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하며

일상 2012/09/17 21:32
삶이 고난의 연속이라면 삶을 지속할 이유가 있을까?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처한 고행도 아닌 고통스러운 삶을 견뎌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가끔, 또는 아주 약간이라도 안도할 수 있는 순간이 주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삶이 이렇게 열정이 아니라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과 같이 연약하기만 하다면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최고로 슬픈 블루스는 원하는 걸 모두 가졌다가 잃은 뒤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음을 알게 된 사람에 관한 내용이겠죠. 이 세상에서 그보다 더 큰 고통은 없을 테니까요. 우린 그 블루스에 '나는 한때 그것을 가졌으나 이제는 사라지고 없네'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2/09/17 21:32 2012/09/17 21:32

돌아 가야할 곳

일상 2012/09/17 14:45

20살 즈음에 나는 30이 되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고민했다. 아마 30이 되었을 때 내가 '있어야 할 곳'과 '되어야 할' 어떤 역할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30이 되었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는 40되면 내가 해야할 일들과 역할에 대해 고민했다. 40이 되었을 때 나는 30이었을 때 내가 생각했던 것들, 내가 있어야 할 곳과 해야할 일들에 어느 정도 부합한다고 생각했다.

지난 5년 동안 나는 무엇을 했던가? 40이 되었을 때 나는 다시 50이 되면 내가 되고 싶은 어떤 상태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토마스의 말처럼 인생이 한 번 뿐이라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던가.

한 번이란 없는 것과 같다. 누가 알겠는가? 나의 선택이 올바른지 그른지. 시간이 흐른 후 나에 대한 평가가 현재의 나에게 중요하다고 나에게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루드빅이 루치에를 처음 만난 그 순간에 대한 기억을 가장 강렬한 것으로 가지고 있는 것처럼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기억할 수 없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다, 그토록 나를 매혹시켰던 것은 루치에의 그 특이한 느림 때문이었을 것이다. 서둘러 돌진할 만한 가치가 있는 목표란 없다고, 무언가를 향해 초조하게 손을 내미는 것은 아무 소용 없는 일이라고, 그렇게 체념한 마음을 발산하는 그 느림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스무살의 루드빅이 아니다. 나에게는 지나 온 많은 날들이 이미 사라졌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나에게는 내가 돌아가야 할 많은 시간들이 남아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초조한 걸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2/09/17 14:45 2012/09/17 14:45

자주 하늘을 보자

일상 2012/09/14 16:14

아이팟으로 사진을 잘 찍지 않는다. 다른 카메라가 있긴해도 매일 들고 다니는 건 아이팟인데도 사진을 자주 찍지 않는다. 더구나 하늘 사진을 찍지 않는다. 이건 내가 하늘을 올려다 볼 정도의 여유조차 없다는 말이다. 주변의 사물들에 시선을 둘 정도의 여유도 없다는 말일 거다. 이런 식으로 바쁘게만 사는 건 바람직 하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바쁜 무언가가 있다는 말인가.

 

이 사진들은 지난6월 아이팟으로 찍은 마지막 사진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2/09/14 16:14 2012/09/14 1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