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은 없다

(소나타) 

- 파블로 네루다


만일 내게 어디에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그냥 그렇게 됐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난 돌멩이들이 어둠을 드리우는 땅바닥에 대해,

흘러가며 부서지는 강에 대해 얘기해야 하리라.

내가 아는 거라곤 새들이 잃어버리는 사물들,

뒤에 남겨진 바다, 혹은 울고 있는 내 누이뿐,

왜 하 많은 지역들이 있는 걸까, 왜 하루는

다른 하루와 합쳐지는 걸까? 왜 검은 밤이

입 속에 쌓이는가? 주검들은 왜?

만일 어디서 왔냐고 내게 묻는다면, 난 얘기를 나눠야 한다, 부서진 사물들과,

너무나 가슴 아픈 연장들과,

흔히 썩어 있는 덩치 큰 짐승들과

그리고 쓰라린 내 가슴과,


엇갈린 건 추억도

망각 속에 잠자는 누런 비둘기도 아니다.

그건 눈물 젖은 얼굴,

목구멍 속의 손가락,

그리고 나뭇잎에서 무너져 내리는 것,

흘러간 하루의,

우리의 슬픈 피를 먹고 자란 하루의 어둠,


여기에 제비꽃이, 제비가 있다.

시간과 감미로움이 거니는

긴 꼬리의 달콤한 엽서에

나오는 우리가 좋아하는 모든 것이 있다.


그러나 그 이빨 너머로 뚫고 들어가지는 말자,

침묵이 쌓아가는 껍질을 물어뜯지 말자,

난 뭐라 답해야 할지 모르니까,

수많은 주검이 있다.

붉은 태양이 무너뜨리는 무수한 제방들이,

뱃전을 때리는 수많은 머리들이,

입맞춤을 가두고 있는 무수한 손들이,

그리고 내가 잊고 싶은 하 많은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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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5 01:29 2005/06/05 01:29
Posted by 흐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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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한 날, 눈가에 물 한방울!
4월30일, 울산플랜트 2차 상경투쟁단 오금철단장이 국회 앞 문화제 때 읽은 글...

천리길을 달려달려 이렇게 왔습니다
좁은 찻간에 다리도 못 펴고 마른 빵 입에 물고 그렇게 서울로 서울로 눈물을 머금고 왔습니다.

나는 68년, 여수 호남 정유에서 조공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군대에도 가고 월남전에도 참전하여 72년 6월에 제대를 했습니다.
나는 아직도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고엽제 후유증으로 온몸의 살갗이 벗겨집니다.
오늘은 팔에서, 내일은 다리에서 내 몸의 살점이 떨어져 나갑니다.
한여름에도 짧은 팔을 입을 수 없이 살아온 인생이지만 고리 원자력 발전도 울진 원자력 발전도 공사해서 죽어라고 일만 했습니다.
사막의 뜨거운 모래 폭풍이 부는 이라크에서도 일을 했고 일본에도 가고 어디라도 달려가 일을 했습니다.
말그대로 산업 역군이었습니다.

일등 국민이 도대체 누구입니까.
어느 잡지에서 애국 애족 애사라고 합디다.
이 가운데서도 외화를 벌어들이는 사람들을 산업역군이라 합디다.

그런데 나는 무엇입니까.
산업역군은 간데 없고 검사들과 경찰들은 나를 빨갱이라 합니다.
도대체 나는 무엇입니까.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것뿐인데 끌려가고 구속되고 수배되고 도대체 이게 말이나 됩니까.
나라의 윤리가 이렇지 않습니다.
자본이 썩었습니다.
정치가 썩었습니다.
경찰, 검사가 썩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정치가, 검사들이 이 정도까지 썩었는지 몰랐습니다.
정말로 몰랐습니다.

울산은 지금 전쟁 중입니다.
너무 억울한 전쟁입니다.
제가 참전한 월남전보다도 더 무섭습니다.
이 전쟁에는 젖먹이를 들쳐업고 나온 아주머니들이 태반이요,
얼마나 절박하면, 이 놈들이 얼마나 나쁜 놈들이면 이러겠습니까.
아이들한테, 아저씨들 잡아가는 나쁜 경찰이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솔직히 나는 근로기준법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법에만 있는 것이었지 현실은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초등학생도 이해하고 국민 누구나가 이해하는 것입니다.
먹고 씻고 쉬고 일하는데 가장 기초적인 것 뿐입니다.
밥알보다 모래알을 더 씹어야 하는 점심 도시락도 그나마 비가 오면 빗물에 말아먹는 꼴이 됩니다.
공장 담벼락에 숨어서 도둑놈처럼 작업복을 갈아 입어야 됩니다.
누가 우리들의 이런 짐승같은 생활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돈을 더 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답게 생활하고 좀더 인간답게 일하고 싶은 것 뿐입니다.
30년 전에 전태일 열사가 외친 근로기준법을 우리가 외치고 있다는 이 사실을 얼마 전에 나는 알았습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살아온 날을 이렇게 이야기하려니 눈물만 납니다.
서러움이 무엇인지 한 번 보고 싶다면 나를 보면 됩니다.
우리 동료들을 보면 됩니다.

파업하며 안 운 날이 없습니다.
울고 또 울어도 눈물이 납니다.
그야말로 피눈물이 납니다.

내 삶이 왜 이렇습니까.
원인이 무엇입니까.
왜 이렇게 된 겁니까.

새벽밥 먹고 현장에 와서 옷 갈아입을 장소가 없어 도로에서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쇳가루 시멘트 가루 날리는 낙장에서 비가 쏟아져도 피할 곳이 없이 허겁지겁 밥을 먹는 이런 현실, 내 돈 주고 먹는 도시락 모랫바람 없이 한 번 먹어보자는 것이 무슨 죄입니까.
화장실 한 번 당당하게 가 보자는 것입니다.
먼지 구덩이 쇳가루라도 털고 퇴근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루일을 마치고 땀에 흠뻑 쩔어도 손 씻을 세면장, 샤워장 하나 없는 게
건설일용노동자들의 오늘의 현실입니다.

국민 3대 의무가 교육의 의무, 국방의 의무, 납세의 의무라고 합니다.
이 가운데 우리가 안 지킨게 도대체 무엇입니까.
노동자 기본권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운 것입니다.
기본권이 원래 그런 겁니까?

성수대교가, 삼풍백화점이 왜 무너졌습니까.
그게 다 부실공사 아닙니까.
다단계 도급제 때문 아닙니까.
다단계 도급이 시공 관행이 되어버린지 오래입니다.
한단계만 없어도 삼풍백화점이 왜 무너지겠습니까.

그런데도 검찰과 경찰들은 우리더러 폭력배라고 합니다.
우리더러 테러리스트라고 합니다.
말이나 됩니까.
우리는 명예가 없습니까.
뻑하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고발하는 사람들만 있지 우린 늘 당하고만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파업은 잘못된 시공 관행을 바로 잡아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파업은 우리의 목숨이 달린 문제입니다.

내 나이 내일 모레면 60을 보지만 이번만큼은 물러설 수 없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죽음을 생각하지만 앞으로도 공장에서 일하게 될 후배들에게 남길 유산이라고 생각하여 죽을 각오로 싸울 겁니다.

업체는 협상에 코빼기도 안 보이고 검사는 우리더러 사상이 불순하다며 빨갱이 타령에 정신이 없습니다.
경찰은 조합원이 모였다면 곤봉들고 방패들고 여차하면 다 쓸어버리겠다고 폭력배 타령을 합니다.
사장 좋을 짓만 알아서 합니다.
손발이 착착 맞습니다.
생판 듣도보도 못한 법으로 우릴 구속하는데,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게,
바로 법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우린 진짜 단순한 사람들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한많은 세월을 살았습니다.
중학교 졸업하고 여태까지 일하며 살아왔습니다.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인간이라면 잘잘못을 알 겁니다.
검사들이 못 배워서 우릴 구속 시킵니다.
잘못한 것을 잘못했다고 이야기 하는 게 죄입니까.
나는 자식들한테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말합니다.
없는 사람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참 나쁜 놈들이 판치는 세상입니다.
좋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제발 좀 말 좀 해 주십시오.
제발 좀 도와주십시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하루 여덟시간 노동 준수하고 식당, 휴게실, 세면장 설치하고 주, 월차 수당 지급하고 유급휴일 보장하라.
건설산업법과 산업안전법을 지키고 안전장구를 지급하라.
무리한 잔업 중지하라.
노동조합 탄압 중지하라.
불법 대체인력 파견 마라.
간부조합원 폭력연행 중단하고 구속자 석방하라.
사용자는 단체교섭에 나오고 단체협약을 체결하라.

울산 SK 상경투쟁단 대표 오금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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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5 01:26 2005/06/05 01:26
Posted by 흐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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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산은 언제 거기 있었던가

나를 버리러 간다
될 수 있으면 아주 밝은 곳으로
될 수 있으면 아주 어두운 곳으로
나를 버리러 간다
될 수 있으면 아주 높은 곳으로
될 수 있으면 아주 낮은 골짜기로
될 수 있으면 가장 더러운 곳으로
될 수 있으면 가장 깨끗한 곳으로
나를 버리러 간다
될 수 있으면 가장 멀리,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우습다 10년을 반성하지 않는 시가 우습고, 20년을 반성하지 않는 시가 우습고, 30년을, 40년을, 50년을, 반성하지 않는 시가 우습고, 나를 반성하지 않는 시가 정말 우습다 그렇지 않느냐 우스워 죽겠는데 웃지도 않고 시를 쓰는
나를 반성하지 않는 내가 우습고 너를 반성하지 않는 내가 우습고 몇천년 동안 한번도 반성 없는 우리의 정치가 우습다
새벽 달빛에 봄이 오고
새벽 달빛에 내리는 흰 서리, 내려다보는 땅 위에 쑥들이 돋고, 어둠속 내 맨발은 시리다
새봄이 와서
꽃이 피고
흘러가는 강물에
꽃같이 고운 얼굴들이 떠간다
새가 운다
산아
지리산아
3월 지리산아
꽃은 어이 피고 지는고
지리산 아랫도리 가지가지에 살이 터진 매화야
매화는 찬바람 끝을 잡고 피어난다
나를 버리러 간다
가장 화창한 봄날,
꽃들이 가장 만발한 봄날
강물이 가장 파란 봄날
바람이 가장 부드러운 봄날
더러운 세상의 끝가지 보이는 환한 봄날
나를 버리러 간다
돌 틈에다가, 푸른 하늘에다가, 커다란 바위 위에다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길에다가, 만발한 매화꽃가지 아래에다가 그리고,
돌아서서 걸으마
그리운 너를 만나러, 다시는 헤어질 수 없는 너를 만나러
오, 내 사랑의 끝, 그 캄캄한 절벽 끝에서
내 한발 내디뎌
저 산은 언제 저기 있었고
저 강은 언제 저리 길이 났던고?


- 김용택 [나무]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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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5 01:25 2005/06/05 01:25
Posted by 흐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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