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만 지나면 일을 곧 그만두게 된다. 벌써부터 출근하는 게 버거워, 날짜를 세고 있다.

사실 불완전한 일상이 계속될테다. 아직 무엇을 할 지 정해놓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심리 상담에 대한 관심과 공부를 해보겠다는 의지 정도는 갖고 있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려니 겁부터 난다. 

어제는 동서가 사준 태교 음악을 듣고 한참을 울었다.  

왜 이렇게 허무한 걸까. 나름 그저 그렇게 보낸 인생의 1막을 쓸쓸히 끝내는 것 같아서인가,

 

아이가 있는 기혼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많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으면서....

무엇을 배워볼까 해도, '기껏 서른밖에 안 된' 주제에 나이탓을 한다.

웹 디자인을 배워볼까도 했다. 편집은 지면이든 웹이든 배우면 잘 할 수 있을 듯 한데...

사촌동생을 보니 그것도 나이순이더라...서른이면 노땅 취급, 에휴.

 

조디 포스터는 아빠가 누구인지 모르게 아이들을 키웠다는데, 그게 가능할까 싶다.

난 지금 아주 많은 부분들을 남편에게 '의존'해야만 한다.

 

결혼을 통해 얻은 것은 독립이었다고 생각했다. 그치만 엄마 곁으로 오면서 다시 부모에게 기생하며 살고 있다.

엄마가 바로 옆 단지 청소 일을 하시는데, 내가 늦잠을 자거나 해서 늦게 나갈 때 마주칠까봐 불안불안하다.

주정뱅이 아빠도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다친 다리의 재활을 위해 추운 날씨 가리지 않고 나가서 운동을 하고,

틈이 날 때마다 엄마를 돕고 있다. 이건 뭐, 갱생에 대한 의지인건가. 

 

일을 해야 삶이 유지된다는 것, 엄마 아빠 모두 그렇게 살아오셨다는 것,

특히나 임노동자의 최후는 부지런해야만 그리고 운 좋게 건강해야만 겨우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 

이제 내 차례 같다.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진다. 

 

곧 엄마가 될 내가 한 아이의 탄생을 바라고 있는 내가, 오늘 다시 소식을 들었다.

스물 한 번째 죽음,

이전에 대우는, 현대는 어땠을까. 이렇게 사회적 타살이 가시화되었나.

 

노트북으로 소식들을 확인하다 문득 남편이 가져다 놓은 구인정보지가 눈에 들어온다. 좀 아리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자유롭게 살기에, 우리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족쇄 하나를 채워버렸다. 지금 그들의 죽음에는, 자신이 가족 성원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그 징글징글한 가족주의도 한 몫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찌 먼 이야기일 수 있으랴.

 

울산에서 자기 활동들을 하느라, 이제는 몸이 무겁단 핑계로

쌍차에 한번도 가보질 못 했다. 임신만 아니었으면 희망텐트도 참여했을텐데....

여하간 이대로 가만히 있는다는 게 억울할 따름이다. 못해도, 죽음만은 막아야 하지 않나.

 

나꼼수에 대한 메모들을 해두었는데 그건 다음에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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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5 00:50 2012/02/15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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