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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광주를 "기념"하는 영화, 화려한 휴가

광주는 기념되어야 할 것인가, 기억되어야 할 것인가?

 

이런 질문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누군가가 물을 지도 모르겠다. 기념이 의미하는 것과 기억이 의미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어쩌면 그다지 중요한 질문이 아닐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전적인 의미를 일단 찾아보자.

 

기념 : 어떤 뜻 깊은 일이나 훌륭한 인물 등을 오래도록 잊지 아니하고 마음에 간직함.

기억 :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

 

글 시작부터 말하건대 화려한 휴가가 광주를 재연해 냈다는 것은 솔직하게 말해서 "완전한" 거짓말에 다름 아니다. 일단 들불야학과 윤상원으로 표상되는 광주의 마지막 혁명 전사들을 왜곡 했고, 이로써 수습위원회와 투쟁위원회의 완전한 단절 과정을 없애버렸다. 화려한 휴가에서 보여주는 것은 광주 시민들이 얼마나 처참하게 당했는지에 대한 시각효과 뿐이다. 이요원이 분한 신애라는 간호사의 선문방송의 마지막 대사는 "광주시민 여러분, 우리를 잊지 마세요" 이다. 잊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거기에서 멈춘다면 기념이라는 사전적 의미에 완전히 부합하는 대사이다.

 

 

하지만 영화 어디에서도 광주를 다시 떠올릴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감독은 그것을 본인의 몫으로 돌리는 것으로 마무리 함으로써 그 자신이 말하고자 했던 것들을 한계짓고 있는 듯 하다. 마지막 사진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요원 홀로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살아남은 이들의 고통을 의미한다. 하지만 영화는 거기에서 멈춘다. 화려한 휴가는 광주라는 거대한 역사적 진실을 가지고 사람들의 신파를 자극하고, 광주를 잊지 말자고 이야기하는 것에서 이 영화의 의미를 마무리짓는다.

 

그래, 거기까지다.

 

하지만 80년 오월 광주가 거기에서 끝난 것이었을까?

 

실제로 80년 이후 매년 오월 마다 금남로청은 전쟁터로 돌변한다. 80년 오월 광주에 있었던 참극 이후, 광주는 죽음과도 같은 도시, 당시 새로 부임한 전남대 총장이 말했듯이 "우리의 역할은 살아남는 것 뿐" 이라는 것과는 또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이 당시 철저하게 버려졌던 광주의 진실은 전국적으로 펼쳐지는 학생운동의 대중화, 민중운동의 활성화로 살아나고, 광주 내부에서도 치열한 격전이 매년마다 벌어지는 것이다. 바로 이때 전남대의 오월대, 조선대의 녹두대라는 "광주 시민군의 후예"를 자칭하는 이들이 학생운동의 "전설" 로 등장하는 것이다. 변혁운동사에서 이들 만큼 투쟁을 주도하다가, 자신의 대중들을 마지막까지 사수하면서 지켜낼 수 있었던 체계적인 전투역량을 가진 자위대는 존재한 적이 없었다고들 하지 않는가?


오월 광주의 비극성은 광주의 실례와, 이후 치열하게 전개되는 학생운동에서 증명되듯이 그것을 단지 기념시키는 역할로 마무리지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억되면서 언제나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다시 살아나 싸움으로 이끄는 역할을 했다. 비극성의 진실한 가치는 관객을 배우로 만들고, 구경꾼을 행위자로 변모시키는 데 있다 하지 않는가? 이것이 80년대 대중운동의 시작으로서의 광주의 역사적 의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대중들에게 단지 "기념" 으로 끝나지 않은 "기억" 으로서의 오월 광주의 의미이다. 하지만 화려한 휴가라는 거창한 대중영화의 내용과, 지금의 정세가 맞물렸을 때, 이는 참으로 묘한 효과를 드러내는 것이다.

 

90년대 중반, 광주 사태는 "광주 민주화 운동" 으로 다시 재규정된다. (지배계급 바로 그들에 의해서!) 그리고 광주에 대한 보상을 말하는 가운데에서, 광주에 있었던 민중들의 목소리는 다시금 탈각되는 과정을 겪는다. 마치 그것으로 광주가 끝난 것인 양, 그렇게 말해지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수습위원회와 투쟁위원회에 얽힌 역사적 진실을 다시 들춰보아야 할 것이다.

 

영화에 "수습" 이라고 적힌 옷(?)을 걸친 목사나 지식인들이 "협상" 을 말하며 계엄군 철수를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실제 역사 속에서 등장하는 2가지 세력,.  ‘시민수습대책위원회’와   ‘민주시민투쟁위원회’ 중 전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은 해산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는 계엄군들의 협박에 굴종하고, 투쟁을 정리하려 노력했던 이들이다. 그리고 전남도청에서 마지막에 "조용히" 사라지는 이들이다.

 

하지만 노동 야학이었던 들불야학의 활동가들과 하층에 있던 노동자 계급들 바로 그들은 마지막까지 시민군으로서 도청을 사수하며 죽음을 맞는 것이다. 도대체 왜 그들은 죽음을 스스로 "선택" 했던 것이었을까?

 

그저 광주 시민들을 자위함으로써 지켜내기 위한, 그리고 감정적으로 들고 일어선 시민군들이었다면 그들은 죽음을 선택할 이유가 없었다. 실제로 이 광주의 투쟁 과정은 물론 계엄군들의 비상식적인 살인행위와 진압으로 일관되어 있지만 그것에만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그 투쟁 과정에서 민중들이 실천했던 과정들을  한 번 제대로 보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광주의 투쟁 과정에서 "투사회보" 가 발간된 것(이는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저 유명한 "광주 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들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라는 이요원의 방송 과정 역시도 역사적 사실이다. 이러한 투쟁을 조직하고 주도했던 분파가 바로 "민주시민투쟁위원회" 였고 그 핵심에 들불야학과 윤상원이라는 전사가 있었다. 이들이 시민군으로 남아 마지막까지 싸웠을 때 자신들은 죽음을 맞게 되리라는 사실을 몰랐을까? 아니, 그들은 오히려 "저승에서 만납시다" 라는 마지막 인사를 남긴 채 최후의 전투를 준비했던 이들이다.

 

윤상원은 "이대로 투쟁을 멈춘다면 우리는 역사 앞에 죄인이 됩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라고 마지막 발언을 한다. 그들은 광주라는 거대한 비극성을 신파로 격하시키지 않고 오히려 민중과 민주주의에 대한 투쟁으로서, 진실을 남겨두기 위함으로써 그 죽음을 선택한 것이었다. 태백산맥에서 등장하는 "역사투쟁" 이라는 언어를 이럴 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투쟁에 기꺼이 동참했던 빈민과 노동자들, 최후의 시민군들은 또한 무엇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었던가. 그것은 민주주의라는 하나의 수사를 위해서 싸운 것이 아닌 그 내용에 있다. 적어도 그 당시 광주는 시민들의 토론과 논쟁의 장이었으며, 누구 하나 상호 간의 억압이 아닌 우애로 맺어진 공동체의 역할을 했다. 한국 같이 지식인 엘리트주의가 심화되고, "실질적인 신분의 차이" 가 극심한 공간에서 투쟁으로 며칠이나마 존재했던 광주의 그 코뮨은 가난하고 못 가진 채 피억압자로 살아가던 그들에게는 목숨보다도 더 소중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하다면 광주의 이 투쟁을 단지 "계엄군들의 총칼에 의한 시민들의 비참한 죽음" 에 대한 "신파극" 으로 격하시키는 것은 전혀 역사에 진지한 자세가 아니다. 광주의 이 투쟁은 "역사 투쟁" 이었으며 살 만한 이들이나 살아남아 "시민의 민주주의와 목숨" 을 지켜내는 투쟁이 아니라 "민중의 민주주의" 를 건설하고, 지켜내고자 했던 투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전혀 오지 않은 "민중의 민주주의"를 건설하는 운동의 시작으로서 "오월 광주" 가 존재하는 것이다.

 

한데 90년대 중반 "광주 민주화 운동" 이 되면서 지금의 노무현이나 열린우리당 따위의 "386을 중심으로 한 개혁운동" 이라는 치들이 전면에 부상한다.(앞에서 말한 "수습위원회"의 부류들이라고 보아야 마땅한 이들) 이들은 자신들이 "광주의 후계자" 라는 식으로 광주의 혁명을 "그들의 성과" 로 치장하면서 겉으로 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고자 하는 허구적 수사를 내세우고, 역사 바로 세우기 따위의 기만을 행한다. 하지만 그들의 정치의 실제 내용으로서는 민중의 민주주의 따위는 어디론가 사라진 채 오직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의 기본을 말살하고 더욱 관료화된 체계를 완성하며 노동자 민중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한미 FTA와 비정규직 개악안을 통과시킨다.

 

죽어간 광주의 전사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적어도 이런 기만이 넘치는 거짓 민주주의 정치와, 죽어가는 노동자 민중의 삶이 아니었을 진대, 이들은 "광주의 비극은 이미 정당한 역사적 평가를 남김으로써 마땅히 기념되어야 할 것" 으로 정리해 버린 채 아직 끝나지 않은 광주로 시작한 "민중의 민주주의" 에 대한 투쟁을 "불법" 으로 간주하는 전형적인 "지배계급" 으로서의 압제자의 모습만을 드러낼 뿐이다.

 

문제는 이러한 개혁 세력이라 통칭되는 이들의 "기만" 에 민중들이 반응한다는 것일 것이다. 민중들에게 있어서 그들은 80년대에 운동에 참여했던 "진보적 엘리트들" 이며, 나쁜 의미로 말한다면 "빨갱이" 들인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정확히 말해서 윤상원과 들불야학으로 표상되는 민주시민투쟁위원회가 아니라 오히려 전남도청에서 마지막에 조용히 사라진 "수습위원회" 와 같은 부류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이 바라는 세상은 엘리트 시민의 상식이 모독받지 않는 사회였으며, 실질적인 가난과 불평등에 삶을 괴로움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던 민중들이 평등하고 자유로워지는 사회가 아니었다.

 

한데 영화 화려한 휴가는 이러한 민중들의 평등과 자유를 위한 투쟁과 수습위원회의 타협과 굴종을 그리지 않으며 윤상원의 비극을 묻어버린다. 묻혀져서는 안 될 것을 묻어버린 채 화려한 휴가 답게 진실로 화려하게 "광주의 신파를 잊지 말자" 라고 외치면서 영화를 정리해 버린다. 이 영화가 실로 기대받는 대중영화라는 사실을 감안해 볼 때, 영화를 본 이들은 "광주로 시작되었던 민중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 계속되고 있기에, 광주는 여전히 "기억" 되어야 한다" 라는 말을 머리에 남기지 못한 채 "남한의 역사에서 저런 비극도 있었구나" 라는 스쳐가는 하나의 생각으로 마무리할 뿐이다.

 

학살자의 후계자 "한나라당" 과 도청에서 조용히 사라지고 민중의 민주주의에 대한 투쟁의 기억을 민중에게서 삭제시키는 "열린우리당" 따위의 부류들이 의회정치 내부에서 권력투쟁을 벌이다가도 매년 5.18이 되면 광주로 와서 망월동 묘역을 참배하고는 오월 광주를 "기념일" 로 격하시켜 버리면서 "자기네들이 광주의 정신을 진실로 "기념" 하는 후계자다" 라고 떠들고 있는 현실 속에서, 대중들이 오월 광주가 제기했던 "인민의 민주주의" 에 대한 기억을 잊어가는 현실 속에서, 아마도 이 화려한 휴가의 역할은 비참했던 광주의 역사를 "팔아넘겨서" 저 지배계급들의 "광주 기념 이데올로기"에 그대로 복무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우리들의 오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민중이 진실로 해방된 세계는 여전히도 건설되지 않았는데,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87년 체제와 신자유주의 독재의 관철로 점점 암울해져 가는 지금의 한국 사회의 모습을 다시 떠올려 볼 때, 광주를 그저 신파극으로 "기념" 하는 이 화려한 휴가는 다이하드 따위의 폭력적인 오락영화보다도 훨씬 심란하고, 마음이 무거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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