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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1/10
    쇠퇴하는 자본주의, 노동자계급의 길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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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1/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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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로운 영혼

쇠퇴하는 자본주의, 노동자계급의 길은 무엇인가?

쇠퇴하는 자본주의, 노동자계급의 길은 무엇인가?

                                                                      이형로

 

 

 

올해 여름 극단적으로 첨예화된 경제위기는 자본주의 체제가 그 한계에 도달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금융위기’라고 불리는 현 위기의 본질적 성격은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이다. 왜 체제 위기인가? 산업순환 위기(주기적 과잉생산 공황)를 넘어 역사적으로 1973년 이래 계속되어 온 구조적인 과잉축적 모순이 더 이상 봉합되지 못하여 마침내 폭발한 위기이기 때문이다.

 

 

1. 현 위기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 구조적 위기

 

최근 30여 년 동안만 보더라도 7년~10년에 한 번 씩 터져 나오는 순환적 공황들이 3-4 차례 있었지만, 자본가계급이 대대적인 경기부양과 거품경제를 일으켜 한 두 해만에 공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2007년 하반기부터 시작한 현재의 공황은 “1930년대 세계대공황 이래 최대의 공황”, 또는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최악의 경제위기”라고 저들도 이야기하는 것처럼 천문학적인 구제 금융과 경기부양책(두 차례에 걸친 양적완화)으로도 틀어막지 못한 채 지금까지 4년째 계속되고 있고, 나아가 심화되고 있다. (2009년 하반기에서2010년 중반 동안 일시적으로 회복의 기미들이 미약하게 나타났었는데, 이것이 자본가들로 하여금 ‘세계경제 위기는 끝났다’라고 잠시 착각하도록 만들었다.) 

 

정확히 말해서 현 위기는 순환적 위기에 자본주의 체제의 역사적인 위기가 중첩된 것이다. ‘역사적’이라 함은 7~10년의 산업적 주기(‘경기변동’ 주기)보다 훨씬 더 긴 기간을 통해 역사적으로(자본축적의 경제적 추세에 영향을 미치는 계급투쟁, 제국주의 국제관계 등의 정치 · 사회적 추세들을 포함한 구체 역사적 조건들을 매개하여) 누적되어 온 구조적 성격의 위기라는 뜻이다.

 

1973년부터 1982년까지의 대위기 동안 주식, 부동산 등의 자산 가치 폭락, 기업도산, 실업급증 등 과잉자본 파괴 과정이 진행되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만큼 철저한 청산이 이루어지지 못했고, 따라서 이윤율도 충분히 회복되지 못했다. 이 두 번째 대위기는 첫 번째 대위기에 비해 과잉자본 파괴 면에서 훨씬 덜 폭력적인 공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가 1930년대와 같은 계급투쟁 격화와 파시즘 · 세계대전 같은 양상으로 전개되지 않았던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이와 같이 과잉축적 자본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한 상태에서 1980년대에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 공세가 시작되었고, 1990년대에 와서는 동구권과 중국이 세계자본주의 체제로 통합되면서 미국 주도의 본격적인 세계화(또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국면에 들어갔다. 이 1980년대 초부터 2007년까지 약 30년간의 이른바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기의 성격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 강화와 금융투기 거품을 통해 이윤율 하락 및 과잉축적 위기(1973년-82년의 공황으로 충분히 해소되지 못한 과잉축적 위기)를 돌파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그 위기를 누적적으로 가중시킨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누적되고 가중된 구조적 과잉축적 위기가 이번 2007년-2008년에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2. 해결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본질적 위기

 

현재의 위기는 단순히 팽창된 금융자본의 투기와 다양한 경제주체, 즉 정부, 가계 그리고 기업의 부채 미상환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금융시장의 엄청난 팽창과 투기화로 인한 자본의 가치증식, 즉 투하된 화폐보다 더 큰 화폐를 획득하여야 하는 자본의 가치증식과정의 심오한 위기가 그 원인이다. 현재의 금융위기는 1960년대 후반의 생산자본의 이윤율 저하로 인한 가치증식과정의 위기가 세계적 차원의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나타난 자본의 급속한 금융화가 그 원인이다. 이렇게 팽창된 금융자본은 새로운 생산자본 투자 지역을 찾아야 했고, 동시에 금융시장 자체의 성장을 방해하는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했다. 이러한 금융자본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운동의 지구적 차원의 공간 확대는 단일한 세계시장의 형성을 가속화하였다.

 

이러한 자본의 가치증식논리는 본질적이고 해결할 수 없는 내재적 자기모순을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 자본은 증식과정을 작동시키기 위하여 점점 더 많은 노동력을 상품의 생산과정에서 소비해야 한다. 노동력의 소비를 통한 화폐증식의 목적은 양적차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자체의 한계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일상적으로 계속되는 경쟁은 생산의 합리화를 통하여 지속적인 생산력의 향상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과정은 결국 시간당 생산물의 양을 증가시키고, 따라서 필수노동시간을 축소하여, 과잉 노동력을 창출한다.

 

이러한 모순에 내재하는 잠재적 위기는 2차 대전 후-70년대 초반기의 성장속도의 가속화(생산력의 발전과 임금상승의 조응)로 인하여 계속적으로 미래로 연기되었다. 전 지구적 차원의 가치증식과정의 확대와 새로운 생산영역으로의 진출은 노동력에 대한 수요를 엄청나게 증가시켰으며, 이는 합리화의 효력을 상쇄시켰다. 하지만 IT 기술을 토대로 하는 새로운 생산력의 급속한 향상은 이러한 상쇄메커니즘을 폐기하게 만들었다. IT 기술은 거의 모든 산업분야에서 노동력을 축출하였다. 생산의 지구적 차원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지구적 차원에서 점점 더 많은 노동자들이 자본의 가치증식과정에서 불필요하게 만들었다.

 

가치증식과정의 위기는 우선 자본이 실물경제에서 더 이상 충분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생산된 잉여가치가 수용의 부족으로 인해 다시 현금으로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본은 금융자본에서 새로운 도피처를 찾았는데, 이의 결과는 “의제자본”(투기와 신용)의 팽창을 가져왔다. 이러한 금융자본으로의 도피는 단지 위기의 연기에 불과하다. 과잉자본은 새로운 투자가능성을 찾았으며, 임박한 가치의 감소를 피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진 위기연기의 대가는 점점 더 심화된 잠재적 위기의 축적이며, 금융시장에의 극단적인 종속을 가속화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금융자본의 축적은 계속 진행되어야 했다. 어느 곳에서인가 거품이 꺼지면 정부와 중앙은행은 시중은행들과 투자가들을 구제하여 무담보 유동자산을 시장으로 쏟아 넣어 새로운 거품을 만드는 이외의 다른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정치권에서 투기의 포괄적인 억제정치를 논하는 것 자체가 속임수이며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물론 일시적인 규제조치들은 가능하지만 종합적으로 보면 투기와 신용은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은 이러한 의제자본을 토대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정치가 이러한 현실에 부합되게 행하여지는 것도 그리고 금융시장의 역동성이 다시 회복되는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현재의 위기는 그 붕괴를 단지 국가채무의 엄청난 확대를 통하여만 일시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질적으로 새로운 국면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위기는 국가의 재정위기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긴축재정을 통하여 사회의 프롤레타리아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점점 더 적은 노동이 더 많은 물질적 부를 창출할 수 있다면, 이는 그 자체로는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한 삶의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생산관계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가치생산의 축소를 가져온다. 이러한 이유로 어떤 사회에서 “긴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며, 이는 가치생산이 종속되어 있는 소비의 축소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이 거대한 부채는 자본주의에 의하여 창출된 생산 잠재력이 이미 자본주의적 사회의 논리로는 해결될 수 없으며, 자본주의적 부의 생산은 단지 폭력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와 같이 현재의 자본주의 대위기는 전 세계적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이기도 하다. 지난 몇 년간 드러난 거대한 부채더미는 1970년대 초에 이미 나타난 경제위기를 자본주의가 은폐하거나 늦추려했던 시도들의 결과였을 뿐이다. 또한 우리는 오늘날의 “경기침체”가 진정한 불황으로서의 본 모습을 드러내면서, 이것은 사실상, 1930년대의 대공황과 당시 세계를 제국주의전쟁으로 몰아갔던 위기와 같은 심각한 위기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 위기는 자본주의 체제가 역사적으로 쇠퇴하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으며, 더욱이 오늘날의 불황과 1930년대의 불황사이의 차이는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위기에서 벗어날 어떤 수단도 갖고 있지 않다는데 있다.

 

 

3.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전야,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현재 우리는 이 세 번째 대위기의 초반을 통과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전 세계적으로 노동자계급은 정리해고, 임금 연금 삭감, 노동조건의 후퇴, 비정규직화, 청년실업 만연 등 생활수준의 하락과 생존권 위협을 직접 받으며, 자본의 위기를 온통 전가 당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 전가에 맞서 전 세계적으로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터져 나오고 있지만, 아직은 전체적으로 방어적 성격의 투쟁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는 아무리 깊은 위기라 하더라도 저절로 붕괴하지는 않는다. 자본주의의 ‘최종 위기’ 같은 것은 없다. 자본주의는 내재적인 붕괴 ‘경향’을 가지고 있지만, 저절로 사멸한다는 의미의 ‘자동붕괴’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는다. 노동자계급이 앉아서 위기 전가를 당하길 거부하고 저항에 나서서 이 저항을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도전으로 끌어올려 자본가계급의 국가권력을 타도할 때만이 자본주의를 폐절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는 한 자본주의는 노동자계급을 희생시킨 폐허 위에서 언제든 다시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현 위기는 첫 번째 대위기 못지않게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의 문제를 제기한다. 첫 번째 세계대공황 시기에는 사민주의와 스탈린주의, 코민테른의 타락 등 암흑의 반혁명과 침체의 시기, 노동자계급 지도력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숨통을 끊는 사회주의혁명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계급투쟁에 패배하여 파시즘과 전쟁 같은 야만을 불러들이고 이를 통해 자본주의는 다시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았다. 이 시기에 자본주의가 아직 충분한 생명력과 역동적인 활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이미 쇠퇴하는 자본주의, 제국주의 단계의 사멸하는 자본주의로서, “프롤레타리아 사회혁명의 전야”에 있는 자본주의였다. 다만 문제는 1917~1921년대 세계혁명의 패배이후 노동자계급의 지도력을 다시 세워내 혁명의 가능성을 살려내는 일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4. 자본주의 쇠퇴기, 노동자계급이 직면한 위험과 계급투쟁의 부활

 

노동자계급의 혁명은 결코 자동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데, 이 혁명은 과거의 그 어떤 혁명보다도 더 높은 의식수준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1960년대 말 위기의 시기가 시작된 이래,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노동자들의 혁명적인 계급투쟁들이 있었다. 비록 이 투쟁들이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는 것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분명한 계급투쟁의 부활을 알렸다.

 

하지만, 40여 년간의 위기 이후, 현재의 주요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자계급은 1960년대 말과 같은 모습을 더 이상 띠지 않는다. 거대한 산업기지들과 강력한 계급투쟁의 집중 거점들은 사방으로 분산되었으며, 분업화된 시스템 속에서 노동자계급은 분열되고 위계화 되었다. 쇠퇴하는 자본주의하에서 노동자계급의 모든 세대는 지속적인 불안정 상태와 실업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더욱이 노동자계급의 가장 절망적인 층들은 범죄와 허무주의 또는 종교적 근본주의에 빠져들 위험에 처해있다. 자본주의 체제의 길고도 점점 더 첨예해지는 쇠퇴의 과정으로 인해, 노동자계급은 계급의 정체성을 다시 획득하고 사회의 지도력을 복원하여, 낡고 쇠퇴하는 자본주의 사회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자신감을 형성하는데  매우 심각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 착취에 대항하여 혁명적으로 투쟁하는 노동자계급의 모범이 없이는, 자본주의체제의 불평등하고 억압적이며 부패한 본질에 대항한 무수한 분노의 반응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그 어떤 출구도 만들어낼 수 없다.

 

그러나 그 반대로 새로운 세대의 노동자들은 경제적 붕괴, 제국주의적 충돌, 환경파괴라는 자본주의의 암울한 미래에 대해, 아무 저항도 없이 수동적으로 이용당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것을 그들의 직접행동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새로운 투쟁과 직접행동은 자본주의 위기 상황에서 생활수준의 급격한 하락과 생존의 위협을 받는 수많은 프롤레타리아들과 노동자계급의 오래된 세대들을 자신의 주변으로 끌어 모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쇠퇴하는 자본주의 현재의 위기는 자본주의 주요 국가들에서 착취당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 대다수에게 이 썩어가는 자본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투쟁하고 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설득하고 동원해 낼 수 있는 지배이데올로기가 더 이상 존재하기 않는다는 점을 스스로 실토하게 만들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고양되고 있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전 세계로 확산되어 1960년대 말의 계급투쟁의 부활과 같은 양상으로 전개될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 스페인, 아일랜드, 이탈리아 등의 긴축반대 투쟁, 북아프리카 중동의 민주화 투쟁, 칠레의 공공교육 투쟁, 미국의 월가점령 투쟁, 중국, 인도, 방글라데시의 노동자 투쟁, 그리고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 등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미 우리에게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물질적이고 객관적인 조건은 충분히 주어져 있으며, 공산주의는 인류의 단순한 희망과 꿈이 아니라 역사발전의 물질적 필요성이며, 우리가 실현해야 할 역사적 과제임을 일깨워 주고 있다.

 

 

5.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새로운 계급투쟁만이 노동자계급에게 답을 제공한다.

 

시위에서 광장점거로, 점거에서 대중파업으로 진화하는 유럽과 북미의 대중투쟁과 다르게, 한국의 계급투쟁은 여전히 사민주의와 조합주의 덫에 걸려있다. 특히, 현재 벌어지고 있는 진보대통합은 총선/ 대선 선거대응을 위한 개편이며, 서구에서 실패한 노동자 투쟁을 배신한 인민전선의 되풀이 일뿐이며, 노동자계급에 대한 배신행위이다. 그동안 이들의 대리주의 정치는 노동자계급의 자발적 투쟁분출과 계급투쟁의 혁명적 확산에 장애물이 되어왔다.

 

이러한 대리주의 정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 스스로 정치와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자립적인 조직과 운동이 필요하다. 이러한 자립성은 계급의 자립적 조직인 노동자평의회와 계급의 정치조직인 혁명당과 강령으로 표현된다. 인민전선과 같이 노동자계급의 이해관계를 부르주아의 어느 정파의 이해관계와 혼합하고자 하는 시도들은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투쟁을 통제하고 잠재워 결국 노동자계급의 자립성을 저해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자본주의 쇠퇴시기 계급투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노동자계급은 스스로의 조직 확장과 자기조직화를 통해 자신들의 투쟁을 전 계급적으로 통일시켜 나가야 한다. 이것은 자립적인 총회 조직들과 계급투쟁의 과정에서 창출되며 노동자들에 의해 언제나 선출되고 소환할 수 있는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조직들을 통해 가능하다.

 

그렇다면, 끝 모를 자본주의의 위기상황이 더욱 깊어지는 현 정세에서 반자본주의 투쟁전선 구축과 혁명적 계급투쟁의 부활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첫째, 계급투쟁의 역사적 성과물인 혁명 강령이라는 무기를 들고 혁명당을 건설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단련되고 혁명적인 부위들은 혁명당으로 집결하여, 자본과 국가를 효과적으로 압박하고 계급투쟁의 힘을 집중시켜야 한다. 노동자투쟁과 계급의식의 꽁무니를 쫒아 다니는 의회주의 정당들이 아닌 혁명당만이 계급의식을 혁명적으로 발전시키고, 노동자계급이 자신들의 정치적 전망을 설정하고 혁명적 무장을 준비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둘째, 갈수록 관료화, 자본의 기구화 되어가고 있는 조합주의와 노조운동을 넘어 아래로부터의 직접행동과 노동자민주주의가 철저하게 실현되는 투쟁조직, 총회조직을 건설해야 한다. 현재 유럽과 북미의 계급투쟁에서 빈번히 나타나고 있는 대중총회는 투쟁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대중총회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투쟁의 주도권을 실제로 가져올 수 있고, 집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노동자 민주주의의 진정한 공간이다. 대중총회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으며, 어떠한 조합주의와 계급협조주의에 의해서도 그 결정을 제한받지 않으며, 노동자 계급의 다양한 부문들을 통일시킨다. 노동자계급의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와 직접행동을 기반으로 한 이러한 총회조직들이 바로 노동자계급이 각성하고 단결하여 한 단계 진전된 행동을 준비하고, 집단적 자심감과 자신들의 의지로 투쟁을 확장시킬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이와 같은 대중투쟁조직과 직접행동에 기반 한 계급투쟁의 확산만이, 조직된 노동자들의 계급성과 전투성을 되찾을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그리하여 대대적인 계급투쟁의 발발과 혁명적 계급의식이 만나 계급투쟁을 이끌 때, 공장의 담벼락과 업종의 울타리를 넘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넘어, 전체 노동자계급을 단결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수평적 노동자조직들의 출현은 계급투쟁이 혁명적으로 전환하는 시기 노동자평의회를 현실화 시켜줄 것이다.

 

이미 진보정당들과 노동조운동의 상층부는 자본이 편재하고 분할해 놓은 노동자계급의 분리와 분열을 용인하거나 조장한 세력이 되어 버렸다. 이제 이들을 넘어서서 직접행동하고 더 넓게 조직하는 것이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의 동력을 회복하는 새로운 길이다. 이런 기운들은 투쟁하는 노동자들로부터 자발적으로 생성되고 있으며, 이것들이 커지면 커질수록 타락한 운동들은 더욱 반 노동자적 본색을 강하게 드러낼 것이다. 낡은 형식과 분열을 넘어 직접행동하고 계급의 단결을 만들어나가는 노동자들이 바로 노동자투쟁의 새로운 주체이다.

 

새로운 운동의 형태는 촛불투쟁, 희망버스 운동에서 보이듯이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되는 한, 그리고 쇠퇴의 국면이 깊어질수록, 우리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필연적으로, 계급투쟁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할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쇠락해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체제에 조응하며 유지되어 온 낡은 운동형식들은 이제 혁명성, 계급성을 상실한 채 몰락해 가고 있다. 아직 새로운 운동이 낡은 운동을 대체할 만큼 완전하게 소생하거나 전면화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인내하며 기다린다고 그냥 와주는 것이 아니라, 대대적인 계급투쟁의 부활 속에서만 온전히 자리 잡게 될 것이다. 계급투쟁의 부활은 자본주의 쇠퇴가 만들어 놓은 물질적 조건(생존권 위협과 생활수준의 급격한 하락 등)에 의해 언제든 분출될 가능성이 있지만,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자각이며, 혁명조직은 계급적 자각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따라서 새로운 계급운동은 과거운동을 쇄신하거나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것에 국한되어서는 안 되고, 오히려 낡은 운동과 새로운 운동이 대립하고 있는 현재적 조건 속에서, 새로운 운동의 가능성에 근거를 두고, 끊임없이 계급투쟁의 방향을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도전하도록 밀어붙여야 한다. 계급투쟁의 부활과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도전만이 새로운 운동의 창출과 혁명적 의식의 생성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광장점거와 대중파업은 다시 한 번 노동자계급에게 혁명의 문제를 현실로 제기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의 타도를 목표로, 운동에 분명한 계급적 방향을 부여함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노동자계급 자신에게 달려있다. 이것은 곧 계급투쟁과 혁명적 계급의식이 만나 의식적으로 수행하는 운동이며, 공산주의 강령과 이행요구에 입각한 정치투쟁을 의미한다.

 

현재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수많은 계급투쟁들 속에는 이미 “세계 혁명”을 요구하며 국경을 넘는 운동의 “확대”를 주장하는 슬로건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많은 집회들에서 노동자국제주의를 위한 “국제”위원회가 만들어졌으며, 새로운 투쟁의 형식과 내용들은 국제적으로 전파되어가고 있다. 이제 한국의 노동자들도 낡은 사민주의와 조합주의의 덫을 걷어내고, 지금 당장의 직접행동과 노동자민주주의에 기반 한 대중투쟁으로, 자본주의 지배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길에 거침없이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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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EE CITIES, THREE OCCUPATIONS, ALL IN LESS THAN ONE WEEK

THREE CITIES, THREE OCCUPATIONS, ALL IN LESS THAN ONE WEEK

 

 

An account by a member of IP who visited Occupations in New York, Seattle and Vancouver. This account is a slightly modified version of a piece posted here on November 7, 2011.

 

Before I went to New York, I had only had a few hours’ experience at Occupy Vancouver. Some of it had been less than inspiring, including, on my last time there, having one person standing next to me (who I had never seen before) in a highly emotional state turn to me and very intensely tell me how there had just been a split amongst the core group of people involved in the organizing of the occupation, with the “liberals” (alternatively, the “hippie liberals”) having taken over, that it was a bunch of b.s. and that this was a terrible development. That was a little unsettling. I was, however, impressed with how the General Assemblies I attended were ‘facilitated’ so as to permit everyone present to participate, if they accepted and followed the agreed upon procedure, and to try to achieve maximum unity (the 90% consensus model). I was also impressed by the level of passion and openness expressed by the person who vented themselves to me. This thing was obviously very important to a number of these people.

 

Zuccotti Park in NYC was a different story. Even though the content of the first GA there I attended was uninteresting and not at all political, the ‘process’ was very impressive. The participants seemed more comfortable with and more proficient at the process. (Of course, they had been at it for almost a month longer than the ones in Vancouver.) And then their collective self-confidence – New Yorkers, you know – that was truly inspiring to experience. It seemed clear that this process was working well for them and they were proud of it. It really is something new, a new way of working together, in the most horizontal, the most “directly democratic” (beyond that, even, I would say) way yet realized by human beings. And the Occupy Wall Street encampment at Zuccotti Park is where it began. A sense that history was in the making here was felt but not easy to articulate at the time.

 

That sense became much clearer the next day. With the weather significantly warmer, there was a more relaxed, comfortable vibe to the place. (it was also afternoon, rather than evening.) This was several hours before the day’s GA. The person I was there with, a comrade, had been there a few times previously, and clearly felt very comfortable and confident about getting involved in any open discussion of interest to him. Various different conversations/discussions were going on in different parts of the park. In each case, we could listen in, ask what it was about, be informed about who it concerned/who was involved, and follow along if we wanted. It wasn’t long before we came across what I later learned is called the “Think Tank”. It is a place in the park, close to the middle, where open discussions on any topics can occur. One announces one’s topic, then sees who else wants to participate. It seems that the topics usually arise out of spontaneous discussions involving, initially, two or three people, which others then want to join into. My comrade and I participated in two of these discussions, one, which we stumbled upon, on capitalism vs. socialism, and another on how to find new ways to try to open people’s imaginations in a way that allows them to think outside of the restricted sphere of existence that the existing mass media, governments, educational systems, etc. enforce/impose on us. Each discussion involved about 8-10 people, with about 10-15 others just listening in. It was very informal – with just a “stacker” taking a list of people wanting to speak – but it seemed to work so well because people really wanted to make it work, rather than just get into another shouting match.

 

Here was real, serious discussion and debate, back and forth, with people really concerned to sharpen their views, to learn from each, in the most respectful way, among the widest variety of people (age, dress, style, race, sexual orientation, etc.) I think I had ever experienced. And although I was, unlike my comrade, slow to get involved, I did become actively involved and felt none of the unease and anxiety I would normally expect to feel in such a situation. Clearly, there was something big happening here, something that I had dreamt about being a part of for decades, something that has probably not existed in America since the late 1960s (when I was a child, but able to vaguely sense a feeling of ‘change in the air’). It was, and still is, exhilarating, to be sure.

 

My comrade suggested that I attend at least one session of one Working Group, since that was where a lot of good discussions occurred, and also where proposals put forward in the GA’s were initially worked out. I did attend one working group, on “visions and goals”, but only briefly, since the content at that time was not of interest, but again, the process used and its facilitation were impressive to witness. It was Halloween that day, and when I returned to Zuccotti Park from where the working group was meeting, it seemed that there was not an ‘official’ GA that evening; but there was a group of about 50-60 people near where the GA’s were being held holding an impromptu assembly, complete with various people dressed in very impressive Halloween costumes, including an impeccably dressed Emma Goldman. It was as much fun and convivial as it was serious and militant, but when we decided to hold a half hour break and then resume again, a few people announced different proposals for what to do during the half hour, including one to do a chain dance around the Merrill Lynch bull near the Bowling Green, another to go to the graveyard at nearby Trinity Church, across Broadway from Wall Street, to ask the spirits of the dead buried there for advice on what to do, to one to “go over there and discuss revolutionary politics.” Needless to say, I opted for the latter. It turned out this guy was still in high school and identified as an anarchist, and judged council communism to be a political tendency proximate to his. Another person self-identified as an anarcho-syndicalist. I didn’t label myself, but I did argue for the necessity of a Marxist critique and analysis of the economy and its crisis, after another person said it was essential for us to follow what’s happening in the economy, and to see how things are going to get a lot worse pretty soon – to which I wholeheartedly agreed. The discussion, involving at various times between six and twelve highly varied people, focused mostly on strategy towards the occupation movement from a revolutionary perspective. There seemed to be agreement reached that it was still too early to be focusing on ‘direct actions’ and trying to achieve any specific ‘gains’ or ‘victories’; that the principle aim should be, currently, to try grow the movement to involve as many people as possible from the ‘99%’, and to focus on discussion and mutual ‘education’, to get as many people as possible to recognize that our big goal should be the abolition of capitalism, and that we need to better understand how it dominates all our lives. It was one very satisfying discussion, one I won’t soon forget. That was pretty much it for that day at Occupy Wall Street, as it seemed all but a small number had left for Halloween events, including a massive Halloween march up Sixth Avenue.

 

The next day was a flight back to Seattle. The day after that I went to check out the Occupy Seattle encampment, which had recently been moved from Westlake Park, adjacent to the financial district in downtown Seattle, to Seattle Central Community College, in the Capitol Hill neighborhood, actually not very far away. It was about 1:30 p.m. when I got there, and it turned out that the little under a hundred people assembled there were holding a sort of rally to pep themselves up for what was coming. I had met one of the people who spoke at the rally, actually the best one in my estimation, at a recent public meeting. He’s a member of Seattle’s Black Orchid Collective and a very good public speaker. In fact, he was able to not only link the coming event to global capitalism, he also invoked the ever-increasing numbers of permanently unemployed that capitalism produces and contains in its various slums around the planet.

 

It turned out the coming event was a march up Seattle’s Broadway to a local branch of Chase Bank, owned by JP Morgan/Chase Bank, apparently one of the largest financial corporation in the world. I happily went along, up the street, with police escort. We chanted various slogans and chants along the way. Some were quite fun, including “Hey, hey, ho, ho, capitalism’s got to go!” and “Workers of the world unite, come and join the general strike!” (which was a reference specifically to the Occupy Oakland called strike, occurring that day). When we got to the bank branch we heard a few facts about JP Morgan/Chase Bank and its CEO, who was apparently in Seattle for a conference. It further turned out that about a half dozen people were already in the bank branch, ‘occupying’ it. We marched around the building a couple of times, chanting some more, and with a few people saying ‘their piece’ about banks. Several police with bicycles guarded the entrances to the building. It seemed that nothing much more was going to happen, for a while at least, but people remained, following what was going on inside. (1) At that point I had to leave, to catch a bus to Vancouver. I will say, though, that I was impressed by the militancy and the generally anti-capitalist tenor of the activity I saw and participated in that day in Seattle. The racial mix of the participants was also greater than what I saw in New York (even though it was impressive there too), and definitely more so than what I’ve seen in Vancouver.

 

I came back to Vancouver highly inspired by what I had experienced in New York and Seattle. I was convinced that there was ‘something in the air’ in America, that now is a time of soon-coming social change, and that many people’s consciousness was already changing, changing rapidly and massively, in the context of this very concentrated #OWS movement, and that we were likely still in the very early stages of it. Having had those American experiences, I was more comfortable and confident in participating in the occupation in my Canadian city, even if I find it difficult to shake my cynicism about the political attitudes and activities of my fellow citizens, especially those on the ‘left’. It could well be that the “liberals” have “taken over” control of Occupy Van., but it is still Occupy Van., part of the global #OWS (or “occupy together”) movement, and it is still open to everyone. I have participated, and tried to defend an anti-capitalist perspective, both in the GA’s and in informal discussions, and I have found other participants to be open to what I say and very respectful. I plan to stay involved and engaged, to defend and discuss an anti-capitalist perspective, specifically, an internationalist communist one, and to learn what I can from the others I engage with. I am also trying to get Occupy Van. to set up a ‘think tank’ like the one in Zuccotti Park.

 

E.

 

 

1. The Occupy Seattle action of Nov. 2 is described in this mainstream media article: http://blog.seattlepi.com/seattle911/2011/11/02/occupy-seattle-demonstrators-rally-at-chase-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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