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내맘대로'에 해당되는 글 22건

  1. 직접 건설해주세요, 그 "새 진보정당" (7) 2012/05/10
  2. 결선투표제도가 시급해 (1) 2012/03/08
  3. 기억을 위해서 (15) 2012/03/05
  4. 2012를 시작하며 (20) 2012/01/11
  5. 세 가지 질문 (8) 2011/10/07
  6. 읽고 쓰기의 어려움 (2) 2011/09/27
  7. 분열의 시간 2011/09/20
  8. 신드롬 (6) 2011/09/14
  9. 까리하지만 흥미로운... 2011/08/27
  10. 그 과녁이 그 과녁일까? (2) 2011/08/26

뭔가 욕을 잔뜩 썼다가, 이게 뭔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깡그리 지우긴 했는데, 다만 한 가지, 훈수들 두지 말고, 진짜 타이틀 계급장 떼고, 니들이 위치한 한 자리 그런 거 모두 다 버리고서도 지금 씨부리고 있는 말들을 할 수 있는지 그거 좀 보여달라고 이야기하고픈 사람들 여럿 있다.

 

예전에 어떤 변호사는, 노동자들이 무장을 해야 한다는 둥 혁명을 해야 한다는 둥 다 잡혀가야 한다는 둥 설레발 다 치면서 정작 지는 우아하게 변호사로서의 노릇을 한답시고 법정에서 변론을 하는 게 아니라 혁명질 하다가 당사자들 형량만 높이더니, 또 어떤 학잔지 교순지 하는 자는, 역시 마찬가지로 온갖 이론과 주장을 펼치면서 민주노동당때부터 입때껏 진보정당 참 X같은 것들이라고 침을 튀기면서 정작 지는 단 한 번도 정당활동에 발을 들인 적도 없고, 오히려 주변 (학자)동료가 정당활동을 하니까 변절이니 개량이니 주접을 싸기도 했더랬다.

 

당장 이들에게 변호자 자격을 반납하거나 또는 강단을 버릴 용기라도 있는지 묻고 싶은데, 뭐 그렇게 물어보면 또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둥 하는 아주 교과서적인 답변을 내세울 것이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주둥이 닥치고 있으라는 매우 저질스러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그들이 주둥이를 닥치고 있으나 없으나 추상의 세계가 아닌 실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은 다를 바 없고, 그나마도 가끔은 이런 사람들이 한 마디씩 해주는 게 없는 것 보다는 나으니까. 하지만, 싸가지 없는 것을 먹물의 특권으로 생각하는 건 좀 삼가해주기 바란다. 먹물은 그저 쪽쪽 빨리는 것을 숙명으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게 먹물의 의무이기도 하고, 먹물의 존재의의이기도 하다.

 

똥탕에 발 들이밀고 죽자고 버둥거리는 사람들의 저 멀리 떨어진 위치에서, 냄세 날까봐 콧구멍을 틀어쥐고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입으로는 진보니 변혁이니 혁명이니 운운하는 그것이 먹물의 현실이라는 걸 스스로 좀 자각하기 바란다. 앞에서는 누구보다 노동자의 고통을 이해하는 듯 혹은 더 나가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 하면서도, 결국은 지가 자리하고 있는 위치에 대한 대중의 인정을 갈구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어이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진심으로 저 뱃가죽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폭력의 욕구를 느끼니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3/04/27 15:45 2013/04/27 15:45
Tag //

============================

원문은 아래 참세상 기사

통합진보당을 대체할 새 진보정당 건설 시급하다

[기고] 노동정치와 진보정치,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김세균(서울대 정치학) 2012.05.10 11:06

 

 

=============================

 

김세균 교수께 부탁
- 직접 건설해주세요, 그 "새 진보정당"

 

논의의 활성화를 위해?
 

 

진보정치의 장자방이 되고자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되, '진보정치=노동정치'라는 방향의 제시는 물론, 새로운 진보정당의 구조와 구성,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 일정 및 대선대응 지침까지 포괄적으로 일사천리 풀어내는 김세균 교수의 글을 보며, 한편으로는 그 노익장에 감탄하는 한편, 한편으로는 정당정치에 대한 그의 단순한 사고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진보정치의 복원에 대한 그의 지치지 않는 열망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내 마땅하나, 그 복원을 위해 제시하고 있는 세부적 전술에 대해서는 한 마디로 말해 '하나마나한 소리'라고 할만하다.
 

문제는 이처럼 하나마나한 소리가 시정의 장삼이사들이 소주 한 잔 걸치면서 안주감으로 정치에 대해 논평하는 과정에서가 아니라 김세균 교수라는 권위있는 이름을 통해 등장한다는 것. 그의 이름이 가지는 값어치는 독자로 하여금 그가 풀어놓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신중하게 음미해야 한다는 어떤 의무감을 주게 된다. 특히 '진보' 혹은 '좌파'로 분류되는 진영에 속하거나 그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러하다. 그러나 권위에 의존하는 오류를 극복하게 되면, 김세균 교수의 이름이 가지는 무게와는 별도로 그의 글이 하나마나한 소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하나마나하지만 그래도 봐줄만한 총론
 

2008년 초 민주노동당 분당사태에 즈음하여 김세균 교수는 당내 좌파들을 향해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하여 탈당을 감행하라고 격문을 내걸었다. 자주파의 패권이 관철됨으로써 민족주의 노선이 장악하게 된 민주노동당은 '무늬만 노동자 계급정당'일 뿐이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고, 사회주의적 노동자계급정당을 건설하기 위해서 민주노동당 내외의 좌파들이 결속해야 한다고 부르짖었다.


그러던 김세균 교수는 지난 2011년, 진보신당에 대하여 안팎으로 통합을 강압하는 분위기 속에서 민주노동당과 다시 합칠 것을 종용했었다. 그런데 이 때 김세균 교수는 2008년 자신이 제기했던 문제점, 즉 민족주의세력과 계급적 진보세력의 동거는 불가하다고 했던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이, 민주노동당의 패권세력들이 패권주의 극복을 위한 제도적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약속했으니 다시 합칠만 하다는 주장을 거듭했다. 그러다가 이제 민노당과 참여당, 그리고 진보신당 탈당파가 합쳐 만든 통진당이 4.11 총선거를 경유하면서 벌어진 작태를 보며 통진당에 대한 미련을 접고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다.


총론, 즉 '진보정치'의 복원 또는 김세균 교수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한다면 '노동정치 중심의 진보정치'에 대한 그의 주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다시 말해 총론의 차원에서 김세균 교수는 자신의 일관성을 굳건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 총론을 지금 누구에게 주장하는 것일까? 누구를 향해 자신의 총론을 설득하려고 하는 것일까? 통진당을 향해?


적어도 유시민을 비롯한 '자유주의 세력'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아님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2011년 당시 통합론으로 몸살을 앓고 있던 와중에도 김세균 교수는 친노 중심의 자유주의 세력들과의 연합에 대해 극히 회의적인 자세를 취한 바 있고, 이번 글에서 역시 유시민 중심의 국참계 발언권이 높아져 통진당이 노선 상으로 우경화될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통진당 자체에 대한 판단에서 역시 김세균 교수는 "어떤 경우든 통진당을 노동자 정당 성격을 기본적으로 지닌 진보정당으로 개조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고 전망한다. 그렇다면 김세균 교수의 총론에 합의할 수 있는 진영이라는 것은 결국 진보신당과 재야의 좌파들로 국한된다. 그런데 진보신당, 거기에 좀 더 범위를 넓혀 재야 좌파들이 그동안 김세균 교수가 주장하고 있는 총론에 대해 부정한 적이 있었던가? 혹은 그 총론에 동의하지 않고 있었던 다른 세력들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는 포석인가?

 

 

진짜 하나마나한 이야기 1


케케묵은 총론을 또다시 꺼내는 것은 켜켜이 껴있는 곰팡이를 말릴려고 하는 것도 아니요, 누군가를 가르치려고 하는 것도 아니라 우리의 의지를 다시 음미해보자는 의미라도 있겠거니 하고 넘어갈 수 있다. 최소한 총론을 재확인 하는 것이 하나마나한 짓은 아니라고 십분 양보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각론이다. 1.13% 득표로 인하여 정당해산이라는 치욕까지 겪은 진보신당에게 "심각한 자기평가"를 요구하는 김세균 교수는, 자신의 각론을 펼치기 전에 최소한 자신의 전술적 오류에 대해서 심각한 자기반성부터 했어야 한다.


2008년 분당을 독촉했던 자신의 자세, 그와는 정반대로 진보신당으로 하여금 '진보의 재구성'을 보다 효과적으로 추구할 수 있도록 채찍질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을 종용했던 자신의 자세는, 그것이 일관된 총론에 의하여 제기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각론 상 완전한 오류였다는 것을 이 원로께서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묵히고 묵혀서 이제 삭기 직전의 총론을 꺼내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결국 하나마나한 각론을 제시하게 되는 거다.


먼저, 작금의 사태에 대한 원인분석과 전망에 대해서 그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고 있다. 노동자 정당의 성격을 탈각한 통진당으로 인해 노동정치가 실종했고, 여기에 더해 민주노총이 총선기간 중 투쟁을 방기한 채 통진당 노선을 따르는 것으로 인해 노동정치의 실종에 기여했다는 그의 평가는 마치 예전에 미처 몰랐다는 듯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진짜 예전에 미처 몰랐을까? 2008년에 민주노동당으로부터 좌파의 엑소더스를 요청했던 그의 글에서 이미 민노당 당권파가 노동정치를 할 준비도 자세도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그는 갈파했다. 그런데 2012 총선에서 구 민노당 계열의 당원, 즉 패권에 직접 개입했거나 이를 묵인하고 동조했던 당원이 7/8에 달하는 통진당이 노동정치를 하리라고 기대라도 했었던가? 그래서 통합하라고 그토록 닥달을 했었나? 민주노총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2000년대 들어와 노동운동단체가 아니라 통일운동단체로 성격전환을 한 민주노총에게 뭘 바라는 것인가? 2012 총선 과정에서 노동의제를 중심으로 현장투쟁을 강도높게 벌여나가면서 노동정치의 강화를 통진당에게 관철시킬 것이라고 생각이라도 했다는 건가?


더 어이가 없는 것은, 통진당에게 더 이상 기대를 할 것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 전개한 논리는 이미 자신이 4.11총선에서 노동자 정치가 사라진 이유를 설파하면서 분석한 내용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4.11 총선에서 노동정치의 실종이라는 현상이 벌어진 이유를 통진당의 우경화와 민주노총의 전략부재에서 찾고 있으면서도, 김세균 교수는 향후 통진당의 변화방향에 대한 3가지 시나리오까지 제시를 하면서 어떻게 될지를 예상해보고 있다. 당연히 그 시나리오 어디에도 실종된 노동정치를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중복된 과정을 거치고 나서 그의 결론은 "통진당 개조 불가능"이다. 하나마나한 과정을 거친 내나마나한 결론이다.

 

 

진짜 하나마나한 이야기 2
 

 

그러다보니 그의 다음 논의 역시 하나마나한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이 부분은 김세균 교수의 글을 좀 더 길게 인용하면서 검토해보자. 김세균 교수는 새로운 진보정당의 성격을 "노동자 대중을 주축으로 삼는 대중적 진보정당"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면서 설명을 더하길, "대중적 진보정당이어야 한다는 것은 그 정당을 더 이상 전위정당의 형태로 조직할 수 없음을, 그리고 제도정치에의 참여와 집권을 통한 사회변혁을 부정적으로 파악하고 진보정치운동을 사회운동적 정치운동으로만 한정시켜서는 안 됨을 가르킨다"고 한다.


그러더니 곧장 "새로운 진보정당은 사회운동적 정당, 비제도적 투쟁정당의 성격을 기본적으로 지니되, 대중정치와 지역정치 등에서 축적한 역량에 기반을 두고 제도정치, 의회정치로의 진출도 적극 추구하는 정당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하면서 "제도정치와 비제도적 정치 및 의회정치와 운동정치의 유기적 결합을 추구 해야 할 것"이라고 부연한다. 이 복잡다단하고 미묘한 정반합의 구조가 김세균 교수에게는 매우 명쾌한 논리일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제도권 정당의 정치활동에 한 발짝이라도 들여놨던 사람은 그 구분선이 보통 복잡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미 2000년에 민노당이 창당할 때 이런 정치를 하려고 했던 것이었고, 2008년 진보신당이 창당할 때도 이런 정치를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그러한 정당정치를 하려고 노력해왔으나, 그러면 그럴 수록 좌우 양쪽으로부터 십자포화를 맞은 적이 수두룩하다. 그 포격의 왼측면에서 김세균 교수 역시 한 몫 했었던 바가 적지 않다. 소위 좌파진영으로부터 공격받지 않으면서 "제도정치와 비제도적 정치 및 의회정치와 운동정치의 유기적 결합을 추구"할 수 있는 정당의 표본을 김세균 교수가 직접 보여주기를 바라지만 아무래도 난망한 일일 것이다.

 

 

진짜 하나마나한 소리 3


하나마나한 소리의 백미는 그 다음이다. 김세균 교수는 새로운 진보신당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진보신당에게 우려의 신호를 보낸다. "나는 진보신당에게 자신이 현재 내세우고 있는 '새로운 진보좌파정당'을 그런 정당 건설에 찬성하거나 찬성할 수 있는 세력들과 더불어 자신들도 그 건설의 한 부분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신당의 확대-강화'를 통해 건설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행여라도 갖지 말기를 당부하고 싶다"는 것이 그것이다.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데, 첫째는 진보신당의 주체적 역량의 문제이며, 두 번째는 진보신당 외의 세력들의 문제이다. 첫 번째 문제를 보면, 김세균 교수의 우려는 과도하다는 것이다. 정당해산을 당한 후 창준위 신세로 전락한 진보신당이 '새로운 진보정치의 복원'을 고민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상황에서 제 좌파세력에게 '진보신당의 확대-강화'를 통해 진보정치의 복원이 가능하다고 설을 풀 정도로 능력이 있는 상황은 아니다. 아직 구체적인 진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긴 하나, 향후 진보정치의 복원을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의 과정에서 진보신당이 일정한 정치력을 가지게 된다면 굳이 '진보신당의 확대-강화'를 호소할 이유도 없다. 2011년 통합을 종용하면서 민노당의 패권주의에 대해 개전의 정이 있음을 믿으라고 했던 분이 진보신당에 대해서는 왜 그런 신뢰를 보여주지 못하는 것인가?


다음으로, 사실은 이게 더 중요한 문제인데, 진보신당이 '진보신당의 확대-강화'를 통해 진보정치의 복원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고 할 때 그렇다면 새로운 진보정당의 건설을 직접적으로 추진할 세력은 누가 되는가이다. 김세균 교수는 "제 진보세력들의 원탁회의 내지 연석회의" 등을 소집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하는 듯한데, 솔직히 한 번 말해보자. 거기서 "제 진보세력들"이라고 할만한 존재가 누구인가? "투쟁에 적극 연대하는 노동자들" 및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청년층의 획득을 통한 노동자계급과 청년층의 연대"까지 언급하는 김세균 교수의 글에 비추어보면, 바로 노동자 내지 청년일텐데, 이들이 개인적 자격으로 "원탁회의 내지 연석회의"에 참여해야 한다는 이야긴가?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 어떤 일련의 조직단위가 결합해야 할텐데 어떤 조직이 있을까? 재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좌파조직? 도대체 어떤 좌파조직들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그 조직들 이름이라도 한 번 나열해주기 바란다. 지난 5년, 10년, 15년, 길게는 20년 동안 '사회주의 노동자당'을 건설하겠다고 주요 시기마다 말을 꺼냈지만, 단 한 번도 유의미한 정치세력으로서 자주적 활동력을 보여준 적 없는 무수한 단체들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최소한 누군가가 원탁회의가 되었든 연석회의가 되었든, 그러한 회의테이블을 만들 수 있는 의제를 제기하고 구성할 수 있는 조직적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김세균 교수는 누가 그것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가? 진보교연이? 바로 앞서 제기한 문제, 즉 진보신당의 역량 자체가 부족해서 '진보신당 확대-강화'를 제 스스로 들고 나올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는 것은 김세균 교수의 우려를 불식시켜줄 수 있는 상황일 수는 있지만, 그로 인하여 오히려 이 두 번째 문제, 다시 말해 누가 주축이 되어 새로운 진보정치를 구성할 것인가의 문제는 더 혼미한 상태에 빠져버리게 된다.


이 대목에서, 김세균 교수가 원탁회의 내지 연석회의의 좌장이 되고 진보교연이 그 무수한 제 좌파세력과 '진보신당'을 한 자리에 모은 후, 김세균 교수가 설정한 그 모든 시나리오에 근거하여 새로운 진보정치를 추구하게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으나, 거듭 솔직히 말해보자. 김세균 교수는 그것을 할 자신이나 더 나가 능력이 있는가? 김세균 교수는 "작금의 통진당 사태를 보고 외부인사들 중 통진당 혁신을 위해 통진당에 대거 가입하자고 제안하는 사람들"을 "자유주의적으로 정향된 사람들"로 단정하면서 비판하고 있지만, 그에 대비하여 김세균 교수가 "진보신당의 확대-강화를 통해 진보정치의 새로운 장을 만들어보자"라고 주장하는 것이 더 실속있고 현실적이지 않을까? 물론 김세균 교수가 이러한 실속있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진 않을 것이다.

 

 

진짜 하나마나한 소리 4
 

 

2011년 연말, 김세균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민주노총이 통합진보당에 대해 배타적 지지를 결정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와 노동정치 중심성의 구현 등 민주노총이 지금까지 견지해온 노선으로부터 최종 이탈한 것으로 비판받지 않을 수 없다"고 선언한 바 있다. 묘한 것은 바로 이 주장에서 보이는 관점이 바로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과정에서 보였던 관점과 똑같다는 것인데, 왜 그 당시에는 민주노총에 대해 이러한 판단을 하지 못했을까 하는 점이다.

 

민주노동당을 탈당한 좌파들이 탈당의 이유로 내세웠던 것 중 하나가 바로 "노동자 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와 노동정치 중심성의 구현 등 민주노총이 지금까지 견지해온 노선으로부터 최종 이탈"했다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결국 김세균 교수의 정치적 센스는 다른 이들이 진작에 알고 있었던 것들을 새로운 전망이라고 꺼내거나, 다른 이들이 이미 예전부터 해왔던 일들을 새로운 각론이라고 내놓은 것에 불과하다.


진보진영의, 특히 좌파진영의 몇 안 되는 원로 중 한 분인 김세균 교수께서 노심초사하여 제시한 주장에 대해 하나마나한 소리라고 하는 것이 외람되긴 하나, 이건 진짜 하나마나한 소리기에 하는 거다. 그것도 한 두 번도 아니고, 진보정당의 활동가들이 피를 말리고 있을 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나 하나마나한 소리로 염장을 긁어놓으신다는 건 심히 불쾌한 일일 뿐더러, 그게 진보정치를 염원하는 원로의 역할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부탁의 말씀
 

나는 이 글에서 줄곧 "김세균 교수가 할까? 아마 안 할 거야"라는 가정과 결론을 거듭했다. 뭘? 하나마나한 소리가 아니라 현실 정치에 본인이 직접 뛰어드는 것. 아마도 김세균 교수께서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쭉 이런 훈수성 정치발언을 하면서 때마다 전술적 오류를 거듭할 것이고, 그에 대한 자기반성은 없이 일이 생길 때마다 똑같은 총론을 꺼내 하나마나한 각론을 제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간단하다. 나의 이러한 가정이 불식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모습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직접 정당을 만드시던지, 아니면 다 망한 진보신당에라도 입당하셔서 대표출마라도 하시던지, 그러면서 제 좌파를 원탁회의든 연석회의든 테이블에 앉혀 놓아 주시라는 거다. 녹색당과 진보신당의 수평적 조직통합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동시에, 마찬가지로 김세균 교수가 추구하는 진보정당과 진보신당의 수평적 조직통합 역시 추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때가 되면 같이 갈 수 있고, 그것을 위해 연석회의든 원탁회의든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능력 부족하여 진보신당을 "1.13%라는 저조한 지지를 얻어 법적으로 해체 당하"도록 만든 주제이지만, 만일 김세균 교수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직접 진보정치의 새 장을 여는 길을 걸으시겠다면 분골과 쇄신을 마다않고 도와드릴 용의도 있다. 물론 김세균 교수께서 제안하신 바, 지금까지 민노당과 진보신당이 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던 '대중적 진보정당', 즉 '제도정치에의 참여'와 '집권을 통한 사회변혁'을 도모하는 동시에 "제도정치와 비제도적 정치 및 의회정치와 운동정치의 유기적 결합"이 담보되는 그런 정당을 추진하실 때 도움을 드릴 터이다. 그렇다면 "1.13%의 저조한 지지를 얻어" 진보신당을 "법적으로 해체 당하"도록 만든 것에 대한 반성과 비판만으로도 벅찬 형편이지만 성심을 다해 한 몫 해드리겠다고 재삼 다짐한다. 다만, 진보교연 대표나 뭐 이런 직함을 걸고 진보정당 만들자는 제안을 하신다면 사양하겠다. 그건 지금도 수많은 이름 있는 사람들이 한 소리씩 하고 있는 것이고, 여전히 하나마나한 일이기 때문이다.


시급한 것은 "새 진보정당 건설"이 아니라 그토록 새 진보정당의 건설을 염원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 발을 시궁창에 담글 용기를 내는 거다. 그렇지 않고서는 여지껏 그래왔듯이 '자유주의'자들로부터 '등대정당' 소리나 듣는 정당 만들고, 야권연대 운운하다가 통진당 꼴 나기 십상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2/05/10 18:41 2012/05/10 18:41
Tag //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해 결선투표제도를 반드시 도입해야 하는 이유는 이 기사를 통해 확인된다.

 

 

야권연대 협상 오늘 타결될듯…심상정·노회찬·천호선 양보, 이정희 경선키로

 

 

 

일단 후보가 등록도 하기 전에 이런 식으로 자리 나누기를 하는 건 아무리 이것을 "연대"니 뭐니 포장하더라도 결국 자리 나눠먹기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다음으로, 이 과정에서 밀려난 후보들을 선택하고자 했던 유권자들의 선거권은 투표함 앞에 서보기도 전에 박탈된다. 니들에게 누가 국민의 참정권까지 사전 박탈할 권리를 줬던가?

 

 

셋째, '사표방지심리'라는 건 여전히 작동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될 놈 밀어주자 논리가 발생한다. 이 짓거리를 지난 4반세기 동안 해오면서 "비판적 지지"니 "통 큰 단결"이니 하는 말로 포장해왔다. 그러나 그동안 결선투표도입은 변죽만 울릴 뿐이었지 본격적인 논의가 되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넷째, 결국 이따위 자리 나눠먹기가 발생시키는 결과는 군소정당은 언제나 망할 뿐이며, 개인적으로 살아남고 싶은 자들은 거대정당으로 알아서 기어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는 것. 

 

 

재밌는 것은 이런 '연대'니 '통 큰 단결'이니 하는 이야기는 항상 현 새누리당 이외의 정당들에서나 나왔다는 것. 왜? 물론 새누리당이 가지는 어떤 기반, 즉 영패주의라고까지 칭해질 정도로 강력한 영남의 지원과 어쨌든 수도권 유권자 중 30% 이상의 충성층을 가지고 있다는 것 때문인데, 이건 반대로 지금 '연대'니 '단결'이니 하며 난리 부르스를 추고 있는 쪽은 그게 없다는 거.

 

 

독일식 정당명부제보다도 절실한 건 결선투표제다. 아, 뭐 그거보다 더 확실한 건 저 기사의 사진 속에 나란히 앉아 미소짓고 있는 두 분의 정당이 오늘 합당발표 하는 것. 깔끔하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2/03/08 09:53 2012/03/08 09:53
Tag //

기억을 위해서

from 新 내맘대로 2012/03/05 16:43

1.

본색이 '서생'인 분이 자임하여 당대표를 맡게 된 것이 당의 위기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임은 부언의 여지가 없을 것이고.

 

2. 

위기가 엄중한 만큼 말을 아끼지 않을 수 없지만 향후의 평가를 위해서라도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 정리는 해 두어야 겠다는 생각.

 

3. 

언제나 같은 생각이지만, '통합'이니 '연대'니 하는 언술에 흔들리는 것은 우리의 뿌리가 그만큼 얕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 뿐

 

4.

'좌파'의 정체성이라는 것이 단지 사회 제 세력 중 '좌파'로 분류될 수 있는 조직들의 통합을 통해서 유지될 수 있다면 본말이 전도된 것.

 

5. 

그런 의미에서 사회당과의 통합은 한편으로는 좌파의 연합이라는 의미가 있겠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각개 약진하면서 발전해야 할 또 다른 좌파의 축이 소멸했다는 문제도 존재.

 

6.

이 통합이 장래 남한 좌파세력의 발전을 위한 시너지를 낳을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 예를 들어 사회당이 간직해왔던 어떤 원칙적 태도라는 것을 합당 후 진보신당에서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7.

민주노총과의 관계를 재정립하지 못한 채 계속 그 입김에 휘둘린다는 것은 좌파정치의 미래를 위해서 매우 좋지 않은 현상.

 

8. 

노동의 정치가 좌파정치의 한 축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강조되기 위해선 오히려 지금의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할 때.

 

9. 

'기본소득'이 되었든 '사회급여'가 되었든 솔직히 그 명칭에 대해선 별로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음. 다만, 현재 주장되는 '기본소득' 논의를 마치 좌파의 기본이라거나 사회주의의 본질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부정적.

 

10.

따라서 '기본소득'을 주장하면 좌파고 그렇지 않으면 우파 내지 개량이라고 몰아부치는 것은 솔까 웃김. 누구 엉덩이가 더 빨간가를 두고 싸우는 건 원숭이 코스프레에 지나지 않음.

 

11. 

진보신당이 좌파정치의 본류로 자임하고자 한다면 당 내의 깍두기 내지 양아치 세력들부터 숙청해야 할 것임.

 

12. 

진보신당은 대중의 언어를 습득할 필요가 있음. 여전히 번역이 필요한 용어가 난무하는 과정에서 대중정당임을 강변해봐야 소용 없음

 

13.

대중에게 상상력을 요구하면서 정작 대중의 상상력을 소거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문. 그들에게 무엇을 제시하면서 우리는 관습적으로 각주를 달고 해설을 하려하지 않는지 반성.

 

14.

우리의 전망이 백년을 앞에 두고 있다면, 오늘의 발자욱은 1년 앞을 어림해서 내디뎌야 함. 1~2년 앞을 내다보면 '잡스'가 되지만 10년 넘어 앞을 내다보면 '잡놈'취급 받음

 

15.

그럼으로써, 내가 진짜 빨갱이 운운하기 전에 개량이라는 욕을 먹는 것을 두려워 해서는 안 됨. 전망을 이야기하는 것과 현실을 개선하는 것을 혼돈해서 백년 후의 전망을 내일 아침의 현실로 호도해봐야 비웃음밖에 살 일 없음.

 

16.

정당정치를 하고자 하면 어쩔 수 없음. 그게 싫으면 혁명전위를 하던가 한국은행을 털던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2/03/05 16:43 2012/03/05 16:43
Tag //

2012를 시작하며

from 新 내맘대로 2012/01/11 14:05

 

0. 근황

 

뭔가가 하나 끝나긴 했는데, 그닥 깔끔하게 끝낸 것이 아니라서 영 찝찝하다. 다만 오랜 시간을 질질 끌어오던 것이 마무리 되었다는 것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쉴 수밖에. 그리하여 인생 2막 시작. ㅋ

 

지난해 9월 말 경의 어느날, 진보신당에 탈당계를 냈더랬다. 독자파니 통합파니 하면서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로 갑론을박한 것이 무려 1년이 훨씬 지났던 당시, 그 어느쪽의 파도 아니었던 입장에서 그저 당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만 가득했었는데, 대의원대횐지 뭔지를 칼라티비로 보다가 홧김에 탈당계를 냈었다. 무엇보다도 사람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컸더랬다. 또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핑계삼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스스로에 대한 노여움도 있었더랬다.

 

그런데 그 직후, 비대위원장으로 김혜경 고문이 왔고, 그걸 보면서 한편에서는 안타까움이, 다른 한편으로는 미안함이 솟구쳤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홍세화 선생이 대표가 되었다. 뭔가를 지키려고 저리들 몸부림을 치는데, 나는 뭘 하고 있는지 자괴감에 한동안을 고민했다. 무려 4반세기만에 처음으로 정당에서 자유로운 선거를 치루리라, 어디 나도 관망의 자세로 정치판을 바라보는 향락을 누리리라 생각했던 것들이 죄다 거품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다시 당으로 돌아간다. 아니, 돌아갔다. 거기서, 그 바닥의 바닥에 깔린 먼지라도 움켜쥐고서 새롭게 시작을 해보려 한다. 누군가는 희망도 없는 당에 왜 돌아가려 하느냐고 묻는다. 나는 답할 수 있다. '희망버스'는 희망을 찾아갔기 때문이 아니라 희망을 만들었기 때문에 가치가 있었다고. 나도 마찬가지로 어딘가 있을 희망을 찾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만들겠노라고.

 

 

1. 2012의 정치판

나는 2012에 있을 총선과 대선의 구도를 "상조회정치 vs 산 자들의 정치"로 정리했다. 한마디로 지금 정치판은 "상조회 정치"판이다. 연전에 논란이 되었던 용어를 차용하자면, 소위 "관장사 정치"가 될 것이다. 분설하자면 이렇다.

 

1-1. 박통 상조회

박근혜는 그 자신이 어떠한 말을 하던 그 아버지인 박정희의 그림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니 박근혜는 결코 그 그림자를 벗어던지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가 못하다한 사업을 대를 이어 완수하겠다는 각오로 이번 총선과 대선에 임할 것이다. 비록 박근혜가 대권주자가 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이 전술은 유효하다. 누가 되었든 한나라당 + 자선당 + 친박그룹들에서 나오는 어떤 주자라도 박정희 관장사를 그만 두지 못할 것이다.

 

1-2. 노통 상조회

통진당의 국참그룹과 민통당은 서로 노무현의 적자 자리를 두고 다툴 것이다. 어차피 유시민 일파는 그 처지를 벗어날 수 없고, 민통당에서 유력한 인사들 역시 노무현의 그림자 안에 자신들을 가둘 것이다. 물론 노무현에 대한 향수는 어느정도 효과를 거둘 것이며, 따라서 효과가 나타나는 시점에서 그들 간의 다툼은 더욱 격해질 것이다.

 

1-3. 본사 상조회

수령님 + 장군님의 유지를 받들고자 하는 통진당 내 민노당 그룹의 움직임 역시 상조회 정치의 전형을 보여줄 것이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평화통일, 그리고 거기 덧대어 노동문제를 들고 나오겠지만, 애초부터 본사의 정치지형에 영향을 받아오던 그들의 위치에서 이 이상 선택할 여지는 거의 없다.

 

1-4. 상조회 곁꾼들

이 와중에 입장이 난처하게 되는 것은 통진당 내 일부 그룹, 즉 진보신당 탈당파를 주축으로 하는 통합연대의 사람들일 것이다. 이들의 입장에서 박통 상조회는 어차피 같이 할 수 없는 대상이지만, 노통 상조회나 본사 상조회는 손을 놓을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는 어정쩡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1-5. 상조회 정치의 귀결은 결국 유훈통치다. 이미 무덤에 들어간 자들의 이름을 후광처럼 덧씌우고 죽은 자들의 유지를 얼마나 더 잘 받드는가를 대중에게 보여주는 노력은, 결과적으로 하데스의 배를 타고 멀리 떠난 자들을 현실로 재림시킨다. 이것은 역사를 통해 배우겠다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과거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2. 전망

터무니 없는 낙관이라는 비판을 듣고는 있지만, 최소한 2012의 정치지형이 진보신당에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판단이 있다. 우선 진보신당은 적어도 이들 상조회 정치에서 가장 자유로운 정치세력이자 제도권 정당이다. 진보신당에겐 자당의 이익을 위해 덧씌워야 할 죽은 자의 아우라도 없고, 혹은 굳이 그럴 이유조차 없다. 따라서 살아 있는 자들의 살아 있는 현실에 대해 가장 정확한 입장과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다음으로 진보신당은 그동안 한국 정치를 왜곡시켜왔던 '앵벌이 정치'로부터 최초로 자유롭게 선거에 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위상은 물론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현실 정치에 어떠한 영향도 끼칠 수 없을 정도로 위축된 당의 처지를 웅변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반면에, 어느 정치세력으로부터의 견제도 없이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는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는 장점으로 볼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위 두 가지 이점으로 인하여, 위태한 현실에 대해 보다 근본적이고 직설적인 비판과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미 FTA를 비롯한 각종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비판, 고용과 관련된 현재의 모든 문제들에 대한 대안제시, 폭력적 자유경쟁시장에 대한 견제 등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모든 사안에 대해 저들 상조회 정치는 어떠한 대응도 할 수 없다. 그들의 등에 업힌 망령들의 원죄가 그것들이고, 바로 그 원죄로 인하여 오늘 대속의 제단 위에 올라야 할 자들이 바로 그들 자신들이므로.

 

의고적 혹은 복고적 정치활동이 대중의 감수성을 자극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이 정치의 전부가 아니라고 한다면 지금 상황은 결코 진보신당에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비록 진보신당에게 대중들로 하여금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할 과거가 없다고 할지라도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2012의 정치판에서는 큰 역할을 했다고 자임할 수 있을 것이다.

 

 

3. 숙제

문제는 이제부터. 뜻이 고귀하다 한들 현재 스코어는 갈 데 없는 바닥. 언제나 그렇듯이 진보정치의 위기는 그 자체가 통상의 상황으로 대두된다. 항상 계속되는 위기는 이미 위기가 아니다. 따라서 상황이 바닥이라고 한들 그것이 새삼스러운 위기는 아닐 것이다. 결정적인 것은 이러한 상황판단이 단순한 자위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객관적인 모든 조건은 정신승리조차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는 사실.

 

그러나 이 열악한 현실은 또다시 당연히도 극복해야 할 조건이다. 극복의 방법은 의제의 설정과 대안의 제시. 여기서 고민이 시작된다.

 

개인적으로 향후 설정해야 할 의제를 두 가지 정도로 꼽고 있다. 하나는 성장담론을 극복하는 것, 다른 하나는 학력차별을 없애는 것.

 

계속해서 나를 괴롭히던 문제가 바로 이것인데, 과연 성장담론에 휩쓸린 채 진보를 이야기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특히 자본주의체제의 모순을 극복하겠다는 좌파가 계속 성장담론을 끼고 가는 것이 적절한지가 문제였다. 물론 결과는 당연히 그러면 안 된다는 것. 그런데 현실정치에서 이러한 성장담론 극복의 주장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그러한 설득력을 가지도록 하려면 어떤 정책적 대안을 내보여야 할 것인가가 숙제로 남는다.

 

다음으로, 남한 사회에서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모순은 학력간 차별의 문제라는 생각 역시 오래도록 머리 속에 맴돌던 나름의 숙제였다. 민노당때나 진보신당의 지금이나 교육의 문제는 '학벌 철폐'라는 구호로 귀결되었고, 그 구체적 대안으로 제신된 것들은 '서울대 폐지, 국공립통합네트워크, 공교육 강화'였다. 통진당으로 당적을 옮겼지만, 진보신당 대표였던 심상정은 '핀란드식 교육'을 자신의 사업 테마로 들고 나오기도 했더랬다. 그러나 그 어느 정책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었고, 여전히 그렇다.

 

향후 그 내용을 마련해야 할 것들이기에 당장 어떤 구체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의제를 형성하고 장기적인 전망과 단기적 정책을 만들어내는 것이 오늘부터 해야 할 작업이 될 듯하다. 4월 총선에서 그 윤곽이라도 드러낼 수 있다면 원이 없겠고, 요행히 총선정국을 잘 견뎌내고 나면 연말 대선에서 더욱 촘촘한 그림을 그려낼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덧 : 그동안 못만나던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데, 정당정치가 현장의 의식과 많이 동떨어져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섣부른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진보신당의 오늘날의 위기가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닌가 하는 판단이 선다. 현장과의 네트워크가 건강하게 구축될 때 당의 미래 역시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더덧 : 사람 만나고 다니는 것은 좋은데, 차비가 장난이 아니구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2/01/11 14:05 2012/01/11 14:05

세 가지 질문

from 新 내맘대로 2011/10/07 20:58

요즘 관심을 끄는 건 "세 가지 질문"이다.

도대체 이 질문이 나오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 상당히 오랫동안 고민해봤지만, 질문같지 않은 질문을 그동안 질문다운 질문을 해온 축에 속하는 사람이 했다는 것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했는데, 그 꺼림칙함이 쉽게 풀리지는 않는다.

 

세 가지 질문은 이거다.

1. 과거 보수의 도덕적 스캔들 앞에서도 진보는 무죄추정하고 법원의 판결만 기다렸던가?

2. 앞으로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그때도 진보는 상대후보에게 2억의 '선의'를 베풀 것인가?

3. 만약 보수에서 후보를 매수하고는 공소시효가 지난 후에 돈을 주며 '선의였다'고 주장하면, 처벌하지 말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이 제기될 수 있었던 질문자 개인의 어떤 '정의감' 자체가 뜬금없다고 할 일은 아니겠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그 질문의 뜬금없음이 더욱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나름 생각한 답변은 이거다.

 

1. 과거 보수의 도덕적 스캔들 앞에서도 진보는 무죄추정하고 법원의 판결만 기다렸던가?

- 이건 케이스 바이 케이스의 문제이지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 더불어 사회의 여론이라는 것이 들썩거릴만한 사건에 이름 좀 있는 사람들이 그에 대해 한 마디씩 얹었던 것을 모두 '진보'와 '보수'의 입장이 대변된 것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 중요한 것은 도덕적 '스캔들'이 아니라 도덕 그 자체다. 도덕의 정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하더라도 스캔들이 될 수 있고, 도덕적으로 흉악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유야무야 넘어갈 수 있다. 문제는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없고, 법리적으로도 위법이라고 하기에는 심각한 흠결이 있는 것을 도덕적 '스캔들'로 비화시킨 행위이다.

- 이번 건에서 이렇게 '스캔들'을 만들고자 혈안이 된 주체는 바로 검찰이다.

- 반면 공정택 건에서 도덕적으로 흉악한 일을 무혐의처리 함으로써 '스캔들'을 비켜가게 하기 위해 노력했던 주체 역시 검찰이다.

- 항상 본질에 대해 비판을 하던 사람이라면 이번에도 본질을 건드렸어야 하는데, 왜 외피에 집착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2. 앞으로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그때도 진보는 상대후보에게 2억의 '선의를 베풀 것인가?

- 질문이 잘못되었다. 이번 건은 '진보'가 베푼 '선의'가 아니다. 이건 '곽노현'이 베푼 선의다.

- 이건 좀 설명이 필요할 듯. 내가 아는 바, 대한민국의 어느 '진보'도 그 상황에서 선거비용보전을 못해 당장 힘들게 된 사람에게 2억을 줄 '선의'를 가진 사람, 아마 없을 거다. 곽감사건에서 처음 놀랐던 것 역시 그거였는데, 행위의 섣부름은 조소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언정, 측은지심을 심적 차원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전시킨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 따라서 이 질문은 이렇게 되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그때도 곽노현은 상대 후보에게 2억의 '선의'를 베풀 것인가?" 

- 질문이 바뀌어야 하는 이유는 앞서 설명한 이유 때문이다. 어떤 '진보'도 그런일 쉽게 하지 못한다. 이건 '진보'냐 '보수'냐의 프레임의 문제가 아니다. 거듭 이런 '선의'는 곽노현만이 할 수 있는 '선의'다.

- 한편 '진보'라면,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 차원의 개선을 요구해야 할 일이다. 정당을 낀 후보들끼리는 서로 후보단일화를 하고 비용도 보전하는데, 정당을 끼지 않는 후보들에겐 순전히 결정의 결과를 자신들의 책임으로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 두는 이런 선거제도는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 그리고 이러한 식의 선거제도를 고치기 위해 그동안 진보들이 애 많이 썼다. 결과가 없어서 그렇지.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결선투표제 도입 아닌가?

 

(* 물론 곽노현이 '진보'를 등에 업은 것은 사실이다. 이 사건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면 '도의적'으로 '진보' 역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이 사건이 도덕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하려면 왜 그것이 도덕적 문제인지를 먼저 밝혀야 한다. 질문자에게 이것을 밝히라고 요구한 글이 있지만, 아직 질문자는 이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고 있다.)

 

3. 만약 보수에서 후보를 매수하고는 공소시효가 지난 후에 돈을 주며 '선의였다'고 주장하면, 처벌하지 말아야 하는가?

- 제도가 가지는 양날의 칼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면 이 질문이 무용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 예를 들어 주민투표나 주민소환을 진보진영이 주도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진보만이 휘두를 수 있는 관운장의 언월도가 아니다.

- 만일 선거법이 제대로 개정되지 않은 채,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공직선거법 제232조제1항제2호를 악용함으로써 '보수'가 공소시효 후 댓가지급을 약속하고 후보를 매수하기로 하고 이를 실행했다고 한다면 그건 처벌할 수 없다. 그게 법이다. 그리고 바로 이 구도가 질문자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간에 따르고 있는 법실증주의적 법이론의 한계이기도 하다.

- 반대로 이 질문이 '진보'에게 던져지려면 이렇게 바뀌었어야 할 것이다.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진보는 어떤 대안을 가지고 있는가?"

- 그렇다면 대답은 좀 더 간단해질 수 있다. 저 조항은 사후목적의 존재라는 모순어법을 사용하고 있음으로 해서 법률의 명확성을 위배하고 있다. 즉 행위 이전에 목적이 존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행위가 있은 후 비로소 목적이 생겨버리는 이상한 구조가 되는 것이다. 저런 조항은 없애고, 돈때문에 선거 못치루게 할 일 없도록 하고 쓸데없이 후보단일화로 세월 보내지 않도록 결선투표제 도입하는 등의 제도정비가 필요하다.

 

(그동안은 왜 이런 법개정 이야기 하지 않았냐고 질문자가 항의하던데, 그건 본인이 예전에 속해 있었던 정당들의 정책자료집만 한 번 훑어봐도 자신의 항의가 무의미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세 가지 질문에 더하여, 질문자의 '정의'라는 것이 단지 기계적 형식성의 일관된 적용이라는 틀에 머물러 있다면 과연 그것이 '진보'가 이야기하는 '정의'일 수 있는지 궁금하다. 물론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이런 틀은 당연한 것일 수 있겠지만, 내적 가치는 도외시한 채 형식논리가 강조되는 '정의'가 '진보'의 '정의'가 된다면 그것은 아마도 '보수'와 '진보'의 차이를 없애게 될 것이다. 

 

'형식'의 중요성을 간과하고자 함이 아니라는 것은 부연해 둔다. 하지만, '형식'에 매몰된다는 것은 위험하기 그지 없다는 것 역시 부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1/10/07 20:58 2011/10/07 20:58
Tag //

표현되는 말과 그 의미가 심각하게 괴리될 때, 요즘 흔한 말로 "~라 쓰고 ~라 읽는다"라고 하지, 아마.

 

사용례 ] 

"각하"라고 쓰고 "개객끼"라 읽는다.

 

뭐 이런 류...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것이 버릇이 되어서인지 모르겠는데,

측근비리의혹을 둘러싸고 항간의 여론이 경색되자 "각하"가 엄명을 내리셨단다.

 

"이대로는 못 갈 상황, 측근비리 수사하라"

 

향후 잔여임기 약 1년여.

'각하' 치세가 대단원을 고한 후 들어설 차기정권에서 이 문제들이 양파 껍질 벗겨지듯이 훌러덩 훌러덩 벗겨지면 그 땐 거의 종잡을 수 없을 듯.

 

하여 '각하'가 용단을 내리시어 '신속하고 완벽한 조사'를 법무부 장관에게 지시했다...는데

 

난 왜 아무리 봐도 저 '신속하고 완벽한 조사' '신속하고 완벽한 매장'으로 읽게 되는 걸까나.

'각하' '조사하라'라는 명령이 '덮으라'는 명령으로 읽히는 것은 시신경과 뇌신경의 잘못된 만남 때문인가.

 

읽고 쓰기가 참 어렵다.

 

 

 

덧> 본문의 '각하'를 위 용례에 맞춰 읽으면 곤란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1/09/27 14:27 2011/09/27 14:27

분열의 시간

from 新 내맘대로 2011/09/20 20:51

속칭 '좌파'가 지리멸렬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선 더 언급할 것도 없고...라고 하지만, 사실 언급할 것이 널리고 쌨으나 시간관계상 생략.

 

좀 더 흥미로운 부분은 우파 혹은 보수세력의 분화가 정녕 진행될 것인가다. 가스통과 엽총의 갈라치기라고나 할까, 아니면 속옷에 대한 애착으로 유행을 타고 있는 개신교 목사가 주도하는 기독당과 방씨일가 사람들이 주축이 된 가칭 '조선일보당'의 엇갈림이라고나 할까, 뭐 그런 움직임들이 보이고는 있는데.

 

예를 들어 한 쪽에서는 '범여권시민단체'를 표방하는 뉴라이트 분파가 이석연을 밀겠다고 나서고,

다른 한 쪽에서는 자칭 '자유진영 단체들'이 "보수의 아이콘" 전원책을 서울 시장으로 밀겠다고 나서는 한편,

 

'자녀 5명 미만 출산할 경우 감방'을 보내겠다는 기독당과

'한나라당의 인질'임을 거부하는 새로운 보수정당을 선언하자는 조선일보당이 떠오른다.

 

 

바야흐로 우파의 분열과 각개약진이 이루어질 것처럼 정국은 꿈틀대고 있으나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그냥 "꿈틀이꿈틀이꿈틀이~" 수준에서 머물듯.

 

사실 그동안 독고다이로 뜨는데 이골이 난 좌파 혹은 진보라고 통칭되는 진영조차도 합치니 마니 갑론을박이 여전하고 급기야 시궁창 아비규환 수준으로 판이 돌아가는데, 지난 세월을 가스통이 굴러가면 그리로 우르르, 선글라스 끼고 누가 나타나면 그리로 와르르 쏟아져갔던 사람들이 갑자기 자주의 깃발 높이 들고 주체의 진군을 거듭하여 제각각 강성정당을 건설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바,

 

작금 상황이 현저하게 지들 밥그릇에 위협이 도래하는 형세로 진행되다보니 한나라당 중심으로 대동단결을 위한 사전포석으로 이렇게 한나라당 겁주기 스탭을 밟는 수준에서 끝날 것이라고 예측은 되나...

 

봐하니 죄다 어르신들, 날도 쌀쌀해지는데 계란노른자 동동 띄운 쌍화차라도 한 잔씩 걸치고 진행하시길. 잘 드셔야 무거운 가스통도 거뜬히 들고 우파의 단결... 아니고 각자도생을 도모하시지 않겠는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1/09/20 20:51 2011/09/20 20:51

신드롬

from 新 내맘대로 2011/09/14 20:32

그게... 온라인이 들썩거려도 그냥 그런갑다 싶었는데, 추석 민심 동향파악... 은 무슨 얼어죽을, 연휴기간에 걍 여기저기서 들리는 이야기를 대충 스캔해보니 그 이름이 꽤나 퍼지긴 퍼졌던가 보다. 

 

모종의 기대와 함께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 거리는 '안철수'라는 이름은, 그가 20대의 멘토로 등극한지 오래되었다는 정황설명을 거치더라도 여전히 껄끄럽다. 아, 물론 이미 행인이 20대의 감수성을 은하계 저편으로 날려보낸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행여 행인이 회춘하여 신체연령은 물론이려니와 감수성 지수까지 20대와 마찬가지로 젊어진다고 한들, 갑작스레 정가의 돌풍으로 등장했다가 화려하고 아름다운 퇴장(!)으로 주가를 올린 안철수를 새로운 정치적 인물이라고 판단할 여지는 거의 없을 듯 하다.

 

그가 정당활동을 했느냐, 정치적 발언을 많이 했느냐, 혹은 그의 정치적 능력이 비록 검증과정을 거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세간의 높은 평가를 받을 정도로 탁월한가의 문제는 세세히 거론할만큼 밑천을 가지지 못했으므로 패스.

 

그러나 이 지점에서 느끼는 이 거북스러운 기시감은 안철수의 이름을 연호하며 갈채하고 그 이름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의 이야기 전개과정이 마치 그 언젠가 현직 대통령이 주가를 한참 드높일 때 그를 칭송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전개방식과 똑같다는 데에서 연유한다.

 

실제로 그가 어떤 사회활동(예를 들어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콘서트' 형식의 강연회)을 통해 현직 대통령이 과거에 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인식수준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지라도 예의 열광과 환호는 그 성격을 달리하지 않는다. 물론 비밀번호를 넣는 방법을 알지 못하여 상당기간 컴퓨터에 로그인을 하지 못했다는 전형적 육체파 성공기의 신화와, 인체는 물론 메트릭스 세계의 질병까지도 치유하는 신기를 보여준 첨단문명의 선구자는 그 개인적 자질을 1대1로 비교하긴 어렵다.

 

그러나 성공신화에 목마른 사회의 갈증을 대리만족하는 이 두 인물의 겹쳐짐은 어찌 되었든 내겐 전혀 싱그러운 무엇이 아니다. 샐러리맨의 성공신화가 되었든 첨단 개발자의 신화가 되었든 결국 열광의 대상은 성공 그 자체이며,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열광의 손짓과 환호를 보내는 청중들은 여전히 유권자일뿐 그 성공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고로 근저에 깔린 어떤 열기는 어쩌면 위험한 것일 수 있다. 사람이 달라질 때 그 컨텐츠가 어떻게 달라질지는 겪어봐야 아는 것이지만, 열광의 대상이 되는 매혹의 저변이 사실은 삽질과 V3의 차이 이상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유형을 달리한 갈증이 한 번 더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마저 들게 하는 것이다.

 

안철수라는 개인에 대해 비토를 놓고자 하는 것이 아님을 부연할 필요는 없겠으나, 기실 두려운 것은 대상에 대한 선망을 정치적 열망과 등치하는 이 기현상임을 강조할 필요는 있겠다. 하긴 곽노현 교육감이 구속까지 되는 마당에도 정작 공직선거법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공론화하지도 못하는 기성 정치인들의 한계가 이러한 기현상을 가능하게 한 원천임에, 앞의 강조는 하등 쓸 데 없는 강조가 될 것이겠으나...

 

[추가 : 2011.09.15. 20시] 

본문과 관련하여 상당히 의미 있는 해석이 있어 링크 : 

과연 안철수는 새로운 정치적 대안에 대한 대중의 갈망을 표현하는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1/09/14 20:32 2011/09/14 20:32

동아일보가 흥미로운 기사를 냈다.

 

각 동별로 투표율이 얼마나 차이가 났는지를 가지고 기사를 올렸는데, 뭐 엄청난 분석이 있는 글은 아니지만 투표율과 지역구 의원, 그리고 아파트 가격을 비교한 결과가 나왔다. 원 데이터를 찾았으면 좋겠는데, 이상하게 찾질 못하겄네... 쩝...

 

암튼, 그 내용을 조금만 들여다보자면,

 

일단 하나의 기사는 서울을 연고로 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각 지역구에서 이번 주민투표 투표율이 어느 정도나 나왔는가에 대한 것.

 

서울연고의 한나라당 의원들이 자기 지역구에서 지난 총선의 득표율과 이번 주민투표의 투표율을 비교하여 그 등락을 비교했는데, 자세한 내용은 링크 타시면 알 수 있을 것이고, 다만 이런 분류를 통해 한나라당 의원들을 자극하는 기자의 센스에 감탄.

 

그런데 이 기사의 말미에 붙어 있는 표와 더불어 두 번째 기사는 각 동의 아파트 매매가를 투표율과 비교하고 있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서 올리면 이렇다.(표는 첫 번째 기사 하단)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송파구

잠실7동 51.9%

창신2동 13.4% 독거노인들이 다수 거주

 

강남구

대치1동 49.5% 강남구 대표 부자동네, 도곡2동 48.3% 타워팰리스 위치

역삼1동 19.6%, 논현1동 20.2% 직장인 위주 원룸밀집지역

 

서초구

반포본동 46.8% 고급 재건축아파트

양재2동 22.7% 물난리, 산사태

 

금천구

시흥2동 26.4% 금천구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단지

 

양천구

목동 중심 양천 갑 30.4%

신월동 중심 양천 을 20.1%

 

 

이 기사가 뭘 분석하고자 하는 건지는 대충 감이 잡히긴 한다. '무상급식'이라는 주제 혹은 복지담론에 대한 계층별 지지성향 정도로 그 주제가 잡힐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기사들만 가지고 딱히 그렇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어느 정도 그런 개연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도 뭔가 까리 한 것이 여전히 남는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더 아리까리 하다.

뭔지는 모르겠다만은 그래도 일단 기록하는 의미에서 기사 걸어놓는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1/08/27 21:45 2011/08/27 2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