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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압의 추억

* 이 글은 썩은 돼지님의 [갈지마 갈지말란말이야]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재수 없게도 내가 뽑은 제비는 허고 많은 부대들 중 전경부대였다.

 

내가 전경으로 배속된걸 안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군대 가지말라고 말했던 선배의 얼굴을 위병소 면회장이 아닌 집회장소에서 만났을때 나는 어떻게 해야하나 라는 질문이었다.

내 친구들을 연행하라고 고참이 말하면 어떤 꽁수를 써서 풀어줘야하나 같은 낭만적인 고민을 할 새도 없이 전경들만의 후반기 교육이 시작되었다.

부대에 배치되자 마자 가장먼저 배우는 것은 중형진압봉술과 방패술, 체포술과 진압대형이다.

이 우스꽝스럽고 또는 소름끼치는 이름들의 훈련은 육군 훈련이 끝나고 이제 좀 살만할까 싶었던 신병들에겐 지옥 같은 훈련이었다.

훈련이 시작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부대에 울리는 비상벨(진짜로 비상벨이 울린다)소리에 나는 최초의 집압출동을 나가게 된다.

처음 입어보는 진압복이라  헐래벌떡 웃도리부터 줏어입었지만 이어지는건 고참의 타박.. 진압복은 아랫도리를 꼭 먼저 입어야 한다는 걸 깨닫고는 눈치껏 다시 갈아입고 닭장차에 올라탔다.

아 드디어 시작이구나 싶은 참담한 마음을 숨기고 창밖을 내다 보지만 그때는 정말 두려웠다. 내가 들고 있는 이 진압봉으로 시위대를 공격해야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다행히도 시청 항방을 왔던 농민분들은 시청입구에서 서성이다 돌아들 가셨고 전경들은 아무일 없이 부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다른부대로 차출되어 진압부대에서의 일은 말그대로 추억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기억난다. 그날 아무일 없이 돌아올때 고참들이 지어보였던 아무일 없음을 아쉬워하던 광기어린 표정들. 내가 거기에 더 있었더라면 나도 저런 짐승같은 표정을 짓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더 공포스런 상상이 나를 주눅들게 했었다. 휘두르면 어디한군대 어디 한군데 부러질 것 같은 묵직한 방패와 사람패기 딱 좋을 정도의 무게와 탄성을 가진 진압봉, 그리고 온몸을 촘촘히 두른 대나무살로 보호되는 진압복 과 철인28호를 연상케하는 화이바까지..

시간날때마다 틈틈히 갈고 있는 방패날과 그보다 날카롭게 간 시위대에 대한 증오들.. 그때의 그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아마 지금도..

 

(내 개인적인 경험은 그들도 피해자일 뿐이라는 이성의 외침을 조용히 잠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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