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에서 풍기는 느낌이 좋아 보고 싶었던 영화인데,

다 보고 나니 조금은 밍숭거리기도 하고.. 하지만, 생각할 거리는 많다.

 

여러 글 들에서 미리 보아 이미 알고 있던 대사, 처음엔 멋져보여 시작했고... 자꾸 해야할 게 생긴다는..

누구는 강박에 빠진 좌파의 자화상이라고 얘기하지만, 강박없이 자유로운 삶이란 애초에 존재할까? 무슨 이상을 대는 것 보다 차라리 솔직하지 않을까. - 정말, 자꾸 해야할 게 생기는 걸.

 

영상을 보는 내내 두근거렸다.

둘은 서로 도망가고 있던걸까.

 

중식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려 할 때, 다른 누구를 다치게 했고, 그 죄책감 부채감을 이고 살아간다.

결혼은 욕망을 부정하려는 도피처였을까. 하지만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적 없다는)욕망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또 누구를 다치게 했다. 그 사람은 그것까지도 자신의 것으로 안고 살아간다. 그것은 지지 않아도 될 부채일까? 그래서 그것은 골방에 갇혀 세상의 정의를 고민하는 활동가들의 폐쇄적인 자의식일까? 되려 보지 않으려고 눈감아버린 인과의 끈을 의식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감독은 어느 쪽의 말을 하고 싶었던걸까.

 

은모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가? 그 의도는 명확하지만 언제나 꺼풀은 씌여있다. 자신이 그 의도를 의식하고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것을 분명히 의식했을 때는, 오히려 도망치는 걸 선택한다. 둘 다 금지된 것을 욕망하지만, 어느 쪽도 그것을 그대로 내보이지 못한다. 감독은 그것을 인정하고 내보이는 것 또한 해피엔딩을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고 영화 첫머리에서 잘라말한다.

 

개인의 욕망을 삭제하고 이상을 박제화 시킨 운동(유령들의 운동..)에 상대적으로, 욕망을 긍정하라는 류의 담론이 유행한다. 감독은 둘 사이에서 답을 고르는 것 같지는 않다. 인과의 끈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꼬여있는 실타래 속에서 개개인의 노력은 무력한가? 노력하면 만날 수 있는걸까. 애초 만날 수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살아야할까.. 모든 걸, 자신이 떠안는 중식은 가엾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다른 이에게 전달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안타깝다. 그가 노력한 만큼, 그 또한 다른 누군가에게 그만큼 받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모두가 모두에게 솔직하면, 세상이 좀 나아질지 모른다고 생각하곤 한다.

결코 감당할 수 없을 일이 있을까.. 서로 기대면 어느 것이든 조금은 수월치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