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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0

이번에 나는 진보신당을 지지하기로 결단했다. 그러나 이 지지는 진보신당이라는 정당, 그 조직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는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번 선거운동 과정에 대한 지지다.

이번 진보신당 선거운동 과정은 선거운동과정과 정당이라는 장치를 가지고 노동자 투쟁에 힘을 싣는데 역량을 기울였다. 정진우 선본의 선거운동이 그랬다고 생각한다. 선거운동을 빙자한 현장투쟁이라는 표현에 걸맞게, 그 선본은 직접 함께 "투쟁" 했다. 재능교육 특수고용노동자들과, 스물두번째 죽음이라는 비극을 맞은 쌍용차 동지들과, 그리고 지금 이 시간 4개월 쨰 집단해고에 맞서 투쟁하다가 로비농성에 들어간 한일병원 식당 비정규직들과 함께 싸우고 있는 것이다.

여성-고령-비정규직이라는 3중고를 겪는 청소노동자를 비례대표 1번에 배치한 것은 물론 전략적이었다고 생각하지만 노동 중심의 진보정당의 가치를 명확히 드러내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진보정당으로서는 참으로 떳떳한 후보 배정이었다. 그 후보는 노련한 정책통이라 불리는 소위 먹물들처럼 이것저것 돌려말하지 않고 우리의 진짜 현실을 말했고 정치가 민중을 위해서,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 주장하고 요구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그 후보가 진짜 지지를 받고 싶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났다. 자신과 같이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났고 그들의 투쟁에 함께 했다.

 

이번 선거 때 진보신당의 선거운동이 있기 이전 진보정당의 선거운동은 여타 제도정치권 정당들의 선거운동 방식과 큰 차이가 없었다. 오직 차이가 있다면 민주노총이 개최하는 전국노동자대회가 그 유세장이 된다는 것 정도일 뿐이었다. 현장투쟁에 그 진보정당들이 올 때에도 그 지위를 활용하여 사측과 면담을 한 번 더 하는 정도에 그쳤다. 직접, 함께 싸운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그냥 정치는 하늘위 정치의 세계에 있었고 투쟁은 땅 위의 인간들이 피냄새와 땀냄새를 풍기며 벌이는 개싸움이었다. 그러나 누구나가 바라던 진보정치는 저 높은 하늘의 정치의 세계에서 땅 위의 현실을 내려다보는 정치가 아니었다. 진보정치는 땅위의 현실에 발을 딛고 땅 위의 인간들과 함께 현실의 모순을 변혁하기 위해 싸우고 함께 땀을 흘리는 정치여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노동자들의 투쟁을 정략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투쟁 그 자체의 승리를 위해서 함께 싸우고 노력하는 정치여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이번 진보신당의 선거운동에서 그런 진보정치의 가능성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생각한다.


제도정치권에서의 정당이라면 마땅히 득표와 집권이 목표겠지만 자본주의를 넘어서겠다는 지향을 가진 진보정당이라면 그 목표와 더불어 마땅히 다른 목표도 존재해야 한다. 그것은 피눈물나는 자본의 억압 자체를 철폐하는 것이다. 그 억압을 철폐하고자 하는 자는 마땅히 그 억압의 주체와 닮아가지 않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우리가 심연을 들여다 볼 때 심연 역시 우리를 들여다 본다는 경구가 생각나는 요즘이다. 왜냐하면 예전에 진보정치를 주장했던 당의 일원이었지만, 국민참여당과 나름대로 "전략적"인 통합을 선택한 그 동지들이 있던 당의 모습은 기존 제도정치권 정당들과의 차이를 잃어가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다면 이후 그 당이 새로운 "억압자" 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는 그런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진보신당이 앞으로 진짜로 노동 중심의 진보정치, 함께 땅 위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싸우고" "조직하는" 정치를 할 수 있을 거라고 감히 확신할 수는 없다. 단지 가능성을 보았을 뿐이다. 그러나 국민참여당 세력과 통합하는 길을 선택한 그 동지들이 어쨌든 지금은 내가 생각하는 그 "진짜 진보정치" 와 너무나 멀어져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어쨌든 선거권을 얻은 이래 "진보정당" 에 한 표를 행사해 왔던 내가 통합진보당을 지지할 수 없으며 진보신당에 그나마의 가능성을 걸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부디 이후 새롭게 시작해야 할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늘 이야기 해왔지만 노동자들을 한 표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정치가 아니기를 바란다. 노동자들이 정치의 주체가 되고 현장과 함께 싸우고 현장을 함께 조직하고 삶의 공간을 새롭게 조직하는 활동이 살아있는 정치세력화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 진보신당의 선거가 그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단초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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