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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7호] 사랑의 급진성...

  • 「사랑의 급진성」을 읽고서...

     

     

     성? 사랑의 무엇이 어떻게 급진적이란 말인가? 얼핏 자유주의적 연애관이 떠오르기도 한다. 차가운 친밀성 시대에 만남은 종종 미리 설정된 프로그램(단순한 섹스 파트너 찾는 만남)에 따라 이뤄진다. 이렇듯 섹스 파트너 시대에 사람들은 단지 섹스하는 육체로 전락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적 현실에서 사랑이 혁명적이라고 생각하기는 더더욱 쉽지 않다. 하지만 이것은 사랑의 급진성이 아닌, 사랑 없는 섹스이며 결코 급진적이지 않은 사랑의 비급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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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레츠코 호로바트(저자)는 몇 가지 전제를 제시하며 사랑은 급진적이고 혁명적이라고 주장한다. 즉, 사랑이냐 혁명이냐가 아니라 사랑과 혁명의 관계에서만 사랑의 급진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든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넘어서 사회, 정치혁명과 어떤 관계에 있을까? 과연 사랑은 급진적일 수 있을까? 사랑은 사람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등등

     

     이런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류의 성생활 및 관련 제도를 역사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간은 사유재산제도와 계급이 발생하기 전에는 무리 단위로 생활을 하며 군혼을 하였다. 이 사회에서는 성 억압과 성 불평등이 없는 모계혈통 중심이었다. 지금처럼 사랑에 대한 여러 가지 사회적 제약이 없는 사회였다. 그 결과는 반사회적 성폭력, 성행동이 아니라 무리의 유대 강화와 생존으로 이어졌다.

     

    - 사랑과 섹스

     

     계급의 발생과 사유재산제도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형식적이고 강제적인 일부일처제와 가부장적 가족 탄생을 낳았다. 형식적 일부일처제는 혼전 순결 등의 성도덕과 성 억압, 성차별을 권위와 가부장적 권력을 통해 강제하였다. 그 결과 여러 가지 문제가 파생되었다. 특히, 빌헬름 라이히는 이러한 성 억압을 통해 복종적이고 순종적인 인간이 재생산된다고 주장한다.

     

     라이히1)는 (남성의 경우) 발기/사정 능력은 단지 오르가즘 능력의 전제조건일 뿐이며 성기 장애가 신경증의 가장 중요한 증상이라는 자신의 견해를 보완하였다. 사랑 없는 섹스는 오르가즘 능력이 없으며 당연히 신경증을 해소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즉, 혁명과 사랑의 이분법뿐만 아니라 사랑과 섹스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부정한다.

     

     그래서 충동의 만족을 통한 오르가즘에 이르는 길이 라이히가 생각하는 성해방의 방식이다. 하지만 성해방으로 나아가는 데는 개인 내적인 장애물과 사회적인 장애물이 있다. 라이히는 사회적 장애와 관련하여 성정치, 성혁명을 통한 성해방을 강조했다. 라이히에게서 성혁명은 정치혁명과 함께이며 다른 개념이 아니었다.

     

     성혁명과 정치혁명이 다른 개념이 아닌 근거는 신경증을 극복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모습과 충동의 삼중 구조이다. 신경증 증상에서 해방된 사람들의 모습은 성 억압이 존재하는 사회의 성격 구조가 아닌 단순하고 자명하고 온당한 성격을 보인다. 이에 따라 충동의 삼중 구조를 제시하였다. 자연스러운 일차적 충동(생물학적 충동), 반사회적 이차적 충동(생물학적 충동이 억압되어서 왜곡되어 나타난 반사회적 충동), 표면적 충동이다. 이를 통해 더는 충동을 억압하는 사회가 아니라, 사회에 의한 왜곡을 풀어주어 자연스러운 충동이 펼쳐져 나가게 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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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정치, 파시즘의 대중심리 : 빌헬름 라이히>

     

    - 욕망, 다시 사랑의 급진성

     

     라이히의 작업은 사랑의 쟁취는 자본주의 사회의 억압을 극복하지 못하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한, 욕망은 비사회적이고 금기시되어야만 하는 무엇이 아니다. 사랑의 급진성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욕망은 전체주의뿐만 아니라 서구의 자유방임주의부터 이슬람근본주의까지 적대시하고 있다. 왜? 욕망은 본질에서 혁명적이고 기존 사회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즉, 욕망은 현 사회체제에 위협적이고 전복적이기 때문에 금지해야 한다.

     

     계급사회에서 욕망 역시 철저하게 계급화되어있다. (서구사회도 마찬가지이지만)이슬람근본주의 사회의 사례를 통해 피지배계급의 욕망은 철저하게 억압당하지만, 지배계급에는 관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흥 부유층의 경우에는 상품 물신숭배와 욕망의 상품화에 따라 개인적 자유에 대한 제한에 반대하기보다는 소비의 자유를 통해 체제 위선적인 이데올로기를 공고히 한다.

     

     1917년 10월 혁명은 욕망의 폭발이고 초반부에는 성혁명에서도 큰 변화가 생겼다. - 법적으로 열등한 여성의 지위 폐지, 이혼/ 낙태 허가, 여성들이 결혼한 후에도 재산과 수입에 대한 전적인 통제권을 가지는 것을 허용했다. 그런데 1934년에는 동성애 반대법 통과, 낙태 금지 등등으로 후퇴하였다.

     

     구소련에서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경직된 속류 맑스주의자들의) 주된 불만은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개인의 사회 기여를 막는다는 것이다. 레닌에게서도 성적인 문제가 지나치게 널리 퍼지면 사람들이 혁명을 위해 애쓰는 대신 기분 좋은 것들을 말하게 될 수도 있으므로 위험한 일로 여겨졌다.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이네사 아르망은 코뮤니스트(공산주의) 혁명은 성/사랑 혁명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많은 혁명가는 혁명을 먼저 이루어야 사랑의 문제를 다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10월 혁명 직후 진보적 성해방 조치가 1930년대 접어들면서 퇴보한 상황 및 1960 -70년대 독일 등지에서의 코뮌에서 성해방 실험의 실패로 저자는 사랑과 성의 이분법적 사고를 원인으로 주목했다. 하지만 사랑의 급진성의 주제인 ‘사랑과 혁명’ 모두에 어떻게 헌신해야 하는지 등의 구체적 분석과 방법을 제시하지 않은 한계도 있다. 그런데도 사랑의 급진성은 혁명의 급진성에서 발견되고 혁명의 급진성은 진정한 사랑에서 발견된다. 따라서 저자는 사랑에 빠져 사회와 혁명에 무관심한 경우와 정치혁명이 우선이며 그 이후에 성혁명을 하자라는 주장에 모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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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인생의 원천은 사랑과 노동과 지식이다.

    인생은 그 세 가지에 의해 지배되어야 한다.

    - 빌헬름 라이히

     

    - 사랑의 급진성, 오늘날의 의미

     

     노동해방 없이 성해방, 여성해방은 요원할 뿐이다. 왜냐하면, 성적 불평등과 성 억압은 어느 날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계급 발생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평등, 성해방을 포함하는 성혁명은 계급타파로 가기 위한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와 따로 일수가 없다. 이에 성적 자유와 성평등은 남녀 사이만의 문제가 결코 아니며 계급 타파와 인간해방의 주제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이슈인 미투는 남녀 사이 문제에서 더 나아가 권력 문제로까지 제기되었다. 하지만 좀 더 본질을 보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일반적 성억압(혼전 순결, 낙태 금지, 부르주아 도덕 교육, 종교 교리 등등)과 그 파생적 결과로 성적으로 파편화된 지배계급의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부르주아 도덕과 혼전 순결, 낙태 금지가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폭로해야 한다. 그러면서 성적 자유가 무엇인지, 실질적 일부일처제 실현을 위한 사회적 전제조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에 불거진 특정 조직의 내부 민주주의 문제 제기와 더불어 혼전 순결과 낙태 반대를 내부 규정으로 삼아왔던 것이 폭로되었다. 충격을 넘어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부르주아도 내팽개친 부르주아 도덕을 내부 규정으로 무장한 그들은 노동계급의 적일 뿐이다. 

     

     욕망과 도덕은 그 사회의 생산력과 생산관계에 영향을 받는다. 욕망과 도덕은 사회적이며 시대와 계급에 따라 다르다. 대중의 계급의식은 그들의 구체적인 생활과 연계되었다. 대중의 다양한 구체적 관심들을 끌어내고 해결해 가면서 어떻게 커다란 문제와 연결해 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대중에게 향하는 것을 넘어서 대중의 욕망에 귀 기울여 갈 것을 주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자신과도 담을 쌓고 대중과도 담을 쌓고 깃발만 꽂으면 대중이 따라나선다는 허위와 기만으로 가득 찬 이들에게는 허위와 기만부터 버려야 할 것이다.

     

    국제코뮤니스트전망 ┃ 조덕연

     

     

    <주>

     

    1)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 1887-1957) :

     1897년 갈리시아(폴란드 남부 지방)의 도브르치니카에서 태어났다. 1918년 비엔나대학 의과대학에 입학했으며, 1920년에 비엔나 정신 분석학 협회에 들어갔다.

     이후 1930년 베를린으로 가서 정신분석상담소와 맑스주의 노동자 대학에서 강의했다. 라이히는 한편으로 코민테른, 오스트리아 맑스주의, 독일 공산당과, 다른 한편으로는 프로이트 학파와 대결한 뒤에 1934년 공산당에서, 그리고 국제 정신 분석 협회에서 추방당했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1939년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오르곤 에너지'를 발견하였고, 1957년에 죽을 때까지 오르곤 에너지 연구에 몰두하였다. 라이히는 뉴욕주와 메인주에 연구소를 설립했고, 1947년 식품의약 관리부의 조사대상이 되었고, 1954년 법정의 금지명령을 요청하는 고소장이 발부되었다. 라이히는 기초자연 연구에 관해 '피고'로 재판받는 것을 거부했는데, 법정모욕죄로 2년 형을 선고받았다. 1957년 11월 3일 한 연방교도소 안에서 사망했다.

     주요 저작으로는 『강제적 성 도덕의 출현』(1932), 『문화적 투쟁에서의 성』(1936), 『성 혁명』(1966), 『파시즘의 대중 심리』(1933), 『성격 분석』(1933)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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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사회(이행기)의 평등과 차별철폐에 대해

  • 코뮤니스트 사회(이행기)의 평등과 차별철폐에 대해

     

    이번 주말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평등행진'이 있다. 그동안 이 사회는 인권과 기본권에서 형식적으로도 평등은커녕 철저하게 소수자를 배제하고 혐오세력을 양성해왔기에, 너무나 당연한 권리를 위해 사람들이 '평등'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들고 나서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 행진을 지지하고 참여하면서, 실질적 평등과 차별철폐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할 것이다.

    이 글은 현실과는 거리가 먼 미래의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근본적인 문제의식과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기에 '혁명'을 이야기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기본전제

     

    자본주의 사회를 혁명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전 세계에 걸쳐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장악해야 하는데, 그것은 전 세계에 걸쳐 자본주의 국가기구들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을 의미한다. 코뮤니스트 사회는 새로운 노동자권력의 계급적인 목적을 정치적으로 공공연하게 선언하는 체제이며, 경제 혁명을 수행하기 위해 착취계급의 소유권을 몰수하고 사회화를 점진적으로 전체 생산으로 넓혀 나가는 사회이다. 노동자권력의 형식은 역사적으로 노동자평의회와 프롤레타리아 총회의 연합으로 나타났다. 노동자평의회는 노동자계급 전체를 망라하여 조직될 것이고, 계급 속에서 선출되고 언제나 소환 가능한 직접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평의회 체제로 중앙화(집중)될 것이다.

     

    코뮤니스트 혁명 과정에서 혁명당은 평의회 내부에서 활동하지만, 노동자계급 전체의 조직인 평의회를 대신할 수 없다. 혁명당은 평의회 안에서 코뮤니스트 강령을 위해 활동하고 투쟁해야 하며, 평의회 체제는 프롤레타리아계급에 대한 혁명당의 명령을 의미하지 않는다. 노동자평의회, 프롤레타리아 총회로 구성된 전체로서의 프롤레타리아계급만이 정치권력을 가진다.

     

    코뮤니스트 사회는 자유로운 사고를 억압하는 종교와 이데올로기, 낡은 전통과 윤리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다. 계급과 계급 적대가 사라지면 국가는 필요 없게 된다. 코뮤니스트 사회에서 국가는 소멸한다. 코뮤니스트 사회는 국가 없는 사회다. 사회의 행정적 업무는 모든 구성원의 협력, 합의, 집단적 의사 결정에 의해 처리될 것이다. 따라서 코뮤니스트 사회에서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의 진정한 이상이 처음으로 실현된다.

     

    코뮤니스트 사회와 기본권(평등, 차별철폐)

     

    그렇다면 코뮤니스트 혁명과 함께 시작될 사회에서는 평등과 차별철폐가 어느 정도 이루어질 것인가? 현재 시점에서 즉각적인 목표로 삼은 코뮤니스트 강령 일부를 소개한다.

    이 강령은 이른바 '사회주의'를 참칭하는 국가(구소련, 중국, 북한, 베트남, 쿠바 등)의 지배계급과 그들을 '노동자국가'라면서 방어하는 모든 세력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하나, 코뮤니스트 사회에서 모든 사람은 가장 넓고 평등한 자유와 개인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는다.

     

    모든 사람은 신체와 정신에 있어 어떠한 침해를 받아서는 안 되며, 사회에서 보편적인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물품을 얻고 생계를 유지할 권리를 갖는다.

    모든 사람은 노동할 권리와 직업 선택의 자유를 갖는다. 사회는 모든 노동자에게 차별 없는 일자리를 보장하고, 노동에 필요한 교육과 평등한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사회에서 이용 가능한 모든 교육 자원을 누릴 권리를 갖는다. 모든 교육기관은 무상교육을 하고, 모든 사람은 평생교육의 권리를 갖는다.

    모든 사람에게 의료와 건강권은 무상으로 제공하며, 거주 장소를 선택할 권리와 주택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하나, 코뮤니스트 사회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정치, 사상, 신념, 표현, 결사, 집회, 파업에 대한 ‘완전한 자유’를 보장받는다.

     

    반혁명적 정치 활동을 제외한 모든 정당 활동과 노동자 조직, 비정부 조직에서의 정치 활동을 완전히 보장하며, 프롤레타리아계급은 언론, 집회, 결사, 파업에 대한 완전한 자유를 갖는다.

    모든 사람은 사회에서 모든 영역에 대한 진실을 조사하고 알 권리를 가지며, 사회의 모든 정치·문화·윤리·이데올로기적 측면에 대해 제한 없이 비판할 권리를 갖는다.

     

    하나, 코뮤니스트 사회의 기본원리인 ‘인간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성, 직업, 국적, 종교, 인종, 신념, 지위, 신체조건, 학력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어떤 차별도 없이 정치, 경제, 사회적 권리와 기회를 평등하게 보장한다.

     

    코뮤니스트 혁명과 함께 완전하고 조건 없는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정치, 사회, 경제의 모든 영역, 모든 노동에서의 성평등을 위한 즉각적인 조치를 한다. 결혼과 가족에 대한 모든 제한을 철폐하며, 법적인 통제 없이 부부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의 요구만으로도 이혼을 보장한다.

     

    하나, 코뮤니스트 사회에서 모든 사람은 건강하고 안전한 환경을 누릴 권리와 자연과 환경의 파괴를 막을 의무를 동시에 갖는다.

     

    모든 인류가 누릴 건강하고 안전한 환경을 위해 평의회와 기업과 사회구성원들의 활동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감시하고 통제할 권리를 모두가 갖고 실천한다. 자연을 보전하고 환경파괴를 막기 위해 사회는 자원 수탈과 대량소비에 의존한 생활양식의 근본적인 전환을 추진한다.

     

    공약과 강령(형식과 실현)의 차이

     

    부르주아 정치와 선거에서의 공약은 소수 지배계급(정치세력)의 다수 대중에 대한 지키지 못할 약속이거나 명령이지만, 코뮤니스트 강령-프롤레타리아 혁명 강령은 다수 계급이 혁명과 자기 권력을 통해 직접 실현할 목표이자 실천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차별철폐를 위한 법 제정 투쟁은 한계가 있지만, 모든 차별과 혐오에 맞서 투쟁하는 것은 소수자, 사회적 약자, 억압받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생존조건이기에 더욱 확산되어야 하고 근본적인 투쟁이 되어야 한다. ‘국가가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게 만드는 투쟁’은 평등하지 않은 사회가 존재하는 한 지속될 것이며,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투쟁이 될 것이다.

     

    하지만, 국가 자체를 바꾸지 않고서는 실현할 수 없는 목표가 있다면, 형식을 과감히 넘어서야 한다. 평등을 위한 투쟁과 스스로 결정한 직접행동이 ‘공약’이나 ‘국가 의탁’을 넘어 소수자를 포함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자기 권력으로 사회를 직접 통제함으로써 진정한 평등과 차별철폐를 실현할 수 있음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근본적인 평등을 주장하고 행동해야 그곳에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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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1&document_srl=336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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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투쟁] 자회사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안이 될 수 없다

  • 자회사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안이 될 수 없다

    SKB비정규직지부 농성 현장을 찾아서

    - 임성용

     

     

    1. SK그룹 본사 농성 77일째

     

    지난 9월 14일 저녁, 종각역 6번 출구에 있는 SK그룹 본사 앞에서 희망연대노조 산하 ‘SKB비정규직지부 투쟁 승리를 위한 금요연대문화제’가 열렸다. 77일째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문화일꾼들이 참여해 진행해온 연대문화제다.

    SK브로드밴드(SKB)는 거대 통신사인 SK텔레콤의 자회사로, 인터넷, IPTV, 전화를 설치하고 유지 관리하는 업무를 주로 하고 있다. 전국에 103개 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각 지역센터는 SK텔레콤과 위, 수탁 계약을 맺은 별도 법인 형태이며 노동자들은 전원 간접고용형태다.

    문화제는 노동조합 정책실장의 사회로 시작되었다. 전남동부센터에서 상경한 조합원의 투쟁발언, 섹소폰 연주, 비보이 춤꾼의 신나는 춤, 시낭송, 노동가수 김성만 씨의 노래가 곁들여졌다. 참석자는 50여명,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요즘 분위기로는 적은 숫자도 아니다.

    부분파업 중인 조합원들이 문화제 때마다 각 지역에서 교대로 단체 상경하고 있었다. 이날 순천에서 버스를 대절해 올라온 조합원은 활달하고 의지가 넘쳤다. 순천센터에는 30명 정도의 조합원이 있고, 순천과 여수 등 도시지역뿐 아니라 인근의 군ㆍ 읍면까지 전남 동부일대의 서비스를 담당한단다.

     

    “노동시간 단축, 안정된 임금 보장도 중요하지만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은 자회사 전환이 아니었지 않습니까? 우리는 비정규직 노조를 만들고 파업을 하면서 애초부터 ‘진짜 사장이 책임질 것을 요구’하고 투쟁을 벌여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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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경 조합원의 말에는 문제의 핵심이 담겨 있다. 여기서 SKB비정규직지부의 역사를 살펴보자.

     

    2. 자회사 만들기 꼼수

     

    SKB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한 것은 4년 전인 2014년 3월 30일이었다. 상부노조로는 ‘희망연대노동조합’에 가입했다.

    ‘희망연대노동조합’은 통신노동자, 콜센터, 물류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또한 노조 가입이 힘든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과 서비스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권리보장 사업을 하고 있으며, 지역이나 기업과 관계없이 개인도 가입할 수 있는 초기업노조이다. 노동조합이 지향하는 활동이나 신조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철폐하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목표로 한다. 2009년 12월에 창립되었다.

    SKB에 노조가 생기고 각 현장에 지회가 결성되자 그동안 침묵하고 있던 노동자들이 센터의 부당한 처우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수당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야간근무, 휴일 근무를 거부하기도 했다. 노조의 교섭 공문을 부착하지 않은 센터들은 조합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아야 했다.

    2014년 11월, SKB지부는 다단계 하도급 근절, 고용 보장, 노동시간 단축 등을 요구하며 첫 전면파업에 나섰다. 이 시기에 현장지회장들이 자발적인 모임을 결성하여 즉각적인 파업에 나설 것을 노동조합에 촉구하기도 했다. 현장지회장들의 행동은 조합원들의 압력을 반영한 것이었기에 매우 의미 있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SK의 태도는 변화가 없었다. 이에 노동조합은 파업 50일 만인 2015년 1월 6일 SK그룹 본사 건물에 대한 점거투쟁에 돌입했다. 이날, 200여 조합원이 종로구 SK그룹 본사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다 전원 경찰에 연행되어 크게 보도가 되었다.

    한 달 후인 2월 6일에는 SKB와 LG유플러스 비정규 노동자 두 명이 장기파업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서울중앙우체국 앞 15미터 높이의 전광판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장연의, 강세웅 두 노동자는 고공농성에 돌입하면서 “원청인 통신대기업들이 사용자로서 책임을 갖고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나설 때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통신노동자들의 광고탑 농성은 80일 동안이나 이어졌다.

    이런 투쟁에 힘입은 희망연대노조는 이듬해 3월 초, 중재인이 참여한 가운데 회사 측과 교섭을 벌인 끝에 그 결과를 전체 조합원 찬반투표에 붙여 통과 시키고, 4월17일 조인식을 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는 시작이었다. 임단협이 체결되었으나 각 현장은 이를 적용하는 문제로 센터 측과 승강이를 벌여야 했고, 센터의 탄압은 노골화되었다.

    게다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요구가 계속되자 SK는 교묘한 수법을 택한다. ‘홈엔서비스’라는 자회사를 만들어서 기존의 비정규직들을 이 회사에 정규직으로 고용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SKB에 직접 정규직으로 고용하라는 요구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간접고용의 한 형태에 지나지 않았다. 무늬만 정규직인 전형적인 꼼수를 부린 것이다. 현재 투쟁 중인 노동조합의 이름은 ‘SKB 비정규직 지부’인데, 그 사용자 주체가 ‘홈앤서비스’로 바뀌었을 뿐이다.

    회사 측이 노동자의 여망을 자회사를 통한 하청화로 교묘히 왜곡시킴으로서 아무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우선 복수노조가 만들어져 노동조합이 분리되고, 노동자들은 전환과 미전환으로 이간질되었다. 홈엔서비스가 만들어지면서 일부 노동자가 홈엔서비스 쪽 노조에 가입, 사측 입장에 동조해 투쟁에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다행히 그 숫자는 훨씬 적어서 SKB비정규직지부는 2017년 8월, 창구단일화 절차를 통해서 교섭대표노조의 지위를 획득한다. 2018년 현재 홈엔서비스 조합원은 760명으로, SKB비정규직지부의 1,600명보다 훨씬 적다. 또한 홈엔서비스 조합원 중에도 200명은 이번 파업에 찬성했고 극히 일부지만 파업에 동참하기도 한다.

    회사가 자회사를 택한 이유는 당연히 직접고용을 회피하기 위함이다. 실제로 노동조건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임금도 변한 게 없고, 오히려 근로환경은 더 악화된다. 자회사는 노동자에 대한 통제를 쉽게 하는 수단임이 입증되었을 뿐이다.

    결국 올해 2018년 6월 29일, SKB비정규직지부는 다시 파업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3. 파업의 의미와 문재인 정부

     

    SKB비정규직지부 파업의 의의는 정치적으로도 크다.

    공공부분을 비롯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이었다. 그러나 일부 공공부문에서 무기계약직 전환을 했을뿐,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꼴이었다. 오히려 여러 공기업들의 정규직을 가장한 기만적인 자회사 꼼수는 더 심했다.

    민간부문의 비정규직 문제도 다를 바 없는 문제였다. 문재인 정부는 재벌 중에서 특히 현대, SK와 손발을 맞춰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발표하자 민간 기업에서는 최초로 SK가 비정규직 직고용을 발표했다.

    문제는 그 직고용이라는 것이 한낱 자회사 설립이었다. SK 투쟁에서 보듯이,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은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실상 ‘정규직화 제로’이다. 따라서 SKB비정규직지부의 파업은 문재인 정부를 정조준하는 셈이다.

    이번에 쌍용자동차 해고자 전원 복직 합의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쌍용차 해고자 119명 전원복직 합의에 매우 기쁘고 감회가 깊다”고 했다. “걱정이 많으셨을 국민께 희망의 소식이 되었기를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편으로 “긴 고통의 시간이 통증으로 남는다.”고도 했다.

    대통령이 진심으로 고통을 느꼈다면, 여전히 고통 받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마음속으로만 희망이니 기쁨을 생각할 게 아니라, 실제로 희망을 주는 정책을 실행하고, 비정규직에게 기쁨을 주고, 노동자 모두에게 위로를 주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

    언제부터인지 노동, 사회에서 만연한 사회적 합의주의는 이젠 몇몇 개인이나 특정 노조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전 노동자적인 단결과 계급투쟁의 전망이 실종되면서 사업장도 변하고, 현장도 변하고, 노동자도 변하고, 노조도 변했다. 변하지 않는 것은 한가지다. 연대하여 투쟁해야 한다는 점이다.

    SKB비정규직지부 노동자들이 아직은 자기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싸우고 있지만, 상급노조와 노동자조직에서는 이 중대한 투쟁의 불씨를 전국적으로 상승시켜야 한다. 흔들림 없이, 당당하게 싸우고 있는 SKB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모든 노동자들이 지지와 연대를 보내야 할 것이다.

     

    4. 승리를 위하여 연대를!

     

    이번 파업을 이끌고 있는 정범채 지부장은 이날 문화제 마지막 발언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화수목, 교섭을 했습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사측에서 우리 조합원들을 징계하고 고소고발하고,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합이 어떻게 교섭이란 걸 할 수 있겠습니까? 저들도 사람이라면 우리 민족의 명절인 추석도 앞두고 있는데, 이렇게 탄압일변도로 나올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교섭장에 나간 겁니다. 저들에게 얘기했습니다. 교섭 이틀 전에 대표에게도 얘기했습니다. 진짜 추석이라 좋게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대체인력부터 빼고, 징계와 고소고발도 무효로 해라! 저들은 이야기합니다. 대체인력은 고객서비스 때문에 뺄 수 없고 징계라든가 고소고발은 법과 원칙에 따라서 하겠다고 합니다. 교섭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일 쟁대위를 통해서 앞으로 투쟁방향을 동지들과 함께 결정을 내릴 것입니다. 저는 투쟁에 있어서 동지들이 정말 가열차게 잘 싸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측은 이렇게 잘 싸우는, 특히나 가열차게 선봉에선 부대들을, 대표적인 조합원들을 징계하고 고소고발하고, 그것으로 우리 노동조합의 예봉을 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내일 쟁대위를 통해서 앞으로 우리 투쟁기조가 진짜 생활임금이고 뭐고 다 좋은데, 그런 생활에 필요한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 소중한 동지들에 대한 징계와 고소고발을 기필코 막아낼 수 있는, 그러한 강력한 투쟁계획을 같이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지금 현재 저들이 벌이고 있는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의 작태들, 저런 기세를 우리가 꺾지 못한다면, 교섭도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교섭위원들에게 많은 좋은 말씀을 해주십니다. 근데, 교섭자리에선 그런 게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강하게 저들을 압박할 때, 저들은 꼬리를 내리는 것이지,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교섭에서 물론 최선을 다하겠지만, 정말 우리 노동자들의 이 절박한 마음 하나하나가 묶여서 투쟁심으로 똘똘 뭉치지 않는 이상 교섭은 한 걸음도 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 소중한 동지들, 정말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교섭이고 투쟁이고 정말 나를 지키고 내 앞에 동지를 지킨다는, 내 가족을 지킨다는 그러한 각오와 투지로 싸워나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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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여름, 그 무더운 폭염을 이겨내고 농성장을 지켜온 정범채 지부장은 6월 말에 보았을 때보다 얼굴이 많이 거칠어져 있었다. 지친만큼이나 목소리도 차분했다. 그러나 그가 외치는 “질긴 놈이 승리한다 끝까지 투쟁하자!”는 구호 한마디에는 절박함이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SK그룹 본사가 있는 서린빌딩 기둥을 등지고 세워진 농성천막, 빌딩 앞 도로변에 묶인 많은 현수막들, 가로수를 이은 줄에 매달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와 결의가 적힌 빨간 리본들 너머로 수많은 행인들이 무심하게 또는 궁금한 듯 바라보며 지나간다.

    저 펄럭이는 것들, 나부끼는 것들을 깨끗이 걷어내고 SKB비정규직지부 노동자들이 투쟁의 승리를 만끽하며 활짝 웃는 날은 언제일까?

    문재인 정부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외면하고 기업에게만 맡겨둔 채 방관하고 있는 한, 그런 날은 요원해 보인다. 우리가 비정규직 투쟁을 개별사업장 문제로 보고 멀리서 바라보기만 한다면 역시 좌절의 시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보다 많은 관심과 격려, 그리고 문재인 정부에 대한 압박이 필요하다. 자회사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대안이 될 수 없다!

     

     

    *필자 : 임성용. 운수노동자, 시인. 시집으로 <하늘공장> <풀타임> 산문집 <뜨거운 휴식>이 있다.

    *월간 '시대' / 201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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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7호] 코뮤니스트 정치원칙 소개 3 : 노동계급과 혁명조직

    • 코뮤니스트 정치원칙 소개 3

    • 노동계급과 혁명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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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계급이 자신을 계급으로 조직하는 것, 즉 ‘계급으로서의 자기 조직화’와 ‘혁명적 계급의식’은 서로 연결되어 분리될 수 없으며, 노동계급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다. 노동계급은 사회 전체를 떠맡아야 할 사명이 있지만, 이전 계급들과는 달리, 현존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는 미래 사회를 지배할 권력의 어떠한 경제적 토대도 갖고 있지 않은 유일한 계급이다. 노동계급이 가진 유일한 물질적 힘은 그 조직화이다. 그래서 노동계급에 조직화는 다른 계급보다 훨씬 더 그들 투쟁의 결정적이고 근본적인 조건을 이룬다.

     

     노동자들이 가진 유일한 사회적 힘은 조직상의 절대 우세이다. 그러나 그 힘은 단결하지 않으면 분쇄 당한다. 노동자들의 분열과 경쟁을 극복하고 자본주의에 대항해 최종적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공통된 이해를 위해 조직하여 함께 투쟁하는 길밖에 없다. 노동계급은 생산과정에서 차지하는 위치로 인해 단결과 연대에 기반을 두어 계급으로 조직을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자기 조직화는 가공할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조직화와 연대만으로는 자본주의 사회를 붕괴시킬 수 없다. 노동계급의 ‘자기 조직화’는 반드시 전투적 의지와 집단적인 의식으로서의 ‘혁명적 계급의식’과 결합해야만 계급투쟁과 계급의식을 더욱 강고하게 발전시킬 수 있고,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혁명적 투쟁을 벌일 수 있다.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 자신의 과업이다. 노동계급의 한 부분인 혁명조직(당)은 전체 노동계급의 해방을 위한 혁명 강령을 실현하기 위해 조직된 계급의 가장 의식적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혁명조직은 계급을 대신하여 권력을 장악하지 않는다. 모든 권력은 프롤레타리아계급이 노동자평의회를 통해 장악하고 행사한다. 

    혁명조직은 계급의식의 발전과 조직의 성장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혁명조직은 대중들이 혁명 강령으로 향할 수 있도록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 투쟁에 앞장서서 싸우며, 자본주의를 혁명적으로 철폐하는 길에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자본주의 아래 노동자들이 일상적 투쟁의 과정에서 얻게 된 계급의식은 혁명 의식으로 진전될 수도 있지만, 투쟁의 시기가 지나면 다시 돌아가 버리기 때문에, 노동계급에는 계급의 모든 역사·이론적인 성과들을 온전히 담아내는 강령을 가진 혁명조직이 필요하다. 따라서 혁명 강령 없는 혁명조직은 존재할 수 없으며, 혁명조직은 투쟁하는 노동계급과 조직적으로 함께해야만 혁명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코뮤니스트들과 혁명조직은 항상 적대하는 계급과의 투쟁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그 속에서 노동계급의 요구와 자기 조직화를 방어하고, 계급의 민주주의와 계급의식을 발전시키기 위해 항상 계급투쟁에 복무해야 한다.

     

     혁명조직은 계급투쟁을 확산시키고 강화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원해야 한다. 노동계급이 자본에 대해 독립적으로 자신을 조직하려는 모든 경향들(비공인 파업 투쟁, 직접행동, 파업위원회, 대중총회, 노동자평의회 등)의 출현과 확산을 촉진해야 한다. 혁명조직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총회, 점거 투쟁에서의 대중총회와 같이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토론의 장, 프롤레타리아 정치 광장을 통해 계급의 민주주의와 토론문화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노동자들의 토론능력(문화)과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실현이 계급의식을 발전시킬 수 있으며,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맞선 계급의 무기가 될 것이다.

     

     혁명조직은 노동자들의 투쟁이 노동조합(주의)의 한계에 막혔을 때 과감히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직접행동, 노동자 공동행동, 비공인 파업, 대중(대대적)파업을 촉진해야 한다. 비공인 파업 투쟁의 형태는 역사적으로 노동계급의 자기 조직화를 가장 급진적으로 실현했다. 혁명 시기가 오기 전까지 혁명조직은 모든 계급투쟁 속에서, 자본에 맞선 경제적 요구들과 정부에 대항한 낮은 차원의 정치적 요구들을 부르주아 국가권력의 타도를 위한 정치투쟁으로 발전시키려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투쟁들이 상시화, 전면화되고 정치적으로 상승할 때 혁명조직은 구체적으로 파업위원회들과 노동자총회, 대중총회 조직들을 정치적으로 집중시키고, 노동자평의회 건설로 나아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국제적이다. 세계혁명은 세계혁명당(인터내셔널)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그 당은 노동계급 사이에서 혁명 강령을 위한 투쟁을 만들어 내려고 서로 조직한 가장 계급 의식적인 노동자의 구체적인 정치표현이다. 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당을 만들려는 시도는  너무 늦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주었다. 따라서 세계혁명당이 만들어지기 전에 혁명 강령의 명확한 세부 내용이 잠재적인 구성 부분 사이의 토론과 논쟁을 통하여 관련된 모든 면에서 명료화해야 한다.

     

    •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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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7호] 다시 혁명조직의 기본을 말하다.

  • 다시 혁명조직의 기본을 말하다.

     

     최근의 이른바 (노동당) 비선/언더 조직 사건은 그 조직이 무엇을 지향하고 무슨 활동을 하는 가와 상관없이 가부장적, 위계적, 반여성주의적, 반인권적 조직 행태가 드러나면서 모두에게 충격과 분노를 안겨 주었다. 20년 전 기준으로도 지금 폭로된 폐해들은 정상적인 조직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권의 탄압이 극심했던 시기 혁명 운동 조직은 필연적으로 비공개, 비합법, 수직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모든 비공개 조직이 이토록 폐쇄적이거나 억압적이지는 않았다.

     

    현재에도 코뮤니스트 조직과 같은 혁명조직은 활동을 공개적으로 해나가면서도 적들의 공격과 탄압에 대비한 조직구조로 되어있다. 하지만, 혁명적인 조직일수록 폐쇄적인 것이 아니라 가장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가져야만 혁명적 실천과 과업을 수행할 수 있다. 따라서 조직 내부에 분파활동의 자유는 철저하게 보장하지만, 사적인 비선이나 언더는 존재할 수 없다. 이번 ‘언더’ 조직 사건과 같이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규율은 조직과 운동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보시킨다. 혁명조직의 규율은 강요가 아니라 정치의식의 균질화와 민주적 토론능력을 통해 강화되기 때문에 토론을 방해하는 모든 요소는 운동을 갉아먹는 반운동적 해악으로 간주하고 그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그렇다면 혁명조직은 왜 민주적이어야 하는가? 우리가 다시 혁명조직의 기본을 말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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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조직(당)의 본질에 대하여

     

     프롤레타리아 혁명당은 계급의식의 정치적 표현이며, 바로 그 이유로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투쟁에 필수불가결하다. 혁명당(또는 그에 선행하는 혁명조직)은 전체 노동계급의 해방을 위한 강령을 방어하기 위해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 가운데 가장 의식적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혁명당은 늘 프롤레타리아트의 소수일 것이지만, 혁명당이 방어하는 코뮤니스트 강령은 전체 노동계급에 의해서만 이행될 수 있다. 코뮤니즘을 확립하는 임무는 전체 노동계급에 달려 있다. 그것은 의식적인 계급의 전위일지라도 위임될 수 없는 임무이다.

    따라서 혁명당은 계급을 대신하여 권력을 장악하지 않는다. 모든 권력은 프롤레타리아계급이 노동자평의회를 통해 장악하고 행사한다. 당은 계급의식의 발전과 조직의 성장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국제적이며 그렇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세계혁명은 세계혁명당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그 당은 노동계급 사이에서 혁명 강령을 위한 투쟁을 만들어 내려고 서로 조직한 가장 계급 의식적인 노동자의 구체적인 정치표현이다. 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당을 만들려는 시도는 너무 가련하고 너무 늦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주었다. 따라서 세계혁명당이 만들어지기 전에 혁명 강령의 명확한 세부 내용이 잠재적인 구성 부분 사이의 토론과 논쟁을 통하여 관련된 모든 면에서 명료화되어야 한다.

    이처럼 혁명당은 국제적인 전망이 있어야 한다. 현재의 프롤레타리아계급은 수행해야 할 어떠한 ‘민족적 책무’ 갖지 않으며, 세계적 기반 위에서만 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 따라서 세계혁명당은 국제적인 차원에서 건설되어야 한다.

     

    - 혁명조직의 구조에 대하여

     

     오늘날 혁명조직은 일상적 정치토론과 직접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아래로부터의 평의회 구조와 높은 정치의식 통일(균질화)과 행동 일치를 끌어내는 ‘민주적 중앙화’를 조직 운영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제국주의의 지배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단계에서 혁명당의 조직은, 상상처럼 존재할 수 없으며, 고도로 중앙집중화된 구조에 기반을 두지 않는다.

    비록 혁명당의 평당원 동지와 그 안에서 선출된 지도부 사이의 관계에서, 즉 ‘자유와 권위’ 사이의 관계에서 ‘민주적 중앙화’는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그것은 유일하게 건강한 방식이며, 더욱 민주적으로 발전시키면서 유지될 수 있다.” (유기적 중심주의냐 민주적 중앙화냐), 1951, 오노라토 데이먼

     

    이러한 구조는 한국과 같이 대중조직, 정치조직을 막론하고 박제된 구조(총회-대의원/전국위-중앙위-중집/운영위/대표)를 갖는 곳에서는 생소할 것이다. 특히 조직 내 다수파 차지와 핵심 기구의 장악이 전체 조직의 장악으로 연결되는 형식적 민주주의(낡은 민주집중제)에 갇혀 있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러한 낡은 구조가 아래로부터의 권력, 의식과 투쟁의 발전을 막아온 주요 원인 중 하나이었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현재의 이른바 ‘민주집중제’는 본래의 의미에서 벗어나 형식적인 ‘다수결 원칙’, ‘대의제’와 같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형식으로 변질되었으며, 한편으로는 상설로 위임된 ‘중앙기구’에 의해 관료화되어 버렸다. 더욱이 최근까지도 일부 정파는 ‘민주집중제’와 아무 관련이 없는 ‘분파금지’ 제도마저 유지하고 있다.

    정보통신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사회의 다양한 기능에 더 많은 사람이 집단으로 참여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이것은 프롤레타리아계급이 세계적으로 소통하고, 세계적인 공동체를 조직하는 것의 가능성을 높여가고 있다. 이런 시대에 그들이 추구하는 민주집중제는 너무 낡았다. 가장 민주적인 방식이 가장 소통이 잘되는 구조이며 가장 집중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적들의 탄압이 정교해진 만큼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욱 정교하고 창조적인 소통의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야 한다.

     

    - 조직 내부의 차이와 통일에 대하여

     

     혁명조직은 내부의 의견 차이와 행동의 통일을 위해 두 가지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하나, 조직 내부의 정치의식 발전이 제한 없이 완전히 가능해야 하고, 획일화되지 않은 조직에서 당연히 존재하는 수많은 의문과 의견 차이를 억압하지 않고 가장 광범위하고 구체적으로 토론할 수 있게 보장한다.

    둘, 토론의 자유와 함께 조직의 단결과 행동 일치를 보장해야 한다. 이것은 특히, 조직의 모든 단위가 토론과 아래로부터의 결정으로 채택한 사안을 수행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것은 혁명조직에서는 만장 일치주의를 경계해야 하며, 토론의 중요성, 논쟁과 이견의 불가피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직 내부의 분열적 요소와 존재는 조직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토론문화는 다양한 정치적 입장들 사이의 격렬한 대립을 절대 배제하지 않는다.

     

    “혁명조직이 자신에게 주어진 주요 임무인 계급의식의 발전과 확장을 완수하려면, 집단적이며 국제적이고 동지애가 담긴 공개토론 문화의 발전이 필수불가결하다. 물론 이것이 정치적 성숙(좀 더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인간적 성숙)을 요구하는 것도 사실이다.”

    - 국제코뮤니스트 흐름, 『International Review)』131호, [토론문화 : 계급투쟁의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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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현재의 수준에서 혁명조직에 대한 이해 부족과 왜곡, 그리고 악의에 찬 거짓선전과 힘든 싸움에서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프롤레타리아 운동 내부에 건강한 토론을 끌어내고 활성화해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 위기가 심화 될수록, 부르주아지의 무기는 날카로워지고 있다. 더욱이 계급 운동 내부에 조합주의, 의회주의, 민족주의(스탈린주의), 반여성주의, 인종주의 등 대중들이 피해야 할 수많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기본을 말하고 기초를 튼튼히 하고자 한다. 많은 시간과 조직적 개인적 성숙이 필요한 만큼 더 열어놓고 토론하고 경험하고, 투쟁 속에서 원칙을 세워나가고자 한다. 우리가 제안한 정치원칙이 이러한 토론의 시작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국제코뮤니스트전망 ┃ 이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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