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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S 정명석 총재 사건 모두 무혐의 종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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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S 정명석 총재 사건 모두 무혐의 종결

지성이면 감천,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는 것

 

지난 1월부터 언론보도에 세간의 주목을 끌었던 JMS(정식 명칭 기독교복음선교회, 이하 선교회) 정명석 총재 사건이 10월 말에 일단락됐다. 일부 탈퇴자들이 정 총재 측에 대해 고소·고발·진정한 사건들이 검경수사에서 모두 무혐의로 종결된 것이다. 이로써 정 충재에 대한 혐의는 모두 벗겨졌고, 그동안 사실 확인 없이 오보를 쏟아내던 일부 언론사들은 비판을 일삼아왔기에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 과거 정 총재 판결에 대해서도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정 총재는 2009년에 같은 혐의로 10년형을 받고 수감 중이기 때문이다. <정경뉴스>가 지난 6월호에 “진실의 판명은 하나님의 심판에 맡기고 십자가의 길을 갈 뿐”이란 정 총재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후 정총재 사건이 무혐의로 종결된 것에 대해 사건 전말을 다시 짚어봤다.

 

 

 

 

누가 피해자인가?

 

과거와 현재 정 총재 사건에는 세 가지 유사점이 있다. 첫째 인터넷과 언론에 의해 먼저 폭로되어 여론화된다. 둘째, 증거 없는 고소가 이어진다. 셋째, 탈퇴자들을 선동해 정 총재를 공격하며 돈을 요구하는 반JMS조직이 있다.

 

작년 11월부터 JMS피해대책협의회 등 반JMS 조직들은 집단피해보상을 요구하며 옥중에 있는 정명석 총재를 성범죄, 테러교사 등의 죄목으로 공격해왔다. 언론과 인터넷에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해 폭로를 계속했다, 고소·고발·진정이 이어졌다. 증거는 없었다. 그러나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들은 진위 여부를 떠나 네티즌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일파만파로 번질 기세였다.

 

이미 성범죄자로 낙인 찍혀 옥살이를 하고 있는 정 총재에겐 더없이 불리한 싸움이었다. 그러나 선교회 측의 적극적으로 대응으로 시의적절 하게 언론의 정정·반론보도를 받아냈고 산불은 번지기 직전에 진화됐다. 작년 6월부터 진행된 10여건의 수사는 10월을 끝으로 모두 무혐의로 종결됐다. 정총재에게 피해를 입었다는 반JMS 조직의 주장은 힘을 잃고 내부분열로 뿔뿔이 흩어졌다.

 

▲ 건물이 없어 자연성전으로 불리는 월명동 산골짜기에서 인터넷 생중계로 세계 50개국에 방영되는 선교회 예배 장면

 

 

과거에도 비슷한 상황이 전개됐다. 그러나 지금과는 결과가 정반대였다. 10년에 걸쳐 언론과 인터넷 등에 의해 형성된 여론으로 이미 정 총재는 범죄자로 인신된 가운데 2008년 2월 여성 5명의 고소로 법정싸움이 전개됐다. 당시선교회는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다. 역시 증거가 없었다. 그중 한 명의 여성은 양심선언을 하고 고소를 취하하기도 했다. 정 총재는 결국 여성 4명에 대한 성폭행, 성추행 등의 죄목으로 10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수차에 걸쳐 JMS사건을 사회문제로 부각시킨 방송보도는 법원에서 화해권고결정(2005년)과 손해배상판결(2010년)을 받은 바 있다. 이 판결에 따라 선교회는 9000만원을 배상받았다. 화해권고결정문에서 인용한바 방송에 의해 왜곡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방송은 ‘정 총재가 성적 문제가 있는 지도자’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1995년 주일예배 ‘감사하는 생활’이라는 전 총재의 설교내용 중 생명의 십일조를 뜻하는 ‘열의 하나 전도해’를 무슨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도록 음성변조하고 ‘여자 하나 전도해’ 라고 자막을 넣어 방영했다.

 

둘째, 일반적으로 남녀가 따로 활동하는 선교회의 행사 장면을 여성들만 화면에 보이도록 편집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마치 정 총재가 여성들만 상대하는 듯한 느낌을 주도록 방영했다.

 

셋째, 정 총재를 교주로 신봉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선교회 회원들 간에 쓰던 애칭인 Jesus Morning Star(예수님의 새벽별)의 이니셜인 JMS를 정 총재의 영문이름 이니셜이며 선교회의 공식명칭인 듯이 방영했다. 그러나 실제 선교회는 JMS라는 명칭을 한 번도 공식적으로 사용한 적이 없었다.

 

넷째, 선교회의 월명동수련원이 외부와 단절된 폐쇄적인 공간으로서 밀교의식이나 성추행 등이 일어나는 은밀한 장소인 것처럼 묘사했다. 그러나 실제 월명동수련원은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 있고 지역 주민들, 인접한 대둔산 등산객들, 외국인 관광객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곳이었다.

 

다섯째, 정 총재가 해외에서도 성추행을 일삼았다는 내용을 방송하면서 내만 검찰과의 인터뷰 내용을 조작했다. 방송에서는 인터뷰 내용을 “지금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일부 피해자의 진술을 확보한 상태입니다...”라고 번역했는데, 대만 검찰은 ‘피해자’ 라는 표현을 쓴 적이 없었다.

 

대만 검찰은 ‘상관인사’ 즉, 관련자라는 표현을 썼는데 방송은 한국어로 ‘피해자’라고 번역함으로써 대만에서의 성추행 의혹이 사실로 규명된 것처럼 호도했다. 그러나 대만 사건은 후에 무혐의로 밝혀졌고 대만 언론에 허위사실을 퍼뜨린 제보자는 신문에 사과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반JMS 조직의 주동자 김도훈(가명), 김형수(가명)등의 제보내용에 기초한 이 같은 왜곡편파보도에 대한 법원의 결정은 “김도훈, 김형수의 제보내용을 보도하지 말 것, 선교회에 대한 방송을 보도할 경우 48시간 전 고지할 것, 방송분의 5%를 반론 보도로서 보장할 것, 이를 어길 시 건당 3000만원을 배상할 것” 등 이었다.

 

그러나 이 결정내용은 세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왜곡된 언론보도와 증거 없는 판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언론 일각의 재심요구가 뒤늦게 있었으나 여론화되지는 못했다. 언론은 여성들의 배후에 반JMS 조직이 있음을 폭로하고 이들이 정 총재에게 돈을 요구한 편지들을 공개하기도 했다.

 

▲ 작년 6월부터 올해 10월까지 정 총재에 대해 진행한 10여 건의 수사를 모두 무혐의로 종결한 검경 통보자료

 

 

 

▲ 1999년부터 10년에 걸쳐 해외 각지에서 있었던 정 총재에 대한 성추문은 사실상 모두 해프닝으로 끝났다. 대만의 경우 허위사실을 퍼뜨린 제보자가 벌금형을 받고 신문에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 JMS사건을 사회문제로 부각시킨 방송보도는 법원의 화해권고결정(2005년 8월 2일)과 손해배상판결(2010년 5월 26일)을 받았다.

 

 

수치심을 느끼면 성추행? 억울하게 옥살이 하는 죄 없는 남성들

형사재판에서 증거재판주의에 반하는 판결이 내려지는 경우는 성범죄 사건에서 비일비재하다. 성범죄는 특성상 범죄사실을 입증할 만한 증거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대부분 피해 여성들의 진술에 근거한 정황증거에 의해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다. 결백을 입증할 만한 뚜렷한 증거가 없는 한 피고인인 남성이 불리한 재판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연예인 매니지먼트사 사장이었던 김광복(가명) 씨는 2008년, 소속 여성 연예인 5명의 집단 고소로 구속돼 재판을 받았다. 재판에는 1년의 기간이 소요됐다. 4명에 대해서는 알리바이가 입증돼 혐의를 벗었으나 미성년자 1명에 대한 성추행 혐의가 인정돼 결국 1년형을 받았다. 증거는 없었다. 김 씨는 성형을 해야 할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가슴 언저리를 손으로 약간 눌러 보았을 뿐이었다고 억울해했다. 자기가 성범죄자라면 이 나라 모든 매니저들이 성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법은 이런 경우에도 여성의 수치심을 느꼈다면 성추행으로 인정한다. 자신의 결백을 입증할 방법이 없었던 김 씨는 결국 1년형을 받았다고 한다. 계속 결백을 주장하면 괘씸죄에 걸려 형량이 가중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구치소에는 김 씨처럼 억울하게 갇혀 있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었다고 한다.

 

김 씨가 1년 만에 구치소에서 나와 보니 자기가 있던 사장 자리에 부사장이던 후배가 앉아있었다. 사장자리를 뺏기 위해 후배가 여자 다섯 명을 배후에 조종한 것임이 드러났다. 결국 목적은 돈이었다.

 

조작된 증거와 증인들을 내세운 재판으로 미성년자 성폭력 및 살인범으로 몰려 15년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나온 정원섭 씨의 실화는 꽤 알려져 있다. 정 씨는 1972년 9월27일 춘천경찰서 역전파출소장의 딸을 논둑에서 성폭행하고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언론에 보도된 이 사건은 전국 4대 강력사건으로 규정돼 시한부 검거령이 내려졌을 정도로 파장이 컸다.

 

경찰은 검거시한 마지막 날인 1972년 10월10일 정씨를 범인으로 발표했다. 급조한 범인이었다. 정 씨는 1987년 12월24일 모범수로 가석방된 이후 재심을 청구했다. 2011년 10월 27일 대법원에서 정 씨는 살인범이라는 낙인이 찍힌 지 39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그러나 잃어버린 세월에 대한 보상은 아직 다 받지 못했다. 80세가 된 정 씨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준비 중이다.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한번 형이 확정된 재판에 대해 재심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시국사건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국민의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사법부의 권위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보다는 법관이 신이 아닌 이상 오판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여론의 힘을 얻고 있다.

 

증거재판주의에 의하면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 그러나 이 증거의 증명력은 자유심증주의에 따라 법관의 자유판단에 달려있다.

 

문제는 언론과 여론이 사법부의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법관 출신 k 변호사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사법부 재직 시 솔직히 언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10년형 판결 “비상식적이다”

정 총재에 대한 판결이 언론의 오보가 부채질한 여론에 의해 사회적으로는 이미 범죄자로 낙인 찍힌 상태에서 이루어졌다면 철저하게 여론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판결이 내려졌는지 재고해보아야 한다. 백 명의 도둑을 놓쳐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아야한다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상기해볼 때 정 총재의 판결에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 있다.

 

특히 2006년 4월3일 중국 안산에서 두 명의 여성이 성폭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한 사건에 대해 4월5일 중국 안산시 중심병원 진단 결과는 “화험 검가 결과 정액이 없다. 정상이다. 강간당한 흔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 중국 공안 통역도 “중국 병원 의사로부터 김모 양이 처녀막에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4월 8일 한국 경찰병원의 진단 결과 또한 “처녀막에 전혀 손상이 없고, 어떠한 형태로도 성폭행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정액검사 결과 역시 음성반응이었다.

그러나 4월10일 고소인 중 김모 양은 다시금 경찰병원에서 진료를 받았고, 처음과 달리 미세한 열상이 있는 것으로 진단됐다. 이 열상은 고소인이 주장하는 심각한 파열상이 아니라 “자전거 타기로도 발생할 수 있는 상처” 라고 당시 진료담당 의사는 진술했다. 이 열상은 범죄수사를 위한 정상적인 경찰병원의 진료절차와 달리 환부에 대한 사진촬영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고소인들은 4월18일 기자회견에서 “심한 성폭행을 당해 걷기가 힘들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어 하혈을 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사건 현장에서 있었던 당시 CCTV 판독 결과 이 두 여성은 미소를 짓고 있었으며 걸음걸이 또한 전혀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피고인의 변호인은 이런 여러 정황상 고소인이 자해를 했다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07년 5월 중국 공안에게 부녀자 성폭행 혐의로 체포됐다고 알려진 정 총재가 2008년 2월 무사히 한국에 송환된 것도 미심쩍은 대목이다. 중국에서 강간범은 마약범과 대등하게 취급해 국적을 가리지 않고 엄히 처벌한다고 알려져 있다, 중국 수사기관에서 정 총재가 강간범이라는 혐의가 있었다면 순순히 한국으로 보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그러나 정 총재에 대한 판결에서 핵심적인 쟁점이던 중국에서의 수사 자료는 아쉽게도 한국법정에 제출되지 못한 채 종결됐다.

 

▲ 정명석 총재가 각처에서 모여든 수많은 군중 속에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설교하고 있다.

 

 

주동행

 

정명석

 

청천벼락을

맞았는데도

나에게

한가닥

실과같은

길이있다

그길로

나를

구한주님

가면서

이길만도

충분하다

자가용도

자전거도

타고가지

않았는데

넓은길이

필요있냐

너와나만

가면

되지않냐

다른사람

이길

올수없고

마음조차

생각지도

아니한다

가다보면

소롯길이

나올게다

그러다가

넓은길이

나오면은

기다리는자

모두만나

어떻게나

오셨냐고

표적이다

하리로다

 

 

 

예술가의 작품에는 그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정 총재가 옥중에서 쓴 시들은 고통과 인내의 연단 속에서만 얻을 수 있는 인생 심연의 진리를 드러내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정명석 총재는 1989년 시집<영감의 시>로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후, 1995년 문예사조를 통해 등단해 한국 시문학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작년 3월 발간된 <한국 시 대사전>에는 한국 時史 100년(1908~2010년>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정 총재의 시 10편이 수록됐다.

 

입으로 할 수 없다면 손이 닳도록 글로써 복음을 전하겠다는 정 총재의 집필활동은 옥중에서도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4년 9개월 간 옥중에서 기록한 정 총재의 설교와 묵상, 시는 수천 편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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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총재 설교 영상 / jms 영상 - "하나님을 중심하는 신앙"

 

<정명석총재 설교 영상  / jms 영상>

 

"하나님을 중심하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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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 총재에 관한 언론 오보와 진실

 
 
정명석 총재에 관한 언론 오보와 진실
 
조은소식
 
 
"장님 코끼리 만지기(맹인모상(盲人摸象))"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분을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오류를 지적한 말입니다.
 
현대 사회는 그 착오를 극복하고자 비교적 다수의 의견을 종합한 통계(statistical reasoning) 방식을 사용합니다만 그 역시 진실을 비추기에 한계가 없진 않습니다.
 
더욱이 현대 사회는 소수 언론인이 여론의 판단을 유도함으로써 자칫 언론에 의해 다수의 의견도 조장될 수 있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정명석 총재의 경우가 그런 예라 할 수 있겠습니다. 더욱 강하게 말한다면 중세의 "마녀사냥"과 미국의 "매커시즘(mccarthyism)"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기독교복음선교회는 이 기회를 통해 약 9년 동안 정 총재를 비도덕적인 종교인으로 소개한 언론의 잘못된 보도내용을 바로 잡고, 더 이상 언론의 오보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내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언론이 보여준 모습은 정명석 총재의 참 모습을 나타내기는커녕 선교회를 음해하려는 특정 집단의 잘못된 정보만을 받아들여 왜곡된 사실을 서슴지 않고 보도하는 자세로 일관해온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언론이 다양한 정보에 대한 접근력이 뛰어나다는 점과 비교적 사회의 지식인층이라는 점을 악용해 여론을 잘못 이끈다면, 부분만을 보고 마치 코끼리의 전체 모습이라고 국민에게 강요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정명석 총재와 관련한 일부 언론의 왜곡 보도를 안타깝게 생각하며 기독교복음선교회는 이제부터라도 각 언론사가 균형 잡힌 보도에 충실해 줄 것을 바라는 마음으로 정 총재의 진실을 밝히고자 합니다.


1. 일부 언론사의 왜곡보도 사실
- 서울 모 방송 보도를 중심으로

정명석 총재가 처음으로 이 사회에 소개된 것은 1999년 초입니다.
 
당시 서울 모 방송의 시사고발 "K"프로그램은 정 총재에 대해 성추행자, 성도들에 대한 경제적 착취자, 말세론적 종교관념자, 통일교 아류자 등 종교인으로서는 매우 수치스런 모습으로 소개했습니다.
 
그 후 정명석 총재의 세계 선교 활동으로 인해 서울 모 방송의 추적 취재가 진행되었고 이어 "도피행위"라는 딱지 하나가 더 붙었습니다.
 
당시 "K"프로그램이 주장한 내용 중 성추행에 관해서는 재판부에서 시비를 가리게 되었고 이후 정명석 총재는 1999년과 2000년, 2001년 세 차례 귀국하여 검찰의 조사에 성실한 답변을 하고 무혐의로 재출국했습니다.
 
이로써 당시 제기되었던 성추행 의혹은 사실상 일단락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언론들은 정 총재가 1999년에 해외로 나가 도피생활을 계속해왔다고 명백한 오보를 내놓고 있습니다.


1) 불분명한 증언자와 엉뚱한 경제착취론

한두 번도 아니고 수 차례에 걸쳐 정명석 총재에 대해 집착에 가까운 허위보도를 일삼은 서울 모 방송 보도행태를 보면 재연 화면과 얼굴을 가린 자칭 피해자의 자극적인 증언도 담아 매우 실감 있게 구성을 했습니다.
 
그러나 재연 장면은 현실성을 벗어나 픽션의 인상을 남겼고 자칭 피해자의 증언 근거는 매우 미약했으며 그가 당사자인지의 여부도 불확실했습니다. 또 성도들에 대한 경제적 착취 문제, 방송에서는 정명석 총재가 성도들에게 앵벌이를 시켰다고 하는 매우 과격한 표현마저 사용했습니다.
 
사회에서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분이 금전 문제입니다. 성직자의 성(性)과 금전 관계는 매우 자극적입니다. 여론의 폭풍 같은 분노를 불러일으키기에 너무도 좋은 소재였습니다만 결국 이 주장도 근거가 없어 유야무야되었습니다. 본 단체의 회원 중 그 누구도 속칭 앵벌이에 동원되었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2) 종말론적 종교관?

종말론적 종교관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도 했습니다. 정명석 총재가 1999년에 세상이 종말을 맞이한다고 강조하며 신앙에 몰입할 것을 종용했다는 식이었습니다.
 
종말론적 신앙관은 건전한 사회인으로 하여금 현실의 삶을 외면하고 내세에 전념하게 하여 사회 부적응자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신앙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울 모 방송은 그렇게 정명석 총재와 본 단체를 사회악으로 매도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정명석 총재의 설교나 교리, 그리고 본 단체의 신앙 활동을 들여다보면 어느 곳에서도 종말론적 신앙관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말세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고 가르치며 보다 발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신앙생활을 주창한 총재입니다.
 
그럼에도 언론은 정명석 총재에게 종말론적 사교주의 이미지를 애써 덧씌우려 했습니다.


3) 통일교 아류?

또 서울 모 방송은 또 정명석 총재를 통일교의 아류로 폄하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도에서 그런 평가를 내려준 사람은 정명석 총재를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본 단체의 교리나 신앙 신조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나 데려다가 증인이라고 세우고 전혀 공인받을 수 없는 사람의 말을 증거로 삼아 평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언론은 객관적인 자료를 제공하고 그 판단은 시청자가 하는 것이 정상적인 보도 태도일 것인데 말입니다.
 
신앙은 이론이 아니라 생활이며 체험에 바탕을 두는데도 언론은 바깥에서 스치듯 바라본 외양만을 보고 본 단체의 신앙을 판단해 버리는 오만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정명석 총재를 죄인으로 부각시키려는 집착 때문이었습니다. 언론재판이 이뤄진 것입니다.


4) 결국 법원의 제재 받아

그렇게 정명석 총재를 향한 언론의 첫 접근은 객관성을 한참 비껴갔습니다.
 
당시 "K"프로그램의 담당 프로듀서는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정명석 총재, 혹은 본 단체의 지도부의 의견을 반영하려 했다"고 말했지만, 결국 본 단체는 법원을 통해 반론보도 판결을 얻어냈습니다.
 
이는 방송 보도 내용에 본 단체의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고 또한 본 단체의 요청이 서울 모 방송으로부터 묵살 당했던 터라 법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더욱이 서울 모 방송은 정명석 총재가 "십일조(열의 하나)"에 관한 설교를 하던 중 "열의 하나 전도 해"라고 한 말을 "여자 하나 전도 해"라고 자막을 사용해 보도함으로써 정명석 총재가 여성에 집착한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했습니다.


5) 인기영합주의 언론의 합작품

왜 이토록 서울 모 방송은 정명석 총재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집착했을까요?
 
물론 언론인에게 진실을 밝히려는 정의감이 있다는 것을 존중한다 해도, 당시의 취재진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 가지고는 큰 성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되자 사회의 "공공의 적"으로 이미지를 꿰맞춰야 하는 강박관념에 몰려 정도를 벗어난 것입니다.
 
정명석 총재의 부도덕을 고발한다는 제보자의 주장은 언론인의 정의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합니다.
 
한 단체의 지도자와 그를 상대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소수의 사람들. 이 둘을 비교하면 당연히 사회 정의를 꿈꾸는 젊은 언론인의 가슴은 소수의 약자가 뿌리는 눈물에 출렁거렸을 것입니다.
 
거기에 정명석 총재에 대해 악의를 품고 있는 그 소수의 조직적이고도 계획적인 움직임이 더해져 호사가들의 입맛을 다시게 할 만한 특종으로 키워졌습니다.


6) 거짓 제보자들에 놀아난 언론

정명석 총재로부터 성적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얼굴에 마스크를 하고 기자회견을 자청한 여성들 옆에는 항상 김모A와 김모B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피해자라는 사람들에게 정명석 총재를 공격하는 방법을 제시하거나 때로는 자신들이 직접 그들의 수장을 자임하며 정명석 총재 공격의 선봉에 서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방법은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생각조차 하기 힘든 것들이었습니다. 욕설과 폭언, 입에 담기에 부끄러운 상스러운 말들이 바로 그들이 보여준 내면의 얼굴이었습니다. 그들의 인격 이하의 행동들은 여러 차례 법원으로부터 경고와 처벌을 받았습니다.
 
정명석 총재에 대한 "성적 부도덕"이라는 공격.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정명석 총재가 철저하게 대응하는 요소입니다. 본 단체의 신앙생활의 원칙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성적 순결성입니다.
 
사랑은 사람이 어울려 살아가는데 가장 고귀하고 핵심적인 요소인 만큼 올바로 알고 감당하지 않으면 오히려 불행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성에 눈을 뜨기 전에 사랑의 주체인 하나님을 바로 알고 신앙으로 사랑을 배우자는 것이 총재의 제 일의 가르침입니다.
 
총재로부터 시작된 본 단체는 대학생이 주축이 되어 시작되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진리탐구의 열정이 많은 연령층입니다. 반면 가장 혈기왕성하고 명예와 성공에 대한 야망도 많은 때입니다.
 
바로 그런 젊은이들의 진리탐구 열정을 성경 말씀으로 채워주었던 총재였습니다. 혈기왕성한 청춘들에게 참사랑의 도를 가르쳐 일탈의 유혹을 다스려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도 자신의 야망과 사랑을 접지 않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본래 총재와 함께 가는 길은 구도의 길이요 헌신의 길이 우선이나 젊은 혈기로 자신들의 야망과 욕정을 제어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총재를 따르며 야망을 성취하고 명예를 얻으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총재의 가르침은 연륜이 깊어갈수록 선행과 헌신의 모범을 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감당할 수 없었던 자들은 결국 총재를 떠나기도 했고, 자신들의 지난 세월들에 대한 상실감을 보상받으려 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총재의 성품과 본 단체의 체제에 대해 익숙했기 때문에 어떻게 공격하면 총재에게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을 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바로 피해자요 제보자라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김모A, 김모B도 그들 중에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7) 돈을 요구한 거짓 제보자들에 놀아난 언론

자신들이 목적했던 바가 이루어지지 않자 그 모든 탓을 총재에게로 돌린 그들은 돈으로 보상받고자 했음이 여러 차례 드러났습니다.
 
지난 2005년에 거짓 제보자 중 하나인 김모A가 소위 피해 여성들의 고소 취하 및 자신과의 화해 조건으로 정명석 총재에게 20억 원을 요구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는 애초부터 반(反) 선교회 단체인 "E"를 이끌던 김모A의 활동 목적이 결국 일확천금을 얻어 보겠다는 야심이었음을 드러낸 것입니다.
 
소위 피해 여성들의 고소와 취하 여부도 김모A 한 사람이 좌지우지할 정도로 그 여성들의 활동 역시 김모A의 목적에 부합하여 진행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본 단체는 정명석 총재를 고소한 한 여성이 단체 "E"로부터 "정명석 총재를 고소하면 유학 경비를 지원해 주겠다."는 제의를 받았다는 정보도 가지고 있습니다.


"피고(서울 모 방송)는 이 사건 화해권고결정 확정일 이후에는 프로그램 명칭 여하를 불문하고 소위 김모A, 김모B의 직접적인 제보 또는 자료제공 등에 의한 원고(기독교복음선교회)측에 관한 방송을 제작, 보도하지 아니한다."


이 문구는 2004년 본 단체와 서울 모 방송 사이에 이루어진 화해 권고 결정문에 있는 내용입니다.
 
그동안 서울 모 방송에서 주 취재원으로 활용했던 김모A․김모B의 본 단체에 대한 자료 제공이나 제보가 옳지 않았다는 것을 법원에서 판단하고 서울 모 방송에서 인정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동안의 거의 모든 언론 보도는 바로 이 두 사람에 의한 제보에 기초를 두었습니다.
 
아울러 위 결정문에서는 서울 모 방송이 본 단체에 관련되어 보도하는 모든 프로그램에 대해서 48시간 전에 그 내용을 본 단체에 고지하고 보도 내용에 대해 5% 분량으로 본 단체의 반론을 방송하도록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는 해당 언론사의 임원의 고백대로 "언론이 백기를 든 것과 같은 것"이며 그동안 정명석 총재와 본 단체에 대한 서울 모 방송의 보도 태도가 지극히 편향적이었음을 법원과 서울 모 방송 스스로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8) 끊이지 않은 거짓제보자와 허위보도

2003년에는 정명석 총재와 본 단체에 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거짓제보자 중 하나인 김모B라는 사람이 당시 홍콩에 머물고 있던 총재의 집을 습격해 구타를 하며 이를 촬영해 언론에 제보하고, 인터넷에 유포하며 심각하게 총재를 조롱한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서울 모 방송의 "S"프로그램에서는 이를 그대로 보도했고 본 단체의 회원들은 그 동영상이 심지어 인터넷상에서도 유포되고 있는 사실을 알고 극도로 흥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단체의 회원들은 감정을 억누르며 신앙인의 본 자세를 굳게 지키려 하였으나 그 중 네 명의 대학생이 분한 마음으로 김모A와 김모B를 찾아갔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들이 김모A와 김모B를 만난 자리에는 "S"잡지의 신모 기자가 와 있었습니다. 신모 기자도 역시 김모A, 김모B의 제보를 토대로 정명석 총재에 대한 기사를 작성코자 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신모 기자를 알아볼 수 없었던 본 단체의 청년들은 바로 김모A․김모B와 몸싸움을 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S"잡지의 신모기자는 그들과 한 패로 오인 받아 몸싸움에 휘말렸습니다.
 
물론 신앙인으로서 몸싸움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잘못된 일임을 변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도 같은 스승을 나이도 한참 어린 사람이 폭행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인터넷에 그 장면을 유포하면서 모욕을 주는 행위에 대해서도 분노를 느끼지 않는다면 오히려 비정상일 것입니다.
 
이런 악연으로 신모 기자는 김모A, 김모B에 필적할 만한 음해세력의 선봉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의 노골적인 자세는 그의 기사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일단 본 단체를 테러집단으로 규정하며 기사의 논조를 고착시켰습니다. 그가 홍콩에 정명석 총재가 거주했던 집을 사진으로 게재하면서 정명석 총재가 홍콩의 호화주택에서 사치스런 생활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실상 정명석 총재는 사진에 게재된 집의 2층에 방 두 칸을 세를 얻어 쓰고 있었습니다. 기자의 붓놀림 하나로 지극히 검소한 삶이 지극히 호사스런 삶으로 탈바꿈해서 국민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자세한 상황을 파악하지도 않은 채 되도록 정명석 총재를 부도덕하게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 흔적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총재는 홍콩 이민국 감호소에서 보석으로 풀려나올 때 홍콩 달러 10만 불을 지불했습니다. 이는 한화로 1000만 원이 약간 넘는 금액이었습니다.
 
그러나 신모 기자는 굳이 "미화 10만 불"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약 1억 원의 금액으로 실제와 8배 정도의 차이가 나는 분명한 오보였습니다.
 
물론 사안의 핵심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이 같은 언론의 의도적인 매도행위가 암암리에 정 총재와 본 단체를 지속적으로 옭아매왔고 설상가상으로 이 사회에서 어느 누구도 정총재와 본 단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하는 소위 "왕따 만들기"의 효과를 일으켰다는 점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본 단체와 정명석 총재에 대한 언론의 그동안의 시각도 상당히 기울어 있었음을 부인하기 힘들 것입니다. 정명석 총재에 대한 언론과 또 그 언론에 의해 형성된 여론은 처음부터 이렇게 부정적으로 기울어진 상태에서 시작했습니다. 

 

2. 정명석 총재와 진실      


정명석 총재는 1999년부터 세계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정 총재는 1978년 복음 사역을 시작한 때부터 20년 동안 한국에서 활동하고 그 후로는 세계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 시점이 바로 1999년이었습니다.
 
그것이 공교롭게도 서울 모 방송의 보도 시점과 맞물렸고 총재의 세계 선교는 마치 소송과 언론 보도를 피하려 했던 것으로 오인되었습니다. 오해라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정명석 총재가 1999년과 2000년, 2001년에 입국해 검찰 조사에 응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 차례에 걸쳐 조사에 응하는 그 시간들은 정명석 총재에게는 참으로 소모적인 것들이었습니다. 이미 세계 선교를 위해 헌신을 각오하고 출국한 발걸음을 다시 돌이키기를 세 차례나 한 이상, 이 같은 일로 무의미한 시간을 쓴다면 본 단체에 큰 손해를 끼칠 것은 자명한 일이었습니다.
 
더욱이 한창 선교에 불이 붙은 외국 현지에서는 그나마 총재로부터 시작된 선교의 열정이 자칫 수그러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었습니다. 정명석 총재에게 주어진 한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20만 회원들의 삶의 방향이 뒤바뀌고 때로는 한 생명의 죽고 사는 문제가 좌우되기도 합니다.
 
이에 정명석 총재는 결단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누가 어떤 고소 고발로 총재의 발길을 잡아두려 한다 해도 거기에 일일이 대응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었습니다.
 
혹 여러 가지 오해를 받고 누명을 쓰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소명을 이루는 것이 더 우선이었습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단체의 수장의 위치며 또한 세속의 관심보다 하늘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사명자의 노정이었습니다.


1) 누명 써도 복음의 길 떠나

사람은 사명과 위치에 따라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고 판단의 가치기준이 다릅니다. 정명석 총재가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불신과 모욕을 감내하며 자신의 길을 간 이유는 그가 진정 신앙인이기 때문입니다.
 
정명석 총재 스스로도 어찌 오해를 벗고 싶지 않겠으며 타인의 찬사를 듣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자신의 오해를 벗기 위해 써야 하는 시간과 노력 대신 당장 다른 사람의 아픔을 치료하는데 쓰는 것이 더 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영광과 당당함의 길을 포기하고 당장에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곳, 처절한 험곡의 길을 택한다면 그가 진정한 신앙인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엔 부정하고 비굴한 모습이지만 성경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지키기 위해 소리없이 모욕과 비난을 감내하며 갔습니다. 야곱, 요셉, 다윗이 그랬고 나아가 예수님도 그런 길을 가셨습니다. 그분들의 관심과 가치관은 사람의 정서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정서를 따랐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2) 해외 선교의 눈부신 성과

1999년, 총재의 첫 발걸음은 유럽으로 향했습니다. 기독교 국가들이 즐비한 대륙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정작 총재가 경험한 유럽인들의 신앙은 전혀 기대와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앙망하고 성취하려는 열정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생활 속에 한 습관으로 굳어져 버린 기독교의 형식만 남아 있었습니다.
 
이러한 기독교 현실을 목도한 정명석 총재는 20년 전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혈혈단신으로 유럽 대륙에서 죽은 기독교에 생기를 불어넣기를 각오했습니다.
 
동양인으로서, 나이 어린 유럽 젊은 아이들의 경시와 홀대를 무릅쓰고 다가서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으나 뜻을 굽히지 않고 진심과 사랑으로 다가선 지 수개월이 지나 드디어 열매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동서양의 젊은이들이 모여 민간 차원의 문화 예술과 스포츠 교류를 위한 세계평화대회를 연 것입니다.
 
세계평화대회는 유럽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정부나 기업에서 목표를 두고 하는 일도 아닌데, 그저 아시아의 한 초로의 신사가 다가와 어울리며 웃고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인데 동서양의 젊은이들이 해마다 자발적으로 모여 서로 속 깊은 정을 나눌 수 있을까? 향락도, 퇴폐적인 방종도 없는 건강한 교감이 이 시대에 이렇게 가능한가?
 
총재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시대이기 때문"이라고 증언했고 그들의 가슴 속에 뇌사상태로 방치되어 있던 하나님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습니다.
 
유럽에서 기념적인 발자취를 남긴 후 중국으로 향한 정명석 총재의 행로는 21세기의 잠룡을 다스리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정해졌습니다.
 
익히 알려진 바대로 세계 인구의 20% 이상이 모여 사는 나라, 세계 경제와 외교 판도를 쥐락펴락할 만한 힘을 키우고 있는 나라, 그래서 모두 관심을 갖고 모여드는 나라가 바로 중국입니다.
 
그러나 정작 총재가 바라본 것은 중국의 힘이 아니라 중국인들의 삶이었습니다. 교세를 늘려보겠다거나 경제 발판을 다져보겠다는 시시콜콜한 관심이 아니라 13억의 인생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관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총재는 중국에 있어야 했고 그들의 삶의 현실을 낱낱이 들여다보아야 했습니다.
 
속 좁은 이는 "한국 사람이 한국에서나 활동할 것이지 굳이 오지랖 넓게 종교성도 없는 남의 나라까지 가느냐"고도 할 것입니다만 이는 성경 한 구절조차 읽어보지 않은 사람의 단견입니다.
 
구약 성경 요나서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니느웨의 백성들을 위해 선지자 요나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그들을 회개시켜 멸절의 위기를 벗어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모두 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정명석 총재에게도 중국인은 세계의 관심을 끄는 민족이라거나 선교의 대상이기 전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귀한 사람들이라는 점에 의미를 두었던 것입니다.
 
거짓 제보자들에 놀아난 언론이 정 총재가 해외에 도피했다고 보도하는 동안 정 총재는 세계 50개국에 복음의 불길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3. 우리의 바람


정명석 총재를 따르는 기독교복음선교회 성도들은 20만 회원이라는 단체의 규모에 위안을 삼지 않습니다. 다른 종교단체보다 자유롭다는 것도, 젊은이들이 많다는 것도 총재를 따르는 이유로 삼지 않습니다. 세간에 잘못 알려진 총재에 관한 루머가 사실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더욱 아닙니다.
 
본 성도들은 정명석 총재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알았습니다. 그의 말씀이 지금껏 경험했던 어떤 종교가나 학자의 이론보다도 하나님에 대해서 더욱 정확하게 밝혀주는 말씀인 것을, 또 그의 가르침이 인생을 바로 인도하는 길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능력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보며 총재 스스로가 그 말씀대로 살아왔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언론 또는 그것을 보고 듣는 사람들, 그리고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명석 총재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서 안다고 하겠으나 그것으로는 정 총재를 알지 못합니다.
 
본 성도들은 정명석 총재를 오랫동안 만났고 상담을 했고 그의 기도를 받으며 살아왔던 경험으로 안다고 말합니다. 또 그와 함께 일하며 땀 흘리고, 민족과 세계를 위해 기도했음으로 그를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본 단체 회원들은 모두 이 사회에서 당당한 직업을 가지고 건전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회에 어려움이 닥치면 솔선수범하여 봉사활동에 앞장서고 술과 담배, 마약이나 불건전한 성문화 퇴치에 앞장서는 모범적인 시민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단지 도덕적인 양심을 따른 것만이 아닙니다. "참된 신앙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이루며 사는 것이라"는 총재의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언론의 무분별한 정보 유출 사고로 인해 검게 채색되어진 정명석 총재의 참 모습은 건전한 시민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며 스며든 "마녀사냥"의 찌꺼기를 닦아낸 후에야 비로소 바로 보일 것입니다.
 
언론이 스스로 주장하듯이 진실을 바로 알리기를 원한다면 정명석 총재에 대해 오히려 진실을 가리는 편향적인 정보 유출을 멈추고 오염물질을 제거하여 진실을 투명하게 분별할 수 있도록 지극히 객관적인 자리에 멈춰 서있어야 할 것입니다.
 
언론은 더 이상 정명석 총재에 대한 성급한 판단을 삼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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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총재 설교 요약 말씀 - 어린이를 잘 대해주고 잘 가르치고 잘 관리해라

<정명석총재 설교 요약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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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씀] 정명석 목사
[본 문] 마태복음 18장 1-10절


1)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5)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7)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8)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10)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서 먼저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말씀을 하겠습니다.
사람은 ‘열 살에서 스무 살이 되기까지’ 잘 배우고 행하며 성장하기에 따라서 앞날이 좌우됩니다.
성공하려면 어릴 때 투자하고, 가르치고, 키우고, 관리하고,

위대한 말씀을 주며 행하게 해 줘야 합니다.

사람은 만들기에 달려 있습니다.
음식도, 물건도, 집도, 건물도 <목적>을 두고 만드는 대로 되듯이,

어린이나 중고등부나 모두 자기를 만드는 대로 되고, 만든 대로 쓰여집니다.


그러나 자기가 가만히 있는데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는 게 아니라,

자기가 위대한 하나님과 성자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면서 만드는 것입니다.

자기를 만들면, 그 기쁨과 행복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 자신>은 ‘그릇’과 같아서,

자기라는 그릇을 만들면 그 그릇에 ‘원하는 축복’도 받고,

‘밭에 숨긴 보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말씀은 우리가 행하는 데 있어서 최고로 할 일은 ‘시작’을 어서 하는 것입니다.
저마다 시작할 것들을 두고 열심히 해야 보화를 발견하고,

시작해야 자기 것이 되어 남아지게 됩니다.

시작해야 끝을 보게 되니, <시작의 책임>을 얼마나 ‘제때’ 하느냐에 따라서

<승리와 패배>가 좌우됩니다.


시작을 제때 하지 않고 늦게 하면, 음식을 제때 먹지 않는 것과 같아서 맛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음식을 먹다가 말 듯, 하다가 말게 되고,

아이스크림도 제때 먹어야 시원하지,

제때가 지나면 녹아서 먹다가 말게 됩니다.


이처럼 제때 시작하지 않으면 끝을 내지 못하고 끝나고,

제때 시작하면 끝을 내고,목적을 이루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각자 ‘그동안 못 했던 것들’을 어서 시작하기 바랍니다.

지금이 시작할 때이니, 어서 시작하여 원하는 것을 얻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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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총재 "뇌"에 관한 성공 멘토링 - 인간의 뇌는 생각이라는 한 사람이다.

<정명석총재 "뇌"에 관한 성공 멘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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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의 뇌>는 ‘생각’이라는 한 사람이다.

 

 

2. 고민하고 걱정하면 ‘체질’에도 영향이 가고, 계속되면 그로 인해 뇌도 ‘병’이 든다.

 

 

3. 하나님이 주신 축복 중에는 <생각나는 것>이 있고, 또 <기록하는 것>이 있다. ‘뇌에 기록, 종이에 기록’이다.

 

4. <뇌>에 기록하면 한순간이다.

<종이>에 기록하면 유형 세계에서는 끝까지 잊지 않고 기억한다.

행하여 <행실>로 기록하면 평생 간다.

<체질과 습관>으로 기록하면, 자기 스스로 수시로 행해진다.

 

5. 뇌에 기록하려면, 매일 수십 번씩 외우고 행해야 된다. 그래야 잊지 않는다.

 

6. <뇌>는 한정된 시간까지만 기억한다.

 

‘자기 애인’도 딴 생각하면 기억에서 잊고, ‘밭에 감춰진 보화’를 발견하고 가다가도 딴생각하면 기억에서 잊는다.

고로 기록해 놓고, 늘 봐야 된다. <생각>은 ‘실체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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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에든지 마음을 빼앗기면 몸도 거기 빼앗기고 시간도 빼앗긴다.

마음을 다스려라.

너의 마음이 너의 통솔자다.

항상 주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다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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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목사 설교요약 말씀 - 시간을 쓰지 않으면, 시간도 죽고, 할 일도 죽고, 자기도 죽는다

 

 

 

<2014년 2월 9일 주일요약말씀>

 

시간을 쓰지 않으면

<시간>도 죽고, <할 일>도 죽고, <자기>도 죽는다

 

본 문 에베소서 5장 15-16절

전도서 3장 1절

 

말 씀: 정 명 석(기독교복음선교회 총회장)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진실한 몸과 마음’을 드리며 <예배>로 영광 돌리러 온 여러분 모두에게 영원하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의 뜨거운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여, ‘삶의 지혜’와 ‘신앙의 지혜’를 충만하게 받기를 축원합니다.

 

시간은, 쓰지 않으면 죽는다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잤습니다. 거의 자정이 다 되어서 잠을 자는 바람에 새벽 1시에 기도해야 하는데, 못 일어났습니다. 일어나 보니, 새벽 3시였습니다. 그래도 피곤하여 눈만 뜨고 안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때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시간은 쓰지 않으면 죽는다.”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즉시 일어나 씻고 기도했습니다.

‘할 일을 두고서 그 시간에 그 일을 안 하면 <할 일>도 죽고, <시간>도 죽고, 그 일의 주인공, 즉 <자기>도 죽은 격이 된다.’라는 말씀입니다.

흐르는 물도 쓸 곳에 안 쓰면, 흘러가서 오염되어 죽습니다. 이와 같이 <시간>도 자기가 할 일이 있는데 안 쓰면, 흘러가서 죽은 것입니다. 다음 시간이 있어도, 그것은 다음 시간입니다. 고로 지난 그 시간은 살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시간을 바꿔 쓰면 시간도, 일도, 자기도 죽는다

‘할 일’에 시간을 써야 <시간>도 살고, <할 일>도 살고, <자기>도 살아납니다. 믿습니까? 아멘!

<시간>과 <그 일>과 <그 사람>이 삼위일체가 돼야 합니다. (아멘.) 시간은 항상 할 일과 합당하게 착 붙어서 따라다닙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성자의 ‘진리의 법, 질서의 법’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고 시간을 쓰니, 불리해져서 실패합니다.

시간을 바꿔 쓰면 <시간>도 <일>도 <자기>도 죽습니다. 어떤 일을 두고 ‘그것에 대한 시간’은 ‘그것을 하는 데’ 써야 됩니다. 가령 농부가 ‘봄’이 왔는데 그 시간을 씨를 뿌리는 데 안 쓰고, 씨앗 연구, 밭 연구하는 데만 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봄에는 씨를 뿌리고 가꿔야 하는데 거기에 시간을 못 쓰니, <죽은 시간>을 보내고, <죽은 일>을 하게 되고, 자기도 <죽은 행실>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행하시는 때를 따라 ‘시대의 때’를 지켜, 그 때를 놓치지 말고 그 일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시간>도 살리고, <일>도 살리고, <자기>도 살려 존재시키게 됩니다.

성자는 “휴거를 이루는 데도 제때를 놓치지 말고 ‘휴거에 해당되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시간>도 살고, <휴거>도 살고, <자기>도 살아 존재한다. 휴거뿐 아니라 모든 일을 할 때도 그때마다 ‘그에 해당되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시간>도 살고, <그 일>도 살고, <자기>도 살아 존재한다.” 하시며, 심각하게 마음을 쏟아 말씀해 주셨습니다.

첫째, <시간>을 바꿔서 쓰지 말고 절대 ‘제시간’에 행해야 됩니다.

둘째, <할 일>을 바꿔서 하며 시간을 쓰지 말고 ‘합당한 제 할 일’에 시간을 써야 됩니다.

셋째, 그 일에 해당되는 사람이 있는데 <사람>을 바꿔서 하지 말고 ‘그 일에 해당되는 사람’이 해야 됩니다.

 

지구 세상은 할 일이 있고, 한정된 시간이 있다

<지구 세상>은 ‘시간’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고로 그 시간에 그 일을 안 하면, 시간이 죽어 자기에게 엄청나게 손해가 갑니다.

또한 <지구 세상>은 저마다 ‘할 일’을 하면서 존재하는 곳입니다. 고로 그 시간에 ‘할 일’을 안 하면, 자기에게 손해입니다.

‘할 일’이 있고, ‘한정된 시간’이 있습니다. 그때 그 일을 안 하면, 자기가 손해입니다. ‘할 일’은 있는데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성자도 주도 재촉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성공하려면, <할 일>을 제시간에 전적으로 하면서, 그것에 몰두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 일을 다 했으면, 그때 쉬는 것입니다. 쉴 때는 또 구상하고 연구해야 됩니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 행해야 된다

‘모르는 사람’은 몰라서 못 합니다. 아는데도 ‘게으른 사람’은 편안하려고만 하니, 안 합니다. 할 일을 안 해 버릇하면, 젊은이도 노인같이 움직이기 싫어합니다. 편한 쪽으로 뇌가 굳어서 움직이지 않고 편하게 사는 것이 습관이 되고 체질이 됩니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 행해야 됩니다. 누구를 위해서 먹습니까? ‘자기’를 위해서 먹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말씀을 듣습니까? ‘자기’를 위해서 듣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말씀을 행합니까? ‘자기’를 위해서 행합니다. 육의 일도, 영의 일도 부지런히 해야 됩니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 ‘자기’를 위해서 해야 됩니다.

 

깊은 기도를 해야 ‘할 일’을 찾고, ‘제때’ 그 일을 하게 된다

<할 일>을 두고 부지런히 해야 됩니다. 할 일이 없으면, <할 일>을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게으른 사람은 <할 일>이 없다고 합니다. 실패할 사람은 <할 일>이 없다고 합니다. 육적인 것도, 영적인 것도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깊은 기도를 해야 <할 일>을 찾고, <제때> 그 일을 하게 됩니다. 그리함으로 육이 살아 있을 때, 귀하게 기뻐하며 쓰게 됩니다.

찾아보면 <할 일>이 너무도 많고, 과거에 놀면서 헛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모두 부지런히 제때 제시간에 할 일을 하라고, 성자가 심각하게 해 주신 말씀을 오늘 성자와 함께 전했습니다.

성자의 평강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아멘!)

 

 

<축 도>

지금은 영원하신 하나님과, 사랑하여 말씀을 주신 성자와, 감동과 감화를 주시며 증거하신 성령님의 크신 사랑이 오늘 이 말씀을 들은 모든 자들에게 충만하여 <자기 할 일>을 두고 <제시간>에 <꼭 그 일을 해야 될 자>가 행함으로 육도 혼도 영도 변화되어 그토록 원하는 휴거를 이루고, 각종으로 합당한 축복을 받고, 성자를 사랑하여 같이 사는 ‘사랑의 대상체’가 되기를 성부, 성자, 성령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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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선생의 오늘의 성공 멘토링

 

<정명석선생의 오늘의 성공 멘토링>

 

 

꼭 그 일에 성공하려면, 늦지 말고 서둘러라.

 

 

 

 

사람이 서두를 때, 10배 더 빨리하게 된다.

 

 

 
 
 

 

 

부지런한 자가 ‘먼 길’을 가고, ‘천국’도 간다.

 

 

www.god21.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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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총재님 잠언 말씀 - 너의 마음을 다스려라. 너의 마음이 너의 통솔자다.

 

 

 마음 주면 몸도 준다.

어떤 것에든지 마음을 빼앗기면 몸도 거기 빼앗기고 시간도 빼앗긴다.

마음을 다스려라. 너의 마음이 너의 통솔자다.

항상 주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다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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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순간 사소한 것들에 의해 마음을 빼앗기는 경우도 적지않다.

그런 시간들이 알고보면 나의 마음을 빼앗긴 것이라니..

정말 예리하게 분석한 말씀인 것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나의 마음을 되살펴 보게 된다.

오직 주님을 중심한 생각과 마음을 갖고 싶다.

그런데..잘 안되는게 사실이다.

정명석총재님의 이 잠언을 읽으며

더욱 더 내 마음을 다잡고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되겠다고 생각해보며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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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총재 설교요약말씀 - 1. 사랑은 말씀이다. 2. 생각은 태양이다. 생각나고 느꼈을 때, 즉시 행하라

 

[말 씀] 정명석 목사
[본 문] 요한복음 3장 16-21절
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7장 21절
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그 사랑의 증거로 <말씀>을 해 주십니다.사랑하니 ‘죽음에서 사는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생각났을 때, 그때 하는 것이 ‘사는 길’이고, ‘잘되는 길’입니다. 생각났을 때가 ‘기회의 때’입니다.


<생각>은 ‘태양’이며 ‘태양 빛’입니다.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생각과 느낌과 깨달음’으로 전달되는데, 그때가 태양이 떠서 비출 때와 같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 하루 일을 하듯이, 뇌 속에 태양 같은 ‘생각과 느낌과 깨달음’이 사라지기 전에 즉시 행해야 됩니다. 

 

생각나고 느껴지고 깨달아지면, 어떤 것은 1초 안에 해야 되고, 어떤 것은 1분 안에 해야 되고, 어떤 것은 1시간 안에 해야 되고, 어떤 것은 하루 안에 해야 됩니다.

 

생각나고 느껴지고 깨달아질 때가 뇌에 ‘생각의 태양’이 비추는 때입니다. ‘생각의 태양’이 지기 전에 행해야 됩니다. 그때, 그 빛으로 행해야 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해서 주신 말씀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님을 사랑해서 주신 축복입니다. 가치 있게 생각하고 귀히 여기고 행해야 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진리 충만, 성령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만남과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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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S정명석총재 설교요약말씀 - 목적이 없거나 흐리면 마음과 생각이 무미하다

 

 

sunday wimage

 

 

[말 씀] 정명석 목사


[본 문] 창세기 1장 1절
1)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마태복음 22장 37절
37)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
16)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TV에서 동물의 세계를 보면 사냥을 하는 동물들도 평소에는 누워서 뒹굴며 왔다 갔다 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 “저러고 어떻게 사냥하느냐?” 그런데 사냥을 시작하면, ‘사냥감을 잡으려는 목적’이 있으니 눈에 빛이 나면서 정신일도 하여 사냥감을 쫓아갑니다.


또 사냥을 당하는 동물들도 평소에는 누워서 뒹굽니다. 그 모습을 보면 애간장이 타 “저러다 잡아먹히겠다.” 합니다. 그런데 사냥이 시작되면, ‘살려는 목적’이 있으니 정신을 칼같이 세우고 도망갑니다.

 

이와 같이 사람도 마음·정신·생각이 흐리멍덩하고 무감각하면 인생을 무미하게 살면서, “나는 왜 살지? 내 마음과 정신이 내 몸 안에 있나? 나는 무슨 의미로 인생을 살지?” 합니다.

 

이는 <목적>이 확실하지 못하니, 거기에 빠져 땀을 흘리면서 집중하여 목적을 이루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로 마음·정신·생각이 흩어져 ‘확실성’을 잃고 무미하게 살아가는 차원에 처한 것입니다.

 

사람은 몸을 가지고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고로 마음·정신·생각의 <목적>이 확실해야 됩니다.
그러나 <육적인 목적>은 가져도 곤고하고, 이뤄도 허무합니다. 오직 <영원한 목적>을 최우선으로 하고 행해야 됩니다. 이것만이 육도, 마음도, 혼도, 영도 영원한 기쁨과 사랑과 희망의 삶을 살게 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님은 ‘태양같이 또렷한 목적’을 두고 천지와 인간을 창조하셨고, 지금까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행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목적도 하나님과 같이 <창조 목적>과 <휴거 목적>을 이루는 것일 겁니다. 우리의 목적이 하나님의 목적과 같으니, 다시 마음과 생각을 그 목적에 걸어 놓고, ‘왜 살아야 하는가?’ 확실히 알고, 땀을 흘리며 희망으로 행해야 됩니다. 그래야 허탈감과 허무함을 벗어나고, 흐리멍덩하고 의미 없는 삶을 벗어나게 됩니다.

 

모두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님의 마음을 받아 해같이 또렷하고, 빛같이 찬란하게 살기를 축복합니다.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만남과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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