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트 잘못 짚은 녹색당 논평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해서,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역시 비례성 강화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게 그래서 주장되는 건데, 사실 '연동형'이라는 말이 동원될 수밖에 없는 건 지역구 소선거구제가 공존하는 한 1표 1가의 평등선거원칙, 비례성의 원칙이 딱 떨어지게 만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역구 선거제도를 아예 없애버리고 비례대표제만 도입하면 연동형이니 하는 수사를 붙이지 않아도 비례성이 충족되겠지만, 한국은 이게 요원하다보니 최대한 비례성을 만족할 수 있도록 의석수와 비례득표율을 '연동'해보자고 이 난리를 치게 된다.

그런데 내가 계속 우려하는 바는, 마치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안착되면 썩을 놈의 정치인들이 아주 걍 깔끔하게 일소될 것처럼 착시효과를 만들어내는 어떤 흐름이다. 이거 안 좋다. 연동형 되면 자한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 있을 것처럼 말하는 건, 이걸 바라는 사람에게는 잠깐의 뽕 주사가 될지는 몰라도 헛된 바람이고, 심하게 말하면 사기치는 거다. 연동형 비례제가 자리 잡으면, 완전 개차반인 수구세력에게도 그들의 머릿수에 비례하는 자리를 내줘야 한다는 게 현실이다. 자한당이 망하는 건 고사하고 대한애국당 같은 정당 소속 의원들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는 거다. 이게 진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선거제도 개혁을 주장하는 일각에서는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아주 청정한 국회가 만들어질 것처럼 선전을 한다. 이번 보궐선거 끝나고 나자 나온 녹색당의 논평은 이런 과대포장 현상의 한 사례이다. 

녹색당 논평 - 더 많은 '정점식'이 나오지 않으려면 선거제도 개혁을!

이 논평은 사회의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여러 착각을 잘 보여준다. 우선, 위에 언급한 선거제도에 대한 환상. '정점식' 당선자의 과거, 그리고 선거과정에서의 문제점은 뭐 넘어가자. 그런 자에 대해 이야기하기에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니까. 녹색당 논평이 언급하는 것처럼, 국회의원으로서의 자격이 의심되는 정도의 인사라고만 해두자. 아니 의심이 아니라 이건 뭐 기냥... 아, 여기까지.

암튼 그 자격에 대한 판단은 차치하고, 녹색당 논평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이런 뭣같은 인사가 국회의원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을 유발한다. 이건 천만의 말씀, 만만의 착각인데, 연동형 비례대표제 아래서 자한당은 마음만 먹으면 이런 자를 비례 앞순위에 앉혀놓을 수 있게 되고, 말썽많았던 경선과정이나 선거운동이고 나발이고 그딴 거 다 집어 치우고 편안하게 국회입성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다.

녹색당은 논평에서 "특정정당 공천=당선"이라는 공식이 깨지지 않으면, 2020년 총선에서는 더 많은 '정점식'이 탄생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는데, 연동형 비례대표 체제가 들어선다고 하더라도 거대 정당의 경우 "특정정당 공천=당선"이라는 공식은 안 깨진다는 거다. 선거제도 개혁에 앞장서는 녹색당이지만, 자꾸 이런 식의 주장을 내세우게 되면 나중에 그 논리가 깨졌을 때 주워담기 어렵게 된다.

한편, 보궐선거과정에서 "국가적 사안들"이 선거쟁점에서 사라졌다는 것을 녹색당 논평은 문제삼고 있는데, 물론 국회의원이라는 지위가 국가대표이니 국가적 사안들을 선거에서 쟁점으로 다루는 것이 맞기는 하지만, 아니 창원성산, 통영고성의 유권자들에게 표를 얻어야 할 판인데, 지역공약 앞에 안 내세우고 어떻게 선거운동을 하라는 건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되면, 선거운동과정에서 지역공약 같은 건 일체 싸그리 다 언급하지 않고 "국가적 사안들"만 가지고 선거운동할 수 있을 것 같나? 정당이 지역에 대한 입장과 정책을 가지지 않고 그걸 내보이지 못한다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라고 한들 무슨 지지를 끌어낼 수 있을까? 그렇잖아도 지역구 줄어들면 지역대표성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팽배하고, 보수정당들은 이 우려를 빌미로 지역구 숫자 줄이지 않으려고 난리인데, 녹색당과 같은 주장은 이 우려를 불식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부추길 위험이 있다. 실질적으로도 지역정책과 공약이라는 게 빠질 수도 없는 거고.

극단적으로 전면비례대표제를 도입한다고 해도, 정당이 선거운동을 KBS같은 공중파나 JTBC같은 매체로만 할 수도 없고 어차피 현장에 가서 선거운동을 해야만 한다. 물론 지금처럼 방송차 타고 가서 춤추고 소리지르는 일은 많이 없어지겠지. 하지만 선거운동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게 되는데, 지역에 가서 선거운동을 하는 판에 중앙정치이야기, "국가적 사안들"만 중구장창 이야기할 수 있나? 이게 무슨 핀란드처럼 인구 한 550만 정도되고, 지리적 이유로 사람 몰리는 곳이 한정된 나라라서 전국적 사안이 지역사안하고 그닥 차이가 안 나는 나라라면 몰라도, 한국에서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는 건지 모르겠다.

녹색당이 열심히 노력하는 건 매우 존경할만하다. 실지로 한국의 정치조직 중에서 정당이든 단체든 간에 선거제도개혁에 대해 녹색당만큼 열심히 문제를 제기하고 부딪치는 곳이 없을 정도다. 그건 누구나 다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노력과는 별개로 그 노력을 퇴색시킬 수도 있는 이런 입장이 나오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아, 그리고 이것 뱀발인데, 녹색당이 패스트트랙 빨리 결정지으라고 논평에서 촉구하고 있지만, 그 내용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이게 좀 난감한데, 현재 더민당 안으로 수렴되는 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올려 고정화시키면(뭐 나중에 수정할 수 있다고들 하지만 그게 되나?) 그 안에 비추어볼 때 녹색당은 얻는 게 별로 없다. 오히려 더민과 자한이 남는 장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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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4 18:10 2019/04/04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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