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monologue 2011/04/13 17:03

며칠 간 시가에 다녀온 뒤로

나를 놓아주기 위한 시간을 만들고 있다.

곰곰 되짚어 생각해 봐야갔다. 나를 옭아매는 것들...

 

 

1. 결혼해서 산다는 것

 

내가 놓인 불평등한 위치 때문에

그걸 강제하는 제도 속에서, 상대방이 보다 더 많은 내용들을 양보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상대방은 가부장제의 핵심에 들어와 있었다.

개인이 개인에게 처한 제도의 영향력을 단번에 뒤집기란 쉽지 않아도

노력이라도 해볼 수 있는 것 아닌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의식적 노력 아니었나.

 

헌데 내가 내 스스로 해내고 있다는 것도, 그만큼을 상대방이 해주기를 바라는 것도...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누가 누구에게 얼마 만큼, 그만큼을 다시 누가 누구에게로

계산된 관계를 만들어간다는 것, 누가 하고 싶어서 하나.

여성들에겐 숨이 차도 이런 방법이 아니면 쓸 방법이 없다. 

특히 남성과 맺는 삶의 관계와 태도의 문제에서는 더욱.

 

남성 일반이 갖게 되는 특질이란 없다고 여겨왔으나,

요즘들어 비슷한 조건과 환경 그리고 개인의 의식 여부에 따라...

비슷한 특질들도 몇몇 발견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나는 항상 남편 집에 가면 부엌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먼저 말을 걸며, 안부를 묻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기 위해 의식적으로 애를 쓴다.

남편은 어디에 있든 TV만 본다. 우리 집에 와도 마찬가지다. 소파 위에서 티브이만 본다.

엄마에게 잘 지냈는지, 건강은 괜찮은지 형식적 인사 한 마디 건네지 않는다.

결혼 5년차인데 자발적으로 전화 한 번 해본 적 단 한번도 없다.

못해서 그러려니 해도 이제는 아예 안 한다.

언니들한테 물어보니 남편들 다 그런단다. 그래도, 내 남편은 더 특수하다.

 

상대방에게 관심 없다는 투, 혹은 너와 대화를 나누기 싫다는 투가 너무 현격하게 드러난다.

고갤 숙이거나 돌리거나(이럴 때 티브이는 굉장히 좋은 대상이 된다) 말을 걸어도 한 마디면 끝, 혹은 아예 안 하기도 한다. 이런 무엇 같은 경우가!

 

이런 사람인지 몰랐다. 솔직히 결혼 직전부터 알게 되었고, 이해해야지 하면서 그 이후부터

계속 내 속을 긁어놓는다.

그 무성의한, 말없는, 싸가지 없는, 이걸 지적하면 지적한다고 난리를 치는 그 잘난 자존심만 쎈 태도...

사람과 어울릴 수 없는, 사회성이 제로인 그 천성!

 

어쩔 수 없다. 나는 이런 남편과 살기에 늘 내가 먼저 말을 걸어야 한다.

그러면, 나는 늘 귀찮게 하고 부탁하는 사람이 된다.

그럼 그 사람은 늘 그걸 받아주었다. 속으로 짜증은 났겠지만...그게 싫었다면 말을 해야지

적어도 나에게 부탁이라도, 혹은 말로써 짜증이라도 한번 건네는 게 그리 어렵나.

 

죽자 사자 일에 매달리는 생협 내 구조, 전화로 온갖 소리륻 다 들으며 감정노동을 해다 바쳤던 1년

짧았지만 결코 짧지도 않았던 그 불합리한 구조와 지쳐가는 시간 속에서...나는 버텼다.

얼마나 힘들었냐고, 말 한 마디 못해주는가. 자기 삶이 바빠서? 해 줄 인간도 아니었다.

 

헌데 내 가족의 모임이 있을 때 자기 일정이 있어서 싫고

지 가족 모임이 있을 때는 가야 한다 챙기면서 내 일정이 되는지 안 되는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나는 안 가려고 했다. 그 무성의한 태도가 너무 싫증나서 무척 짜증나서, 당연히 가지 말아야지 했다.

헌데도 갔다. 가는 내가 문제야, 하면서 갔다. 오만가지 생각에 휩싸이며.

 

2. 제사

 

그는 내 가족을 만나러 가는 게, 사회주의 모임(개 빌어먹을! 너는 사회주의 모임 잘도 가면서 일상은 이 따위로 사니! 사회주의자 모두가 자기 가족은 끔찍하게 챙기고 그렇게 순종적이며 가부장제도에 한 마디 제동도 못 거는 찌질이로 사니? 어?) 이 있어서 안 된다고 했다.

 

반대로 일을 그만두고 하루도 제대로 못 쉬고, 나는 시가에 가야했다.

계속 걸려오는 시아버지나 시어머니의 전화를 만류할 수가 없었다.

위가 뒤집어진 남편의 건강이 신경 쓰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너무 지쳐 있는 지금의 일상이 조금이라도 뒤틀어지면 내가 너무나 아플 것 같았다.

예민한 나를 잘 알기에, 헤어지고 뭐하고 생쑈하는 것보다 차라리 마음에 없어도 가지 하며 마음 먹었다.

나락으로 치닫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남편보다, 남편의 가족에 대한 예의라 생각했다.

멀리 살고, 잘 보지 못하기에 가서 얼굴이라도 딸처럼 보여주자 생각했다. 된장맞을!

 

말도 안 되는 비과학적 호주제의 풍습 때문에, 제주도의 토착민들(남성들)이 모여 지내는 제사에 여자들은 들러리다. 아니 없다. 그래, 섬이라 척박하고 파도에 휩쓸려 죽고 못 먹고 없어서 죽고 43때 죽고 왜 제사를 지내는지 알겠다. 알겠는데...이걸 지내면 여자들은 행복해지나? 이걸 준비해주는 여성들은, 행복해지냐고? 너희들이 뭔데 성씨를 잇네 어쩌네 하며, 제주도를 이끌어가는 뭐뭐네 ㅈㄹ인데? 어? 너네들 뒤에서 피터져라 일해주고 희생해주는 부인이나 다른 여성들은, 뭔데? 어? 대체 뭔데!!! 여성주의자로서 제사에 간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들고 싫은 일인지 모른다. 희한하게 남편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다. 욕할 거면 가지 마. 이거였다. 

아니 그냥 여성주의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여성이라면, 가기 싫다. 정말로!

실제 이번에 애를 가진 동서는 돌도 안 된 아이를 끌고 알 수도 없고 알 지도 못하는 제사에 가서 음지에 앉아 하루를 꼬박 보냈다. 대체 우리가 왜 이래야 하나. 왜!

 

출산에 대한 생각도 없고, 생계 부양을 하려고도 하지 않는 매우 훌륭하신 남편은

이 사실을 부모에게 숨기고 있다. 이제 보니 아주 의식적인 것 같다.

그러면서 '왜 니 스스로 옭아매냐며, 너는 왜 나만 문제라고 비난하느냐며, 너도 일정있으면 안 가면 되지 않느냐며' 나한테 화살이 돌아온다.

 

나는 남편이 아이를 갖지 말자고 한다고 시가에 이야기를 수차례 했다.

그럼에도 가서 아이 낳지 못하는 여자 역할을 해주고 와야 했다.

남편이 아파 들른 약방에 갑자기 나를 앉히더니 애 못낳는다고 진맥을 보란다. 나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누가 애를 못 낳아서 못 났나? 내 자궁이 아파 보이면(얼굴에 써있나?) 내 몸이 아프다고 말 하든지

왜 임신을 못한다고 약을 먹으라며 난리인가.

 

남이야 섹스를 하든 말든, 배란일에 딱 맞추어 남편이 사정을 해서 수정란이 잘 안착되어

내 자궁 속에서 자라든 말든 무슨 상관이며,

나도 때때론 그걸 원하는데 남편이 원하지 않는 이런 상황은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한다는 말인가!

아이에 대한 대화 자체를 남편은 거부해왔다. 역시 말 없이 티브이만 본다.

 

'저희 섹스 안 합니다. 잠도 따로 자요. 몇 달 됐어요. 서로 원치 않습니다.'

말하기 싫다. 이렇게, 특별히 필요한 말도 아니고 하기 싫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해야 하나.

 

지 스스로 술 먹어서 위가 뒤집어 진것을 두고도 시아버지는 나에게 아프면 안 된다고 말한다.

어이가 없다. 남편의 몸이 내 몸인가.

 

함께 얼굴 보며 같은 공간 안에서 산다는 것

무얼 하자면 무엇을 하고, 별 말은 없어도 지금까지 살아왔다.

상호간 다른 대화들은 일절 나누지 않는 지금 같은 상황,

나는 남편의 기분을 풀기 위해 혹은 상호 관계를 부드럽게라도 만들기 위해

말도 걸어보고 이것저것 다 해봤다.

 

헌데도 소용이 없다. 여전히 말이 없고, 대화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나를 무시하며

고고한 가부장제도의 수익자로, 사회주의자로, 게다가 환경운동가로 잘 살고 있다.

사람 관계 하나 제대로 맺을 줄 모르는 게  사람 만나는 태도 자체가 너무 무성의한데다

뭐하나 제대로 결단 내릴 줄 모르고, 지 혼자 도도하고 고고하게 살고 싶어하고,

그러면서 남에게는 이래라 저래라 선배 운동가(?하찮아서 내원!)로서 어줍잖게 조언하려 하고

 

매번 열띠게 일하고 활동하는 건 나이고, 활력도 얻지만 그만큼 소진되는 에너지도 커서 지치는 사람도 나다.

 

열이 솟구치겠다. 정말 니가 문제이기 때문에 문제라고 말하는 건데 왜 이게 일방적 비난인가.

대답을 해봐라. 대답해보라고!

 

제발이지 이렇게 나를 정체화하기 싫다. 애써 행복하게 사는 걸 보여주기 위해 거짓으로 내 삶을 포장하는 것도 싫지만, 전형적인 부인 역할을 해주며 남편의 건강과 시가에 사다줄 옷가지와 돈과 안부 전화와 그런 것들을 매번 먼저 챙기는 대상이 되기는 싫다.

 

어떻게 이를 거부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남편처럼 싸가지 없이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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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3 17:03 2011/04/13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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