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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최초의 해외여행기 1 - 여행의 시작

생애 최초의 해외여행기 1 - 여행의 시작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것을 해보고 싶었다.


2012년 6월, 거세게 진행되는 홍익대 민주노조 사수 투쟁 담당자로서, 노동조합 상근 간부로서의 마지막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였다. 당시 나는 4년 넘게 활동해왔던 노동조합 상근 간부직을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그 당시의 심리 상태를 말하자면, 그리 나쁜 상태는 아니었지만 만성적으로 쌓인 부정적인 감정들이 적지 않은 상태였다. 예를 들어서 들쑥 날쑥하게 우울했고, 열중할 일이 없을 때 불안했으며, 운동을 한다기 보다는 투쟁이라는 게 다 사업적 업무로만 보이고, 사업의 결과물이 없으면 쓸모없는 활동으로 스스로 간주하고 자괴감에 빠지는 등이다. 운동을 한다는 것이 세상을 바꾸기 위한 활동을 한다기 보다는 단지 비루한 목숨을 연명하는 생업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고, 그래서 도태되다 못해서 무능으로 인해 결국 짐짝 취급받다가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위기감과 강박이 스스로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만두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그런 심리상태를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일단 좀 쉬는 거도 쉬는 것이었고, 과연 내가 활동을 과연 더 계속할 수 있는지, 활동한다면 무엇을 잘 할 수 있는 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부정적인 감정과 심리, 그리고 자괴감은 묻고 전혀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활동했고 또한 많은 인연과 정을 맺을 수 있었던 노동조합을 떠난다는 나름대로 힘겨운 결정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떠나야 될 때가 다가오자, 나가고 나서 과연 무엇을 하고 살지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단지 백수로 노는 것 말고는 할 것이 없는 것이었다. 새로이 어딘가 활동을 시작할 계획이나 일정이 당연히 아무 것도 없었고, 나가봤자 어차피 담당하던 투쟁 사업장이나 왔다갔다 하는 신세가 될 것 같았다.

그러다가 주변 사람들이 "여행이나 다녀와" 라는 이야기를 했다. 다들 일반적으로 뭔가 정리할 때 여행을 다녀오는 일이 많았나 보다. 그런데 나는 여행이라는 것을 제대로 다녀본 적이 없었다. 특히 혼자서 어딘가를 간 적은 더더욱 없었다. 고작해야 대전에 친구와 술마시러 버스타고 내려가는 수준을 여행이라면 여행이라고 할 것이다. 그닥 어딘가 가고 싶다는 생각도 별로 없었고, 사람을 만나서 술 한잔 마시면 그걸로 휴식이고 족한 게 아니냐는 정도의 생각이나 하고 살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마음상태가 달랐다. 여행이나 다녀오라는 주변의 말들에 귀가 솔깃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유는 아마, 그만두겠다고 마음 먹으면서부터 스스로에게 설정한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아보자" 목표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갑자기 어느 한 순간 여행이라는 큰 틀을 결정해버렸다.

그럼 하필 딱 유럽으로 가겠다고 마음먹은 건 또 무엇일까. 막연하게, 역사의 현장들을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던 면이 크다. 과거 로마인이야기를 비롯해 서양사에 관련된 책들을 꽤 즐겁게 보았기도 했고, 마르크스의 무덤이나 파리꼬뮌 전사의 벽 등 나름 좌파 운동의 성지들을 다녀온 경험을 이야기해주던 주변 동료에게서 영향받은 바가 크다. 그래서 처음에는 로마와 파리로 한정했던 여행이 런던이 추가되고, 여행사와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계획을 정비해 나갔다. 처음에 고작 15일짜리 여행이었지만 25일로 확대된 것도 그 과정에서 생긴 일이었다.

또한 원래는 혼자서 어디 여행간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해서 자꾸 동행이나 여행 동료를 구하려고 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기도 했지만 하나같이 90년대 초반생들, 즉 이제 대학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는 나이 대의 모임들만 검색되었다. 아마도 도저히 그 팀에서 화합을 이루지도 못할 것 같고, 오히려 여행의 자유만 해칠 것 같아 여행 동료를 구하는 시도도 그만두고 혼자 가기로 했다.

여행 날짜가 다가오면 다가올 수록 설레였지만 사실 무섭기도 했고, 과연 가서 제대로 잘 지내다 올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도 교차했다. 그러나 어쨌든 8월 22일, 인천공항에서 러시아항공사의 비행기를 타고 런던으로 출발했다. 생애 최초로 "혼자" 가는 여행이자 최초로 "유럽" 이라는 지구 반대편을 향해 가는 여행의 시작이었다.



총 17시간에 달하는 런던까지의 길


사실 비행기를 이렇게 장시간 타는 것은 고문에 가깝다. 일단 지루하기 짝이 없고, 잠을 자려고 해도 불편하기 그지없다. 이 마당에 잘 자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앉아서 잔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다. 다행히 스마트폰을 충전할 수 있는 USB포트가 있는 좌석이라 폰에 들어있는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계속 보면서 시간을 때울 수 있었다. 그렇게 9시간 가량을 비행하다가 경유지인 모스크바 공항에 내렸다. 3시간 가량을 모스크바 공항에서 대기한 후 출발해야만 했다.

시간만 많이 있었다면 모스크바에서 잠시 나가서, 붉은 광장을 찾아가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비자 발급의 복잡함도 그렇고 시간도 별로 없으므로 감히 그것은 꿈꿀 수 없었다. 아직도 레닌의 시체가 온전히 보존되고 있다던데, 어쨌던 그 당시로서는 꿈꿀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목이 워낙 말라서 물을 샀는데, 한국 돈으로 환산하니 3000원이 훌쩍 넘는 액수였다. 1.5L 도 아니고 고작 0.5L 짜리 가격이 그랬다. 순간 어이가 없었지만 러시아 물가가 이렇겠거니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공항 내부에는 기념품 가게가 있었는데, 살짝 이곳에 가서 레닌이나 공산권 기념품이라도 있다면 하나 살 법 했지만 러시아의 궁전 모양의 기념품만 있었다. 따라서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해 밖으로 나와서 조용히 러시아 대중가요 뮤직비디오가 나오는 텔레비전 화면을 쳐다보면서 시간을 때웠다. 러시아 대중가요 뮤직비디오는 한국같으면 바로 19금에 걸렸을 표현 수위와 내용들인데 아무렇지도 않게 방영되고 있었다. 어쨌든 현실 사회주의의 잔재가 남아 있는 국가들은 문화 면에서 다소 보수적이지 않을까 했지만 그 뮤직비디오는 나의 그런 예상을 여지없이 비웃고 있었다.

환승해서 3시간 가량을 비행하니 런던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히드로 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할 때 이것저것 많이 물어봐댔다. 무슨 놈의 질문이 그렇게 많은지 귀찮을 정도였다. 말도 잘 못알아듣는데.... 입국 심사를 마치고, 수하물을 찾으러 가다가 순간 여권을 꺼내느라 가방에 채워놓은 자물쇠를 잠시 풀었었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손가방을 봤더니 자물쇠가 없었다! 자물쇠를 떨어뜨린 걸로 생각한 나는 다시 입국심사대를 가서 자물쇠를 찾았지만 정작 자물쇠는 거기에 없었고, 여권을 꺼낼 때 떨어뜨린 신용카드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보니 자물쇠는 내 가방의 다른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다. 자물쇠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해서 돌아갔지만 정작 자물쇠는 잃어버린 게 아니었고, 오히려 더 중요한 신용카드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래저래 처음 유럽에 도착한 터라 짐 관리부터 내 가방에 자물쇠를 다루는 법까지 불안불안했기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어쨌든 문제는 해결되었고, 나는 런던의 지하철을 타고 swiss cottage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여행사에서 예약해 둔 숙소가 있는 곳이었다. 핸드폰으로 숙소에 전화했더니 아르바이트를 하는 걸로 보이는 아가씨가 지하철역으로 나와서 픽업해주었다. 숙소에도 무사히 도착한 나는 짐을 풀고 바로 자리에 누웠다. 내일부터 있을 여행을 위해서는 잠이라도 빨리 자 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내가 드디어 지구 반대편의 영국 런던까지 왔다는 설레임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계획을 잡아두기는 했었지만 내일 어디로 어떻게 나가볼 지 마음이 설레이고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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