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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11/08/29

러시아의 좌익 공산주의 : 「노동자 그룹」의 선언(강령) 1

러시아의 좌익 공산주의: 러시아 공산당의 「노동자 그룹」의 선언(강령)(1)

「국제평론」 2010년 8월 142호, 국제공산주의흐름(ICC)

 

 

 

 

 우리는 여기 「러시아 공산당(볼셰비키) 노동자 그룹」의 선언(강령)을 펴낸다. 이들은 가장 유명한 지도자들 중 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종종 “미아스니코프(Miasnikov) 그룹”(미주1을 보라)으로 불린다. 이 그룹은 소위 좌익 공산주의1)의 일부로, 그들은 한 편으로 러시아의 다른 그룹들과 기반을 공유하며, 또 다른 한 편으로 세계, 특히 유럽의 다른 그룹들과 기반을 공유한다. 이 경향은 그들의 기원을 제3인터내셔널의 당과 러시아의 소비에트 권력의 기회주의적 타락에 대한 반응에서도 찾는다. 그들은 좌익 경향 속에서의 프롤레타리아적 대응을 대표하며, 과거 제2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의 발전에 직면했던 이들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 우리의 서론

 

 1918년 러시아에서는 볼셰비키2) 안에서부터 좌익 분파가 등장했는데, 이는 볼셰비키의 정치3)에 대한 의견차이의 표현이었다. 이것은 그 자체로 볼셰비키주의의 프롤레타리아적 성격의 증거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노동계급의 생생한 표현이었으며, 노동계급은 그 자신의 실천에 대해 급진적이고 지속적인 비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이기 때문이다. 볼셰비키는 혁명적 분파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냈다. 이에 저항하는 당 내부의 타락한 목소리가 제시될 때마다, 볼셰비키주의의 원래의 강령에 대한 배신을 비판하기 위해 당 내부에서 분파들이 생기거나 해체되었다. 스탈린주의가 당을 무덤에 파묻고 나서야 이러한 분파들의 끊임없는 발생은 멈췄다. 러시아 좌익 공산주의는 모두 볼셰비키였다. 볼셰비키주의의 본질을 부수는 이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칭송하며, 좌익 공산주의를 비난하고, 박해하고, 그리고 몰살시키려 할 때에도, 좌익 공산주의는 혁명의 영웅적 시기의 볼셰비키주의의 연속성을 방어했다.

 

 레닌이 그의 정치적 삶으로부터 물러난 것은 볼셰비키의 공개적 위기를 촉진한 한 요소였다. 한 편에서는 스탈린과 지노비예프, 카멘예프에 의한 “삼두 정치”의 형성 과정에서 관료적 분파가 당 내에서의 권력을 확고히 했다. 이 연합의 주요 유대는 트로츠키를 고립시키려는 의도였기 때문에 불안정했다. 트로츠키는 그 동안 상당한 우유부단함에도 불구하고 당 내에서 공공연히 반대파 입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볼셰비키 정권은 경제와 사회에서 새로운 어려움에 직면했다. 1923년 여름, 신경제정책(NEP)의 도입에 의한 “시장 경제”의 명백한 첫 번째 위기가 전체 경제의 균형을 위협했다. NEP가 1921년의 위기로 귀결된 전시 공산주의의 과도한 국가 집중을 되돌리기 위해 소개된 것이었던 것만큼, 이제는 경제의 자유화가 러시아를 자본주의 생산의 좀 더 고전적인 위기에 노출시켰음이 명백해졌다. 이러한 경제적 어려움과 “보통”의 자본주의 국가에서 일어나는 것과 같은 임금 삭감, 해고 정책과 같은 정부의 대응은 이미 궁핍해질 대로 궁핍해져 있던 노동계급의 상황을 악화시켰다. 1923년 8-9월, 동시적인 파업의 발발은 주요 산업 중심지에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현상 유지에 관심이 있었던 삼두체제는 NEP를 러시아에서 사회주의로 가는 왕도로 보기 시작했다. 이 관점은 특히 부하린에 의해 이론화되었는데, 부하린은 당의 극좌에서 우익으로 전향했으며, 스탈린 이전에 “사회주의” 시장 경제의 발전에 의한 “달팽이 걸음”으로 일국 사회주의가 가능하다는 이론을 내세웠다. 다른 한 편, 트로츠키는 국가의 경제적 위기에 대해 더 강화된 국가 집중과 계획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의 지도적인 그룹 안에서부터 나온 첫 번째 명확한 발언은 「46인의 강령」이었다. 이 강령은 Poliburo(정치국)에 1923년 10월 제출된 것이다. 「46」은 트로츠키와 가까웠던 피아타코브(Piatakov), 프레오브라진스키(Preobrazhinsky)와 같은 인물들과 사프라노브(Sapranov), 스밀노프(V Smirnov), 그리고 오신스키(Ossinski)와 같은 민주 집중 그룹의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문서에 트로츠키의 서명이 없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분파의 일부로 여겨지는 것을 두려워한 까닭(분파는 1921년 이후 금지되었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중앙 위원회에 보낸 공개적인 편지는 1923년 11월 프라우다에, 그리고 그의 팸플릿 「새 길」(New Course)에도 실렸고, 이것은 46과 비슷한 관심을 표현하고 있었으며 그를 반대파의 중요인물로 명백히 위치짓게 해 주었다. 

 

 「46인의 강령」은 최초에는 정권이 직면한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대응이었다. 이 강령은 지배적인 계층의 실용주의적 경향과 NEP를 불변의 원칙으로 끌어 올리려는 경향에 대한 반대로서 더욱 강력한 국가 계획을 위한 몽둥이 역할을 맡았다. 이것은 우리가 앞으로 보겠지만, 트로츠키를 둘러싼 좌익 반대파가 견지한 주제였지, 그 힘이 아니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당의 내적 생명을 질식시키는 것에 대해 제기한 긴급한 경고였다.4)

 

 동시에, 강령은 “병적인” 반대파로 불리는 것으로부터 거리를 두었다. 물론 강령은 그 단어를 당 내 위기의 표현으로 보았지만 말이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던 미아스니코프와 보그다노프의 「노동자의 진실」(Workers' Truth) 주위의 노동자 그룹의 경향에 대한 것이었다. 곧 트로츠키도 비슷한 관점을 취했다. 그들의 분석이 너무 극단적이라거나, 동시에 당의 병적인 상태의 표현이라고 바라보는 관점을 거부한 것이다. 트로츠키는 이러한 그룹들을 제거하기 위해 억압적인 방법으로 협력하는 것에 대해서도 내켜하지 않았다.

 

 사실 이런 그룹들이 “병적인” 현상들로 해체될 리는 없다. 「노동자의 진실」 그룹이 패배주의, 심지어 멘셰비즘으로 나아가는 특정 경향을 표현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독일 좌파와 네덜란드 좌파 내에서의 대부분의 경향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러시아에서의 국가 자본주의의 부흥에 대한 통찰은 10월 혁명을 다소 진보적인 부르주아 혁명으로 바라보며 그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경향에 의해 약화되었다.5)

 

 이것은 미아스니코프, 쿠즈네쵸프(Kuznetsov), 그리고 모이셰프(Moiseev)와 같은 오랜 볼셰비키들에 의해 지도되는 러시아 공산당(볼셰비키)의 「노동자 그룹」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이 그룹은 13차 볼셰비키 총회 직후 1923년 4-5월에 그 선언(강령)을 배포함으로써 처음으로 두드러지게 되었다. 이 문서를 검토하는 것은 그 그룹의 진지함, 그 정치적인 깊이와 전망을 확인하는 일이다.

 

 이 문서에 결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국제 혁명의 후퇴, 그 귀결로서 노동 계급에 의한 방어적인 투쟁의 필요를 깨닫지 못한 “공격의 이론(theory of the offensive)”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것은 1921년을 후퇴로 보지만 그로부터 많은 기회주의적인 결론들을 이끌어 낸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분석의 동전의 뒷면이다. 더욱이, 이 선언(강령)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시대에서 더 이상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없는 임금 상승을 위한 투쟁을 요구하는 잘못된 관점을 채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서의 강점은 그 약점을 압도한다.

 

 첫 째, 우선 단호한 국제주의다. 「콜론타이의 노동자 반대 그룹」과는 반대로 그 분석에 러시아 지역주의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강령의 전체 서론 부분은 국제적인 상황을 다루고 있으며 세계 혁명의 지연에 따른 러시아 혁명의 어려움을 언급하며, 러시아 혁명의 구원은 오직 세계 혁명의 부활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러시아 노동자들은 그 자신을 국제 프롤레타리아 세계 군대의 군인으로, 그의 계급 조직을 이 군대의 연대(regiment)로 보도록 배웠다. 10월 혁명의 운명에 대해 염려스런 질문을 제기할 때마다, 러시아 노동자들은 러시아 국경 너머의, 혁명의 조건이 무르익었지만 아직 혁명이 발발하지 않은 곳을 응시한다.”

 

 둘 째, 이 강령은 「통일 전선」과 「노동자 정부」의 슬로건이라는 기회주의적 정책에 대해 맹렬히 비판한다. 우리는 여기서도 깊은 국제주의를 확인할 수 있는데, 무엇보다 이것이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정치에 대한 비판이기 때문이다. 그룹의 입장은 분파주의도 아니고 - 다른 공산주의 조직들(독일의 KPD와 KAPD과 같은) 사이의 혁명적 통일의 필요를 긍정한다 -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이 사회민주주의 배신자들과의 연합을 요구하면서, 볼셰비키가 러시아 혁명에서 통일 전선 전술을 사용한 것처럼 그 방법을 계승했다는 겉치례의 논의에도 반대한다. “봉기한 프롤레타리아를 승리로 이끄는 전술은 통일 전선이 아니다. 오히려 이 부르주아 분파와 그들의 혼란을 야기하는 용어에 반대하는 유혈낭자하고 타협하지 않는 싸움만이 승리로 이끌 수 있다: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는 사회주의 혁명가들, 인민주의자들, 그리고 멘셰비키와의 연합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 반대하는 투쟁을 통해 이뤄진다. 통일 전선 전술을 폐기하고,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이 부르주아 분파 - 이 시기에는 제2인터내셔널의 정당들이다 - 가 결정적인 순간에 자본주의 체제를 방어하기 위해 무기를 들 것이라는 경고를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셋 째, 소비에트가 직면한 위험에 대한 해석이 강점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자본주의 과두정치로 교체”하려는 위협이 그 위험으로 지적된다. 강령은 관료 엘리트의 증가와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공민권 박탈이라는 현실을 보여주며, 공장 위원회와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비에트를 복구시켜 경제와 국가의 지도력을 접수할 것을 요구한다.6) 「노동자 그룹」에게 있어서는 노동자의 민주주의의 부활은 관료주의의 부흥에 반격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고, 「노동자의 점검」(Workers' Inspection)을 통해 흔듦으로서 새로운 전진이 있다는 레닌의 생각을 관료주의적 수단을 통해 관료주의를 통제하려는 시도일 뿐이라는 점에서 명백히 거부한 것이었다.

 

 넷 째, 강령은 막중한 책임을 표현하고 있다. KAPD는 독일의 베를린에서 1924년 발표한 「강령」에 대해 비판적 주석을 덧붙이는데, 이는 러시아 혁명과 코민테른의 죽음에 대한 독일 좌파의 성급한 판단을 표현한다. 이에 반해 「노동자의 그룹」은 러시아에서의 반혁명이 명백히 승리했다거나 코민테른의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고 성급하게 주장하지 않는다. 1923년의 “커즌 위기(Curzon crisis)”는 영국이 러시아에 전쟁 선포를 한 것이었는데, 이 동안 「노동자의 그룹」의 구성원들은 전쟁에서 소비에트 공화국을 방어하는데 헌신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에게서는 10월 혁명과 볼셰비키의 경험으로부터 단절했다는 어떤 단서도 발견할 수 없다. 사실 그 자신의 역할에 대한 앞서 언급한 의견은 이탈리아 망명 좌파에 의해 상술된 좌익 분파의 견해와 매우 닮아있다. 이 강령은 독립적으로, 심지어 비밀스럽게 스스로를 조직해야 할 필요를 인식하고 있으나 「러시아 공산당(볼셰비키)의 노동자 그룹」이라는 그 이름과 그 강령의 내용은 모두 그 스스로를 볼셰비키 당의 강령과 규칙의 연속선상에 위치 짓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강령은 당 내의 모든 건강한 구성원들, 리더부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진실」, 「노동자 반대파」, 그리고 「민주 집중파」와 같은 다른 반대 그룹에게서도 그룹을 재편성하고 당과 혁명의 재건을 위한 단호한 투쟁을 수행하자고 호소한다. 그리고 많은 측면에서 이것은 “46”이라는 당내 주도적인 분파가 그 자신에 의해 “우선적으로” 폐지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요약하자면, 「노동자 그룹」의 프로젝트 안에 어떠한 병적인 것은 없다. 그리고 이 「노동자 그룹」은 계급에 어떤 영향력도 갖지 못하는 분파 따위가 아니다. 이들은 모스크바에서의 그 구성원이 약 200명에 달하고, 관료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편을 일관적으로 지지했다. 따라서 1923년 여름과 가을에 걸친 비공인파업(wildcat strikes)에서도 적극적인 정치적 개입을 추구했다. 사실 당 기구가 이들을 최대로 억압하려 했던 데에는 당 내의 평당원들 사이에서 그룹의 정치적인 영향력이 증가했기 때문이었다. 미아스니코프가 예견했듯이, “그가 탈출하려는 동안” 자신을 암살하려는 시도까지도 있었다. 미아스니코프는 살아남았고, 투옥된 뒤 추방되었지만, 외국에서 20년동안 혁명 활동을 계속 했다. 러시아 안에서의 「그룹」은 대대적 체포에 의해 다소 절룩거렸고, 그것은 20년대 후반 감옥에 갇힌 안테 실리가(Ante Ciliga)가 다룬 소중한 글 「러시아의 수수께끼」(Russian Enigma)에서 반대파에 대해 설명한 것에서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으며 “극좌” 반대파 운동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최초의 억압은 진실로 불길한 사건이었다. 이것은 공산주의 그룹이 볼셰비키 정권 아래에서 직접적인 국가 폭력에 고통받았다는 첫 번째 공공연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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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공산당 노동자 그룹 선언(강령)

Manifesto of the Workers' Group of the Russian Communist Party

 

● 서문

 

 자기 계급의 고통과 고뇌, 그리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투쟁에 대해 무관심할 수 없는 모든 의식 있는 노동자는 우리의 혁명 발전의 모든 단계에서 적어도 한 번 이상 그 운명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한다. 각각의 노동자들은 자신의 운명이 세계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운명에 깊히 연관되어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상업의 발전은 문명화된 세계의 국가들 사이의 깊은 관계를 만든다”, “프롤레타리아의 운동은 국제적이어야 하며 이미 그렇게 되고 있다”는 옛 사회민주주의의 강령을 아직도 읽고 있다.

 러시아 노동자는 스스로를 국제 프롤레타리아 세계 군대의 병사로, 그의 계급 조직을 이 군대의 연대 조직으로 여기도록 배운다. 10월 혁명의 운명에 대한 염려스런 질문을 제기할 때마다 러시아 노동자들은 러시아 국경 너머의, 혁명이 무르익었지만 아직 발발하지 않은 곳을 응시한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는 혁명이 현재 주어진 시점에서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불평하거나 또는 그의 머리를 숙여서는 안된다. 반대로, 프롤레타리아는 이러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혁명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러시아 노동자가 그 자신의 나라를 보았을 때, 그는 노동계급이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하였고, NEP(신경제정책)의 가장 힘든 시련을 떠안았지만, 그들 앞에 NEP의 잘 사육된 영웅들이 서 있음을 본다. 그들의 상황과 자신의 상황을 비교하며, 러시아 노동자는 동요하여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우리는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윽고 가장 쓰디쓴 생각에 이른다. 노동자는 제국주의 전쟁과 내전의 모든 무게를 어깨에 지고 왔다. 노동자는 러시아의 신문에서 이 투쟁에서 피를 흘린 영웅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그는 빵과 물로 궁핍하게 살아간다. 다른 한 편 타인들, 그리고 자신의 무기를 내려놓은 노동자들의 고통과 비참함으로 자신의 배를 채우는 이들은 사치와 호화스러움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는 대체 어딜 향해 가고 있으며, 어떻게 될 것인가? 정말로 “신경제정책”이 「새로운 프롤레타리아트의 착취」로 변해버렸는가? 이러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이 현장의 노동자에게 제기되었을 때, 그는 과거와 현재를 이을 연결을 찾아 어떻게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이해하기 위해 뒤를 돌아본다. 그러나 이러한 쓰디쓰고 교훈적 경험들 속에서, 노동자는 복잡하게 얽혀 풀리지 않는 역사적 사건들의 그물망 속의 자신의 존재를 발견한다.

 우리는 우리의 힘이 닿는 한 사실을 이해하는 것을 돕고 싶고, 가능하다면 그에게 승리를 향한 길을 보여주고 싶다. 우리는 신성하거나 오류가 없는 마법사나 예언자인 척 하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우리는 우리가 말하는 모든 것에 대해 가장 날카로운 비판과 필요한 정정을 요구한다.

 

● 세계의 공산주의자 동지들에게!

 

 현재 선진국과 특히 그 중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한 나라의 생산력은 이 국가들의 프롤레타리아 운동이 굳은 살 가득한 손에 권력을 쥐기 위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공산주의 혁명이 되도록 하고 있다. 인류는 끊임없는 부르주아 민족 전쟁에 관계되어 야만에 삼켜지고 그 자신의 피 웅덩이에 빠져 죽거나,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여 권력을 획득하고,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 계급 사이, 인간 사이, 국가 사이의 전쟁을 완전히 끝장내어, 노동과 번영의, 평화의 깃발을 심는, 둘 중 하나의 미래를 맞이할 것이다.

 군비 경쟁,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등의 항공 함대의 신속한 강화는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혹독한 전쟁 발발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으며,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 전쟁으로 죽을 것이다. 마을, 공장, 기업, 그리고 모든 노동자들이 힘겨운 노동을 통해 창조한 모든 부가 파괴될 것이다.

 부르주아지를 전복시키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다. 각 나라에서 더 빨리 부르주아지를 물리칠수록 세계 프롤레타리아트는 더 빨리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실현시킬 것이다.

 착취와 억압, 그리고 전쟁을 끝내기 위해 프롤레타리아트는 임금을 높이거나 노동 시간을 줄이기 위한 투쟁을 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투쟁은 과거에는 필요했다. 그러나 오늘날 투쟁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부르주아지와 가지각색의 모든 유형의 억압자들은 모든 나라의 「사회주의자들」에 대해 지극히 만족해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를 그 본질적인 임무인 부르주아지와 그 착취 정권에 대항하는 투쟁으로부터 떨어뜨려놓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자들」은 복종과 폭력에 대해 최소한의 저항조차 보여주지 않은 채 사소한 요구들만을 제안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들은 특정 순간, 부르주아지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직면했을 때 부르주아지의 유일한 구원자가 된다. 노동자 대중은 그 억압자들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면 의심스런 눈초리로 바라본다. 그러나 만약 같은 일이 그들의 이해에 맞는 것처럼, 사회주의 용어로 치장되어 제시된다면, 노동 계급은 그 언어에 현혹되어, 배신자들을 신뢰하고 그 힘을 쓸데없는 싸움에 낭비한다. 그러므로 부르주아지나 「사회주의자들」이나,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별로 다른 놈들이 아니다.

 공산주의자 전위는 무엇보다도 먼저 투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계급 동지들의 머릿속에서 모든 지독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제거하고 프롤레타리아 의식을 획득하도록 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 모든 부르주아 찌꺼기들을 태워버리는 것은, 프롤레타리아의 모든 문제와 노동을 공유할 때 가능하다. 지금까지 부르주아지와 한 패거리인 이들을 따라왔던 프롤레타리아트가 투쟁하고, 파업하기 시작할 때, 외부에 서서 그들을 경멸적으로 비난해서는 안된다. 반대로, 그들과 함께 그들의 투쟁 속에 있으면서, 이 투쟁이 오직 부르주아지만을 살찌울 뿐이라고 끊임없이 설명해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진실된 말을 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정직한 혁명의 신발을 더럽히는 의미가 될지라도 때로는 똥 무더기 위에 서야만 할 때(선거에 입후보한다든가)도 있는 것이다.

 확실히, 모든 것은 각 나라의 힘의 균형에 달려 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는 선거에 나가거나 파업에 참여할 것 없이, 바로 전투에 돌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나라의 사정이 똑같지는 않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공감을 얻기 위한 모든 방법을 그대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모든 근본적인 원칙을 양보하고 망각하거나 포기하는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거부해야한다. 왜냐하면 지금 당장의 성공에 대한 관심이 진짜 해법을 포기하도록 이끌기 때문이며, 우리를 대중들을 지도할 수 없도록 하고, 그럼으로써 그들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따라하면서 끝나게 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 의해 끌려 다니게 된다.

 우리는 움직이지 않은 채 남들을 기다려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혁명은 모든 나라에서 동시에 발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우유부단함을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미성숙함의 탓으로 돌리거나 다음과 같이 말하며 변명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혁명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게다가 매우 강하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우리와 함께 행동하지 않은데도 우리가 우리의 부르주아지를 전복시킨다면, 그 후에는 어떻게 되겠는가?”

 독일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지와 그에 봉사하는 이들을 모두 쫓아내 버렸다고 가정해 보자.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부르주아지와 사회적 배신자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분노로부터 멀리 도망쳐 프랑스나 벨기에로 도망칠 것이고, 푸앵카레와 그 동료들에게 독일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원한을 풀어달라고 간청할 것이다. 그들은 프랑스에게 「베르사유」 조약을 존중할 것을 약속하며, 그들에게 라인 지방과 루르 지방을 주겠다고 제안할 수도 있다. 그것은 그들이 러시아 부르주아지나 그 사회민주주의 동맹들이 했었고, 또 미래에 반복할 행동을 똑같이 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당연히 푸앵카레는 독일을 프롤레타리아트로부터 구원하고, 동시에 소비에트 러시아를 전 세계의 도둑들로부터 구원하는 그런 사업을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다. 푸앵카레와 그 동료들에게는 불행히도 군대를 구성한 노동자 농민들은 그 사업이 독일 프롤레타리아트에 반대해 독일 부르주아지와 그 동맹자들을 돕는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자신의 총구를 주인들, 다시 말해 푸앵카레를 향해 돌릴 것이다. 푸앵카레는 자기 자신과 프랑스 부르주아지를 지키기 위해 그의 군대를 부를 것이고, 불쌍한 독일 부르주아지와 그 사회주의 동맹들을 그들의 운명에 내버려 둘 것이다. 이것은 독일 프롤레타리아트가 베르사유 조약을 깬다고 해도 그럴 것이다. 푸앵카레는 「라인」과 「루르」로부터 추격을 받아, 인민의 자기 결정권 원칙에 입각하여 합병이나 배상금 없는 평화를 공포할 것이다. 푸앵카레에게 「쿠노」와 파시스트를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 평의회에 의해 운영되는 독일은 등이 휘도록 열심히 일할 것이다. 당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면, 당신을 같은 곳을 빙글빙글 돌지 말고 그것을 써야 한다.

 

 독일 혁명을 위협하는 다른 위험도 있다. 그것은 세력의 분산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세계 혁명의 이해에 따르면, 모든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는 단결해야만 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가 노동계급의 적에 대한 결정적인 단절과 무자비한 전투 없이 상상할 수 없다면, 그것은 자신의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운동을 군사적으로 억압했던 제2 인터내셔널의 사회적 배신자들에게 이와 같은 승리는 공산주의 혁명의 목표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가진 모든 세력들에 참가하지 않고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것과 같다. 이것이 왜 우리 「러시아 공산당(볼셰비키)의 노동자 그룹」이 조직적으로 그리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제3 인터내셔널에 속한 다른 정당들 사이에서 진실된 혁명적 공산주의 프롤레타리아들에게 마지막 결정적인 전투를 위해 힘을 모으라고 호소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제3 인터내셔널의 정당들 모두에게 뿐만 아니라 이러한 인터내셔널에 가입되지 않았지만 공동의 목적을 추구하는 특정 정당들에게도 전투와 승리를 위해 통일 전선을 구성하자고 호소하기 위해, 「제4 공산주의 노동자 인터내셔널」1)의 정당들에 대한 우리의 소신을 밝혔다. 

 

 첫 번째 단계가 가까워졌다.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는 공산주의의 원칙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조직에 기반하여 부르주아지와 열심히 그들을 비호해 온 모든 종류의 추종자들과 그 아류들(사회주의 혁명가당, 멘셰비키 등)을 끌어내렸다. 그리고 독일 프롤레타리아보다 훨씬 약함에도 불구하고 세계 부르주아지들이 이끌어온 모든 공격들, 부르주아지와 지주들, 그리고 러시아의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고무된 모든 공격들을 물리쳤다.

 

 이제 서유럽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힘을 모아 권력 투쟁을 시작할 때이다. 소비에트 러시아, 10월 혁명, 그리고 세계 혁명을 위협하는 것으로부터 눈을 감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은 명백하다. 현재 소련은 매우 힘든 시기이다. 엄청난 결핍과 그 무게에 직면해 있으며, 그것들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와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에게 치명적이 될 것이다. 이러한 결핍은 러시아 노동자 계급과 세계 노동자 운동의 약함으로부터 비롯된다. 러시아 프롤레타리아는 한 쪽에서는 NEP의 관료주의적 퇴보 경향, 다른 한 쪽에서는 러시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승리를 내외부에서 위협하는 경향에 대해 아직 맞서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직접적으로, 그리고 즉각적으로 10월 혁명의 승리가 모든 위협으로부터 방어되는 데에 관심이 있다. 러시아와 같은 나라가 세계 공산주의 혁명의 기지로서 존재하는 것이 이미 승리를 보증함을 의미하며, 결과적으로 국제 프롤레타리아 군대 - 모든 국가의 공산주의자들 - 의 전위는 소비에트 러시아와 공산주의 프롤레타리아의 군대(볼셰비키)가 겪은 결핍과 고통에 대해 여전히 침묵하는 대다수의 프롤레타리아를 대표하여 프롤레타리아트의 의견을 단호하게 표현해야 한다.

 

 「러시아 공산당(볼셰비키)의 노동자 그룹」은 러시아의 상황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으며, 이 작업을 시작하려 한다.

 

 우리 공산주의 프롤레타리아는, 우리가 소비에트 러시아와 공산주의에 반대해서 이야기한 것들을 악용할 사회적 배신자들과 악당들이 있다는 이유로 우리의 잘못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공포는 전혀 근거가 없다. 우리의 적이 공개되어 있든, 숨겨져 있든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멍에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려 하는 우리들 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자들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재앙을 일으키는 주체로 언제나 그대로 존재한다. 이로부터 무엇을 생각할 수 있는가? 우리는 그들이 있다는 이유로 우리의 문제와 잘못에 대해 침묵하고 논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뿌리 뽑을 조치도 취하지 않아야만 하는가? 우리가 스스로 사회적 배신자들이 테러를 저지르도록 버려둔다면, 우리가 계속 침묵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대로 간다면 우리가 기억하는 10월 혁명이 더 이상 승리가 아니게 될 것이다. 이는 사회적 배신자들에게는 매우 유익한 일이 될 것이며, 국제적 프롤레타리아 공산주의 운동에게는 죽음의 일격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러시아 공산당(볼셰비키)의 노동자 그룹」이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노동계급의 이해에 따라 시작하려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사회적 배신자들의 의견에 직면하여 공포에 떠는 일이 없이, 인터내셔널과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총체성에 대해 결정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국제적 운동과 러시아 운동의 약점으로 그 실패가 설명될 수 있음을 보았다. 다른 나라들의 프롤레타리아트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도움은 그들 나라에서의 혁명이나 적어도 하나 둘의 선진국에서의 혁명이다.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해방은 러시아 노동자 계급이 10월 혁명의 승리로부터 차지한 위치를, 다른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가 봉기하여 그들의 적을 패배시키는 시점까지 보존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러시아 노동 계급은 제국주의 전쟁, 내전과 기근으로 약해져 강력하지 않다. 그러나 지금 위협이 되는 위험들에 대해서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기반으로 적확하게 투쟁을 준비할 수 있다. 이 경험은 그들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며, 다른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의 도움으로 그것을 계승할 것이다.

 

 「러시아 공산당(볼셰비키)의 노동자 그룹」은 러시아 전역에서 경고하고 호소해 왔다. 러시아 공산당에서 프롤레타리아의 편에서 생각하는 모든 이들은 함께 모여 투쟁을 시작하고 있다. 우리는 10월 혁명의 승리가 직면할 운명에 대해 분명 의식적인 프롤레타리아에 앞서 깨달을 것이다. 투쟁은 어렵다. 우리의 활동은 지하활동에 제한되어 있으며, 우리는 비공개적으로 움직인다. 우리의 「선언」은 러시아에서 출간될 수 없다. 우리는 비합법적으로 선언을 복사하고 유포한다. 우리 그룹에 속한다고 의심이 되는 동지들은 당과 조합에서 제명되며, 체포되고 추방되며 해체된다.

 

 러시아 공산당 12차 당대회에서, 지노비예프 동지는 당과 소비에트 관료의 승인 아래 노동계급으로부터의 비판을 질식시키는 새로운 규칙을 공표했다. “러시아 공산당의 리더십에 대한 모든 비판은, 좌우를 막론하고 멘셰비키주의다.”(12차 대회에서의 그의 연설을 참고하라) 그것은 만약 리더십이 공산주의 노동자나 프롤레타리아에게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누군가 비판하기 시작하면, 그는 당과 노동조합에서 배제되어 GPU(체카)에게 넘겨질 것임을 의미했다. 러시아 공산당의 중앙 위원회는 그 스스로를 로마의 교황처럼 절대 오류가 있을 수 없는 존재로 여기기 때문에 어떤 비판도 원하지 않는다. 우리의 걱정들, 러시아 노동자들이 10월 혁명의 승리가 직면할 운명에 대해 걱정하는 모든 것들은 반혁명으로 선언된다. 우리, 「러시아 공산당의 노동자 그룹」은 모든 세계 프롤레타리아트 앞에서 소련이 국제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가장 위대한 성과 중 하나라고 선언한다. 우리가 소비에트 권력이, 프롤레타리아 권력이, 그리고 러시아 노동계급의 10월의 승리가 자본주의 과두제로 변형되고 있다는 위협에 대해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우리의 모든 힘을 다해 소비에트의 권력을 되돌리려는 시도들을 막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들이 소비에트 권력이라는 이름아래 우리를 체포하고 감옥에 가두더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러시아 공산당의 지도 그룹이 우리의 10월 혁명에 대한 고려가 불법이고 반혁명적이라고 선언한다면, 모든 국가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들과 제3 인터내셔널에 충실한 동지들은 동지들이 알고 있는 우리의 「선언」에 기초하여 스스로 결정적인 의견을 표현할 수 있다. 동지들, 10월 혁명을 위협하는 이 모든 위험들에 대해 걱정하는 모든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가 동지를 보고 있다. 동지가 회의에서 우리의 강령에 대해 논쟁하길 바라고 동지의 대표가 제3 인터내셔널의 5차 당대회에서 당내 분파에 대해, 러시아 공산당의 정책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동지들, 우리의 선언을 토론하고 혁명을 만들어라. 이해하라 동지들, 이것은 당신이 완전하고 늘 고통받는 러시아의 노동자 계급이 10월 혁명의 성과를 보존하는 것을 돕는 것임을. 우리의 10월 혁명은 세계 혁명의 일부이다.

 

노동 동지들에게!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의 10월 혁명의 승리 만세!

 

세계 혁명 만세!

 

***

미주1 : 선언의 앞 두 파트는 “프롤레타리아 계급 투쟁의 성격”, “계급 투쟁의 변증법”이라는 표제가 붙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여기 공포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우리의 책에는 포함되어 있다. 그것들은 마르크스가 1848년 공산주의 선언에서 명시적으로 선언했던 것처럼 역사의 관점과, 계급투쟁의 역할을 상기시킨다. 우리에게는 그 당시 「노동자 그룹」이 세계 프롤레타리아가 직면한 역사적 시기에 대해 한 분석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으로 곧바로 가는 것이 더 좋을 것처럼 보인다.

 

러시아 혁명에서의 사울과 바울

 

 의식 있는 노동자들은 혁명을 통해 어떻게 다른 계급들이 “기적적으로” 사울에서 바울로 변화하는지 보았다. 그것은 평화의 선동가에서 내전의 선동가로, 그 역으로의 변화이기도 하다. 최근 15-20년의 사건들을 기억하는 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변화를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다.

 

 부르주아지, 지주, 성직자, 사회주의 혁명가당과 멘셰비키를 보라. 성직자들과 지주들 사이에서 누가 1917년 이전의 내전을 지지했는가? 아무도 아니다. 보편적 평화와 은총(state of grace)을 지지하는 모든 이들은 인민들이 내전을 지지 선전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쳐넣고 쏴 죽이고 목매달아 죽였다. 10월 이후에는? 누가 그만한 열정으로 내전을 지지 옹호 했는가? 똑같은 기독교의 독실한 아이들이었다. 성직자, 지주, 그리고 공무원들.

 

 「헌정 민주주의자들」(Constitutional Democrats)로 대표되는 부르주아지는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내전의 전사들이 아니었던가? 비보르크의 폭동을 기억하라. 임시 정부의 최고 행정관이었던 밀류코프는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우리은 우리 손에 붉은 깃발을 쥐었다. 이 붉은 깃발은 오직 우리의 시체를 밟고서만이 빼앗아 갈 수 있을 것이다.” 진실이다. 그는 두마 앞에서는 매우 다른 이야기를 했다. “이 붉은 깃발은 우리의 눈에 거슬린다.” 그러나 우리는 1905년 이전에는 부르주아지가 내전에 호의적이었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리고 1917년, “평화, 평화, 사회의 모든 계급의 연합 : 이것이 국가의 구원이다!”고 악의를 갖고 공표했던 임시정부 깃발 아래에서 이야기했던 것은 바로 부르주아지, 카데츠였다. 그러나 10월 이후에는 어떠했는가? 오늘날 누가 광신도와 같이 계속해서 부르짖는가?: “소비에트를 무너뜨려라. 볼셰비키, 전쟁, 내전을 그만둬라! 이것이 국가의 구원이다!” 이들이 지금 갈채를 받고 있는 똑같은 선량한 주인들과 “혁명적” 코훌쩍이들이다.

 

 사회주의 혁명가당은 어떤가? 그들은 한때 플레베(Plehve),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Grand Duke Serge Alexandrovich), 보그다노비치(Bogdanovich)와 구 정권의 기둥들을 암살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이러한 폭력적 혁명가들은 1917년 임시 정부 아래에서 연합과 시민 평화를 요구하지 않았던가? 그렇다. 그들은 요구했다! 10월 이후에는? 그들은 여전히 평화를 사랑했나? 그렇지 않다! 그들은 다시 폭력의 인간으로, 그러나 이번에는 반동적으로, 레닌에 반대하여 그러했다. 그들은 이제 내전을 외친다.

 

 멘셰비키들은? 그들은 1908년 이전에는 무장 봉기의 옹호자들이었으며, 1908년에서 1917년까지는 8시간 노동, 토지의 징발, 민주 공화국의 옹호자로서 독재에 저항하여 단체를 조직할 권리와 합법적인 투쟁을 쟁취하기 위한 일종의 “계급 연합”에 함께 했었다. 그들은 독재정권의 전복에 반대하지는 않았으나 전쟁 동안에는 그렇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애국자들이었고, 심지어 “국제주의자”이기까지 했다. 1917년 10월 이전, 그들은 시민 평화를 지지했다. 그러나 10월 이후, 군국주의자들, 카데츠와 사회주의 혁명가당처럼 내전을 옹호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우리 러시아에만 국한된 현상인가? 아니다. 중세 봉건주의를 전복하기 전 영국, 프랑스, 독일 부르주아지 등은 내전을 옹호하고 이끌었다. 봉건주의가 먼지가 되고, 부르주아지가 권력을 잡은 후, 그들은 시민 평화의 옹호자가 되었으며, 특히 전력을 다해서 싸웠던, 새롭게 권력을 쟁취하고자 등장한 노동계급에 대해서 그러했다.

 

 이제 어디 부르주아지가 내전에 호의적인지 보라. 어디에도 없다! 모든 곳에서, 소비에트 러시아를 제외하고서는 평화와 사랑을 선전한다. 이러한 태도가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취하는 순간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은 그대로 시민 평화의 옹호자로 남아 있을 것인가? 그들은 평화와 단합을 요구할 것인가? 아니다. 그들은 곧 내전을 옹호하는 폭력적인 선동가가 될 것이며, 그 전쟁을 끝까지 수행할 것이다.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여, 우리들은 여전히 이 법칙의 예외인가?

 

 전혀 아니다.

 

 또 다시 1917년으로 돌아간다면, 우리의 노동자 평의회의 대표자들은 내전의 핵심이 되었을까? 그랬다. 그들은 나아가 권력을 잡았다. 그들은 부르주아지, 지주, 성직자와 그 외 평의회에 적대적인 이들에게 함께 봉기하기를 원했을까? 아니다. 그들은 부르주아지와 그 크고 작은 모든 동맹들이 저항없이 복종하길 바랬을까? 그렇다. 그들은 그것을 원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그러므로 권력을 쥐기 전에 내전을 옹호했고, 그 승리 이후에 내전이 아니라 시민 평화를 옹호했다.

 

 이 모든 변혁에서 역사적인 관성이 충분히 있었음은 진실이다. 군국주의자들에서 멘셰비키들, 사회주의 혁명가당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들이 소비에트 권력에 대항해 내전을 지휘하던 시기에조차 그것은 “시민 평화”의 슬로건 아래 있었다. 사실 프롤레타리아트는 평화를 원했다. 그러나 다시 전쟁을 외칠 수 밖에 없었다. 1921년, 러시아 공산당의 중앙 위원회의 순환 중 하나에서도 이러한 불가해한 상황을 엿볼 수 있었다. 내전에 대한 슬로건은 심지어 1921년에도 강한 혁명적 정신의 지표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관점을 흔들지 못하는 단지 역사적인 경우임을 알 수 있다.

 

 만약 최근의 러시아에서, 10월 혁명에 의해 쟁취한 프롤레타리아 권력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시민 평화를 옹호한다면, 모든 솔직한 프롤레타리아들은 유혈낭자하고, 폭력적인, 세계 부르주아에 저항하는 시민 전쟁의 슬로건 아래 굳게 단결해야만 할 것이다.

 

 노동 계급은 실제로 부르주아 국가에서의 착취 계층이 요구하는 시민 - 보편적 평화, 은총이 얼마나 병적인지 보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약 내일 이 부르주아 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잡게 되면, 지주에서부터 제2, 2 1/2 인터내셔널에 이르기까지 모든 오늘날의 평화주의자들이 프롤레타리아트에 저항하는 내전을 일으킬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전력을 다해 우리는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모든 국가에서의 유혈낭자하고 무자비한 내전을 요구해야 한다. 우리는 바람을 일으킬 것이다. 태풍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가 승리하여 권력을 잡은 모든 곳에는 더욱 더 많은 힘을 가지고 시민적, 보편적 평화, 은총을 선전할 것이다. 

 

 모든 나라의 지주들, 멘셰비키들, 사회주의 혁명가당은 자본주의 억압이 지배하는 모든 곳에서 시민 평화를 옹호하고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차지한 모든 곳에서 더욱 잔인하고 유혈낭자한 내전을 옹호할 것이다.

 

오늘날의 주요한 책무

 

 모든 나라들에서의 생산력의 발전은 자본주의가 스스로 그 생산력을 파괴하는 요소가 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세계대전과 뒤따른 모든 사건들, 베르사유 조약, 배상금 문제, 제노바, 헤이그, 로잔, 파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프랑스에 의한 루르 점령, 대규모 실업에 더해 끝나지 않는 파업의 물결은 자본주의 착취의 마지막 시간이 도달했고, 징발자였던 자들이 이제 몰수당해야 할 때가 왔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인 임무는 자본주의가 던져놓은 야만으로부터 인류를 구하는 것이다. 이 임무는 임금 상승, 8시간 노동, 부분적인 양보 등 자본주의가 선사해 줄 수 있는 것들로는 성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스스로를 결정적인 권력 투쟁을 목표로 하도록 조직화해야 한다.

 

 그러는 동안,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물질적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을 옹호하는 선전은 프롤레타리아트를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생활 수준에 진정한 개선이 있을 것이라는 환상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악의적인 선전이다.

 

 선진 노동자들은 파업에 참여해야 하고, 상황이 허락하는 한 지도해야 한다. 그들은 이 길을 따라가면 생활 조건을 개선할 수 있다고 믿는 프롤레타리아 대중에게 실질적인 요구를 제안해야 한다. 이러한 태도는 프롤레타리아 사이에서 그들의 영향력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확고히 이야기해야 한다. 이것은 구원을 위한 길, 노동계급의 삶의 조건을 증진시킬 수 있는 길이 아님을. 이 모든 자본에 대한 분쟁을 지지하는 결정적인 투쟁에 대한 관점으로 프롤레타리아를 조직할 수 있다면, 이것이 거부될 리가 없다. 권력을 차지하지 못한다면 생존의 조건을 변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한 것임을 설명하는 것보다 이 운동의 우두머리가 되어 용감하고 단정적이며, 실질적이고, 프롤레타리아트가 이해할만한 요구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모든 파업, 모든 싸움이 정치적인 권력을 차지하고, 착취자들을 몰수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함을 증명하는 교훈이 될 것이다.

 

 여기 모든 나라에서 온 공산주의자들은 의회에 대해 같은 태도를 취해야 한다. 국회의원은 입법 과정을 통해 긍정적인 일을 해보려 할 것이 아니라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이러한 의회가 파괴될 수 있도록 선전하고 작업한다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이와 비슷하게, 임금, 시간에 대한 파업의 필요가 있는 곳에, 우리는 반드시 참여해야 하지만 노동자들의 경제적 조건이 진정으로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가서는 안된다. 대신 우리는 이러한 환상을 깨부셔야 하고 각 투쟁을 마지막 투쟁을 위해 프롤레타리아트의 군대를 조직하기 위한 의식화의 준비로써 이용해야 한다. 한때는 8시간 노동 요구가 혁명적이었지만, 사회주의 혁명이 현안이 된 모든 나라들에서 그 요구는 더 이상 혁명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 통일 전선에 대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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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국제 평론에 게재될 선언의 나머지 부분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사회주의 통일 전선

○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잡은 국가(노동자 민주주의)에서의 통일 전선에 대한 의문

○ 민족 문제

○ 신 경제 정책(NEP)

○ 신경제정책과 농촌

○ 신경제정책과 정치

○ 신경제정책과 산업 관리

 

 미주

1. 가브리엘 미아스니코프(Gabriel Miasnikov)는 우랄 출신의 노동자로 1921년 볼셰비키 당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때는 결정적인 10차 당대회 직후로, 그는 “군국주의자들부터 아나키스트들까지 모두 포함하는 언론의 자유”(Carr, 「The Interregnum」에서 인용)를 요구했다. 레닌이 이러한 주장을 단념시키기 위해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굽히지 않았고, 결국 1922년 초기 당으로부터 축출되었다. 1923년 3월, 그는 다른 동지들과 함께 「러시아 공산당(볼셰비키)의 노동자 그룹」 창설에 동참했으며, 그들은 RCP 12차 대회에 배포된 이 「선언」을 출간했다. 그룹은 당 내에서, 비당원 노동자들 사이에서 비합법 활동을 시작했고, 1923년 여름 파업의 물결 속에서 대중 파업을 요구하고 본질적으로 방어적인 계급 운동을 정치화하려고 시도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파업에서의 그들의 활동은 GPU가 그들을 실질적인 위협으로 인식하도록 하는데 충분했다. 주도적인 동지들의 체포가 잇따랐고, 이는 그룹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축소된 규모로 1930년 초반까지 그들의 지하 활동을 수행했다. 그 이후 미아스니코프의 인생사는 다음과 같다. ; 1923년에서 1927년까지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감옥이나 지하 활동을 위한 망명 생활로 보냈다. 1927년 러시아에서 탈출한 그는 페르시아, 터키로 도망 다녔고, 그곳에서 역시 수감생활을 하다가 결국 1930년 프랑스에 정착했다. 이 시기동안 그는 여전히 러시아에서의 그의 그룹을 조직하려 했다. 전쟁 후, 그는 스탈린에게 그가 소련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원했다. 그가 그의 나라로 돌아간 날 이후 그에 대한 소식은 없다. 왜냐하면 군사 법정에 의한 비밀 심판으로 인해 그는 1945년 11월 16일, 모스크바의 감옥에서 총살당했기 때문이다.

 

(주)

1) 우리의 글 “좌익 공산주의와 맑스주의의 연속성”을 보라.

   http://en.internationalism.org/the-communist-left

2) ICC는 이미 영어와 러시아어로 「러시아 공산주의 좌파」 소책자를 발간했다. 이 책은 러시아에서의 좌익 공산주의의 상이한 표현에 대한 연구에 기여한다. 현재 프랑스어 판이 준비중이다. 영어 판은 「노동자 그룹」의 강령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 당시 새로운 완벽한 강령이 러시아에서 발견되었다. 오늘 우리가 펴내는 판은 원래 프랑스 어로 쓰여진 가장 최신의 것이며 미래의 프랑스어 개정판에 포함될 것이다.

3) 「국제평론」 8, 9호에 실린 우리의 글 “러시아의 좌익 공산주의”와 「러시아 공산주의 좌파」를 읽을 것.

4) “중앙 위원회의 이런저런 결정에 대해 만족하지 못한 당의 구성원들은, 그들의 마음속에 이런저런 의심을 품었고, 개인적으로 이런저런 오류, 불규칙성, 무질서들을 기록해 두었지만, 그것을 당의 회의에서 밖으로 꺼내어 말하기를 두려워했으며, 그것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현재 지방 위원회와 RCP의 중앙 위원회의 구성원을 추천하고 선택하는 것은 당도 아니고, 그 대중도 아니다. 반대로, 당의 서기 위계는 전에 없을 정도로 엄청난 정도로 집행 위원회(executive assemblies)가 될 회의와 총회의 구성원들을 전에 없을 정도로 뽑았다... 새로 만들어진 자리는 정권이 당 내의 분파의 독재라는 것으로 설명이 된다. 분파적 정권은 폐지되어야 하며, 우선 첫째로 그것을 만든 이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그것은 동지적인 통일과 당내 민주주의에 의해 대체되어야 한다.”

5) 「국제평론」 8, 9호의 “러시아의 좌익 공산주의” 참조.

 

6) 그러나 선언(강령)은 또한 노동조합이 경제를 관리하는 중앙집중적 기관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방어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노동자 반대파」의 옛날 입장은 1921년 미아스니코프가 비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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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행기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위하여] 프롤레타리아 행정의 몇 가지 요소(2)

[이행기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위하여]

프롤레타리아 행정의 몇 가지 요소(2)

미첼, 「빌랑」 38호. 1936년 12월 - 1937년 1월 「국제평론」134호, 2008. 가을. 25-28쪽

 

 

 

 우리 견해에 따르면 당과 대중과의 관계를 조건지우는 경제 행정의 몇 가지 규범과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를 강화하는 기초를 검토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어떠한 생산체제도 확대 재생산 기초, 즉, 부의 축적 위에서만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 유형은 외부적 형식과  표명으로보다는 그 사회적 내용, 생산의 동기, 즉, 계급관계로 표현된다. 역사의 진화 속에서 내부적이고 외부적 두 가지 과정은 항상적 모순 속에 있다. 자본주의 발전은 생산력의 진보가 그 반대인 프롤레타리아트의 물질적 조건의 퇴행을 발생시키고 있음을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사이, 그리고 생산과 소비 사이의 모순으로 표현되는 현상이다. 우리는 이미 자본주의 체제가 본질적으로 진보적이지 않고, 필연적으로 축적과 경쟁으로 박차가 가해진다는 것을 보았다. 맑스는 이러한 대조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생산력의 발전은 노동계급의 잉여노동을 증가시킨다는 점에서, 그러나 물질생산에 필요한 시간을 감소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일한 중요성을 지닌다.”(자본, 10장)

 

 잉여노동이 불가피하다는, 모든 사회 유형에서 검증된 관찰로부터 시작하여, 문제는 잉여노동의 소유와 파괴 양식, 총잉여노동과 그 기간, 이 총잉여노동과 총노동 사이의 관계, 그리고 그 축적의 리듬에 집중되어있다. 그리고 즉각적으로 우리는 맑스의 다른 언급을 제시할 수 있다. “사회의 진정한 부와 재생산과정의 지속적 확대의 가능성은 잉여노동의 기간에 담겨 있지 않고 생산성과 이 생산성이 작동하도록 하는 유리한 조건에 달려있다”(자본, 14장). 그리고 맑스는 “자유의 영역”의 출현을 위한 기본조건은 노동일의 감소라고 덧붙인다.

 

 이러한 고려사항들은 프롤레타리아 경제의 진화에서 각인되어야 하는 경향을 이해하게 한다. 이는 또한 생산력의 성장을 “사회주의”의 절대적 증거로 보는 개념을 거부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개념은 중도주의 뿐만 아니라 트로츠키도 방어한 개념이다. “자유주의는 소비에트 체제의 엄청난 진보, 즉 사회주의의 헤아릴 수 없는 이점의 구체적 증거들을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주의에 의해 쫓겨난 계급들의 경제학자들은 세계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산업 발전의 리듬에 대해 완전한 침묵으로 넘기고 있다”(계급투쟁, 1930년, 6월). (Lutte de classes, June 1930)

 

 우리는 이 장의 서두에서 “리듬”의 문제가 트로츠키와 그의 반대파의 선입견의 중심에 있음을 지적했다. 이는 자본주의 아래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빈곤에 덧붙여 그 리듬을 가속화하지 않고 생산의 “동기”를 수정하는 것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사명에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국제적 규모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전제할 때, “리듬”의 요인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 현재 소련에서 일어나는 생산의 리듬은 가장 선진된 자본주의 기술이 세계 사회주의 경제에 가져올 공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소비를 향한 생산의 재지향

 

 최초의 경제 과업으로서 소비의 필요에 맞추기 위한 생산 동기의 변화 필요성을 우리가 제기할 때 우리는 분명히 혁명의 즉각적 결과가 아닌 과정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우리가 보인 바와 같이 이행기의 경제는 어떠한 경제적 자동주의도 발생시킬 수 없다. 왜냐하면 “부르주아 권리”의 생존은 착취의 사회적 관계의 존재를 의미하고 노동력은 아직도 어느정도 상품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조직을 통한 당면한 요구를 위한 노동자 투쟁으로 고무된 당 정치는 구체적으로 자본주의가 극단으로 발전시킨 노동과 노동력 사이의 모순을 구체적으로 극복해야 한다. 다른 말로 자본축적을 위한 노동력의 자본주의적 사용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경제적 강화를 촉진시키는, 순수하게 사회적 목적을 위한 노동력의 “프롤레타리아적” 사용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생산의 조직에서 프롤레타리아 국가는 문제가 되는 경제를 지배하는 구체적 물질적 조건에 대해, 그들의 요구에 상응하는 생산의 세부 조직을 발전시키면서 무엇보다 대중의 요구에 의해 고무되어야 한다.

 

 정련화된 경제 강령이 세계 사회주의 경제를 건설하는 틀 안에 있고 국제 계급투쟁과 연결되어 있다면, 프롤레타리아 국가는 소비를 발전시키는 과업에 한정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그 강령이 직간접으로 “민족 사회주의”의 형식을 목적으로 하는 “자동적” 성격을 취한다면, 잉여노동의 증가하는 부분은 미래에 국제 분업에서 정당화될 수 없는 기업의 건설에 흡수될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기업들은 불가피하게 건설되는 “사회주의 사회”를 방어하는 수단을 생산하는데 복무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소련에서 벌어졌음을 살펴볼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물질적 상황의 개선은 첫째로 노동 생산성에 달려 있고, 이는 또한 생산력의 기술적 수준과 축적에 달려 있음은 확실하다. 둘째로, 그것은 노동 과정 내의 조직과 규율에 상응하는 노동의 산출물과 연결되어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 존재하는 기본 요소는 축적의 구체적 결과가 축적 “그 자체”를 위해 인간의 목적지로부터 이탈했다는 특성에 있다. 노동 생산성은 소비의 대상으로 전환되지 않고 자본으로 전환된다.

 

 문제가 소비 확대를 목표로 한 정책을 주창하며 해결될 수 없음을 숨기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그러나 당신은 그것을 인정함으로써 시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노동자의 한 세대, 몇 세대를 희생시키면서 공업화와 성장의 가속화를 밀고 나가는 것에 반대하는 주요 방향타이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희생을 중도주의1)는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역사적 이해에 부응하는 것처럼 보이는 목적(러시아의 실재는 전혀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었지만)이라도 “희생된” 프롤레타리아트는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진정한 힘을 구성할 수 없다. 민족국가적 목표의 최면 아래에서 세계 프롤레타리아트로부터 멀어져 갈 뿐이다.

 

 우리가 발전시킨 국제주의적 고려를 기반으로 논의를 계속하자면 우리는 역사적 관점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경제적 임무가 근본적임을 (우리가 추상으로 빠지길 원하지 않는 한) 증명해야 한다. 계급투쟁의 지구적 영역에 대한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역할을 올바르게 보여준 「빌랑」의 동지들은 그 문제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주장함으로써 유별나게 제한하고 있다. “경제적이고 군사적인 영역2)은 착취계급에게는 본질적이지만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활동에서는 보조적 문제, 세부적 문제일 뿐이다”(「빌랑」, 612쪽). 우리는 다시 강조한다. 강령이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세계 정치에 의해 결정되고 제한되지만 이것이 확립되고 나서야 프롤레타리아트는 소비라는 가공할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는데 지나친 조심과 에너지를 쏟을 수 없다. 그 소비의 문제는 아직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에서 단순한 요인”으로서 그 역할을 조건화시킨다.

 

 우리 견해로는 「빌랑」의 동지들이 다음과 같이 선언함으로써 “사회주의 건설”을 향한 관리의 형식과 이행기 경제의 사회주의적 관리 사이의 구별을 하지 못하는 또다른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3) “주어진 국가와 국제적 계급투쟁에서 경제의 사회주의적 관리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과는 다르게, 우리는 그러한 사회주의적 관리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으로 사회주의적이지는 않지만 노동자의 삶의 조건을 향상시키고 자본주의 생산과정을 구체적으로 전복시키려는 목적을 가진 정책이다. 이행기에는 계급은 존재하지만 필요에 기반한 생산을 향한 새로운 경제적 경로를 발전시키는 것이 완벽하게 가능하다.

 

 그러나 생산의 동기유발이 올바른 정책을 채택하는 것에만 달려있지 않다는 사실은 남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경제에 대한 압력을 행사하고 그 요구에 대한 생산기구를 적응시키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조직에 동기유발이 달려있는 것은 사실이다. 나아가 생활조건의 개선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노동과정의 더 나은 조직을 통한, 총 사회적 노동, 생산량의 증가의 결과이든, 또는 강력한 생산수단의 사용의 덕으로 노동 생산성의 증가를 통한 결과이든 간에, 생산능력의 발전의 결과인 것이다.

 

사회노동에 관하여, 노동자수가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노동력 사용의 길이강도에 의해 주어진다고 우리는 말했다. 이 두 요인은 더 큰 생산성의 결과로서의 노동력의 저하된 가치에 연관되는데,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해 부과된 착취율을 결정한다.

 

 자본주의 정책과 달리, 생산력을 증진시키는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정책은, 자본주의 형식에서 절대적 잉여가치를 구성하는 사회적 노동의 강도의 길이로부터 나오는 잉여노동에 기반할 수 없다. 반대로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존재와 일치하는 노동의 리듬과 기간과 연결되어야 한다. 이 영역에서 사용가능한 총 노동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급속하게 없어지더라도, 그것은 낭비되는 사회활동의 제거에 대한 합리적 노동의 조직화에 기반해야 한다.

 

 이러한 조건에서 “프롤레타리아” 축적은 그 본질적 원천을 높은 기술수준을 통한 활용가능한 노동에서 찾아야 한다.

 이는 노동생산성의 증가가 다음의 대안을 제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동일한 총생산물(또는 사용가치)이 소비된 총 노동력의 감소를 결정하거나, 그 총량이 고정되어 있다면(또는 심지어 그것이 기술 발전 수준에 따라 감소하더라도) 분배되는 생산물의 양은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경우에, 상대적 잉여노동(엄격하게 노동력의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에 상대적인)은 더 큰 소비에 완벽하게 조응하며 진정한 임금 인상에 조응하지, 자본주의에서처럼 가공적이지 않다.

 생산원가에 대한 경쟁보다 자본주의 관리를 넘어선 프롤레타리아 관리의 우월성은 이러한 생산성의 새로운 사용에 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에 기반하여 프롤레타리아트는 우리가 이미 지적한 형태로 불가피하게 패배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영구적 방식에서(그리고 더 이상 문화적 위기를 통해서 뿐만이 아닌) 사용가치가 교환가치에 맞서게 되는 쇠퇴의 위기 속으로 자본주의를 몰아넣는 것은 노동생산성의 발전이다. 부르주아지는 생산의 무한함에 의해 극복되지만 만족되지 않은 엄청난 요구에 의해 자멸하게 된다.

 

 이행기에서 노동생산성은 “각각의 필요에 따른” 공식에 상응하기에는 갈 길이 멀지만 그것을 인간의 목적을 위해 충분하게 사용할 가능성은 사회적 문제의 모든 것을 뒤집는다. 맑스는 이미 그것이 이론적 최대치에 미치지 못하지만 노동생산성의 증가는 자본주의의 기본이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혁명 이후, 프롤레타리아 정책이 기술 발전을 자본의 이해에 따라 유용하는 자본주의적 방식인, 임금을 노동력의 가치로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생산력 발전에 기반하여 이러한 가치 이상으로 더욱 상승시킨다는 전제 하에, 생산물과 그 가치 사이의 자본주의적 적대를 줄이고 억누르는 것이 가능해 질 것이다.

 

 기술 발전을 동반한 기본적 축적의 필요성을 전제로 하면, 상대적 잉여 노동의 일부는 직접 노동자에게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축적의 리듬과 축적의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측정의 문제로 나타나지만 어떤 자의적인 요소도 프롤레타리아트의 경제적 과업을 규정하는 원칙적 기반 위에서 배제될 것이다.

 

 

축적 리듬의 결정

 

 더구나 축적률의 결정은 네덜란드 국제주의자들의 견해(그들의 저작 116쪽)에서와 같이 경제적 집권주의에 근거하지, 그들 기업의 생산자의 결정에 근거하지 않음을 말할 나위도 없다. 또한 그들은 이러한 해법의 실천적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 후 즉각적으로 결론을 내기 때문이다. “축적율은 개별 기업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겨질 수 없고 의무적 규범에 대한 결정은 기업 평의회 총회의 몫이다”. 이러한 정식화는 일종의 위장된 중앙집권주의처럼 보인다.

 

 만일 우리가 이를 러시아에서 일어난 것에 적용한다면, 프롤레타리아트의 착취의 억압이 생산수단의 집산화로부터 직접 나온다고 주장하는 중도주의의 거짓말을 명확하게 볼 수 있다. 소련의 경제적 과정은 아무리 전혀 다른 기반으로부터 시작되더라도,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동일한 출구를 향해 나아가며 끝나는, 자본주의 경제의 경제적 과정과 같다. 두 가지 모두 노동 계급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잉여가치의 증가하는 추출에 기반하여 펼쳐졌다. 소련에서는 사회적 측면이나 생산관계에서가 아니지만 노동과정이 내용적으로 자본주의적이다. “스타카노비즘”의 형식을 취한 노동의 강화를 통해 획득된, 절대적 잉여가치를 증가시키는 추동이 있었다. 노동자의 물질적 조건은 어떤 방식으로든 기술적 개선이나 생산력 발전과 연결되지 않고, 어떤 경우에도 사회의 재산분배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상대적 참여는 증가하지 않고 감소했다. 이는 가장 번영한 시기에도 자본주의 체제가 항상 발생시키는 현상이다. 우리는 노동자에게 가는 절대적 몫의 실질적 성장이 있는 정도를 확립할 요소를 결여하고 있다.

 

 더구나 소련은 가장 계급의식적인 양질의 노동자에 대한 자격 없는 노동자(농민의 엄청난 보유로부터 오는)를 대체하는 임금삭감의 정책을 실천한다.

 

 이러한 엄청난 잉여가치의 양이 어떻게 응결되는지의 문제에 대하여, 우리는 상당 부분이 관료적 “계급”에게 간다는 쉬운 대답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설명은 집합적 재산으로 남아있는 거대한 생산 기구의 존재에 의해 그릇됨이 입증되었고, 그에 비하면 소고기, 자동차와 관료의 휴양처가 아주 작은 수치임을 알고 있지 않은가? 조사뿐만 아니라 공식 통계는 생산수단의 생산(기구, 건물, 공공사업 등)과 “관료주의”와 노동자, 농민 대중을 위한 소비재 사이의 엄청난 불비례가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관료주의가 경제를 결정하고 잉여가치를 전유하는 계급임이 사실이었다면, 잉여가치가 사유재산이 아닌 집합적 부로 상당부분 전환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러한 모순은 이러한 부가 소련 공동체 내에 남아있지만 분배되는 방식에서 그 반대가 되는지를 발견함으로써 설명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비슷한 현상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볼 수 있다. 잉여가치의 주요 부분이 자본가의 호주머니에 들어가지 않고 법적 견해로 오직 사유재산인 상품의 형식으로 축적되고 있음을 주목하자. 그 차이는 소련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엄밀히 말해 자본주의 성격을 취하지 않는데 있다. 이 두 가지 진화의 과정은 서로 다른 기원으로부터 출발한다. 소련에서는 이것이 경제적 적대로부터 나오지 않지만, 정치적 적대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즉 그것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와 국제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의 분열로부터 나온다. 그것도 “민족 사회주의” 방어라는 깃발 아래에서, 그리고 세계 자본주의의 기제로서 통합이라는 깃발 아래에서 발전했다. 대조적으로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진화는 부르주아 경제의 쇠퇴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두 가지 사회적 발전은 전쟁 경제의 건설이라는 공통의 목적으로 귀결된다. (소련 지도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견고한 전쟁기계를 만든 것을 자랑한다.) 우리가 볼 때 이는 “러시아 수수께끼”에 대한 대답이다. 이는 10월 혁명의 패배가 왜 러시아 내의 계급 관계의 전복으로부터 오지 않고 국제적 전쟁에서 왔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세계 혁명보다 제국주의 전쟁을 향한 계급투쟁의 진로를 지향한 정책을 검토해 보자.

 

 

전쟁 경제를 위해 봉사한 러시아 노동자의 착취

 

 이미 우리가 말한 바와 같이 몇몇 동지들에게는 러시아 혁명이 프롤레타리아적이지 않았고, 그 반동적 진화 과정은 문화적으로 후진적인 (계급의식의 수준에서는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였지만)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수행되었다는 사실에 의해, 또한 후진국을 떠맡을 수밖에 없었던 사실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우리는 맑스가 파리 꼬뮨에 대해 언급한 것을 인용하면서 이러한 숙명주의적 태도를 반대하는데 우리 스스로를 한정하고자 한다. 파리 꼬뮨이 권력 장악을 통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미성숙을 나타냈지만, 맑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엄청난 중요성을 보았고 그것으로부터 1917년 볼셰비키를 고무시킨 구체적 교훈을 이끌어냈다. 러시아 혁명에 대해 같은 방식으로 작용하지만 우리는 미래 혁명이 10월 혁명의 복사판일 것이라는 것을 이 혁명으로부터 이끌어내지는 않는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레닌이 “러시아 혁명의 국제적 가치”(「좌익 공산주의」)에 대해 말할 때의 의미를 상기하는, 10월 혁명의 기본적 특성이 이들 혁명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맑스주의자는 역사를 “반복”하지 않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이론적 무기를 벼리고, 그 과오를 피하면서 마침내 부르주아지에 대한 승리를 하기 위해 역사를 해석한다. 결정적 승리를 하게 한 위치에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를 놓은 조건들을 찾는 것은 역사유물론의 건설에 새로운 주춧돌을 추가하면서 맑스주의 조사 방법에 모든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첫 번째 혁명적 파고의 후퇴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의 일시적 고립을 가져온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에 소련의 진화의 결정적 원인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연이은 사건들을 만든 해석에서, 그리고 이로부터 도출된 자본주의의 진화에 대한 그릇된 전망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자본주의의 “안정화”의 개념은 자연스럽게 “일국 사회주의론”을 발생시켰고 이어서 소련의 “방어” 정책을 가져왔다.

 

 구체적 목적으로서의 세계 혁명이 배후로 사라진 반면, 국제 프롤레타리아트는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도구, 즉 제국주의 공격에 대항하여 그 국가를 방어하는 세력이 되었다. 부하린이 1925년에 세계 혁명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는 세계 혁명이 개입에 맞서고 새로운 전쟁에 맞서는 유일한 보증이므로 그 중요성이 있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처럼 “개입에 맞서는 보증”의 이론을 펼쳤는데, 코민테른은 그것을 더 이상 세계 혁명의 이해가 아닌 소련의 특수한 이해의 표현으로 받아들였다. “보증”은 더 이상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와 연결되어 추구되지 않았고, 프롤레타리아 국가와 자본주의 국가 사이의 관계의 성격과 내용으로 수정되었다. 세계 프롤레타리아트는 “민족 사회주의”의 방어를 위한 지지의 지점으로만 남았다.

 

 「신경제정책」에 관하여 우리는 그것이 특히 농민 사이에 자본주의적 야망의 상당한 재연을 가져왔지만, 불가피한 퇴행을 위한 특수한 영역을 제공했다고 보지 않는다. 그리고 「중도주의」아래에서 레닌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본 빈농(smychka)과의 동맹은 목표가 되었고 동시에 중농과 쿨락과의 연대가 만들어졌다.

 

 「빌랑」의 동지들의 견해와 반대로 우리는 러시아의 경제적 진화를 세계 혁명의 경로로부터 분리하는 정책을 레닌이 「신경제정책」에서 주장했다는 선언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로 레닌에게 「신경제정책」은 국제 계급투쟁이 복원될 때 까지의 일시적 유예의 정책이었고, “붙들기” 정책이었다. “우리가 수년간 지속된 정책을 채택할 때, 우리는 국제 혁명, 그 발전의 신속성과 조건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잠시도 잊지 않는다”. 그에게 그것은 독재가 무너지지 않고 자본주의 세력에게 양보하는 일종의 경제적 균형을 다시 세우는 것이었다. 그것은 “사회주의 경제의 기초를 건설하는 목적과 적과의 계급 협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같은 의미로 레닌이 출처가 의심스러운 문서에 기반하여 “일국 사회주의”의 주창자였다고 말하는 것도 옳지 않다.

 

 반면에 “트로츠키주의” 러시아 반대파는 핵심 투쟁이 자본주의 국가들과 소비에트 국가 사이의 투쟁이라는 견해를 높이 사고 있다. 1927년에 소련에 대항하는 제국주의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보았고, 동시에 코민테른은 중국 혁명의 분쇄를 관장하면서, 노동자들을 계급 위치로부터 찢어내고 그들을 소련 방어의 전선에 내몰았다. 이에 기초하여 반대파는 전쟁을 위한 “사회주의 기지”로 소련을 준비하는데 관여한다. 이러한 입장은 이론적으로 전쟁 경제(5개년 계획)를 건설하기 위하여 러시아 노동자들의 착취를 인정함을 의미한다. 동시에 그것은 “경제를 준비하지만” 예산 등은 전쟁에 대한 입장으로 극대화하면서 소련이 “전쟁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평화를 위한 투쟁”에 대한 모호한 입장을 발표한다. 그리고 공업화의 문제는 방어에 필요한 기술적 차원을 보증하는데 결정적이라고 말한다.(반대파 입장)

 

 이어 트로츠키는 그의 「영구 혁명」에서 대중의 생활 표준을 높이지만 공업화 체제를 가능한 빠른 속도로 진행할 것을 말한다. 우리는 “외부 위협”이 소련에 맞서는 성전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세계 제국주의 전선으로의 통합으로부터 옴을 알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공업화가 프롤레타리아트의 더 나은 존재를 보증하지 않고 제국주의 전쟁을 준비하는 목적을 가진 가장 공포스런 착취임을 알고 있다.

 

 다음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사회주의 건설”에 그 기초를 두지 않고 국제적 내전의 연장에 기반한다는 전제하에, 문화적 미성숙과 경제적 부족함과 독립적으로 승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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