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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평론]'서울대 담배 성폭력 사건' 통해 본 페미니즘의 현주소

 

[운동평론]

 

'서울대 담배 성폭력 사건' 통해 본 페미니즘의 현주소

 

- 사회주의 페미니즘 외피 쓴 급진적 페미니즘의 패권주의

 

최덕효 (인권뉴스 대표)


최근 벌어진 이른바 ‘서울대 담배 성폭력 사건’에서는 한 학생회장의 인권을 무자비하게 짓밟은 국내 주류 페미니즘의 파쇼적 행태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는 결코 이해당사자 개인들만의 문제가 아닌 조직이 개입된 일그러진 여성운동의 현주소라는 점에서 각별히 주목된다. 

'서울대 담배 성폭력' 사건의 대책위원회‘(대책위)에는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 공동실천위원회(사노위)학생위원회 관악분회, 서울대 학생행진, 여성주의 자치모임 공간 등 서울대 학생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사회대 학생회장 사퇴와 관련하여 서둘러 공식 사과문을  발표해 사태를 진정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여성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성性분리주의적 급진 페미니즘에 기반한 여성운동의 파쇼적 작풍은 여전히 대학을 비롯 사회 전역으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번 사건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보도자료를 통해 사실관계를 재구성해본다.  




서울대 담배 성폭력 사건일지

1. 2012년 3월, 서울대 사회대 여학생 A씨는 연인 관계였던 남학생 B씨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음.

2. 이에 여학생 A씨는 B씨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내용의 요청서를 사회대 학생회에 투서(요지).
"B씨가 대화할 때 줄담배를 피우며 남성성을 과시해 여성인 나를 심리적으로 위축시키고 발언권을 침해했다“

3. 사회대 학생회장이었던 유수진씨는 남학생 B씨의 행위가 성폭력이 아니라고 판단해 신고를 반려.

4. 유수진씨, 다음날 B씨에게 서한 보여주며 A씨에게 사과하라고 권함. B씨에게 “사과 받았다"라는 A씨의 문자 받음.

5. A씨 등, 유수진씨를 성폭력 2차 가해자로 규정
"사과는 정치적인 것이었고 인간적 사과는 아니었다"며 전 남자친구의 줄담배로 상처를 받았으니 이는 곧 폭력에 해당한다는 식의 논리를 전개하며 유수진씨를 비난. A씨와 주변인은 유수진씨를 “성폭력 2차 가해자”라고 몰아 세움. A씨의 말
“관악 학생사회 여성주의 운동은 성폭력을 강간으로 협소화하지 않고 외연을 넓혀왔다...반 성폭력 운동의 원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니 앞으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고 다니지 마라"

6. 유수진씨, A씨가 수차례 B씨에게 가한 언어폭력 증언  
A씨 "X발", "안경을 부수면 살인미수라던데 그렇게 하고 싶다" 

7. 유수진씨, A씨의 인터넷 공세에 대응. 
"(A씨는) 나를 2차 가해자로 취급하고, 내가 A에게 일방적으로 폭력을 휘두른 것처럼 사건을 요약해 트위터나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이에 화가 나서 나 역시 A씨의 언행을 비난하는 발언을 자주 했다"

8. 유수진씨, A씨로부터 받은 정신적 상처를 호소
"A씨가 자신이 피해를 받았다고 느낀 사건을 빌미로 무제한적 폭력을 휘두르면서 B씨와 나 등 가해자로 규정한 사람에게 인권을 박탈하고 그 사람에 대한 어떠한 폭력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는 듯이 느껴졌다" 

9. 유수진씨, 대책위의 논리 비판
"A씨와 A씨를 옹호하는 대책위 논리대로라면 '가해자를 죽이고 싶다'는 피해자에게는 가해자를 죽일 권리까지 줘야 한다. 이건 피해자의 무한정한 폭력을 정당화하고 어떤 비판도 받지 않겠다는 '함무라비 법전 수준 이하'의 윤리"

10. 유수진씨, 10월 18일 사회대 학생회장직 사퇴. 학생회 홈페이지에 게시 
"사회대 학생 활동가 대부분이 여성주의자인 입장에서, 왕따를 당한 것과 비슷한 소외감과 박탈감을 느껴 심각한 우울증에 빠졌다. 거식·폭식증 등 신체적, 정신적으로 괴로움을 겪기도 했다.. 사회대 학생회칙이 규정한 '성폭력 2차 가해'에 해당하는 행위를 했지만 이에 대해 사과하고 시정할 의사가 없어 학생회장으로서 직무에 맞는 책임을 다할 수 없다"

11. 10월 23일 대책위 사과문 발표. 학생회 홈페이지에 올린 글
"사회대 학생회장 사퇴 문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 서울대 학우들과 상처 입은 당사자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과한다. 현명치 못한 대처로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것에 대해 서울대 학우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A 씨를 최대한 긍정하는 것이 그녀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행위가 주변의 더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다. A씨가 '성폭력'이라고 제기한 부분들에 대책위가 명확하게 동의했던 것은 아니지만 사건 성격규정을 능동적으로 하지 않아 '담배' 부분까지 무리하게 성폭력으로 인정해버리는 모양새가 됐다. '피해자 중심주의'를 왜곡한 것을 반성한다. B씨와 유수진씨에게 행해진 폭력에 대해 사과드린다. 피해자 중심주의의 이해와 적용에 대해 엄밀한 성찰을 수행하고 대책위 운영 방식을 개선하겠다"
 


배운 페미니즘 행한 여학생 A씨

정황으로 볼 때 이 사건의 발단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접하는 ‘연인들의 이별 스토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성애자인 이들 커플이 헤어지는 장면을 상상해보자.(성性을 반대로 놓아도 이야기는 유사하다.) 

B(남)가 먼저 헤어지자고 말한다. A(여)는 전혀 이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매우 힘들고 불쾌한 상황이다. B가 이런저런 이유로 이별을 강권(?)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떠날 때는 말없이> 유행가처럼 “그래! 알았어, 잘 살아”라고 초연하기도 어렵고, 영화처럼 “지옥에나 가라!”며  따귀 날리기도 난감하다.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한 채 A는 눈물만 삼킨다.   

그러나 이후부터는 일반의 사랑 이야기와 맥락이 달라진다. A의 내면에 급진적 페미니즘의 개입이 시작되는 장면이다. 

그렇게 헤어졌다. 시간이 흐른다. 사랑이 미움으로 돌변한다. “남자.. 남자라는 족속이 문제인 거야”. 그날 B의 행동에서 그의 담배 피우던 모습과 일방적인 이별 선포가 겹쳐지며, “이거 뭐야, 지가 뭔데!” “담배.. 그것도 줄담배, 상대방에게 그렇게 해롭다는 간접흡연으로 정말 괴로웠지. 심리적으로 위축시키고.. 내가 발언도 못하게 방해했잖아. 그래. 그런 모든 분위기의 남성성이 결국 문제였던 거야. 넓은 의미의 성폭력.. 맞네!”  

여기서 우리는 A의 판단이 나름 일리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대학 학생회칙에서 성폭력은 엄연히 신체적 성폭력뿐만 아니라 성차별, 성희롱, 성역할 구분 단어 사용 등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회칙 제정은 그동안 페미니즘 투쟁이 이룩한 놀라운 성과를 바탕으로 학내에 제도화한 것이기에 하등 이의가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학생회장인 유수진씨가 감히 투서를 반려했다. 뿐만 아니라 유씨는 사과는커녕 자신감 있게 논쟁을 이어나가며 A씨의 언어폭력을 밝히고 인터넷 공세에 대응했다. 

A는 분노했다. A가 보기에 “성폭력 2차 가해자”인 유씨는 페미니스트가 아니었다. 이러한 A의 논리를 적극 옹호하게 된 주변인들과 대책위 또한 유씨를 거세게 압박했다. 결국 유씨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면 존재하기 어려운 학생회 분위기에서 반 페미니스트로 낙인찍힌 채 회장직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별 스토리’에 개입한 페미니즘

누구나 사랑할 때는 바보가 된다고 한다. 모든 게 아름답게 보이고 서로 관용적으로 대하려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연애할 때 A는 남학생 B가 담배 피우는 것(평소 담배를 피운 것을 전제했을 때)과 그의 남성성에 대해 문제 삼지 않았을 개연성이 높다. 만약 그 점이 애초 이들 사이를 해칠 정도로 심하게 눈에 거슬렸다면 연인관계로까지 발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연애감정에서 남성성은 종종 사랑의 촉진제로 작용한다.   

따라서 A가 새삼 문제를 제기한 담배와 남성성은 B의 이별 선포에 대한 반작용이나 방어기제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B의 당시 어투가 A에게 강압적으로 비춰져 기분이 몹시 상했다면 마땅한 조치가 따르면 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유수진씨가 △B의 행위가 성폭력이 아니라고 판단해 신고를 반려한 것 △B에게 (A의)서한을 보여주며 사과를 권한 것은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그리고 B는 유씨의 제안을 받아들여 A에게 사과를 했으므로 그만하면 유씨와 B의 사후조치는 적절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우리는 ‘연인들의 이별 스토리’에서 비롯된 이 사건의 시시비비를 더 이상의 개별적인 귀책사유로 따지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통찰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도 모를 수 있는 대책위를 포함해 관련자 모두가 우리 사회를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 급진적 페미니즘이라는 철지난 이데올로기의 영향권 아래 놓인 피해자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사태를 불러온 이념적 기반인 급진적 페미니즘과 진보적 여성이론이라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이미 좌파진영에서 이를 우려하는 문건을 수차례 제출한 바 있다. 해외에서도 인류학·정신분석학·사회학 등을 토대로 여성운동(제3세계 여성운동 등)을 폭넓게 재구성하고 있는 추세이지만, 유독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엘리트들이 주도하는 서구 페미니즘의 패권적 경향이 강하다. 


자신들 보위 위한 페미니즘 

4인터는 이번 사건에 대한 비판문건(진보넷 속보 44206번 문건)을 통해 “비과학적 부르주아 사상이 제어되지 못했을 때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부끄러운 사례”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유사한 사례로 2008년 있었던 “해방연대 활동가가 '민투위'건과 관련하여 당시 노힘의 무원칙성을 비판하기 위해 노힘과 민투위를 '아가씨와 건달들'에 비유”한 것을 '노힘' 활동가들이 해당 해방연대 활동가를 “‘성폭력’ 가해자로 규정했고, 그 규정을 부정하는 다른 논자들을 ‘2차 가해’로 몰았”다고 상기시켰다.  

또한 “만약 피해자의 명망(?)이 없고 그리하여 언론의 주목을 받지 않았더라면, 이 사건 역시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기 십상”이었으며, “십 수 년 간 많은 희생자를 낳으며 구축되어 온 '성폭력론', '피해자 중심주의', '2차 가해론'의 권위에 누구도 함부로 도전하려는 마음을 품지 않았을 것”이라며 “주류이건 비주류이건 남한의 여성주의자 대부분은 이 '성폭력론', '피해자 중심주의', '2차 가해론'의 충실한 지지자”임을 그 이유로 들었다. 

아울러 “이 사회의 그 많은 여성주의자들은, 일반 대중이 접하자마자 터무니없음을 간파한 사안에 대해서, 마치 아무 일도 아무 문제도 없었다는 듯이 침묵하고 있”는 것은 “‘자신들의’ 핵심 이론의 권위를 보위(!)하고 또한 무엇보다도 자신들을 보위(!)하기 위함”이라고 4인터는 강력 비판했다. 


사회주의 페미니즘 비판

해방연대의 경우에는 ‘사회주의 강령을 토론하자(제4호)’에 실은『여성문제, 계급문제에 대한 이원론적 접근 비판』제하의 문건을 통해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정리한 바 있다. 

해방연대는 “‘사회주의 여성주의’는 이론에 있어서, 맑스주의의 역사유물론과는 병렬적으로 존재하는 가부장제를 주장하면서 이원론적 구조로 나아갔”으나 “계급문제와 여성문제를 총체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사회주의 운동과 여성해방운동을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내지 못하였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이원론적 입장은, 결국에는 여성운동을 하나의 부문운동으로서, 사회주의 변혁운동과 병렬적으로 위치시키게 되는 결과를 낳게”되므로 결국에는 “‘급진 여성주의’의 입장으로 귀결되는 경향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이러한 페미니즘은 “노동자계급적 여성해방운동보다는 범계급적 여성운동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고 우려하고, “사회주의자들은 여성문제를 이해하는데 있어 ‘사회주의 여성주의’로 빠지는 것을 명확히 비판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피해자 중심주의, 희생자 자처하기 속내

4인터에서 페미니즘을 ‘비과학적 부르주아 사상’이라고 규정한 데에서 볼 수 있듯이 국내  다수 페미니스트들의 기반은 대학/강단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으며 투쟁하는 노동자민중운동 진영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사회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남한사회가 지닌 가공할 학벌카스트의 힘과 무관하지 않다.  

성폭력과 ‘2차 가해’를 과도하게 해석하는 배경에는 ‘피해자 중심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엘리자베트 바댕테르(행동주의적 페미니스트, 프 에콜 폴리테크니크 철학과 교수)의 견해를 경청할 만하다. 바댕테르는 급진적 여성운동을 비판적으로 성찰한 자신의 책 『잘못된 길』에서 ‘희생자 자처하기’의 이점을 기술하고 있다. 

바댕테르는 “‘희생자’라고 하면 선한 쪽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며 “희생자가 항상 옳다는 이유 말고도, 가해자에 대한 가차없는 증오에 비례하여 피해자에게는 동정심이 유발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여성을 희생자화’하면서 여성의 실제적 위상과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은 공통점을 갖게”되는데, “그런 식으로 하면, 골치 아픈 문화적, 사회적 또는 경제적 차이점들을 요술지팡이처럼 한번에 없애 버릴 수가 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억지논리에 대해,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유럽’ 여성들의 상황과 ‘동양’ 여성들의 상황을 비교하면서 ‘도처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여성들은 증오와 폭력의 희생자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며 이는 “파리 7구에 사는 부르주아 집안 여성과 파리 외곽에 사는 젊은 아랍 여자가 똑같은 투쟁거리를 가지고 있다고까지도 말할 수 있게 된 셈”이라고 조소한다. 

바댕테르는 “남성의 절대권에 대항하는 투쟁은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전통적인 여성성에 남성을 끼워 맞추기 위해 남성성을 파괴하는 것은 오류이거나 실수”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분리주의 페미니스트들이 끊임없이 주장해 왔던 ‘남자들과 끝장내기’는 결국 실행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면서 “‘생물학적 차이’가 인간을 평가하는 최종적인 잣대가 되면서, 남성과 여성을 대립적으로 볼 수밖에 없게 된” 급진적 여성운동을 ‘잘못된 길’이라고 지적한다. 


국가주의 페미니즘화, 파쇼화

‘서울대 담배 성폭력 사건’에서 특별히 흥미로운 점은 A가 B에게 막무가내식 성폭행 혐의를 부여하기 위해 ‘담배 피우는 행위’까지 동원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는 A가 정부 및 지자체들이 활발하게 벌이고 있는 강제성 금연정책을 받아들여 자신의 필요에 따라 줄담배와 남성성을 꿰어 맞추기 위한 도구로 이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다시 말해 A와 주변인들 그리고 대책위가 자신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국가이데올로기인 ‘건강파시즘’에 포획됐음을 반증한다. 또 한편으로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외피로 한 급진적 페미니즘이 국가주의 페미니즘으로 자연스레 이행 중이며 파쇼화 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사과 따른 구체적 후속조치를 

위의 4인터 문건처럼 “만약 피해자의 명망(?)이 없고 그리하여 언론의 주목을 받지 않았더라면, 이 사건 역시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기 십상”이었다. 그리고 학생회장이 유시민의 딸인 유수진씨처럼 여학생이 아니라 어떤 이름 모를 노동자민중의 아들인 ‘남학생’이었다면 그는 아마도 이들이 쳐놓은 성폭행과 ‘2차 가해’의 올무에 여지없이 걸려들어 더 심한 낭패를 겪었을 것이다. 

어쨌든 대책위가 “'피해자 중심주의'를 왜곡한 것을 반성”하며 “피해자 중심주의의 이해와 적용에 대해 엄밀한 성찰을 수행하고 대책위 운영 방식을 개선하겠다"고 했으니 재앙적인 운동의 종식을 위해서도 향후 대책을 엄정하게 주시할 일이다. 

또한 ”B씨와 유수진씨에게 행해진 폭력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한데 대해서는 ‘사과’에 부합하는 구체적인 후속조치가 나와야 할 것이다. 대책위가 두 학생의 인권을 무참하게 짓밟는데 일익을 담당해놓고는 달랑 사과문 하나로 끝내는 건 있을 수 없으므로 이들의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배상은 물론 원직복직(학생회장) 조치가 당연히 뒤따라야 할 것이다.  


[한국인권뉴스 2012.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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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평론] 건강파시즘과 낙인찍기, 그 무서운 음모와 공모자들

[인권뉴스 운동평론  2012.10.8] 

건강파시즘과 낙인찍기, 
그 무서운 음모와 공모자들


건강한 모럴 테러리즘?


   “오늘은 또 어떤 험한 일이 벌어질까?” 차마 눈 뜨기가 무서운 세상, 연일 성범죄(성폭력)으로 도배하는/되는 언론들. 객관적 사실의 실체와 (성)범죄의 발생 원인과 분석은 수박겉핥기 수준이지만, 여하튼 대-한-민-국 국민들은 하루 평균 43명(2010년 1만 5천여 명, 자살률 OECD 1위)이 목숨을 끊는 사회적 살인과 정신분열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오늘 하루도 위태롭게 지내고 있다.  

잡다한 정치권력들이 마침 대선 길목에서 선정적인 여론몰이에 나섰다. ‘성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다며 강력한 ‘도덕’의 칼을 뽑았다. 

화학적 거세에서 물리적 거세까지 일사천리로 나가자고. 전자발찌도 더욱 강화하고 성범죄자 신상을 동네방네 알리자고. CCTV를 대폭 증설하고 불심검문 정도는 순순히 받으라고. 이참에 사형제를 존속시켜 흉악범들로부터 우리 아이들과 연약한 여성들을 보호하자고. 그리하여 자본주의 품안에서 ‘안전’하게 살자고 말이다.  

  2004년 성매매특별법(성특법) 시행 직후 현장 성노동자들을 만나 전국 성노동자 조직을 제안(성매매 여성 연대기구 뜬다: 경향신문 2004.11.06/ `성매매 금지법` 반대 첫 인터넷언론: 문화일보 2004.12.15)하고 성노동/성노동자운동에 직접 관련해 온 한국인권뉴스는, 성특법을 시작으로 향후 유사한 법·제도들이 등장해 파시즘의 강력한 일상적 수단으로 귀결되리라 예상하고 먼저 성특법 폐지운동부터 나섰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확산돼 ‘건강파시즘(Health Fascism)’에 대한 저항운동으로까지 확산해야 할 형편이다.   

  성특법 시행 8년이 지난 지금 그 아류인 법·제도들은 ‘건강이데올로기(Health Ideology)'로 가일층 진보?했다. 역사적으로도 나치(NAZI)가 ‘모럴 테러리즘’(대상: 술·성性·담배, 방식: 낙인찍기stigmatization)으로 인종청소 등을 통해 아리안족의 건강성을 강제한 것처럼 대-한-민-국도 그 길을 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성性분야(매춘/성매매)는 실효성과 무관하게 어쨌든 금지주의 성특법으로 법제화를 이루었으니 담배와 술이 그 다음 순서였다. 그 외에도 건강파시즘을 뒷받침 하기위한 법·제도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자체들은 금연구역을 크게 넓히고 과태료를 10만원까지 증액시켰다. 도심지에서는 실외는 물론 실내에서도 담배 피울 공간을 찾아보기 힘들게 했다. 

대 시민 서비스도 친절하게 진보?했다.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본 시민이 스마트폰으로 몰래 신고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T알리미 서비스 시범지역: 강남구, 대전시 등) 덕분에 완장 찬 사람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나타나 과태료를 물릴 수 있게 됐다. 군(軍)도 입영장병들에게 금연서약서를 작성케 하는 등 강력한 금연운동으로 화답했다. (인권침해 관련, 본지 2012.6.28 인권위 진정) 

  경찰청은 술에 취해 주민들을 폭행하거나 관공서 등에서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을 ‘주취폭력배’로 규정하고 강력 대응에 나섰다. 

서울시도 공원에서 음주행위를 전면 금지할 수 있도록 관련 법률 개정 등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대학에서 음주를 못하게 강제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곧 입법예고된다. 내년부터는 대학 내에서의 술판매와 음주가 전면 금지되며, 따라서 대학축제 기간 동안 열렸던 일일주점이나 시민사회운동 단체들의 대학 내 후원주점 행사들이 자취를 감추게 된다는 얘기다.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나지 않은가.  

  전과자의 일상생활 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할 수 있는 내용의 법 개정도 추진되고 있다. 최근 경찰이 입법예고한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안은 살인·성폭력·강도·상습절도·조직폭력·약취유인 등 강력범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주소지 거주 여부, 가족 상황, 직업 및 직장 등 소재지, 교우관계, 재범 위험성 및 사회생활 적응성 판단에 필요한 자료 등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물론 ‘재범 우려’가 높은 사람이 대상이라고는 하지만, 그 자의적 잣대가 공권력의 도덕성?과 함께 어디로 불똥이 튈지는 아무도 모른다.  

  또 보건복지부는 2013년부터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개인별 정신건강수준을 확인하는 생애주기별 정신건강검진을 실시한다고 선포했다. 취학 전 2회, 초등생 2회, 중고들 각 1회, 20대 3회, 30대 이후 각 10년마다 2회씩 정신건강을 묻는 문답지를 개인들에게 보내 이를 기준으로 위험군인지 아닌지를 가려내어 위험군인 경우 정신건강증진센터 등을 통한 정신건강서비스를 제공하고 정신건강의학과 등의 상담들을 적극 권장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황진미(진단검사의학 전문의)는 “전 국민 정신건강검진이 국가 감시시스템의 일환으로 위험한 개인을 색출하여 문제를 개인 탓으로 돌리는 배제의 기전으로 작용할 수 있다거나, 전문상담시장의 마케팅이 될 수도 있다.”고 크게 우려한다. 

국민건강당, 권력 방해자들에 대한 규제

  건강파시즘을 설명하기에 적절한 책으로 알렉스 쉬어러의『초콜릿 레볼루션』이 있다. 이 풍자소설에서는 국민의 건강을 최우선의 모토로 삼는 ‘국민건강당’이 집권한 뒤 모든 단 것을 금지하는 ‘사탕과 초콜릿에 관한 특별법’을 선포하는 독재국가가 등장한다. 

‘초콜릿과의 전쟁’이 선포되고 단 걸 좋아하는 아이들은 먹거리를 억압당한다. 과자와 빵을 만들어 파는 서민들은 생계가 벼랑에 몰리고, 경찰은 초콜릿 탐지기를 지닌 채 거리를 활보하고, 청소년선도단은 동료를 감시·밀고하며 당에 충성한다. 집집마다 도청은 기본, 불법자들은 잡혀가 혐오치료법이라는 정신교육을 받은 뒤 통제에 복종하는 순한 양이 돼 복귀한다. 저자는 이런 폭압적 사회에서 초콜릿 밀거래자들을 희망의 저항투사로 묘사하고 있다.  

  역사학자 스티븐 데이비스(Dr. Stephen Davies, 맨체스터 폴리테크닉大)는 오늘날 개인의 자유를 가장 교활하게 위협하는 것이 건강파시즘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또 이와 관련하여 대중들에 대한 정치 엘리트들의 과도한 영향력으로 인해 공공정책에 심각한 해로움을 끼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애연가 자유기구」에서도 활동하고 있는 그의 견해는 담배를 피우고 안 피우고의 문제를 넘어 우리들의 일상을 함부로 규율하려는 ‘건강파시스트’의 정체를 이해·폭로하고 저항하는 데 매우 유용해 보인다. 

스티븐 데이비스는 첫째로, 건강파시즘은 파시스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추진하는 세밀한 건강추구 정책 프로그램으로 자신들의 권력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의 활동을 규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즐겨 사용된다고 경고한다. 그들의 진정한 의도가 건강이 아니라 권력이라는 설명이다.    

두 번째로, 건강파시즘에 해당하는 전반적인 프로그램들은 공동체 사회를 위협할 정도의 매우 위험한 것으로 파시스트로 명명될 만한 사람들에 의해 제안되고 시행된다고 말한다. 이는 건강파시즘 프로그램들이 온갖 낙인찍기로 사회 구성원들을 이간질 시켜 갈라놓는 것을 의미한다. 또 국회입법과는 별개로 행정관료들에 의해 날로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행정입법(위임명령, 집행명령, 행정명령 등)도 좋은 사례에 해당한다. 

세 번째로, 건강파시즘을 추진하는 사회적 환경에는 엘리트주의적인 요인들이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스티븐 데이비스는 건강파시즘 프로그램들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습관을 통해 자신들에게 유익하다고 여겨지는 내용(건강정보)들로 채워지며 이러한 정책의 실현은 특정 엘리트들에게 커다란 이익을 제공한다고 보고 있다.    

네 번째로, 건강파시즘은 (현재로선) 우파와 좌파가 혼재된 상태이며 따라서 건강파시스트들은 정치적 스펙트럼에 있어 모든 영역에서의 지원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실제로 성性분야(매춘/성매매)의 경우 국내 성특법은 매우 후진적인 금지주의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진보적?이라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아래서 주류 여성계에 의해 제안되고 좌우불문 모든 정치집단들에 의해 승인되었으며, 운동진영 또한 묵인·방조한 사실이 있다.    

다섯 번째로, 건강파시즘의 성격을 지닌 다양한 건강운동들의 핵심 전략은 사회구성원들의 ‘도덕적 패닉’에 대해 강력한 자극을 주는 데 있으며, 파시스트들은 건강파시즘의 관철을 위해 프로그램 제안 전에 그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을 충분히 고려한다고 본다. 이는 그 사회 대중들이 국가라는 빅보스의 도덕적 훈육을 통해 고분고분 순치될 정도로 정치적 의식이 저열한 상태라야 건강파시즘이 성공할 수 있다는 파시스트들의 지능적인 판단을 의미한다.  

격조 높은 저항으로

  21세기 한국 사회에 철 지난 나치식 건강파시즘이 광풍을 일으키고 있지만 성특법 당시도 그랬던 것처럼 저항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진보진영에서조차 이런 화두를 꺼내면 돌아오는 건 “난 성매매 반대해” “난 담배 안 피워” “술은 몸에 나빠” “끊어야지 끊어야지 하지만 잘 안 되네”라는 단편적인 반응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더 이상 자본주의 아래 파시즘이라는 구조적 음모와 재앙을 말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엄중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사안별로 개별적인 ‘도덕적 찬반론’ 수준에 머무른다면 이는 결과적으로 건강파시즘에 공모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성특법 시행 8년, 그만하면 우리는 혹독한 후과를 지긋지긋하게 그리고 명백하게 치르고 있지 않은가. 자! 이제 파시즘에 제대로 맞설 수 있는 격조 높은 저항을 준비해보자.  


글: 최덕효 (한국인권뉴스 대표)


[한국인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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