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달이
막 서쪽으로 넘어갔고
타던 거문고 소리
금시 멎었어라
밝은 빛 시끄럽던 소리와
어둡고 적적한 것이 서로 바뀌여지니
묻노라. 이때의 미묘한 맛을
그대는 아는가
- 서경덕
(홍석중의 황진이 中. 지식보다는 인간으로서의 됨됨이를 시험해보겠노라는 마음으로 찾아온 황진이에게 서경덕이 "이 두 련의 시에 '주역'의 오묘한 리치가 전부 담겨 있네"라며 건넨 시)
2005/06/05 01:17
2005/06/05 01:17
Posted by 흐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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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미친년 간다
햇빛 속을 낫질하며 간다
쫓는 놈의 그림자는 밟고 밟으며
들풀 따다 총칼 대신 나눠주며 간다
그리움에 눈감고 쓰러진 뒤에
낫 들고 봄밤만 기다리다가
날 저문 백성들 강가에 나가
칼로 물을 베면서 함께 울며 간다
새끼줄에 꽁꽁 묶인 기다림의 피
쫓기는 속치마에 뿌려놓고 그리워
간다. 그리운 미친년 기어이 간다
이 땅의 발자국마다 입맞추며 간다
- 정호승, [유관순1]
2005/06/05 01:15
2005/06/05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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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가게 앞에서
- 박재삼
사랑하는 사람아,
네 맑은 눈
고운 볼을
나는 오래 볼 수가 없다.
한정없이 말을 자꾸 걸어오는
그 수다를 당할 수가 없다.
나이 들면 부끄러운 것,
네 살냄새에 홀려
살戀愛나 생각하는
그 죄를 그대로 지고 갈 수가 없다.
저 수박덩이처럼 그냥은
둥글 도리가 없고
저 참외처럼 그냥은
달콤할 도리가 없는,
이 복잡하고도 아픈 짐을
사랑하는 사람아
나는 여기 부려놓고 갈까 한다.
2005/06/05 01:15
2005/06/05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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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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