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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 선생 6주기 :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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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 선생 6주기

 

(1942년 10월 24일 ~ 2015년 7월 31일)

 

 

 

 

 

"새로운 사회로 가려면, 상품 화폐 자본을 없애야 해"

 

 

자본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면, 『자본론』에서 상품부터 시작하잖아. 생산물이 상품으로 전환하면서 상품교환이 이루어지고, 상품교환에서 화폐가 생기며, 화폐를 가지고 더 많은 화폐를 얻기 위해서, 결국 임금노동자를 착취하잖아. 상품, 화폐, 자본은 결국 임금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으로 귀결하게 돼 있어. 이 기본 요소들을 없애지 않으면, 자본주의는 계속 살아남게 돼 있어.

 

새로운 사회인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에서는 노동하는 개인들이 모든 노동조건들에 대해 공동으로 자기의 것으로 상대하기 때문에, 혁명적 이행기에 생산수단이든 소비수단이든 사회적 생산물을 사회의 일부 사람들이 배타적으로 처분 사용하는 것을 완전히 없애야 해. 이래야만 생산물이 상품형태를 취하거나, 가치에 따라 교환되거나 하는 것이 없어지고, 따라서 일반적 등가물인 화폐와 시장이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고. 이행기에 이렇게 하지 않으면, 공동의 생산수단으로 노동하고 모든 개인적 노동력을 하나의 사회적 노동력으로 의식적으로 지출하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 성립될 수 없다고 생각해. 

 

물론 이행기의 초기에는 아직 자본주의가 지배적이니까 화폐가 있을 수 있겠지만, (공장평의회에서, 지역평의회로, 전국평의회로 가면서) 노동자들의 연합이 사회의 인적 물적 자원을 계획적으로 이용하여 주민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생산한 것을 각 가정에 ‘택배’로 배달하면 될 것이므로 생산물이 시장에서 팔릴 필요도 없고, 노동자들이 화폐를 갖고 물건을 살 필요도 없어. 화폐가 계속 사용된다면, 화폐를 많이 가진 사람들이 상품을 매점매석하여 물가를 폭등시켜 혁명을 좌절시킬 수 있기 때문에, 쿠바혁명에서도 체 게바라가 몇 번에 걸쳐 화폐개혁을 계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2012년 11월

김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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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3호] 코로나19 위기 속 코뮤니스트 활동의 틀

코로나19 위기 속 코뮤니스트 활동의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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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유행은 모든 생산양식에 대한 실험이다. 그것은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위기의 늪에 빠진 체제에 대한 특별한 실험이다. 결국 사스와 코로나19는 자본주의 체제의 결함을 드러냈다.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급격한 감염 전파에 대한 대응이 늦었을 뿐만 아니라, 역학자들이 오래전부터 예측한 대유행에 대한 환경 및 위생 상태 준비는 축적의 만성적 위기로 인해 지난 수십 년간 축소되고 간과되었다.

 

대유행에 앞선 위기

 

코로나19 위기가 자본주의의 실패에 새롭고 위대한 구실 제공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역설적인 사실로 남는다. 2019년 11월 채택한 관점에서 지적했듯이(1), 전 세계 자본주의 체제는 이미 새로운 붕괴로 향하고 있었다. 이는 거의 반세기 동안의 축적의 순환 고리가 끝나는 시점이다. 또한, 전 지구적인 전면적 계급투쟁은 제쳐두고라도, 2019년 말의 대중적 저항 사건은 증가하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대유행 시기, 조지 플로이드의 국가적 살해에 대한 청년 흑인과 백인 노동자들의 전례 없는 단결, 그리고 더 나은 보호를 요구하는 전 세계적 여러 시위는 노동자계급이 역사적 현장에서 사라진 것이 아님을 증명했다. 경찰력 확대 및 경찰 부대에 대한 군사화 조직들이 증명하듯, 프랑스에서 호주에 이르기까지 여러 국가의 지배계급은 사회적 위기를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심지어는 대유행을 진작시키기 위한 세계 각국의 모든 경비지출(혹은 화폐발행) 이전에도, 세계 부채는 이미 세계 GDP의 3배였다. 2019년에는 255조 달러의 신기록을 세웠다.(3) 2020년 4월까지의 부채는 세계 GDP의 331%에 이르렀다.(4) 이처럼 주요 자본주의 경제 전반에 걸친 부채는 이제 ‘제2차 세계대전 이래 볼 수 없던’ 수준에 달했다(5). 그리고 이는 단지 대유행 때문만이 아니다. 2012-2016의 전 세계 부채는 6조 달러 증가했지만, 이후 4년(2020년 9월까지) 동안 52조 달러로 증가했으며, 여기에는 당해의 9개월간의 15조 달러 증가분만 추가된 것이다.(6) 영국은 1945년 국가 부채 대부분을 갚는 데 40년이 걸렸다. 그것은 20년 동안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긴 세속적인 호황으로, 그 후 부채의 대부분을 평가절하한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뒤따랐기 때문에 가능했다. 현재는 이 모든 조건이 작동하지 않는다.

 

부채가 중요한가? 현재 글로벌 기업(일부 은행 포함)의 16%를 사망한 것(좀비)으로 간주할 수 있다(2019년 11월 10%에서 증가). 기업은 절대 줄지 않는 부채에 대한 이자를 갚기 위해 존재할 뿐이며, 오로지 마이너스 이자율만이 그들이 기능하게 한다. 어떤 금리 인상으로든 그들은 무너질 것이고, 일자리에 가져올 결과는 뻔하다. 마이너스 금리는 경제의 이윤 창출 비율이 낮다는 사실을 스스로 반영하는 것이고, 이는 수익성 있는 투자 기회가 드물다는 것을 의미한다.

 

체제의 또 다른 실패

 

대유행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자본 국가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이들은 예외로 주목할 수 있다) 대부분 정부의 우선순위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생산을 유지하고 경제가 지속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는 모든 정당의 정부에 의한 수십 년 동안의 삭감 이래 남아있는 건강돌봄서비스의 부적합성을 강조했을 뿐이다. 너필드 트러스트(Nuffield Trust)에 따르면, 1948년 영국의 NHS(National Healthcare Service, 국민보건서비스)가 창설된 당시 480,000개의 병상을 보유하고 있었다. 1987-8년 병상은 여전히 299,000이었지만 (킹스 펀드에 의하면), 부유 국가 중 중환자실 병상이 가장 낮은 수치를 포함한 127,225로 떨어졌다고 가디언지는 올 11월 보도했다.(7) 같은 기간 동안 인구는 1,700만 명 증가했다. 이들 서비스에 대한 압도적인 두려움이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걱정하는 것 이상의 어떤 행위들을 유발했음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대유행의 불가피성을 지적한 충분한 활동, 조사, 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심지어 사스 유형의 한 종류로서), 심각한 위기에 처한 경제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이미 고민하고 있던 지배계급에 의해 이것들은 의도적으로 무시되었다. 최근 ‘오로라(Aurora)’에 게재한 우리의 기사를 참고하면 다음과 같다.

 

“자연환경에 대한 자본주의의 지속적 착취와 파괴는, 박쥐, 설치류와 그 외의 작은 형태의 동물을 우리의 도시로 강제로 들여보내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병원체를 가지고 들어와 인간에게 옮긴다. 우리는 이들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이 없기에, 사스, 메르스와 같은 유행병을 낳고, 현재의 Covid-19 대유행을 초래하였다. 자본주의야말로 바이러스의 진정한 근원이다! Covid-19가 지금까지 끼친 영향은 파괴적이다. 11월까지 전 세계적으로 5천만 명 이상이 감염되었고 공식적으로 120만 명이 사망했다. 이 수치들은 분명 대단히 과소평가 된 것이다. 게다가 국제통화기금(IMF)은 대유행으로 인해 9천만 명이 더 극빈층으로 추락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이는 하루 1.9달러 미만으로 생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로나바이러스 – 도끼는 노동자계급에 떨어진다)

 

대유행의 즉각적 여파는 2022년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점을 역사적 전례는 제시한다. 정신 질환의 증가는 말할 것도 없이, 사회적-경제적 비용이 비대해질 것이고, 오랜 기간 지속할 것이다.

 

대유행의 분명한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재 생산 단계에 있는 백신의 효율적 적용 속도 및 그 효용성이 그것을 결정지을 것이다) 또한 매주 수정되어야 할 성장 예측(또는 부족)을 발표하는 OECD/IMF/World Bank/등의 게임을 우리는 원치 않는다. 현재 그들은 세계 경제가 4.4% 수축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중국은 전체 성장 3% 이상을 기록할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결과는 노동자계급은 이미 심각하며, 더 악화하리라는 점이다.

 

그들은 노동자계급의 임금을 지불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2008년 투기 거품의 붕괴에 대한 대가를 치르기 위한 10년간의 긴축정책 이후, 전 세계 많은 노동자의 상황은 한 가지 이상의 의미로 취약했다. 분명 Covid-19의 대유행은 취업률에 영향을 미쳤으며, 노동 조건에는 더했다. OECD에 따르면,

 

“... 수백만 명의 사람들의 출근이 불가능해지자, 활동이 예외적으로 급감했으며 전례 없는 실직이 초래되었다. 2008년 금융 위기 초기 몇 달과 비교해 일부 국가의 노동 시간은 최대 열 배가량 감소했다. 9월 말 발표된 수치에 따르면, 공식적으로는 유로존 및 미국의 2천 5백만 이상의 사람들이 실직 상태에 있다. 그러나 대유행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실제 숫자는, 국가가 지원하는 임시 휴업 제도에 의해 일시적으로 보호를 받는 사람들, 노동력에서 제외된 사람들, 일주일에 원하는 만큼 많은 시간을 일할 수 없는 사람들까지 고려하면 그 이상이라고 경제학자들은 주장한다.(8)”

 

영국 경제는 다른 주요 선진국들보다 더욱 위축되었다. 2/4분기 영국 경제는 미국과 독일보다 두 배 이상 급격히 위축되었고, ONS(영국통계청) 기록이 시작된 이래 최악의 위축이었다. 영국에서는, Sunak(Rishi Sunak, 영국의 현 재무장관)의 해고 계획에 따라 노동자들은 몇 달간 기본급 혹은 임금의 80%만 받았는데, 그들은 이미 이전에 받았던 100%의 급여에 상응하는 청구 금액을 납부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이는 많은 노동자는 (질병의) 증상이 있을 때도 강제적으로 노동했다는 것을 의미하며(9), 영국은 병가 중 급여가 ‘현재의 OECD 국가 중 최저인 곳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현재 정부는 마지못해 그 계획을 내년까지 연장했지만, 많은 이들에게 이는 충분치 못할 것이다. 심지어 대유행으로 수백 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진 후에도, 소매업 및 자동차 업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10)

 

한편으로 정리해고는 이미 속담처럼 ‘기록적인 비율’로 증가했다. 10월 ONS에서 발표한 이 수치는 지난 8월까지 세 달간 적용된 것이다.

 

“1분기 정리해고는 11만4천 명으로 증가했으며, 1995년 첫 통계가 발표된 후 최대 폭이었다. 한편 실업급여를 요구하는 이들의 수는 2천 7백만으로 증가했다. - 이는 코로나바이러스 봉쇄 이전의 3월 대비 두 배 이상의 수치이다. 실업률은 작년의 3.9%와 전 분기의 4.1%에서 4.5%로 증가했다. 이는 남성 자영업의 감소로 인한 것이다.(11)”

 

18~24세의 실업률은 16%를 웃돈다. 이는 번복될 가능성이 거의 없으므로(또한 더 높아질 확률이 더 높다.), 결과적으로 노동자계급은 세분화될 것이다. - 실업자, ‘안정적’ 일자리 노동자, 무기계약 기간 노동자, 등. 직업이 ‘안정적’인 노동자들은 생활 여건에 있어서 다른 둘의 상태, 훨씬 악조건 상황으로 전락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요소에서 벗어나야 할 압박을 받을 것이다. (지난해의 딜리버루-영국판 배달 어플리케이션-파업에서 발견된 동지들과 같은) 불안정한 이들에게는 어떻게 효과적으로 단결할 것인가가 문제이다.(12) 한편 대량 실직은 노동자 투쟁에 있어서 결코 좋은 근거가 되지 못했다.

 

학생 또한 이제는 투쟁해야 한다. 그들은 경제를 유지 및 지속시키기 위한 시도 속에 두드러진 희생자였다. 그들의 지주(즉, 대학)가 존속할 수 있도록 빚을 더 지기 위해 대학으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받은 학생들은 흉악범도 받아들일 것 같지 않은 감금 상태를 경험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브리스틀, 글래스고에서 맨체스터, 런던에 이르기까지 저항이 있는 건 놀랄 일이 아니다.

 

요컨대, 대유행은 이미 우리가 식별할 수 있는 추세를 가속해왔다. 이들 사안 초반에 대한 우리의 관점은 2019년 문서에 언급되었다. 자본주의 이윤 축적의 새로운 순환 고리가 작동토록 하기 위한 충분한 자본의 규모를 평가절하할 필요에 대한 근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대신에 국가적 개입(체제 붕괴의 큰 특징 중 하나)으로 필연적인 대규모 충돌을 피해왔다. 슘페터적 ‘창조적 파괴’의 순간은 발생하지 않았다(맑스주의 용어로는, 축적의 순환 고리 종식에서의 일반적 평가절하). 2008년, 금융권은 ‘너무 거대해서 실패할 수 없다’라는 사실이 밝혀진 후, ‘양적완화’와 같은 정책들이 체제의 실패를 피하기 위해 적용됐다.

 

최근에는 「파이낸셜타임즈」의 사설에서 다소 분명하게 인식한 바 있다.

 

“대부분 국가에서 대유행의 경제적 후폭풍을 완화하는 데 있어서 공공영역은 그다지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 또한 그들은 국가가 다시 한번 자본주의를 구해주기를 계속해서 요구한다. ... 국가 개입에 대한 최고의 사례는 시장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위해 대중의 지지를 유지하는 것이다. 수정되지 않은 자본주의는 유권자들의 판단에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2008년 이래, 충돌은 불평등에 대한 대중(특히 청년)의 분노가 완전한 체제 변화에 대한 요구로 쏟아질 것이라는 위협이었다. 바이든노믹스(보기로 대기업 및 부자들에게 물리는 세금-CWO)가 이행된다면, 기업과 고소득자들에게 생활의 부담을 가중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는 이 또한 더 큰 계산을 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체제의 실패에 대한 더 명확한 표현이 있을 수 있을까? 어떠한 잠재된 장점도 옹호하지 마라. 그저 이윤 제도를 대신하여 그것을 계속 유지하라. 이것은 축적을 부활시키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체제-이미 기업의 부채는 세계 GDP의 102%에 달한다.-를 규탄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전의 전망에서 명시한 똑같은 “세속적 침체”를 지속시키는 것을 규탄하는 것이다.

 

영국의 브렉시트 문제도 여기에 추가된다. 심지어 브랙시트의 열렬한 지지자들은 그것이 단기적으로 경제 성장률의 하락을 초래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전문가에 따라, 2021년 0.3%에서 5% 범주) 현 정부는 집권 이래 여느 때보다 무능해 보인다. 영국의 지배계급(전 세계의 다른 어떤 나라들과 마찬가지로)이 체제의 경제침체에 대한 해결책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영국의 EU로부터의 탈퇴(EU는 이를 저지했다), 브렉시트가 경제를 자극할 것이라는 환상이 탄생한 것이다. 존슨 정부가 다가올 대재앙을 대비하기보다는 ‘허드 면책권’이 확립될 수 있다고 가장하도록 유도한 것은, 부분적으로는 대유행이 브렉시트의 계획에 가져올 영향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그들은 PPE와 같은 문제에 딴지를 걸고, 마스크를 제작하는 일에 수십억 달러를 기부했다. 보건 경험은 없지만, 개인적 연줄이 있거나 토리당에 기부하는 민간 컨설턴트를 추적해서 찾아내서. 부패, 낭비, 무능함은 수 백만여 개의 PPE가 목적에 적합지 못한 존재로 버려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비록 정부가 요양원에 ‘소생시키지 말라’는 통보를 훨씬 더 잘 공급했지만! 막판에 이르러 그들은 EU와 피해 제한협정을 맺었다. 협정 없는 브렉시트는 훨씬 더 심각했을 것이므로, 이에 대부분의 영국 자본가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상태로 브렉시트는 영국 자본의 거대한 목표 자체이며, 대부분의 기업 조직으로 인해 그 결과는 여전히 두렵다. 2021년의 경제가 급격히 침체하면서, 대유행은 ‘리틀 잉글랜드’ 여단에게 체면을 세울 구실을 마련해 줄 것이다.

 

제국주의 경쟁의식

 

많은 사람에게 봉쇄의 시간은 늘어만 가는 것 같지만, 역사는 결코 가만히 있지 않다. 심지어 대유행 와중에도, 제국주의 전선에 그저 서 있기만 한 것은 분명 아니다. 대유행 동안 계속되는 내전 및 소규모 교전(인도/중국, 시리아, 예멘), 군사 위협(대만), 군사 폭력에 대한 새로운 소요들(나고르노-카라바흐, 티그레이)로 인해 제국주의적 긴장이 급격히 고조 되고 있다. 더욱이 상하이협력기구(최초로 군사적 차원의 대응. 미국은 영국 및 호주와 같은 국가들과 ‘민주주의 방어’ 기치 아래 활발한 반(反)중 연합을 형성 중이다)와 블록 형성(중국-러시아-이란을 파키스탄과 같은 국가들과 하나로 연합)이 명백히 가속화되고 있다.(15). 과거의 영국 파운드화와 마찬가지로, 미국이 여전히 세계 최강국으로 당연시될지라도, 그리고 세계 통화로서 달러의 역할 유지를 포기할 준비를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일일지라도, 그의 패권은 지속해서 도전받고 있다. 그런데도 아프리카의 ‘소프트 파워’를 통해서건 아시아에서의 노골적인 공격에서건 중국의 제국주의적 행진은 멈출 줄 모른다. 최근 신청자가 지나치게 많았던 최초의 국채 발행은 베이징의 또 하나의 작은 승리로 판명되었다. 중국의 영향력은 11월 15일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미 동맹국, 호주 및 일본을 포함하여 아-태평양 열네 국가들과의 체결)으로 더욱 커졌다(RCEP).

 

자본주의 강국들은 갑작스러운 전쟁을 벌이지 않고, 그들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상대 자본을’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거나, 다른 모든 선택권이 배제되었다고 느낄 때만 그렇게 한다. 순간의 대리전, 대체로 드러나지 않은 사이버 전쟁으로 대체하지만, 이들 역시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미국 지배계급의 (매우 실제적인) 분열의 중요성을 제대로 계산하지 못한 중국의 가능성은 제쳐두고서라도, 중국의 (느리지만) 지속적 성장은 그 자체로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대다수가 호언장담했던 유라시아 전역의 기반 시설로 1조 달러를 투자(1940년대 미국의 마셜플랜 보다 7배 이상의 규모이다.)한 ‘벨트 및 도로’ 계획이 지금은 난관에 부닥쳐있다.

 

2016년, 중국의 국영 은행들은 ‘의존국’에 750억 달러를 빌려주고 있었는데, 이것이 2019년에 한낱 40억 달러로 급감한 것이다. 파키스탄 및 스리랑카, 말레이시아와 같은 국가는 채무 상환 연기를 논의 중이다. 그 사이 중국은 채무 불이행금액 150달러 중 60달러를 빌려줌으로써 베네수엘라의 경제 붕괴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었다. 두 제국주의 거국에 국내외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는 한편, 지배 엘리트들은 상대방에게서 오는 위험을 인식하는 데 혈안이 되어있다. ‘상대방’에 대한 일상적 악마화에서 시작하여, 백신을 먼저 획득하기 위한 경쟁, 그리고 대유행을 일으킨 것에 대한 경쟁국의 비난에 이르기까지, 모든 형태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가 획득되기를 기대한다. 이것은 일반화된 전쟁에 대한 준비의 일부가 될 것이다.

 

환경 위기

 

또한, 장기적으로(단기간이더라도), 환경위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초기 배출량을 일부 감소(항공편의 결항 및 재택근무자를 고려함.)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에너지의 사용 증가는 모든 이득이 무효임을 의미했다. 2020년은 가장 뜨거운 해로 기록되며 막을 내렸다. 코로나19 위기는 그린 뉴딜 및 새로운 방식의 노동에 대한 모든 종류의 생각을 촉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윤 및 지속적 성장으로 몰아가는 것이 자본주의 생산 양식의 핵심이라는 문제의 본질을 그들은 여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하에서는 기후변화를 완화에 대한 유의미한 변화가 성공할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은 120억 파운드의 존슨식 녹색 에너지 투자 계획으로 입증된다. 이는 이미 목적에 맞지 않는 시험 및 추적 프로그램에 낭비된 120억 파운드(17)와 비약적으로 비교된다. 예정된 투자의 적어도 3분의 1, 아마도 3분의 2가 새로운 자금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 그것은 무색해진다. 뜨거운 정치적 입김이 지구 온난화를 막지는 못할 것이다. 지구의 생태계가-여느 인간 문명의 외관과 더불어-우리가 아는 것처럼 생존하기 위해서는, 모든 국가의 노동자계급이 이 행성을 죽이고 있는 자본주의 정권을 전복해야 한다. 이윤을 위한 생산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에 의한 생산에 근거한 사회주의 세계를 건설해야만 한다. 인간에게 남아있는 모든 위협은 단기적으로는 제국주의 전쟁이며, 장기적으로는 생태계 재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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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지막 희망 – 세계의 노동자계급

 

인간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희망은 노동자계급 연대 투쟁이다. 2019년 말 이미 다음과 같은 징후가 있었다. 우리가 지난해 약술한 바와 같이, 은퇴 40년 후 라틴 아메리카에서 레반트에 이르기까지 파업 및 시위에서 그것이 재발견되기 시작했다. 짐바브웨, 터키, 아르헨티나에 이르는 소위 ‘신흥’ 경제국, 혹은 빈국 및 중위권 국가들에서 인플레이션이 높아질 것인데, 엄청난 달러를 빌렸음에도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는 통화에 대한 이자 및 만기 상환에 수입의 대부분을 사용하게끔 양산하기 때문이다. 달러 대출에 대한 접근성이 없는 이란과 같은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신용이 낮은 그들 역시 화폐를 찍어내는 데 의존한다. 이유가 어떠하든, 인플레이션의 결과는 경제 붕괴를 가중할 것이고, 삶은 더욱 비참해질 것이며, 전 세계 수백만의 사람들이 실재적 굶주림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로 2019년의 저항이 멈췄지만, 이후로 우리는 문자 그대로, 수천이 아니라면, 바로 지구 건너편에서 ‘우리는 당신의 이윤 때문에 죽지 않을 것이다.’라는 문구와 임금 삭감에 반대하는 수백의 파업을 보았다. 코로나19와의 전투를 위한 단계적인 긴급 조치들로, 이미 상당수의 노동자는 우리 ‘모두는 함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으며, 그들에게 실직이든, 낮아진 임금이든 어떤 식으로든 그 대가로 비용을 지급할 것이 요구된다. 현재도 전 세계적인 파업이 진행 중이며, 상당수는 몇 달간 임금을 받지 못한 이주 노동자들이 벌인 것이다. 정확히는 히드로 공항의 노동자들이 더 나빠진 임금과 조건으로 재계약 할 수 있다는 ‘제안’으로 계약이 철회되는 상황을 우리는 이미 목격하고 있다. 우리가 적은 것처럼, 그들은 파업하고 있지만, 이것은 노조가 통제하는 한 승산이 없는 매우 겸손한 법적 항의이다. 만일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자기 방어만 하려 한다면 그들 손에 투쟁을 떠맡아야 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세계적 혁명이 필요하다.

 

우리는 여기서 일부 유럽 국가의 소부르주아, 점주 등의 봉쇄에 대한 ‘혁명’을 언급한 것이 아니다. 코로나를 부정하는, 극우파 및 신파시스트의 지원을 받는 소부르주아들에게 노동자들의 삶을 비참하게 만드는 데 충분하고도 남는, 반동적이고, 인종차별적이며, 퇴행적인 안건만 있을 뿐이다. (이탈리아에서조차 마피아는 갈취할 것이 없다면 부정한 책임을 질 수 없다!) 노동자계급의 안건은 전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조직 혹은 조합에 근거한 부분적 대응으로는 충분치 않을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더욱 확장된 조직으로 결집할 것이 절박하게 요구되는데, 이는 체제의 실패에 대해 우리에게 또다시 대가를 치르게 하려는 시도들에 대한 현재의 저항을 넘어서는 것이다. 자본가들은 반발이 다가오고 있음을 이미 인식하고 있다. 국가 권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은 비단 중국, 러시아, 이란뿐만이 아니다. 보기로, 프랑스 정부는 경찰의 부정한 행위를 가리기 위해 그것에 대한 불법화(더 이상의 조지 플로이드는 없다?)를 시도했다. 다른 한편, 호주와 같은 그 외의 국가들은 계급전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을 예상하여 그에 대한 준비로 경찰에 대한 군사화를 진행 중이다. 중요한 물음은 새로운 사회적 경련이 도래할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체제가 우리에게 던져줄 모든 파장을 충족하기 위해 노동자계급이 얼마나 준비가 잘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미 많은 젊은이는 현재의 체제가 갈수록 인류에게 미래를 제시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코뮤니스트 좌파에게로 오고 있으며, 국제코뮤니스트경향(ICT)은 지금 겪고 있는 것과 같은 성장을 누려본 적이 없었다. 오랜 계급 후퇴 이후 다소간 고무된 것이지만, 이는 작은 시작에 불과하며, 우리에게 거대한 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들의 최우선은 코뮤니스트를 위한 투쟁이 진정으로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과거 혁명의 파도 실패에서 등장한 다양한 거짓된 친구들, 보기를 들면 자본주의 국가의 하나 혹은 그 이상의 형태를 옹호했던 이들을 드러내는 습관적인 활동 이상의 것을 포함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이른바 트로츠키주의자뿐만 아니라, 맑스주의자-레닌주의자-스탈린주의자, 마오주의자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이들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은 여전히 유지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옹호했다) 또한 주로 소셜 미디어에 등장하는 ‘좌파 코뮤니스트들’은 반(反)자본주의 투쟁이 진실을 파헤쳐 특정 입장을 고수하려는 개인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앞으로의 길은 피와 살이 있는 노동자계급의 진정한 세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행해져야 하는지를 논의하고 조직하는 것이 혁명적 투쟁의 역할이다. 자본주의는 삶을 견딜 수 없게 하는 모순을 제시할지 모르겠으나, 자본주의 안에서 사회주의가 자동으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현 체제와 그 이상의 것들로부터, 혁명의 ‘케케묵은 흙더미’에서 자신을 제거할 수 있는 한 계급의 의식적 행동이어야 한다. 또한 노동자계급의 의식이란 불균일하게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 여기에서, 지금의 그곳에서, 그리고 역사적 시간을 통틀어, 의식이 확고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국제 혁명 조직을 통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형태의 자본에 대한 우리의 여러 투쟁 속에서 하나의 계급으로서 우리가 배운 모든 것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코뮤니스트강령이라 일컫는다. 이것은 고정적이거나 불변하는 것이 아니며, 더군다나 한두 가지의 ‘위대한 뜻’의 산물도 아니다. 그러나 전 지구적인 노동자계급 투쟁의 모든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경험에 근거한다.

 

우리는 국제코뮤니스트경향(ICT)이 미래 세계의 정당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을 절대 멈추지 않고 반복할 것이지만, 그것을 생성하는 과정 일부가 될 의향이 있다. 비록 미래 세계 혁명의 성공 조건이 충분치 않을지라도, 국제 정치조직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점에 관한 생각에서 자칭 여러 ‘좌파 코뮤니스트’들이 우리와 같지 않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 러시아혁명이 고립 속에서 사회주의 정권이 아닌 자본주의 국가의 탄생을 가져온 사실로 인해 그들이 망설이는 것을 우리는 이해한다. 결국 이것은 스탈린 치하 전체주의 독재정권의 가장 큰 축으로 이어졌다.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맹공격을 주도한 같은 당 역시 결국엔 노동자계급을 지배하는 자리를 차지한 사실은 우리 모두의 마음에 각인된 교훈이다. 그런데도 ‘모든 정치적 정당은 부르주아다.’는 사실이 아닌, 역사적으로 발견된 계급 전반의 조직을 통해서 노동자계급 스스로 사회를 운영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반(反)자본주의적 혁명에 있어서 당은 계급을 이끌 수 있지만, 계급 전체에 의해서만이 사회적 변혁이 이루어질 수 있을 뿐이다. 계급은 누구에게도, 심지어 그 계급 정당에도 권력을 거저 주지 않는다.(19) 무엇보다 사회주의란, 그저 부의 새로운 분배에 관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사회에 관한 것이며, 구성원들의 자발적 활동이 국가 관료의 수동적 수용을 대체하는 사회이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은 자신을 혁명적 대립으로서 조직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과 그 안에서 당의 역할은 필수 불가결하다.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코뮤니스트의 아기를 반혁명적 목욕물에 내던지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코뮤니스트의 과제는 코뮤니즘을 위한 사례를 주장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조직의 기반을 확장하고, 다른 노동자들과 학습하기 위하여 계급의 모든 투쟁에 참여하는 것을 포함해야 하는데, 그럼으로써 우리는 역사의 새로운 국면, 아직 쓰이지 않은 역사 속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혁명적 이론 없는 혁명적 실천도 없지만, 혁명적 실천 없는 이론의 타당성에 대한 검증도 없다. 과도한 머리 없는 닭 같은 행동주의를 피하는 한편, 이러저러한 요구를 내세우지 않고 즉각적인 투쟁을 미래의 코뮤니스트 사회 - 노동자계급이 스스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진정한 승리-로 연결하기 위해 코뮤니스트들은 계급투쟁에 참여한다. 우리의 목표는 그 일을 더 넓히고 프롤레타리아 해방의 핵심 도구로서 미래의 국제적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을 우리의 대열에 합류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 2020년 11월, 연례총회에서 논의한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에 대한 관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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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현재 위기와 코뮤니스트 과제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0-02-07/the-current-crisis-and-the-tasks-of-communists

(2) 이후 전망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19-11-20/perspectives-for-the-coming-period

(3)

https://www.iif.com/Portals/0/Files/content/Research/Global%20Debt%20Monitor_April2020.pdf

(4)

https://economictimes.indiatimes.com/news/international/business/global-debt-hits-record-high-of-331-of-gdp-in-q1-iif/articleshow/77000231.cms

(5) 파이낸셜 타임즈 데이터워치, 19 October 2020

(6) 파이낸셜 타임즈, 19 November 2020

(7)

https://www.theguardian.com/politics/2019/nov/25/hospital-beds-at-record-low-in-england-as-nhs-struggles-with-demand

(8) 파이낸셜 타임즈, 델핀 스트라우스(Delphine Strauss), 7 October 2020

(9) 새라 오코너(Sara O’Connor) “징벌적 병가 규정으로 우리 모두가 대가를 치르게 된다.”, 파이낸셜 타임즈, 15 December 2020

(10) 파이낸셜 타임즈, 15 December 2020

(11)

https://www.ons.gov.uk/employmentandlabourmarket/peopleinwork/employmentandemployeetypes/bulletins/uklabourmarket/december2020

(12) '임시계약 경제(Gig Economy)'에서 조직화의 어려움을 강조하는 리버풀 쿠리어스(Liverpool Couriers)의 자기조직화 투쟁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19-12-02/the-self-organised-struggle-of-liverpool-couriers-highlights-the-difficulties-of

(13) 파이낸셜 타임즈, 22 October 2020

(14)

https://www.ft.com/content/168e908a-03a5-4a0c-b993-355e88afee41

(15)

https://militarywatchmagazine.com/article/putin-says-formal-russia-china-military-alliance-possible-amid-mounting-western-threats

(16) “시진핑 주석의 '세기의 프로젝트'를 되새김”, 파이낸셜 타임즈, 12/13 December 2020

(17) 파이낸셜 타임즈, 15 October 20

(18) 이후 전망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19-11-20/perspectives-for-the-coming-period

(19) 「국제주의 코뮤니스트당」 정치 강령 (1952)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0-03-16/political-platform-of-the-internationalist-communist-party-1952

 

 

 

2020년 12월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옮긴이 ┃ 지나

 

 

<원문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1-02-08/communist-work-in-a-covid-crisis-a-frame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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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2호]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최근 내부 논쟁(3)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최근 내부 논쟁(3)

 

「전쟁인가 혁명인가」와 「혼돈인가 혁명인가」의 공식화와 토론과 논쟁의 가능성을 열어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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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코뮤니스트」 11호(2020.5.1.)에서 나는 「코뮤니스트」 10호에서 시작된 ‘역사의 경로’를 둘러싼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의 내부 논쟁을 정리하면서 계속되는 논쟁의 진행경과와 제국주의 전쟁 가능성으로의 논의 전개를 다루었다.

 

나는 논쟁(2)에서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내의 ‘역사의 경로’에 대한 논쟁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1)

 

첫째, ICC(국제코뮤니스트흐름)는 ‘역사의 경로’ 개념이 ‘해체’ 시기에 더는 유효하지 않다고 하는 반면, ICT(국제코뮤니스트경향), IGCL(코뮤니스트 좌파 국제그룹), NC(신경로), GCCF(걸프만 코뮤니스트 분파) 등은 ‘혁명인가 전쟁인가’의 의제가 여전히 유효하며, ICC는 계급투쟁을 폐기했다고 비판한다. 이는 근본적으로 맑스주의에 대한 이해, 유물론과 관념론의 대립, 자본주의 모순에 대한 이해 등의 근본적 논쟁을 내포하기 때문에 더욱 심화한 문제제기와 논쟁이 요구되는 과제로 남겨두기로 하자.

 

둘째, 해체 시기를 양대 제국주의 블록의 소멸(소련의 해체로 인한)로 보고 계급의 힘의 균형이 더는 의제가 아니라는 ICC는 소련을 포함한 이른바 ‘사회주의’를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했기 때문에 이미 세계 자본주의 틀 안에 ‘국가자본주의’의 몰락을 자본주의 해체라는 새로운 의미로 규정하기에는 스스로 모순을 안고 있다.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계급투쟁은 필연적인 역사발전의 동력이기 때문에 ‘해체’ 문제를 자본주의를 넘어선 ‘인류의 파괴’로 본다면 우주적 차원의 더 넓고 깊은 인식의 영역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셋째,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의 논쟁이 맑스주의 원칙, 정치노선, 강령 등의 본질적 개념과 과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기회주의’, ‘기생주의’라는 조직 문제로 한정되고 서로를 비난하는 방식으로는 세계혁명과 그것을 프롤레타리아트와 함께 이루어 낼 세계혁명당 건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역사의 경로’ 논쟁이 깨닫게 했다는 점이다,

 

 

2. 입장의 공식화를 통한 대립구조의 명확화와 앞으로 전망

 

2-1. 「기생주의」를 둘러싼 비난의 심화

 

자신을 코뮤니스트 좌파라고 규정하는 스페인의 NC(신경로)그룹에 대해 ICC는 NC그룹에 대한 본질적 비판을 넘어서서 NC의 주요 활동가인 Gaizka가 스페인 사회주의노동자당(PSOE)과 오랫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를 자유주의자이거나 극우세력의 일부분이라고 비난했다.(2) 더 나아가 「Gaizka의 귀청이 터질 듯한 침묵」(3)이라는 글에서는 NC와 IGCL(이전 ICC의 내부분파)을 함께 기생주의 그룹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ICC는 맑스, 엥겔스, 베벨, 트로츠키가 첩자로 몰렸던 보기를 들면서 Gaizka의 친구와 동료, 특히 IGCL의 깡패 같은 기생집단의 행동이 모험가 방어인 것처럼 보인다는 것에 놀라지 않는다고 하면서 IGCL이 ICT에 친화적인 관계로 보이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ICT에까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바쿠닌 같은 인물 세계관에 대해 IGCL과 Gaizka는 정직성, 조직원칙,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도덕성에 대한 의지가 안 보인다고 비난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부르주아 국가의 고급관료와 접촉하고 협력한 인물을 프롤레타리아 정치 환경에서 우리는 참을 수 있는가? 이러한 개인들과 프롤레타리아 조직을 건설하고 미래의 혁명당을 준비할 수 있는가?”(4)

 

그런데 NC에 대해서 IGCL은 NC와의 소통에서 트로츠키주의와 강령적, 이론적, 정치적 그리고 전투적 단절을 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 바가 있으며(5), 코뮤니스트 좌파로서의 NC의 입장은 2020년 트로츠키 암살 80주년을 맞이하는 글에서도 드러난다. NC는 그중에서 혁명가들의 화석화와 성역화를 반대하면서도 제4 인터내셔널이 1차, 2차, 3차 인터내셔널과 달리 1933년 노동계급의 거대한 역사적인 패배 속에 건설되었음을 강조한다. 물론 1940년 이후 이른바 트로츠키주의가 통일전선으로 온갖 유형의 스탈린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 민족주의자에 대한 지지의 변명이 되고 있음을 비판하지만, 그 이전의 트로츠키와 트로츠키주의에 대해서는 코뮤니스트 좌파와 입장이 다름을 드러내고 있다.(6)

 

반면 ICT는 「레온 트로츠키의 암살-우리가 잊지 못하는 날」에서 그의 혁명가로서의 의미를 기리면서도 1920년대 이후 트로츠키가 러시아 안팎에서 혁명의 실패를 맞게 된 것에 대한 이론적, 정치적 접근에 매우 비판적인 ICT의 입장과 그들의 팸플릿 「트로츠키, 트로츠키주의, 트로츠키주의자」를 상기시키고 있다.(7)

 

한편 ICC는 스페인에서 새로운 그룹과 논쟁을 시작하며 그들의 입장을 넓혀가고 있다. Alicante의 그룹과 그동안 소통하면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지만, 노동계급 자율성의 진지한 필요성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라는 두 가지 요소에 동의했다는 진전을 보인다. 그런데 스페인 동지들이 팬데믹의 심각성에 약간 회의적이며 자본주의 해체의 역사적 단계와 관련된 것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쇠퇴기 전쟁은 더는 사회 생산력 발전을 위한 경제적 필요성으로부터 도출되지 않고 본질적으로 진영 사이의 힘의 균형으로부터 나오는 정치적 원인이라는 ICC의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8)

 

ICC의 편에 서서 IGCL과 NC를 기생그룹으로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새로운 코뮤니스트 좌파 그룹은 IV(국제주의 목소리)가 있다. 그들은 최근 글 「코뮤니스트 좌파에 대한 신뢰 추락을 멈추라」라는 글(9)에서 이란의 Ahmad Farsi의 활동을 보기를 들어 NC와 IGCL을 코뮤니스트 좌파의 가치와 목표를 파괴하는 기생집단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2-2. 계급성격에 대한 논쟁 그리고 당

 

「코뮤니스트」 11호, 논쟁(2)의 마지막 부분 「(3-2) 최근 세계의 계급투쟁과 그 의미」에서 세계 노동자 투쟁과 사회 반란 투쟁이 자본주의에 맞서는 계급투쟁인가 아니면 자본주의 내의 개혁 투쟁에 머무는 소부르주아 운동에 머물 것인가를 논의하면서 프랑스의 연금개혁에 맞선 투쟁, 노란조끼운동, 홍콩, 칠레 등지에서의 투쟁이 계급상호주의(inter-classism)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계급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10)

 

최근 ICC는 「‘연금개혁’에 맞서는 운동: 미래 투쟁을 준비하는 교훈을 도출하기」라는 글(11)에서 노동계급의 전투성 회복, 연대, 투쟁 인원의 증가, 계급 정체성, 계급의식의 회복으로 정리하면서 계급상호주의가 계급투쟁을 패배로 이끄는 죽음의 길이며,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정체성 상실이 민족주의와 같은 소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손아귀에 잡힐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12)

 

이러한 계급 정체성의 문제는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라는 미국에서의 사회반란운동이 확대되면서 다시 한번 계급 정체성의 의제를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에 던졌다.

 

「국가억압에 대한 저항과 반란의 물결에 대한 국제주의자 성명서」를 종합한 「A Free Retriever’s Digest」는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13)

 

⓵ 미네아 폴리스 : 경찰 폭력과 계급투쟁 ((Flyer, IWG & Klasbatalo, 2020년 5월 30일)

⓶ 반란 만세 (무명 리플릿, 2020년 6월 1일)

⓷ 이것이 역사가 보여주는 것이다 (「브루클린 철도」 권두언, 2020년 6월 3일)

⓸ 미국에서의 반(反) 경찰 폭력 저항 : 정치적 함의와 노동계급의 전망 (GCCF와 IGCL의 공동성명, 2020년 6월 5일)

⓹ 왜 우리는 숨 쉴 수 없는가 (국제주의자 전망, 2020년 6월 7일)

⓺ 경찰을 재원 고갈시키자 아니면 무엇? (Fredo Corvo, 2020년 6월 10일)

⓻ 인종주의에 대한 대답은 부르주아 반(反) 인종주의가 아니라 국제적 계급투쟁이다. (아모스, ICC 온라인, 2020년 6월 11일)

 

이러한 미국의 사회반란투쟁 역시 인종주의, 민족주의, 계급상호주의로 빠질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이 문제를 ICT는 「자본주의는 끝없는 계급분할적, 인종적, 성적 공포다」라는 글에서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14) 노동계급 대부분은 유색인과 여성이며 축적과정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계급의 억압이 필요한, 착취의 더 높은 수준에 종속되는 철칙을 가진 자본주의 아래에서 어떤 개선도 이루어질 수 없음을 인식하는 길이라고 본다. 결국 자본주의는 끝이 없는 계급분할적, 인종주의적, 성적 공포이지만,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하나 징후를 제거하기보다는 계급분할 원인에 초점을 맞추는 일이다. 따라서 오직 전체 억압 관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세력은 통일된 노동계급뿐이며, 조직화하고 통일된 노동계급은 이러한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는 유일한 세력이라고 결론짓는다.

 

그런데 계급정체성 문제와 미국의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라는 사회반란투쟁의 관련성에 대해 최근 ICC는 이른바 코뮤니스트 좌파 그룹이 노동계급의 영역을 확인하는 데 실패했다는 비판을 하는 본격적 논쟁을 제기한 글을 발표했다.

이는 「역사의 경로」의 논쟁에 이어진 계급정체성 문제로 나아간 것이며, 앞으로 코뮤니스트 좌파 사이의 생산적인 토론을 여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ICC는 자신들과 ICT, 그리고 보르디가주의 세 그룹이 모두 제국주의 국가 사이의 모든 전쟁을 비판하고 그들에 대해 지지를 거부하도록 노동계급에 호소했으며, 부르주아의 어느 한쪽 분파를 정당화하는, 맑스주의의 왜곡된 유형을 이용하는 트로츠키주의와 같은 사이비 혁명가들과 구분했음을 확인한다. 하지만 이들 코뮤니스트 좌파 그룹들이 최근 프랑스 노란조끼운동을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새로운 형식으로 결론을 내는 등 노동자의 소부르주아 구호 뒤에서 개인으로 함께하는 계급상호주의 운동과 경계가 불명확하다고 분석하면서 4개 그룹을 대상으로 비판하고 있다.

 

세 그룹은 보르디가 경향의 그룹으로 「국제코뮤니스트당(ICP)」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Le Proletaire/The Proletarian; Il Partito Comunista/The Communist Party; /Programma Comunista/The Internationalist이고, 네 번째는 ICT이다.

 

ICC는 인종주의, 경찰의 잔인성은 자본주의의 산물이고, 생산양식 파괴를 통해서만 근절할 수 있다는 Le Proletaire의 입장, 그리고 이들 시위에 따른 폭동에 가담한 세력도 노동계급의 부분이라는 The Internationalist, Il Partito Comunista, ICT의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15)

 

반란은 분리된 개인들의 집합이지 조직화한 집합적 성격을 지닌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방법이 아니라고 보는 ICC는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운동이 온갖 혼란과 요구를 포함하지만, 노동계급의 본질적 요구를 방어하기 위해 행동하는 데 반해 미국의 저항운동은 노동계급의 통일을 위한 수단으로 봉사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따라서 대다수가 계급상호간 또는 부르주아 영역에 동원된 경우 혁명가들의 역할은 그러한 ‘흐름에 맞서는’ 개입을 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이와 관련하여 ICC는 보르디가 그룹들이 당의 역할에 대한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혁명적 정치조직과 노동자평의회 같은 넓은 계급조직과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또한 ICT에 대해서는 ICT가 보르디가주의의 대리주의 뿌리에 있는 오류에 대해 실질적 비판을 하지 않는 것은 이탈리아 코뮤니스트 좌파가 구분한 분파와 당 사이의 구별을 포기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보기를 들어 ICT의 리플릿 부제 “7. 도시 반란은 세계혁명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는 말은 바로 그러한 개념오류라고 지적한다,(16)

 

2-3. 다시 팬데믹 위기 시대의 제국주의 전쟁 논쟁으로

 

「전쟁인가 혁명인가」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코뮤니스트 좌파의 한 축의 대표 격인 ICT는 다시 한번 최근 글 「지구적 팬데믹과 제국주의 경쟁」이라는 글(17)에서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은 기후변화 위기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 즉, 지구화된 형식일지라도 자본주의는 근본적으로 조정된 반응을 만드는 데 부적절하다는 것을 확인해주지만, 반대로 코비드19는 두 지구적 제국주의 세력 (미국과 중국) 사이의 경쟁적 투쟁에 있어서 제국주의 경쟁을 강화하는 무기가 되고 있다고 보면서 ‘중국 특색을 지닌 사회주의’는 서구 자본과 동맹을 맺은 국가자본주의라고 규정한다.

 

코비드19의 영향으로 중국의 성장률은 27년 중 가장 낮은 성장률이고 미국도 더는 좋은 형국이 아니라서 미국과 중국은 모두 상대방을 바이러스를 생산하는 국가로 비난하는 음모론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더구나 2000년 이래 중국 군사비는 급증(2008년 이후에는 3배로)하고 있으며, 2020~35년의 시진핑이 내세운 대목표로 ‘완전히 현대적인’ 경제사회 건설은 미국에 대한 직접적 도전을 선언한 것으로 해석한다.

 

지금의 경제후퇴가 코로나 팬데믹에 무엇을 가져다줄 건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전 세계 국가들이 전체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부채를 흡수하고 자본의 새로운 집중과 강화가 일어날 것을 알고 있다.

 

앞으로의 전쟁은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예멘, 리비아 같은 지역전쟁이 아니라 지구를 포괄하는 지구적 전쟁이며, 싸울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전쟁은 이러한 용광로 체계를 무너뜨릴 계급전쟁임을 전 세계 노동계급과 논쟁을 지속해야 한다.(18)

 

「반란의 감염이 퍼지고 있다」는 글을 발표한 새로운 그룹인 「유아적 무질서가 아닌 좌익코뮤니즘」은(19) 자본주의 사회관계에 내재한 요구를 구체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면서 여러 국가의 감옥에서 폭동과 반란, Hubei에서 항거, 이탈리아와 파나마 갈등, 봉쇄국들의 조치에 대한 불복종 등은 2019년부터 시작된 자본주의에 맞서는 투쟁의 준비였으며, 팬데믹은 프롤레타리아에 맞서는 자본주의 공격의 일반화라는 구호이고, 우리의 삶의 조건을 국제 수준에서 난폭하게 동질화시키는 기제이므로 부분적 국면에 대한 투쟁, 반(反)인종주의, 여성주의, 환경주의 등을 계급투쟁의 쟁점으로 이전시켜야 한다고 본다.

 

부르주아지는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을 오직 부르주아지와 개량주의 목표를 추구하는 두 진영으로 틀 지우려고 하기에 이러한 부르주아지의 재양극화 시도, 다시 말하면 모든 국가의 부르주아지와 자본분파 사이 투쟁으로, 그리고 그 배후에는 미국과 중국의 상업 전쟁과 같은 양극화로 보는 관점을 가지고 세계 부르주아지에 맞서는 세계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ICT의 지구적 제국주의 갈등의 전망에 관한 글에 대한 동의와 문제 제기 글은 ICGL의 「혁명인가 전쟁인가」(16호, 2020년 7월)에 「ICT 문건에 관한 토론과 성찰」이라는 글이다.(20) 여기서 IGCL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제국주의 전쟁에 맞서는 데 실패한다면 현재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어떤 갈등도 일으킬 것이라는 축이 될 것이며, 이는 지난날 자본주의와 세계전쟁의 역사 속에 지배적이었던 고전적, 역사적 제국주의 상황의 틀과 어긋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2013년 「혁명인가 전쟁인가」 1호에서 자신들이 미국에 맞서는 제국주의 블록의 선두로 중국의 가능성을 부정했던 입장을 수정한다. 코비드19 위기로부터 나오는 제국주의 긴장의 상황은 예전과 달리 변화했음을 인정하면서 코뮤니스트 좌파 모든 그룹이 이 문제의 토론에 참여하여 자신들의 2013년 테제에 대한 비판을 포함하여 논쟁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리고 ICT에 대해서는 그들의 글이 구체적인 용어나 조건에 대한 정의 없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책임을 말하는 것으로 불충분하다고 하면서, 국제자본은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해 엄청난 대규모의 경제적, 정치적 격돌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앞으로의 토론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21)

 

이미 「역사의 경로」 논쟁에서 「혁명인가 전쟁인가」의 입장과 전혀 다른 입장과 해석을 한 ICC는 최근의 글 「제국주의와 군사주의 바이러스는 자본주의 안에서 절멸될 수 없다」라는 글(22)에서 ‘모두에 맞서는 각자’의 상황이 커지므로 제국주의 세력 사이의 투쟁이 격화되고 전쟁과 같은 야만과 혼돈을 자극한 결과로 세 가지 현상을 꼽고 있다. 첫째로 중동에서의 미국의 지도력 하강, 둘째, 미국과 중국 사이의 경제적, 전략적 갈등은 두 강대국 사이 긴장의 양극화로 나아가는 경향, 셋째, 포퓰리스트 트럼프의 예측할 수 없는 결정이 제국주의 세력 사이의 불안정한 관계를 가져오고 최선의 전략에 대한 미국 부르주아지 내의 긴장을 강화한다고 보면서 구체적으로 제국주의 긴장의 진화에 대한 코비드19 위기의 영향에 대한 몇 가지 예측을 제시한다. 첫째, 트럼프가 팬데믹과 혼돈을 다루는 방식이 예측 불가능하여 외교정책의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라는 점, 둘째, 중국은 팬데믹의 거대한 수혜자가 아닌 이유를 경제적 수준, 정치적 수준, 그리고 제국주의 수준에서 그렇다는 점, 셋째, 러시아의 파괴적인 게임은 팬데믹의 수혜자로 만들지 않는다는 점, 넷째, 팬데믹은 여러 제국주의 사이의 ‘모두에 맞서는 각자’의 경향을 강화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팬데믹 위기를 조정된 방식으로 다루는 쇠퇴하는 자본주의 무능력은 모든 수준에서 분열과 혼돈 경향을 강화히고, 전체 인류와 노동계급에는 전쟁 같은 야만과 피 튀기는 학살의 격화만이 진행될 전망이라고 ICC는 결론 짓는다.(23) 이러한 ICC의 불명료한 입장은 「역사의 경로」에 대한 23차 ICC 대회의 입장의 연장선에 있으며, 결국 ‘혁명인가 전쟁인가”의 입장과 만날 수 없는 평행선처럼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다음 절에서 다룰 ICC 내부의 논쟁(소수파 입장의 공개)을 검토하고 앞으로의 토론과 논쟁의 가능성을 열어두기로 한다.

 

2-4. ICC 내부논쟁 - 대회에서 부결된 소수파의 다른 견해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내부 논쟁(3)을 준비하면서 지금까지의 논쟁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반가운 글이 나왔다. 이 글은 논쟁의 시발점이 되었던 ICC 23차 대회에서의 「국제상황에 대한 결의문」에 대한 ICC 내부의 소수파 의견과 그에 대한 ICC의 공식 입장을 동시에 담고 있다. 소수 의견을 대회에 제출한 Steinklopfer는 대회에서 부결되었지만, ICC 내부의 의견 차이를 드러낸 문건으로 1단계 논쟁의 중간 결산을 하는데 큰 자극제가 되었다.

 

「국제상황에 대한 ICC의 내부 논쟁」(24)을 요약 정리하기로 한다. 소수 의견을 낸 Steinklopfer(이하 S)는 ICC의 원안과의 차이를 첫째, 제국주의 긴장, 둘째,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사이 계급 세력의 지구적 균형에 있다고 보고 ICC가 제국주의 블록 사이의 재구성을 향한 양극화의 경향과 큰 블록 사이의 점증하는 군사 충돌 위험성을 과소평가한다고 지적하면서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혁명적 전망의 상실 속에서도 방어적인 노동자 투쟁을 통해 계급 정체성을 찾고 혁명적 전망을 다시 찾는 심각성을 과소평가한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부르주아지의 ’모두에 맞서는 각자‘의 경향이 해체의 중요한 특성이라는 ICC의 입장에 동의하지만, 그것이 주요 근본 원인의 하나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쇠퇴하는 자본주의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요소로 구심력을 가지는 ’모두에 맞서는 각자‘의 경향의 우세론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으면서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자본주의 해체기의 주요경향은 없다고 비판한다.(25)

 

또한, 제국주의에 대해서는 경쟁하는 두 제국주의 세력(미국과 중국) 사이의 제국주의 양극화가 지속하고 그것이 인류 미래에 위험을 초래한다는 전망을 하면서 양극화의 경향이 ‘모두에 맞선 각자’ 때문이 아니라 지구적 도전에 맞설만한 후보자가 없기 때문이고, 현재의 포퓰리즘은 전쟁을 향한 사회가 보이는 명백한 징후라고 진단한다.(26)

 

두 번째로 계급 세력의 균형에 대한 수정의견으로는 첫째, 전망 부재가 계급투쟁 어려움에 대한 분석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 둘째, ICC가 강조하는 1989년(소련, 동구의 몰락)은 일대 변혁의 사건이지만, 계급투쟁의 제국주의 투쟁의 전사(前史)에서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 셋째, 1989년의 극적인 사건은 계급 세력의 지구적 균형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점, 넷째 자본주의 위기에 맞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은 경제적 차원뿐만 아니라 정치적이고 이론적 차원이 있다는 점을 구체적 견해 차이로 들고 있다.(27)

 

결론적으로 S는 프롤레타리아트는 아직 결정적 성격을 지니게 될 지금까지의 패배를 회복할 수 있다는 긍정적 전망(ICC대회에서 거부)이 있다고 보고, 이러한 계급투쟁의 전망과 코뮤니스트 좌파의 입장을 지니는 소수파와 젊은 코뮤니스트들의 출현은 반(反)혁명의 암흑기에도 가능한데 그들은 노동계급이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처음이자 으뜸인 혁명적 본질의 표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1989년 이래 20년간 프롤레타리아트 주요 약점의 하나는 위와 같은 역할을 수행할 소수파의 실패였으며, 코뮤니스트 좌파의 역사적 그룹들은 특히 이러한 실패에 책임이 있다고 자성을 촉구한다.(28)

 

소수파 의견을 낸 S의 입장에 대해 ICC는 같은 글에서 「23차 ICC대회의 국제상황 결의문에 대한 Steinklopfer 동지에 대한 답변」을 싣고 있다. ICC는 S의 조직 해체에 대한 일반적 이해에 대한 설명이 정확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해체단계에 작동하는 질적인 변화에 대한 이해를 보기를 들고 있다. 「질적인 변화」에 대한 강조는 ICT 등 다른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과의 본질적 차이를 드러내는 ICC의 기본입장이다. (이 부분은 이 글의 결론에서 다시 언급하기로 한다.)

 

ICC는 제국주의 적대에 대해서는 중국의 미국과 경쟁할 주요세력으로 부상을 과소평가했음을 인정하면서도 중국의 부상이 해체단계의 산물이라고 논쟁을 비껴가고 있으며, 계급투쟁에 대해서는 1980년대 계급 세력의 균형과 진화를 강조한 S동지의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하늘에서 노동계급에 내려온 1989년 사건 이후의 질적인 변화를 S동지가 과소평가했다고 다시 질적인 변화를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ICC는 계급의 현재 어려움에 대한 S의 결론, ⓵ 포퓰리즘 부상이 전쟁으로 나가는 사회의 표현이다. ⓶ 우리는 의식의 잠재된 성숙이 아니라 증명할 수 있는 “잠재적 퇴행”이다 에 강력하게 동의하지 않는다고 뚜렷한 반대 의견을 밝히고 있다.(29)

 

결론적으로 ICC는 S동지가 깊은 비관론에 빠진 인상이며 어디서 계급 정체성과 혁명적 전망이 재생할는지 모른다고 하면서도 코뮤니스트 좌파는 정치화된 프롤레타리아트의 새로운 세대 앞에서 서로 냉혹한 비판을 해야 하며 무엇보다 기회주의적 본질의 오류를 비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ICC가 23차 대회에서의 내부 논쟁을 공개적으로 발표한 사실에 대해 앞으로의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내 토론과 논쟁이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고 서로의 상호비판이 치열하게 전개될 계기를 만들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자신들의 기본원칙과 계급투쟁에 관한 판단은 아직은 변화하지 않았다고 판단한다. 이는 최근에 ICC가 발표한 「코비드19 팬데믹과 자본주의 해체 시기에 관한 보고서」(30)에서 명료하게 드러나 있다.

 

ICC는 1989년 소련⦁동구 몰락과 그로 인해 열린 사회해체라는 역사적 쇠퇴의 마지막 단계를 다시 확인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기를 2020년 코비드19 팬데믹으로 규정한다. 몇 가지 주요 특징으로 첫째, 1967년에 시작된 장기적 경제위기의 지속, 둘째, 팬데믹의 기원은 과잉생산의 만성적 자본주의 위기의 지속이 만든 환경파괴에 있다. 셋째, 팬데믹에 대한 세계 부르주아지의 반응은 과거의 동맹 사이 제국주의 세력의 균열된 경쟁 관계, 넷째, 개별 국가에서 사회에 대한 부르주아지와 국가의 정치적 통제 상실, 다섯째, 지배계급과 국가의 정치적, 사회적 능력 저하를 들고 있다.

 

여기서 ICC는 전례 없는 ICT에 대한 근본적 비판을 한다. 이윤 동기를 팬데믹에 대한 원인으로 비난하는 ICT가 구체적인 상황, 몰락의 시기와 규모에 대해서는 신비에 머물러 있으면서 해체라는 특정한 시기의 특징이라는 ICC의 분석에 대해 시대의 변혁을 헤아리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과 양극화 경향에 대해서는 미국이 남긴 세계 제국주의 지도력 공백에 대해 중국을 포함한 어떠한 세력도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단정한다. 결론적으로 ICC는 자본주의 쇠퇴의 모든 시기의 공통적인 특징인 자기 파괴로의 근본적 경향이 해체 시기에는 전쟁으로부터 사회와 인류 전체에 자본주의 위협만을 증가시키는 세계적 혼돈으로 지배적 형식이 바뀌었다고 단언한다.

 

인류를 혼돈, 참상, 야만, 파괴와 죽음으로 이끄는 자본주의 야만에 대한 유일한 대안은 그래도 세계혁명이라는 끈을 놓지 않지만, ICC가 공통 언어로 사용하는 혼돈, 야만 등은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문명에 가깝다. 그러면서도 일반화된 정치화가 긴 시간 동안 전진과 후퇴를 통해 발전하는 과정이지만, “미래는 계급투쟁에 속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는 결론을 놓치지 않고 있다.(31)

 

 

 

3. 결론 : 새로운 토론, 논쟁 그리고 연대⦁단결을 전망하며

 

이번 논쟁(3)에서는 「코뮤니스트」 11호(2020년 4월) 이후 5~6개월 동안 팬데믹 위기가 중첩되면서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내부의 논쟁도 이와 무관하지 않고, 그동안 대립 구도가 절충을 통하지 않고 더욱 깊고 첨예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몇 가지 특징적 논쟁을 살펴보자.

 

첫째, NC와 IGCL에 대한 ICC의 비난이 더욱 거세어지면서 편 가르기가 일단락되었다.

 

둘째, ICC 내부 논쟁이 공개되면서 ICC 내부 반대 의견이 있음을 확인하게 되고, 내부 논쟁의 지속과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으로의 확장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셋째, ICC가 다른 코뮤니스트 좌파 그룹, 특히 ICT에 대해 계급 정체성 문제와 당 문제를 직접 제기하며 핵심적 논쟁 의제를 쏟아낸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넷째, 그러나 논쟁이 시작된 “혁명인가 전쟁인가”의 중심의제는 ICC가 전쟁을 ‘세계적 혼돈’으로 대체하면서 이윤을 강조한 ICT 등의 입장과 혼돈, 야만 등의 질적인 차원이라는 인류 문명 차원의 ICC 대립구조는 앞으로도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다섯째, 팬데믹 위기가 자본주의 위기, 제국주의 전쟁의 가능성,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의 전망, 맑스주의와 코뮤니즘 원칙에 굳건히 서 있는 젊은 코뮤니스트들의 성장과 발전, 계급 정체성을 회복하는 혁명적 노동계급의 복원은 적어도 앞으로 10년은 그 과정을 통해 프롤레타리아트와 코뮤니스트들의 연대, 단결, 통일을 위한 자기반성, 상호비판이 계속될 것이다.

 

2020년 11월 13일

국제코뮤니스트전망 | 오세철

 

 

<주>

 

(1) 「코뮤니스트」 11호, 2020년 4월, 국제코뮤니스트전망, 150~151쪽

 

(2) 「코뮤니스트」 11호, 2020년 4월, 국제코뮤니스트전망, 163~164쪽, (주) 3

 

(3) 「Gaizka의 귀청이 터질 듯한 침묵」 ICC, 2020년 4월 11일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6835/gaizkas-deafening-silence

 

(4) 윗글, 8쪽

 

(5) 「코뮤니스트」 11호, 2020년 4월, 국제코뮤니스트전망, 148쪽

 

(6) 「트로츠키 암살 80주년을 맞으며」 NC, 「해방」 2020년 8월

https://en.communia.blog/what-did-trotsky-mean-for-communism/

 

(7) 「1940년: 레온 트로츠키의 암살 - 우리가 잊지 못하는 날」 ICT, 2020년 8월 21일

 

(8) 「팬데믹은 자본주의의 쇠퇴와 해체를 드러내고 가속화시킨다」 ICC, 2020년 4월 20일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6845/pandemic-reveals-and-accelerates-capitalist-decadence-and-decomposition

 

(9) 「코뮤니스트 좌파에 대한 신뢰추락을 멈추라」 IV, 2020SUS 8월 12일

https://internationalist.ueuo.com/en/pdf/DefenceOfMarxismE.pdf

 

(10) 「코뮤니스트」 11호, 2020년 4월, 국제코뮤니스트전망, 157~163쪽

 

(11) 「‘연금개혁’에 맞서는 운동: 미래투쟁을 준비하는 교훈을 도출하기」 ICC, 2020년 3월 13일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6851/movement-against-pension-reform-drawing-lessons-prepare-future-struggles

 

(12) ICC는 특히 「노란조끼 운동에 대한 공개모임의 결산(대차대조표)」라는 글에서 거리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이 ‘혁명적’이지 않고 이러한 저항이 분명히 프롤레타리아트의 역동성으로 간다는 위험성을 지적한다. 그리고 자본주의 혼돈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사회세력인 혁명계급으로서의 계급의식과 자신의 이해관계를 방어하는 프롤레타리아 투쟁에 있어서 계급상호주의는 주요 걸림돌이라고 결론짓는다. (ICC, 2020년 3월 29일)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6890/balance-sheet-public-meetings-yellow-vest-movement

 

(13) 「A Free Retriever’s Digest」 2020년 6월 13일

https://afreeretriever.wordpress.com/2020/06/13/internationalist-statements-on-the-wave-of-protests-spring-2020/

 

(14) ICT, 2020년 6월 29일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0-06-29/capitalism-is-a-class-divided-racist-sexist-horror-without-end

 

(15) ICC, 2020년 7월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6883/groups-communist-left-faced-black-lives-matters-protests-failure-identify-terrain

 

(16) 윗글, 5~8쪽

 

(17) ICT, 2020년 6월 14일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0-06-14/the-global-pandemic-and-imperialist-competition

 

(18) 윗글, 9~11쪽

 

(19) Proletarios Internacionalistas, 2020년 6월 28일

https://leftdis.wordpress.com/2020/06/29/the-contagion-of-the-revolt-is-spreading/

 

(20) 「혁명인가 전쟁인가」 16호, IGCL, 2020년 7월

http://igcl.org/A-Few-Comments-of-Discussion-and

 

(21) 윗글, 4쪽

 

(22) ICC, 2020년 9월 25일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6920/virus-imperialism-and-militarism-cannot-be-eradicated-capitalism

 

(23) 윗글, 6쪽

 

(24) ICC, 2020SUS 8월 24일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6898/internal-debate-icc-international-situation

 

(25) 윗글, 1~2쪽

 

(26) 윗글, 4~6쪽

 

(27) 윗글, 7~11쪽

 

(28) 윗글, 12~14쪽

 

(29) 윗글, 16~21쪽

 

(30) ICC, 2020년 7월 16일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6924/report-covid-19-pandemic-and-period-capitalist-decomposition

 

(31) 「세계혁명」 386호, ICC 영국지부, 2020년 여름

 

 

<이전 글>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최근 내부 논쟁(2)

- ‘역사의 경로를 중심으로’와 제국주의 전쟁의 가능성 -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39116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39130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최근 내부 논쟁(1)

- 역사의 경로를 중심으로 -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38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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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3호] 백신 전쟁과 자본주의 바이러스

백신 전쟁과 자본주의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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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감염병은 계속해서 사회에 불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전 세계적으로 약 3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회경제를 파괴하는 제3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가장 선진적이고 현대적인 자본주의 도시들에서 평화의 거품이 꺼졌다; 자본주의 야만성은 그 민낯을 보여주었다. 부르주아 문명의 요람인 프랑스에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코로나 유행병으로 일자리를 잃은 채 음식 꾸러미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의 긴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1]. 주변부 자본주의에서는 대도시 자본주의보다 여건이 더 비인간적이고, 살아남기 위해서 쓰레기를 뒤져야만 하는 뼈아픈 현실이 되었다.

 

사실은, 지금까지 수년 동안, 더러운 자본주의 체제의 긴축 정책은 주변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중심 자본주의에서도 건강관리시스템을 괴롭혀왔다. 최선진국에서 인력과 의료장비 등의 부족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유사한 바이러스는 이 나라 또는 그 나라의 일부 관료들의 잘못된 관리의 산물이 아니라 자본주의 바이러스의 산물이다.

 

우리는 코로나19 감염병 초기의 마스크 전쟁을 기억한다. 가장 문명적이며 가장 교양 있는 부르주아 정부는 문명과 도덕의 가면을 벗으려 했고, 도적과 폭력배들처럼, 싸움에 휘말려 서로 훔치고 전리품을 약탈하려 했다. 같은 문명화된 야만인들이 이미 백신 전쟁을 시작했다.

 

부르주아계급이 폭력성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백신 전쟁의 결과를 줄이고 모든 국가에 백신을 접종할 수 있도록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백스(COVAX)라는 이름으로 코로나19 예방접종 계획을 수립했으며 180여 개국이 코백스 프로젝트에 동참했다. 물론 미국은 코백스 계획에 가입하지 않았고 독자적으로 백신을 추진하고 있다. 사실, 코백스 프로그램은 모든 나라, 특히 가난한 나라에 코로나19 백신을 "공평하게" 접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코백스는 자본주의 세계의 역전이 허락하는 만큼만 공정했다.

 

EU는 6억 투여량의 화이자를 주문했으나 최근에 유럽에 대한 백신 공급을 축소한다고 발표했다. 확실히 아시아 국가, 중남미, 아프리카에 대한 화이자 공급은 유럽보다 훨씬 더 원활하지 않을 것이다. EU는 아스트라제네카가 영국을 우선시한다고 비난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EU에 인도될 선량의 수를 줄였고 영국 스스로 충분한 백신을 보유하고 있어야만 주문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EU는 전체 인구의 약 14%만 예방접종을 할 수 있었고 영국은 전체 성인 인구의 절반 이상인 약 44%가 예방 접종했다. 인도는 2021년까지 중하위 소득 국가들을 위해 약 10억 개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생산하기로 약속했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는 영국에 백신 수출을 제한하는 것을 지지한다. 콘테(Conte) 이탈리아 총리는 화이자와 아스트라제네카의 코로나 백신 제공 지연을 용납할 수 없다며 두 회사[3]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위협했다. 폴란드는 코로나19 백신 제공 지연에 대해 유사한 법적 조치를 약속했다. 캐나다에 의해 주문된 백신의 수는 캐나다 인구의 5배이다. 이 목록은 계속된다.

 

전 세계 인구의 14%에 불과한 소수의 부유한 나라들이 코로나19 백신의 절반 이상을 구입했다.[4]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라는 정의이다; 이것이 자본주의 문명과 문화이다! 주변부 자본주의에서 예방접종은 중심 자본주의보다 더 치명적이며, 이들 국가의 부르주아계급과 부유층은 민간 의료와 재정 능력에 따라 예방접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서민과 하층계급이 비용을 부담한다.

 

백신 전쟁은 너무 역겨워서 심지어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테드로스(Tedros)는 부유한 나라들은 국제적인 필요성과 상관없이 ‘나 먼저’라는 접근법으로 그들 자신을 우선시해 왔다고 말했다. 반면에 가난한 나라들은 백신 접종을 받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계를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세계가 심각한 도덕적 실패의 위기에 처해 있고 이 실패의 대가는 세계 최빈국의 삶과 생계에 의해 지불될 것이다."라고 말했다.[5]

 

자본주의 백신 전쟁을 고려할 때, 면역사회는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한 나라에 백신을 접종하고 다른 나라에 백신을 접종하지 않고 백신을 한 나라의 70~80%만 확보하면 바이러스 변이가 백신 미접종 국에서 백신 접종 국으로 확산하기 때문에 효과가 없을 것이다. 이 대유행병이 국제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한, 어떤 나라도 안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대유행에 대항하는 투쟁 또한 국제적이어야 한다.

 

코로나19 백신은 그것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고려할 때 정부의 제국주의 이익에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도구를 갖는 것은 국제적인 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국, 영국, 러시아, 중국 등이 코로나19 백신 생산과 전 세계 백신 유통 독점을 위한 경쟁에 뛰어든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그들의 의제는 인도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제적, 정치적, 실용주의적이다. 정부가 제약회사에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과는 달리, 백신의 생산은 자본주의 규칙, 즉 수익성에 부합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중국이 69개 개발도상국에 백신을 기증하고 43개국에도 수출할 계획이라고 발표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였다.[6] 중국은 제국주의 이윤을 추구하고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코로나19 백신을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에 수출할 예정이다. 중국의 코로나19 백신 정책은 지역 경쟁자인 인도를 긴장시켰다. 인도는 비슷한 정책을 추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보기를 들어, 네팔과 방글라데시는 두 나라 사이의 전쟁터가 되었다. 러시아도 특히 EU와 가까운 발칸반도에서 스푸트니크 백신의 생산과 수출을 가속하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잔인한 자본주의 체제의 산물이다; 목표는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지 않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인간을 죽이는 것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아니라 인류를 학살하는 자본주의다. 백신을 접종할 수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달리 자본주의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은 없다.

 

문명화된 야만인들이 벌이는 백신 전쟁 앞에서 노동자계급만이 가장 위대한 계급연대와 높은 수준의 인간 문명을 제공할 수 있다. 노동자계급만이 계급투쟁을 통해 자본주의 바이러스를 근절할 수 있다. 생산과 서비스의 목표가 이윤이 아닌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인류를 위한 미래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은 노동자계급만이 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노동자계급뿐만 아니라 이제 인류에게도 일종의 사회적 고립을 가져왔다. 현재와 같은 매우 예외적인 상황에서는 노동자들이 항의할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이 매우 제한적이다. 노동자계급은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인한 참상을 노동운동이 진전할 기회로 바꿀 수 있을 것인가? 노동자계급은 계급투쟁을 강화함으로써 세계혁명의 지평을 넓히고 지구상의 수십억 명의 불행을 종식할 수 있을 것인가? 미래의 계급투쟁에서는 그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는 피와 흙, 쓰레기 냄새가 난다. 노동자계급이 역사적 정언 명령인, 코뮤니스트 혁명을 통해 자본주의를 전복하는 길을 따르지 않는다면 인류 파멸은 필연적이다. 인류 파멸은 세계전쟁을 통해서 뿐만이 아니라 자본의 잔혹성, 바이러스 감염병 및 환경 파괴를 통해서 진행될 것이 틀림이 없다. 자본주의 야만성과 잔혹성을 종식하기 위해 국제주의자들의 대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유효하다.

 

코뮤니스트 혁명이나 인류 파멸이냐!

 

2021년 4월 10일

자한기리(M. Jahangiry)

국제주의자 목소리(Internationalist Voice)

옮긴이 ┃ 이명수

 

 

<주>

 

[1] 무료 음식 꾸러미를 받기위한 긴 대열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미국, 스위스 등과 같은 다른 부유한 나라들 에서도 볼 수 있다.

[2] https://www.bbc.com/news/world-asia-india-56513371

[3] https://www.bbc.com/news/world-europe-55780431

[4] https://www.bbc.com/news/world-55795297

[5]https://www.cnbc.com/2021/01/18/coronavirus-vaccine-rollout-worlds-moral-failure-whosays.html

[6] https://www.fmprc.gov.cn/mfa_eng/xwfw_665399/s2510_665401/t1859985.shtml

 

 

 

 

<원문 출처>

https://internationalist.ueuo.com/en/pdf/VaccinWarsE.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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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3호] 「미나리」, 한국이 미국을 바라보는 어떤 초상화

「미나리」, 한국이 미국을 바라보는 어떤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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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가도 ‘미나리’가 천국이다. 봄이 제철인 나물 ‘미나리’는 물론, 한국에서는 지난 3월에 개봉한 영화 「미나리」도 많은 관객의 주목을 받고 있다. 작년부터 계속 이어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 인민들이 신음하는 가운데, 「미나리」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는 서사와 배우 한예리와 윤여정의 호연 등을 통해 점차 많은 사람에 영화 매력이 퍼지는 상황이다. 또한 수상 여부로만 영화의 가치를 말하기는 어렵지만, 「미나리」는 영화가 처음 공개되었던 미국의 독립영화제 ‘선댄스영화제’를 비롯해 무수한 영화제나 시상식을 거침없이 휩쓸며 평론가들의 찬사도 받고 있다. 이미 영국을 대표하는 영화 시상식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에서 배우 윤여정이 상을 받았고, 곧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미나리」는 최소 1개 부문 이상에서 상을 탈 것으로 예상된다. (배우 윤여정은 4월 25일(현지시간)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나리」'의 순자 역으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 편집자 주)

 

대체 무엇이 「미나리」를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도록 만든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앞서 잠시 언급했던 대로 「미나리」가 절망적인 상황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끝내 희망을 발견하려 노력하는 ‘가족 드라마’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동시에 점차 미국 영화에서 비중이 늘고 있는 아시아계 미국인의 이민 서사를 다루는 작품인 점도 서구 사회에서 주목받은 이유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나리」가 일반적인 관객은 물론 비평가도 사로잡은 가장 큰 이유는 「미나리」가 일반적인 ‘이민 서사’를 넘어, 영화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1980년대 당시는 물론 영화가 공개된 2020년대에도 통용되는 ‘미국’에 대한 동경과 불안감이 겹쳐 있는 초상을 섬세하게 그려나간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이는 단순히 「미나리」에서 드러나는 이민의 과정이 쉽지 않음을 말한다는 점에서 그치지 않는다. 1980년대 소위 ‘코리안 뉴웨이브’라 칭해지며 주목받았던 배창호 연출의 「깊고 푸른 밤」을 비롯해, 마틴 스코세이지의 유명한 작품인 「갱스 오브 뉴욕」을 비롯하여 한동안 미국 헐리우드 상업 영화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아일랜드계 미국인를 주인공으로 삼은 갱스터 무비 등도 어떤 의미에선 이민의 고단함을 드러내는 작품이라 볼 수 있다. 예나 제나 자신이 본래 태어나서 살던 고향을 떠나, 다른 지방도 아니고 생판 다른 나라에서 살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부류의 작품은 이전부터 한가득 존재했다.

 

「미나리」가 다양한 결과 지층으로 ‘이민’과 ‘정착’의 과정, 그 속에서 이주민이 정착지로 택한 곳에 대해 지니는 복합적인 감정과 다시 거꾸로 정착지가 이주민을 대하는 환경과 자세를 복합적으로 비추며 섬세하게 이 모습들을 그리고 있다. 이미 관객들은 영화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주인공 가족들에게는 어딘가 심상치 않은 지점이 있음을 알게 된다.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던 ‘모니카’(한예리)와 ‘제이콥’(스티븐 연) 가족은 새롭게 살게 될 집에 도착하자마자 균열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제이콥은 모니카와 깊은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이사할 장소를 정한 곳은 물론, 새집이 어떤 상태인지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드넓은 푸른 잔디가 펼쳐진 곳이지만, 집은 컨테이너 가건물로 지어진 곳이며 설상가상으로 집에는 계단도 없다. 누가 봐도 제대로 된 집은 아니고, 잠시 머물다 떠날 목적으로 만든 용도의 집이지만 제이콥은 이곳이 자신들의 새로운 정착지가 될 것이라 호언장담을 하기에 바쁘다. 모니카는 이런 제이콥의 모습이 무척이나 마땅치 않다.

 

작중 정황상 이들은 미국에서는 꽤 오랜 시간 살아왔던 것으로 보인다. ‘코리아타운’으로 유명한 LA에서 살았을 것으로 추측되는 이들은 왜 갑작스럽게 지금도 한국계는 물론 다른 인종의 사람들을 쉽게 보기 어려운 아칸소의 한적한 시골 마을로 이사한 것일까. 영화는 그 이유를 직접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지만, 가끔 드러나는 제이콥의 대사를 통해 어느 정도는 추측할 수 있도록 만든다. 제이콥은 자신이 ‘한국 사람’인 것에 대해 자부심을 지니고 있지만, 정작 그는 미국에서 만난 ‘한국계’에 강한 불신과 환멸을 느끼고 있다. 그는 자신이 가족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기는 원해도, 같은 한국계 미국인들에게는 뭔가 큰 배신을 당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제이콥이 바라는 ‘아메리칸 드림’은 같은 한국계 미국인들이 없으면 결코 이뤄질 수 없는 꿈이다. 동시에 제이콥은 같은 한국계 미국인이 아니더라도 자기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도 불안한 감정을 지니고 있다. 작중에서 그는 역사적으로도 많은 한국계 이민자들이 종사했던 직종인 ‘병아리 감별사’의 베테랑이지만, 그는 그 일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임금이 박봉인 것은 물론, 내심 그는 이 일이 자신의 권위나 가치를 하락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오히려 그는 자라면 암탉이 되어 달걀을 낳을 수 있는 암컷 병아리만을 살리고, 수컷 병아리들은 가차 없이 소각로로 보내는 모습에서 좀처럼 행사하지 못했던 ‘가부장의 권위’를 고민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제이콥은 하루빨리 병아리 감별사 일에서 벗어나, 아칸소의 푸른 잔디에서 고추나 배추 같은 한국 농작물을 심어 한국계 미국인들에게 잔뜩 팔아 성공하고 싶어 한다.

 

제이콥이 한국계이지만 가족을 제외한 다른 한국계는 멀리하고 싶어 하지만 다시 그들을 상대로 한몫을 단단히 챙기고 싶어 하는 모습,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자신의 가부장적 권위를 놓치고 싶지 않아 하는 자세, 그리고 1980년대에도 절대 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선망했던 ‘농장주’에 대한 꿈은 미국을 대하는 한국인의 어떤 모습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는 제이콥의 독선적인 행보가 못마땅한 모니카 역시 마찬가지이다. 매사에 즉흥적이고 결코 쉽게 이룰 수 없는 꿈에 집착하는 제이콥과 달리 모니카는 겉으로 보기에는 이성적이고 차분해 보인다. 그러나 그 역시 미국의 생활이 불안한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아칸소에 와서 남편 제이콥과 병아리 감별사 일을 시작하며 우연하게 만난 한국계 이민자에게 ‘한인 교회’를 묻는 것은 물론 부부의 아들 ‘데이빗’(앨런 김)에게는 딸 ‘앤’(노엘 조) 이상으로 끔찍하게 아낀다. 모니카는 그저 겉으로만 불안감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 ‘교회’라는 일종의 플랫폼을 통하여 같은 ‘인종적 동질감’을 지닌 이들에게 위안을 주고 싶어하고 다시 ‘아들’을 통하여 자신의 결핍을 대리 만족하고 싶어 한다.

 

그 과정에서 정작 이민자 2세대인 ‘데이빗’은 부모님과 점차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선천적인 심장병을 지니고 태어난 데이빗은 지병으로 인해 더더욱 부모님들의 관심이 있지만, ‘한국인 남성’의 정체성을 강요하는 제이콥은 물론 자신의 건강을 염려하지만,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계속 ‘자신에게 좋다는 이유’로 여러 가지를 강권 받는 모니카도 모두 제이콥에게는 낯설고 어색하다. 부모님은 모두 한국인이지만,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미국 문화에 익숙한 데이빗은 정작 부모님들이 어려워하거나 표면적으로만 대하는 ‘미국인’들과 친하게 지낸다. 아칸소에 한인 교회가 없어 모니카가 꿩 대신 닭으로 찾아간 현지 교회에서 모니카가 다른 백인 여성과 좀처럼 소통하지 못하는 가운데, 데이빗은 스스럼없이 백인 아이와 친하게 지내고 심지어는 곧바로 서로의 집에 놀러 갈 약속까지 잡는 모습은 데이빗의 정체성이 이미 부모님과 다른 방향으로 분화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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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같은 가정 내에서도 균열이 반복되는 가운데 새롭게 이사한 모니카를 응원하기 위해 한국에서 방문한 모니카의 엄마이자, 제이콥에게는 장모님인 ‘순자’(윤여정)의 등장이 큰 파문을 만든다. 순자는 겉으로 보기에는 전형적인 ‘한국인 할머니’의 모습이다. 대충 간단한 영어 단어 몇 가지는 쓸 수 있지만, 순자는 언어는 물론 행동도 ‘과거 한국의 정서’에 단단히 묶여 있다. 모니카에게는 오래간만에 보내는 가족의 존재가 너무나도 반갑고 순자가 한국에서 바리바리 싸 들고 온 한국 음식의 존재에 감격해 눈물을 흘리지만, 데이빗은 순자가 자신의 할머니라는 사실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동화나 각종 매체에서 봐왔던 ‘미국인 할머니’의 모습과는 생판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다지 친절하지도 않고, 쿠키나 케이크를 잘 굽지도 못하며, 오히려 자신의 치부를 장난스레 놀리는 모습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렇게 「미나리」의 가족 구성원들은 표면적으로는 ‘가족’으로 묶여있지만, 구성원 각자의 입장에 따라 서로를 점차 멀리하고 있다. 영화의 중반부부터 모습을 등장하는 순자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 않다. 그렇다고 제이콥이나 모니카가 주변의 다른 이들과 친밀한 관계를 지니고 있는 것 역시 아니다. 모니카는 앞서 언급했듯 ‘한국계 미국인’이 아닌 다른 미국인들을 무척이나 불편해하고, 제이콥은 한국계 미국인에 대한 환멸을 지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다른 미국인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 역시 아니다. 넓고 푸르지만, 주변에 다른 이웃 하나 발견하기 어려운 새로운 고향 아칸소의 풍경처럼, 이들은 서로 다른 성공의 꿈을 꾸지만 이미 이들은 해체 일보 직전의 상황이다. 그저 이미 ‘가족’으로 묶여 있다는 이유로, 그리고 다시 가족을 벗어나는 순간 더욱 괴로운 상황을 원하지 않기에 이들은 남아있는 것이다.

 

「미나리」는 이러한 관계의 충돌을 연속적으로 그리며 한국에서 미국을 바라봤던 시선을 점차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작품은 그저 ‘아메리칸 드림’이 허상이라는 점을 고발하는 차원에서 머물러 있지 않다. 대신 그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백일몽이 어떠한 맥락에서 태어나는지, 같은 백일몽이라도 왜 그 허상을 쉽게 놓고 싶지 않아하는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작중의 제이콥은 물론, 역사 속에서 이민을 택한 한국인들 역시 쉽게 미국을 단일한 존재로 말했지만 「미나리」 속의 주인공들은 물론 영화에 등장하는 다른 등장인물이나 존재들은 미국이 절대 단일하지 않으며,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는 더욱더 계층적이며 분절되어 있음을 말한다. 그 계층의 공간에서 자신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하층 계급에 놓인 한국인 이민자들은 언젠가는 자신이 계급을 상승할 수 있다는 꿈을 꾸지만, 그 꿈은 다시 역설적으로 자신이 어떤 위치와 환경에 놓여 있는지를 의도적으로 망각할 수 있기에 꿀 수 있는 꿈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미나리」는 단순한 가족 드라마나 이민 이후의 고군분투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동시에 무조건적인 절망으로 일관하지도 않는다. 어찌 되었든 새로운 터전에서 정착하게 되었다면, 다시 어떻게 삶의 맥락을 만들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것이다. 마치 제이콥도, 모니카도 저마다 자기가 바라는 성공만을 말할 뿐 쉽게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않는 상황에서 데이빗만이 같은 마을, 하층 계급의 백인 아이와 친구를 맺는 모습에서 드러나듯 성공이라는 허울의 목표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주변을 다시 돌아보기를 말하는 것이다. 마치 습해서 푹푹 발이 꺼지는 뻘밭이지만, 그러한 공간에서 무럭무럭 잘 자라는 ‘미나리’처럼 말이다.

 

성상민 ┃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상근활동가, 문화평론가

 

 

<편집자 주> 이 글은 본지의 요청으로 싣게 된 소중한 기고 글로 「국제코뮤니스전망」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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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남궁원 동지 8주기 추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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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남궁원 동지 8주기 추모식

 

올해도 잊지 않고
코뮤니스트 남궁원 동지 추모식에 
함께 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올해도 변함없이 동지들은
모란공원에서... 전국노동자대회에서...
혁명적 토론의 장에서... 마음을 함께 하셨습니다. 

코뮤니스트 추모식은 단순한 추모 행사가 아닙니다. 

코뮤니스트의 길을 걷다가 먼저 가신 동지를 기억하고 
함께 하는 동지들의 운동과 삶을 살피고 보듬고 성찰하고
코뮤니스트 정신 계승과 혁명적 실천을 다짐하는 자리입니다.

올해는 특별히 
남궁원 동지의 혁명적 발언을 함께 낭독하며 실천을 다짐했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원칙적으로 투쟁하고 계승하겠습니다.

 

2021년 7월 4일
코뮤니스트 정신 계승회의

 

<추후 일정>
8월 태양이 뜨거운 날, 강릉 작은코뮨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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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결, 그것은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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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결, 그것은 피할 수 없다"

 

코뮤니스트 남궁원 동지 8주기 추모식

 

 

일시 : 2021년 7월 3일(토) 낮 12시

장소 : 마석 모란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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