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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신매매실태보고서와 성특법 모순..

[논평] 美국무부 '인신매매실태 보고서'와 성매매 특별법의 모순 2010·06·16 
 

美국무부는 매년 인신매매실태(TIP.Trafficking in Persons) 보고서 발표를 통해 각 국의 랭킹을 공개하고 있는데, 14일 공개된 2009년도 TIP에서 특히 최우수 등급에 랭크된 한국에 대한 분석이 지난시기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모순적이다.

"한국은 여성과 소녀들에 대한 상업적인 성적 착취로 연결되는 인신매매의 근거지이고, 경유지이며 그리고 최종 목적지(a source, transit, and destination country)이다."

TIP와 관련하여 한국에 대한 이러한 규정은 세계 175개국 중에서 2002년 이후 美국무부가 가장 우수한 1등급 지위를 부여해온 것과 매우 상반된 평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각 나라의 피해자 보호정책, 가해자 처벌, 예방활동 실적 등 TIP 평가기준이 미국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자의적으로 오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美국무부 입장에서는 지난 2004년 9월 23일부터 전격 시행되고 있는 한국의 이른바 성매매 특별법(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성매매알선등행위의처벌에관한법률)이 네바다주를 제외한 지역에서 실시 중인 미국의 ‘매춘 금지주의’에 모범적으로 순응한 정책이므로 이를 칭찬해 대외적 선전수단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TIP 2009 보고서 발표와 관련하여 전 세계적인 인신매매 근절 노력을 강조했다.(사진= 미 국무부)


동시에 성특법이 자초한 풍선효과에서 보듯, 단속으로 생존권 박탈 위기에 내몰린 국내 성노동자들이 미국 등 성거래가 좀 더 자유로운 국가로 자리를 옮겨 이주성노동자의 길을 걷게 되는 자국의 현실에 직면하자 또 다른 성격의 불법체류자들을 막아내야 하는 고민에 빠지게 되었고, 그 결과 이번처럼 TIP 보고서에서 앞뒤가 맞지않는 평가가 나오게 된 것이다.  

한편, 이번 TIP에서 '최악'으로 분류되는 3등급 국가군에는 북한, 이란, 미얀마, 쿠바 등(13개국)이 여전히 포진하고 있는데, 미얀마 등과 같이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경우도 있지만 정치적으로 미국과 불편한 관계에 놓인 국가들이 대거 포함됨으로써 ‘세계경찰’로서의 미국적 관점이 이 분야에서도 과연 공평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은 계속 남을 수밖에 없다.

매춘은 결코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빈부양극화에 기인한 사회현상이며 또한 신자유주의의 이면이기도 하다. 따라서 성특법이 시행되자마자 국내 성노동자들이 음성화되거나 미·일·호주 등 선진경제권으로 이동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몽골·중국·동남아 등지의 제3세계 여성들이 연예비자로 국내에 진입해 일부가 매춘화 되는 현상은 일반 이주노동자들의 발생 경로처럼 그들의 생존전략으로 봐야 한다.  

문제는, 美국무부가 어떤 경우에도 매춘을 자본이 강제하는 구조적인 측면에서 접근·분석하지 않은 채 단지 현상만 나열한다는 데 있다. 또 용어에서 강제적 인신매매와 자발적 인신매매로 구분해 사용하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성거래를 인신매매와 동일시하고 ‘도덕’을 대안으로 제시하려는 경향은 현실과 크게 동떨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 2009년 '국제 성노동자의 날'을 맞이하여 인도 성노동자들이 성거래 범죄화와 낙인에 반대하는 시가행진을 벌이고 있다.(사진= PLRI)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사회안전망이 전무하다시피 한 곳에서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으니 하지 말라”는 식의 법치는 결코 실효성을 얻을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한동안 집창촌 폐쇄 사령탑으로 기능하며 적잖은 국고를 사용하던 여성인권중앙지원센터가 정권교체와 더불어 간판을 내려도 이렇다 할 반박이 나오지 못한 것은 그만큼 주류여성계의 정책효과가 초라했기 때문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美국무부는 '성인들의 자발적 성거래를 제외'한, 실제 강제적인 인신매매의 성격을 지닌 각종 현대판 노예 현상에 대해 보다 깊은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지금처럼 대외 정치적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TIP 보고서의 모순을 지속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아울러, 증가 일로에 있는 국내 성범죄 실태에서 증명되듯 아무런 실효성 없이 역효과만 불러일으키고 있는 국내 성특법은 조속히 폐지할 수 있도록, 당국은 이참에 성性관련 정책을 시민사회의 공론화 장으로 과감하게 불러내 원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바람직하다 하겠다.
 

[한국인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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