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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한예종 총장직 사태에 대한 단상

  • 등록일
    2009/06/01 02:33
  • 수정일
    2009/06/01 02:33

1.

진중권이 드디이 칼을 빼들어야 할때가 왔다고 선전포고 했단다.

짐작컨데, 문화미래포럼 이라고 불리는 한 단체와 문광부를 타겟으로 삼은 발언이 아닐까 하는데.

 

처음. 문화미래포럼이라는 단어를 들었을때는 뭐 변듣보가 중심이 되 만든 듣보잡단체 인줄 알았는데.

거기 참여 예술인들의 면면과 활동 내용을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즉 히스토리가 꽤 긴 이야기가 있어 보인다는 뜻이다.

 

솔직히 다른 장르의 예술인들은 솔직히 거의 모른다고 해야 양심적일 것이다.

변듣보야 뜨고 싶고 한자리 하고 싶어 안달나, 때와장소 가리지 않고, 낯 두꺼운 얼굴로 정권의 홍위병 역할을 자처하고 있음을 아는 사람은 다 알터이니. 넘어간다 치자.

하지만 정과리 복거일 이런 양반들의 면면을 보아 하니, 그 단체가 집권을 염두해두고 급조된 단순한 관변단체만은 아닌 듯 보인다.

 

정과리는 80-90년대 한때 화사한 문체로 촉망받던 평론가였지만 동인문학상을 매개로 안티조선운동진영으로부터 90년대말부터 속된말로 심하게 데인 양반이다.

잘 기억은 안나지만, 당시 정과리는 동인문학상을 예로 들며 조선일보를 수구보수의 이데올로기 총 집합체로 매도해선 안된다는 취지의 기고문으로 인해 이문열,이인화와 함께 조선일보 홍위병 목록에 올랐다. 그리고 진중권 특유의 너저분한 빈정거림과 오마이뉴스등 안티조선운동진영의 융단폭격을 온몸으로 감당한 전력이 있다.

복거일은 사실 정과리와는 좀 다른 부류이다. 그는 한동안은 정치와 거리을 지킨 편이였지만, 얼마전 이 정체모를 문화미래포럼의 대표로 등장하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가 당시 했던 인터뷰를 보면, 그의 정치적 동력은 흔히 '민예총'으로 대변되는 민족주의 세력에 대한 반발인 것은 확실해보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과도하고 편파적인 문예진흥기금 남용이 예술이 정치에 예속되는 결과를 만들었다며 날을 세웠다.

 

이번에 예종대 총장에서 사퇴한 황지우는 80년대 대표적인 모더니스트 시인이다.

하지만 정과리와 황지우는 한국 근대 비평사의 우상으로 추앙받는 김현의 둘도 없는 자식들이다.

그리고 강준만이 그토록 비난했던 김현과 김윤식을 매개로한 서울대 출신 문인들의 자기 증식과정의 최대 수혜자이기도 하다. 

뭐 강준만의 공격이 딱히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문학의 명성을 자시들끼리 자가 증식했던 과정은 사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언론이 자신의 명성을 자가증식한 메커니즘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모든 담론이 자기증식하는 일반적인 메커니즘이기도 하다.

80-90년대 이들은 보수적인 순수예술과 한 발짝 떨어져 있었으나 또 딱히 적극적인 현실참여를 주창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이, 당시 시대의 치열한 이념논쟁과 정치전선 가운데서 고민했던 비평의 진정성은 살아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비에트가 무너지고 이념이 해체된 90년대 포스트시절, 그리고 김대중 정권교체기를 거쳐 사실 그들은 좀더 고급예술의 포지션에서 자기 권력을 증식하는 역할에 머물러왔다고 할 수 있다. 지금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그 시기를 거쳐 정과리와 황지우는 좀 다른 길을 걸은 것처럼 보인다. 그래봤자 여전히 서울대 인문대 그들만의 리그이긴 마찬가지라고 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러저러한 정황을 들쳐보면, 문화미래포럼 이라는 단체에 투영된 정치적 그리고 예술적 욕망은 크게 세가지 정도가 아닐까?

첫째.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권하에서 공적 지원을 받은 주요 단체들의 민족주의적인 색채에 대한 반감이다. 천박하게 말하면 이들을 여전히 좌익 빨갱이라 생각하는 부류도 있겠지만, 사실 필자가 일정정도 동의하는 바는 복거일이 이야기했던 폐쇄적 단일 민족주의의에 대한 맹목적 신념에 대한 반감.(이 어울릴것 같지 않은 담론의 결합이라니. 한국 사회란 참... )

둘째. 기존 순수예술로 포장하며 권력을 유지하던 기존의 보수적 예술계가 한예종으로 대변되는 아마추어적인 저급예술진영에 위협을 느끼는 것에 대한 반발이다. 그들은 여전히 고급/저급 예술이라는 전근대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사실 한예종은 90년대초 이런 이분법적 틀에서 만들어진 기능중심 학교이긴 하다. 그러나 황지우등이 참여한 한예종이 그런 이분법을 지우려 한다고 본 것이다. 그들의 반발은 당연하다.

셋째, 이 경계지우기 틈바구니에서 안티조선운동의 선봉장이며, 좌익의 주요 논객들이 자리잡기 시작한 것에 대한 정치적 반발이다. (사실 두 담론이 하나로 묶기는것도 지겹다. 지겨워)

 

이런 욕망이 이명박 정권이 탄생하면서 즉각 권력의 핵심에서 투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이 문화미래포럼 사무장 출신이 문광부에 진출하기도 했거니와, 유인촌으로 대변된 기존 문화예술계의 퇴행적 욕망은 너무 당연해 보인다.

 

2.

필자가 개인적으로 황지우의 사퇴를 안타가워한건.
사실 황지우라는 인문학적 그릇이 우리가 언론에서 익히 본 그런 찌질한 이유로 퇴행적인 문화권력들에 아무 방패막없이 공격당할 만큼 작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그렇게 치졸하게 쫒아낼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사실 그렇게 따지면, 정과리도 마찬가지이긴 했다. 그의 문학적 화사함이 단지 조선일보와 인간적 유대관계를 청산하지 못했다는 정치적 이유로 묵살될 만큼은 아니기도 했으니까.

뭐, 예술가나 시인들이 당대 지성인인 것은 맞다. 황지우 말마따나 시는 "탄광의 카나리아"이자, "당시 시대의 무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의 문제 그리고 정치권력의 문제에 자신의 발언권을 행사하는 것을 막는 것도 사실 말이 안된다. 그들에겐 그런 자격과 권리가 있으니까.

그러나 나를 안타갑게 하는것은 결국 이것이 활자화된 담론을 벗어나 돈과 권력의 문제와 엮이는 순간 엄청 찌질해진다는 점이다.

솔직히 한예종이 국고지원으로 유지되는 기관인것도 맞기 때문에.

저들의 찌질하지만 합법적인 공격을 막아내기 쉽지 않다.

 

복거일 같은 부류는 예술가의 먹고사는 문제는 자신의 작품을 대중이 평가하는 만큼에 달려있다라고 주장하는 편이고, 때문에 가난을 감수해야 예술가라고 주장하는 부류이다.

사실 말이 고상해서 그렇지, 이게 예술도 상품으로서 시장에 소비되는 것만 가치가 있다라는 신자유주의와 정말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 시장이라는게 최선을 선택하기 보다는 최악을 선택하는것을 너무 많이 경험한 나로서는 완전히 동의하기는 어렵다.

특히나 뭐 하나 할려고 해도 돈이 좀 드는 요즘같은 미디어융합시대에, 가난하게 살라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과 동의어이기 쉽다.

그렇다면 이렇게 시장에만 맡기지 말고, 국가의 공적기능을 작동시켜 방패막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100% 진리는 아니다.

이건 국가의 공적기능이 이데아적으로 공공적이고 합리적이다라는 칸트적 발상과 또 크게 다르지 않은데. 굳이 맑스를 들먹이지 않아도, 현실적으로 아니 역사적으로도 그런 꼴을 본적이 없다.

그러니 국가의 자원이 투여된 곳에는 권력의 냄새가 배어있기 마련이다. (단순히 권력에 추종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권력에 비판적인 것은 언제든지 배제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아무리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려 해도 답이 없는, 늘 경계에 있고 결국 알고보면 아슬아슬 권력과의 줄타기인, 그리서 다시 정치경제학으로 되돌아오는 그런 논쟁이다.

 

뭐 사실, 한예종의 감사와 황지우의 사퇴는 정치세력간 싸움의 성격도 있고, 단순히 예술문제만으로 논하기도 뭐한, 그래서 남의 일처럼 들릴수도 있겠지만. 사실 주변을 살펴보면 남의 일이 아니다.

RTV 한순간에 날아가고, 미디액트와 인디스페이스가 얼마전 특별감사를 당하고, 황지우 사태와 버금가는 찌질한 이유로 탄압당할 수도 있는 작금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예종 사태는 단순히 반이명박 테제만으로는 해소가 안되는 예술적 논쟁과 공공성에 대한 논쟁을 담고 있다.

그러나 반이명박 태제. 7년전에 끝났다고 생각했던 민주/반민주 태제로 회귀하는것 밖에는 또 딱히 탈출구가 없어보이는 무기력한 현실을 담고 있기도 하다.

 

3.

그런면에서 노무현의 죽음과, 시청을 가득메운 노란색 물결은 너무나 상징적이고 허무하다.

우린 무엇이 변했고 무엇을 했나 싶다

또 그러면서도 진중권이 어떤 칼을 빼들지 매우매우 궁금하다는... ^^

설마 변듣보나 까대느라, 벼룩잡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은 아니겠지?

 



2008년 년말에 황지우 시인이 각계 각층에 보냈다는 연하장.

 

  세월이, 외상값 받으러
  심부름 온 아이처럼,
  섣달 그믐 門 앞에서
  종종거립니다.
  아, 또 저 녀석을 뭐라 달래어 보내지요?
  지난 한 해 厚意에
  감사드리며
  눈돌려 乙丑年 새해 향해
  벅찬 숨 한번 쉽니다

황지우 拜上
Dec. 2008

 

세월이, 외상값 받으러 심부름 온 아이와 같다는 말이.. 새삼 참.. ^^

 

사퇴하고 심장 때문에 입원하셨다던데.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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