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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류화 전략을 통해 본 부문운동과 관료활동가들

[운동평론] 성주류화 전략을 통해 본 부문운동과 관료활동가들

 

16일 오후 전북 군산시 대명동 성매매업소 건물 앞에는 군산 화재참사 10돌을 맞아 민들레순례단이 마련한 추모행사가 열렸다. 이들은 성명에서 “더 이상의 여성 희생을 방치하지 말고 사회적 책임을 갖고 성산업 착취구조를 해체하자”고 말했다. “성매매 없는 평화세상에서 고이 잠드소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이번 행사의 주체인 민들레순례단은 성매매 수요를 줄이기 위해서는 성매매 집결지를 폐쇄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하는 단체다.

성매매방지법 시행 5주년을 맞아, 우리사회의 성매매 현실과 여성 인권에 대한 인식을 돌아보는 영상제가 열렸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은 지난 15~16일 서울 종로3가 프리머스 피카디리 극장에서 <제1회 STOP! 성매매 영상제>를 열었다. 이번 영상제에서는 미국 십대 여성의 인신매매 문제를 다룬 데이비드 쉬스갤 감독의 다큐멘터리 <베리 영 걸스 Very Young Girls>가 아시아 최초로 상영되었다. 개막식에는 변도윤 여성부 장관과 신낙균 국회 여성위원회 위원장이 참석해 축사를 했다.



      
      
△ 민들레순례단의 군산화재참사 10돌 추모 행사 (한겨레 사진)


성매매 특별법 시행과 관련, 전국 집창촌 폐쇄 추진의 사령탑이었던 ‘여성인권중앙지원센터’가 2009년부터 시야에서 돌연 사라졌다. 정권 교체와 함께 종적을 감춘 여성인권중앙지원센터는 명목상으로는 한국여성인권진흥원으로 통합되었다고 하지만 사실상 폐쇄된 것이다. 성매매 특별법 시행 후 발생한 풍선효과로 전국적으로 음성 성매매만 확산된 상태에서 급조된 여성인권중앙지원센터가 실효성 없이 예산낭비만 했다는 그간의 지적이 이 센터에 대한 정리로 나타난 것이다.

민들레순례단의 ‘성매매 집결지 폐쇄’ 논리는 묘하게도 운동진영에서 흔히 사용하는 구호인 ‘비정규직 철폐’나 비공식부문 노동에 대한 홀대와 맥락에서 만난다. 전자가 여성계의 ‘성주류화 전략’의 산물이라면 후자는 이른바 전통 좌파의 ‘노동자주의’와 유관하다.  이러한 기조를 통해 운동의 외연을 넓히기는커녕 협애화 시켜 기득권을 누리고자 하는 이들은, 그 힘겨운 노동현장을 거점으로 일어서야 할 운동 대신 종종 상층부 중심의 선언적인 도덕운동(?)에 몰입하지만, 항상 그렇듯 주체도 없이 시점과 지점을 모두 놓치는 운동은 실패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운동이 제대로 되려면 과학적인 원인분석을 시작으로 이들의 기조가 폐쇄나 철폐를 넘어 구체적인 대안으로서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일자리”나 “국가의무로서의 사회복지”라는 정치적 요구로 전환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이는 자본주의에 대한 본질적 변혁운동 차원에서나 가능한 주문이므로 현 시기 개량적 부문운동에 익숙한 활동가들에게는 애초 무리다. 이들이 여전히 ‘성매매 집결지 폐쇄’ 등 구조적 모순을 도외시한 부문운동에 집중하는 데에는 변혁운동을 인지하지 못한 일부 ‘착한사람’(?)들의 동참에 힘입을 수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이 운동을 주도하는 소수 활동가들과 ‘세속의 이권’이 결코 무관하지 않은 까닭이다.

성주류화 전략은 지금도 ‘성매매 반대 캠페인’ 등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다. 성주류화 활동가들이 캠페인에서 자발적 성노동과 강제적인 인신매매를 구분하지 않는 점이나 성거래에 대한 주체로서 성인과 아동을 마구 뒤섞어 물타기하는 건 그만큼 급진적 여성주의가 생사의 기로에 서 있음을 반증한다. 해서 이들이 다급해진 나머지 오직 법·제도에 기대어 “불법이니까 하지 말란 말이야!”라고 성구매자들에게 외치는 말은 곧 그곳 성노동자들에게 “(대책없이) 불법이니까 집창촌에서 떠나란 말이야!”라는 강요로 연결돼, 그간 ‘피해자 보호’ 운운하던 이들의 감성이 결과적으로 '악어의 눈물'과 흡사하다는 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운동공간에서 ‘관료’라는 용어는 지극히 수치스런 표현이다. 신념을 지키기 위해 오랜 세월동안 풍찬노숙하는 동지들이 누군가를 ‘관료’라고 부를 때는, 그가 계급적 한계와 더불어 조직이 주는 경제적 안락함에 익숙해져 생각과 행동이 다른 기회주의자나 관념적 교조주의자로 변질됐음을 말한다. 이런 ‘관료’들은 부문운동에서도 현장 지배권력으로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는 성주류화 활동가들도 예외가 아니다. 따라서 '변혁'을 요구하는 21세기 공황의 초입에서 성주류화 전략이나 부문운동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관료활동가들의 존재는 가히 시대착오적이며, 운동의 발전을 저해하는 치명적인 재앙이라 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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