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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서 찍었어요 ㅎ
마치 그림같네요 ^^
정명석목사 잠언

정명석목사 '뇌와 생각'에 관한 잠언


JMS 정명석 총재 사건 모두 무혐의 종결
지성이면 감천,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는 것
지난 1월부터 언론보도에 세간의 주목을 끌었던 JMS(정식 명칭 기독교복음선교회, 이하 선교회) 정명석 총재 사건이 10월 말에 일단락됐다. 일부 탈퇴자들이 정 총재 측에 대해 고소·고발·진정한 사건들이 검경수사에서 모두 무혐의로 종결된 것이다. 이로써 정 충재에 대한 혐의는 모두 벗겨졌고, 그동안 사실 확인 없이 오보를 쏟아내던 일부 언론사들은 비판을 일삼아왔기에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 과거 정 총재 판결에 대해서도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정 총재는 2009년에 같은 혐의로 10년형을 받고 수감 중이기 때문이다. <정경뉴스>가 지난 6월호에 “진실의 판명은 하나님의 심판에 맡기고 십자가의 길을 갈 뿐”이란 정 총재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후 정총재 사건이 무혐의로 종결된 것에 대해 사건 전말을 다시 짚어봤다.
누가 피해자인가?
과거와 현재 정 총재 사건에는 세 가지 유사점이 있다. 첫째 인터넷과 언론에 의해 먼저 폭로되어 여론화된다. 둘째, 증거 없는 고소가 이어진다. 셋째, 탈퇴자들을 선동해 정 총재를 공격하며 돈을 요구하는 반JMS조직이 있다.
작년 11월부터 JMS피해대책협의회 등 반JMS 조직들은 집단피해보상을 요구하며 옥중에 있는 정명석 총재를 성범죄, 테러교사 등의 죄목으로 공격해왔다. 언론과 인터넷에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해 폭로를 계속했다, 고소·고발·진정이 이어졌다. 증거는 없었다. 그러나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들은 진위 여부를 떠나 네티즌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일파만파로 번질 기세였다.
이미 성범죄자로 낙인 찍혀 옥살이를 하고 있는 정 총재에겐 더없이 불리한 싸움이었다. 그러나 선교회 측의 적극적으로 대응으로 시의적절 하게 언론의 정정·반론보도를 받아냈고 산불은 번지기 직전에 진화됐다. 작년 6월부터 진행된 10여건의 수사는 10월을 끝으로 모두 무혐의로 종결됐다. 정총재에게 피해를 입었다는 반JMS 조직의 주장은 힘을 잃고 내부분열로 뿔뿔이 흩어졌다.

▲ 건물이 없어 자연성전으로 불리는 월명동 산골짜기에서 인터넷 생중계로 세계 50개국에 방영되는 선교회 예배 장면
과거에도 비슷한 상황이 전개됐다. 그러나 지금과는 결과가 정반대였다. 10년에 걸쳐 언론과 인터넷 등에 의해 형성된 여론으로 이미 정 총재는 범죄자로 인신된 가운데 2008년 2월 여성 5명의 고소로 법정싸움이 전개됐다. 당시선교회는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다. 역시 증거가 없었다. 그중 한 명의 여성은 양심선언을 하고 고소를 취하하기도 했다. 정 총재는 결국 여성 4명에 대한 성폭행, 성추행 등의 죄목으로 10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수차에 걸쳐 JMS사건을 사회문제로 부각시킨 방송보도는 법원에서 화해권고결정(2005년)과 손해배상판결(2010년)을 받은 바 있다. 이 판결에 따라 선교회는 9000만원을 배상받았다. 화해권고결정문에서 인용한바 방송에 의해 왜곡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방송은 ‘정 총재가 성적 문제가 있는 지도자’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1995년 주일예배 ‘감사하는 생활’이라는 전 총재의 설교내용 중 생명의 십일조를 뜻하는 ‘열의 하나 전도해’를 무슨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도록 음성변조하고 ‘여자 하나 전도해’ 라고 자막을 넣어 방영했다.
둘째, 일반적으로 남녀가 따로 활동하는 선교회의 행사 장면을 여성들만 화면에 보이도록 편집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마치 정 총재가 여성들만 상대하는 듯한 느낌을 주도록 방영했다.
셋째, 정 총재를 교주로 신봉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선교회 회원들 간에 쓰던 애칭인 Jesus Morning Star(예수님의 새벽별)의 이니셜인 JMS를 정 총재의 영문이름 이니셜이며 선교회의 공식명칭인 듯이 방영했다. 그러나 실제 선교회는 JMS라는 명칭을 한 번도 공식적으로 사용한 적이 없었다.
넷째, 선교회의 월명동수련원이 외부와 단절된 폐쇄적인 공간으로서 밀교의식이나 성추행 등이 일어나는 은밀한 장소인 것처럼 묘사했다. 그러나 실제 월명동수련원은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 있고 지역 주민들, 인접한 대둔산 등산객들, 외국인 관광객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곳이었다.
다섯째, 정 총재가 해외에서도 성추행을 일삼았다는 내용을 방송하면서 내만 검찰과의 인터뷰 내용을 조작했다. 방송에서는 인터뷰 내용을 “지금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일부 피해자의 진술을 확보한 상태입니다...”라고 번역했는데, 대만 검찰은 ‘피해자’ 라는 표현을 쓴 적이 없었다.
대만 검찰은 ‘상관인사’ 즉, 관련자라는 표현을 썼는데 방송은 한국어로 ‘피해자’라고 번역함으로써 대만에서의 성추행 의혹이 사실로 규명된 것처럼 호도했다. 그러나 대만 사건은 후에 무혐의로 밝혀졌고 대만 언론에 허위사실을 퍼뜨린 제보자는 신문에 사과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반JMS 조직의 주동자 김도훈(가명), 김형수(가명)등의 제보내용에 기초한 이 같은 왜곡편파보도에 대한 법원의 결정은 “김도훈, 김형수의 제보내용을 보도하지 말 것, 선교회에 대한 방송을 보도할 경우 48시간 전 고지할 것, 방송분의 5%를 반론 보도로서 보장할 것, 이를 어길 시 건당 3000만원을 배상할 것” 등 이었다.
그러나 이 결정내용은 세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왜곡된 언론보도와 증거 없는 판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언론 일각의 재심요구가 뒤늦게 있었으나 여론화되지는 못했다. 언론은 여성들의 배후에 반JMS 조직이 있음을 폭로하고 이들이 정 총재에게 돈을 요구한 편지들을 공개하기도 했다.

▲ 작년 6월부터 올해 10월까지 정 총재에 대해 진행한 10여 건의 수사를 모두 무혐의로 종결한 검경 통보자료

▲ 1999년부터 10년에 걸쳐 해외 각지에서 있었던 정 총재에 대한 성추문은 사실상 모두 해프닝으로 끝났다. 대만의 경우 허위사실을 퍼뜨린 제보자가 벌금형을 받고 신문에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 JMS사건을 사회문제로 부각시킨 방송보도는 법원의 화해권고결정(2005년 8월 2일)과 손해배상판결(2010년 5월 26일)을 받았다.
수치심을 느끼면 성추행? 억울하게 옥살이 하는 죄 없는 남성들
형사재판에서 증거재판주의에 반하는 판결이 내려지는 경우는 성범죄 사건에서 비일비재하다. 성범죄는 특성상 범죄사실을 입증할 만한 증거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대부분 피해 여성들의 진술에 근거한 정황증거에 의해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다. 결백을 입증할 만한 뚜렷한 증거가 없는 한 피고인인 남성이 불리한 재판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연예인 매니지먼트사 사장이었던 김광복(가명) 씨는 2008년, 소속 여성 연예인 5명의 집단 고소로 구속돼 재판을 받았다. 재판에는 1년의 기간이 소요됐다. 4명에 대해서는 알리바이가 입증돼 혐의를 벗었으나 미성년자 1명에 대한 성추행 혐의가 인정돼 결국 1년형을 받았다. 증거는 없었다. 김 씨는 성형을 해야 할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가슴 언저리를 손으로 약간 눌러 보았을 뿐이었다고 억울해했다. 자기가 성범죄자라면 이 나라 모든 매니저들이 성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법은 이런 경우에도 여성의 수치심을 느꼈다면 성추행으로 인정한다. 자신의 결백을 입증할 방법이 없었던 김 씨는 결국 1년형을 받았다고 한다. 계속 결백을 주장하면 괘씸죄에 걸려 형량이 가중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구치소에는 김 씨처럼 억울하게 갇혀 있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었다고 한다.
김 씨가 1년 만에 구치소에서 나와 보니 자기가 있던 사장 자리에 부사장이던 후배가 앉아있었다. 사장자리를 뺏기 위해 후배가 여자 다섯 명을 배후에 조종한 것임이 드러났다. 결국 목적은 돈이었다.
조작된 증거와 증인들을 내세운 재판으로 미성년자 성폭력 및 살인범으로 몰려 15년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나온 정원섭 씨의 실화는 꽤 알려져 있다. 정 씨는 1972년 9월27일 춘천경찰서 역전파출소장의 딸을 논둑에서 성폭행하고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언론에 보도된 이 사건은 전국 4대 강력사건으로 규정돼 시한부 검거령이 내려졌을 정도로 파장이 컸다.
경찰은 검거시한 마지막 날인 1972년 10월10일 정씨를 범인으로 발표했다. 급조한 범인이었다. 정 씨는 1987년 12월24일 모범수로 가석방된 이후 재심을 청구했다. 2011년 10월 27일 대법원에서 정 씨는 살인범이라는 낙인이 찍힌 지 39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그러나 잃어버린 세월에 대한 보상은 아직 다 받지 못했다. 80세가 된 정 씨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준비 중이다.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한번 형이 확정된 재판에 대해 재심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시국사건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국민의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사법부의 권위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보다는 법관이 신이 아닌 이상 오판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여론의 힘을 얻고 있다.
증거재판주의에 의하면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 그러나 이 증거의 증명력은 자유심증주의에 따라 법관의 자유판단에 달려있다.
문제는 언론과 여론이 사법부의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법관 출신 k 변호사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사법부 재직 시 솔직히 언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10년형 판결 “비상식적이다”
정 총재에 대한 판결이 언론의 오보가 부채질한 여론에 의해 사회적으로는 이미 범죄자로 낙인 찍힌 상태에서 이루어졌다면 철저하게 여론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판결이 내려졌는지 재고해보아야 한다. 백 명의 도둑을 놓쳐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아야한다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상기해볼 때 정 총재의 판결에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 있다.
특히 2006년 4월3일 중국 안산에서 두 명의 여성이 성폭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한 사건에 대해 4월5일 중국 안산시 중심병원 진단 결과는 “화험 검가 결과 정액이 없다. 정상이다. 강간당한 흔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 중국 공안 통역도 “중국 병원 의사로부터 김모 양이 처녀막에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4월 8일 한국 경찰병원의 진단 결과 또한 “처녀막에 전혀 손상이 없고, 어떠한 형태로도 성폭행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정액검사 결과 역시 음성반응이었다.
그러나 4월10일 고소인 중 김모 양은 다시금 경찰병원에서 진료를 받았고, 처음과 달리 미세한 열상이 있는 것으로 진단됐다. 이 열상은 고소인이 주장하는 심각한 파열상이 아니라 “자전거 타기로도 발생할 수 있는 상처” 라고 당시 진료담당 의사는 진술했다. 이 열상은 범죄수사를 위한 정상적인 경찰병원의 진료절차와 달리 환부에 대한 사진촬영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고소인들은 4월18일 기자회견에서 “심한 성폭행을 당해 걷기가 힘들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어 하혈을 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사건 현장에서 있었던 당시 CCTV 판독 결과 이 두 여성은 미소를 짓고 있었으며 걸음걸이 또한 전혀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피고인의 변호인은 이런 여러 정황상 고소인이 자해를 했다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07년 5월 중국 공안에게 부녀자 성폭행 혐의로 체포됐다고 알려진 정 총재가 2008년 2월 무사히 한국에 송환된 것도 미심쩍은 대목이다. 중국에서 강간범은 마약범과 대등하게 취급해 국적을 가리지 않고 엄히 처벌한다고 알려져 있다, 중국 수사기관에서 정 총재가 강간범이라는 혐의가 있었다면 순순히 한국으로 보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그러나 정 총재에 대한 판결에서 핵심적인 쟁점이던 중국에서의 수사 자료는 아쉽게도 한국법정에 제출되지 못한 채 종결됐다.

▲ 정명석 총재가 각처에서 모여든 수많은 군중 속에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설교하고 있다.
주동행
정명석
청천벼락을
맞았는데도
나에게
한가닥
실과같은
길이있다
그길로
나를
구한주님
가면서
이길만도
충분하다
자가용도
자전거도
타고가지
않았는데
넓은길이
필요있냐
너와나만
가면
되지않냐
다른사람
이길
올수없고
마음조차
생각지도
아니한다
가다보면
소롯길이
나올게다
그러다가
넓은길이
나오면은
기다리는자
모두만나
어떻게나
오셨냐고
표적이다
하리로다

예술가의 작품에는 그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정 총재가 옥중에서 쓴 시들은 고통과 인내의 연단 속에서만 얻을 수 있는 인생 심연의 진리를 드러내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정명석 총재는 1989년 시집<영감의 시>로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후, 1995년 문예사조를 통해 등단해 한국 시문학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작년 3월 발간된 <한국 시 대사전>에는 한국 時史 100년(1908~2010년>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정 총재의 시 10편이 수록됐다.
입으로 할 수 없다면 손이 닳도록 글로써 복음을 전하겠다는 정 총재의 집필활동은 옥중에서도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4년 9개월 간 옥중에서 기록한 정 총재의 설교와 묵상, 시는 수천 편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NEWS경남]
기독교복음선교회 정명석 총재, ‘회화 작품’ 전시회 열려

▲ 왼쪽상단작품: 2011년 국제 아트페어전에서 대표작으로 선정돼 세계인의 찬사를 받은 <운명>. 강자 앞에 약자의 운명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이 그림의 모든 선을 보면 베토벤의 ‘운명’ 곡이 그대로 나타나 보이기도 한다. 위는 강하게, 밑에는 슬픔으로 약하게 그렸다. 오른쪽작품: 야자수 작품. 이질적인 것을 화해시키려는 작가의 의지는 붓글씨를 회화의 한 요소로 끌어들이게 된다. 왼쪽 하단 작품: 기교의 조합이나 군더더기 장식을 절제한 소나무 작품들, 작가의 사상이 담긴 시편을 그림에 곁들이기도 했다.
삶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삶이 되며 신과의 교감을 통해 창조된 예술작품의 세계는 과연 어떻게 펼쳐질까. 종교가로서 예술을 흡수해 형식과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롭고, 독특한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작가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작가는 기독교복음선교회 정명석 총재. 그의 회화 작품 전시회가 충남 금산군 월명동 구상미술관에서 지난 2월 21일부터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정명석 총재가 그동안 주로 그린 야자수와 기암절벽, 소나무 작품 외에 다수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성자 예수를 알아야 예술도 할 수 있고, 삶도 온전한 작품으로 만들 수 있다.”라는 작가의 예술관을 담아, 그의 작품에는 이러한 철학이 배어 있으며 진리를 체득함으로써 누리게 된 자유로움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작품은 2011년 국제 아트 페어전에서 대표작으로 선정돼 세계인의 찬사를 받은 <운명>이다. 강자 앞에 약자의 운명을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인데 작가는 “성자 예수의 구상을 받았으며 영감으로 주님이 보여 주셔서 순간 숨도 안 쉬고, 그렸다.”라고 밝혔다.
작품 <운명>을 보면 죽음의 벼랑에 있는 이 달팽이는 황새가 제일 맛있게 먹는 밥이다. 아무도 이 달팽이가 산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황새도 역시 물론이다. “넌 내 밥이다. 콕 찍으면 끝난다.”했다. 그러나 달팽이만 “나는 산다.”하고 죽음에 굴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죽음을 피해 가고 있다. 달팽이는 아무리 빨리 가도 황새 앞에는 초침 앞의 시침의 속력이다. 하늘에 운명을 맡기고 사는 자를 그린 것이라고 한다.
생명은 제 맘대로 못하고 운명은 천명(天命)임을 알리는 뜻이 차고 넘치는 그림이다. 포기하면 죽는다. 패한다. 의식 말고 끝까지 행해야 한다는 것을 형상화했다. 이 그림의 모든 선을 보면 베토벤의 ‘운명’ 곡이 그대로 나타나 보이기도 한다. 위는 강하게, 밑에는 슬픔으로 약하게 그렸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산과 바다, 해와 새, 나무와 바위 등 흔히 자연경관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지만, 그 소재가 화폭 위에 형상화된 모습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이는 그가 제도적인 교육이나 육체에 국한된 감각 체험이나 외적 질료에 매이지 않고, 신과의 교감을 통해 자유롭게 연상하기 때문이다. 또한 시각 너머의 본질적인 형상을 포착하려는 부단한 도전의 산물로 이해된다. 곧 신과 맞닿은 고도의 정신을 표상한 것이다.
그는 특정모델의 복제를 뛰어 넘어 작가 자신만의 새로운 예술 공간을 자유롭게 창조해 나간 작가다. 그러나 그 자유로움에는 흐트러짐이 없다. 인간의 무지와 착오로 일그러진 세상이나 미완성된 인간을 묘사하기보다, 창조주가 지휘하는 이상세계와 진리 안에서의 자유로움을 이미지로 조형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Hegel, Georg Wilhelm Friedrich)은 이에 관해 “유한한 인간의 최대 관심사인 ‘신(神)적인 것’을 총체적 진리로 의식하게 하고, 그것을 감각적으로 느끼게 하는 예술이 예술로서의 최고 과제를 수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과 인간의 거리 지우고, ‘조화’라는 완전미 실현한 그의 대작들 만날 수 있어, 그의 작품에서 존재물에 대한 사실주의적 복제는 찾아보기 힘들다. 각 사물에 역동적인 생명력을 불어넣어 어떤 대상을 암시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하나의 지시대상에만 종속되지 않도록 독립적인 영역을 확보한다. 얼굴을 조형한 작품만 보더라도 단순한 선이 만들어 낸 인간의 형상 안에 공의로운 신의 자태가 엿보이는가 하면 인자한 예수와 패기 있는 독수리가 오버랩이 되어 보이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베냐민이 언급한 ‘예술의 아우라’를 발견할 수 있다.
소나무 작품들 역시, 기교의 조합이나 군더더기 장식을 절제하고 ‘용틀임하는 소나무’, ‘우람한 풍채의 소나무’, ‘암벽에 뿌리박고 서 있는 소나무’, ‘산 정상에 앉아 있는 소나무’ 등 독특한 조형들을 선보인다.
또한 바닷물과 바닷바람 속에서도 건재하여 풍치와 열매를 자랑하는 야자수의 다채로운 형상들, 먹이사슬에서 약자인 달팽이가 강자인 황새에 맞서는 구도 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작품들에는 작가가 겪은 삶의 우여곡절이, 완성미를 향한 몸부림의 숨결이, 승리의 함성이, 인생의 지침과 함께 고스란히 녹아 있다.
한편, 바다를 둘러싼 기암절벽, 그 위에 뿌리내린 상록수, 하늘을 나는 갈매기, 떠오르는 붉은 태양, 배를 타고 질주하는 사람들을 한 폭에 담아낸 일련의 수묵담채화들은 산과 바다,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의 거리를 지우고 그야말로 ‘조화’라는 완전미를 실현한 그의 대작들이다.
이러한 작품들에는 역사의 시대적 흐름과 인간의 삶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무수한 시간들이 내재돼 있다. 또한 일필휘지로 그린 선의 굴곡이 약동하는 자연의 리듬감을 살려 내어 회화 안에 음악성을 더했으며 이는 생동감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낸다.
게다가 이질적인 것을 화해시키려는 그의 의지는 붓글씨를 회화의 한 요소로 끌어들이게 되는데, 작가의 사인(Sign)으로 대상을 형상화하거나 작가의 사상이 담긴 시편을 곁들인 그림들이 그러하다. 과감하게 장르의 벽을 허물고, 미적 화합을 꾀하는 실험 정신은 예술의 우위를 점하는 작품들을 남기게 했다.
이처럼 신의 웅장한 창조 세계를 대상으로 삼고, 영적인 심미안으로 통찰해 신비롭고 아름답게 표현한 그의 작품은 무엇보다 영혼을 울리는 힘이 있다. 신을 대면하게 하고, 존재 탐색의 길을 열어 영원한 생명을 획득하도록 이끄니, 보는 이들은 그 가르침에 공명(共鳴)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종교가로서 예술을 흡수했다. 삶을 책임지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며 예술의 경지에 오르도록 삶을 살아낸다는 것은 대단히 가치 있고, 아름다운 일이다.
그의 예술세계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라는 성서의 구절로 관통된다. 신과의 교감, 신과 맞닿은 고도의 정신을 표상한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종교와 예술의 진정한 합일을 통해 이뤄 낸 최고의 예술을 목도하게 되리라 기대해 본다.
한편, 이번 전시회는 작가의 회화 작품세계와 그 변화 과정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소나무 작품의 경우, 그가 환경과 여건이 되지 않는 가운데도 어려움을 극복하고 예술혼을 불태워 완성했다고 한다. 또, 기암절벽 작품에서는 계속 연구하면서 새롭게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루 전에 단체로 사전 예약을 하면 미술관 직원의 상세한 작품설명과 함께, 안내를 받으며 관람할 수 있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관람할 수 있고, 수요일은 휴관한다.
정명석 총재는 그동안 국내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 독일, 아르헨티나 등에서 그림과 서예 작품 다수를 전시하면서 예술 활동을 활발하게 펼쳐 왔다. 그는 1995년 월간 <문예사조>를 통해 등단해 시인으로도 활동해 왔으며 지난해 7월에 발간된 시집『시의 여인』과 『시로 말한다』는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한국 시문학 100년사를 총망라한 <한국 시 대사전>(2011)에 시 10편이 등재되어 있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는 <구원의 말씀>, 설교집 <생명의 말씀>, 잠언집 <하늘말 내말>이 있다. 50여 년간 성경 연구를 지속해 오면서 현재 기독교복음선교회 총회장으로, 국제문화예술평화협회 총재를 역임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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