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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상소"를 불편해 하는 마음을 불편해 함

‘촛불 상소’하는 그대 백성인가 시민인가 
<왕의 남자>가 보여준 시대정신…“너무 너무 불편하다” 

 

일주일 전 쯤인가, 레디앙(redian.org)에서 위의 제목과 부제로 시작하고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불편하다"로 끝나는 정성일의 글을 보고 약간 불편해했던 기억이 있다. 그 사람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불편"해야 했던 이유의 근거로 삼았던 논리가, 그리고 그의 글이 보여준 시대정신이 영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왕의 남자>라는, new york times에서도 그에 관해 큼지막하게 기사가 실리기도 했던, 영화를 보고난 후의 느낌을 담은 글이었는데.. 난 그 영화를 보지도 않았고 또 정성일이 그 영화와 닮아있다 말했던 "음란서생"도 보지 않았으니 영화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지만, 정성일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불편"해했던 이유나 그 근거로 제시했던 논리에 대해서는 할 말이 좀 있다. (아래에 원래 글 복사함)

 

그니까 정성일이 불편했던 이유를 요약해보자면 이런 거다: [<왕의 남자>를 보고 나니까, 그리고 그와 비슷하게 읽혔던 <음란서생>을 보고 나니까] 왕정이었던 옛날이나 선거 민주주의를 갖춘 오늘날이나 -그것이 왕이건 대통령이건- 결국 국가의 수장이 모든 권력을 쥐고 변덕스럽게 행사하고 있다는 발견이 있었고, 생각해보니 옛날 궁궐앞에 모여 상소를 하던 유생 혹은 억울함 하소연하던 신문고나 오늘날 청와대 앞에 촛불들고 시위하는 거나 똑같아 보인다는 것이다.

 

세상 많이 달라진 것 같은데 정작 달라진 것 없어보이는 허망함.. 일인시위나 촛불시위라는 형식과 그 속에 내재한 어떤 논리.. 결국은 왕이나 대통령에게 하소연 혹은 떼쓰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 (이게 거리에서 꽃병이 난무하던 시절과 대비되고 있다는 건 또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

 

여기까지는 나도 고개 끄덕이며 읽을 수 있었다. 무수한 민주주의의 담론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보이는 현실 정치의 허망함.. 꽃병으로 상징되던 어떤 전투성이나 혁명적 희망이 사라진 시대에 느끼는 무력감.. 나도 다 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가, 조선시대에 살고 있는가?"라는 물음으로부터 시작해 결국 -그것이 백성이든 시민이든- 민초들의 저항을 "전근대적 믿음"의 결과로 치부하는 데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정성일에게 있어 현재의 허망함은 전근대에서 근대로, 백성에서 시민으로 마땅히 전화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음에서 그 근거가 찾아진다. 하여 백성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시민들은 근대의 시대에 여전히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대통령을 향해 떼쓰고 있는 것이고 이 사실이 정성일을 너무나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하여, 제목을 통해 그는 묻는다: ‘촛불 상소’하는 그대 백성인가 시민인가"? 

 

간단히 얘기해 나는 그의 불편함에는 동의하나 그가 불편한 근거를 찾는 방식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그리고 나를 가장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은 백성 vs 시민, 혹은 전근대 vs 근대라는 그의 이분법적인 인식틀. 사실 소위 "진보"니 "좌파"니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이분법이 이미 하나의 전제로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이니 정성일을 탓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이분법적 논리가 근거하고 있는 인식론이 무엇이며 그게 귀결되는 지점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이런 사고가 근대화론에 기대고 있다는 건 크나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2차대전 후 등장해 80년대까지 전세계 사회과학계를 주름잡았던 패러다임, 그리고 그후로 지금까지 일국 혹은 국가간 정책을 잡는데 가장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정책 패러다임인 근대화론.. 이 근대화론의 핵심이 바로 "전근대 vs 근대"라는 이분법과 "전근대에서 근대로의 이행"이라는 진화론적 논리에 있다는 건 알만한 사람 다 안다.

 

개념적으로야 명료해보이지만 개념적 명료함이 곧바로 현실 적용력과 곧바로 등치되는 것은 아닌데.. 이게 바로 정성일이 발견해낸 과거와 현재 간의 연속성의 측면. 아니, 정성일의 이 글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 어디를 보든 개념에서처럼 명료하게 전근대에서 근대로 이행했던 곳은 없다. 되려 이 근대화론이 힘을 발휘했던 건 분석적 개념틀로서 보다는 정책노선에서였는데, 혹시나 박정희의 근대화론을 떠올렸다면 대략 제대로 감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이 근대화론의 저변에는 비록 "전근대"의 형태는 다 달라도 결국 "근대"로 이행하게 되는 과정에서 동질성을 띠게 될 수밖에 없다는 가정이 깔려있다. 하여 경제발전하고 민주주의 제도 도입하고 그러면 모든 나라들이 다 비슷해질 것이고 결국 세계평화도 오게 될 것이라는 유토피아적 환상. 그 환상을 대표하는 가장 최근의 예가 바로 부시가 일으켰던 대이라크 전쟁: 지가 스스로 알아서 그렇게 못된다면, 우리(미국)가 억지로라도 민주주의 제도 심어주고 그러면 걔네도 그담부턴 알아서 민주주의하게 되고 우리(미국)와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이게 2000년대 근대화론이 정책에 적용되는 방식인 것이다.

 

물론 washington consensus와 imf 정책, 또 wto가 대변하는 논리도 국가간 경계를 허물어 경제 메커니즘에서의 동질성을 찾음으로써 (즉, 각 나라들마다 가지고 있을 "전근대"적인 경제 메커니즘을 "근대화"시킴으로써) 모두가 잘 살 수 있게 된다는 유토피아적 이데올로기가 깔려있는 것이고. 그냥 한마디로 근대화론은 직접적 제국주의 통치의 시대가 가고 간접적/경제적 제국주의 정책으로의 전환에 가장 큰 자양분을 제공했던 이데올로기적 기초였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이 작동하는 방식이 워낙에 또 복잡하다 보니 어떤 특정한 역사적 시점이나 공간적 지점에선 근대화론의 주장이 진보적인 것이 되기도 하고 이런저런 다른 이데올로기나 정책들과 뒤섞이게도 되고.. 그러다보니 딴에는 스스로를 사회주의라 칭했던 국가들도 다 변형된 근대화론을 받아들이게 되고, 박정희가 근대화론을 주창하니 남한의 좌파들이 그를 지지하게도 되고..

 

제일 어이없었던 경우는 90년대 중반을 뜨겁게 달구었던 "시민사회"와 관련된 논의였는데.. 결국 대부분 시민사회론자들(이들은 또 얼마나 자칭 진보적이었는가?)에 의해 한국 시민사회는 여전히 전근대적이고 보수적인 것으로, 하여 보다 근대적인, 보다 "시민적"인 것으로 변화되어야 할 어떤 것으로 여겨졌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도 그러한 논의 혹은 가정은 여기저기 충만하다.

 

전근대=극복되어야 할 어떤 상태=비민주주의=백성

근대=도달해야할 어떤 상태=민주주의=시민

 

문제는 여기서 "근대"가 표상하는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서구사회가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포장한 것들에 다름 아니라는 것. 반대로 "전근대"가 표상하는 것은 서구사회가 비서구사회들을 부정적으로 포장한 것들에 다른 아니라는 것. 그리고  "전근대에서 근대로의 이행"이란 게 궁극적으로는 서구 사회를 최대한 모방하는 프로젝트라는 것. 그리고 어이없게도 수많은 자칭 "진보"나 "좌파"들이 그 지배의 이분법을 은연중에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

 

물론, 그러는 데에 이유가 없을 리 없고, 그건 적어도 지금의 잘못된 현실을 비판하고 극복해나가는 데 어떤 모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 봤을 때에는 그런 이분법에 기초한 비판이 효과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모델 없이 현실의 방향타를 잡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모델에 대한 의존은 지금 현실운동이 가질 수 있는 변화의 잠재력을 갉아먹게 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면, 따라가려고 하는 어떤 모델이 있다는 게 결국은 상상력을 제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상상력과 실천이 최고로 발현되었던 사회혁명들.. 모든 위대한 혁명이 혁명이었던 이유는 어떤 모델에 의존치 않고 스스로 새로운 역사를 개척해갔기 때문이었다. (이쯤에서 다시 한번 91년 5월투쟁의 와중에 횡횡했던 권력대안 논쟁을 상기해보시라!)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 전근대와 근대라는, 혹은 백성과 시민이라는 이분법에 우리의 사고를, 우리의 상상력을, 우리의 실천을 가두어두려 하고 있다.

 

정성일의 글로 다시 돌아가보자: 오늘날 시민의 탈을 쓴 백성들은 "촛불 상소"를 올리고 있다. 그런데.. 그래서 대안은 무엇인가? 백성이 아니라, 진정한 시민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정성일의 가장 큰 문제는 이에 대한 답이 없다는 것이다. 단 하나, 꽃병을 던지던 시절을 그가 향수하는 것 같긴 한데.. 그렇다면 꽃병 던지며 싸우는 행위는 "시민적"인 것인가? 아닐 걸?

 

도대체 왜 백성과 시민이라는, 전근대와 근대라는 상상력 속에 현실의 움직임들을 가두려 할까? 차라리 (체제)도전적 vs. (체제)순응적.. 머 이런 이분법이 낫지 않을까? 아니면 차라리 혁명적 vs. 반동적이라는 아주 고전적인 대립구도를 쓰던지..

 

지금의 어떤 운동도 혁명적이라 하기엔 너무 무력하다 여긴다면.. 일세기전 지금의 운동역량보다도 더 약한 세력을 이끌며 그들을 "혁명적" 세력이라 칭했던 레닌을 떠올려보면 안될까? 그런 상상력, 그리고 그런 상상력에 부응하는 현실분석과 실천력이 있었기 때문에 소수 볼세비키가 다수가 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지금 너무나 많은 좌파들은 스스로를 카우츠키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훗.. 하긴.. 카우츠키 정도라도 되면.. 카우츠키는 그래도 열심히 정치활동이라도 했었는 걸.. (근데 이런 소리한다고 난 또 얼마나 바보 소리 듣게 될까?)

 

다른 거 다 떠나 난 그냥 정성일처럼 불편해하는 사람들 없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내가 덜 불편할 것 같으니까..) 그러기 위해선 한사람 한사람 일단 자기가 불편해하는 이유에 대해 보다 분명해야 할 것이다. 그냥 어영부영 불편해하고 향수에 젖고 그러는 거.. 그보다 더 슬픈 건 없다. 일단 여기서부터 제대로 출발점 찾을 수 있다면, 다른 건 그 담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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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상소’하는 그대 백성인가 시민인가 
<왕의 남자>가 보여준 시대정신…“너무 너무 불편하다” 
 
 
대한민국 인구는 4,750만이(라고 한)다. 물론 남한만이다. 그런데 단 한 편의 영화를 1,100만 명이 본다면 그것은 놀라운 일을 넘어서서 기괴한 사건이다. 이미 눈치 챘겠지만 <왕의 남자> 이야기이다. <왕의 남자>는 이 수치를 넘어선 다음에도 여전히 상영 중이다. 역대 기록 중 <태극기 휘날리며>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 수치에서 당연히 아마도 이 영화를 보러갈 리 없는 어린이들을 빼야 한다. 그리고 거동이 불편하신 노인 분들도 제외해야 할 것이다. 길거리에서 아무나 붙들고 물어보아도 네 명 중의 한 사람은 보았다는 뜻이다. 이 영화의 관객 수는 3년 전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던 숫자보다 더 많다.

 

노무현 후보 지지자 보다 더 많은 사람이 보다

 

여기서는 <왕의 남자>를 비평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미 많은 글이 쓰여 졌고, 또 이 영화의 성공에 대해서 많은 분석이 나와 있다. 게다가 이미 끝나가고 있는 이 영화에 관해서 비평을 쓰는 것은 ‘뒷북’의 공허한 메아리가 될 것이다.

 

여기서는 <왕의 남자>의 성공에 대해서 이야기할 생각이다. 사실 처음 이 영화의 시사가 끝났을 때 이른바 ‘충무로의 선수’들은 뭐, 다소 성공이야 하겠지만 큰 성공을 거두기야 하겠느냐, 고 시큰둥하게 말했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 일종의 동성애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있다는 것이 거부반응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게이 시네마가 아니다) 게다가 요즘 누가 사극을 보냐는 것이다. (그런데 역사적 고증이 거의 되지 않았다) 또한 도대체 주인공이 누구인지 잘 잡히지 않은 불분명한 스토리 라인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도대체 연산군이 왜 저러는지 알 수가 없다. 혹은 내시감이 왜 끝까지 연산군과 흥망성쇠를 같이 하는지도 알 수가 없다)

 

‘충무로 선수’들은 왜 시큰둥했나

 

여기에 스타 한 명 없는 캐스팅도 큰 관심을 끌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성공을 하고나니 갑자기 이 모든 것이 장점으로 둔갑하였다. ‘여자보다 예쁜’ 남자 이준기는 십대 야오이 만화 팬들을 끌어들였으며, 식상한 코미디의 홍수 속에서 사극은 경쟁력이 있었으며, 각자 취향에 맞는 주인공을 각자 선택할 수 있는 멀티한 등장인물들은 다양한 관객층을 끌어 모을 수 있었고, 유명한 스타가 없는 편이 호기심을 유발하고 새로운 기대를 불러 모았다는 것이다. 나는 한 편의 영화가 성공하게 된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당신이 어떤 분석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좀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냥 간단히 말하면 <왕의 남자>는 영화적으로 그저 그렇다. 거기에 무슨 굉장한 테마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야기가 대단한 것도 아니며, 미학적으로 논쟁적인 것도 아니다. ‘왕의 남자’ 이준기가 예쁘긴 하지만 그 얼굴을 보지 못하면 죽어버릴 것 같은 양귀비의 미모는 아니다.

 

하지만 한 편의 영화를 인구 네 명 중의 한명, 혹은 천만 명이 넘게 보았을 때 그 영화를 무시하면 안 된다. 그건 단순히 공감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넘어서서, 무언가 맹렬하게 설명을 요구하는, 하나의 시대정신이 거기에 있다. 너무 과장하는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저 그런 영화 속에 담겨진 시대정신

 

이것은 작은 성공이 아니다. 작기는커녕 무시하기에 너무 큰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지금 관객들은 누구의 요구로 동원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그 누가 이 관객을 ‘홀린 듯이’ 동원하는 중이다. 우리는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가 누구인지를 밝혀야 한다.

 

이 미스테리를 안고서 겨울이 끝날 즈음 또 한편의 사극을 보게 되었다. <음란서생>은 조선시대를 무대로 남몰래 ‘야설’을 쓰는 사대부 집안의 명문(名文)으로 명망 높은 문장가 윤서의 이야기이다. 사실 한 시즌에 사극영화 두 편을 보는 것은 쉽지 않은 경험이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넘쳐나는 사극과 달리 영화에서 사극을 보기란 좀체 힘든 일이다.

 

그건 두 가지 이유인데 하나는 물론 돈의 문제이고(사극은 제작비가 많이 든다!), 다른 하나는 한국영화관객의 주류인 20대 관객들에게 사극은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연의 일치인 것처럼 두 편의 사극영화가 거의 동시에 만들어졌다. <음란서생>에 대해서도 나는 세세한 영화평을 피할 생각이다. <왕의 남자>와 <음란 서생> 두 편의 영화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음란서생>과 이상하게 닮은 점

 

사실 두 편의 영화는 아무 상관이 없다. 두 편의 영화는 전혀 다른 사람이 시나리오를 썼고, 그런 다음 전혀 다른 사람이 연출했으며, 전혀 다른 투자사로부터 돈을 받았고, 전혀 다른 영화사에서 만들었다. 두 영화가 조선시대를 무대로 했다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겹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아무 상관도 없는 두 영화가 임금을 다룰 때 이상하게도 그 인물의 성격이 겹친다는 것이다. 두 편은 동일한 임금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다. <왕의 남자>는 구체적으로 연산군을 지적하고 있고, <음란서생>은 다만 조선시대라는 것 말고는 사색당파로 나뉘어 당쟁을 일삼던 조선시대 후기라는 정도의 배경만을 보여줄 뿐이다.

 

연산군이 조선시대의 임금 중에서 가장 폭군이라는 사실은 온갖 드라마에서 보여주었고(그러나 그것이 역사적으로 정말 가장 폭군이었는지를 말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음란서생>의 임금은 이상할 정도로 연산군과 닮아있다. 그래서 <음란서생>을 보고 난 다음 마치 <왕의 남자>와 동일한 왕정을 다룬 영화라는 착시현상마저 들었다.

 

둘 다 정사에는 관심이 없고, 둘 다 여자에게 몰두하고 있으며, 둘 다 (그 관계는 다르지만) 삼각관계에 빠져 패배자의 자리에 서게 된다. 조선시대에 폭군만이 있었던 것은 아닌데도 두 영화에서 임금은 반쯤 미친 상태이다. 혹은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해서 미친 임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임금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도 아니다. 말하자면 임금은 이야기의 매개자이다.

 

변덕스런 권력, ‘코드’ 불일치, 그리고 가짜 눈물

 

그런데 그 매개자가 절대적인 권력으로 이 모든 운명을 관장한다. 권력이 반 쯤 미쳤을 때, 그가 자신의 권력을 내키는 대로 사용할 때, 이야기는 비극으로 치달리고 관객들은 주인공의 운명에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이 눈물은 가짜 눈물이다. 왜냐하면 이 눈물을 끌어내는 비극은 세상의 절대적인 운명에 대해서가 아니라 변덕스러운 권력과 코드를 맞추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하는 데서 오는 좌절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실상 이 상황은 그것을 통과해야하는 자들에게는 비극이겠지만 그걸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매우 우스꽝스러운 희극이어야 한다. 마치 할리우드의 엎치락 뒷치락 코미디들이 그걸 감당해야하는 주인공들에게는 끔찍한 비극이지만, 그걸 보는 사람들은 어처구니없어서 웃을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희극이 비극으로 둔갑한 이유가 무엇일까? 더더구나 지금 (흥행지표가 보여주는 바에 따르면)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대중들이 사랑하는 장르는 비극이 아니라 코미디가 대세이다. 이를테면 한 해의 흥행결과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한 코미디 영화들. 혹은 <왕의 남자>에 살짝 가려서 보이지 않은 <투사부일체>의 거의 기적에 가까운 성공. 지난해에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은 <가문의 위기>의 성공.

 

<왕의 남자>가 노골적으로 묘사한 이 시대 ‘무엇’

 

내가 <왕의 남자>와 <음란서생>에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단지 사극이라거나 혹은 임금이 등장해서가 아니다. 이 두 편의 영화의 절정은 끔찍하게도 고문이다. <왕의 남자>와 <음란서생>에는 이상하게도 임금의 지시에 의한 고문이라는 개입이 비극을 고조시킨다. <왕의 남자>에서는 광대 장생의 양쪽 눈을 인두로 지져서 장님을 만든 다음에야 일시적으로 고통을 중단한다.

 

<음란서생>에서는 당대의 명문가이자 장안의 ‘야설’ 작가인 윤서의 두 다리를 부러트릴 만큼 고문을 가한 다음에야 비로소 멈춘다. 둘 다 임금이 직접 개입하고, 그가 지시를 내리고, 그것을 지켜본다. 여기에 무슨 음모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어떤 함정에 빠진 것도 아니다.

 

임금은 이 이야기에 고문의 형식으로 개입한다. 같은 말이지만 이야기가 비극이 된 까닭은 이 고문의 과정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고문의 자리에 가서 고통을 당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보는 쪽의 자발적 수동성(나는 지금 능동성을 반대로 쓴 것이 아니다!)이 문제가 된 것이다.

 

나는 여기서 대중문화와 대중들 사이의 관계가 즐거움에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아무리 끔찍한 이야기를 다룬다고 해서 괴롭기 위해서 자기 발로 영화관에 가는 사람은 없다. 이상하고 잔인한 말이지만 그 괴로움을 즐기기 위해서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 진실이다. 이걸 그저 단순하게 마조히스트적인 즐거움이라고 말하는 것은 핵심을 놓치는 것이다.

 

이 즐거움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 그것도 매우 용의주도한 즐거움이다. 여기서 이 즐거움이 항상 동시대의 일상생활에서 오는 결과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모든 영화는 동시대의 관객을 위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영화는 자기 시대의 노골적인 기록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가 자기 시대에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것들을 물고 늘어질 때 구경꾼들은 진부하고 따분하다고 느낀다.

 

우리 시대 언어로 다시 번역을 해야 한다

 

구경꾼들은 거기서 무언가 불편한 것이 있어야 영화와 자신 사이에서 긴장관계를 얻는다. 그 어떤 잉여. 말하자면 영화는 세상이라는 일상생활 안에서 통과에 실패하고 무언가 망설이고 있는, 무언가 버티고 있는, 무언가 불편한, 무언가 억압당하고 있는, 무언가 할 말이 있는데 침묵 당하고 있는, 무언가 그렇게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는, 무언가 해결되지 못한 문제를 걸고넘어지면서 그 아픔에 울거나 혹은 그 아픔을 보고 웃는다.

 

카타르시스? 그건 고작 두 시간 동안 만들어지는 영화에서 훔쳐내기에는 너무 엄청난 단어이다. 영화에서 감정은 그렇게 만족스럽게 배설되지 않는다. 차라리 여기에는 무언가 문제가 다루어졌다는 상상적 교란이 있다. 사실 영화에서 현실 속의 문제를 다루었다고 해서 실제로 다루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도 그걸 보는 사람들은 그 문제가 다루어지고 있다는 일종의 착각에 빠진다.

 

그때 거기에 정서적으로 나는 어느 자리에 가야 할 것인지를 선택한다. 울 것인가, 웃을 것인가. 여기서 생각해야 하는 것은 그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결국은 그것을 끌어안는 정서는 동시대의 잉여라는 것이다. 일상생활 안의 대중문화, 그것이 끌어당기는 지금 여기의 세상과의 관계.

 

아무리 <왕의 남자>와 <음란서생>이 조선시대를 무대로 설정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이 성공은 2005년 겨울, 혹은 2006년 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대중들의 감흥, 혹은 그 이야기에 대한 호응이라는 것이다. 대중영화와 일상생활 사이에 있는 어떤 순환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우리 시대의 이야기로 다시 번역해야만 한다.

 

요즘 마키아벨리는 왜 그렇게 많이 출판될까

 

약간 시선을 돌려보자. 지금 갑작스럽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왕실에 대한 관심은 별난 측면이 있다. 이를테면 아직도 왕조시대를 살고 있다는 황당무계한 설정의 텔레비전 드라마 <궁>의 신기한 성공. 그런 다음 인터넷 웹 서점을 검색해보았다.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마키아벨리에 관한 책이 전례 없이 출판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려 일곱 종. 물론 <군주론>에 집중된 글이 대부분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니콜로 마키아벨리에 대해서 교양 이상의 전문적인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사람은 (내가 과문한 탓이겠지만) 드문 편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거의 지난해부터 일종의 붐이 불었다는 인상이 있을 정도로 마키아벨리는 새로운 화두가 되었다. 이를테면 여기에는 ‘스타’ 철학자 들뢰즈가 불러일으킨 스피노자 유행과는 좀 다른 측면이 있다. 현대 철학자들 중에서 (알튀세를 예외로 한다면) 마키아벨리를 끌어낸 글은 거의 만나보기 어렵다.

 

그런데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전문서적이 아니라 교양서적 수준으로 관심을 끌어 모으고 있다. 무언가 군주가 문제가 된 것이다. 하나의 담론이 갑자기 세상에서 주인 행세를 하려들 때 그것은 헤게모니가 내세우는 알리바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 일시적인 유행처럼 보이는 담론이 아무리 우스꽝스러워 보여도 그것이 일상생활 안에서 실제로 작동하기 시작할 때,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담론에 동의할 때, 그 의미보다도 그 맥락이 더 중요해지기 시작한다.

 

무언가 ‘군주’가 문제가 된 것이다

 

나는 대중문화 현상을 곧바로 사회의 반영이라고 단정 지을 만큼 단순하지는 않다. 하지만 둘 사이에 아무 관계도 없다고 태연자약하게 무시하는 것은 훨씬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대중적 동의에는 그것을 설명해야 할 정치적 이유가 있다.

 

세상에서 모든 대중적 성공은 하나의 시대정신이다. 거리에서 꽃병이 사라진 시대에, 오직 거리에서 일인시위만이 외롭게 계속되고 있는 시대에, 그 자리에 장동건이 서 있을 때에만 관심이 되는 시대에, 바로 그런 우리 시대의 정치적 투쟁이란 그 의미를 누가 먼저 ‘캐치’하느냐의 싸움이다.

 

나는 21세기 한국에서 살면서 하나의 새로운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그건 촛불시위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시청 앞에 모여서 청와대로 향한다. 백성들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서, 청와대에 앉아있는 저 분께서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그 분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그 곳으로 향한다.

 

나는 지금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가, 조선시대에 살고 있는가? 대통령은 임금님이 아니다. 그런데 왜 청와대에 앉아있는 저 사람이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고 믿는가? 상소문을 들고 종로에 앉아있는 유생들.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신문고. 당신은 백성인가, 시민인가?

 

나는 이 이상한 전근대적 믿음의 시대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고 있다. 푸코의 말. 왕을 왕으로 만드는 것은 왕 자신이 아니라 그가 왕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일개 영화평론가에 지나지 않는 나는 당신과 함께 21세기 대한민국의 일상생활 안에서 살면서 <왕의 남자>의 기이한 성공과 그 뒤를 잇는 <음란서생>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불편하다.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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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지하철/버스 파업 결정을 보며

 

 

지난 금요일부터 시작하기로 했던 파업을 다시 철회하고 다시 협상 테이블로 나갔지만, 한달 가까이 지리하게 끌던 협상은 삼십여분전 뉴욕시간으로 새벽 세시에 결국 파업으로 귀결되었다.

 

뉴욕 공공시설 노동자들의 파업을 금지시키는 법안으로 인해 이 파업은 불법파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조와 개별 노동자들에게 그 비용은 어마어마하다. 하루 파업에 노조원 일인은 이틀치 임금을 벌금으로 내야하고 노조 차원에서 감당해야 하는 벌금은 하루 수만불에 달할 거라 한다. 노조 지도자들은 그 이상의 법적 제재를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정부기관과 언론은 벌써 "무책임한 불법파업"을 때리며 노조에 대한 동조여론을 되돌리려 하고 있다 (어제 조사에서 반이상의 뉴욕시민들이 노조를 지지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마지막 뉴욕교통당국이 노조가 요구했던 많은 부분들을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는 이유는 새로 입사할 노동자들에게 기존 노조원들의 의료보험과 연금부담을 전가하려는 뉴욕교통당국의 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 그 안을 받아들였을 때 같은 회사 안의 노동자들 사이에서 생길 수밖에 없을 위계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뉴욕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공기업의 노조에서 이런 안이 받아들여지게 되었을 때의 파장효과 때문이다.

 

기존 노조원들의 이해가 아닌 보다 장기적인 노동자들의 이해를 위해, 자사 노조원들만의 이해가 아닌 보다 광범위한 노동과 노동운동의 이해를 위해 TWU (Transit Workers Union)는 파업을 결정했다. 자본가들이, 정부가, 언론이, 심지어 주류 학자들이 이런 동기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야 분명하다. 하지만 지하철/버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감내해야할 피해와 비용에?불구하고 노조의 결정을 굳게 지지하고 있다.

 

미국 노동조합운동을 떠올려 보면, 아니 세계 어디의 노조운동을 봐도 보기 드문 결정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이 결정을 보며 꽤나 흥분해하고 있다. 뉴욕 지하철/버스 노동자들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파업이 얼마나 갈 지, 그게 어떻게 귀결될 지와 무관하게 이들은 노동자들을 개별화시키고 일회용 소모품으로 만들어버리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몰아치는 이 시대에 끈끈한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이, 고귀한 인간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고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미래의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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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모습 [알헨티나에서 열리는 미주 정상회담과 그를 둘러싼 투쟁들에 부침]

 

북미와 남미를 가로지르는 자유무역지대에 대한 (적어도 애초 미국이 가지고 있었던 계획과 같은) 기대는 물 건너 갔다고 봐도 될 듯 하다. 지금은 어느 누구도 FTAA가 애초의 문안대로 통과될 것이라 보고 있지 않다.

 

신자유주의의 거센 파도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저항이 수백년 외세와 자본에 의해 고통받았던, 그렇기에 종속이론과 같은 이론이 처음 제기되었던 남미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최근 들어 남미의 많은 인민들은 선거를 통해 신자유주의의 거센 압력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줄 대리인들을 선출하고 있으며 거리에서의 저항을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분명히 내고 있다.

 

거시역사적으로 보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이 시기는 여러모로 거대한 변혁기이다.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의 등장과 더불어 형성되기 시작했던 초국적 경제/정치질서는 이전까지 한 세기 넘게 지구를 지배했던 민족국가 단위의 국제간 질서를 대체해가고 있다. 사회주의권의 몰락의 시기와 겹치며 등장한 신자유주의의 이념이 전지구를 휩쓸며 국가간 그리고 개인/집단간 더 큰 빈부격차를 만들어내고 또 수많은 인민들을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으나, 그에 대한 저항 또한 조금씩 그 틀을 갖춰가고 있으니.. 모든 모순은 그 모순이 지양되는 방식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  

 

봉건제 말기 대대로 경작해왔던 땅을 떠나 도시로 갔던 농노들은 자신들의 선택이 자본주의의 등장을 완성해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고 1789년 바스띠유 감옥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던 빠리지안들은 자신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프랑스 혁명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날 거대한 변화의 시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허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거시적인 변화라는 것이 결국은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을 살아가는 개인 하나하나의 참여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 그 "참여"의 내용을 무엇으로 삼느냐에 따라 역사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

 

하여 싸우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것이 가부장적 문화를 둘러싼 가정에서의 싸움이건, 권위주의를 둘러싼 직장에서의 싸움이건, 경제불평등의 문제를 둘러싼 노동현장에서의 싸움이건, 姸╂愍꽂??탈을 쓴 제국주의에 대항한 싸움이건.. 싸우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런 싸움들이야말로 역사의 진행방향과 속도, 그 범위를 조정해나가는 과정, 역사의 진로를 결정해가는 과정, 그리고 이 과정에 대한 지배권을 둘러싼 싸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싸우는 사람들이 손을 맞잡을 수 있을 때, 그 때가 바로 우리가 바라는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는 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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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리나와 &quot;두 개의 미국&quot;

 

 

연일 TV와 라디오, 신문과 인터넷을 가득 채우고 있는 뉴올린즈를 비롯한 남부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 사진과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이천년전 베세비우스 화산의 폭발로 도시 전체가 날라갔던 폼페이가 떠오른다. 그때는 지글거리는 용암에 도시가 잠기고 일주일전 뉴올린즈는 짜디짠 바닷물에 도시가 잠기고.. 그 와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는 집계조차 안되고.. 아직도 지붕만 남겨둔채 물에 잠겨버린 도시에는 시체가 둥둥 떠다니고.. 지옥이 따로 없다.

 

오늘 아침 인터넷 한겨레를 보았더니 거기에 한 특파원이 뉴올린즈에서 탈출한 한 30대 한국인에 대한 기사를 실었더랬다. 기사를 썼던, 전부터 참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해왔던 기자/특파원은 지옥과도 같은 뉴올린즈를 묘사하고자 했던 것 같고 나름대로 성공하지 않았나 싶다. 이 기자양반은 [슈퍼돔은 암흑 무법천지, 너무 무서워 뜬눈 지새” 아들과 함께 극적 탈출한 두민영씨]라는 센세이셔널한 제목을 붙여 놓고 두씨의 어여쁜 얼굴사진까지 올려놓았는데.. 한동안 가장 많이 본 기사에 머물러 있었으니 성공한 셈.. 문제는 기사에 아무런 분석없이 그 "지옥"이 오로지 흑인들이 만들어낸 "암흘 무법천지" 때문이라는 식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것.. 한두해도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기사 써보내며 조선이나 동아의 기사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한겨레의 작태에 구토가 나올 지경이다.

 

그 기사에서도 나와 있듯, 두민영씨와 그 아들은 어떤 연유에선지 "극적"으로 도시탈출에 성공하였고 안전한 뉴욕에 와있는데.. "무법천지"를 만들고 두씨를 "너무 무서워 뜬눈으로 지새"게 만들었던 흑인들의 대부분은 여전히 "다시 생각하기도 끔찍한" 그곳을 못 벗어나고 있으니 이는 또 어떤 연유에서일까?  

 

어쨋거나 카트리나는 미국에 또하나의 전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카트리나에 대한 부시의 대응, 그리고 카트리나가 불러온 피해의 인종/계급적 성격은 미국 사회에 카트리나가 몰고 왔던 비바람 만큼이나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부시는 이미 엄청난 정치적 타격을 받게 되었고 한동안 잠재되어 있던 "인종/계급" 논쟁이, "두 개의 미국"에 대한 비유가 수면 위로 불거지고 있다. 9/11이 가져온 미국의 통합효과는 카트리나로 인해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미국 적십자의 -우리로 치면 "온정의 손길" 같은- TV 프로그램에 나왔던 떠오르는 슈퍼 랩퍼 kanye west의 분노에 찬 절규.. 그는 전국 생방송 프로에서 시종 떨리는 음성으로 부시를 마구마구 비판하다가 막판에는 "부시는 우리 흑인, 가난한 이들을 신경쓰지도 않는다 (w bush doesn't care about us blacks and the poor)"고 외쳐대 갑자기 광고가 나오고 방송사(NBC)의 "이 멘트는 우리 방송사의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어쩌고 하는 자막이 나오고..

 

인종-계급 논쟁.. 70년대부터 race-class debate로 정립된 논쟁은 미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감자이다. 이것이 터지려 할 때마다 미국사회의 지배자들은 떡고물을 던져주어야만 했다. 던져진 떡고물을 가장 빨리 받아물었던 이들은 jessy jackson같이 돈많은 celebrity 흑인들이었다. 그들은 그 떡고물에 흑인사회를 진정시키고 흑인들로 하여금 다시 민주당에 가닥없는 희망을 보내게 만들었다.

 

머 항상 뻔한 이야기.. 뻔한 이야기는 항상 뻔한 방식으로 유야뮤야되기 나름이지만.. 글쎄, 미국사회의 보수화가 그 어느 때보다 심한 요즘,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진 요즘, 그런 와중에서도 흑인들의 "희망" 민주당은 계속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못들은 채 하는 요즘인데.. 이번에도 "뻔한" 결과만을 보여줄 것인가? (흠,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닌듯..)

 

아래에는 내가 가입한 메일링리스트 통해 받은 기사 하나. 홍수처럼 쏟아지는 기사와 분석글들.. 읽을만하고 훌륭한 글들 참 많았지만 왜 이 글을 번역하기 시작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음.. 아마 아침에 읽었던 한겨레 기사 때문? -_- 혹은 사회주의 쿠바와의 비교 때문? ^^

 

어쨌건 어느 나라 어느 사회나 하나의 나라 하나의 사회만 있는 것은 아닐지니.. 그 환상을 깨는 것이 가장 큰 과제렷다!

 

 

 

=====

두 개의 미국

By Marjorie Cohn

지난 9월, 시속 160마일의 강풍을 동반한 카테고리 5의 허리케인이 작은 쿠바섬을 강타하였다. 그 허리케인이 도달하기 전 150만명이 넘는 쿠바인들은 안전한 지대로 대피했었다. 허리케인이 주택 20000 채를 날려버렸지만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쿠바 대통령 피델 카스트로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뉴멕시코 대학 사회학 교수이자 라틴 아메리카 전문가인 넬슨 발데스 박사에 따르면 그것은 "[쿠바의] 시민방위 시스템은 커뮤니티에 뿌리막고 있다. 사람들은 떠나기 전 어디로 가야할 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발데스는 "쿠바의 지도자들은 TV에 나타나고 또 책임을 진다"고 말한다. 이걸 카트리나에 대한 조지 부시의 대응과 비교해보라. 카트리나가 걸프만 일대를 강타했을 때 그는 골프를 치고 있었다. TV에 나타나 [카트리나에 대한 대응 보고를 하기까지] 3일이 걸렸고 폐허가 된 지역을 방문하기까지는 5일이 걸렸다. 지난 목요일 뉴욕타임즈는 사설을 통해 "어제 대통령의 행동은 너무나 안이하여 무관심의 경지에까지 이르렀으며 그가 보였던 반응의 그 어떤 부분도 그가 이 위기의 실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주지 않는다"며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발데스에 따르면 쿠바에서는 "사람들을 경기장에 쑤셔넣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대피소들에는 커뮤니티에서부터 함께 움직인 의료진들이 있다. 쿠바에서는 가정의가 있고 그들은 동네 주민들과 함께 대피하게 된다. 그들은, 예를 들어, 누가 인슐린을 필요로 하는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발데스의 관찰에 의하면 그들은 또한 동물과 수의사, TV와 냉장고도 함께 대피시킨다. "하여 누가 자신들의 물건을 훔쳐갈까 두려워 대피하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이 없다."

허리케인 이반 [역주: 2004년 9월 멕시코만을 강타해 쿠바와 미국 남부지역을 집어삼켰던 허리케인] 이후, UN 재난본부의 위원장은 쿠바를 허리케인 대비의 모범사례로 언급했었다. 재앙본부 살바노 브리세노 감독에 따르면 "쿠바식 재난대비는 유사한 경제조건을 가진 나라들 뿐 아니라 더 많은 자원을 가지고서도 쿠바 만큼 자신의 주민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나라들에서도 쉽게 적용될 수 있다."

우리의 연방/지방 정부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계속 규모가 커져가기만 하는 허리케인이 뉴올린즈를 파괴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수없이 받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경고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 부시는 각 주에서 지구온난화를 규제하는 정책 입안하는 것을 막아왔고, FEMA(연방 긴급재난대책본부)를 약화시켰으며 [역주: 9/11이후 FEMA는 예산감축과 미국 본토방위청(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 산하로 편재됨], 뉴올린즈의 제방설치를 담당했던 공병단의 예산의 44%가 되는 7120백만불이나 감축시켜버렸다.


부시는 우리의 주 방위군과 주요 장비의 절반 가까이를 불필요한 이라크 전쟁에 보내버렸다. 뉴올린즈 재난본부의 월터 매스트리는 일년전 "모든 돈은 이제 대테러 방위와 이라크 전쟁을 위한 대통령의 예산으로 들어가버렸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지난 수요일 Editor and Publisher의 한 기사는 제방쌓기를 담당했던 공병단위가 "안 그래도 연방 세금감축으로 예산이 불안정한 조건에 그나마 있는 예산이 이라크 전쟁과 테러방지에 투입됨으로 인해 제방건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숨겨오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홍수와 허물어가는 제방에 대한 작업은 제대로 진행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알프레드 나오미, 뉴올린즈의 제방건설 프로젝트의 시니어 매니저는 "이 허리케인의 규모는 우리가 [주어진 시스템에서] 제공할 수 있도록 허락받은 보호의 수준 보다 훨씬 컸다"고 말한다. 

국토안전이 외국의 침입으로부터만이 아니라 심각한 자연재난으로부터 나라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을 의미하는 쿠바에서와는 달리, 부시는 우리의 국민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데 실패하였다. 어제의 뉴욕타임즈 칼럼에서 폴 쿠르그먼은 "가장 기초적인 수준에서 우리의 지도자들은 정부의 가장 본질적인 기능들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전쟁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국민들에게] 안전을 제공하는 일,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구하는 일, 그리고 제대로 된 재난대처를 위해 돈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역주: 있는 사람들에게] 절대로, 절대로 함께 희생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적었다.

 

지난 2004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부통령 후보 존 에드워즈는 "두 개의 미국"에 대한 이야길 했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구조대원들을 향해 총을 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로드니 킹에 대한 구타가 TV를 통해 전국으로 방영된 이후 [역주: 로드니 킹에 대한 경찰의 막무가내식 구타는 1992년 LA 폭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사건] 가난하고, 절망적이고, 배고픈 이들은 동네거리를 점거하고 방화/약탈을 하였다. 너무나 오랜 세월동안 표면 아래에서 숨죽여왔던 그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었다. 그게 지금 뉴올린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대부분 백인인- 우리, 특권을 누리는 우리는 또다른 하나의 미국의 그림을 제대로 관찰할 기회조차도 가지지 못해왔던 것이다.

할렘에 있는 아비시니안 침례고회의 칼빈 벋스 목사는 "이것이 인종-계급 문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카트리나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은 거의가 가난한 사람들, 가난하고 피부가 검은 사람이었다."

뉴올린즈 시장 레이 내긴[역주: 민주당 소속 흑인 시장]은 목요일밤 두껑이 열려버렸다. "수천이 이미 죽었고 매일 수천이 죽어가는 곳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재정을 받지 못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말이 되는 소리라 생각하는가?"


같은 날 미국 본토방위청 마이클 셸토프는 [카트리나 이후] FEMA와 다른 연방 기관들이 아주 훌륭한 일처리를 하고 있다고 떠벌였다. 

 

그러나, 내긴이 말하길, "그들은 졸라 거짓말하고 있다(feeding the people a line of bull). 그들은 계속 말을 돌리고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다. 일어나 멋 좀 제대로 해봐야는데 말이다"

 

약탈에 대해 묻자 시장은 몇몇 "돌대가리들(knuckleheads)"을 제하곤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물과 음식을 찾고자 하는 것"이라 대답했다.

 

내긴은 폭력과 범죄를 마약 공급이 끊겨버려 "마약 대신 무언가를 찾아 (looking to take the edge off)" 거리를 배회하게 되어버린 중독자들의 탓으로 돌렸다.

허리케인 이반이 쿠바를 덮쳤을 때 통행금지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탈이나 폭력은 없었다. 모든 이들은 같은 배를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반에 대한 쿠바 정부의 대비를 미국의 침략에 대한 오랜 대비와 비교해왔던 피델 카스트로는 "우리는 지난 45년 동안 허리케인 이반에 대비해왔다"고 말했었다.

지난 목요일, 쿠바 국회는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피해자들을 향해 연대의 메시지를 전했다. 메시지는 쿠바 인민들이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앨러배마의 피해를 전해듣고 있으며 그 소식들로 인해 고통과 슬픔에 잠겨 있음을 전했다. 메시지는 또한 가장 많은 사망자와 이재민 피해를 당한 것이 아프리칸 어메리컨(흑인), 라티노 노동자들, 그리고 가난한 자들이며 이들은 아직도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메시지는 전세계가 이 비극을 스스로의 것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결론내렸다.

=====

The Two Americas
By Marjorie Cohn

http://www.truthout.org/docs_2005/090305Y.shtml

t r u t h o u t | Perspective September 3, 2005

Last September, a Category 5 hurricane battered the
small island of Cuba with 160-mile-per-hour winds. More
than 1.5 million Cubans were evacuated to higher ground
ahead of the storm. Although the hurricane destroyed
20,000 houses, no one died.

What is Cuban President Fidel Castro's secret?
According to Dr. Nelson Valdes, a sociology professor
at the University of New Mexico, and specialist in
Latin America, "the whole civil defense is embedded in
the community to begin with. People know ahead of time
where they are to go."

"Cuba's leaders go on TV and take charge," said Valdes.
Contrast this with George W. Bush's reaction to
Hurricane Katrina. The day after Katrina hit the Gulf
Coast, Bush was playing golf. He waited three days to
make a TV appearance and five days before visiting the
disaster site. In a scathing editorial on Thursday, the
New York Times said, "nothing about the president's
demeanor yesterday - which seemed casual to the point
of carelessness - suggested that he understood the
depth of the current crisis."

"Merely sticking people in a stadium is unthinkable" in
Cuba, Valdes said. "Shelters all have medical
personnel, from the neighborhood. They have family
doctors in Cuba, who evacuate together with the
neighborhood, and already know, for example, who needs
insulin."

They also evacuate animals and veterinarians, TV sets
and refrigerators, "so that people aren't reluctant to
leave because people might steal their stuff," Valdes
observed.

After Hurricane Ivan, the United Nations International
Secretariat for Disaster Reduction cited Cuba as a
model for hurricane preparation. ISDR director Salvano
Briceno said, "The Cuban way could easily be applied to
other countries with similar economic conditions and
even in countries with greater resources that do not
manage to protect their population as well as Cuba
does."

Our federal and local governments had more than ample
warning that hurricanes, which are growing in intensity
thanks to global warming, could destroy New Orleans.
Yet, instead of heeding those warnings, Bush set about
to prevent states from controlling global warming,
weaken FEMA, and cut the Army Corps of Engineers'
budget for levee construction in New Orleans by $71.2
million, a 44 percent reduction.

Bush sent nearly half our National Guard troops and
high-water Humvees to fight in an unnecessary war in
Iraq. Walter Maestri, emergency management chief for
Jefferson Paris in New Orleans, noted a year ago, "It
appears that the money has been moved in the
president's budget to handle homeland security and the
war in Iraq."

An Editor and Publisher article Wednesday said the Army
Corps of Engineers "never tried to hide the fact that
the spending pressures of the war in Iraq, as well as
homeland security - coming at the same time as federal
tax cuts - was the reason for the strain," which caused
a slowdown of work on flood control and sinking levees.

"This storm was much greater than protection we were
authorized to provide," said Alfred C. Naomi, a senior
project manager in the New Orleans district of the
corps.

Unlike in Cuba, where homeland security means keeping
the country secure from deadly natural disasters as
well as foreign invasions, Bush has failed to keep our
people safe. "On a fundamental level," Paul Krugman
wrote in yesterday's New York Times, "our current
leaders just aren't serious about some of the essential
functions of government. They like waging war, but they
don't like providing security, rescuing those in need
or spending on prevention measures. And they never,
ever ask for shared sacrifice."

During the 2004 election campaign, vice presidential
candidate John Edwards spoke of "the two Americas." It
seems unfathomable how people can shoot at rescue
workers. Yet, after the beating of Rodney King aired on
televisions across the country, poor, desperate, hungry
people in Watts took over their neighborhoods, burning
and looting. Their anger, which had seethed below the
surface for so long, erupted. That's what's happening
now in New Orleans. And we, mostly white, people of
privilege, rarely catch a glimpse of this other
America.

"I think a lot of it has to do with race and class,"
said Rev. Calvin O. Butts III, pastor of the Abyssinian
Baptist Church in Harlem. "The people affected were
largely poor people. Poor, black people."

New Orleans Mayor Ray Nagin reached a breaking point
Thursday night. "You mean to tell me that a place where
you probably have thousands of people that have died
and thousands more that are dying every day, that we
can't figure out a way to authorize the resources we
need? Come on, man!"

Homeland Security Secretary Michael Chertoff had
boasted earlier in the day that FEMA and other federal
agencies have done a "magnificent job" under the
circumstances.

But, said, Nagin, "They're feeding the people a line of
bull, and they are spinning and people are dying. Get
off your asses and let's do something!"

When asked about the looting, the mayor said that
except for a few "knuckleheads," it is the result of
desperate people trying to find food and water to
survive.

Nagin blamed the outbreak of violence and crime on drug
addicts who have been cut off from their drug supplies,
wandering the city, "looking to take the edge off their
jones."

When Hurricane Ivan hit Cuba, no curfew was imposed;
yet, no looting or violence took place. Everyone was in
the same boat.

Fidel Castro, who has compared his government's
preparations for Hurricane Ivan to the island's
long-standing preparations for an invasion by the
United States, said, "We've been preparing for this for
45 years."

On Thursday, Cuba's National Assembly sent a message of
solidarity to the victims of Hurricane Katrina. It says
the Cuban people have followed closely the news of the
hurricane damage in Louisiana, Mississippi and Alabama,
and the news has caused pain and sadness. The message
notes that the hardest hit are African-Americans,
Latino workers, and the poor, who still wait to be
rescued and taken to secure places, and who have
suffered the most fatalities and homelessness. The
message concludes by saying that the entire world must
feel this tragedy as its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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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의 비극

 

누군가 어떤 은행이 곧 망할 거라는 소문을 퍼뜨린다. 아무런 근거도 없다. 소문을 내는 자가 믿을만한 위치(=고학력, 전문직업, 일정한 부)에 있을수록 그 소문은 설득력을 가지고 퍼져간다. 은행 고객들은 불안해하기 시작하고 사실여부를 따지려 한다. 그 와중에 예금을 다 인출해가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런 사람들이 생기니 옆에서 "헛소문일거야"라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곧 모두가 앞다투어 은행에 달려가 예금을 인출해가려 한다. 은행은 곧 현금 재고가 바닥나게 되고 망하게 된다.

 

극장에서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어디선가 연기 냄새가 난다. 영화 와중에 수군거리는 사람들 생기기 시작하더니만 잠시후 누군가 극장에 불이 났다고, 다 죽는다고 외쳐대며 출구로 뛰어간다. 다른 사람들 영문도 모른채 그 사람 따라간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에 출구로 빠져나갈 수 있는 인원은 제한되어있는 법.. 순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도 패닉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 출구로 몰린 탓에 출구마다 아수라장이 된다. 정작 불에 타죽은 사람은 없는데 사람들은 사람에 치어 죽고 밟혀 죽고 맞아 죽는다.

 

이런 사례들은 1950년대 후반 robert merton이라는 사회학자의 "자기충족적 예언 (self-fulfilling prophecy)"라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사례들이다. 인간의 판단과 행위가 나름대로 합리적 기초 위에 서있다는 이론적 가정들에 대해 가운데 손가락 벌떡 세우는 개념이 아닐 수 없다. 하나하나 개인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예컨데 은행 망하기 전에 돈 빼내야 하고 불 났으면 빨랑 도망가는 게 합리적이니까)의 집합적/사회적 결과는 가장 비합리적이고 비극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안목..  

 

그리고 오늘 또 그런 비극적 상황을 접하게 되었다. 

 

수만명이 넘는 이라크의 시이트 이슬람 교도들이 거리를 행진한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티그리스강을 건너는 아이마 다리에서 어느 순간 짧은 외침 하나가 튀어나온다: "자살테러다!!" 그 외침 하나에 수만이 넘는 인파의 행진은 순식간에 무너져버리고 사람들은 패닉하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그리고는 한순간에 폭탄 자살테러 몇개가 죽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버렸다.

 

하지만 "자기충족적 예언"이라는 개념으로 바그다드의 비극을 설명하는 것은 비극을 더 비극적이게 만드는 일이다. 그 이유는 이 개념이 기본적으로 역사특수적인 맥락을 초월하는 행위의 메커니즘을 드러내려는 보편성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이론/개념이든 "보편성"을 표방하는 이상 아주 구체적인 역사현실의 섬세한 "결," 즉 맥락을 어느 정도 버려야만 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보편성(universality)은 수많은 특수성(particularity)들의 발현이며 우리가 흔히 특수하다 여기는 현상들은 언제나 보편성이 작동되는 한도 내에서만 존재한다 (혹은 그렇다고 하며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경우 이런 게 다 j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오늘 바그다드에서 일어났던 참담한 결과를 접하며 오랜만에 그 j같음을 떠올려본다--어찌 천명에 달하는 보통 사람들의 죽음을 극장에서의 패닉과 비교할 수 있을까? 어찌 헛소문 하나가 사람들을 패닉상태로 몰고가 서로를 밟혀죽게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찌 이라크의, 바그다드의 시민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의 맥락을 젖혀 놓고 오늘의 비극을 말할 수 있을까? 어찌 천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개인적 합리성이 집합적인 수준에서 보였던 비합리적 결과"로 돌릴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왜 죽었단 말인가? 누가 그들을 죽였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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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노동운동의 분열을 보며

1950년대초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서로 다른 두개의 노동조합 연맹이었던 AFL과 CIO가 통합한 이후, 미국 노동운동은 냉전과 메카시즘을 거치면서 좌파가 거세되는 암울한 숙청을 겪었고 5-60년대 풍요의 확산에 힘입어 급격히 보수화되었다. 노동운동 지도부는 귀족화되었고 이들은 민주당과 강고한 결속을 보이며 양당체제에 기생해왔다. 
 
그러던 미국의 노동운동이 조금씩 다른(=상대적으로 급진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중반부터인데, 한편에서는 80년대 영국의 대처리즘과 더불어 신보수주의의 원조격인 미국의 "레이거노믹스"와 함께 불어닥친 전사회적인 보수화(=노동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와 90년대 들어 본격화되기 시작한 구조조정과 offshoring(=공장들이 통째로 멕시코 등 노동력이 싼 나라로 이전하는 것) 등 신자유주의의 효과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michael moore의 다큐멘터리로 잘 알려진 대로 디트로이트를 비롯해 핃스버그 등등 미국 전통의 산업중심지들은 무너지기 시작했고 90년대 중반부터 대규모 파업도 늘기 시작한다.
 
이런 변화를 제일 잘 간파했던 것은 당시 서비스 연맹(seiu) 위원장이었던 paul sweeny였고 그는 변화하는 노동정세에 맞게 전세계 노동형제들과의 연대를 부르짖고 또 조합내부의 민주주의를 주창하며 미국 노동조합운동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미국 내외 많은 좌파들은 그가 미국 노동운동의 질적인 변화를 가져다줄 지도자가 아닐까 적지 않은 기대를 걸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가 AFL-CIO의 위원장이 된 후로 당면해야 했던 장애물들은 너무 많았다. 미국 천삼백만 노동자들을 조합원으로 가지고 있는 AFL-CIO 내부 정치의식의 스펙트럼 차이를 조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왔다. "전지구적 노동연대"라는 구호는 멕시컨들이, 인도인들이,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직장을 빼앗아간다고 생각하는 노동자들의 의식과 애초부터 함께 가기 힘들었다. "조합내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며 하나의 정치적 슬로건을 밀어붙이는 것도 어불성설이었다. 정치적 구호의 주창자 뿐만 아니라 조직의 조정자로서의 역할도 떠맡아야 했던 sweeny의 입장이 점점 중도화(혹은 우경화)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21세기가 되며 UAW(자동차연맹)나 USWA(철강연맹) 등 전통의 노동조합 powerhouse들의 세력이 약해지는 대신 신자유주의의 피해를 직접적으로 보면서도 다른 나라로 보내버릴 수 없는 서비스 업종들과 그 안에서의 문제들이 늘어가면서 서비스 연맹이 새롭게 미국 노동운동의 강자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sweeny도 서비스 연맹 출신) 1999년 wto 각료회의를 무산시켰던 "시애틀의 전투(the battle of seatle)"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던 teamster union(덤프연대와 동격인)과 그 지도자 james hoffa도 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풀뿌리 조직화 전략을 통해 십년새 노조원을 20만명이나 증가시킨 서비스 연맹과 그 위원장 andrew stern과 트럭연맹의 hoffa로 대표되는 AFL-CIO내 한 무리의 세력은 sweeny의 뜨뜨미지근한 정책방향을 강도높게 비판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논쟁은 자원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터져나왔다. 이들은 AFL-CIO가 풀뿌리 조직화의 과제를 업수히 여기고 있으며 민주당에 로비자금으로 퍼붓는 돈을 조직화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이 이들이 AFL-CIO 조합원의 1/4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분담금의 1/6을 내고 있다는 것에 있었다.)
 
작년부터 이들의 비판이 거세어지기 시작했고 서비스 연맹의 앤드류 스턴(andrew stern)은 공공연하게 AFL-CIO 탈퇴를 시사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 문제는 AFL-CIO 내부에서의, 그리고 미국 좌파 일반에서 이라크 전쟁에 대한 대응과 더불어 가장 큰 논쟁거리가 되어버렸다.
 
그러더니 이번주부터 시카고에서 시작된 AFL-CIO 대의원대회에서 서비스 연맹과 트럭연맹은 탈퇴를 선언하고야 말았다. 주류 언론을 비롯해 많은 이들은 이를 AFL-CIO 위원장 sweeny와 서비스 연맹(SEIU) 위원장 stern 간의 파워게임으로 파악한다.
 
그리고 그러한 진단은 전적으로 옳다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그렇게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미국 노동운동 내의 논쟁이 AFL-CIO의 정책초점을 조직화에 맞추느냐, 지금처럼 의회내의 동맹세력 구축에 힘쓰느냐라는 형식 이외에 어떠한 내용도 담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sweeny 식의 정책이 기성 보수정당에 대한 노동운동의 의존성을 재생산한다는 점에서 비판당하는 것은 정당하나 이러한 내용은 stern의 비판에선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오로지 미국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조직화만, 숫자를 늘려야 한다는 것만 주장할 뿐 그러한 조직화가 어떠한 내용으로, 어떠한 새로운 노동자의식, 정치의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해선 한마디도 없다. 역설적이게도 stern은 신자유주의의 확산으로 인해 세력을 얻게 된 것일 뿐이지 그는 미국 노동운동에 대한 어떤 새로운 비젼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가 하는 말이야 바른 말처럼 들리지만 이쯤되면 도대체 이 사람 의도가 무엇인지 의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게다.
 
그러니 논쟁이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가 없게 되어버린다. 하여 전에 AFL-CIO의 정책고문을 하던 bill fletcher 같은 좌파는 지금의 논쟁이 "타이타닉에서 의자들을 다시 정렬할 뿐 배가 물에 빠지고 있다는 사실에는 무감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기도 하다. (맨아래 붙여놓은 글) 한마디로 지금의 분열은, 논쟁은 미국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내용없는 방식상의 차이, 즉 "최대한 의회내 원군 얻기" vs. "일단 조합원 숫자 늘리기"의 차이일 뿐이다. 그리고 내용없는 주장의 대립이 그나마 단일한 미국 노동운동의 조직을 둘로 쪼개고 있는 것이니.. "노동운동 위기 극복"이라는 논쟁의 초점 자체가 허무할 따름이다.
 
미국 노동운동의 상황은 허무하기 이를데 없지만, 동시에 많은 생각을 (그것도 무거운 걱정을!) 던져준다. 왜냐면, 오늘 미국 노동운동이 겪어나가고 있는 이 허탈한 상황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한도 신자유주의 체제에 밀착흡수되면서 산업구조의 변동을 이미 겪어나가고 있다. 새로운 영역에서 투쟁이 벌어지고 조직화가 이뤄지고 있는 반면 이미 어느정도 힘을 쌓아놓았던 영역에서는 급격한 보수화가 이뤄지고 있다. 금속산업이 언제까지 남한의 주춧돌이 될 수 있을지, 언제 현대중공업이 거제대우조선소가 중국으로 베트남으로 날라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새로운 경제의 핵심으로 자리잡은 IT산업은 철저하게 자본집중적인 분야와 비정규직으로 분산되는 구조 위에서 번성하고 있다. 
 
수십년을 거치며 30%대에서 10% 노조조직율로 떨어져버린 미국. 이와 별반 차이없는 오늘 남한의 상황. 그러나 남한의 노동운동이 겪어가야할 일들은 아직 더 많은 걸.. 이런 걸 떠올려 보며 마음 무거워지는 것, 걱정스러워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렷다. 
 
정치적 방향타를 잃어버린 노동운동은 이미 생명을 잃은 노동운동, 이익집단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행위와 의식이 변화하는 환경의 산물인 것 분명하지만 동시에 인간이 스스로를 둘러싼 환경을 변화시키는 주체이기도 하며 따라서 교육자 자신을 교육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은 항상 새겨둘 일이다. 맑스는 너무나 옳다..
 
 
아래 복사해 붙인 글들:
- washington post 보도기사:트럭/서비스 연맹 AFL-CIO 떠나다 (teamsters, seiu leave afl-cio)
- new york times 분석기사: 야망이 노동의 분열을 촉발하다 (ambitions are fueling a division of labor) 
- znet에 실렸던 bill fletcher와의 인터뷰: 노동운동은 심각한 좌회전이 필요하다-노동운동의 미래가 시대에 뒤떨어진 보수주의의 지배를 받고 있다 (labor needs a hard left turn-bill fletcher says the current debate over labor's future is dominated by an outdated conservatism)

 

 
 
 

washingtonpost.com

Teamsters, SEIU Leave AFL-CIO

By Thomas B. Edsall
Washington Post Staff Writer
Monday, July 25, 2005; 5:48 PM


 

CHICAGO, July 25 -- The Teamsters and the Service Employees International unions Monday bolted from the AFL-CIO, splitting organized labor into two factions as the movement struggles to reverse 50 years of declining membership and muscle in the workplace.

 

"In our view, we must have more union members in order to change the political climate that is undermining workers'''' rights in this country," said Teamsters President James P. Hoffa. He accused the AFL-CIO under the leadership of John J. Sweeney of "throwing money" at Democratic politicians instead of investing in organizing campaigns.

 

Together, the two unions represent just more than 3 million workers, nearly a quarter of the 13 million members in the 56 unions that made up the AFL-CIO. The Teamsters and SEIU pay a total of $20 million in dues to the AFL-CIO, which has a budget of $120 million.

 

Sweeney, in a speech to delegates to the AFL-CIO convention here, angrily denounced Hoffa and Andrew L. Stern, the SEIU president.

 

Sweeney called their action "a grievous insult to all the unions. . . . Most of all, it is a tragedy for working people." The 900 delegates gave Sweeney a standing ovation when he told them "our future should not be dictated by the demands of any group or the ambitions of any individual."

 

The Teamsters and SEIU were among four major unions that announced Sunday they would boycott the labor convention. The other two unions, which are also considering leaving the AFL-CIO, are the United Food and Commercial Workers and Unite Here, which represents hotel, restaurant and garment workers.

 

In addition to those four unions, two others, the United Farm Workers and the Laborers International Union, have joined the insurgent Change to Win Coalition. These two unions are not boycotting the convention, but their presidents pointedly did not rule out leaving the AFL-CIO in the near future.

 

Stern, whose SEIU is the largest of the unions in the AFL-CIO, has led the insurrection calling for major reorganization and strengthening of the powers of the AFL-CIO and for the retirement of Sweeney, who was Stern''''s mentor in the labor movement and his predecessor as SEIU president.

 

Stern contends that to survive, unions must be merged into much larger, but fewer, organizations equipped to take on global companies and large chains, especially Wal-Mart. In addition, Stern contends that union organizing efforts must be carefully segmented by industry sector to prevent wasteful inter-union competition and to ensure that specific unions are given the responsibility to build strength and density in specific areas, such as health care, retail services or transportation.

 

The labor schism threatens to leave this critical wing of the Democratic Party split for the election of 2006 and probably 2008. Organized labor contributes tens of millions of dollars and workers for Democratic get-out-the-vote efforts.

 

Sweeney, 71, has rejected calls to retire and Sunday attacked the convention boycott as "an insult [to] union brothers and sisters, and to all working people. . . . It''''s fundamentally wrong to use working people''''s issues as a fig leaf for a power struggle."

 

The decision to boycott the convention angered leaders and ranking officials of the unions that plan to remain in the federation. Edward J. McElroy, president of the American Federation of Teachers, accused Stern and his allies of bargaining in bad faith. "Their stance was that unless you agree with their position, they won''''t make an agreement," he said.

 

R. Thomas Buffenbarger, president of the Machinists, said Stern and other dissidents "showed total disrespect for their colleagues who sat through the negotiations."

 

© 2005 The Washington Post Company

 
 
 
 
July 26, 2005 (NYT)

Ambitions Are Fueling a Division of Labor

CHICAGO, July 25 - The huge split in organized labor has been fueled by stagnant living standards for many workers, by the ascendancy of the service sector and by labor''s lack of success in politics and unionizing workers. But as much as anything, the schism reflects the conflicting ambitions of two titans of labor, John J. Sweeney, the president of the A.F.L.-C.I.O., and his onetime protégé, Andrew L. Stern, the president of the Service Employees International Union, until now the largest union in the labor federation.

 

The split was sealed on Monday when Mr. Stern and James P. Hoffa, president of the Teamsters, announced that they were pulling their two unions out of the A.F.L.-C.I.O., just as the federation was beginning its 50th anniversary convention here.

Mr. Stern, 54, who is known for his eloquence, drive and impatience, had for months been pushing his membership, and the leaders and members of other unions, to break away, in a move he insists is needed to reinvigorate labor.

 

Deepening the rift, two other major unions, the United Food and Commercial Workers and Unite Here, which represents apparel, hotel and restaurant employees, are boycotting the convention and have indicated that they would also leave.

 

"We are in the midst of the most significant and profound transformative moment in economic history, and workers are suffering," Mr. Stern said at a news conference. "Our goal is not to divide the labor movement, but to rebuild it so working people can once again achieve the American dream."

 

Mr. Sweeney and Mr. Stern both say their overarching goal is to lift American workers, but they have different visions on how to get there. Mr. Sweeney, 71, has led the federation for a decade and prefers to work by consensus, nudging the federation''s unions to do more organizing. But many have dragged their feet, and Mr. Sweeney says federation rules bar him from punishing them. For him, cooperation and solidarity are paramount.

 

Mr. Stern, on the other hand, wants far more aggressive recruitment efforts and the ability to crack down on labor leaders who fall short of organizing goals. Mr. Stern and his allies have called for rebating half the federation''s budget to individual unions to spur organizing, but Mr. Sweeney protests that such a move would cripple the federation''s efforts in political campaigns, job safety and other areas.

 

While Mr. Stern and his allies say their walkout is based on fundamental principles about what is the best course to help American workers and unions, their move has generated huge resentment and anger among other labor leaders. While Mr. Stern says he is charting a much-needed, more aggressive course for labor, other union leaders accuse him of a power grab and fault him for repeatedly rejecting Mr. Sweeney''s offers of compromise.

 

"It is a grievous insult to all the unions that helped us," Mr. Sweeney said in his keynote speech to the convention. "But most of all, it is a tragedy for working people. Because at a time when our corporate and conservative adversaries have created the most powerful antiworker political machine in the history of our country, a divided movement hurts the hopes of working families for a better life."

 

Then, in a statement that won rousing applause and that many union leaders said was directed at Mr. Stern in particular, Mr. Sweeney said: "And that makes me very angry. The labor movement belongs to all of us, every worker, and our future should not be dictated by the demands of any groups or the ambitions of any individual."

 

The pullout by the two giant unions is a major blow to the federation, which until Monday had 56 unions and 13 million members. The departure of the Service Employees International Union, with 1.8 million members, and the Teamsters, with 1.4 million, takes away about one-fourth of the A.F.L.-C.I.O. membership. Those members paid about $20 million a year in dues, representing one-sixth of the federation''s budget.

Standing alongside Mr. Stern at a news conference, Mr. Hoffa seemed to share his impatience. "What was done at the A.F.L.-C.I.O. was not working," he said. "We''re going to do something new. That is our message."

 

The service employees'' departure is a particular slap at Mr. Sweeney because it is a union that he headed before becoming the A.F.L.-C.I.O.''s president.

 

In recent months, Mr. Stern has voiced impatience that the labor federation and other unions have had so little success in recruiting members, while his union has jumped to 1.1 million members, from 900,000 a decade ago. That reflects the rapid growth in the service sector, for instance among janitors and nursing home aides, and also reflects the successful unionization tactics of his union.

 

Many union leaders agree that Mr. Stern has been emboldened to go his own way because of the service employees'' singular success in organizing and because of the explosion in the service sector.

 

At the news conference, Mr. Stern said, "Today, S.E.I.U. is respectfully making its own choice to go in a different direction that we believe will work for working people."

 

Many labor leaders have openly said that they attribute Mr. Stern''s departure to arrogance, to a "my way or the highway" approach and to a desire to head a new power bloc.

"This is not about change," said Leo Gerard, president of the United Steelworkers of America. "This is not about creating better lives for our children or grandchildren. This is nothing but a disguised power grab. They should be ashamed of it."

Officials involved in the negotiations that sought to prevent a schism said some union presidents so disliked Mr. Stern that they had pressured Mr. Sweeney not to grant meaningful compromises to him.

 

At the same time, Mr. Hoffa and Joe Hansen, the president of the food and commercial workers'' union, said Mr. Sweeney had shown far too little willingness to make compromises to prevent unions from quitting the federation.

 

One issue that separates the sides is how much of the federation''s money is spent on recruiting workers. Mr. Hoffa often asserted that the A.F.L.-C.I.O.''s leaders were spending too much on politics and not enough on organizing.

"They dramatically increased the amount of money to throw at politicians," Mr. Hoffa said on Monday.

 

But Mr. Sweeney and his allies argued that it was important for unions to spend generously to elect politicians who might help create a climate favorable to unions and union organizing.

Even as Mr. Stern and Mr. Hoffa seceded, they adopted some conciliatory language, saying their unions would not raid other unions to try to recruit workers. And with many Democrats and union officials worrying that the schism in labor would weaken labor''s effectiveness politically, Mr. Stern said he hoped to continue cooperating with the A.F.L.-C.I.O. on politics. Among Democrats, there is considerable fear that the labor split will undercut the A.F.L.-C.I.O.''s role as a highly effective coordinator for the nation''s unions in lobbying and political campaigns.

 

"There''s a lot of anxiety any time one of your principal allies is split, especially given the amount of resources that the other side has amassed against us," said David Axelrod, a Democratic consultant. "The White House, the Republican Party, would like nothing better than to put labor out of business as a political force."

 

 

 

 

 

 

 

ZNet | Labor

Labor Needs a Hard Left Turn
Bill Fletcher Says the Current Debate Over Labor''s Future is Dominated by an Outdated Conservatism

by Bill Fletcher and David Bacon; TruthOut; July 23, 2005

Bill Fletcher is president of TransAfrica, a national policy organization in Washington dealing with issues surrounding Africa. After the reform administration of John Sweeney was elected in 1995, Fletcher became the labor federation''s director of education, and later an assistant to AFLCIO President John Sweeney.

 

Forced out over his radical politics, Fletcher has since proposed a wide-ranging set of ideas for a truly new direction for US unions. They clearly need it. As the AFL-CIO prepares to meet in Chicago on Monday, the percentage of organized workers in the US (overall 10%) is lower than it''s been since the 1920s. While unions are debating structural changes, and some threaten to leave the AFL-CIO entirely, Fletcher says labor''s problems arise because unions have stopped being the radical organizations they once were. The current debate is too limited, he says. Instead, the labor movement needs a profound change in political direction. He was interviewed this week by labor journalist David Bacon.

 

Q: I''d like to ask you about the criticism you''ve been leveling at the debate itself, more than either of the two parties in it. You say the Service Employees International Union (SEIU) and the AFL-CIO itself are not really fighting about the right issues. Quoting from your most recent piece, you say, "these contentious debates make a dangerous assumption: that the decline of unions is largely the fault of the structure of the AFL-CIO and/or how the AFL-CIO has operated." What do you mean by that?

 

A: First, the bulk of the resources in the union movement don''t exist at the level of the AFL-CIO, while individual unions themselves are responsible for organizing. This is a prerogative they have cherished very deeply. In this debate about the AFL-CIO and its structures, there''s very little discussion about the actual practice of the various affiliate unions.

What I feel is missing from this debate, is a thoughtful, rigorous analysis of the economic and political conditions we''re facing and the implications they have for the kinds of organizing unions should be doing, and the structures they need to accomplish that. In the absence of that analysis you can make all kinds of structural suggestions but they may not necessarily get to the problem.

Our problems include what''s happening externally - the economic and political situation - and the lethargy that exists within the labor movement. Our unions suffer from a profound conservatism, a failure to recognize the kinds of changes that are going on, and therefore our need for a very visionary movement.

 

Q: You mention the conservatism of the US labor movement. I think for anybody who''s had much contact with unions from South Africa to Central America, even Canada, we seem quite conservative by comparison.
During the Cold War, those people who really did have a radical vision were mostly driven out of our labor movement. So aren''t'' you expecting a lot? Where would a more radical vision, like the one you''re describing, come from?

 

A: I am expecting a lot, but what I''m suggesting is what I believe is necessary, not simply wishful thinking. If we''re going to have a renewed labor movement, these are steps we need to take. As they say, we can keep rearranging the deck chairs on the Titanic, but the ship is sinking. My concern is, what do we do? What kind of analysis do we need? And, therefore, what changes do we need in the practice of trade unionism in order to succeed and build power?

Does that mean radical solutions? Damn right it does! We need a different kind of leadership. Most of the leaders in the labor movement really should retire. Unfortunately, people have gotten very comfortable, but, more important than that, they''ve made certain wrong assumptions about the politics and economics of this country. Unions are not accepted in this country by the governing elite. They''re not accepted by capital.

 

Q: One of the issues you point to is globalization, and how unions approach the way capitalism operates on an international scale. The Service Employees have a proposal in their 10-point list that talks about how unions should conduct their international relationships. It calls for unions to find partners in other countries, even to organize them, in order to face common employers. That''s what I heard AFL-CIO Secretary Treasurer Richard Trumka say in New York ten years ago, when the Sweeney administration was in the process of being elected. At the time this seemed like a big change from the Cold War, that unions would cooperate with anyone willing to fight against our common employers. Now this doesn''t seem so radical. What''s the limitation there that you''re pointing out?

 

A: You''re right, it''s not radical anymore. A number of unions have been doing this, like the UE and the Steel Workers. It''s an important example of what I call "pragmatic solidarity," and it should be done. But what''s missing from this discussion is a response from the labor movement to US foreign policy.

 

Q: Like the war for instance?

 

A: Exactly, like the war, because the international situation is about more than multinational corporations. Corporate globalization and military intervention are intertwined. In the labor movement there''s an absence of understanding about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That''s why we get manipulated in the response to 9/11, by justifications for the war. Unions in the rest of the world are not simply asking us whether we will stand with them against General Electric, General Motors, or Mitsubishi. They want to know: What is your stand about the US empire, about aggressive wars or coups de etat? If we have nothing to say about these things, how can we expect to have any credibility?

 

Q: In some ways it seems to me that US corporations operating in a country like Mexico or El Salvador are, in some ways, opportunistic. They''re taking advantage of an existing economic system, and trying to make it function to produce profits. They''ll exploit the difference in wages for instance, or their ability to require concessions from governments in order to set up factories in their countries. The question unions rarely ask is what causes poverty in a country like El Salvador? What drives a worker into a factory that, looking at it from the United States, we call a sweatshop? What role does the US play in creating that system of poverty?

 

A: You''ve got it. In our union movement, we don''t have that kind of discussion. We destroy education departments, or we turn education into simply a technical matter. We don''t really work with our members to develop a framework to answer these questions. So our movement becomes ineffective in fighting around these issues. This is part of what is missing entirely from this current debate over how our unions are structured. Simple solutions are being put forward for very complex problems, often with a high level of arrogance, from both sides.

 

Q: I see the AFL-CIO campaigning in Washington against CAFTA, for instance. Labor lobbyists will go up to Capital Hill and mobilize pressure on Congress to defeat it.  To a certain extent, unions will go out to
their local affiliates and will ask that members make phone calls or write letters to Congress. But what seems to be missing is what you''re pointing to - a kind of education at the base of the labor movement.
Actions in Washington often don''t have a lot of force behind them because there''s so little effort to create a conscious, educated union membership that''s prepared to take action.

 

A: The root of this problem is a kind of American pragmatism that disparages education. There''s also fear that an educated membership may rise up and demand change. But that''s why, in this current situation, people need to demand more from both sides of the debate.

For one, the whole notion of threatening to pull out of the AFL-CIO is, at best, a tactical mistake. Those people who want change lose credibility and the moral high ground. That''s turned this debate towards an extremely personalized exchange, like firing missiles across the demilitarized zone. What''s needed right now, desperately, are voices saying, let''s pull back for a moment and engage in the kind of discussion we need. For example, I read a letter from Tom Buffenbarger, president of the Machinists Union. I disagree with him on virtually everything, but he asked a very important question. What percentage of the workforce do we actually need to unionize to make a qualitative change in our situation? It leads to asking ourselves, what do we mean by power?

 

Q: You mean people say we need more members, but don''t say how many or in what industries?

 

A: Exactly, and if you say we need to organize 30% of the workforce to make a qualitative change, that''s an enormous difference from where we are. But at least if you ask the question, then you can start talking about the structure unions might need, or the strategic implication of that objective. Those who are talking a lot about restructuring might have to propose even more radical ideas in order to accomplish a goal like that.
But as the saying goes: if you don''t know where you''re going, any road will get you there. When you have various structural solutions that are put forward in the absence of clear strategic objectives, it''s really just a gut-level response.

 

Q: Talking about organizing 30% of the workforce seems so far away that I think it''s hard for people to imagine what might really be necessary to make such an advance. Despite the best, even spoken, intentions, since Sweeney came in 10 years ago there was only one year in which the AFL-CIO increased the percentage of union members in the US work force. Every year other than that we''ve still gone down. And I don''t think it''s for lack of trying, although we can talk about what trying consists of, and what the drawbacks to those efforts were. Nevertheless, I remember when I was an organizer in the late 1970s and 1980s. There was no consensus then in the US labor movement that we even needed to organize new members at all. So let''s take one of the barriers that inhibit that kind of growth - racism in the US workforce, and racism in the US labor movement as well. How should the labor movement discuss that issue, that would be different from the kind of debate going on right now?

 

A: The discussion of gender or race right now mainly ends up focusing on diversity - how many people are at the table, how many people are in leadership? This is a discussion of whether or not the racial and sex complexion of the leadership of the labor movement reflects its base. While that''s important, the more fundamental discussion is one of inclusion. Who is making the decisions? You can have a union executive board where 30% of the leaders are people of color.
But if mostly white people are still making the decisions, it''s basically window dressing.

What I don''t hear is a discussion about changing the culture of unions, so that we change the decision- makers, and are really inclusive. That would represent a dramatic change. Moving against racism, against sexism, means changing the way we do business within unions. The informal networks of the people who actually make decisions now will have to be broken up.

 

Q: What else would be different?

 

A: One common experience for most workers of color is that we are often asking community-based organizations to do something for us. But it''s not always a two-way street. We have to start building partnerships with communities of color, and that means back and forth. It does not mean we are going to agree all the time, but it means unions need to be there around issues communities feel are important. Years ago in St. Louis and Boston, union locals actually started and helped to build organizations in working-class communities. They took the issue of race very seriously.

Unions have missed the boat by not taking up an urban strategy. Right now working class people have to fight just to stay in the cities. They''re being driven out, and this has a disproportionate impact on workers of color. Unions and central labor councils need to look at economic development, and issues of housing and job creation. That would start to give us something we lack, a compelling vision - something people will rally to. I find the current debate very disturbing because it often feels technical and corporate. What''s missing is any sense of why hundreds of thousands, if not millions, of unorganized workers should rally to unions. Unions were once a source of inspiration to community-based organizations, particularly in the ''30s and ''40s. You don''t feel that today. We need a very different approach if we are going to organize millions of unorganized workers.

 

Q: Of course, these days joining a union usually means risking your job.  You talk about what the labor movement puts in from of workers to inspire them to do this. Primarily, the kinds of arguments made to workers are economic - that they need a wage raise, more security, and pensions that aren''t going to disappear. They need healthcare coverage, which is becoming increasingly unavailable. These are all pretty important items. But you''re talking about a kind of vision that goes beyond that, aren''t you?

 

A: I definitely am. We absolutely need to appeal to people to act on their immediate economic interests. But we''re also talking about a movement that inspires people with a broader vision of social justice, not simply what happens in the workplace. So we also need to be flexible about the forms of organizations people join. Sometimes it might be associations, or groups based on occupation. At other times people join groups based on industry, or craft.

 

Q: Are you saying that you want workers to be against the system? Do you think that that''s too much?

 

A: I think we have to take on the system. We have to be prepared to talk about something we''ve been afraid to say out loud - that capitalism is harmful to the health of workers. It crushes workers every day. Our standard of living is declining. People are fighting everyday to pay for health insurance, if they even have it. Workers often have to choose between paying their rent, or their mortgage, and having healthcare. So yes, it means taking on the system. There''s something fundamentally wrong with the priorities of this society, and we have to be courageous enough to say it.

 

Q: Looking back at labor''s history, there were two eras when a substantial section of the labor movement did say things like that. During the period of the Wobblies in the early 1900s, or the period of the CIO during the 1930s, the left was strong. There were organized political parties critical of capitalism, which called for other kinds of social systems. Today that kind of left in the United States is very weak and small. So who is able to put forth that kind of vision?  The labor movement itself? Who can do what left wing parties did in that earlier time?

 

A: We need left-wing political parties, desperately. We need a voice that''s explicitly anti-capital, with no apologies. But we can''t sit back and wait to build them, before we can do anything else. Within the union movement, we can have that struggle too. In the past, the Wobblies and the CIO were also influenced by the existence of radical workers, who were looking for radical answers. That''s one reason why we need to be open about having debates about how the way this country, or even the planet, is going.

 

Q: Do you think the debate that''s taking place in the AFL-CIO now, over structure, could become a larger debate over politics?

 

A: It has to be revamped. Currently, it doesn''t hold a candle to what we''ve had in the past, or what we need now. The current debate is not only of very little use, but it''s potentially very destructive. In the absence of real political discussion, personal attacks have emerged. So we end up with assaults on John Sweeney, or Andy Stern. The debate ends up becoming very personal, rather than a real discussion of substance, about the future of our un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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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애자 혁명

한 영역에서의 제도변화가 어떻게 다른 영역에서의 (초기 의도와 무관할 수도 있는) 결과(repercussion)를 낳게 되는가에 대한 훌륭한 역사분석이자 튀는 비평글. 뉴욕타임스 7월 5일자 칼럼.


이성애자 혁명 (The Heterosexual Revolution)

Stephanie Coontz

지난 일주일은 동성 결혼에 반대하는 이들에겐 힘겨운 한 주였다. 먼저 캐나다에서 그 다음에는 스페인의 입법자들이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결정을 내렸고 이로 인해 동성결혼을 금지시키기 위한 헌법수정을 요구하던 미국 보수주의자들도 자신들의 주장을 재고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기독교 단체 “가족에 초점두기(Focus on the Family)”의 제임스 답슨은 그러한 금지조항이 없다면 지난 오천년 동안 우리가 알아왔던 결혼은 사라질 것이라 경고한 바 있다.

[하지만] 결혼과 가족에 대한 나의 연구 결과들은 나로 하여금 답슨씨에 동의할 수 없게 만든다. 답슨씨의 경고는 삼십여년 너무 늦게 나왔다. 오천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적 결혼은 이미 끝장나 버렸다. 그런데 이 혁명의 선봉에 섰던 것은 게이나 레스비언들이 아니었다. 이성애자들이었다.

결혼을 의무성을 띤 경제적/정치적 제도가 아니라 자발적인 애정관계로 처음 만들어버린 것은 이성애자들이었다. 출산을 선택의 문제로 만들어버린 것도 또 출산이 불가능한 커플들도 임신을 하여 부모가 될 수 있게 만들었던 것도 이성애자들이었다. 그리고 모든 결혼이 가족 내에서 하나의 역할을 수행하는 남편과 이와는 완전히 다른 역할을 하는 아내를 가져야 한다는 오랜 법칙을 뒤집은 것도 이성애자들이었다. 게이나 레스비언들은 단지 이성애자들이 만들어가는 혁명과 새로운 규범들을 지켜보며 이것들이 자신들에게도 맞는 거라 깨달았을 뿐이다.

게이와 레스비언들의 결혼을 위한 초석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누가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의 문제를 부모나 국가가 결정할 수 없다는 급진적인 사고를 제기했던, 그리고 미국혁명이 보통사람들로 하여금 –“사랑을 위한 결혼”을 포함하는 – “행복의 추구”를 권장하던 이백여년전 처음 놓여졌다. 비슷한 때에 제레미 벤담이나 마르뀌 드 꽁도르쎄 같은 사상가들도 동성간의 사랑이 범죄로 규정될 수 없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결혼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결혼은 게이나 레스비언들에겐 적용가능하지 않은 두가지 전통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결혼은 한 가족으로 하여금 가내 노동력 증대를 위해 더많은 자녀를 갖게 하는 것을 가능케 하였다. 역사를 돌아보면, 가진 자들 사이에서는 여자가 출산을 못할 경우 남자가 이혼을 해버렸고 가난한 농민들의 경우 혼전 임신이 여성의 출산력을 보여주기 전까지 결혼은 미루어지곤 했다. 그러나 19세기 피임법의 확산과 함께 결혼한 커플도 아이를 안 가질 수 있게 되었고 20세기 의술의 발전은 임신이 안되는 커플들도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만들었다. 이와 함께 결혼은 출산할 수 있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전통적인 주장도 약해지게 되었다.

덧붙여 전통적 결혼은 성에 따른 엄격한 노동분업과 남성과 여성 사이의 의무적인 권력불평등을 부과했다. 봉건 초기부터 19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영국과 미국의 법은 “남편과 아내는 남편으로 하나가 된다 (Husband and wife are one and that one is the husband)”고 말해왔다.

결혼한 여성의 신분이 남성에 의해 결정되는 법(law of coverture)은 신의 명령과 인간의 본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법은 아내가 법적인 계약의 당사자가 되는 것이나 자신의 소유를 가지는 것을 금지했다. 1863년 뉴욕의 법정은 아내들에게 독립적인 소유권을 보장하는 것이 결혼제도를 파멸시킬 수 있는 “영구적인 불협화음의 씨를 뿌리는 것”이라 경고한 바도 있다.

그러한 법이 강제력을 잃은 후에도 입법자들과 대중들은 결혼관계에서 남편과 아내는 서로 다른 역할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1958년 뉴욕상고법원은 (남편과는 달리) 아내는 상대방의 가사나 성생활에서의 의무방기에 대해 고소할 권리가 없다는 전통적인 관점에 대한 도전을 기각했다. 재판관들은 그 근거로 그러한 개인적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가 아내들에게만 있다는 점을 들었다.

1970년대에 이르러서도 많은 미국의 주들은 가사와 관련된 결정에 있어 남편에게 최종 결정권을 주는 “머리와 주인 (head and master)” 법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결혼에 대한 법적인 정의에 따르자면, 남편에게는 가족을 부양할 의무가 그리고 아내에게는 집을 보고 아이들을 키우고 섹스를 제공할 의무가 부과되었다. 1980년대가 되어서야 대부분의 주들에서 부부강간을 범죄시하기 시작하였다. 결혼할 때 신부가 “I do”라 말하는 것은 그녀가 평생동안 “I will”이라 말할 만큼의 법적 헌신을 다짐하는 것이는 게 지배적인 견해였다.

나는 전통적 결혼의 옹호자들이 어떤 식으로 그 전통이 무너져내려가는 것에 대해 저항을 해왔는지 알만큼 나이를 먹었다. 그당시 나는 평등한 부부관계가 결혼제도의 붕괴로 이어질 거라던 극우 반대자들의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 생각했었다. 이제사 하는 얘기지만, 그들이 하는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결혼한 여성에게 독립적인 법지위를 제공하는 것은 이성애적 결혼을 붕괴시켰던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남편과 부인으로 하여금 결혼을 상호적인 의무와 협상된 역할(예를 들어 부인이 나가 돈을 벌고 남편이 집에서 아이들을 돌본다든지 하는)로 바라보게 만드는 것은 많은 커플들에게 커다란 행운이었다. 그러나 결혼의 정의나 실행방식을 둘러싼 변화는 게이와 레스비언 커플들이 자신들도 결혼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는 주장을 가능하게 해주는 조건이 되었던 것이다.

결혼제도는 석기시대 이래 끊임없는 진화의 과정을 겪어왔다. 그 과정에서 결혼제도는 많이 유연해지기도 했지만 동시에 더 선택적인 문제로 자리잡기도 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근래들어 이와 같은 변화의 방향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게이와 레스비언 결혼을 금지하는 것을 통해 시계바늘을 되돌릴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턱도 없는 소리일 것이다.



글쓴이 Stephanie Coontz는 현대가족위원회 공공교육분과장이며 “결혼: 복종에서 친밀함까지, 혹은 사랑이 어떻게 결혼을 정복했는가에 대한 역사”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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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5, 2005
The Heterosexual Revolution
By STEPHANIE COONTZ
Olympia, Wash.

THE last week has been tough for opponents of same-sex marriage. First Canadian and then Spanish legislators voted to legalize the practice, prompting American social conservatives to renew their call for a constitutional amendment banning such marriages here. James Dobson of the evangelical group Focus on the Family has warned that without that ban, marriage as we have known it for 5,000 years will be overturned.

My research on marriage and family life seldom leads me to agree with Dr. Dobson, much less to accuse him of understatement. But in this case, Dr. Dobson's warnings come 30 years too late. Traditional marriage, with its 5,000-year history, has already been upended. Gays and lesbians, however, didn't spearhead that revolution: heterosexuals did.

Heterosexuals were the upstarts who turned marriage into a voluntary love relationship rather than a mandatory economic and political institution. Heterosexuals were the ones who made procreation voluntary, so that some couples could choose childlessness, and who adopted assisted reproduction so that even couples who could not conceive could become parents. And heterosexuals subverted the long-standing rule that every marriage had to have a husband who played one role in the family and a wife who played a completely different one. Gays and lesbians simply looked at the revolution heterosexuals had wrought and noticed that with its new norms, marriage could work for them, too.

The first step down the road to gay and lesbian marriage took place 200 years ago, when Enlightenment thinkers raised the radical idea that parents and the state should not dictate who married whom, and when the American Revolution encouraged people to engage in "the pursuit of happiness," including marrying for love. Almost immediately, some thinkers, including Jeremy Bentham and the Marquis de Condorcet, began to argue that same-sex love should not be a crime.

Same-sex marriage, however, remained unimaginable because marriage had two traditional functions that were inapplicable to gays and lesbians. First, marriage allowed families to increase their household labor force by having children. Throughout much of history, upper-class men divorced their wives if their marriage did not produce children, while peasants often wouldn't marry until a premarital pregnancy confirmed the woman's fertility. But the advent of birth control in the 19th century permitted married couples to decide not to have children, while assisted reproduction in the 20th century allowed infertile couples to have them. This eroded the traditional argument that marriage must be between a man and a woman who were able to procreate.

In addition, traditional marriage imposed a strict division of labor by gender and mandated unequal power relations between men and women. "Husband and wife are one," said the law in both England and America, from early medieval days until the late 19th century, "and that one is the husband."

This law of "coverture" was supposed to reflect the command of God and the essential nature of humans. It stipulated that a wife could not enter into legal contracts or own property on her own. In 1863, a New York court warned that giving wives independent property rights would "sow the seeds of perpetual discord," potentially dooming marriage.

Even after coverture had lost its legal force, courts, legislators and the public still cleaved to the belief that marriage required husbands and wives to play totally different domestic roles. In 1958, the New York Court of Appeals rejected a challenge to the traditional legal view that wives (unlike husbands) couldn't sue for loss of the personal services, including housekeeping and the sexual attentions, of their spouses. The judges reasoned that only wives were expected to provide such personal services anyway.

As late as the 1970's, many American states retained "head and master" laws, giving the husband final say over where the family lived and other household decisions. According to the legal definition of marriage, the man was required to support the family, while the woman was obligated to keep house, nurture children, and provide sex. Not until the 1980's did most states criminalize marital rape. Prevailing opinion held that when a bride said, "I do," she was legally committed to say, "I will" for the rest of her married life.

I am old enough to remember the howls of protest with which some defenders of traditional marriage greeted the gradual dismantling of these traditions. At the time, I thought that the far-right opponents of marital equality were wrong to predict that this would lead to the unraveling of marriage. As it turned out, they had a point.

Giving married women an independent legal existence did not destroy heterosexual marriage. And allowing husbands and wives to construct their marriages around reciprocal duties and negotiated roles - where a wife can choose to be the main breadwinner and a husband can stay home with the children- was an immense boon to many couples. But these changes in the definition and practice of marriage opened the door for gay and lesbian couples to argue that they were now equally qualified to participate in it.

Marriage has been in a constant state of evolution since the dawn of the Stone Age. In the process it has become more flexible, but also more optional. Many people may not like the direction these changes have taken in recent years. But it is simply magical thinking to believe that by banning gay and lesbian marriage, we will turn back the clock.

Stephanie Coontz, the director of public education for the Council on Contemporary Families, is the author of "Marriage, a History: From Obedience to Intimacy, or How Love Conquered Marri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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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사회적 타협&quot;에 관해 - 김수행의 글을 읽고 안타까와 함

한 보름 쯤 되었나.. 참세상에 실렸던 김수행의 논설에 대해 다른 인터넷 공간을 통해 쓰고 또 토론하였던 글 혹은 주제. 이곳서 블로그를 만든 연유로 퍼다 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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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경제정책의 기본 방향을 바꿔야 한다
양극화 해소 없이 '더불어 사는 것'은 불가능

김수행(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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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경제에 대한 최근 좌파의 기본적 입장을 요약적으로 제시하는 좋은 글. 동시에 마음 참으로 안타깝고 불편하게 만드는 글. (내 글 뒤에 복사해놈)

수출의존형 경제보다 내수에 기반한 경제가 노동자 서민들의 삶에 훨씬 더 큰 도움이 되는 것 분명하다. 내수의 발전에 기초한 경제정책은 필연적으로 노동자 서민들의 구매력을 촉진시키는 정책, 노동자 서민들의 주머니를 조금이라도 더 두둑하게 만들어주는 정책을 수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수에 초점을 맞춘 경제정책이 노동자 서민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줄 수 있다는 점, 그렇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진보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것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치만 이 진보성은 한계적이다.

내수가 강화되어야 수출의존형 경제가 가지는 경제의 불안정성을 극복할 수 있고 경제성장의 risk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식으로 대표되는 내수경제 옹호론의 논리가 여전히 성장 위주의 담론틀 내에 머무르고 있다는 비판은 사실 그리 큰 설득력을 가지진 못한다. "성장신화"가 어느 사회에서나 대체로 노동자 서민에 대한 통제/억압 기제로 사용되어왔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낙오되는 것이 그 대안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경제는 발전되어야 하고 생산력은 증대되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생산관계의 영역에 해당하는, 경제발전의 청사진을 짜는 일이나 증대된 생산력이 가져다주는 과실분배 등을 둘러싼 decision-making의 문제도 똑같이 고민되어야 한다. 그리고 김수행의 글에서 잘 드러나듯, 이에 대한 남한 진보적 좌파들의 답은 "사회적 타협의 확대"이다.

경제정책결정에서 노동자 서민들의 목소리가 정책결정과정에 반영될 아무런 공식적 통로를 가지지 못한 현 시점 남한사회에서 "사회적 타협의 확대"는 "노동자 서민의 목소리 강화"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사회적 타협"이란 철학에 기초한 -김수행도 모델로 삼고 있는- "유럽의 선진국"들이 오늘날 보여주고 있는 것은 자본-국가-노동 간의 "사회적 타협"이 궁극적으로는 자본과 국가가 짜고치는 고스톱 판에 노동을 끼워놓은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결정적으로 유럽의 나라들에서 "사회적 대타협"이 가능했고 그리하여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복지제도가 정착되었던 것은 오로지 특정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만 파악될 수 있다: 19세기 유럽 정치사의 핵심을 구성하고 있었던 새롭게 등장하는 민족국가들과 구체제 귀족세력들 간의 갈등,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을 흡수함을 통해 귀족세력들을 무력화시켰던 국가의 전략, 특히 1차 대전을 거치면서 유럽의 지도가 완전히 새롭게 재편되는 과정에서 경쟁적으로 도입된 민주주의 (귀족세력에 대항한 국가-시민 동맹의 완성), 국가를 기본단위로 삼은 국제(경제)질서의 형성 (이게 얼마나 "거대한 변환(great transformation)"이었냐면, 1차대전 이후 형성된 질서가 wto가 세계경제질서를 평정하기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gatt로 이어지는 국가간 경제질서의 기본틀을 제공했던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1900년대 초중반까지 식민지 국가들에 대한 착취의 결과 유럽제국들로 흘러들어올 수 있었던 잉여가치.. 이런 역사과정들 중에서 어느 하나라도 다른 식으로 전개되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의 "사회적 타협"이나 "복지국가"는 존재치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유럽에서의 "사회적 타협"과 유럽식 "복지국가"를 가능케 했던 역사적 조건과 메커니즘들이 오늘날 발견되기 힘들다는 점에 있다. 세계경제질서는 명목상으로만 그럴 뿐, 이제 더 이상 "국가간 체제"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 WTO는 국가들 뿐 아니라 대자본의 적극적 참여로 구성되며 그 자체로 행정과 사법 기능을 가진 전지구적 단위의 초국적 정부가 되어가고 있다. 반면, WTO의 기능을 담당하는 관료들은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투표에 의해 선출되는 것이 아니라 한줌도 안되는 목소리 센 나라와 자본가들에 의해 뽑혀지고 있다.

이처럼 국가간 질서를 대체하고 있는 초국적 정치경제 단위들로 인해 개별 국가는 과거와 같은 자율성을 가지질 못하고 있다. 최고 정책결정자가 아무리 아래로부터의 민심에 기초한 경제정책을 수립하려 해도 WTO나 IMF같은 초국적 권력단위에서 안된다 하면 쩔쩔 맬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타협"의 아우라를 제공했던 민주주의는 점차 실종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뽑지도 않은 누군가가 결정한 정책을 강요당해야 하며 설사 그것을 반대한다 해도 반대의견을 제기할 공식통로조차 없는 것이다.

100년만에 새롭게 나타난 또하나의 "거대한 변환"을 우린 목도하고 있는데, 남한 좌파들의 시야는 아직도 100년전의 변환에 가 꽂히고 있는 것이다. 지금 "사회적 타협"을 바라보며 그걸 뒷받침하기 위한 "내수 중심의 경제"를 주장하는 그 정신은 참으로 훌륭하지만, 그 판단근거/분석력의 미숙함과 사고에서의 몰역사성은 안타깝기 그지 없다.

내수성장은 참 중요하다. 무엇보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판치고 국가간 경계가 무너져 내리고 있는 현실에서 국가의 대외적 자율성(=설사 그것이 초국적 권력단위의 정책기조와 충돌한다 할지라도 자국 시민들의 이해와 요구를 정책화할 수 있는 능력)의 기초가 내수경제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적 타협"을 바라보면서 주장하는 내수경제로의 방향전환은 문제의 핵심을 크게 벗어나는 것이다. "사회적 타협"을 가능케 해 줄 역사적 조건들이 고갈된 상황에서, 그리고 이미 오래전 "사회적 타협"을 해냈던 나라들에서조차 그 의미가 무색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주장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수출의존형 경제에서 보다 상대적으로 더 큰 내수의존형 경제에서의 trickle-down effect일 뿐이다. 언제부터 좌파의 목표가 더 큰 떡고물이 되어버린 것인지..

문제는 경제와 관련된 정책결정과 수행과정에 대한 통제를 누가 하느냐이다. 일국 단위의 자율적 결정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조건에서 설사 "사회적 타협"이 있다손 쳐도 그걸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런 "사회적 타협"은, 올바른 방향타를 가지지 못한 "사회적 타협"에의 기대는 오늘날 좌파에게 필요한 정치적 정책적 목표를 더 흐릿하게만 만들 뿐이다.

그렇다고 내수경제나 사회적 타협의 주장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가지는 현실적 힘 분명 있다. 타협이 피할 수 없는 것임 또한 분명하다. 하지만 타협이 목표여서는 원하는 타협의 내용에 근접도 못한다. 타협은 싸울만큰 싸운 후에 주어지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사회적 타협"을 이야기할 때가 아니라 비타협적인 투쟁을 이야기하고 조직해야할 때이다. 그러다 보면 자본이 먼저 정부가 먼저 타협하자 할 것이다. 그때 타협하면 된다. 그래야만 조금이라도 더 우리가 원하는 방향에서의 타협 내용들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타협이란.. 이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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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경제정책의 기본 방향을 바꿔야 한다
양극화 해소 없이 '더불어 사는 것'은 불가능

김수행(논설위원)


노무현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에서 "공동체적 통합을 이루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숙제"라고 지적하면서, "더불어 사는 것이 이익이 된다는 인식을 함께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날카로운 현실 파악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전환시키고 실현할 때 우리 사회는 지금과 같은 '증오와 분노'를 해소하게 될 것이다.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다국적자본이 세계시장을 휘젓고 다니는 세계화시대에도 정부 또는 공권력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는 사실을 정책담당자가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자주 일어나는 세계적인 금융공황을 보라. 1983년에 일어난 후진국의 외채위기, 1987년 10월의 세계적인 주식시장 공황, 1980년대 말 미국 저축대부조합의 대규모 파산, 1997년의 아시아 전역의 외환금융공황, 1998년 미국 헤지펀드 롱텀 캐피털 매니저먼트의 파산 위기, 2002년의 아르헨티나 금융공황 등등에서 각국 정부가 개입하지 않고 시장에 맡겨 두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각국의 금융기관과 기업들은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금융기관이나 기업을 살리기 위해 누가 자금을 제공했는가? 금융시장도 아니고 자본시장도 아닌 정부가 국민의 혈세인 공적 자금을 제공한 것이다. 그리고 노사대립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노사 모두가 큰 손해를 보고 경제가 큰 혼란에 빠질 때 누가 이 노사대립을 해소할 수 있을까? 정부 뿐이다. 따라서 '공동체적 통합'에 필요한 현실적인 정책을 '힘이 없기 때문에' 추진할 수 없다고 말하는 정부는 빨리 물러나야 할 것이다.

'더불어 사는 것'은 노대통령이 말하는 바와 같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양극화의 해소가 기업가들과 노동자들 모두에게, 그리고 부자와 서민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인식'을 어떻게 심어 줄 것인가?

가장 기본적인 사실은 지금과 같이 수출에만 목을 매달고 있다가는 우리 경제가 계속 침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수출을 증대시키기 위해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킨다는 명목으로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하고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대체하며 빈곤층을 내팽개치고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의 목을 비튼다. 이리하여 서민의 소비규모는 격감하고 내수산업은 도산하며 경제가 전반적으로 침체를 겪고 있다. 이렇게 되니까 수출을 더욱 확대할 필요가 생기고,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동자들을 더욱 착취함으로써 국내수요기반을 더욱 축소시키고 서민들의 삶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고 있다. 수출 증대와 서민 불행의 악순환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우리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점과 우리의 최대 수출시장이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2004년에 수출액을 국내총생산액으로 나눈 수출의존도는 37%이고, 수출액과 수입액을 더한 무역액을 국내총생산으로 나눈 무역의존도는 70%이었는데, 이 숫자는 내수기반이 붕괴되면서 2002년부터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미국과 일본의 무역의존도가 20% 정도인 것에 비하면 우리 경제의 무역의존도는 매우 높은 편이고, 따라서 우리 경제는 세계경제의 움직임에 따라 크게 휘둘리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주의해야 할 것은 우리의 수출시장이 중국과 미국에 너무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중국에 대한 수출 비중이 점점 증대하고 미국에 대한 비중이 점점 감소하다가 2004년에는 중국과 미국에 대한 수출이 각각 총수출액의 20%와 17%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런데 중국시장의 장래가 중국 국내의 사회적 정치적 혼란의 가능성과 미국 정부의 중국에 대한 견제정책에 따라 안정적이지 않으며, 미국 시장에 대한 수출은 항상 미국 정부의 '보복'조치에 시달리고 있다. 따라서 우리 경제가 수출에 목을 매달다가는 눈 깜작할 사이에 대규모의 과잉생산과 과잉설비에 부닥치고 1997년과 같은 공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정부는 수출 증대와 서민 불행의 악순환을 끊고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서는 내수기반을 확충해야 한다. 정부는 국산품에 소득의 대부분을 지출하는 서민들의 소득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경제정책(양극화를 해소하는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건강한 일꾼일 뿐 아니라 건전한 소비자가 될 수 있도록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해야 하며, 동일한 노동을 하면서도 임금과 인격 면에서 엄청난 차별을 받는 비정규직을 폐지해야 할 것이고, 고용효과가 대기업보다 훨씬 큰 중소기업을 보호 육성해야 할 것이며, 빈곤층에 대해서도 부실 금융기관과 기업에 대해 막대한 공적 자금을 제공한 것과 마찬가지로 보조해야 할 것이다. 이런 내수기반의 확충 위에서 비로소 건실한 과학기술이 발달할 수 있으며 수출의 증대와 국민생활의 향상이 더불어 이루어 질 것이다.

이리하여 양극화의 해소 → 내수기반의 확충 → 경제의 안정적 성장 → 증오와 분노의 해소 → 사회적 타협의 확대로 나아갈 것인데, 이것이 바로 유럽의 선진국들이 걸어온 길이다. 친미주의자들이 칭송하는 미국 사회는 복지수준에서나 범죄수준에서 유럽의 선진국과 매우 다르다는 점을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이다.

2005년06월12일 11:47:4

참세상에서 펌: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id=32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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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블로그는 사려깊고 똑똑한 이들의 왕래가 잦은 사랑방 같은 곳인데, 내 글을 읽고 막막하다거나 답답하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당황스러웠다.. 내가 평소 막막/답답을 조장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 글에 담긴 문제의식은 그와는 좀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세계정세에 관해 나는 갈수록 낙관적이 되어가고 있다.

5년전과 비교해보면 우리가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이유들은 훨씬 많아졌음을 나는 발견한다. 전지구적 차원에서 혼돈이 증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혼돈이라는 게 "기존 질서" 시스템의 불안정을 말하는 것인 한, 혼돈의 증대는 곧 기존 질서로부터 큰 수혜를 받지 못한 이들에겐 기회의 증대를 말하는 것이라 나는 판단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의 블로그에 길게 덧글을 썼다. **는 대안과 구호가 없는 것으로 인한 막막함으로, 그리고 결국 "사회적 타협주의"가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것이 아닌가 물었고.. 많은 이들이 비슷한 답답/막막감을 가지는 것 같았다. 나는 희망을 주고 싶었는데.. 어떻게 받아들여질 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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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제기한 "대안"과 "구호"의 문제에 대해:

뚜렷한 "대안"에 대한 그림이 없으면 무언가 불충분한 것 같은 느낌 저도 있습니다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게 무슨 강박관념 같은 것일 가능성 크다는 생각. 왜냐면.. 대안이나 계획이 있다손 쳐도 그대로 가는 경우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지금 우리가 훌륭한 대안처럼 보는 것들이 아주 우연적인 계기를 통해 improvise된 결과라는 것을, 훌륭한 듯 보였던 대안이 전혀 안훌륭한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을 봅니다 (프랑스혁명이나 꼼뮨이 가장 전형적인 improvisation의 결과일 것이며 명백한 대안을 가지고 성공했던 러시아 혁명이 어떻게 귀결되었는지는 우리가 다 아는 바입니다. 지난 겨울인가 여기에도 올려져있었던 howard zinn의 글에서 배워야 할 것 아직도 많은 것 같습니다). 활동가들의 마음을 편안케해주는 효과야 있을 수 있지만, 대안이 있고 없고에 따라 현실투쟁이 영향받는 부분은 극히 미미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91년 5월 권력대안을 둘러싼 논쟁이 떠오르는군요.. --;)

마찬가지로 어떤 뚜렷한 "대안"을 "구호"에 담아내야 한다는 생각도 상당히 지식인적 마인드가 아닌가 저는 생각합니다. 만약 현실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회정치적 투쟁이 사회구조상의 대립과 갈등을 드러내는 것이라 본다면, 자생적으로 터져나오는 구호들이야말로 가장 적절한 구호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사회운동적 관점에서 보면 지금 터져나오는 구호들.. 다양한 삶의 영역들에서 터져나오는 생존권 보장의 구호,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부르짖는 구호, 그리고 삶의 현실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가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개혁/개방 반대의 구호들 외에 어떤 구호가 더 필요한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선거를 통해 집권하고자 하는 정치세력이라면 혹은 이미 혁명적 정세가 형성된 조건이라면 응당 어떤 대안적 구호가 필요하겠습니다만 과연 그것이 지금 필요한가 혹은 그러한 정세인가에 대해선 또다른 논쟁이 필요할 것입니다).

답답/막막에 대해:

이건 제 의도와 전혀 무관합니다. 김수행의 글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과 같은 현실적 "대안"에 대한 고민(e.g., 사회적 타협론)이 되려 현실투쟁을 제도화하는 방향으로 끌고 갈 것 같은 우려는 있습니다만, 저는 지금의 현실이 그닥 우울하기만 한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남한의 테두리를 넘어 전지구적 차원의 그림을 그려보면 지금의 상황은 참으로 독특합니다.

제 글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지금 상황은 백여년전 성립되었던 국가간 시스템에서 벗어나 초국적 정치경제 단위들을 중심에 놓는 시스템으로의 거대한 변환이 일어나는 시점입니다. 근데 백여년전의 "거대한 변환"이 국민국가 단위에서 형성된 아래로부터의 지지/동의에 기반해 이루어진 것이라면 오늘날 "거대한 변환"의 움직임은 아래로부터의 지지/동의를 이끌어내는 절차와 과정을 생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전지구적 저항은 이미 무르익어가고 있습니다 (**: 이것이 이삽십여 년전 유로콤의 고민과 결정적으로 달라지는 지점입니다)

99년 시애틀에서 시작하여 퀘벡 밀라노 캔쿤 등등을 거쳐 서구 사회운동 중심의 global justice movement는 올7월 스코트랜드에서의 G8 회담을 깽판놓기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알헨티나, 베네주엘라, 볼리비아 등 남미 국가들과 남아프리카, 짐바브웨 같은 아프리카 국가들에서의 반신자유주의 전선은 점차 강고해지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에콰도르에서의 좌파정권 창출과 함께 남미에서 반신자유주의 블럭의 형성은 이제 현실적인 가능성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와 네덜랜드 국민투표 결과 또한 새로운 거대한 변환이 가져다 줄 위험에 대해 다른 누구보다 보통 인민들이 가장 잘 알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남한의 반신자유주의 투쟁은 전지구적으로도 아주 모범적인 투쟁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제 판단에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투쟁의 불꽃을 계속 살려내고 확산시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정책결정자들로 하여금 바깥에서의 압박과 내부로부터의 압박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게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내수 중심 경제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압박은 이런 면에서 유효합니다. 내수가 활성화되어야 외부의 압박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자율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질서에서 주류 신자유주의에 저어하는 국가를 하나라도 더 만들어내는 것이야 말로 지금 남한에 가해지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압박을 약화시키는 길이 될 것입니다.

동시에 남한의 사회운동은 새로운 "거대한 변환"에 맞선 전지구적인 차원에서의 투쟁과 보다 더 연대를 돈톡히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일국의 차원을 넘어 전지구적 차원에서 혼돈을 계속 부채질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WTO IMF G8 EU에 이르기까지 신자유주의 바람에 입각해 진행되고 있는 모든 움직임들의 정당성에 대한 믿음을 뒤흔들어야 합니다. 오늘날의 문제에 대한 궁극적인 대안은 인터내셔널리즘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사회적 타협주의"에 대해:

혁명을 염두에 두지 않고서야 ** 말대로 "사회적 타협"은 불가피합니다. 타협은 모든 갈등이 존재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타협은 그 자체로 거대한 투쟁입니다. 하지만 사회적 타협이 불가피하다는 것과 사회적 타협을 대안으로 내세우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저는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투쟁의 결과로서의 "사회적 타협"을 바라봐야지 그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것이 "타협주의"일 것입니다)에 대해 반대한다는 입장을 개진한 것입니다.

지금의 상황이라는 게 그닥 투명해보이진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불안정한 전환기, 위기상황은 불투명했습니다. 그리고 그 불투명한 혼란의 상황에서의 improvisation을 통해 인류는, 인민은 끝없이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왔던 것입니다. 저는 현재의 상황이 전혀 어둡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되려 갈수록 희망의 근거들을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타협"을 구호로 삼으려는 시도들이 안타까왔던 것입니다. 그게 오히려 투쟁의 불꽃을 잠재울까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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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보는 생각의 변화

변화를 보는 생각의 변화 (Changing Concepts of Change)

Grace Lee Boggs
Michigan Citizen, June 26-July 2,2005

나의 90회 생일이 가까와지면서 나는 내 인생 동안 있어왔던 변화를 바라보는 생각의 근원적인 변화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었다.

64년전 내가 처음 사회운동 활동가가 되었을 무렵, 대부분의 급진주의자들 사이에서 혁명적인 변화의 모델은 1917-8년에 “노동자 국가”를 건설하였던 러시아 혁명이었다. 생산수단을 국유화한 러시아가 강제수용소(gulag)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동자 국가”였는지, 그리고 1939년 나찌의 폴란드 침공으로부터 시작한 2차 세계대전에서 러시아가 지지되어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급진주의자들 내부는 (때때로는 물리적인) 갈등을 겪고 있었다.

그 당시 대부분의 진보주의자들은 일하는 사람들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드는 책임이 정부에 있다고 믿었다. 논쟁은 주로 그런 진보가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하는지(개혁) 아니면 노동자들이 국가권력을 획득함을 통해 가능한 것인지(혁명)를 둘러싸고 일어났다. 생산에서의 지속적인 혁명이나 우리의 물질적 힘의 확장이 진보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는 가운데 미국의 흑인들은 2차 세계대전이 제공해준 기회[역주: 흑인들과 백인들이 같은 부대에 함께 배치되었던 첫 사례가 2차대전이었음. 그 이전까지 흑인병사들은 따로 흑인부대에 배치되었음]를 포착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위한 국내와 국외에서의 이중 투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탄을 떨어뜨려 태평양 전쟁을 종식시켰던 1945년 이후, 인류는 스스로 자신의 행성을 파괴할 수 있을 정도로까지 자신의 물질적 힘을 확장시켰다는 현실과 마주쳐야만 했다.

인간진화에 있어 이 중대한 시기는 혁명적 투쟁을 바라보는 생각의 중대한 변화를 요구했다. 우리는 더 이상 생산관계에서의 변화만으로 혹은 꼭대기의 권력을 아래로 이전시키는 것만으로 급진적인 사회변화를 사고할 수 없게 되었다. 그 후로 우리는 변화를 우리 스스로와 제도를 함께 변화시키는 과정으로, 정치와 윤리가 그리고 목적과 수단이 통합되는 과정으로 사고해야만 했다.

1955년 몽고메리에서의 버스 보이콧에서부터 시작된 시민권운동(civil rights movement)은 서구사회에서 억압받는 집단들이 이와 같은 관점을 가지고 시작한 첫번째 투쟁이었다. 인간 이하로 취급받던 한 사회집단[역주: 흑인집단]은 전세계가 관심을 갖고 바라보는 가운데 분노한 피해자나 반대자의 모습이 아닌, 더 인간적인 새로운 사회의 대변자의 모습으로 새로운 인간형을 보여주며 자신들의 비인간화에 대항해 싸웠다. 그들 자신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운동방법을 사용해 그들은 세상의 선을 더 증대시켰다. 단지 버스승차에서의 차별해소가 아니라 자신들이 사랑하는 커뮤니티가 목적임을 마음에 담았던 그들의 운동은 지난 사십년간 미국에서의 문화혁명을 만들어냈던 인간 정체성과 생태운동에 영감을 불어넣기도 했다.

이 운동은 [그동안 당연시 여겨지던] 모든 것들을 다시 되돌아보게끔 만들어 주었다: 정부에서의 모든 형태의 위계주의, 교육, 경제와 가족, 인종적/성적 관계, 가부장제, 백인사회, 자본주의, 과학, 기술, 그리고 진보의 의미.

1994년 1월 1일, 원주민 공동체에 기초한 자파티스타는 멕시코 도시들의 무력접수를 통해 전세계 혁명을 꿈꾸는 이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 이런 그들의 활동목적은 권력획득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힘에 기반해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내는 방안을 찾기 위한 비폭력적이고 민주적인 토론에 사회의 모든 집단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space)을 만드는 것이었다.

엘살바도르에서는 민주노총 대표 루벰 자모라가 (국가로 하여금 대중운동을 대체할 수 있게 만드는) 21세기 혁명을 꿈꾸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국가권력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힘을 만들어가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하였다.

미래에서 “변화”가 어떤 형태를 띠게 될 지 난 모르겠다. 이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아는 바는 모든 인간관계를 상품관계로 만들어버리는 자본주의가 점점 병적인 모습을 띠어감에 따라 우리의 이웃들을 다시 우리의 공동체로 불러들이고 우리의 희망을 살아있게 만들기 위한 대안들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 그를 위해 모두가 함께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중국계 미국인으로 한국으로 치면 "재야운동의 대모" 격이라 할 수 있는 오랜 좌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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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ING CONCEPTS OF CHANGE

By Grace Lee Boggs
Michigan Citizen, June 26-July 2,2005

As I approach my 90th birthday, I have been thinking about the radical changes in concepts of change that have taken place during my lifetime.

When I became a ‘movement activist’ 64 years ago, the model of revolutionary change for most radicals was the Russian Revolution which established the “workers state” in 1917-8. Radicals struggled with one another (sometimes physically ) over whether Russia, having nationalized the means of production, was still a “workers state” despite its gulags and whether it should be defended in the second World War which began with the Nazi invasion of Poland in 1939.

In those days most progressives believed that the government was responsible for making life better for working people. The debate was mainly over whether these improvements could be achieved gradually (Reform) or only by the workers taking state power (Revolution). Constant revolutionizing of production or expansion of our material powers was viewed as progress.

Meanwhile, American Negroes were seizing the opportunity provided by World War II to carry on the Double V struggle for Democracy, abroad AND at home. After the U.S. ended the Pacific war in 1945 by dropping the atom bomb on Hiroshima and Nagasaki, humanity was faced with the reality that we had expanded our material powers to the point that we could destroy our planet.

This crucial juncture in human evolution required a profound change in concepts of revolutionary struggle. No longer could we view radical social change as a change only in property relations or transferring power from the top to the bottom. Henceforth, we needed to conceive of it as a process that transforms both ourselves and our institutions, that fuses politics with ethics and integrates ends and means.

The civil rights movement, launched by the Montgomery Bus Boycott in 1955, was the first struggle by an oppressed people in Western society from this new perspective. Before the eyes of the whole world, a people who had been treated as less than human struggled against their dehumanization not as angry victims or rebels but as new men and women, representatives of a new more human society. Using methods that transformed themselves and their society, they increased the good rather than the evil in the world. By bearing in mind that their goal was not only desegregating buses but the beloved community, they inspired the human identity and ecological movements which over the last forty years have been creating a cultural revolution in the United States.

These movements have opened up everything to question: all forms of hierarchy in government, education, the economy and the family, racial and gender relations, patriarchy, whiteness, capitalism, science, technology, the meaning of progress.

On January 1, 1994 the Zapatistas, based in communities of indigenous peoples, captured the imagination of revolutionaries all over the world by their armed takeover of Mexican cities - NOT with the goal of taking power but in order to create spaces for all sections of society to enter into non-violent democratic discussion of how to create new infrastructures from below.

In El Salvador Rubem Zamora, President of the Democratic Union, has proposed that instead of struggling for state power (which enables the state to take over the popular movement), 21st century revolutionaries should concentrate on the construction of power from below.

I don’t know, no one knows, what forms change may take in the
future. All we know is that as capitalism becomes increasingly
pathological, as it transforms all our human relations into commodity relations, we must come together to create alternatives to bring the neighbor back into the hood and to keep hope 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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