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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7/09
    [성노동운동 보고서] 한겨레21 "나는 성노동자다" 계기로 본(2)
    혁사무당파

[성노동운동 보고서] 한겨레21 "나는 성노동자다" 계기로 본

http://www.k-hnews.com/home/bbs/view.php?id=column&no=160

 

 

[성노동운동 보고서] 한겨레21 "나는 성노동자다" 계기로 본 2012·07·09 11:53
 

최덕효(대표겸기자)

1.
2012년 7월 2일. 이날은 국내 성노동/성노동자운동(이하 성노동운동)의 분수령이 되는 날이다. 가장 신뢰도가 높은 언론(좌파진영에서 보면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으로 일컬어지는 한겨레신문에서 발생하는 주간지 『한겨레21』이 본격적으로 ‘성노동’ ‘성노동자’란 용어를 사용한 심층기사를 내놓은 날이기 때문이다. 그간 금지주의 쪽에 편향되었던 한겨레가 이번 기사에서는 비범죄화를 기조로, 이 분야에 대한 보수언론의 선정적인 혹은 시혜적인 접근과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상당한 수준의 운동적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한겨레21』은 2일자(917호)에서 특집으로 성노동 관련 남은주 기자의 표지 기사 《“‘나는 성매매를 선택했다’ 성노동자 4명 자신의 노동을 말하다… ‘창녀’라는 낙인에서 구해준 것은 탈성매매가 아니라 노동자라는 자각이었다”》와 《“쉬쉬하다가 성노동자만 범죄자 ‘성매매특별법’ 둘러싼 멈춰선 7년 논쟁… 한국 성산업 시스템 도외시하며 성매매 여성만 처벌해, 적어도 비범죄화해야”》 두 꼭지를 실었다.  

국내 성노동운동의 출발은 노무현 정권 당시 이라크 파병반대 운동에 참여해 진보진영에 만민공동회를 제안했던 기독민중연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단체는 2004년 9월 23일 성매매특별법(‘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이하 성특법) 시행 직후 조직한 ‘성특법반대시민모임’을 거쳐 지금의 한국인권뉴스(이하 인권뉴스)로 개편되었다. 

필자가 포함된 당시 ‘성특법반대시민모임’은 전국 17개 지역 집창촌 여성들이 모인 청량리역 광장 집회 발언(인터넷 한겨레 2004년 10월 20일자)을 통해 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전국조직을 추진(경향신문 2004년 11월 6일자)하다 평택에 소재한 민주성노동자연대(이하 민성노련)를 중심으로 운동의 연대 주체로 나서게 된다. 이를 계승한 인권뉴스는 초기에는 연대단위 모임인 성노동운동네트워크의 일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내부 이견으로 독자적인 운동을 진행하게 된다. 

이번『한겨레21』기사에서는 매우 알찬 내용들을 접할 수 있으나 부분적으로는 미흡함이 군데군데 보이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따라서 인권뉴스는 크게는 진보적인 성담론 이론 및 실천을 지향하는 주체의 하나로서 운동의 재편성을 돕고, 작게는 성노동운동 주체의 하나로서 이 운동의 발전을 위해 『한겨레21』기사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성노동’에 대한 추가적인 이야기를 그동안의 현장 경험을 토대로 언급하고자 한다. 


2. 
‘성노동/성노동자’란 용어는 2004년 10월 파주에 있는 집창촌인 속칭 용주골에서 그곳의 일하는 여성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채택되었다. 당시 인권뉴스는 집창촌 몇 곳에 좌파진영의 활동가들과 함께 실태조사 등 현장 활동을 진행했는데, 경기도 파주에 소재한 용주골 방문에는 사회진보연대 활동가 두 명이 동행했다. 

우리는 현장 여성들과의 만남에서 그녀들이 자신을 뭐라고 호칭해야 좋을지 고민하는 모습을 접하게 되었고 그녀들은 자연스레 논의를 진행했다. ‘여성종사자’란 말도 있었지만, 그녀들은 “우리는 생계를 위해 일하는 거니까 ‘노동’이고요, 그 중에서 성적 분야니까 ‘성노동자’가 맞겠네요.” 라면서 만장일치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그렇게 정리·결정했다. 이 일과 관련, 필자는 해외에서 흔히 사용하는 개념인 ‘sex-worker’를 그 자리에 소개했다는 이유로 한 활동가(여성)로부터 ‘폭력적’이라는 비난을 받게 된다. 

필자는 지금도 그 비난의 근저에는 물질노동을 중심으로 노동/노동자에 대한 신성성(노동주의/노동자주의)이나 생산력과 생산관계에 기반한 전통좌파의 생각이 ‘성노동’을 반대편에 차별적으로 자리하게 한 것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이러한 쟁점은 비단 여성계만이 아니라 진보좌파진영에서 여전히 뜨거운 논란의 한 가운데 서 있다. 따라서 이번『한겨레21』기사는 ‘성노동’에 대한 운동진영의 분명한 입장을 강제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계기가 된다.

‘매춘 - 매매춘 - 성매매’로 이어지는 용어 변천사는 여성계의 성주류화 전략과 깊이 맞닿아 있다. ‘봄을 판다’는 단순한 뜻의 매춘에서, ‘행위 당사자를 지목하고 죄를 추궁’한 것이 매매춘이란 용어였다. 그리고 “성매매는 사람의 신체를 폭력적으로 지배하는 관계”(2009고단 3339호 판결문)라는 사법적 개념 규정이라고 쓴 『한겨레21』기사에서 보듯, 인신매매를 함의한 개념에 이른다. 따라서 성매매는 장기매매나 살인적 폭력과 같은 극악한 범죄로까지 동일시하고 비약된다.

이러한 '성매매'란 용어는 예전 한국여성연구원에 재임 중이었던 원미혜(여성학자)의 “우리는 왜 성매매를 반대해야 하는가” 제하의 논문에서 제안되었다. 여기서 원미혜는 "'성매매'라는 용어는 아동 매매, 인신매매 등과 같이 '거래'되는 측면을 강조하여 담을 수 있는 용어"이므로 "적극 권하고 싶다"고 주장했고 후일 성특법에서 그대로 관철되었다. 

성노동운동이 한창일 때 한 성노동자는 원미혜로부터 보내온 소소한 문자를 필자에게 보여주곤 했다. ‘성매매=인신매매’라는 식의 개념을 제출한 그가 성특법 시행 후 분노한 성노동자들의 시위에 놀라 성노동자들에게 다가간 게 아닌가 한다. 그는 활동가들과 함께 펴낸 <경계의 차이 사이 틈새-성매매 공간의 다면성과 삶의 권리>란 책에서 "성매매를 둘러싼 합법·불법 논쟁을 떠나, 논쟁에 가리기 쉬운 성매매 집결지 여성들의 삶의 다면성을 보자"며 애매한 변신을 시도했지만, 후배들은 지금도 성매매 금지주의자 원미혜를 배운다. 


3.
『한겨레21』은 기사에서 성노동에 대해 “어찌됐든 급진주의적 페미니즘과 자유주의적 페미니즘, 여성계의 두 시각에서도 일치점은 있다. ‘성매매 여성의 비범죄화’다.“라면서 “적어도 비범죄화해야”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나 성노동과 페미니즘의 관련성에 대한 『한겨레21』의 설명이 불충분한 까닭에, 조국의 논문(성매매에 대한 시각과 법적 대책)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좀 더 풀어보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성특법을 탄생케 한 성노동에 대한 현행 ‘금지주의’는 도덕주의적 접근 방식으로 “단순 성매매 행위를 포함하여 성매매 조장․알선행위 등 일체의 성매매 관련행위를 처벌”하는 까닭에 “단순 성매매의 경우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 처벌대상이 되는 ‘범죄인’”으로 간주된다.  

성특법을 주도한 주류여성계는 《급진적 여성주의》의 성격을 지녔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본디 《급진적 여성주의》에서는 ‘선택적 비범죄화’를 주장하므로 성노동자는 피해자로 보호하고 “성구매자만을 처벌”하는 것을 기조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류여성계는 성노동자들을 보호하지도 않았고, 그들과의 대화도 외면한 채 《도덕적 여성주의》가 주장하는 ‘금지주의’와 공생하고 있으므로 매우 모순적인 위치에 처해 있다. 

《자유주의적 여성주의》와 《사회주의적 여성주의》에서는 ‘비범죄주의’나 ‘합법적 규제주의’를 정책으로 주장한다. 여기서 비범죄주의는 “단순 성매매행위 쌍방을 처벌하지도 않고 합법화하여 관리․통제하지도 않으며, 다만 이를 조장․착취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입장”을 말한다. ‘합법적 규제주의’는 “단순 성매매를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이에 대한 세금을 징수하며, 등록증과 의료감시체계를 의무화하거나 특정지역 지정을 통해 성매매를 규제하는 입장”이다. 

성특법을 추진한 주류여성계의 여성주의 정체성이 불분명하듯, 성특법을 반대하며 성노동운동에 연대하는 진보좌파 진영의 여성주의 또한 급진적·자유주의적·사회주의적 여성주의가 혼재된 복잡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성노동운동을 계급적 관점을 중심으로 접근한 인권뉴스는 여성주의 경향의 네트워크와 따로 운동을 진행하게 된다.) 

이에 대한 상징적인 일이 있다. 2007년 6월 28일 서강대에서 열린 맑스코뮤날레 학술문화제 '영 코뮤날레' 세션에서, ‘비범죄화’를 전제한 이황현아(노동자의힘 여성활동가모임)의 주장(발제문: 성노동자의 성별화된 권리를 위하여)에 대해 민성노련은 ‘특정지역 자율관리제’를 주장하며 정면충돌한다. 
▒ 이황현아 발제문에 대한 민성노련의 입장

이황현아는 “'특정구역 비범죄화',는 민주성산업인연대와 민주성노동자연대가 2006년부터 구사하고 있는 비범죄화의 구체적인 주장”이라며 “모든 성노동자를 주체적 대상으로 하는 비범죄화가 아니라, 특정구역-평택만 비범죄화하자는 건 성노동자운동의 의의를 훼손하는 논리적 모순이자 실리에 기댄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민성노련은 “‘특정지역 자율관리제’는 ‘평택만’ 이 제도를 택하자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전국의 집창촌을 대상으로 한 것”이며 “자율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경찰력 등의 관리를 전제하는 이른바 공창제 형태의 '합법주의'와 차이가 있으며 조직적으로 자율적 관리가 어려운 '비범죄주의'와도 구별”된다고 밝혔다. 그리고 “성특법의 가장 큰 목적은 집창촌 폐쇄에 있으므로 현 시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집창촌을 사수할 수 있는 방어논리”이며 “따라서 집창촌 성노동자들이 일차적으로 투쟁의 주체가 될 수밖에 없으며 그 점에서 한국사회의 모든 성노동자를 주체적 대상으로 설정한 비범죄화와는 시점과 관점의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황현아는 “민성노련과 같은 성노동자 자신의 주체적 운동은 한편에서 경제적 빈곤을 주축으로 한  노동운동/빈민운동임을 역설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자신의 운동 내용에서 급진적 여성주의를 비판한다는 명목으로 애써 페미니즘적 요소를 걷어내려고 한다.”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성적억압에 대한 접근, 성적자기결정권에 준거한 자유주의적 태도, 성매매의 궁극적인 폐절 경계 등에 대해 민성노련은 비교적 관대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민성노련은 “대다수 전업형 성노동자들은 ‘빈민’이며 ‘여성’”이지만 ““성노동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하는 다른 ‘노동자’와 다를 바가 없다”면서 “이 세 가지 성격을 동시에 포괄하며 이 중 어느 것도 결코 후순위에 두려고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또 “민성노련이 투쟁전술로 ‘주류여성계’에 집중하는 것은 그들이 성특법을 만들고 추진하는 실제 주역들이기 때문”이며 “고로 우리가 걷어내려는 것은 ‘페미니즘적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기층민들을 억압하는 '반페미니즘적 요소'”라면서 주류여성계는 “몸만 ‘여성’인 비현실적 도덕주의자들인 동시에 기득권자들의 한 분파”라고 반박했다.  

또 “민성노련이 고객과의 관계를 여성에 대한 ‘성적억압’으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만약 우리가 성인들 사이의 필요에 따른 성거래를 '억압'으로 간주한다면 난데없는 인신매매 논리에 스스로 갇혀버리는 셈”이 된다고 말하고, “성거래에서 이뤄지는 상호간의 선택은 물질적인 제 조건이 매우 까다로운 가족이데올로기보다 훨씬 자유롭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민성노련이 경계하는 것은 ‘자발적인 성노동(성거래)’을 인신매매와 동일시하여 쉽게 ‘폐절’을 논하는 것”으로 “이는 성노동의 폐절을 지구상의 모든 임노동의 폐절과 같은 맥락에서 논하는 것과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라고 밝혔다. 


4.
이상은 당시 네트워크의 일부 활동가들이 성노동운동 연대 초기 민성노련에게 이들이 채택한 강령 12개항 중 “한국사회의 급진적 여성주의를 개혁한다”는 부분에 대해 제외할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사실과 관련하여 이념적으로 많은 차이점을 시사한다. 민성노련은 급진적 여성주의가 지닌 성(性)분리주의 사고가 성노동운동에 하등 도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듯하다. 
▒ 민성노련 12대 강령

반면, 네트워크는 합법화 및 비범죄화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한 민성노련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네트워크는 자의적으로 ‘비범죄화’를 운동 기조로 천명함으로써 현장 주체인 성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그리고 운동을 자신들의 취향에 맞게 사유화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어쨌든 이들 양자는 ‘성특법 반대’라는 기조 하나로 연대를 힘겹게 꾸려 나갈 수 있었다.  

『한겨레21』은 이번 심층기사에서, 성인들 사이의 단순한 성적 거래에서 일(성노동)하는 주체를 ‘성노동자’라고 부르는데 동의할 수 있냐고 묻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정책 전환으로 ‘비범죄화’를 제안했다. 그러나 ‘비범죄화’라는 말은, 위에 적었듯이 성노동운동에 연대했던 복잡한 정체성을 지닌 여성주의 경향의 네트워크 입장만을 되풀이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는 운동도 진보적 언론도 ‘금지주의’라는 도덕주의적 강박이나 ‘성매매 폐절’이라는 공허한 명분론을 넘어야 한다. 좌파적 관점에서 여성주의 전반을 검증하면서 국가주의 페미니즘을 전면 비판하고 마르크스 페미니즘까지 발전적으로 논해야 성노동운동에 대한 구체적인 상이 그려진다. 그리고 비범죄화건 합법화건 특정지역 자율관리제건 활동가들은 모든 이야기를 현장 주체들과 노동자민중들 앞에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소통해야 한다. 

『한겨레21』은 “‘창녀’라는 낙인에서 구해준 것은 탈성매매가 아니라 노동자라는 자각“이었다고 유의미한 제목을 뽑았다. 우리는 성노동운동 8년 만에 ‘87년 체제’에 갇힌 ‘갑갑한’ 한겨레를 이 정도까지 변화시키는 성과를 일구고 있다. 운동진영이 성노동자들에 대한 낙인 제거와 그들의 노동권·생존권·건강권 쟁취를 위해 연대하고 대안 마련에 나서는 것은 공황기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당연한 의무이다. 

아마도 민성노련 성노동자들이 없었다면 국내 성노동운동은 출발이 어려웠을 것이다. 갈 길은 멀지만 성노동운동의 밀알이 된 민성노련 성노동자들에게 깊이 감사 드린다. 그리고 연대 동지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하면서 성특법 폐지를 향해 논의의 장을 활짝 펼칠 수 있도록 투쟁력을 더욱 강화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인권뉴스는 그 길에 항상 함께 할 것임을 약속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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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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