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제이 굴드를 비판하는 글들을 더러 읽었다.
이덕하라는 사람이 쓴 글은, 자신의 몰이해를 알아차리지 못한 비방에 가까웠고 -
어쨋든 굴드와 도킨스의 가장 큰 갈림은 '적응'에 있을 터다.
굴드는 삼각소간과 같이 의도치 않은 부산물이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이라면, 도킨스는 모든 게 적응의 결과라는 입장이다. 유전자가 진화의 기본단위라고 치더라도, 한 유전자가 한 표현형만 발현시키는 게 아니라는 것은 진즉 규명되었다. 한 표현형을 발현시키는 유전자가 단수가 아니라는 사실도 규명되었다.
한국의 무당개구리가 전세계에 퍼져나가면서 같이 퍼진 곰팡이균 때문에 각지 양서류가 많이 죽는다 한다. 아마 몇 세대가 지나면 그 곰팡이균 면역을 획득한 개체들이 다수를 점하게 될 것이다. 그 면역과 관련된 유전자가 단순히 곰팡이균 면역 형질만 발현시킬까? 이건 너무 단선적인 시각이다.
'핀치의 부리'를 계속 읽고 있는데, 우선 미세한 변이를 추적하고, 종분화가 어느 시점에 일어나는지 추적하는 부분까지 읽고 있다. 읽는 속도가 잘 안나는데, 굴드의 책일 읽으며 익숙했던 진화의 개념과는 확연히 달라서다. 전문가가 아니다보니 어떤 대목에서 어떤 쟁점이 있다는 걸 정밀하게 서술하지는 못하겠는데, 진화를 적응의 결과로 전제하는 데에 가장 큰 차이가 있는 듯 하다. 생존에 유리한 형질이 더 많이 살아남는다는 건데, 부리의 길이에 초점을 맞춰서 연구한다. 표현형과 유전형이 1:1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점, 생존에 영향을 미친 부리의 길이 외 다른 표현형(부리의 길이와 상관관계가 높은)이 있을 수 있다는 점 등이 의문이다. 지금 읽는 대목은 변이의 축적이 종분화로 도약하는 신비에 관한 것인데, 생각해보면 변이의 축적과 종분화는 특별한 관계가 있긴 어렵다. 새롭게 탄생한 종이 갖고 있는 형질이 그 시점의 환경에서 생존하는데 유리해서 더 많이 생존했다는 게 자연선택의 결론일 것이다.
나머지는 더 읽고나서 보충해야지.
테리 이글턴의 도킨스 비판과 스티브 제이 굴드-리처드 도킨스 사이의 의견 차이는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예전에도 이걸 정리해보고 싶다는 글을 쓰지 않았을까 싶은데, 여전한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