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잔뜩 담긴 영화. 몇 번은 다시 봐야할 것 같은 여운이 남는다. 하지만, 보통 난 한 번 영화를 다시 보질 않으니..;

 

천사의 세상에는 색이 없다. 그래서 영화에서도 色이라는 건, 단지 color가 아니라 감각과 오욕칠정과 업을 의미한다. 色에 대한 인식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공유되는 게 신기했다. 우리는 色의 세계에 살고 있고, 그래서 많은 것을 욕망하고 소유하고 끄달리며 살아간다. 그 色이 기억을 만들고 삶을 구성한다.

 

인간이 된 천사는 맨처음 色을 묻고, 배운다. 감각의 세상은 천사 세계의 숭고함은 없을지 몰라도, 시원한 걸 만질 수 있고, 담배와 커피를 함께 할 수 있고 굵은 선과 가는 선의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손을 비비면 따뜻해지는 좋은 일들이 가득 찬 곳이다. 色의 세계에 있지 않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천사는 누구도 위로할 수 없고, 죽어가는 누군가를 도울수도, 누군가의 죽음을 말릴 수도 없다.

 

닭털로 만든 날개를 달고, 공중에 매달려 있는 그녀는 언제나 혼자라고 느낀다.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그는 타인일 뿐. 특히나 베를린의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더더욱. 사랑하고 싶어하는 그 마음 앞에서 천사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

 

날개를 버리고 인간이 된 천사는 커피를 맛보고, 담배를 태우고, 음악을 들으며 느끼고, 그 한 사람을 만나러 간다. 그리고 만난다. 숭고함은 더이상 천상의 세계에 있지 않다.  서로가 완전히 합일되는 순간, 그들은 더이상 타인이 아니게 된다. 새로운 조상이 되어, 그곳으로부터 또 하나의 역사가 시작된다. 애초에 타인인 존재인 우리가 서로를 보듬어 줄 수 있는 관계를 맺는 건 가슴벅찬 일이다. 사랑은 그런 기적같은 일이다. 그 둘의 결단은 둘 사이를 초월하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사건이다. 우주가 새로 만들어지는. 너를 만나기 위해 만년을 기다렸다는, 엘하자드의 대사처럼.

 

'전후' 독일이 배경이다. 독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영화를 봤더니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 많았다. 포츠담 광장에 대한 장면이랄지, 곳곳에 무너진 건물이라든지, 등등. 그리고 영화를 지루하게 느낀 건 나만이 아닌 듯 하다. 영화를 돌려가며 다시 보니 처음 볼 때 이해되지 않았던 장면들이 이해되기도 한다. 다른 걸 떠나서 色이란 건 이 영화의 중요한 주제어인 것 같다. 이 영화 후속작품(in weiter ferne, so nah)이 있다는데, 한글 자막이 있으려나?

또 떠오르는 건, 그래도 삶은 구질구질하다는 거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