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반값등록금 문제가 이슈로 터져나오고 있는데, 떠오르는 생각들을 짤막하게 남겨둬야겠다 싶다.
어느정도는 실제보다 더 과도하게 바라보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막대구부리는 셈 치고...

우선 반값등록금 이야기는 꽤 불편하다. 아니, '값'이라니. 등록금을 반절로 내리자는 주장은 고등교육이 상품이라는 희극적인 증명으로 시작한다. 교육의 문제를 등록금으로 치환시킨 채 이야기 하면 당연히 교육의 원가와 학생이 지출한 비용과 그에 상응하는 기회비용 등이 소재가 될 수밖에 없다. 현재의 등록금을 지출하고 얻은 유형/무형의 상품으로는 자신의 노동력가치를 충분히 상승시키지 못해 미래 임금이 등록금 가격을 감당하기 어려우리라는 게 일반적 정서 혹은 근거인 듯 하다. 요지는 감당하기에 비싸다는 것이다. 언론이 다루는 방식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20대 취업률을 이야기하고,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대려면 얼마나 일해야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이런 시각에서는 등록금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던지지 않는다. 교육 상품이 저렴하게 공급되면 좋고, 혹여 완전 공짜로 공급되면 더 좋을 뿐이다.
등록금에 복지예산이 지원된다 했을 때, 이미 오래전부터 등록금을 재산축적의 수단으로 활용해온 사학재단들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후자가 선행되지 않으면 등록금 지원은 교육재벌들과 권력층 사이의 카르텔을 견고하게 만들 뿐이다. 그리고 각 학교에서 등록금을 어떻게 썼는지 밝히고 쓸지 결정하는 것은, 교육을 위해 필요한 지출항목이 무엇인지, 다시말해 교육의 구성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수반한다. 부르주아 권력의 정점에 있는 이들은 반값등록금을 수용할지언정 이 질문은 허용할 수 없다. 이 질문은 반값등록금이 실현된다 해서 자연스럽게 제기될 가능성은 전혀 없고, 되려 교육 '원가'를 계산하는 통에 그 너머의 질문은 철저히 봉쇄될 것이다. 이 질문은 지금 당장 던져져야 하고, 그래서 전선은 반값등록금 실현 여부가 아니라, 교육의 사회적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지느냐에 존재한다.

내가 경험했던 등록금 투쟁은 등록금 인상을 저지하기 위한 싸움이었고 인하는 현실의 요구가 될 수 없었다. 그러면 반값등록금이 등록금동결보다 더 급진적인 구호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은 게, 교육이 왜 상품이 아닌지, 교육의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해 질문하고 설득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몇 년전이 훨씬 치열했다.(물론 그 때도 %싸움에만 매달려 교육의 공공성을 놓치고 간다는 비판이 제기되곤 했었다.) 지금은 등록금의 값에만 촛점이 맞춰져 있지 대학의 기업화, 학문의 신자유주의적 재편 등에 대한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 교육이라는 상품을 구매하는 거라면, 그 상품의 사용가치가 무엇인지 정도는 얘기가 나와야한다. 별 필요도 없는 상품 강매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와 같은 기초적인 질문말이다. 상품의 값이 비싸다고 얘기하지만, 정작 그 상품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두리뭉실하다. 돈 내고 취업설명회 들으면서, 일류대는 일류대끼리, 지잡대는 지잡대끼리 신분 나눠주고 라인 세워주는 게 대학 아니던가.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을 그 이야기가 지금껏 '값'에 묻혀있는 것은 반값등록금 운동이 현재 질서를 재생산하는 세력들과 동맹을 맺고 있음을 보여준다.
왠지는 모르지만 돈을 내고 있으니, 그 돈을 줄여 가계에 보탬을 주자는 게 되서는 안될일이다. 등록금이 물가인상률 이상으로 올라왔던 건 사실이지만, 그 과도한 인상 때문에 상품의 가치와 가격사이의 괴리가 심해진 게 핵심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교육이라는 상품의 특수성 때문에 그런 과도한 인상이 가능했던 것이 문제이다. 원인과 결과를 뒤집어 놓는 이상 반값등록금이 2011년에 실현된다 해도 입시경쟁 때문에 새벽까지 학원에 묶여있고, 취업경쟁때문에 대학원에 진학하는 현실이 바뀔 리 없다.

이렇게 말 꺼내면 교육의 공공성 부터 해서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겠지만, 이건 그간 나온 이야기들을 찾아보면 될일이고(게으름, 무책임...;;), 말하려는 요지는 내가 뭘 사서 쓰는지는 놓아둔 채 비싸다고 얘기해봐야, 조삼모사 되기 십상이라는 거다. 실제 정치인들은 반값등록금을 위해 대학 구조조정을 더 파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얘기할 수도 있고, 지금 주류 운동세력(민주당을 포함해)은 그것을 수용할 수 있다. 그럼 등록금은 반값하고,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며 지연된 등록금 내는 꼴 되는 거다.(대학의 구조조정이 사회 곳곳의 구조조정과 맞닿아 있음은 자명하다.) 반값등록금과 대학 청소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권이 충돌하는 상황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한나라당에서는 학점과 연계한 반값등록금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반값등록금' 자체보다 그것이 무엇을 지향하며 실현되고 어떤 효과를 남길 것인지가 훨씬 중요하다.(서울대 법인화 저지 투쟁은 시기적으로 반값등록금과 겹치지만 결과 효과는 다르다. 구호선정은 운동에서 거의 모든 것이다.)

반값등록금을 주도하고 있는 이들의 선정적이고 대중적인 파급력이 있는 이슈를 장악해 쪽수를 모으는 활동방식도 탐탁치 않다. 2008년 촛불의 재현을 꿈꾸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 때 촛불이 무엇을 남겼는지에 대한 성찰이 보이지 않는다. 2008년처럼 촛불이 모이면 등록금이 낮춰지고, 교육이 바뀔까? 2008년 촛불은 정말 무엇을 바꿔내긴 했던가? 야당까지 동원해 판을 키워보려 하고 있지만 이는 역으로 현재 운동이 전선에 한참 미달한다는 증명이다. 2008년 촛불의 실패도 전선에 미달했기 때문이다. 사람만 많이 모인다고 세상이 바뀐다면,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가서 모으면 될 일이다. 반’값’등록금은 그들과 달라보이게 하면서, 동시에 손잡을 수 있게 만드는 구호다. 이런 구호를 선정하는 능력에 대해서는 언제나 감탄이 나온다. 동시에 우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