 혹은 제재조치를 알아보자.

 

주의 의무사항

- 각 학년별로 주요 과목의 학업성취 기준을 정해야 한다.
- 학생들이 위 기준을 달성했는지 여부를 판별할 평가제도를 개발해야 한다.
- 학교와 학구는 전체 학생의 학업성취도 뿐만 아니라 민족이나 인종, 장애여부 등에 따라 10개의 하위그룹별로 학업성취도를 보고해야 한다.
- 지역의 학교와 학구가 얼마나 잘 교육활동을 수행하고 있는지를 지역주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 즉 각 학교는 학생들의 학력평가 결과를 학부모에게 통지해야 하며, 기준 미달 교원의 비율 등 교원의 자질, ‘연간 적정 향상도’ 달성에 실패한 학교에 관한 정보를 알려야 한다.
- 동일 과목, 동일 학년의 모든 교사들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평가기준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전문자격 교원, 임시자격 교원 비율, ‘매우 우수’ 판정을 받지 못한 교사의 비율 등에 관해 해마다 보고해야 한다.
- 2014~2015 학년도까지 모든 학생들이 능숙한 학업성취도를 달성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예를 들면 '연간 적정 향상도 (Adequate Yearly Progress, AYP)'
- 연간 적정 향상도에 명시된 목표를 달성했는지 여부에 따라 보상이나 제재조치를 담은 책무성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에 따라 2005~2006 학년도부터 3학년부터 8학년(한국으로 따지면 중 2)까지는 해마다 수학과 읽기 또는 국어 시험을 봐야 하며, 고등학생들은 적어도 한 번 이상 치러야 한다. 그리고 2007-2008학년도부터는 초중고 모든 학교에서 적어도 한 번은 과학시험을 봐야 한다. 이렇게 모두 합하면 한 학구에서는 한 해에 모두 17번의 시험을 치러야 한다.

이렇게 치른 시험결과는 인종, 성별, 가정배경, 영어수준, 장애여부 등 집단의 특성에 따라 10개의 하위그룹으로 분류되어 분석되는데, 만일 한 학교 내에서 하위그룹 중 단 한 그룹이라도 주에서 정한 학력기준(AYP)에 이르지 못하면 이 학교는 '실패한' 학교로 낙인찍히게 된다.

학력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학교에 가해지는 제재조치는 다음과 같다. 특이한 점은 아래 제재조치들은 누적적이다. 즉 5년간 AYP를 달성하지 못한 학교는 2년차, 3년차, 4년차 때 적용된 벌칙들도 고스란히 물려받게 된다.

 

벌칙 조항

- 2년 연속 AYP를 달성하지 못하면 '성적 향상 요망' 학교로 분류되며, 기술적 지원과 학교 선택권이 제공된다.
- 3년간 AYP를 달성하지 못하면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보충과외학습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 4년간 AYP를 달성하지 못하면 다음 중 하나를 따라야 한다.
  : 교직원 교체, 새로운 교육과정 교체, 학교운영권한 축소, 학년이나 수업일수 확장, 학교 내부조직 구조조정, 외부 전문가의 조언
- 5년간 AYP를 달성하지 못하면 학교를 구조조정 해야 하며, 다음 중 하나 이상의 조치를 따라야 한다.
  : 차터스쿨로 전환, 교직원의 전부 또는 대부분 교체, 학교운영을 외부에 위탁, 주요 운영기구 교체, 학교운영권을 주에 넘김

 

한편, 좋은 성적을 낸 학교에 주어지는 보상책도 있는데, 2년 연속 목표를 달성한 학교에 상장을 주거나 탁월한 성과를 낸 교사에게 재정적 보상을 해준다.

 

 

3. 문제점

 

현재 미국 50개 모든 주에서 NCLB의 전부 또는 일부를 거부하는 입법조치를 취해놨고, 일부 주에선 NCLB에 대해 법적 소송까지 걸었다. 1만 개 이상의 학교들이 “성적향상 요망 학교”라는 불명예스런 낙인이 찍혔으며, 자신들의 요구나 도전도 건의할 수 없는 점차 강화된 처벌조치가 곧 취해질 것이다. 다가오는 2007년에 이 법은 재인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법을 수정할 것인지 아예 폐기할 것인지 벌써부터 논쟁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학업성취도 격차에 내재되어 있는 뿌리깊은 사회적 불평등을 극복하겠다는 약속도 없이 개별 학교로 하여금 모든 책임을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만일 학교가 이 책임을 다하지 못할 시에는 가혹한 처벌을 감수해야 하며, 이 때문에 학교의 교육활동은 위축되며 불평등은 감소되지 않고 오히려 확대된다.

 

가. 교육의 본질 왜곡

○ 평가기준의 자의성과 조작 가능성
주별로 2002~2003 학년도에 연간 적정 향상도를 달성하지 못한 비율을 보면, 앨라배마는  5% 인데 반해, 플로리다는 76%에 달했다. 이처럼 목표 달성율이 들쑥날쑥한 이유는 '연간 적정 향상도' 라는 기준 자체가 자의적이라 각 주마다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서로 다른 기준을 세워놓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해마다 모든 학교가 계속해서 성적을 올린다는 것은 애초 불가능한 마당에 몇 년 후엔 결국엔 모든 학교가 '실패한' 학교로 낙인 찍힐 것이다. 실제로 2005~2006학년도에는 전체 공립학교의 1/4(23,000개교) 정도가 연간 적정 향상도 달성에 실패했고 이런 추세로 간다면 정말 모든 학교가 '실패한' 학교가 될 것이다. 이렇게 되자 주는 성취기준을 낮게 조작해서 일시적으로 실패율을 줄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꼼수들은 유색인종이 모여 사는 가난한 학구보다 부유한 백인이 모여 사는 학구로 하여금 각종 제재조치를 피해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 자체적인 평가권, 교육과정 편성권 박탈
이렇게 학교 외부에서 강제되는 시험이 실시되자 교실에서는 많은 부작용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메인 주에서는 교사가 직접 개발하고 실시하는 평가가 사라졌고, 필라델피아에서는 초등 4학년 학생들이 책을 덜 읽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레곤 주에서는 평가시험을 더 많이 보느라 외국어교육, 음악수업 예산을 삭감했고, 전국적으로 보자면 특히 유색인종이 다수를 차지하는 도심지 학교에서 예술교육 수업이 줄어들었다.
NCLB는 주가 교육과정과 평가를 개선시키기 위해 고안한 자체의 제도를 실행하고 발전시키려는 것을 방해했고, 학교와 학구 수준에서 실행할 수 있는 전체적인 학교모델과 장기간의 근본적 개혁의 이행을 방해했다.

 

나. 학교의 시장화

○ 학교선택권
연방정부가 AYP를 2년 연속 달성하지 못하면 학교선택권(전학을 갈 수 있는 기회)을 준다고는 했지만, 전학 갈 기회가 허용되는 학생들은 많은 반면, 실제 갈 수 있는 빈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시카고의 경우 270,000명의 학생들이 전학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실제 옮길 수 있는 빈자리는 1,100명에 불과했다. 그도 그럴 것이 NCLB가 전학을 갈 수 있는 기회만 부여했을 뿐, 학생을 더 수용할 수 있도록 시설을 지원한다던가 실패한 학구에 새로운 학교를 짓는데 필요한 지원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립학교들은 '아무나' 받지 않을 것임을 공공연히 내비쳤다.

연방 교육부가 사립학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사립학교의 2/3은 학생들을 임의로 배정받는다면 바우처 지원을 거부하겠다고 했으며, 과반수는 공립학교와 똑같이 평가시험을 실시해야 한다면 또한 바우처 지원을 거부하겠다고 했다. 게다가 3/4 가량은 특수교육이 필요한 장애학생이나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어서 영어교육이 필요한 학생들은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게다가 더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학생과 자원이 빠져나가면서 정말 개선이 필요한 학교의 상황이 더욱 악화된다는 데에 있다.

NCLB의 제재조치가 사유화를 위한 위장술임에 불과하다는 증거들은 부시의 2007-8년도 예산안에서 드러난다. 전체적으로 교육예산은 줄었지만, 정부는 NCLB에 따른 전학생을 받을 수 있도록 사립학교를 지원하는 새로운 바우처 제도를 위해 1억 달러의 예산을 배정했다.

 

○ 과외교사
3년 연속 AYP를 달성하지 못한 학교에 대해서는 학생들에게 보충과외를 받도록 하고 있는데, 이에 따라 1,400명 이상의 과외교사가 주의 인증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 중 63%는 사기업 직원들이었다. 일부 학구에서는 소수의 아이들을 위해 비싼 사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려고 자체적인 보충학습 프로그램을 폐지하기도 했다. 예컨대 사우스타운에서는 10개 학급, 250명 학생 규모에 자격을 갖춘 교사가 지도하는 보충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를 없애고 '설리반 학습센터'가 제공하는 50~60명 규모의 더 비싼 프로그램으로 대체했다. 이들 사기업에서 나온 교사들은 공립학교 교원과 달리 수준 높은 자격기준을 충족시키지 않아도 된다.

결국, NCLB는 사회제도를 사유화하고, 공공영역을 축소하며, 궁극적으로 학교와 같은 지역적 통제가 가능한 제도를, 시민들 간의 민주적 관계를 소비자 간의 상업적 관계로 대체하는 시장적 개혁으로 바꾸고자 하는 거대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노력의 일환이다.

 

다. 교원평가

2005~2006 학년도 말까지 주요 과목(체육, 컴퓨터, 직업교육을 제외한 모든 과목) 교사들은 ‘매우 우수’ 하다는 판정을 받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모든 교사는 교원자격증을 갖춰야 하거나 주의 인증을 받아야 한다. ‘매우 우수’ 판정을 받기 위해 각 교원이 갖춰야 할 자격을 보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 신규 초등교사
- 학사학위 이상
- 읽기, 쓰기, 수학 그리고 기본 교육과정 내의 다른 과목에 대한 교사의 지식과 기술을 검증하는 주 평가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 신규 중등교사
- 학사학위 이상
- 각 과목을 가르칠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주거나,
- 전공학과나 그와 유사한 과정을 마쳤거나, 석사 이상의 학위를 마쳐야 한다.

○ 기존 초중등교사
- 학사학위 이상
- 위 신규 교사에게 적용되는 조건을 충족시키거나,
- 모든 과목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주의 공통된 평가기준이 이 능력을 검증하는데 이용된다).
- 평가기준은 각 과목에 대한 교사의 지식에 대해 객관적인 정보를 알려줘야 하며, 중요한 판단근거로 사용되지만 않는다면 해당 과목에 대한 교사경력도 고려할 수 있다.

 

2005~2006 학년도 말까지 위의 모든 조건을 충족시켜 모든 교사들이 ‘매우 우수’하다는 판정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특히 앞서 언급한 ‘타이틀 Ⅰ’ 학교의 신규 교사는 2002~2003 학년도까지 ‘매우 우수’ 판정을 받아야 한다. 기존 교사의 경우 주가 정하는 별도의 기준을 통해 교사의 자질을 검증하도록 되어 있는데, 해당 과목을 전공하지 않은 경우에도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얻은 전문적 훈련과 경력을 인정받아 주의 평가기준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연방 교육부가 지난 5월에 각 주로 하여금 자체적인 기준을 적용할 것을 제한하고 점차 이를 폐지할 것을 요구하면서 수천 명의 기존 교사들이 ‘매우 우수’판정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할 상황에 처해 있다.

또한 각 학교는 ‘매우 우수’ 판정을 받지 못한 교사의 비율, 임시자격 교사의 비율 등을 해마다 학부모에게 알려야 하며, 교원의 자질을 추적할 수 있는 정교한 정보체제를 갖춰야 한다. 이 정보를 접한 학부모들은 보다 ‘나은’ 학교를 선택할 권리가 부여된다.

 

라. 재정지원 부족

NCLB 에는 특별한 학교를 개선시킬 재원을 조성하도록 하는 조항이 분명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한 푼도 요청하지 않았고, 의회도 허가를 하지 않았다. 대신에 NCLB의 ‘학교개선자금’은 타이틀Ⅰ 자금으로 대체되었다. 따라서 지역 학구와 학교의 돈이 주교육부가 NCLB의 제재조치를 이행할 계획을 세우는 데 흘러들어갔다. 교육정책센터는 이를 두고 최근에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에게 돌아가야 할 돈을 주가 지역 학구로부터 빼앗아 NCLB의 제재조치를 실행하도록 다른 학구에 지원하는 사기행각”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워싱턴 DC에 있는 ‘에듀케이션 섹터’ 연구소에 따르면, 이미 학교들은 NCLB 탓에 3,300만 달러의 시험비용을 치렀는데, 이번 학년도 말에 이르면 추가로 1,140만 달러의 비용을 더 지출할 것으로 예측했다. 각 주들이 시험문항을 개발하는데 학생당 약 20달러의 비용을 지출하지만, 이들 평가시험 중 대부분은 형편없고,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2000년부터 주 평가시험을 채점해왔던 평가업자에 따르면 주 평가업체의 35%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한다. 보스턴 대학의 왈트 하니는 “아이들이 치르는 시험의 질에 대한 공적 관리보다 애완동물 산업과 강아지 사료에 대한 공적 관리가 훨씬 낫다.”고 말한 바 있다.

이렇게 형편없는 시험을 보는데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반면, 연방정부의 재정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2003년에 NCLB를 이행하기 위해 필요한 예산은 562억 달러였는데, 실제 연방정부가 지원한 액수는 236억 달러였다. 그리고 실제로 NCLB에 의하면 학교 지출예산의 7% 정도를 연방정부가 부담하고, 나머지 대부분의 액수는 주와 학구가 분담하도록 되어 있다.

 

 

4. 부작용

 

가. 평가업체 창궐

연방정부의 NCLB 법이 강제하는 학력평가시험 덕분에 사설 평가업체들은 회계사, 평가시험개발자, 영업직원들을 최대한 끌어 모아 평가시험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정부회계국에 따르면 각 주들은 지난 2002년부터 2008년까지 NCLB에 따른 평가시험을 치르는 데 대략 19억 ~ 53억 달러의 돈을 지출할 것으로 보인다. 이 금액은 사설 평가업체와의 계약 하에 6년 동안 시험문항 개발, 채점, 보고에 들어갈 직접적인 비용이다. 시험을 준비하고 치르고, 모의고사까지 준비하는데 드는 시간과 같은 간접적인 비용까지 감안한다면, 그 비용은 8~15배까지 뛸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하지만 표준학력평가시험에 들어간 교육재정은 문제의 일부일 뿐이다. 언제나 학력평가시험을 주관하는 사설 평가업체들은 공적 책임 없이 비밀리에 운영되고 있다. 이들은 다국적 거대복합기업의 일부분으로 작동하고 있는데, 다국적 거대복합기업들은 미국의 평가업체들을, 지구전역을 장악하고 있는 출판산업과 연예산업 왕국의 첨병으로 여기고 있다.  

 

보스턴 대학교수이자 ‘교육평가와 공공정책에 관한 전국위원회’ 수석연구원인 월트 하니는 “평가업체들에 대한 감독은 매우 소홀하다.”며, “실제로 학생들이 치르는 시험의 질보다 개 사료와 애완동물 산업에 대한 감독이 더 낫다”고 일침했다.

부시가 NCLB를 정당화하기 위해 책무성이란 수사를 사용하곤 했지만, 우습게도 평가업체들의 재정상태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평가시험은 보통 책무성이 없어, 화가 난 학부모, 학생 그리고 학교행정가들이 시험의 오류에 대해 고소를 하겠다고 위협을 할 때에야 비로소 문제점들이 알려지게 된다.

일반 시민들이 평가업체에 대해 거의 아무 것도 모르는 반면, 로비스트들은 국회의원들이 평가업체들의 이해관계를 잘 알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다. 부시가 집권하고 NCLB 계획이 공개되자, 평가업체 대표들은 의회로 달려가 부시가 텍사스 주지사 시절에 시행했던 표준학력평가시험제도를 들이밀었다.

“내가 1982년부터 교육과 관련한 사안들을 로비해왔지만, 평가업체들이 이렇게 활발히 움직이는 것은 본 적이 없다.”며 전국학교행정가협회의 브루스 헌터가 말했다. “어느 공청회자리든, 토론자리든 거대 평가업체들은 적어도 한 명 이상의 로비스트와 함께 항상 그 자리에 있다.”

 

게다가 부시와 평가업체간의 개인적 친분관계도 있다. 2002년 1월 네이션 The Nation 지의 기사에 따르면, 부시행정부는 맥그로우-힐이 운영하는 평가업체와 ‘편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기사에 따르면 이 편안한 관계의 핵심은 바로 “부시 가족과 맥그로우 가족 간에 3대에 걸친 교분관계가 있으며, 1930년대부터 맥그로우와 부시 아버지는 친구”였다. 실제로 부시는 백악관에 입성한 첫 날, 해롤드 맥그로우 3세를 집무실로 초대했다.

 

NCLB 탓에 평가시험이 창궐하여 작은 평가업체들도 시장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가장 성공한 사례는 Education Testing Service로서, 대학입학시험인 SAT와 AP(대학과목 선이수제)로 잘 알려져 있다. 2003년에 ETS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여, 캘리포니아주와 1억 7천 5백만 달러에 3년 계약을 맺었다.

평가시험을 치르고 돈을 벌고자 하는 업체들은 또 많이 있다. 연방정부회계국의 보고에 의하면 각 주들은 2002년부터 2008년까지 NCLB 시험을 보는데 에세이나 자유주제 글쓰기 같은 최고급 유형의 시험은 53억 달러가 소요된다고 했다. 하지만 객관식 유형의 문제로 시험을 본다면 19억 달러면 된다.

그 이유는 시험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채점, 행정처리, 결과보고에 있다. 회계국의 보고에 의하면 콜로라도에서는 시험문항을 개발하는데 전체 비용의 11% 정도만 들고, 행정처리와 채점, 결과보고에 나머지 89%의 비용이 든다고 했다.

 

에세이나 자유주제 글쓰기(객관식 문제보다 분석적 능력을 요하고, 교육적으로도 더 세련되고 가치 있는)는 채점하는데 더 많은 비용이 든다. 자유주제 글쓰기 문항을 많이 쓰고 있는 메사츄세츠주에선 2002년에 시험을 채점하는데 매번 7달러의 돈이 더 들었다. 반면 객관식 문항을 주로 쓰는 버지니아와 노스 캐롤라이나에선 각 시험마다 1달러의 비용이 감소되었다.

대다수의 주가 교육재정의 위기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NCLB가 시험을 치르는데 드는 비용을 충분히 지원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평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이러한 재정적 위기가 각 주들로 하여금 기계적 암기와 단순반복 등을 강조하는 수준 낮은 객관식 시험을 보게끔 할 것이란 예측은 당연한 귀결이다.

나. 보충교육시장 확대와 영리형 교육기업의 수익모델 전환

 

아리조나 주립대학 교육정책연구소가 지난 5월에 보고서를 하나 냈는데,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영리 교육기업의 현황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영리형 교육기업이란 말 그대로 영리를 목적으로 공립학교나 차터학교를 위탁 경영하고 각종 교육서비스를 제공하여 돈을 버는 회사를 이른다. 이들 교육기업은 차터학교의 성장에 힘입어 증가했는데,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학교의 책무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함에 따라 차터학교는 급속하게 성장했다. 특히 연방정부의 NCLB은 일정한 학업성취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공립학교는 차터학교로 전환하거나 제3자에게 경영권을 넘길 수 있도록 강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많은 주들이 차터학교 설립을 촉진하고, 사기업에 위탁경영할 수 있도록 법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교육기업들이 자신들이 영리행위를 할 수 있도록 입법과정에서 활발한 로비를 펼치기도 했다. 이번 보고서에 따르면 2005-2006 학년도에 미국 전역에서 모두 51개의 교육기업이 있으며, 이들이 운영하는 학교는 521개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가운데 438개 학교(84%)가 차터학교였다.

 

올해의 주요한 변동사항은 교육기업의 수가 줄어들고 운영하는 학교수도 줄었다는 점이다. 그 중요한 이유는 보충교육서비스 시장(과외, 방과후 학교, 서머스쿨 등)이 성장함에 따라 교육기업들이 점차  학교경영에서 손을 떼고, 이 보충교육서비스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서머스쿨, 과외, 방과후 학교, NCLB에 따른 AYP 달성을 위한 상담과 자문 등 보충교육서비스 시장이 점차 성장함에 따라 학교경영에서 손을 떼고 이 분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에디슨 스쿨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5. 전망

 

결국 NCLB는 모든 공립학교 학생들로 하여금 쉴 새 없이 시험을 치르게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학교와 학생, 교사에게 가혹한 제재조치를 취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공교육을 축소하고 사유화, 시장화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지 평가시험을 강화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교원구조조정, 학교 시장화에 이르기까지 커다란 플랜 하에 진행되는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미국 내에서도 법안의 폐기 내지는 수정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실제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애초 약속과는 달리 연방정부의 재정지원도 형편없고, NCLB가 강요하는 정책에 많은 무리가 따르다보니 실제로 대부분의 주에서 법의 일부 조항을 따르지 않거나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LA의 어느 교장은 ‘연간 적정 향상도’에 대해 ‘나쁜 제도’라 폄하하며, 이를 무시하라고 지시했다. 앨라배마 주 교육위원회는 교원의 질에 관한 조항을 따르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미 의회에는 NCLB의 일부 조항을 폐기하거나 수정하는 법안이 열 개 정도 올라와 있다. 뿐만 아니라 양대 교원노조들도 이 법안에 반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2007년 NCLB 법의 재허가 시기가 다가옴에 따라, 피해를 줄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더욱 공포스런 제재조치가 효력을 발휘할 향후 5년 간 법의 악영향은 점차 증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실 국내에서도 수준별 수업, 학력평가 확대를 통해 학생 내부의 경쟁 체제를 강화하고 있고, 이것이 다시 교원평가와 연계되고 학교 평가로 이어지는 단일한 평가시스템으로 완성될 위험에 놓여 있다. 미국 NCLB의 사례를 거울삼아 국내에서도 학력 논쟁, 나아가 평가 시스템에 대한 발본적인 논의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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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3 17:05 2008/02/13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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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플로리다 주 바우처 제도 위헌판결

 

미 플로리다 주 바우처 제도 위헌판결의 의미와 시사점

 

 

지난 1월 5일 미국 플로리다 주 대법원은 주의 헌법에 의거하여 기존의 무상공교육제도를 대체하는 사립학교에 공공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위헌이라며, 바우처 제도에 대해 최종적으로 위헌판결을 내렸다. 플로리다 주는 주지사 제브 부시가 강한 의지를 갖고 미국에서 유일하게 주 의회가 바우처 제도에 대한 법제화를 통해 주 전체에 영향력을 미치도록 조치를 취해놓은 곳이다. 이로써 플로리다 주 뿐만 아니라 미국 내 다른 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교선택제 논쟁에 큰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최근 국내에서도 바우처 제도를 비롯하여 학교선택권을 확대하려는 일련의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이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할 것이다.

 

 

미국의 구조적인 교육불평등

 

가. 교육재정의 불평등
미국에서는 일정한 지역을 기초로 지역교육구(School District)를 설치하고 이 교육구가 구내의 공립학교의 운영을 관장한다. 지역주민들은 특별히 사립학교에 다니지 않는 한 자신의 교육구 내에 있는 공립학교에 자동으로 배정이 되며, 학비는 무료다. 교육재정은 지역교육구, 주, 연방정부에서 지원하는 세금으로 조성된다. 이 가운데 지역교육구와 주가 90% 가까이 부담하며, 연방정부는 10% 가량만을 지원한다. 특히 지역교육구는 교육재정을 해당 지역주민이 부담하는 직접세(특히 재산세)로 조성하기 때문에, 지역주민의 구성에 따라 지역간 교육재정의 격차가 극심하게 나타난다. 미국은 대체로 경제력이 높은 중상류층은 도심 주변에 발달한 교외(suburb)에 모여 사는 반면, 흑인이나 히스패닉계가 주축을 이루는 저소득 빈민층들은 주로 도심의 집값이 싼 지역에 모여 산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사회계층이나 인종에 따라 주거지의 구분이 명확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이나 비백인이 모여 사는 지역의 교육재정은 백인 중산층 이상이 모여 사는 곳의 그것과 현격한 격차를 보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교육재정의 격차는 응당 학교간 격차를 초래하여 교육자원, 교육시설 및 여건, 교사임금 등에 있어서 차이를 낳고 이것이 결국 지역간 학력격차를 낳고 있다. 즉 교외의 공립학교는 넉넉한 학교재정, 좋은 학교시설과 풍부한 교육자원, 높은 교사임금 등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반면, 도심 빈민지역의 공립학교는 부족한 학교재정, 무직이나 알콜중독 학부모, 낮은 교사임금과 상당수의 무자격 교사, 불안전한 주변환경 등으로 인해 이 지역에 거주하는 가난한 흑인,히스패닉계 아이들은 사회적 이동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으며, 학업성취도 또한 낮을 수밖에 없다.

나. 사립학교의 상대적 우위
현재 미국의 초중등학교 가운데 약 20% 정도가 사립학교이며, 전체 학생의 10% 정도가 사립학교에 재학하고 있다. 이러한 수치는 한국과 비교했을 때 그리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설립초기부터 상류층을 위한 교육이나 종교교육을 담당해오면서 미국교육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미국의 사립학교는 재정적으로 완전히 독립해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부담하는 수업료의 비중이 높고 기타 기부금과 후원금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 그래서 만약 교육구 내에 있는 무상 공립학교를 포기하고 사립학교에 자신의 자녀를 보내려 한다면, 지역 교육세도 내고 비싼 사립학교 등록금도 내야 하는 이중의 부담을 지게 된다. 따라서 아무나 자신의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이들 명문사립학교들은 높은 수준의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대학수준의 수업(AP제도)을 개설하여 명문대학으로 직통하는 코스로 인식된다. 실제로 중산층 이상의 가정배경을 지닌 아이들이 이들 명문사립학교를 독점하면서 계층간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교육격차를 선택권 확대로 해소

 

하지만 미국은 이렇게 뿌리 깊게 존재하는 불평등 구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보다는 ‘도심지 공립학교의 실패’라는 현상을 해소하고자 경제적 접근방식을 택했다. 즉 ‘실패한’ 공립학교에 강제로 다녀야 하는 교육소비자들에게 사립학교나 다른 지역의 공립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선택권’을 주어 학교간 경쟁을 유발하면 자연스레 교육의 질이 높아지리라 본 것이다. 학교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선 비교적 단일한 공립학교 체제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의 학교제도를 도입해야 하고, 이들 학교에 쉽게 다닐 수 있도록 행?재정적으로 지원을 해야 한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협약학교(charter schools), 특성화학교(magnet schools)이며, 사립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재정적으로 지원해주는 바우처 제도(school voucher)가 등장했다. 하지만 공립학교의 규제완화와 선택권의 보장은 결국 선별(tracking)의 심화로 이어져 계층간 인종간 불평등을 더욱 확대시키기 십상이다.

 

가. 특성화학교
특성화학교는 ‘특별한’ 교육과정을 운영함으로써 교육구내의 학생들에게 다양한 선택을 보장하자는 취지로 설립된 공립학교제도이다. 즉 특별한 교육수요에 부응함으로써 사립학교나 다른 교육구로 빠져나가는 학생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자는 것. 실제로 특성화학교는 도심지에 위치해 있는데, 특성화학교로 인해 그나마 우수한 학생들이 빠져나가고 이렇게 남은 공립학교는 더욱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나. 협약학교
협약학교도 특성화학교와 마찬가지로 학력향상에 실패했다고 여겨지는 도심 공립학교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으로써, 공립학교에 대한 불만을 등에 업고 급속하게 성장했다. 학부모, 교사, 지역인사 등이 특정한 교육목표를 달성하겠다는 협약(charter)을―학력향상에 관한 약속은 반드시 포함된다―주정부와 맺고 어느 정도 재정지원을 받는다. 하지만 교사자격, 교육과정, 학교운영 등에 있어서 상당한 자율권을 누리고 있다.

이렇게 선택과 경쟁에 기반한 협약학교 또한 기존의 도심 공립학교를 더욱 악화시킨다는 비판도 있다. 즉 실제로 선택권을 향유하는 계층은 도심지역에 사는 일부 백인중산층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한 협약학교의 빠른 성장은 학교운영에 있어서 영리재단의 등장을 촉진시켰다. 즉 에디슨 회사와 같은 영리단체가 주나 교육구와 계약을 맺고 공립학교를 위탁운영한다. 이들은 결국엔 비용을 최소화하는 효율성과 오로지 소비자의 욕구에 의해 학교를 운영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교육적 목적을 추구하는 데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바우처 제도와 이를 둘러싼 논쟁

 

가. 바우처 제도 현황
바우처 제도 또한 실패한 도심 공립학교에 대한 대안으로써 사립학교에 다니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재정적으로 보조를 해주는 것을 말한다. 더 나아가 소비자의 선택에 따라 학교간 경쟁을 유도하여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학교는 자연스레 도태되도록 하겠다는 취지라 할 수 있다. 학생은 주정부로부터 상품권(voucher)을 받아 사립학교에 등록금으로 납부하고, 사립학교는 정부에 이 바우처를 지불하고 재정을 받는 방식이다. 물론 정부로부터 바우처를 지원받기 위해서는 가계소득이 일정한 기준 이하여야만 한다.

바우처 제도를 처음으로 실시한 곳은 위스컨신 주의 밀워키 시인데, 밀워키는 1990년에 바우처 제도를 최초로 도입하여 처음엔 7개교의 337명의 학생들에게 바우처를 제공했고, 1998년에는 종교계 학교들도 참여하게 됨에 따라 급속도로 팽창했다. 2004~5학년도 말에는 115개 학교에 15,000명(15%)에 이르는 학생들이 참여하게 되었다. 바우처 제도가 시작된 이래 사립학교들은 거의 5억 달러의 돈을 지원받았다. 아리조나 주는 2003~4학년도에 19,000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세를 공제해주었다. 플로리다 주는 지난 1999년 주 의회가 주 전체에 영향력을 미치는 법으로 제정함으로써 바우처 제도를 도입했다. 그밖에 오하이오 주의 클리블랜드와 펜실베이니아 주, 유타 주, 워싱턴 D.C에서 소규모로 바우처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나. 바우처를 둘러싼 논쟁
그동안 바우처 제도는 미국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정/교 분리원칙에 어긋난다는 논란이 있었다. 왜냐하면 바우처 제도에 참여하고 있는 절대 다수의 학교가 종교계 학교들이며, 이로 인해 공공자금으로 종교계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따라서 특정 종교를 교육하는 학교에 정부의 공공재정이 지원되는 것은 정/교 분리를 명시하고 있는 미국 헌법에 위배된다는 내용의 소송이 제기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 2002년 미 연방대법원이 오하이오 주의 바우처 제도에 대해 합헌판결을 내린 바 있다. 당시 대법원은 정부의 자금은 종교계 학교가 아니라 부모에게 지급되었다는 점, 그리고 종교계 학교를 선택한 것은 학부모였다는 점을 들어 바우처 제도가 정/교 분리 원칙을 어기지 않고 있다고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당시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바우처의 지원대상을 저소득층으로만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바우처 도입 운동은 저소득층을 주요 대상으로 삼으면서 정치적 정당성을 얻고자 했다. 그러나 실제로 대법원의 합헌판결에도 불구하고 많은 주들이 바우처 제도를 전격적으로 도입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연방대법원이 합헌판결을 내렸지만, 작년에는 각 주가 비종교계 학교뿐만 아니라 종교계 학교에도 재정지원을 해야 할 의무가 없음을 명시한 바 있다. 이러한 조치들로 인해 각 주가 바우처 제도가 합법적인지 여부와 바우처 제도에 대한 정책적 판단(즉 바우처 제도가 공립학교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여부)을 내려야만 했다. 실제로 각 주에선 정책적 논쟁이 바우처 제도의 도입에 있어서 중요한 장애물이 되었다. 이를테면 지원액수, 학력향상에 대한 책임, 공립학교 부실화 등의 논쟁이 첨예하게 대립되면서, 바우처 제도의 도입이 지지부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바우처 제도가 공립학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대다수 빈민 아동들에게는 오히려 불이익이 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바우처 제도를 통해 지원받는 돈은 사립학교 등록금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며, 이를 감당할 능력이 없으면 어쩔 수 없이 공립학교에 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재정은 교육구에 등록된 학생수를 기준으로 책정되기 때문에, 일부 학생들이 재정지원을 받아 사립학교로 빠져나가면 기존의 공립학교 예산은 감축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남아 있는 학생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셈이다. 게다가 원하는 사립학교로 모두가 입학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즉 사립학교의 학생선발은 학교의 자유이기 때문에 이를테면 교외의 좋은 사립학교들은 빈민층 아이들을 달갑게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바우처를 지원받는 사립학교의 책임성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이들 학교는 학력평가 결과를 공개할 의무도 없거니와, 학생들의 정학률이나 중도 탈락률, 인종분류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의무가 없다. 밀워키의 경우 바우처 제도에 수억 달러의 돈이 투여되었지만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에 관한 어떤 자료도 알려진 게 없다. 심지어 교사자격에 관한 규제도 받지 않기 때문에 애초 바우처 제도의 도입 취지였던 ‘학력향상’ 책임을 다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플로리다 주 대법원의 위헌판결의 내용과 의미

 

판결은 꽤나 명쾌하다.
플로리다 주 헌법 제9조 1항은 주가 보장해야할 교육의 의무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주는 주내에 거주하는 모든 아동들에게 적절하게 교육을 제공해야 하는 최고의 의무를 지닌다. 적절한 제공은 단일하고, 효율적이며, 안전하고, 안정된, 양질의 무상공립학교에 관한 법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1999년도부터 주 전체에 시행되고 있는 ‘기회 장학금제도’ Opportunity Scholarship Program 는 실패한 학교로 판명 난 공립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에게 사립학교로 옮길 수 있도록 장학금을 지원해주고 있으며, 현재 733명의 학생들에게 세금으로 조성된 공공재정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헌법에 따라 주가 아동들을 교육시켜야 하는 유일한 수단인 무상공립학교와 경쟁관계에 있는 별도의 사립학교에 공공재원이 흘러들어가는 셈이다. 이로 인해 공립학교에 지원되어야 할 재정이 감소될 뿐만 아니라, 공립학교 혹은 다른 사립학교와 비교했을 때 결코 ‘단일하지 않은’ 사립학교에 돈이 지원되고 있다는 것이다. 바우처를 지원받는 사립학교들은 학업성취도평가 결과의 공개나 자격있는 교사의 채용, 교육과정 편성운영 등과 같이 공립학교에 적용되는 숱한 법적 기준을 적용받지 않기 때문에 ‘단일’할 수가 없다. 따라서 대법원은 바우처 제도가 단일한 무상공교육제도를 통해 모든 아동들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헌법의 규정을 위반하고 있다고 판단을 내린 것이다. 지난 항소심에서는 바우처 제도가 헌법에 규정된 정/교 분리원칙을 위반하고 있다고 판결했었는데, 이번에 대법원은 그 쟁점에 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번 판결은 주 대법원이 주로 하여금 공립학교에서 학생들을 교육시켜야 할 의무가 있음을 명시한 최초의 판결이다. 헌터대학의 조셉 비터리티 교수는 많은 주들의 헌법이 공교육은 ‘단일할’ 것을 요구하는 플로리다의 조항과 유사하기 때문에 이번 판결은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미국교사연맹 American Federation of Teachers 부의장인 토니 코티지는 이번 판결이 “대법원이 공공자금은 공립학교에 사용되어야 함을 인정했다는 것이 명백하다. 이번 판결은 플로리다에서 바우처의 파멸을 재촉하는 것임이 틀림없다.”며 매우 달가워했다. 물론 주지사 제브 부시는 “독점을 보호하는 정부로부터는 아무런 이득을 볼 수 없다.”며, 이번 판결에 대해 개헌을 포함하여 모든 법적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했지만 이번 판결은 학교선택권 논쟁을 벌이고 있는 다른 주에까지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공교롭게도 플로리다 주 주지사인 제브 부시는 현 조지 부시 대통령의 동생이다. 그가 취임한 이후 보수적 정책을 추진해오면서 민주당의 텃밭이었던 플로리다에서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했다. 주 의회가 주지사의 뜻을 받들어 바우처 제도를 법제화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던 셈이다. 대법원은 제브 부시가 중요한 업적 중의 하나로 여겼던 바우처 제도를 이번 학년이 끝나는 대로 중단할 것을 명령했기 때문에 그 타격은 남다를 것으로 보인다.

공립학교에 다닐 때조차 돈을 내야하고, 거기다 사교육비까지 추가로 내야하는 우리로서는 헌법적 수준에서 양질의 무상공교육의 의무를 보장하고 있는 플로리다가 너무나 부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미국에서 탄생한 제도가 미국에서 퇴짜를 맞았다는 사실을 교육관료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바우처 제도를 포함한 학교선택제를 더욱 확대하려고 하고 있다. 무상으로 양질의 교육을 받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이자 국가의 중요한 의무라는 개념조차 척박한 이 땅에서 학교선택권이 난무하게 된다면 그 피해는 선택할 능력도 없고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이 고스란히 지게 된다. 무조건 미국식 교육제도를 도입하기에 급급한 정부관료, 그리고 국민들에게 이번 플로리다 판결의 내용과 의미를 널리 알리고, 이를 통해 학교선택권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보다 튼실하고 확대된 공교육체제를 만들어 가는 방향으로 논의가 모아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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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3 17:02 2008/02/13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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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비판적 교육저널 "리씽킹 스쿨" 최근호에 흥미로운 기사가 났습니다. 미국에서도 "사립학교의 성적이 공립학교 성적보다 더 높다"는 흔한 믿음이 있는데, 이를 뒤집는 연구결과를 소개하는 기사입니다. 따지고 보면 뭐 그리 새로운 사실은 아닌데요, 비슷한 내용의 연구결과가 2006년에도 발표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http://jinboedu.jinbo.net/bbs/zboard.php?id=jinbonewsup&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76) 이주호같은 얼치기 시장주의자 나부랭이들이 항상 '선택과 경쟁'이 좋다고 떠들어대지만, 정작 이를 뒷받침할만한 그럴싸한 실증연구 하나 제시하지 못합니다. 이건 일찌기 시장주의 원리를 채택했던 미국과 영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니 영미 시장주의 전도사 이주호가 근거를 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어쨌든 기사에 소개된 두 가지 연구결과는 "사립학교가 공립학교보다 성적이 낫다", "사립학교 선택권 부여로 야기된 경쟁이 공립학교의 성적향상을 이끌어낸다"는 속설을 정면으로 뒤집는 내용입니다. 아래 요약된 내용은 "리씽킹 스쿨"에 게재된 기사만 정리한 것이니, 연구결과를 인용하시려면 보고서를 직접 보고 인용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 사유화 거품을 뒤흔드는 연구결과 <리씽킹 스쿨> 2007/2008 겨울호 바우처 제도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전가의 보도처럼 늘상 두 가지 주장만을 외친다. 하나는 사립학교가 공립학교보다 낫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립학교의 경쟁이 공립학교의 성적향상을 이끌어낸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헌데 심각한 문제는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자료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이들은 뚜렷한 근거도 없이 선택과 경쟁이 성적을 높인다고 주장할 뿐이다. 더군다나 최근에 발표되는 여러 연구들은 오히려 반대로 사립학교가 공립학교보다 성적이 낫다는 증거가 없으며, 공립학교를 지원하고 개선시키는 것이 더욱 적절한 정책임을 제언한다. 지난 2007년 10월 교육정책센터(Center on Education Policy)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도심의 사립고등학교에 다니는 저소득층 학생들의 성적이 공립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보다 더 나을 바가 없음을 밝혀냈다.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중도적 성격의 교육정책센터는 1995년에 설립되었으며, 보다 효율적인 공립학교 정책을 지지한다. 교육정책센터는 도심지 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학생개인과 가정의 배경특성을 고려하여, 종단적인 학업성취도평가자료를 토대로 과연 "사립학교가 공립학교보다 학성성취면에서 더 나은가?"를 밝히고자 하였다. 핵심적인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1. 사립고등학교 학생들이 공립고등학교 학생들보다 성취도 평가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내지는 않았다. 2. 사립고등학교 출신 학생들이 대학입학에서 더 유리하지 않다. 3. 사립고등학교를 졸업한 젊은이들은 26세때 자신의 직업에 더 만족하지는 않는다. 4. 사립고등학교를 졸업한 젊은이들은 26세때 시민활동에 더 활발하게 참여하지는 않는다. 종합하면, 사립학교 학생들은 당장 학업성적에서도 이득이 없고, 장기적으로 봐도 대학입학이나 직업만족, 시민활동에 있어서도 별 이득이 없다는 것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한편, 바우처 제도를 통한 사립학교 선택권 부여가 공립학교의 성적향상을 이끌어 낸다는 주장도 틀렸음이 밝혀졌다. 흑인들이 주로 모여사는 위스컨신주 밀워키에서는 일찌기 1990년부터 공립학교의 성적향상을 위해 바우체 제도를 실시해왔는데, 이 때문에 오히려 백인학생과 흑인학생 간의 성적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2007년 9월 학업성취도평가 결과를 토대로 경제정책연구소(the Economic Policy Institute)는 '바우처와 공립학교의 성적' 이라는 보고서를 냈는데, 보고서는 "바우처로 인한 격화된 경쟁 덕에 밀워키 공립학교 학생들의 성적이 더 나아졌다는 증거는 없다" 고 밝혔다. 원문보기 http://www.rethinkingschools.org/archive/22_02/bubb222.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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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3 16:51 2008/02/13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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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 없는 낙관으로 한국 교육의 미래를 망칠 셈인가?

[걱정브리핑]'교육시장 개방으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들' 반박

배태섭(교육공대위)  / 2006년10월10일 13시13분

1. 순진한 건지 무지한 건지

지난 10월 7일 경희대 조병하 교수와 한국교육개발원 최정윤 연구원은 국정브리핑 홈페이지에 “한미 FTA와 한국교육의 미래” 라는 제하의 글을 게재하고, 『한미 FTA 국민보고서』(이하 국민보고서) 중 교육분야 글에 대한 논평(이하 논평)을 시도하였다. 두 연구자는 논평을 통해 국민보고서의 논리를 나름대로 반박하려는 것으로 보이는데, 국민보고서가 제기하고 있는 여러 의혹이나 예상되는 문제점에 대해서 논평은 “~ 않을 것이다” “~ 결코 없을 것이다” “~ 될 것이다” 따위의 ‘예측’이나 ‘의지’로 맞서고 있을 뿐이어서 논리적 형식을 갖춘 논평이 아니라 감정에 호소하는 애걸복걸형 읍소일 따름이었다.

대단히 우려스럽게도 이들 두 연구자가 상당히 착각하고 있는 점은, FTA는 자본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어디에서건 자유롭게 이윤을 뽑아낼 수 있도록 보장하는 국가 간의 약속이기 때문에 해당 국가의 정책이 자본의 이윤 추구에 방해나 제약이 된다면 이를 없앨 것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특히 한미 FTA 협상에 포함된 ‘투자자-국가 제소권’이라는 무시무시한 제도는 초국적 자본이 해당 국가의 주요 공공정책을 무력화하도록 보장하고 있고, 이 때문에 두 연구자의 ‘예측’과는 달리 한국 정부의 ‘의지’만으로 지켜질 수 있는 것은 없다. 행여라도 두 연구자들이 나중에 미국으로부터 한국교육을 지키겠다고 발 벗고 나서는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들의 논평 수준으로 보아 그런 일은 아마 없을 것 같다.

그럼 연구자들이 ‘예측’하고 있는 주요 쟁점들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2. 한미 FTA와 교육개방의 진실

(1) 초중등교육은 개방 안 할까?

연구자들도 지적하고 있듯이 한국 정부는 WTO나 FTA 협상시에 초중등교육은 협상 대상에서 제외했고, 제외할 것임을 누누이 밝혀왔다. 게다가 미국도 초중등교육은 공교육으로 간주하여 협상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을 것이라 하니, “한미 FTA가 체결되더라도 공교육이 시장화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안심시킨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미국이 굳이 별도로 초중등교육 개방을 요구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이미 한국 교육의 개방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초중등교육은 사실상 이미 외국자본에 개방이 되어 있는 상태다. 원격교육은 그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완전히 개방되어 있다. 그리고 원칙적으로는 중졸 이상만 외국유학을 갈 수 있지만 초등학생들도 자유롭게 해외유학을 떠나고 있다.

또한 경제자유구역과 제주도에 외국교육기관이 진출할 수 있는 길을 터주었고 지역특구, 기업도시 등을 통해 유사한 조치를 취해놓았다. 뿐만 아니라 원어민 강사 확대, 외국인 교수 채용 등 외국인 교원들도 상당수가 국내에 진출하고 있다. 이렇게 한국 정부가 ‘알아서’ 개방을 해 놓은 마당에 한미 FTA 협상을 통해 초중등교육을 지킨다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한국 정부가 한미 FTA 협상에서 초중등교육만큼은 지킨다는 새빨간 거짓말로 국민들을 속이는 사이에, 미국 교육자본은 한국 정부가 열어놓은 뒷문으로 들어올 채비를 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이 SAT와 같은 평가시험 시장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FTA의 원리와 개념조차 무지한 연구자들은 테스팅 서비스 시장 개방의 문제점을 애써 외면하려 한다. 미국의 테스팅 서비스 개방 요청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은 ‘미래 유보’다. 미래 유보는 지금은 규제를 하지 않더라도 향후 필요시엔 규제조치를 도입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는 의미로, SAT의 경우 현재 별도의 규제 없이 개방이 된 상태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개방을 하되, 향후 필요할 경우 규제를 취할 수 있도록 한다는 뜻이다.

교육부 서유미 국제교육협력과장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와 같이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미래 유보’란 개념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미래 유보란 “해당 분야의 시장개방에 관해서 앞으로도 개방 여부를 유보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들의 해석대로라면 테스팅 서비스는 유보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정부가 통제할 수 있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식이다.

정작 문제는 미국의 일개 사기업이 관장하는 시험이 들어오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다른 데에 있다. 한국 교육의 왜곡과 기형성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바로 초중등교육에 대한 대입시험의 지배력과 규정력 탓이다. 특히 서울 소재 주요 대학들의 신입생 선발방식은 사실상 전적으로 대학 자율이다. 학생부 성적과 수능 성적의 실질 반영비율은 굉장히 낮으며, 본고사나 논술과 같은 대학별 전형이 사실상 당락을 결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국의 모든 초중등 학생들은 이들 서울 주요 대학들이 내놓는 입학전형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형편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주요 대학들이 툭하면 대학입시를 자율로 해달라고 요구하는 마당에 SAT든 뭐든 한국에 진출하게 된다면 일거에 대학입시 시장을 장악할 수 있게 된다. 미국이 주관하는 시험이 대학입시를 좌우하게 된다면 그것이 초중등교육에까지 미치는 영향은 차마 상상조차 하기 싫다. 한국의 초중등교육에 관심 없다던 미국의 말은 거짓이었음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전개되었을 때, 과연 한국정부가 그 때 가서 유보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현재 미국에서는 이른바 ‘낙오학생방지법 NCLB' 덕(!)에 평가업체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미국 정부회계국에 의하면 2002년부터 2008년까지 NCLB 때문에 각 주에서 시험을 치르는 데 대략 19억 ~ 53억 달러의 돈을 써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엄청난 시장덕분에 초국적 거대기업들이 이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학력평가기업을 차렸고, 대략 3~5개 업체들이 학력평가시험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일례로 SAT와 AP(대학과목 선이수제)로 잘 알려진 ETS(Education Testing Service)사(社)는 지난 2003년에 캘리포니아주와 1억 7천 5백만 달러에 3년 계약을 맺는 등 평가업체들은 해마다 수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웬디 커틀러가 정확하게 꼬집었듯이 미국은 FTA를 통해 자국 평가업체들을 한국에 진출시켜 이윤을 획득하려는 심산이다. 한국의 사교육시장은 정확한 예측이 어렵지만, 줄잡아도 20조원은 족히 된다.

따라서 이 어마어마한 시장 진출에 걸림돌이 되는 장벽은 제거 대상이 된다. 수능시험을 국가기관이 관장한다든지, EBS 수능방송을 국가가 지원한다던지 하는 국내 정책은 미국 평가업체에게는 불공정 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투자자-국가 제소 대상이 될 수 있다. 그 때 가서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규제조치는커녕 막대한 금액의 벌금을 준비하는 일 뿐이다.

(2) 영리법인 허용은 신중하게 접근할까?

사실 교육개방 문제 때문에 한국 정부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해외유학 수지 적자를 이유로 외국의 유수 대학을 유치하기 위해 야심차게 교육개방을 추진했건만 정작 한국에 들어오고자 하는 외국의 우수한(!) 대학들이 없자, 어떻게든 외국 대학 유치 실적을 내려고 애초 약속했던 영리법인 불가 방침을 스스로 허물어뜨리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놓은 덫에 스스로 걸려든 꼴이다.

2000년 이후 해외유학이 급증하면서 국제수지 적자가 확대되고 있는데, 2005년 현재 한국의 유학수지는 33억 달러 적자상태다. 이처럼 유학수지 적자가 확대되자 정부는 과감한 교육개방을 통해 외국의 유수한 대학을 유치하면 유학수지 적자를 개선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다.

정부의 말마따나 유학수지 개선 효과가 있으려면 국내에 진출한 외국 학교가 국내 학생들의 해외 유학 수요를 실질적으로 흡수해야 하는데, 1) 국내에 진출한 외국 학교의 질이 현저히 떨어질 경우엔 해외 유학 수요를 흡수할 만한 매력이 없고, 2) 국내 고졸자들이 국내 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외국 학교(원격교육 포함)로 대거 진학할 경우엔 국제수지 개선은커녕 오히려 적자 폭이 늘어나게 된다.

놀랍게도 이런 전망은 정부출연 연구소에서 나온 결과다. 산업연구원(KIET)은 작년 8월 수행한 “한미 FTA 서비스분야 주요 쟁점별 영향 분석” 보고서를 통해 교육서비스 시장이 개방되더라도 국제수지 개선 효과는 미미하거나 오히려 악화될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산업연구원이 예측한 '시나리오 D'가 시사하는 바는 외국인 교사 확대, 원격교육 학력인정, 영리법인 학교 허용 등 완전 개방 조치를 취해도 유학수요가 변하지 않는다면 해마다 1억 달러의 적자가 추가된다는 것이다. 완전개방이 된다 해도 유학수요가 변하지 않는 뻔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미국의 유수 대학들은 고등교육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기 때문에 시장개방에는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오히려 시장개방이 공공성을 훼손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더구나 외국 학교의 영리행위(과실송금)를 허용해주는 것은 유학수지 개선과는 하등 관련이 없다. 미국에 직접 가서 소비를 하든, 국내에서 소비를 하든 어느 경우이든 수익금은 미국 학교가 가져가는 것이기 때문에, 해외로 떠나는 ‘소비자’는 줄일 수 있을지 몰라도 밖으로 새나가는 ‘돈’은 결코 줄일 수 없다.

이렇듯 정부측 보고서조차 개방에 따른 유학수지 개선 효과가 없는 것으로 예측하자, 이를 빌미로 영리법인(과실송금) 허용과 같은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억지 주장을 편다. 곧 과실송금과 같은 영리행위를 인정해줘야 미국 학교의 국내 진출 유인이 있다는 얘기다. 결국 한미 FTA가 유학수지 개선에 별 효과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를 계기로 정부가 대학의 영리법인화를 재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영리법인 허용 문제는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던’ 정부가 계속해서 꺼낸 얘기였다. 지난 2004년 당시 최진명 교육부 사학지원과장은 공개토론장에서 교육개방을 대비해 사립전문대학부터 영리법인을 허용해주자는 발언을 공식적으로 한 바 있다. 이것이 교육부가 ‘사학청산 양성화’를 추진하는 숨겨진 목적이다. 대학구조조정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서 M&A와 같이 시장원리에 따라 수월하게 학교법인을 청산하거나 통폐합할 수 있으려면 자유로운 매매가 가능한 영리법인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일부 사립대학들은 학교 재정상황이 열악하고 정부 지원이 적다보니까 해마다 등록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며 감히 ‘기여입학제’를 도입하자고 선수를 친다. 또 한편에선 대학을 주식시장에 상장하여 투자자도 모집하고 수익도 올릴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사학법인연합회는 공개적으로 영리법인 허용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런 마당에 영리법인 허용은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정부의 언사, 아니 교육부의 약속은 도대체 신뢰가 가지 않는다.

(3) 과감한 개방이 대학의 경쟁력을 높일 것인가?

미국 유수의 정규대학이 한국에 오지 않을 것은 뻔하다. 그 이유는,

- 한국 유학생 수가 미국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굳이 국내 진출을 시도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한국까지 와서 대학을 설립하고 운영하는데 초기 비용이 크다.

- 전통적으로 고등교육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는 대학들의 경우는 외국 진출을 통한 시장 확보에 큰 관심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오히려 시장 개방이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훼손하게 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고등교육인증협회(The Council for Higher Education Accredition, CHEA)와 미국교육협회(American Council on Education, ACE)는 GATS와 같은 시장개방 조약에 의해 고등교육이 크게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입장을 미국 무역대표부 USTR에 제출한 바 있는데, 그들이 우려했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 GATS가 원칙적으로 국가가 제공하는 공공서비스는 제외한다고 했지만, 해당 규정의 애매모호함 탓에 실제로는 공립 고등교육기관까지 시장개방의 대상이 될 우려가 있으며, 이로 인해 공립대학과 사립대학 간의 차별성이 사라진다.

- 미국 사립대학의 관리 및 인증은 직접적으로 정부의 책임이 아니기 때문에, 시장개방으로 사립학교들이 진출할 경우 질의 보장, 학력인증 등에서 이들을 관리하기가 어렵다.

- 고등교육을 개방하라는 미국의 요구는 개발도상국에게는 상당히 위협적인데 그 이유는, 형편없는 고등교육기관들이 진출했을 때 이를 제어할 만한 기본구조가 갖춰져 있지 않고, 해당 국가에서 이익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장애인 등 소수자의 고등교육 접근권은 무시된다는 점이다.

- 유럽, 북미,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에서는 미국 영리 고등교육기관의 진출로 인한 고등교육의 '미국식 단일화(맥도날드화)'와 '사유화'를 우려하고 있다.

결국 정식 학위를 부여하는 4년제 정규대학이 들어올 가능성은 전무하다. 그렇다면 어떤 고등교육기관이 한국 진출을 노리고 있을까? 2년제 단기과정 대학이나, WTO 협상 당시 미국이 한국에 요구했던 ‘훈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리형 고등교육기관과 학원들이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한국정부가 유학수지 적자 해소라는 실현불가능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영리법인 고등교육기관의 진출을 허용해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직업관련 연수 및 훈련, 자격증 취득, 취업을 주요한 목적으로 내세우며 미국에서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영리형 고등교육기관은 이미 원격교육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해외 고등교육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에서 영리법인대학은 2년제 대학 중 29%, 4년제 대학 중 12%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영리법인 고등교육기관은 주식시장에 상장하여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하기도 하고, 자본의 일부를 주식시장에 재투자하기도 한다. 즉 수익창출이 본연의 목적이기 때문에 교육시설이나 연구에 대한 지원은 상대적으로 뒤쳐질 수밖에 없으며 수입의 대부분을 학생들이 내는 수업료로 의존하기 때문에 비싸고 재정구조가 불안정하여 신입생 입학비리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영리형 고등교육기관이나 학원이 해외 현지에 직접 학교를 설립/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감독사무소만을 설치하고 원격교육 형태로 프로그램을 판매하며, 로열티 수익을 추구하는 형태가 주류를 이룰 것이다. 또한 2년제 단기과정은 정식 학사학위가 부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석사 이상의 학위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따라서 해외유학 수요는 결코 줄지 않는다. 오히려 직업훈련 서비스로 자격증 장사를 하는 학교나 학원들이 부동산 중개사 자격증, 목사 자격증 등 각종 자격증을 남발하며 서비스업종에서 비정규직만 양산하게 된다.

3. 근거 없는 예측과 낙관이 아닌 진지한 토론을 기대하며

요컨대 논평은 ‘초중등교육과 비영리법인만큼은 개방하지 않을 테니 믿어주십사’ 하는 당부와 함께 ‘국제경쟁력’ ‘동북아 교육허브’ 따위의 그 실체도 불분명한 낙관적 전망으로 점철되어 있을 뿐이다. 연구자들이 진정으로 국민보고서 내용을 논평하고자 했다면 국민보고서가 제기한 여러 쟁점들에 대해 다양한 변수와 사항들을 고려하여 논박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논평은 틀린 사실을 근거로 지적을 한다던가, 사태의 일면만을 보고 문제의 심각성을 애써 축소,왜곡하고 있다. 정부의 방침은 이러이러하니 안심하라는 당부의 말과 함께.

사태가 이 지경이니 그 당부의 말을 국민들은 믿을 수가 없다. 당최 협상 과정과 내용, 정부의 입장과 전략에 대해 언제 제대로 공개한 적이 있는가. 교육분야에 관해 그 흔한 공청회나 토론회 한 번 한 적 있는가. 진정으로 국민들을 설득시키고 이해시키고 싶다면 이런 저질스런 논평 내는데 헛돈 들이지 말고, 진지한 국민적 토론의 자리를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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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4 12:26 2007/09/04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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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플대란, 민방위훈련 아닌 실제상황

<참세상>

 

토플대란, 민방위훈련 아닌 실제상황
[진보논평] 영어광풍에 대한 근본적 성찰계기 되어야

배태섭(진보전략회의)  / 2007년04월25일 14시37분

 

진보전략회의(준)는 한국사회 주요 전략아젠다에 대한 진보적 정책생산을 목표로 모인 연구자, 활동가들의 전략네트워크이다. 사회운동의 통합적 활동이 가능하도록 운동과 운동을 이어주고 지역, 부문, 현장에서 운동기획을 자극하고 촉진하는 역할을 표방하고 있다. 진보전략회의(준) 회원들이 주요한 사안에 대해 발표하는 '진보논평'을 민중언론참세상에 게재한다.- [편집자 주]

 

 

국내 입시를 위한 토플 수요의 폭증


지난 4월 10일, 토플시험 출제 및 주관사인 ETS가 일방적으로 시험접수를 중단하면서 응시생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감을 알아챈 ETS가 급기야 수석부사장을 한국에 파견하여 사태를 수습하기에 이르렀다. 문제의 발단은 ETS의 일방적인 접수중단이었으나 ETS사가 토로했듯이 한국의 폭발적인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벌어진 ‘예견된’ 사태라 할 수 있다. ETS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토플시험 응시자 54만 명 가운데 한국 응시생은 13만 명(20%)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토플시험 1회 응시료가 170달러(약 15만원)니까 한국 응시생들이 지난해 ETS사에 낸 돈만 해도 무려 2,210만 달러(195억원)에 달한다.


지난 2002년 토플 응시자가 7만 명 정도였으니 4년 만에 두 배 가까이 응시생이 늘어난 셈이다. 게다가 올해 응시생은 무려 2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원래 토플의 목적이 영어권 대학 입학에 활용되는 시험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경우 응시생의 70~80% 가량이 중고생이라는 점이다. 즉 외국 유학을 준비하는 대학생들보다 국내 입시를 위해 시험에 응시하는 중고생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얘기다. 사태가 이렇게 된 데에는 대학의 수시입학, 국제중, 특목고의 특별전형에서 토플과 같은 공인영어시험 성적이 입시자료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가 일파만파 퍼지자 제일 먼저 민감하게 대응한 곳이 ETS가 아니라 외고 교장단이라는 사실은 이번 사태의 원인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정작 특목고(외고)가 영어시험성적으로 입학생을 선발하는 비중은 전체 입학생의 10%가 채 안되지만, 그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모든 학생과 학부모들이 경쟁에 뛰어들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영어사교육을 시작하는 시기도 점점 빨라져 초등학생의 과반수가 초등 저학년 때부터 영어사교육을 시작하고 있다.


이렇게 토플 응시생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반면, 작년부터 시험방식이 인터넷 기반 형식으로 바뀌면서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 시험횟수가 줄어들고 시험인원에도 제한이 생겼다. 이러자 시험접수 하루 전날부터 ETS의 홈페이지를 한국 학생들이 장악하여 ‘광클’을 해대니, 다른 나라 사람들로선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슬픈 현실이 벌어진 것이다. 또는 인근의 다른 나라에 ‘원정’가서 시험을 보는 일도 생기고, 심지어 아파트 분양권 딱지마냥 프리미엄을 붙여 응시권을 매매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ETS가 한국 학생들 때문에 다른 나라 학생들이 피해를 본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입시학원이 공개되지도 않은 SAT 문제를 유출시키거나 토플 기출문제 유형을 꼼꼼하게 분석하여 반복적인 문제풀이연습을 시켜주니 한국 학생들의 SAT 점수를 모두 무효 처리하거나 토플의 시험유형을 바꾸는 ETS의 처사는 십분 이해할 만도 하다.


미국 평가업체들 한국 시장에 눈독을 들이다


ETS(Education Testing Service)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SAT, AP, 토익, 토플, GRE 등과 같이 문제 개발, 시험실시, 채점 등을 담당하는 미국의 비영리 민간업체다. ETS 같은 평가업체(testing service)는 비싼 돈을 내면서까지 기꺼이 시험을 치르고자 하는 한국 학생들 덕에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으며, 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다.


지난 2002년 부시가 대통령이 되자마자 만들어진 NCLB(No Child Left Behind) 법은 전국의 모든 학생들의 학업성적을 높인다는 목적으로 학생들에게 쉴 새 없이 학력평가시험을 치르게 만들었다. 3학년부터 8학년까지는 해마다 수학과 읽기 또는 국어 시험을 봐야 하며, 고등학생들은 한 번을 치른다. 그리고 2007-2008학년도부터는 초중고 모든 학교에서 적어도 한 번은 과학시험을 봐야 한다. 이렇게 모두 합하면 한 학구에서는 한 해에 모두 17번의 시험을 치러야 한다. 따라서 시험을 개발하고 채점하고 성적데이터를 관리해주는 회사들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실제로 NCLB 법 덕분에 미국에선 사설 학력평가업체들이 활개를 치게 되었는데, 미국 정부회계국에 의하면 2002년부터 2008년까지 각 주에서 시험을 치르는 데 대략 19억 ~ 53억 달러의 돈을 써야 한다고 한다. 이러자 초국적 거대기업들이 이 유망한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학력평가기업을 차렸고, 대략 3~5개 업체들이 학력평가시험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따라서 부시정부가 NCLB를 입법하려고 할 당시 관련 업계의 로비가 대단했던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특히 부시 가족과 특정 업체 사장과는 오래전부터 아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고, 부시가 집권하자마자 해당 업체 관계자를 백악관으로 초대하기도 했다. 부시와 평가업체의 긴밀한 결탁 속에 NCLB 법이 통과되었고, 덕분에 평가업체들은 떼돈을 벌고 있다. 이렇게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는 미국의 평가업체들이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는 한국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욕구가 이번 한미FTA 협상 과정에서 드러났는데, 미국은 테스팅 서비스 시장 진출에 관심이 있음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기도 했다.


토플에서 끝날 일이 아니다


유별난 대학입학경쟁 덕에 형성된 한국의 거대한 사교육시장은 미국의 평가업체들이 눈독을 들일만큼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이미 독점을 하고 있는 영어인증시험(토플, 토익 등) 뿐만 아니라 SAT, AP 등 대학입학과 관련된 과정도 이미 한국에 진출해 있거나 들어올 계획인데, 앞으로도 시장점유가 더 확대되리라는 점이다. 일부 대학들은 특정 계층 학생들을 싹쓸이하기 위해 별의별 수단을 동원하고 염치없는 주장도 일삼고 있다. 그 결과 논술, 본고사, 심층면접, 특기적성, AP 등의 방법으로 가정배경이 우수한 소수의 학생들을 독점하고 있으며 소수 학생들을 독점할 수 있는 선발방법은 해를 거듭하며 진화중이다. 특히 최근에는 외국고교 출신학생들을 받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SAT를 입학전형요소로 활용하고 있으며, 다른 대학들에도 연쇄적으로 확대될 조짐이다. 토플로 선발하는 특목고와 대학의 입학생 비율이 얼마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급격히 팽창하고 있는 토플 응시생 수를 보라.


일부 대학이 일반전형에서까지 SAT나 AP로 신입생을 선발한다고 나선다면 그것이 미칠 영향은 토플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각 대학의 자유롭고 다양한 선발방식이 확산된 덕분에 사교육시장은 끝도 없이 팽창하고 있으며, 미국의 교육기업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 더군다나 한미FTA까지 약속된 마당에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어디 있으리.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번 토플 대란이 한미FTA 협상이 타결된 직후에 벌어졌다는 건 심상치가 않다. 주지하다시피 이번 협상에서 테스팅 서비스 분야는 ‘미래유보’ 대상이 됨으로써 이미 사실상 개방된 상태를 유지하되 차후에 새로운 규제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고 공식 발표되었지만, ‘미래유보’ 조항에 구체적으로 어떤 문구가 들어가 있는지 확인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과연 한국 정부가 나중에 어떤 규제조치를 취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야금야금 미국 업체의 평가시험이 한국 교육시장을 장악하는 추세 속에서 미국 평가업체가 횡포를 부린다면 어떻게 될까? 한 해 대학입학지원자가 50 ~ 60만 명이라고 하면, 이번 토플 대란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커다란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시장에서 공급자의 횡포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데에 있다. 더군다나 한미FTA 협정상 미국 기업의 영업행위를 한국 정부가 규제하거나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오히려 이들이 한국의 대학입시정책을 무력화시킬 수가 있다. 이를테면, 수능시험을 국가가 관장한다는 사실이나, 정부가 자랑해마지 않는 EBS 수능강의에서 의무적으로 수능문제를 출제하도록 하는 정부의 방침은 ‘간접 수용’에 해당하거나 ‘이행의무부과금지’에 위배되기 때문에 국제투자분쟁조정센터에 제소당할 수도 있다. 제아무리 교육부가 ‘3불’ 원칙을 고수한다 해도 말짱 헛일이다. 과연 그때 가서도 공정거래위원회나 일개 변호사가 호기롭게 ETS를 조사하겠다고 큰소리 칠 수 있을까? 어쩌면 이번 토플 사건이 앞으로 있을 실제상황에 대비해 ETS가 미리미리 충격완화 차원에서 한국 학생들을 훈련시킨 건 아닌가 하는 뜬금없는 생각도 든다. 제발 기우이길.


영어광풍에 대한 근본적 성찰 계기가 되어야


안타깝게도 이번 사건은 엉뚱한 방향으로 수습되고 있다. 한국 사회를 미친 듯이 휘몰아치고 있는 영어광풍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반성은 찾아보기 힘들고, 특목고 입시에서 토플 점수를 반영 안한다든지, 애국심을 동원하여 ETS를 몰아내고 토종 영어시험을 개발한다든지 하는 방향으로 사태가 정리되고 있다. 애꿎게도 학교에서 영어를 제대로 못 가르친 탓이라며, 학교에서의 영어교육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상급학교 진학단계에서의 치열한 경쟁 탓에 학교가 나서서 특정 계층에게 유리하기만 하다면 어떤 수단이든 동원하여 대다수 학생들을 배제시키며, 평가를 왜곡시켜왔다. 논술이 그랬고, 영어가 그랬다.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버린 영어 탓에 빚어진 이번 사태는 아쉽게도 또 다른 문제점과 갈등을 예비한 채 정리되면서 영어자본에서 소외된 대중들은 또 다시 한숨만 내쉬게 생겼다. [진보전략회의(준)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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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4 12:23 2007/09/04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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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시안>

 

"국립대 법인화 추진하는 진짜 이유가 뭐냐"
 
  <기고>김진경 교육비서관 주장에 대한 반론 
 
  2005-10-21 오전 9:58:30    
 
 
 
 
 
  김진경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은 지난 18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개설된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우리의 대학 교육에는 엘리트는 없고 엘리트주의만 남아 있다"며 국립대 특수법인화에 대한 일각의 반대 주장을 비판했다. 김 비서관은 "취학률이 80%가 넘어 대학이 보통교육기관이 된 현 시점에서 비현실적인 엘리트주의 대학관을 바꿔나가는 의식전환 작업으로 국립대 법인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수익경영과 비용절감 압력으로 인해 대학의 교육.연구 기능 약화 △학생들의 등록금 인상 △대학간 격차가 더욱 벌어질 가능성 등 여러가지 부작용 때문에 국립대 법인화를 반대한다는 내용의 반론을 진보교육연구소 배태섭 사무차장이 보내왔다.
 
  현재 국공립대 교수노조, 국공립대 총학생회로 구성된 국공립대학생 투쟁본부 등 국립대 법인화를 둘러싼 국립대 구성원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대 내에서도 법인화 찬반 논쟁이 계속되고 있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2009년 서울대, 울산국립대, 인천대 등을 1단계로 법인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며 이를 강행할 의지를 밝힌 상태다. <편집자>
 
  김진경 교육문화비서관이 지난 18일 여전히 대학을 지배하고 있는 엘리트주의가 참여정부의 대학 혁신 정책을 가로막고 있다며 국립대 법인화 반대측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현재 대학 취학률은 80%로 보통교육단계로 진입했는데 대학의 관행은 여전히 유럽식 엘리트주의에 머물러 있으며, 이로 인해 일류대학 진학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대학에 경쟁체제가 들어서기 어려워 대학교육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 참여정부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대학교육 개혁 정책의 일환으로 국립대를 법인화하고 사립학교법을 개정하고자 한다.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사립학교법 개정에 찬성하는 교육운동 진영이 국립대 법인화에는 반대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게 김 비서관의 주장이다.
 
  "정부가 비판하는 '엘리트주의자' 정운찬 총장은 법인화 찬성"
 
  김진경 비서관이 지적하고 있는, 현재 대학의 가장 큰 문제점은 독일대학의 전통에서 유래한 엘리트주의다.
 
  그러나 현재 한국 대학의 병폐가 엘리트주의에서 비롯된 것인가. 교육부의 무분별한 사립대학 설립 정책으로 급격하게 팽창한 기형적 구조 아래에서 엘리트주의를 표방할 수 있는 대학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오히려 대다수의 대학들은 돈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기본적인 교육시설과 여건조차 갖추지 않은 채 신입생 유치에만 열을 올리거나 터무니없이 등록금을 올리고 있다. 또 기업의 기부금을 얻기 위해 로비에 나서고 돈이 되는 분야에만 투자를 하고 있다.
 
  학생들은 어떠한가. 가중되는 실업난 속에서 엘리트가 아니라 그저 안정된 일자리라도 얻기 위해 어려운 공부는 피하고 손쉽게 학점을 따려 하거나 영어.취업 공부에만 매달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현재 대학에서는 엘리트주의가 아니라 시장만능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김 비서관 말처럼 비현실적인 엘리트주의 대학관이 국립대 법인화를 가로 막고 있는 장애물이라면 김 비서관 자신이 비판의 타겟으로 삼고 있는 엘리트주의자 정운찬 총장이 법인화에 찬성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김 비서관은 또 한국의 대학 '취학률'이 이미 80%를 넘어섬으로써 여전히 30%대를 유지하고 있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 대학과는 달리 보통교육기관이 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 비서관은 여기서 취학률과 진학률을 혼동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흔히 교육기회의 수준을 비교하는 지표로 사용되는 수치는 진학률이 아닌 취학률이다. 취학률은 특정 연령계층의 인구 중 해당 연령계층의 학생수의 비율을 나타낸 것이다. 국가교육통계에 따르면 2004년 현재 20~29세 인구의 고등교육기관(대학원 제외) 취학률은 27%다. 20~29세 인구의 취학률은 독일이 25.5% 한국이 26.5%(OECD 교육지표, 2002)로 취학률에서는 두 나라 간에 별 차이가 없다.
 
  김 비서관이 언급한 80%를 넘어선 수치는 우리나라 대학 취학률이 아니라 진학률이다. 물론 전체 졸업자 중 상급교육기관으로 진학하는 사람의 비율을 나타내는 진학률에서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은 건 사실이다. 2002년 한국의 진학률은 74.2%인데 비해 미국은 66.2%, 독일은 35.7%다. 독일은 중등교육의 인문계와 실업계의 이원화된 구조 등으로 인해 여타 다른 산업국가들에 비해 대학 진학률이 낮다. 이런 이원화된 학제로 인해 고등학교 졸업 후 상당 기간이 지나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진학률을 단순 비교하는 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김 비서관은 취학률과 진학률의 개념조차 혼동한 채 마치 한국 국민의 80%가 대학에 들어가 보통교육화 됐다는 듯이 주장하고 있다.
 
  "대학구성원 배제된 이사회, 경영성과에 집착할 가능성 커"
 
  김진경 비서관은 법인화가 돼도 "대학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예산을 확대해갈 의지를 분명히 가지고 있다"며 법인화 반대 측이 오해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국립대학에 독립적인 법인격을 부여한다는 것은 아무리 포장한다 해도 결국엔 경쟁력 없는 국립대학과 학문분야를 퇴출시키고 국립대학에 대한 국고지원을 효율화하는 게 그 목적이다.
 
  설령 국가의 재정책임이 법률상 규정된다 하더라도 국가와 별개의 법적 주체인 법인에 대한 재정지원책임은 언제든지 폐지나 수정이 가능하다. 현재 교직원의 인건비와 시설운영비는 국가예산회계에 근거해 의무적으로 배정된다. 하지만 법인화가 되면 별도의 재정지원 대상이 되기 때문에 각 대학이나 정부(지자체)의 상황에 따라 매우 불안정한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재정지원이 되더라도 모든 대학에 골고루 지원되는 방식이 아니라 평가와 결부된 차등 지원 방식이 될 것이다. 이는 대학간의 격차를 더욱 벌려 국립대학을 강제로 도태시키는 작용을 하게 될 것이다.
 
  정부의 말을 신뢰할 수 없는 또 한 가지 이유는 바로 대학 운영구조의 변화 때문이다. 법인화가 되면 총장을 중심으로 한 이사회에 재정, 인사, 조직 등에 대한 거의 모든 권한이 집중된다. 그런데 이사회의 구성은 총장, 교육부 장관 추천자, 광역자치단체장, 총동창회 대표, 지역경제인단체 대표 등 학외 인사로 이뤄져 대학구성원들의 참여는 제한된다. 이처럼 외부자를 주축으로 구성된 이사회는 교육과 연구보다는 경영성과에 집착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 법인화 후 드라마 촬영에 캠퍼스 대여 등 수익사업 혈안"
 
  지난 4월부터 국립대 법인화를 실시하고 있는 일본의 예를 보자. 일본은 정부 재정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철도, 체신, 국립대학 등 국가행정조직을 대폭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국립대학이 법인으로 전환됐다. 그래서 법인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학의 운영교부금도 해마다 줄이고 공무원도 줄이며 평가에 따라 차등지원을 할 것임을 명시했다. 그 결과 2004년 국립대 운영교부금이 1% 삭감됐고, 각 대학법인은 인건비와 사무경비를 줄이고 수업료를 인상하면서 대대적인 긴축경영에 매진했다.
 
  총장들은 자신의 연봉을 10% 삭감했고, 예산을 핑계로 다양한 전공강의를 담당하던 시간강사들을 대폭 줄였다. 또 각 대학들은 졸업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용 쌀 판매, 영화·드라마 촬영 장소로 캠퍼스 대여 등 수익경영과 비용 절감에 혈안이 돼 교육과 연구라는 대학의 기본적인 역할이 위협당할 처지에 놓여 있다.
 
  국제적 대세를 따라야 한다며 누구보다 앞장서서 개방화.시장화 정책을 추진해 왔던 노무현 정부가 이 같은 대세를 거슬러 오히려 국립대학에 대한 재정지원을 확대하기 위해 법인화를 실시한다는 말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나. 재정지원을 확대할 거라면 굳이 법인화를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되묻지 않을 수가 없다.
 
  "일본, 등록금 3배 한도 내 자율 인상…대폭 인상 불가피"
 
  김진경 비서관이 지적한 대로 현재 국립대학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형편없는 수준이다. 2004년 정부가 서울대에 지원한 1946억 원은 일본 도쿄대학 국고지원금 1조7900억 원(2003년)의 11%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국립대학들은 학생들이 부담하는 기성회비를 편법으로 인상해 국립대학 세입에서 기성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막대하다.
 
  따라서 법인화가 이뤄질 경우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뻔한 일이다. 교육부는 일본처럼 인상 가이드라인을 정해 등록금을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은 기존 등록금의 3배 한도 내에서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돼 있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등록금이 3배 가까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닌가. 정부는 학자금 대출 제도를 확대한다고 하나 이는 등록금 인상에 대한 근본적 대안이 될 수 없다. 학부모와 학생들을 모두 빚쟁이로 만들 셈인가.
 
  김진경 비서관은 또 국립대 법인화의 취지가 합리적인 의사결정구조, 자율성과 책임성 있는 집행구조, 투명한 회계구조를 마련하고, 총장의 리더십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대학의 자율성은 법인화를 통해 별도로 보장할 필요 없이 이미 헌법에 명시돼 있다. 합리적인 의사결정구조와 투명한 회계구조는 무엇보다 대학주체들의 법적 지위를 보장해주고 이들에 의한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를 확립될 때에 가능한 것이다.
 
  국가는 각 대학별로 지원 총액만 배분해주고 대학 내부에서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를 통해 예산을 집행하면 회계의 불투명성은 충분히 해소될 수 있다. 정부는 법인화를 하지 않아도 현행 법령의 개정과 행정적 개선을 통해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를 마치 법인화가 되어야만 해결될 수 있는 듯이 호도하고 있다.
 
  "정부, 울산대와 인천대에 사실상 법인화 강요"
 
  국립대 법인화 정책은 그 목적이 분명하고 그에 따른 결과도 충분히 예상 가능하기 때문에 반발이 이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 9월말부터 교수, 직원, 학생들의 대규모 집회가 이어지고 있는 게 그 증거다.
 
  이렇게 대학주체들의 반발이 일자 정부는 선택적으로 법인화를 실시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행정.재정적 지원을 조건으로 내건 상황에서 어떻게 대학이 '자율적'으로 선택을 할 수 있겠는가. 정부는 신설되는 울산 국립대와 국립으로 전환하는 인천시립대에 대해선 사실상 법인화를 강요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는 국민적 의견수렴과 교육주체들과의 논의절차도 거치지 않고 근거없는 논리와 주장으로 일관하며 무리하게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정부가 진정 국민적 저항이 두렵다면 당장 법인화 정책을 중단하고 합리적인 절차를 통해 허심탄회하게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후환을 막는 지름길이다. 
   
 
 
  배태섭/진보교육연구소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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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4 12:19 2007/09/04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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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시안>에 실린 기사입니다.

 

 

'우골탑'도 무색한 대학등록금 천만원 시대…해법은?
 
  '등록금 동결과 무상교육 실현 위한 토론회' 열띤 논의 
 
  2006-03-23 오전 11:54:49    
 
 
 
 
 
  대학 등록금 천만 원 시대가 코 앞이다. 올해 이화여대 의과대학의 일년 등록금이 990만 원, 고려대 의과대학은 982만 원이다. 실습비용이 많이 드는 의과대학만 등록금이 비싼 게 아니다. 상대적으로 등록금이 저렴한 인문사회 계열도 이화여대 652만 원, 고려대 626만 원 등으로 대부분 600만 원 안팎이다.
 
  올해 사립대학들은 평균 10% 가량 등록금을 인상했다. 국공립대는 한술 더 떴다. 부산대는 올해 등록금을 지난해보다 30% 가량 올렸다. 역시 국립대학인 한국해양대의 등록금 인상률은 무려 53.4%에 달한다.
 
  '우골탑'도 옛말 됐다
 
  2003년 이후 국공립대 등록금 책정이 대학 자율에 맡겨지면서 국공립대 등록금 인상률이 사립대를 크게 앞지르고 있다. 게다가 교육부는 국공립대 회계를 독립채산제로 바꾸는 내용의 국립대 발전계획안을 발표했다. 국공립대는 학비가 싸다는 것도 지난 시절의 이야기가 된 셈이다.
 
  과거보다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고 직장인들의 정년이 앞당겨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십대 초반의 자식을 둔 사오십대 가장의 평균적인 교육비 부담이 크게 늘었다. 현재 소 한 마리의 가격이 350만 원 안팎이다. 소 판 돈으로 자식을 대학에 보내던 시절 생겨난 '우골탑'이라는 말이 무색해졌다.
 
  십년 전의 '교육재정 확보' 외침, 여전히 유효
 
  22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노수석 열사 10주기 추모와 등록금 동결, 무상교육 실현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민주노동당, 범국민교육연대, 노수석 열사 10주기 준비위원회(노수석10주기위원회) 등의 공동 주최로 열렸다.
 
  이날 행사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96년 3월 29일 김영삼 정권의 대선자금 공개와 교육재정 확보를 요구하며 벌어진 집회에서 한 학생이 숨졌다. 경찰이 시위진압 도중에 휘두른 폭력에 의해 당시 연세대 2학년에 재학 중이던 노수석 학생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날의 토론회를 준비한 이들은 10년 전에 노 군이 외쳤던 '교육재정 확보'라는 구호가 대학 등록금 천만 원 시대를 코 앞에 둔 지금 더욱 절실해졌다는 데 뜻을 같이한 것이다.
 
  사립대학, 지출예산은 늘려 잡고 수입예산은 줄여 잡고
 
  이날 토론회에 참가한 한국대학교육연구소 황희란 연구원은 대학 등록금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방 직후 미군정이 제시한 수익자 부담 원칙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 부담이 돼야 할 대학교육 비용을 개인에게 떠맡기게 된 계기가 미군정의 교육정책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역사적 연원을 따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보다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황 연구원은 대학 측의 주먹구구식 예산편성을 등록금 인상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했다.
 
  해마다 다음 해 예산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거의 모든 대학이 예상 지출은 부풀리고 예상 수입은 줄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예산을 근거로 등록금을 올린다.
 
  황 연구원은 2004년 151개 사립대학(산업대 포함)의 예산과 결산을 비교한 결과, 지출 예산은 당해년도 말의 지출 결산에 비해 1조133억 원 초과편성됐었고, 수입 예산은 당해년도 말 수입 결산에 비해 120억 원 과소편성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즉 예산에 잡아 놓은 금액에 비해 실제로는 더 많이 거둬들이고, 더 적게 썼다는 것이다. 그 결과 2004년 사립대학의 예결산 차액은 총 1조253억 원에 이른다.
 
  하지만 2003년 대비 2004년 실제 등록금 증가액은 4324억 원이었다. 예결산 차액이 등록금 증가액의 2.4배에 달했다. 결국 예결산 차액만으로도 2004년의 사립대 운영이 얼마든지 가능했다는 것이고, 따라서 등록금을 인상할 필요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처럼 예결산 차액이 등록금 인상분을 상회하는 대학은 137곳으로 전체 조사대상 대학의 90.7%에 달한다. 인상된 등록금은 이월 및 적립금의 증가로 이어진다.
 
  부실한 사립대학, 등록금 외에는 기댈 구석 없어
 
  그런데 이같은 주먹구구식 예산편성이 단지 대학 측의 무능함 때문일까? 범국민교육연대 배태섭 사무처장의 발제에 따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배 사무처장은 부실한 사립대학들이 난립한 것과 대학 구조조정이 임박한 것을 주요한 원인으로 꼽았다.
 
  부실한 사립대학의 난립은 대학 운영에 필요한 재정을 등록금에만 의존하게 만든다. 실제로 최근 3년 간 4년제 사립대학의 운영수입 총계 중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70%에 달한다. 반면 재단 전입금의 비율은 8.7%에 불과하다. 전문대학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등록금 비중이 82.7%인 데 비해 전입금 수입 비중은 1.7%에 불과하다.
 
  이처럼 부실한 사립대학이 난립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배 사무처장은 대학 진학이 학문의 탐구가 아닌 사회적 계층이동의 기회로 받아들여지는 풍토에서 비롯된 과도한 대학진학 수요에 대해 정부가 잘못 대응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역대 정부가 고졸자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것을 통해 대학진학 수요를 조절하기보다 대학정원을 늘리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정부가 사립대학의 설립을 무분별하게 인가하면서 재정적으로 열악한 사립대학들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인구의 감소, 대학의 존폐위기
 
  하지만 최근의 등록금 급등은 이런 이유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학들이 이미 상당한 규모의 적립금을 쌓아두고 있기 때문이다.
 
  배 사무처장은 임박한 대학 구조조정을 또 하나의 이유로 들었다. 고교 졸업자의 수가 해마다 줄어들면서 입학정원을 채우지 못 하는 대학이 늘어가고 있다. 일부 지방대학의 경우는 교수들이 나서서 고등학교를 찾아다니며 신입생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출산율 저하로 인해 이같은 현상은 앞으로 점점 심화될 것이다. 등록금에 의존해 운영돼 온 대학들은 심각한 존폐의 위기를 맞게 됐다. 정부의 지원 없이는 미래를 기약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교육부, 지원사업비 칼자루 쥐고 대학을 요리한다
 
  정부 역시 대학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정부가 취하고 있는 원칙은 '선택과 집중'이며, 정부가 사용하는 카드는 '특수목적지원사업비'의 지원이다.
 
  정부가 대학에 지원하는 예산은 시설설비, 실습기자재, 학자금 지원, 장학금 지원 등의 일반지원사업비와 대학원 연구중심대학 육성(BK21), 국립대 구조조정, 지방대 특성화 등의 특수목적지원사업비로 크게 나뉜다.
 
  배 사무처장은 1990년대 후반부터 특수목적지원사업비의 비중이 계속 늘어 왔다고 말한다. 정부가 학부제 실시, 산학협력 강화 등의 조건을 내걸고 이 조건을 충족하는 대학에 재정지원을 하는 방식을 취하면서 생긴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의 지원이 절실한 대학은 정부가 내건 조건을 군말없이 따를 수밖에 없다.
 
  2004년의 경우 특수목적지원사업비의 집행내역은 수도권대학 특성화 지원(600억 원), BK21(1800억 원), 지방대학 혁신역량 강화사업(NURI사업, 2200억 원), 학교기업 육성(100억 원), 산학협력 중심대학 지원(200억 원), 전문대 특성화 지원사업(1680억 원) 등으로 돼 있다.
 
  '선택과 집중', 그러나 대학교육의 질은 더 열악해져
 
  사업비의 명목만 살펴봐도, 교육부가 지향하는 '선택과 집중'의 방향을 엿볼 수 있다. 배 사무처장은 일부 명문대학을 선별해 지원을 집중하고, 그 외의 대학은 기업과의 연계가 이루어지는 분야에 대해서만 지원하는 게 교육부가 지향하는 '선택과 집중'의 방향이라고 말했다.
 
  대학들이 적립금을 쌓아두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교육부의 '선택과 집중' 방침에 따른 지원사업금을 타내기 위해서는 예산의 건전성을 높이고 시설투자를 확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 사무처장은 단지 지원사업금을 타내기 위한 시설투자는 교육적으로 별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적립금이 쌓이고 시설투자는 늘었지만, 정작 전체 대학 교원 중 시간강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해마다 높아져 왔다.
 
  1990년에 46.5%이던 대학 교원 중 시간강사의 비율이 2004년에는 54.6%로 상승했다. 대학교육의 질과 실질적인 연관이 있는 분야의 내실은 계속 악화돼 온 것이다.
 
  배 사무처장은 교육부가 대학의 열악한 재정현실을 빌미로 대학을 통제하는 데만 급급했을 뿐 대학교육의 실질적인 개선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그는 교육부가 취하고 있는 '선택과 집중'의 원칙은 '차별과 배제'에 다름아니며 이 과정에서 대학의 서열화만 더 심화되었다고 일침을 놓았다.
 
  등록금 후불제 도입 절실
 
  교육부의 방침에 기대를 걸 수 없다면, 계속 치솟기는 대학등록금을 보며 한숨만 쉬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교수노조 기획실장을 맡고 있는 박정원 상지대 교수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박 교수는 외국에서는 수강신청과 등록을 먼저 하고 수업료는 나중에 내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강신청이 아닌 등록금 납부 여부에 의해 학생 자격을 결정하는 한국의 대학제도는 반사회적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교수는 졸업 시점에 그 간의 수업료를 한꺼번에 납부할 것인지, 취업한 뒤에 낼 것인지를 결정하는 스코틀랜드 대학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등록금 납부 시기를 유연하게 정하는 등록금 후불제를 도입하는 것만으로도 등록금 때문에 답답해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숨통을 틔울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학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늘리는 것이 근본적 해법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이들은 대학 등록금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대학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늘리는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10년 전 노수석 군이 거리에서 외친 '교육재정 확보' 구호를 다시 떠올린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박정원 교수는 한국의 경우 전체 고등교육비 중 공공예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14.9%에 불과하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평균인 78.1%에 비해 크게 낮은 수치라고 지적했다.
 
  토론자들은 이같은 현실인식에는 모두 동의했지만, 실제로 어떻게 정부와 대학을 압박하여 교육재정을 확보하고 등록금 부담을 줄일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노수석 군이 숨진 1996년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을 지내며 등록금 인하 투쟁을 이끌었던 박병언 씨가 이날 토론회에 참가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생들이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고 대학을 압박하여 실질적인 등록금 인하 성과를 남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성과가 쌓이면서 대학생들이 자신들의 대응 여부에 따라 등록금이 낮아질 수도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민주노동당 등록금특별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조성주 씨는 구체적인 성과에 매달리느라 처음부터 너무 낮은 목표를 세우면 아무런 성과도 남기지 못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 씨는 대학생들의 등록금 인하 투쟁은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투쟁과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으며 보다 비타협적인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대학 등록금이 계속 올라가는 원인을 분석할 때는 치밀한 논의가 이루어졌지만, 그 원인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논의하는 단계에 이르자 논리와 치밀성이 다소 느슨해지는 듯했다. 원인 분석의 정교함에 걸맞은 실천적 대안을 찾고 그 대안을 실현하기 위한 전략을 집요하게 모색하는 것은 앞으로의 과제로 남았다. 
   
 
 
  성현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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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4 12:11 2007/09/04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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