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한 생각

일상 2014/01/06 16:10

비가 많이 오는 날은 언제나 신발에 물이 샌다. 바지 가랭이가 젖는 거야 뭐라 할 수 없지만 축축한 발을 꺼집에 내면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아니 아주 좋지 않아서 매번 망할 놈의 신발!이라는 욕이 튀어 나온다. 21세기에도 신발에 물이 새다니, 끔찍한 일이야. 나는 사실 21세기에는 비에 젖지 않는 옷이나 신발이 등장할 거라고 생각했다. 옷은 비옷도 있고 하니 신발은 당연히 물이 새지 않을 거라고 거의 확신했다. 그런데 아직 물이 새지 않는 운동화는 등장하지 못한 모양이다.

신발에 대해 말하자면 한 가지는 확실하게 달라진 것이 있다. 등산화가 그렇다. 18살 처음 지리산을 오를 때 등산화를 신지 못했다. 그냥 학교에 신고 다니는 운동화를 신었다. 눈이나 진눈깨비가 오는 경우에는 비닐로 신발을 싸매고 산 입구에서 2500원을 주고 싸구려 아이젠을 사서 끼웠다. 나는 이렇게 산 아이젠을 두 번 사용한 기억이 없다. 겨울이건 여름이건 산을 오를 때 가장 괴로운 일은 등허리와 머리에서 쏟아지는 땀을 닦는 거였다. 특히 겨울에 거친 숨을 몰아쉬며 산을 오르다 잠시 쉴 때 등허리의 땀이 식으면서 몸이 으쓱한 기분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요즘이야 좋은 등산복이 나왔다지만 나는 여전히 싸구려 등산바지에 그냥 평소 입고 다니는 잠바를 걸쳐 입고 산을 오른다. 요즘은 산에서 잠을 자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짐이 가벼워진 것 이외는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등산화를 빼면 말이다. 그래서 가끔은 땀을 잘 흡수하고 잘 마르는 등산 내의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겨울 산을 오를 때는 단순한 방한이 아니라 전자 장치가 부착되어 몸을 덥혀주고 따듯하게 해 주는 그런 등산복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아마 곧 그런 옷들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로즈 젤라즈니의 단편을 읽는데, 먼 어느 행성의 산을 오르는 주인공을 묘사하는 이런 부분이 있다. "... 상당한 높이까지 올라갔다. 그 무렵에는 호흡 장치를 쓰고 있었고, 등산복의 전열 장치도 켜 놓은 상태였다."

 

가벼우면서도 전자적인 전열장치까지 갖추고 있는 등산복이 있다면 분명 획기적일 게 틀림없다. 나야 뭐 전문 산악인이 아니니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사람들이 어떤 장비를 사용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 10년 전의 장비와 지금은 많이 다를테고 20년 전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다를 것이다. 그런데 좀 더 편하고 몸의 땀과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그런 등산복을 입고 산에 오르는 것이 더 좋을까? 그런 (과학적으로 디자인된) 등산복을 입는 것과 예전처럼 특별한 장비 없이 산을 오르는 게 더 좋을까? 물론 다른 사람보다 더 높이 오른다는 목적이 중요하다면 사람들은 그런 옷을 선호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걸 등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등산은 산과 나를 맞추는 방식이 중요하다. 추우면 추운 대로 산과 기후에 나를 맞추어야 하고 내가 더 겸손해야 할 거다. 올해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나를 세상에 맞추는 것과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를 좀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나이를 먹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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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6 16:10 2014/01/06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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