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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하루를 이야기 합니다

9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5/26
    오늘 하루
    지리산
  2. 2005/05/22
    일상
    지리산
  3. 2005/05/09
    가족
    지리산
  4. 2005/05/08
    어머니
    지리산
  5. 2005/05/08
    막내처남
    지리산
  6. 2005/05/08
    어제 필봉산
    지리산
  7. 2005/05/07
    요즘
    지리산
  8. 2005/05/06
    초록이녀석
    지리산
  9. 2005/02/08
    장인어른
    지리산

오늘 하루

온종일 수선스럽다 아침부터 말이다
오늘 수원방송에서 주거정책토론회가 있다
한달전 부터 제안한 토론회가 지난주에 결정되어 마음만 부산스럽다
처음에는 오산의 수청동문제에 대한 접근이 시큰둥하더니만
중앙언론에서의 적극적인 보도가 지방방송에서도 토론가치를 인정한 모양이다
 
민지아빠, 문상민동지, 이동수동지가 토론자로 간다 
그제 전철연의 참가 요청으로 단산인권센터 박진씨에게 어렵게 부탁한 결과가 좋았다
전철연의 이동수 동지고 토론자로 결합하게 되었느니

내일 열인우리당인권특위 국회의원들이 방문한다니
우리 비대위의 입장을 밤새 정리했다
토론회를 준비하는 민지아빠에게 맞기는 것도
벅찬 일이니 내가 챙길수 밖에 없다

아침 집사람에게는 오토바이 손본다며 나와서
센터에서 김간사와 민지아빠와 성명서 내용을 정리하고
다시 가게로 향했다

가게만 생각하면 숨이 컥컥 막히는데
장사가 안되면 집사람의 짜증이 모두 내게 오니 답답한게고
2월의 사고로 차를 고치는데 들어간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카드로 처리한 금액을 지금 장사가 안될때 막아야 하니
집사람에게 얼굴을 들수가 없다

점심장사 몇그릇이나 팔았나
내일 농성현장에서 기자회견을 조직할 생각으로
정신 한편엔 그쪽에 가있다

집사람의 그늘진 얼굴이 숨을 막히게 한다
하루 15만원이나 팔아야 겨우 물건값 빼고
카드값과 공공요금을 낼수 있을텐데 

마음속으로 걱정말 하다가 센터에서 일을 한다
집사람은 내 본업이 몬지 모르겠다는데
내 본업은 둘다라 생각하는데 
집사람의 생각과 맞추어 이바구니 풀칠하는 일도 소흘히 할수 없고
내 양심과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도 소흘히 할수 없기 때문이다

중앙 방송3사에 내일 수청동 일정을 알리고
비대위 소속단체들에게 참여를 독려하고
민주노총경기본부는 내일 울산의 비정규직싸움을 지원하게 위해서
모두 자리를 비우는데 조직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그시간에 토론은 잘되가는지 걱정도 되고

가게를 왔는데
한겨레 김기자에게 전화가 왔다
경찰이 새총을 쏘았다는데 경찰이 새총을 쏘는 사진을 보내 달란다
동아일보 남기자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알고보니 오늘 화성경찰서 경비과장이 직위해제된 모양이다
이사람 우리를 적이라 표현하면서 적대시 하더니만
새총을 쏜것이 월요일 한국방송공사의 2테레비에서
방영된 것에 대한 문책인가 보다

여기저기서 전화가 온다
집사람 눈치가 보면서 설명을 해준다
"네에 오산민주단체연석회의 집행위원장 지상훈 입니다
경찰과 검찰은 사망원인을 다시 조사하고
원인도 불분명한 사안을 전제로 구속수사하려는  
철거민들의 사전구석영장청구를 철회하고
농성현장의 단전, 단수를 풀고
농성현장에서 철수를 해야 합니다."
"또한 대한주택공사는 현재 농성현장에 있는 철거민들에게 주거권을 약속하고 
가수용단지를 조성해 이주대책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앵무새처럼 전화로 기사내용을 전달하며
하루를 마치었다
망루위의 동지들게게 희망을 약속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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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오늘무당벌레 한 마리가
바지춤에 앉더니만
노란색의 똥을 싸고 갔다

서너 살이나 되었을 남자아이가
고추를 까고
배를 내밀어 오줌을 싼다

점심시간이라 나오셨는지
고등학교 선생님 한 분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호랑나비 한 마리가 너울대며
우리가 인사하는 모습을
정겨워 한다

할머니 한 분이
굽은 허리를 지팡이에 의지 하시고
걸음을 세신다

나는 모두들 건강하고 행복하자고
인사를 했다
모두들 나와 살겹게 함께 살아가는
귀한 생명들이다

사람만이 귀하고
미물이라 하찮아야 하는
대상들이 아닌
모두들 귀한 친구들이다

살아있는 것 모두 소중하기에
반갑다고 인사를 한다
함께 살아있어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2001-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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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오늘은 어머니 생신이다
장모님이지만 내 어머니기도한 어머니인데

어머니는 내가 그리도 싫었을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딸년 온갖 가난의 설움은 다주고
그것도 모자라 마음고생으로 시작해 몸고생까지 시키고 있으니

어머니는 내게 말을 안하신다
"지서방 우리딸 초록이에미 호강을 시켜주란 말한마디 없으셨다"
너무나 이기적인 나를 곧은 사람으로만 보아주시니
쇠눈에 경읽는다 생각을 하셨을게다

어제 초록이녀석의 휴가로 온식구가 다모이니 열 넷
둘째 며늘년 11년전에 옛애인 만나 신발 바꿔신어
아들 셋
딸 하나
며늘년 둘
사위놈 하나
손주새끼 여섯
그리고 어머니

바람난 큰아들의 8년의 외도에도 천사같은 큰며느리는
딴서방 만나 떠나버려 손아래 동서새끼까지 챙겨주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고마운 큰며늘년이지만
얼마나 마음 고생했을런지

이혼도장까지 찍고
당신이 어머니 내치고 조카새끼 내치면
오갈데 없는 것 눈에 보이는데
어떻게 내치겠느냐고 하면서도
힘들어 하던 큰처남댁에게
어머니는 얼마나 미안하고 고마워했을까

지난 겨울 큰처남 무슨연고로 바람끼 접고
집안을 기웃거려 잠자리 챙기고 들어 앉아
이제 어른노릇하는 것이 자신도 고마운 것 아는지 모르는지

어제 찾은 처가집은 집안꼴 돌아가는 것이 사람사는 것 같았는데
어머니의 편안한 얼굴에 내놈도 얼마나 고마운지

어머니는 분주히 움직인다
둘째아들 새끼 형수에게 맞기고
덤프트럭 하나로 건설현장 찾아 떠도는데
요즘 보령에서 일하다가 어제는 어머니 생신 챙기느라
모처럼 생기넘치는 가족과 얼굴 맞데고
형님 제자리 찾아 형수에게도 다시 고마워하는 자리이니

어머니는 혼자 떠도는 둘째아들 챙기느라 분주하시더라
이틀전 담구어논 총각김치 국물 흐르지 않게 보자기에 싸메시며
안먹는다는 찹쌀묻혀 튀긴 미역을 밑반찬하라고 눈치보면서 싸메시며
이제 쉰이 다 되어가는 둘째 아들 하나라도 더 챙여주시느라 분주하시더라

어머니와 큰처남댁 그리고 집사람은
이시대에 고난을 몸으로 이기는 진정한 어머니인 것을
이기적이기만한 나는 어제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내나이 쉰이 되어서야 볼수가 있었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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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우리 어머니는 나의 소중한 안식처였고 나의 슬픔이기도 했습니다 경상도 안동이 고향이라고 7살에 고향을 떠나 그 때 어머니는 고향과 형제의 이름을 잊는 것이 제일 두려웠답니다 이름 석자도 쓰지도 읽지도 못하신 어머니 서울 어느집에 식모살이가 너무 힘들어 10살에 어느 아저씨를 따라 황해도 연백으로 바느질 솜씨가 눈에나 어느 지주집의 침모로 다시 지씨집 종가 민며느리로 우리의 어머니가 되셨어습니다 사남 삼녀의 여섯째인 나는... 글께나 읽었다고 피난이후 어려운 일 피해 무의도식한 아버지 덕분에 온갖일 마다 안하시고 일곱을 자신이 벌어 가르치시며 아버지 원망 한번 안하시는 어머니가 너무나 불쌍하고 안스러웠습니다 큰 형이 자기가 벌어 대학을 가고 둘째형도 공부를 잘해 어려움 속에 대학을 가고 누이들도 최고학부를 가고... 우리 어머니 형들의 입학금을 위해 뼈를 깍는 것을 보았습니다 새벽 물때를 맞추어 갯벌에 나가 조개를 캐고 낮에는 노동판에 막일을 하고 저녁에는 아침에 캐온 조개를 팔러 나가시고 어머니는 두,세시간 주무시었습니다 날씨가 추어지면 바다 보다는 양키놈 덜 유류저장소에서 나온 휘발류 를 몰래 팔러 다니시고 통금시간에나 들어 오시던 엄니... 나는 들풀처럼 클수 밖게 없었습니다 그 형제들 사이에 나의 존재를 어머니가 거두시기는 벅차기도 했을 겁니다 막내 동생을 본 다섯살부터 끼니도 내가 알아서 챙길 수 밖에 없었고 학교는 둘째누나 손을 잡고 입학을 하고 운동회때 어머니가 한번 오는 것이 막내누나 와 동생과 나의 소원이기도 했었습니다 아마 어머니의 소원도 우리와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놈들은 머리커 색시 얻으니 지에미 몰라라하고 둘째놈 압구정동 한양 아파트 살며 어머니 가면 둘째며늘년 어머니가 궁상 맞다고 날벼락을 맞을 년놈들 처가 덕에 공장 차렸다고 자랑하는 큰아들놈 우리어머니가 가면 큰며늘년 늙은이 냄새가 난다고 염병헐 년놈들 남의 일인줄 알았는데... 내놈 어머니가 불쌍스러 대학을 포기했습니다 형놈들 잘나 대학나와 에미 몰라라 하는 형놈들 따를까 봐 나는 인테리 이기를 포기했습니다 그냥 들풀처럼 살아 가기를 어릴적 나 스스로 약속을 했었습니다 그 어려움속에 결국은 딸년 집으로 갈 수 밖에 없었던 어머니 파킨슨 병을 얻으시어 한수족마저 떨며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보내신 어머니 내놈 월세방 겨우 면해 지금 사는 열세평짜리 주공의 임대 아파트 얻어 방두칸 짜리로 옮겨 어머니를 모시고... 세째 며늘년 수족 못쓰시는 헌신에 어머니는 고마워하시고 가끔 딸년들 들여다보고 훼방 놓고 같지만 어니 옆에 계시니 행복이었습니다 아마도 어머니도 그러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세상 바꾸겠다고 오른손 하늘로 내졌다가 내놈 좇기는 신세가 되어 집사람과 아이는 처가로 가고 어머니는 동생네로 가시고... 그 잘난 형놈들은 몰라라 했지요 ... 마지막 가시기전 어머니는 울엄니는 집사람에게 그러셨답니다 세째네 집으로 가고 싶다고... 네 서방 출소를 하면 함께 살자고 그러셨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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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처남

내놈 4년전까지 서른넷둔 노총각 막내처남을 두었었다 그때까지 행사장을 쫓아다니며 남성복 장사를 하는 처남은 그야말로 장가못간 천덕꾸러기였던게다 벌써 머리중간은 머리카락을 셀수 있을 정도로 빠지고 있었고 몸닦기를 싫어해 우리집에만 와도 발냄새를 비롯 홀아비 티를 내는지 술,담배냄새가 온몸에 쩔어있어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그런데 처남이 녀인네 하나를 불쑥 데리고 온것이다 1미터 58센티는 될까 작달막한 키에 동근얼굴에 유난히 큰눈을 내리깔은 모습은 고르지못한 이에 주근깨의 얼굴이었지만 모질지못한 착한 심성의 소유자인것이 보이는것 같았다 처남의 말로는 행사장에 아르바이트를 나와 만난 67년 양띠처자라 했다 결혼 6개월만에 이혼한 혼자사는 처자라했다 집사람과 나는 조심스럽긴 했지만 나이 조금더 먹으면 상처가 있는 처자도 얻기 힘들다는 생각에 서로 좋으면 마다 할것 없다고 말했다 덕담은 생략한체 좋은면 살라고 한것이다 그해겨울 처남은 그처자와 결혼을 했다 그처자가 막내처남댁이 된것이다 그날 처남은 뭐 그리도 좋은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내놈 속으로 "이구 이놈아 변변치 몬허게 뭐 그렇게 좋으냐" 씨브렁댔다 밖으로 나돌며 장사를 하는 놈이 처남댁과 볼것을 다보았을텐데 어린아이 처럼 좋아하는 것이었다 자기집을 갖는 것이 좋았나보다 식을 올리고 장사도 안가고 열흘을 월세방을 꾸몄다니 늦장가에 전세방 얻을 돈이 없어 오백에 이십오만원 하는 월세방을 얻은 것이다 월세방이라도 자신의 가정을 꾸민다는 것이 좋긴 좋았던 모양이다 장사도 때려치고 처남은 정착해야 한다고 싱크대 설치하는 이를 따라나서 직업전환도 하고 그런데 문제가 생겼었다 그렇게 일년이 지나고, 이년이 다되었는데도 아기가 없었던 것이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니 처남의 정자수가 아주 적다는 것이다 있는 것도 활동이 정상적이지 못하고 이놈이 장사 한답시고 거처없이 떠돌며 별별것 조심안하고 다 먹을때 면박을 준 기억이 났다 "못먹어서 병난다며... " 음식조심 않한것이 원인이지 않았나 하는 걱정이 있었다 그러나 심성착한 처남댁은 아이 못낳는 것이 자신의 문제인냥 아이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이구 저 착한녀인네에게 누가 돌질을 하였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길정도로 순박한 녀인네였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것이 업동이였다 2년전 이렇게, 저렇게 아는 사람의 소개로 여자아이를 하나 데려다 키운것이다 이름은 내놈이가 "다솜"이라 지어주고 재작년 12월 돌잔치를 하는데 부산에서 올라 오시는 처남의 장모를 모시게 되었다 일찍 상처하시어 90이 넘으신 시어머니를 모시고 두분이 사신다는 그리 늙어보이지 않는 처남댁 친정어머니의 등에는 히말라야 셀파들이나 짊어질 큰배낭에 보였고 양쪽 손에는 큰보따리가 들려져 있지 않으신가 택배로 미리 보내시고 떡만 싸가지고 오실수 있었을텐데 그 배낭을 내등에 옮겨 짊어지니 과장없이 식은땀이 주르르 흐를 정도로 무거웠었다 처남집에와 바리바리 쌓오신 보따리와 배낭을 풀어 놓는데 말린 생선에, 밑반찬에, 부산어묵에, 손녀딸년 돐떡에 우리 세식구가 먹어도 한달은 먹을듯한 음식을 싸온 것이었다 딸가진 죄가 저렇게 크겠구나 하는 맘에 가슴이 저려오는 것이었다 더구나 어떤 연고로 큰따님 두번이나 결혼식을 시켰는데 허물없이 살며 속안썩이는 사위에게는 얼마나 고마우시면 저런 고생을 마다않하실까 하고 그런것도 있겠지만 딸은 엄마를 닮는다는데 처남댁의 화를 낼줄 모르는 온화한 품성을 보면 친정어머니를 보는듯 했다 이번 설 이틀전 막내처남이 미리 부산처가댁을 다녀온다며 우리집을 들렀다 매번 그러시는지 모르겠지만 부산 안사돈 께서는 사돈댁 몫도 챙기신단다 처남네 것과는 별도로 한보따리를 싸신것이었다 내놈 장모님 품성도 만만치 않아 장가못간 막내아들 거둔 착한며느리가 고마워 막내아들 집으로 김치담아 나르는 것은 예사고 업동이 티안나게 손녀딸 빨고, 쓰다듬고 얼마나 예뻐하시는지 할머니의 따뜻한 품성이 옮겨와 언니, 오빠들은 다솜이녀석이 사촌동생이 아닌 친동생으로 챙기고 두돐이 지난 다솜이녀석은 벌써 공주님으로 자리하며 재롱을 떨고있다 두분 사돈간의 말없는 사랑의 교감을 보며 깊은 산속의 맑은샘을 보는듯하다 두분의 마음이 그렇게 맑고 깨끗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람들의 향기라고 말하고 싶은게다 이번 설날은 우리사람들의 아름다운 향기를 고맙게도 두분 어른들에게서 맡을수 있게 된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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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필봉산

집사람과 두주째 오르는 필봉산이 어제는 내게 선물이었다 오랜만에 내려준 실비가 하늘을 가린 뿌연연기 모두다 거두어주니 맑고 푸른하늘 너무 고맙기도 한데 하늘 바라 보기가 부끄럽기도 하다 나도 저 맑고 푸른 하늘에 뿌연연기를 뿜어낸 장본인중에 하나이니 당연히 죄스러워하고 반성하며사는 어리석은 사람이니 하늘보기가 부끄러운 것은 당연 한것이려니 정말 깨끗한 하늘아래 동네가 펼쳐졋으니 북으로는 지지대고개 넘어 관악산자락도 보이고 동으로는 산세가 수려하다는 용인의 산자락들이 광주까지 넓게 펼쳐져 보인다 그곳에 사람도 살고 다른 생명체들도 서로서로 의지해서 살텐데 반환경적인 사람의 욕심가득하게 살아가는 것이 햇빛이 쨍쨍 거려도 파란 하늘을 볼수 없으니 말이다 차마 서쪽은 애써 외면 한다 그 맑고 푸른 하늘아래 수청동철거민들의 망루가 있으니... 우린 늘 손을 잡고 다닌다 81년부터 였으니 휫수로 스무다섯해째인데 이제는 식상할때도 됬구만 집사람과 집을 나서서 손을 잡지 않으면 허전하기만 하다 보경이아빠는 우리보고 투닥거리지나 말란다 녀석이 우리 집안속내 꿰뚫고 있으니 시비거리가 일수도 있는데 그 시비거리가 거슬리지는 않다 그만큼 가까워있는 후배녀석이 잇으니 말이다 1시간 30분 정도의 그리 험하지 않은 산을 손잡고 다녀온다 마주치는 이들에게 눈인사도 하고 우린 무슨 할 이야기가 많은지 질리지가 않는다 자존심 강한 집사람 심사만 건들지 않으면 나 보다도 살겹게 이야기를 풀어놓는 집사람이니 말이다 그 필봉산 자락에는 내가 좋아하는 야생화들이곳곳이 숨어 있다 닷새 전에는 소나무 그늘아래 수줍게 숨어있는 각시붓꽃을 보고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요즘은 넓게 분포해 있는 제비꽃인데 초입에는 하얗게 핀 알락제비꽃을 비롯 어제는 황매화가 시들고 있고 노란 뱀꽃도 시들고 있구... 지금은 보기 힘든 그렇게 흔하던 쇠뜨기도 보인다 그런데 비가 와서 땅이 물러져 산길이 망가지고 있다 곳곳이 뿌리가 들어내 아파하고 있는데 얼마나 아플까 하는 맘 뿐이니 말이다 /// 쇠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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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요즘 일상은 수청동에 온통 매달려 있다. 덕분에 변화에 중심에 있는 동지들과의 함께할수 있어 좋기는 한데 집사람과의 관계가 아슬아슬하다.

 

 내가 변화한지 벌써 18년을 넘기는 해인데 일에 대한 끊임없는  나의 열정을 본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무한한 신뢰이기도 하다.

 

 다솜교회의 존재 그리고 고마움 늘상 마음에 있지만 그렇지도 못하고 가끔 불만으로 다가가는 우를  반성도 한다.

 

어디 장목사님 같은분이 있겠나. 목사라는 신분하나로도 편하게 살수 있는 조건을 뿌리치고 노동자를 예수로 섬기는 목사님은 어쩌면 우리시대에 예수이기도 한데 말이다.

 

요즘은 하루가 모자란다. 가게일에 매달려야 하고 변변히 챙기지도 못하는 수청동철거현장에서 마음도 벗어나질 못하고, 다행히 동지이자 후배이고 동생인 형모가 있어 수청동이 살아움직인다.

그리고 센터식구인 우곤씨 승만씨 케리어 엘지동지들 경기본부동지들 모두가 오산을 살아있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오늘은 장모님 생신에 식구들이 모이기로 해서 서울 처가댁에 가야하는데 오산이 미덥다. 수청동을 떼어 놓고 간다는 것이 벌써 마음에 걸런다. 마음같아서는 망루에서 함께 귀찰이라도 서고 싶은데 그렇질 못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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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이녀석

녀석은 21개월 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녀석은 벌이가 시원하지 못하나 인간적인 마음이 가득한 아빠를 두었다
녀석은 깔끔하고 새침둥이인 엄마를 두었다

녀석의 코는 외할아버지, 나머지는 아빠와 큰아빠를 닮았고
식성은 할아버지와 흡사하다

녀석은 수정같은 맑은 눈을 가졋고
입술은 사내같지 않게 그려낸듯 윤곽이있고 붉다

녀석은 아빠처럼 운동경기 구경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녀석은 그래서인지 아빠를 밝힌다

녀석은 표현력이 풍부한데 그중에 예쁘다는 표현을 으뜸으로 한다
그래서 녀석을 아빠는 예술가로 키우고 싶은데
엄마, 아빠는 녀석에게 인간답게 사는 것을 더 보고 싶어한다

녀석은 떼가 심한데 동생이 없서서 인가 보다 
녀석은 곧잘 엄마, 아빠를 흉내내어 웃긴다
그리고 녀석의 웃는 모습은 순결 그것이다

85.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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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어른

아버님~~~ 이렇게 불러본지가 98년 초봄 즈음 거동을 못하고 누워계살때 불러보고, 그해에 아버님을 저승으로 보낸 그해이후 처음입니다. 벌써 아버님이 이승과 작별을 하신지가 휫수로는 7년째가 되는 것이지요, 안성에 만석집 둘째아들로 태어나 어린시절 부러워할것이 없으셨다는데 일본유학에서서 큰형님의 사회주의자로 변신이 아버님의 일생을 모질고 고통스럽게 다시 살게 하시었답니다. 89년 겨울 국가보안법으로 수배중인 나를 보고는 "내가 형놈때문에 이렇게 네 에미와 아이들을 고생시켰는데 다시 그꼴을 본다"는 한마디로 우리시대의 아픔을 독백하시기도 했엇지요. 어제는 모처럼 처가댁식구들이 다 모였습니다. 79년 이후 끊이질 않는 외도로 장모님과 큰처남댁 속을 무지하게 썩인 큰처남도 작년 말 외도를 훌훌 털고는 집으로 귀의???를 하고 멀리 순천에 가 있는 둘째아들과 막내아들내식구 손주녀석들 그리고 변변하지 못해 살아생전 막걸리 한잔 받아주지 못한 우리 하나밖에 없는 딸년내외가 모여 있는 것입니다. 해방이후 우리 남한사회의 근대사 만큼이나 우여곡절이 많은 처가집에 이제서야 비록 추상명사이지만 남들이 그렇게 목메이게 추구하고 갈망하는 행복이 찾아오는 듯 합니다. 이유야 어떻든 큰아버님의 월북에 연좌제에 묶여 반세기를 넘게 무의도식하신 장인을 대신한 장모님의 경제활동은 변변한 가게 하나 없이 양은다라하나로 새벽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생선띠어다 머리에 이고 이집저집찾아다니는 장사였던 것 입니다. 3남 1년의 성장도 그속에 잇었던 것이겟지요. 참 모질고 모진 삶이 초록이외가집에 있었고 그 곳에 초록이아빠인 내도 민주화운동을 한답시고 한몫을 단단히 하면서 걱정을 끼쳐드렸지요. 초록이녀석 초등학교를 갓 입학시키고는 수배에 징역살이에 수발히기 위해서서 남의집 허드렛하는 딸년과 외손주녀석을 2년이나 건사하면서 얼마나 걱정을 하셨을지 모릅니다. 내가 진짜 지은 죄는 여기에 있었던 깃입니다.. 약주가 과하시어서 가끔 걱정을 하는 내게 네놈이 막걸리한잔 받아주어 보았느냐는 호통으로 무안하게도 하신 장인인 정말로 선비였고 휴머니스트이기도 했었습니다, 곧은 걸음걸이처럼 곧은 글씨체하며 당장 내일 끼니가 없어도 주변에 끼니를 거르는 이들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는 분이었으니까요. 그러니 장모님의 고생은 배가 되었엇습니다. 다행히 그 가난을 함께 이음질 하면서도 사랑을 베푸는 천사같은 처남댁이 들어와 큰처남의 20여년 외도를 아랑곳 하지 않고 가정을 지켜내는 정말로 천사의 심성이 지금 처가집을 가꾸어 놓았던것 입니다. 오늘은 7년전 5월 용미리 납골당에 모신 아버님을 뵈러 군대를 간 외손주 초록이녀석만 빼고 온가족들이 새배드리러 가기로 했습니다. 이제 큰 걱정없이 살아갈 처가댁 식구들의 형복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는 초록이 아빠와 더불어 말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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