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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해지고 싶다'는 마음,

 

사람들을 대량으로,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만나게 되는 기간이 올해에도 왔다. 

시작 그리고 끝의 무수한 가닥들이 맞닿아 겹쳐지는 경계의 시기에,

사람과 사람의 관계 역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신입생 환영회 등에서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라는 말들을 보고 듣는데,

이런 류의 말들이 괜시리 내 마음 속에 크게 울렸다.

 

나의 경우엔,

언젠가부터 사람들을 볼 때에,

'아, 참 좋다'라고 내 마음이 따스해지는 때는 많더라도,

'아, 이들과 너무 너무 친해지고 싶다'라고 내 마음이 달아올라 조바심이 나는 때는 많이 적어졌다.

 



 

그건

 [다가간만큼의 멀어짐을 인정하기] 라는 이전 글에서와 비슷한 맥락일 수도 있는데,

내가 이전의 관계들에서, 가까이 간 만큼의 멀어짐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내게 있어 무언가와 '친해진다'는 것은,

부단한 부딪침,

때로 그 부딪침은 서로를 감싸안아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도 하고

때로는 뜨겁게 활활 타올라서 진땀을 빼게 하는 것은 물론 데어서 아프기도 하고

짓물러서 피와 고름이 흘러넘치기도 하는,

그런 부딪침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굳이

'친하지 않았을 때'라는 표현을 쓰자면,

친하지 않았을 때의 그 사람과 나의 관계가 피상적이거나 가식적이었던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게 보인 그 모습, 내가 보인 그 모습은 그 자체로 나였고 그 자체로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무언가에 있어서 '껍데기' 가려진 '본질'이 있다고 상정하는 것은 내가 그닥 하고 싶은 일이 아니며,

내가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지금의 관계와는 또 '다른' 무엇, 그 사람의 무엇,

그리고 나의 무엇을 발견하고 싶고 확인해나가고 싶은 일이었으리라.

그리고 그 마음은, 지금까지 겪었던 것과 같으면서도 또 다른 부딪침의 과정들을 떠올리게 하고

그러면서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어떤 류의 감정들-사랑, 미움, 원망, 고마움, 기쁨 등등-을 상상하게 된다.

 

내게 있어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은 참 이중적, 다중적이다.

너무 좋지만, 그래서 미리 슬프다.

 

미래의 슬픔을 가져와 느끼는 척하면서 관계를 닫거나

더이상 새로이 맺어나가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있다는 말은 아니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굳이 '나'와 '그 무언가'가 친해지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의 관계에도 감사하고 즐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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