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경제

 

여성주의에 경제학적 관점을 이야기하는 이유.

맑스주의적 여성주의, 혹은 사회주의적 여성주의가 대안이라고 주장하기 위함이 아니다. 고전경제학이 예측하지 못한 빈곤의 문제, 즉 성적, 연령, 학력, 인/종적, 다양한 착취 체제가 경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 설명이 필요한 것, 여성들이 빈곤한 이유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있으려면 ‘페미니즘 경제학’이 필요한 것이다.

 

1. 가족

제도, 이데올로기로 묶여 있는 1차적인 관계가 가족 -> 가족은 혈연관계에 기반한 친족일 뿐인가. 누구에게는 휴식과 사랑이 넘쳐나지만 누구에게는 노동과 지겨움이 넘쳐나는, 여하간 책임질 게 너무나도 많은 공간, 가족은 여성들에게 마찬가지로 자신의 노동력을 소비하는 공간으로써 존재할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가족이란 사회가 요구하는 생산관계의 틀을 결정하며 중요한 관계를 해주고 있는 사적 공간.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가 가족을 필요로 하는 것, 생산양식과 가족의 형태는 맞물려간다. 일면적이기는 하나 여성억압의 근원을 가족제도에서 찾는 것이 핵심.

 

2. 생산과 재생산

생산과 재생산은 분리될 수 없다. 재화의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의 노동력, 이 노동력을 충전시키는 모든 행위, 활동, 제도와 인간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노동-소위 ‘재생산’이라 이름 붙여졌던-도 생산 활동의 일환이다. 하지만 사회는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노동을 구분하며 후자에 종사하는 다수의 사람들을 무급으로 부리면서 무의미한 존재로 만들고 있다. 가족제도가 변화해온 양태를 살펴보면 가부장이 가내 재산을 소유, 통제, 권력 장악했던 시대에서 일하는 사람과 생산수단이 분리되고 임금의 형태가 개인화되면서 노동자 가족으로 넘어오기 시작. 노동력이 다량으로 필요했던 자본의 호황기에는 여성, 남성, 아이들이 다 생산적 노동에 참여하지만 사회는 다시 남성에게 권력을 쥐어준다. 가족과 생산 현장을 분리시키면서 남성을 생산적 노동에 참여하게 하고, 이들의 임금을 높게 책정해주면서 남성 생계부양모델(이성애 핵가족)을 정착시켜 나가기 시작한다. -> 가족임금제 강화

 

3. 자본주의

한국 사회 산업화, 공장 상품 생산 시장에서 화폐로 교환되는 것 생산적인 경제활동, 뿌리깊은 제조업 중심주의, 여성들은 무급으로 남성 노동력을 잘 가꿔 일터로 내보내는 역할을 한다. 시장에서 교환되는 남성 노동력의 생존이야말로 여성들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달려있다. Motherhood ‘모성’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정착된 곳 어디서나 여성의 부지런하고 섬세한 노동-어머니의 무조건적인 노동-에 의존해 사회의 생산은 유지되고 있다. 허나 여성의 노동은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자연적’인 것으로 규정됨으로써 남성에의 종속, 자본의 초과 착취 강화되고 있다. 여성의 노동은 주로 서비스, 공공 영역 등 소위 ‘보살핌 노동’이라는 소비형 서비스업에 집중된다. 성별 분업을 철저하게 하고, 성별 역할(젠더)를 강화하는 자본주의.

 

4. 가부장제

학생, 여성, 다국적 노동자 모두가 생산적 노동에 참여하고 있다면 다자가 평등해야 한다. 헌데 아직도 이들에 대한 차별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특히 여성들에 대한 차별은 명백하게 실존하고 있다. 남성 임금의 절반, 성폭력과 희롱 근절되지 않고 있음, 여성에 대한 살인과 적대 여전함, 가부장제의 뿌리 깊은 관습이 전해져 내려오는 상황. 가부장 문화가 아니라 체제라 부르는 것은 문화처럼 언제든지 수용되고 변화 가능한 것이 아니라, 점점 공고화되는 지배 형태가 되기 때문이다. 지불되지 않는 여성의 노동, 무시되고 있는 여성들의 존엄성, 성적 모멸감과 착취, 전 세계에서 다른 형태와 수위로 반복되며 여성차별은 ‘역사화’되고 있다. 가부장제 사회가 이름만 사라졌다 해서 사라지는가. 가부장제의 완전한 혁파는 무엇을 통해서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

 

5. 대안

 

문제의 핵심은 여성과 남성사이의 생물학적 차이가 아니라 어느 한 쪽의 성을 가진 이들에게 사회적 기회가 없다는 것. 사회적 기회를 달라고 요구해야 하는 문제, 그런 면에서 여전히 여성 운동이 필요하다.

노동에 각종(젠더*섹슈얼리티/장애/연령/학력/외모/계급 등등)위계가 없는 사회, 예컨대 가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가 가사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에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성노동도 마찬가지) 사회가 정착되어야 한다. 이는 개인이 알아서 만들어나가기 힘들다. 전 사회적으로 교육되고, 구조를 만들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체계적으로 조직되어야 하는 문제다. 사회적으로 조직되는 것이 하나의 방식-이것이 사회주의로 이름 붙여진다면 사회주의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고, 다른 이름이 붙여지면 다른 사회가 될 것이다-이라 한다면 교육의 ‘내용’은 여성주의-적녹보라?-정도가 되지 않을까, 획일적인 사회화가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욕구가 존중되는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꾸준한 의식적/실천적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생각할 수 있는 단기적 대안

- 현 사회가 규정짓는 생산과 재생산의 구분을 무화시켜야 한다. 가족임금제를 강화하는 노동조합운동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목소리를(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의 투쟁도 함께 봤으면 좋겠다. 여성노동자는 비춰지지도 않으며, 투쟁의 정당성을 지지하며 싸우는 모습이 먼저가 아니라 남편과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싸우는 모습으로만 비춰지는 가대위의 모습도 안타깝다)냈으면 좋겠다.

- 여성노동자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 만들기(생리휴가 등 각종 제도의 확대), 동일노동 동일임금, 성차별(폭력) 근절, 여성인권에 대한 각종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높여야 한다.

- 나아가 궁극적으로 현행과 같은 가족제도/일부일처제는 폐지되어야 한다. 모두가 자신의 자유로운 섹슈얼리티를 추구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다자가 평등하게 노동하고, 어떤 일을 하든 모두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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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5 11:55 2010/12/15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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