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법을 뒤집자] 정당은 '민주적'이어야 하는가? 왜?

현행헌법은 제8조 제2항에서 "정당은 그 목적·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하며,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조직을 져야 한다."고 규정한다. 전단과 후단을 나누어 살펴보자.

이 규정에 따르면 한국에서 정당을 하고싶으면 일단 목적이 민주적이어야 한다. 이 규정만으로 비추어볼 때, 한국사회에서 왕정복고를 목표로 하는 정당은 구성될 여지가 없다. 전제정이 아니라 입헌군주국을 지향한다 할지라도 우리 헌법구조 안에서는 이런 목적은 '민주공화국'이라는 대의를 전복하려는 목적이 되므로 불가하다.

한편 이 규정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1인 지배 정당은 만들어질 수가 없다. 정당의 대표가 전권을 행사하고, 그 전권행사의 독재를 당원이 용인하는 구조는 반민주적이므로 헌법 상 인정되기 어려운 정당구조가 된다. 정당의 운영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하여 철저한 상명하복체제로 조직을 만드는 건 한국 헌법이 인정하지 않는다.

더불어 이 규정에 따르면 정당의 활동은 민주적이어야 한다. 정당의 민주적 활동이라는 건 뭘 말하는 건가? 애매하다.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결정했던 유명한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정당의 활동을 "정당의 활동이란, 정당 기관의 행위나 주요 정당관계자, 당원 등의 행위로서 그 정당에게 귀속시킬 수 있는 활동 일반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2014. 12. 19. 2013헌다1) 이런 활동들이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그 "민주적"이라는 말 자체는 딱히 어떤 기준이 없다. 오히려 헌재의 결정에 따르면 그 "민주적" 여부는 준법의 여부에 불과하다.

해당 조문 후단을 보자. 헌법규정에 따르면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기여해야 한다. 어떤 국민을 말할까? 전체 국민? 그렇다면 정당은 '전체'국민의 의사를 형성하는데 기여해야 한다. 그런데 국민의 전체의사를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 만일 어떤 정당이 특정지역의 분리독립을 강령으로 선언하고,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국민'의 의사를 대표하면 어떻게 되나?

현행 정당법의 제1조 목적을 보자. 이 규정에 따르면 정당법은 "정당이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조직을 확보하고 정당의 민주적인 조직과 활동을 보장함으로써 민주정치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헌법 제8조 제2항의 내용을 고스란히 가져간 다음, 헌법에 따른 정당활동을 보장하여 민주정치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하는 게 법의 목적이다. 매우 거창한 내용인 듯 하지만 알맹이가 뭔지는 여전히 의아하다. 민주정치의 건전함은 어떤 건가?

질문을 정리해보자.

- 한국사회에서 왕정복고를 이념으로 하는 정당은 성립될 수 없는가?
- 한국사회에서 일인지배적 정당은 만들 수 없는가?
- 한국사회에서 획일적 상명하복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정당은 만들면 안 되는가?
- 한국사회에서 특졍지역, 부문, 계급, 계층의 이해를 대표하는 정당은 조직할 수 없는가?

왕정복고를 목표로 하는 정당이 만들어지면, 이 정당은 위헌정당으로서 해산시킬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일인지배정당이나 상명하복체제의 정당 등 역시 위헌정당으로 해산할 수 있을까?

아니, 근본적으로 의문이 드는 것은 헌법이나 법률이 왜 정당은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기준을 세워놓고 있어야만 할까? 민주공화국에서 이념, 목적, 강령, 정책, 활동 등이 반민주적이고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수준이라면, 그건 유권자들이 심판하면 된다. 굳이 헌법에 정해놓고 정당법에 정해놓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왜 굳이 헌법과 정당법은 정당이 어떠해야 한다는 기준을 정해놓고 이에 맞춰 정당을 만들라고 하는가?

21세기 이후 한국에 등장한 진보정당들을 보자면, 강령, 조직, 활동 등 모든 면에서 그 어떤 보수정당보다도 민주적이었다. 헌법과 정당법의 정신이 고유하게 발현되어야 한다면, 이들 진보정당들이 한국사회의 주류가 되었어야 할터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오늘날 각 진보정당들은 정체되거나 위축되거나 소멸되거나 심지어 해산당하기까지 했다.

반대로 통상의 의미에서 '민주적'으로 보기 어려운 행태를 자행해온 보수정당들은 한국사회를 여전히 양분하고 있다. 이게 뭘 의미하는가?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선택한 유권자들을 수준미달이라고 봐야 하나? 헌법정신을 잃어버린 존재들이라고 치부할까? 

헌법 제8조 제2항 자체가 실은 과도한 국가후견주의의 발로이다. 애초 정당에 관한 헌법의 규정은 제헌 이래 장면정부에 이르기까지 결사의 자유 차원에서 다루어졌었다. 그런데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킨 후 만든 헌법에서 정당은 통상의 결사체와는 다른 대우를 받으면서 독립된 규정에서 다루어지는데, 이 때 바로 현행 헌법규정과 같은 내용이 등장한다. 웃기지 않은가? 민주정부를 전복한 쿠데타 세력이 정당규정을 새로 만들면서 '민주적' 운운을 하고 있었는데, 이게 오늘날까지 그냥 이어져 내려온다는 것이.

오늘날 정당법의 모든 모순의 출발이 여기 있다. 쿠데타세력이 만든 질서가 아직 작동하고, 그 질서의 작동 아래서 자한당 같은 반민주정당은 제1, 제2정당의 위상을 지속하지만, 통합진보당 같은 정당은 해산당한다. 그리고 정당법의 모든 제 문제가 이 구조 속에서 작동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8/11/20 16:48 2018/11/20 16:48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hi/trackback/1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