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익동지 1주기 추모식에 다녀왔다.

남원에서 88고속도로에 올라 남장수나들목으로 나가니,

금새 '장수논실마을'이라 쓴 정이 옴팡 배인 나무푯말이 보였다.

 

넓은 운동장엔 조문익선배를 찾아온 사람들의 차가 가득했고,

난 너무 늦게 도착했는지, 행사는 끝난 뒤였다.

폐교 직전에 증축했다는 학교 건물은 제법 컸다.

방마다, 아니, 교실마다 얼콰하게 술을 한잔씩 걸친 사람들이

조문익선배에 대한 좋은 기억, 기쁜 기억, 슬픈 기억, 아픈 기억을 나누고 있다.

 

여기 모인 사람들, 사람에 대한 추억을 참말 정답게 하는구나...

식판을 들고 줄을 서 음식을 퍼다 먹고,

맛 좋은 막걸리 통이 이리 저리 오가고,

맛난 머리고기 접시는 사람들의 젓가락질이 분주하고,

얼추 밥손님 맞이가 끝난 뒤에는 양푼에 남은 나물과 밥을 몰아넣고 비벼먹는 치들도 있다.

주방에서 는 달걀말이를 부쳐서 내오기도 했다.

 

오며 가며 술잔이 오가고, 나는 덕분에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도 많다.

딱 1년만에 보는 사람들도 있다.

조문익선배 장례식 때 보고 1주기 때 보는거다.

 

난 조문익선배를 1994년 쯤 알았나보다.

전북노련에서 일하다 민주노총 전북본부 활동으로 이어진 조문익선배를

전노협에서 일하다 민주노총 총연맹 활동으로 이어간 내가 아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회의 뒤풀이 때마다 조문익선배의 입담은 좌중을 휘어잡았다.

고전에서 무협지까지, 재미난 다큐멘타리를 보는 듯할 지경이었다.

 

2006년 1월, 난 친구들과 덕유산에 오른 적이 있다.

그때 한참 맛이 오른 대게를 한박스 짊어지고 갔는데, 산에 올라가면 삶아먹기가 영 골치아플 것 같았다. 그때 떠오른 사람이 조문익선배다.

선배한테 거기 가서 대게 한 박스를 삶아먹겠노라고, 소주나 한잔 하자고 전화를 했다.

안타깝게도 조문익선배는 회의가 있어서 전주에 나가야 한다며 아쉬워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라도 들르라고 당부했었다.

 

그러나, 산행이 끝난 뒤에 난 쫓기듯 서울로 올라왔고,

채 며칠이 지나기 전에 부음을 들었다.

그 당황스러운 소식을 듣던 날의 기억도 생생하다.

영등포에서, 상계동 쪽에 있는 상가를 가기 위해 차를 몰고 막 나섰을 때다.

올림픽도로를 타기 위해 양남로터리에서 당산동쪽으로 가다가,

전화를 받고, 차를 세웠다. 숨이 턱 막혀왔었다.

 

동지들이 떠날 때마다 숨은 턱턱 막혀오지만,

며칠 지나면 금새 그 동지들을 추모하는 데 익숙해진다.

우리 주변엔 죽음이 너무 많다.

죽음이 너무 많은 게 가슴아프지만, 너무 가슴아프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동지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늦은 밤에 장수논실마을을 나서는데,

잠시 조문익선배가 나를 배웅하는듯한 노곤한 착각에 빠졌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읽은 조문익선배의 유고집을 펴드니,

내가 몰랐던 조문익선배가 자꾸 나에게 말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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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06 20:00 2007/02/06 20:00
Posted by 흐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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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09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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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1년이구나... 잠시 잊고 있었네요.ㅠ.ㅠ 작년에 논실마을에서 찍은 조문익 동지가 남긴 흔적들을 사진보관함에서 다시 한번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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