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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이 촉각을 위해 존재한다고? [제 967 호/2009-08-12]

“유일하게 지워지지 않는 서명은 사람의 지문이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이 한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얼굴은 변하지만 지문은 한번 생겨나면 바뀌지 않는다는 의미다. 물론 심한 습진 같은 피부병으로 지문이 일시적으로 지워지거나 고된 노동이나 화상 같은 사고 때문에 지문이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평생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사람을 구별하는 데나 범인을 잡을 때 지문을 이용한다.

지문(指紋, fingerprint)이란 말 그대로 손가락 안쪽 끝에 있는 살갗의 무늬나 그것을 찍은 흔적을 말한다. 사람마다 유일하게 갖고 있는 타고난 지문은 임신 4개월째에 만들어진다. 손가락과 손바닥, 발가락과 발바닥 위의 작은 산과 계곡의 모양으로 배열된 선의 대부분은 유전자적 체계에 따라 만들어진다.

몇몇 쌍둥이의 경우 지문에서도 유사성을 보인다. 하지만 지문이 만들어지는 데는 압력의 비율, 모태 속 태아의 위치 등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쌍둥이조차 서로 다르며 왼손과 오른손의 지문 또한 다르다. 동양계와 유럽계의 지문에도 커다란 차이가 있다.

두 사람의 손가락에 있는 지문이 일치할 수 있는 확률을 억지로 계산해도 640억분의 1 정도라고 하니, 전 세계에서 지문이 같은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범죄 수사에서도 힘을 발휘하는데, ‘법정증거’로 채택되지는 않지만 범죄사실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사인 대신 도장의 사용이 더 일반적인 한자문화권에서는 도장이 없을 경우 서명과 같은 의미로 지장을 찍는 관습이 있다. 지문은 손가락에만 한정되어 나타나지 않는다. 손금으로 알려진 장문(掌紋), 발바닥에는 족문(足紋)이라는 게 있어 병원에서 아기를 낳으면 족문을 찍어 아이가 바뀌는 것을 막으며, 친자확인 등의 소송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흥미롭게도 원숭이, 침팬지, 오랑우탄 등의 영장류뿐 아니라 유대류(有袋類)인 코알라도 독특한 지문을 가지고 있다. 남미에 사는 원숭이들은 꼬리에 저마다 독특한 무늬를 가지고 있고, 소는 코 근처에 일생 동안 변하지 않는 울퉁불퉁한 무늬의 비문(鼻紋)이 있어 개체 식별에 쓰인다.

<경찰 과학수사계 직원들이 지문과 족적을 확인하는 가변광원장비(SL350)를 이용해 지문을
확인하고 있다. 지문은 사람마다 모양이 달라 범죄수사 등에 자주 활용된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물론 지문은 범죄학에 이용하라고 만들어진 게 아니다. 그렇다면 사람에게 지문이 있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여태까지의 정설은 지문이 손가락과 물체 표면의 마찰력을 높여 미끄럼을 방지해 무언가를 더 단단히 붙잡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물론 직접적인 실험결과에 의한 설은 아니지만, 100여 년 동안 과학자들 사이에 알려진 정설이다. 예를 들어 컵을 잡았을 때, 손가락 사이의 젖은 컵이 손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지문이 타이어의 홈처럼 막아주고, 또 발바닥의 주름 역시 수영장에서 미끄러져 넘어지지 않도록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실험 생물학 저널(Journal of Experimental Biology)’ 최신호에 이와 정 반대되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어 화제다. 영국 맨체스터대학교 생체역학자 롤랜드 에노스 교수와 피터 워만 교수팀이 실제로 실험을 해보니 오히려 지문이 물체와 손 사이의 마찰력을 3분의 1이나 줄인다는 것이다. 이들이 마치 지문이 없는 것처럼 나타나게 하는 특수장치를 개발하여 플라스틱 투명판과 손 사이의 마찰력을 알아본 결과, 지문의 굴곡이 물건과 손이 닿는 면적을 줄임으로써 오히려 마찰력이 낮아졌다.

즉, 지문 사이의 가는 홈이 있기 때문에 물체와의 접촉면이 적어지면서 마찰력도 줄인다는 얘기다. 이 말은 접촉면이 넓을수록(지문이 없을수록) 마찰력이 커져 물체를 더 꽉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건을 단단하게 붙들기 위해서라는 기존의 주장이 틀리다면, 지문은 도대체 어떤 역할을 하기 위해 생긴 것일까. 연구팀은 지문의 존재 이유가 무얼까 하는 새로운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그 해답을 ‘지문과 같은 골이 손의 촉각을 예민하게 한다’는 프랑스 학자들의 연구에서 찾았다고 한다.

에노스 박사팀은 지문이 생긴 이유에 대해, 지문이 손끝의 물기를 잘 빠지게 하는 배수로 역할을 해 젖은 표면을 잡을 때 더 잘 붙잡을 수 있게 한다고 주장한다. 또 거친 물체를 잡을 경우 손과 발에 가해지는 충격을 줄임으로써 지문이 피부의 변형을 도와 손가락이나 발바닥에 물집이 잘 잡히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도 한다.

이렇듯 실제 실험을 통해 지문의 역할이 새롭게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학자들이 “에노느 박사팀은 사람 손이 촉감을 느낄 정도의 세기로만 실험했을 뿐 더 강한 힘이 주어지는 마찰력은 실험하지 않았다”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그 의문이 완전히 풀린 상태는 아니다.

보통사람이라면 물건을 단단하게 붙들기 위해 지문이 있으면 어떻고, 손발에 상처 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라 한들 무슨 큰 차이가 있느냐고 질문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지문의 역할을 보다 정확히 이해해야만 의수나 로봇 손의 기능을 진짜 손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사람의 손처럼 물건을 만지고 잡으며 감각을 느끼게 하는 데 지문이 그만큼 중요한 열쇠라는 얘기다.

인류가 다른 동물보다 뛰어난 이유 중 하나는 손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의 손이 가진 특별한 기능을 이해하려면 지문의 역할도 빼 놓을 수 없다. 손이 가진 섬세한 기능을 흉내 내기 위한 노력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글 :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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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딱이와 DSLR의 갈림길, 하이브리드 카메라가 뜬다 [제 966 호/2009-08-10]

‘없어서 못 파는 카메라’가 등장했다. 최근 올림푸스가 ‘초소형 DSLR’이라는 홍보문구와 함께 내놓은 디지털카메라 ‘펜 E-P1’이야기이다. 회사가 예약판매를 위해 준비했던 1,000여대의 카메라가 발매 5시간 만에, 정식판매를 위해 준비해 둔 물량 500여대는 2시간 만에 동이 났다.

홈쇼핑이나 인터넷 홈쇼핑에서 신제품이 넘쳐나는 시대다. 100만원이면 큼지막하고 좋은 카메라를 렌즈까지 끼워서 살 수 있는 세상인데, 몸체만 120만원이 넘는 이 카메라가 뭐기에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을까?

카메라의 종류를 구분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몇 가지 중요한 기준은 있다. 흔히 사용하는 방법은 사진사가 카메라에 찍힐 영상을 어떻게 들여다보는지를 따지는 것이다.

특히 개인용 카메라는 SLR(Single Lens Reflex)이라고 불리는 일안반사식 카메라가 대세인데, 디지털 세상으로 바뀌면서 앞에 D(Digital)자를 붙인 DSLR 카메라가 인기를 끌고 있다. DSLR 카메라는 필름 대신 빛에 반응하는 센서(CCD 또는 CMOS)가 들어 있지만, 기본적인 원리는 흔히 수동식 카메라라고 부르던 과거의 SLR 카메라와 꼭 같다.

SLR카메라의 최대 장점은 눈으로 본 그대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점이다. SLR 형식의 카메라 내부에는 거울이 들어 있는데, 필름(또는 디지털센서)에 비추어줄 빛을 반사시켜 파인더로 옮겨준다. 파인더를 들여다보던 사진사가 이때다 싶어 셔터를 누르면 카메라는 거울을 위로 들어 올리며 빛을 필름으로 보내 사진을 찍는다. SLR 카메라가 유달리 찰칵 소리가 큰 이유다.

사용자가 카메라 뒤쪽에 붙은 액정화면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액정식도 있는데, 흔히 똑딱이라 불리는 소형 디지털 카메라에 자주 사용되고 있다. 렌즈를 통해서 들어오는 상을 CCD로 바로 읽어서 디지털화한 화면을 LCD로 보여주는데, 어떤 사진이 찍힐 지 바로 이해할 수 있어서 카메라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다. 개념적으로만 생각한다면 가장 편리하고 진보된 방식인 셈이다.

액정식은 최대의 특징인 액정화면이 장점이면서도 단점이다. 자연적인 빛을 그대로 반사해 주는 SLR에 비해 아무래도 시각적으로 불편하고, 신호 처리를 해야 하니 필수적으로 시간차가 발생해 누르는 순간 사진을 찍는 민첩함도 떨어진다.

이런 구분법은 모두 조작의 편리함과 관계가 있을 뿐, 화질과는 큰 관계가 없다. 하지만 사진에 취미를 붙여갈수록 사람들은 고성능의 SLR 카메라를 찾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DSLR 카메라의 커다란 크기 때문이다. 제작사는 필름카메라 시절 부터 사용하던 렌즈를 그대로 쓰기 위해선 어느정도 큰 크기를 유지해야 했고, 필름과 비슷한 크기의 CCD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디지털카메라를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바로 CCD의 크기라고 할 수 있는데,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고급형 DSLR카메라에는 필름과 똑같은 크기(36 X 24mm)의 CCD가 들어 있으며, 100만원 안팎의 중, 저가형 카메라의 경우는 이보다 약간 작은 크기의 CCD가 사용되는 것이 보통이다. 보급형인 소형카메라에는 보통 손톱만한 작은 CCD가 사용되며, 심한 경우는 쌀알만 한 CCD가 들어있다.

흔히 카메라를 구분하는 기준인 ‘화소’는 ‘화질’과 다르다. 화소는 사진의 품질보다는 사진을 구성하는 점의 총 개수일 뿐이다. 즉 500만 화소면 500만개의 점으로 사진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CCD 크기가 다른 상태에서 화소 수를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같은 1,000만 화소라 할지라도 DSLR이 소형 디지털카메라에 비해 각 화소별로 빛을 받는 면적이 크고, 당연히 사진이 더 밝게 찍힌다. 빛의 양이 충분하니 노이즈도 적은 깨끗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DSLR 카메라가 화질이 더 뛰어나다는 말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사진을 본격적으로 찍고자 하지 않는 한 SLR카메라는 크고 무거워서 아무래도 불편하다. 적당히 잘 찍히면서도 가지고 다니기 편한 카메라를 찾는 실용주의자들에겐 부담스럽게 인식되곤 했다. 카메라 제작사들도 나름대로 크기를 줄이려고 했지만, 내부에 들어있는 거울과 머리부분에 쑥 튀어나와 있는, 빛을 파인더로 모아주는 펜타프리즘 만큼은 어쩔 수 없어서 소형화에 한계가 있다.

<올림푸스는 기존 DSLR 카메라보다 크기가 50%가 작아진 E-P1을 선보였다.
미러와 펜터프리즘을 삭제해 크기가 50% 정도 작아진 것이 특징이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그런데 최근 들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DSLR 수준의 화질을 유지하면서도 크기가 작아 휴대가 가능해진 디자인의 카메라가 등장한 것이다. 최근 발매된 올림푸스의 펜 E-P1 시리즈가 대표적인데, CCD 크기는 DSLR과 같아서 화질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고, 렌즈도 교체할 수 있다. 하지만 SLR식의 반사거울을 포기해 크기를 줄인 것이다. 이런 카메라를 2가지 기종의 장점만을 합쳤다고 해서 하이브리드 카메라라고 부르기도 한다.

올림푸스와 공동으로 마이크로 포서즈(17.3 X 13mm) 규격의 하이브리드카메라를 개발하고 있는 파나소닉도 새롭게 LUMIX DMC-GH1를 내 놓으며 시장잠식에 나섰다. 삼성디지털이미징이 올 하반기에 내놓을 NX 시리즈도 이런 하이브리드 방식의 카메라다. 삼성은 올림푸스나 파나소닉 보다 더 큰 APS-C(22.3 x 14.9mm) 규격의 CCD를 채용한 만큼, 보다 뛰어난 화질을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물론 하이브리드 카메라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스포츠나 작품사진 촬영, 취재보도 등 전문가의 영역에선 DSLR 카메라의 성능을 따라잡긴 어렵고, 휴대성만 생각한다면 손바닥만한 소형디지털 카메라가 더 유리하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는 언제나 환영할 만하다. 그리고 하이브리드 카메라가 디지털카메라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를 기대해 보자. 높은 화질과 휴대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인 만큼, 발전의 소지도 충분할 것이다.

글 : 유상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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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이야 어뢰야? 진화하는 바닷속 전쟁기술 [제 963 호/2009-08-03]

2007년 말 진수된 군함 ‘세종대왕함’에는 늘 세계최강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이런 평가를 받는 이유는 뛰어난 화력도 한 몫 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압도적인 성능의 ‘이지스 레이더’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세종대왕함의 이지스 시스템은 반경 1,000km 밖에 있는 비행기 900여 대를 동시에 파악할 수 있고, 적의 탄도미사일 궤적까지 탐지할 수 있는 성능을 갖추고 있다. 이 레이더를 활용하면 기존 개념을 완전히 뒤 바꾼 전투를 벌일 수 있는데, 부산 앞바다에서 일본 후쿠오카 인근에 떠 있는 비행기나 군함을 명중시킬 수 있고, 울릉도 앞바다에서 평양에 있는 빌딩 하나를 선택해서 타격할 수 있다. 100대가 넘는 전투기가 한꺼번에 달려들어도 맞상대 할 수 있을 정도니 사실상 두려울 것이 없는 셈이다.

하지만 군사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이런 세종대왕함도 약점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곤 했는데, “잠수함과 싸우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레이더도 전파가 통용되지 않는 물속에서는 무용지물이기 때문에 바닷속에서 살금살금 다가온 잠수함의 어뢰 1발에 격침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국군도 약점을 내버려 둔 채 두 손 놓고 있지는 않다. 이런 우려를 덜어주기 위해 국방부와 국방과학연구소(ADD)는 2003년부터 2009년까지 약 1,000억 원을 들여 새로운 무기를 개발해 냈다. 이 무기에는 ‘홍상어’ 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로켓’의 일종으로 최고의 잠수함 공격성능을 갖추고 있다. 국군은 앞으로 세종대왕함을 비롯한 한국형 군함에 장착해 운용할 예정이다.

로켓은 연소 추진력을 얻어 하늘을 날아가는 물체를 뜻한다. 이 원리를 이용하면 미사일 같은 무기는 만들 수 있겠지만, 물속을 공격하긴 어렵다. 어떻게 해서 잠수함과 싸울 수 있다는 것일까?

답은 ‘변신기능’에 있다. 이 신무기는 분명한 로켓이지만 한 편으로는 바닷속을 헤엄쳐 적을 공격하는 ‘어뢰’이기도 하다. 이런 무기를 ‘대잠로켓’ 이라고 하는데, 미군에선 아스록(ASROC: Anti Submarine ROCket)이라고 부르며 현재 실전에 배치한 것도 미군이 유일하다. 다만 일본이 지난 해 유사한 형태의 무기를 개발해 실전배치를 준비 중이다.

ADD는 홍상어를 개발하기 이전에도 두 종류의 최신형 어뢰를 개발했다. 아군 잠수함에서 사용하며 적의 군함이나 잠수함을 공격할 때 쓰는, 파괴력이 높은 중어뢰 ‘백상어’와 헬리콥터나 군함에서 물속으로 쏘아 넣어 적 잠수함을 공격하는 가볍고 날렵한 경어뢰 ‘청상어’가 그것이다.

두 가지 어뢰 모두 뛰어난 성능을 인정받고 있지만 어뢰라는 무기의 단점은 그대로 가지고 있다. 어뢰는 바닷속을 헤엄쳐 가야 하니 공격속도가 50노트(1노트는 약 시속 1.8Km) 정도밖에 되지 않아 달리고 있는 자동차보다 느리다. 적이 어뢰를 발사했다는 사실만 일찍 눈치 챈다면 배나 잠수함을 돌려 회피할 수 있을 정도이다. 전쟁영화에 군함이나 잠수함 승무원들이 어뢰를 피하려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해군 순양함에서 솟아오르고 있는 홍상어. 홍상어는
군함 갑판에서 수직으로 발사된 뒤 적 잠수함 가까운
곳으로 날아든다. 사진제공 국방과학연구소>

홍상어는 로켓에서 어뢰로 변신하는 기능을 추가해 이런 문제를 해결했다. 백상어나 청상어는 처음부터 물속을 헤엄쳐 적을 공격하지만, 홍상어는 일단 적 잠수함 근처까지 하늘로 날아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몸체를 쪼개며 로켓 머리 부분에 감추어 두었던 어뢰를 낙하산에 매달아 물속으로 던져 넣는다.

물속에 들어온 순간부터 홍상어는 로켓이 아닌, 국산 경어뢰 청상어와 똑같아진다. 청상어 역시 보통 어뢰는 어니어서 액티브(능동)소나 유도 기능을 갖추고 있는데, 스스로 삐이~ 삐이~ 하는 소리를 내고, 그 반사음을 분석해 적이 어디에 숨어있는지를 찾아낸다. 이 때문에 적 잠수함이 꼼짝 않고 숨어있더라도 청상어를 피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로켓의 효율성을 빌려온 ‘신개념 어뢰’가 이 첨단무기의 정체인 셈이다.

홍상어의 또 다른 장점은 길어진 사정거리이다. 보통 어뢰의 사정거리는 길어봐야 수 km 정도다. 더구나 이렇게 먼 곳에서 어뢰를 쏘면 적 잠수함도 쉽게 눈치를 채고 숨어버리기 일쑤다. 명중시키려면 결국 위험을 무릅쓰고 적 잠수함 근처까지 다가가 공격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하지만 홍상어의 사정거리는 19km를 넘어서 적의 사정거리 밖에서도 공격할 수 있다. 적 잠수함은 세종대왕함을 공격할 수 없지만, 우리는 적의 머리위에 어뢰를 떨어뜨릴 수 있으니 승패의 결과는 불 보듯 뻔한 셈이다.

<홍상어의 운영 개념도. 하늘을 날아 적 잠수함을 공격하는 홍상어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자료 제공 국방과학연구소>

물론 실제 전투가 이렇게 쉽게 풀리지는 않는다. 홍상어가 새로운 개념의 무기이긴 하지만, 잠수함도 계속 발전하고 있다. 자신과 똑같은 소리를 내는 교란용 어뢰(기만장치)를 쏘아 적의 공격용 어뢰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등, 다양한 회피 방법들이 연구되고 있다. 고성능 잠수함이라면 바닷속 깊이 숨어 있다가 수면에서 부터 달려드는 홍상어의 공격을 피할 시간을 벌 수도 있다.

홍상어 1발의 가격은 20억원 가량. 한 발이라도 함부로 낭비할 수는 없는 일이어서 ADD는 첨단 어뢰 유도기술을 추가로 연구해 냈다. 바로 적 잠수함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찾아내, 끝까지 추적하도록 돕는 기술이다.

어떤 최신형 잠수함도 물속에서 움직인다는 점은 변함이 없어서, 헤엄쳐 지나간 곳에 불규칙한 물의 흐름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흐름은 결국 파도가 번지듯 수면까지 전달되는데 연구진은 이 파동을 감지해 물체의 형태와 위치를 분석하는 기술을 개발해 냈다. 잠수함이 지나간 흔적을 쫓는 새로운 어뢰용 유도 기술을 세계에서도 최초로 개발한 것이다. 실험 결과로도 새로운 유도기술을 적용한 어뢰가 기존의 어뢰보다 높은 명중률을 나타낸 만큼 국군은 이 기술을 홍상어를 비롯한 국산 어뢰에 장착해 실전에 적용할 방법을 검토 하고 있다.

현대전은 정보전이라고 한다. 적의 위치와 행동을 먼저 알고 타격하는 자가 승리한다는 뜻이다. 빛이나 전파가 전달되지 않는 물속에서는 음파가 가장 좋은 탐지도구이다. 짙고 어두운 심해, 어뢰와 잠수함이 벌이는 소리의 싸움은 서로의 위치를 추적하는 치밀한 심리전이기도 하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해군력의 절대적인 우위를 확보하지 않으면 안보를 유지하기 어렵다. 첨단 음향과학기술로 만들어 내고 있는 우리의 무기, 홍상어가 한국의 바다를 든든하게 지켜 주기를 기대한다.

글 :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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