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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12/19
    첫인상
    joll

첫인상

"걔가 좀 그런 면이 있잖아.."
"어머, 그러니? 오히려 좀 이렇지 않아?"
"아냐, 그건 니가 잘 몰라서 그래.. 전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어쩌구저쩌구.."
"그렇구나.. 난 또 걔가 그런 점이 있다는 건 전혀 모르고 있었네.."

살다보면 종종 이런 대화를 마주치게 된다. 똑같은 사람이더라도 서로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정보의 내용은 다르다. 정보의 분량이 상호작용의 횟수가 많을수록 커진다는 거야 당연하겠지만, 종종 누군가에 대해 비슷한 정보의 양(=비슷한 만남의 횟수)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가지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는 느낌은 다를 수 있다. 나는 이것이 첫인상에서 상당한 정도로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 대한 첫인상(first impression)이 반드시 첫 만남에서 만들어질 필요는 없다. 몇번의 만남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어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하더라도 아무런 인상을 받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첫인상이라 했을 때 우리가 의미하는 것은 처음으로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총체적 이미지나 느낌이 "강하게 각인"된 흔적이라 할 수 있다.*

강하게 눌려 각인된 흔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누군가에 대한 첫인상이 형성된 이후 그 사람에 관한 새로운 이미지나 느낌들이 있다 할지라도, 대부분의 경우 새로운 정보는 이미 각인된 첫인상이 지시해주는 방향으로 수용된다. 즉, 새로운 정보가 첫인상을 통해 가지게 된 정보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대부분의 경우 그 정보를 첫인상과 배치되지 않는 방향으로 수용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이 있기 때문에 성스러운 사제로 첫인상에 담았던 신부님이 지속적으로 어린아이를 성희롱한 세속인간(그것도 나쁜!)으로 드러나게 될 경우 엄청난 혼란이 발생된다. 본디 누군가에 대해 새롭게 얻는 정보들은 맨처음 각인된 정보(=첫인상)에 의해 강한 영향을 받고 그에 따라 각색되고 재해석되어나가기 마련인데, 그리고 그러는 과정을 통해 첫인상은 재생산되기 마련인데, 이 경우 첫인상에 기초해 안정적으로 재생산되던 신부님에 대한 이미지/느낌에 위기가 닥쳤기 때문이다.


인간의 보편적인 인지 메커니즘이 이러하기 때문에 똑같은 누군가를 오랜 세월 알아왔던 두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둘이 그 사람에 대해 가지는 느낌이나 평가가 다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서로 연결된, 하지만 서로 다른 측면을 드러내주는 몇가지 요인들이 더 작용한다.

첫째는 똑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데, 그 사람과의 만남이 그 사람의 상이한 역할공간에서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로, 똑같은 여인이지만 내가 나의 엄마로서 그리는 그녀에 대한 그림과 엄마의 직장동료가 직장동료서 가지게 되는 그녀에 대한 그림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만남의 횟수와는 또 다르게 만남의 깊이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똑같은 사람을 백번 만났어도 그 사람과 깊이있는 대화 한번 나눠보지 않을 수 있는 반면, 한번 만났어도 내면을 나누는 소통이 가능한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똑같은 사람에 대한 것일지라도 이 둘의 경우 아주아주 다른 묘사가 이뤄질 수 있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마지막, 누군가의 이미지나 느낌이 각인되는 판형 자체가 다르다는 점이다. 아무리 똑같은 사람을 똑같은 역할공간에서 똑같은 깊이를 가지고 똑같은 횟수로 만났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은 다를 수 있다. 그 사람의 인상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살아왔고 살아가는 조건이 다르고 해왔던 경험이 다르고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이 다르고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에 대한 이미지나 느낌이 각인되는 인지판의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럿이서 똑같은 대화를 나눴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결과가 다른 경우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경험한다. 똑같은 이치다.

누군가와의 첫 만남에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일 거라는 감을 잘 포착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거 절대 못보는 사람도 있다. 연애하거나 결혼한 사람들 중에 "내가 사람 잘못봤지" "내가 그 사람을 너무 몰랐지" 하는 소리 종종 듣는다. 이 사람들 다 첫인상에서부터 단추가 잘못 꿰어진 경우들이다.

하여 오늘의 결론: "첫인상은 인간관계의 첫단추다."


**에 이어 김##씨께서도 나에 대한 첫인상과 관련된 글들을 방명록에 올린 이후, 그냥 혼자서 묘한 기분에 휩싸여 이런저런 생각 두서없이 하다가 결국 이런 "첫인상론"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흠.. 근데 생각해보니 몇년전엔가에는 정&&씨께서도 나에 대한 첫인상의 추억을 올렸던 적도 있었군..



------------------- [각주] --------------------

* impress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그 어원이 "누르다" 혹은 "각인하다"에 있음을 알 수 있다. the american heritage dictionary of the english language에는 다음과 같은 정의들이 나온다:
1. To affect strongly, often favorably: wrote down whatever impressed me during the journey; was impressed by the child's sincerity.
2. To produce or attempt to produce a vivid impression or image of: a scene that impressed itself on her memory; impresses the value of money on their children.
3. To mark or stamp with or as if with pressure: impressed a design on the hot wax.
4. To apply with pressure; press.
 
 
2004-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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