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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의 기막힌 변질…아이들이 위험해 [한겨레펌]

  • 분류
    잡기장
  • 등록일
    2009/11/07 14:24
  • 수정일
    2009/11/07 14:24
  • 글쓴이
    강 아래 강
  • 응답 RSS

‘옛이야기’의 기막힌 변질…아이들이 위험해
‘콩쥐’의 독립적 여성상 왜곡되고
‘흥부 놀부’엔 일본 도깨비 침투
“원전보다 전근대적 세계관 넘쳐”
〈옛이야기와 어린이책- 잃어버린 옛사람들의 목소리를 찾아서〉
김환희 지음/창비·2만원

“여러 민족의 심층심리에 내재된 문화 코드를 연구한 클로테르 라파유도 ‘우리는 대부분 7살까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물의 의미를 각인’하며, ‘어린 나이에 잠재의식 속에서 이루어지는 강력한 각인은 그들이 어떤 문화에서 성장하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한다. 취학 전 유아가 변형된 옛이야기를 반복적으로 읽고 자란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그것을 옛사람들의 이야기로 착각할 위험이 크다. 우리 이야기들이 일그러진 형태로 후손에게 전승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미국 남가주대학에서 단편소설의 본질과 서구 단편소설 이론의 한계를 분석한 논문으로 학위를 받은 뒤 우리나라뿐만이 아닌 동서양의 옛이야기와 어린이책 평론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활동을 펼쳐온 김환희씨에 따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옛이야기들 대다수는 실은 우리 옛이야기 그대로가 아닐 가능성이 짙다. 그리고 우리 잠재의식 속에 각인된 중요한 사물들의 의미는 서양 것이며, 그 서양 것조차 이야기가 태어난 배경과 본디 의미를 제대로 담고 있는 것은 소수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김환희씨의 <옛이야기와 어린이책>(창비)이 재인용한 2007년 설문조사를 보면, 서울·경기 지역에서 한 가정이 소유한 유아용 전집이 평균 여섯 질이 넘고, 권수로도 유아용 전집류 책이 단행본의 두 배가 넘었다. 전집류의 대부분은 그림책이다. 같은 해 한 대학 아동문학 수강생들에게 ‘동화’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나 단어를 하나씩 적어보라고 했더니 우리 이야기를 적어낸 학생은 3분의 1도 되지 않았다. 대다수가 안데르센,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 가운데 하나를 써냈다. 지은이가 올해 인터넷서점 예스24 인터넷 사이트에서 ‘백설공주’를 검색했더니 판매량 순위 1, 2위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제품이고 3위에서 5위까지는 영어학습 교재였다.

디즈니 제품들의 가부장제 이데올로기, 성차별, 백인우월주의, 엘리트의식, 지나친 기독교주의, 문화제국주의 등에 대해서는 ‘정치적 올바름’의 차원에서 이미 많은 지적과 비판이 이뤄졌지만, 문제는 그 이야기들의 원작을 접할 기회가 우리에겐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는 제대로 된 비판이 불가능하며, 거기에다 “원작의 줄거리를 마음대로 바꾸고 원작자 이름을 제멋대로 붙인다면 어린이가 서양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문화해독력’을 기르기란 요원할 것”이다.

최근 창작동화나 우리 옛이야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작품들도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나 ‘한국 전래동화’로 분류되는 그림책들 분석은 안데르센, 그림 형제, 샤를 페로 등의 작품이 주류를 이루는 ‘세계 명작동화’를 분석하는 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더 많이 든다고 지은이는 말했다. 서양 그림책들은 후대의 작가들이 변형하거나 재창작할 때 대개 왜 그랬는지, 그 출처가 어딘지를 상세히 밝혀 놓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출간되는 그림책에는 그런 걸 제대로 밝혀 놓은 게 거의 없다.

  
 
 
 
구전설화나 무속신화, 고전소설 등의 형태로 전래되는 옛이야기들은 설화자와 채록자가 누구냐, 어느 시대냐 등에 대해 알아야 그 의미와 가치, 매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구비전승은 같은 이야기라도 각편(이본)들이 수십 내지 수백개에 이르기 때문에 예컨대, 나도 ‘나무꾼과 선녀’를 읽었노라고 얘기해도 각자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머리 속에 담고 있을 수 있다. 김씨에 따르면 후대의 많은 작가들은 원전의 핵심 메시지를 왜곡하거나 아예 빼버린 경우가 적지 않다. 콩쥐팥쥐 민담에는 그림책과는 달리 감사의 도움 없이 콩쥐 홀로 온전한 사람이 되고 누가 더 마음씨가 곱고 이쁘다는 얘기도 없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역시 구전설화 쪽이 현대의 그림책들보다 서사적 짜임새가 더 탄탄하며 아이들의 지혜로운 대응이 더 강조돼 있다. 나무꾼과 선녀, 심청 얘기, 구렁덩덩 신선비, 바리공주도 구전 쪽이 현대의 그림책들보다 주인공들이 역경을 딛고 독립적 주체로 성장해가는 면이 더 부각된다. 흥부와 놀부 민담에는 도깨비가 등장하지 않으며, 더구나 그림책들의 도깨비는 일제 때 혼입된 일본 도깨비 ‘오니’다.

 

 

 

원전의 출처도 밝히지 않고, 그나마 인색하게 밝혀 놓은 것들 중에는 심지어 전혀 다른 의미와 맥락을 지닌 각편들 출처를 뒤바꿔 놓은 경우도 있다. 우리 옛이야기만 그런 게 아니다. 백설공주나 인어공주, 신데렐라, 빨간 모자, 아기 돼지 삼형제, 헨젤과 그레텔 등 서양 옛이야기들을 개작한 우리 작가들이 원작자의 이름을 자신들이 새로 쓴 작품 표지에 버젓이 내걸면서도 원작을 마음대로 고쳐 쓰고 원작 판본들 저자 이름을 뒤바꿔 놓기도 한다. 원전들을 읽어보기는커녕 제대로 조사해본 적도 없이 최근 판들을 서로 참조하며 복제를 거듭했거나 의미 파악을 엉터리로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서양 옛이야기의 한국 개작본들이 ‘정치적 올바름’의 차원에서 원작들의 한계를 돌파하는 것은 고사하고 원전의 잘못을 오히려 확대 증폭시킨 사례들이 허다하지만, 우리 옛이야기도 현대의 재창작물들이 구전 채록담들보다 더 전근대적인 가치관을 담고 있고 서사구조마저 엉성한 것투성이란다.

<옛이야기와 어린이책>의 최대 강점은 그것을 추상적 개념으로 주장하는 게 아니라 동서고금의 텍스트들을 종횡으로 구사하며 구체적으로 명쾌하게 입증한다는 데 있다.

우리 옛이야기와 서양 옛이야기 각 7편씩과 바람직한 현대 개작판 사례 각 1편씩을 분석하면서 그가 동원하는 자료들은 어린이책, 채록 민담, 고문헌, 애니메이션, 교과서, 옛 그림, 고전소설 등 수십 편에 이른다. 풍부한 자료를 적재적소에 구사하면서 비교 분석하는 인문학적 깊이가 남다르다. 오랜 비교문학 전공으로 축적된 내공 덕이다. 당연히 그런 점들이 설득력을 크게 높인다.


원작에 함부로 손대 문화적 가치 훼손
상업적인 해피엔딩·잔혹동화 경계해야”

‘옛이야기와 어린이책’ 지은 김환희씨
 
 
대학에서 영미 아동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김환희(53) 박사는 “우리의 특수성을 제대로 알려면 바깥세상과 비교해봐야 한다”고 했다. 그가 20여년간 몰두해온 비교문학의 특성과 중요성을 그 한마디로 요약한 셈이다. 아동문학의 동서양 비교연구는 우리나라에서도 드물지만 서양 쪽도 사정은 비슷하단다.

김 박사가 아동문학 작품을 평가하는 “제일 중요한 기준”은 작품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세상 밖으로 나가는 어린이들에게 용기와 지혜를 주느냐, 말하자면 어린이를 위한 것이냐, 아니면 어른들이 아이들을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로 길들이기에 편한 것이냐”다. 그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핵심 요소는 서사구조가 주인공 아이(또는 아이들)가 바깥세상에서 역경을 헤치며 독립적인 주체로 성장해가는 쪽이냐, 아니면 ‘백마 탄 왕자’나 ‘평양감사’ 등 주로 남성 우월자의 손을 빌려 비로소 난관을 돌파하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쪽이냐다.

어린이들은 특히 옛이야기 중에서도 민담을 좋아한다. “이야기 구성이 재미있고 명쾌하며, 바보나 못난이가 성공한다는 전복이나 인생 역전 같은, 힘을 줄 수 있는 요소들이 많기 때문”이다. 민담은 권선징악적 요소가 강한데 요즘 작가들은 너무 잔인한 장면이나 무정한 결말이 비교육적이라고 판단해서인지 악한을 용서하거나 극단적 결말을 피하는 식으로 끝맺는 경우가 많다며 반드시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했다. “민담은 그 자체 유머러스하고 해학적이어서 선명한 권선징악도 심각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어른들 구미에 맞춘 상업적 해피엔딩 남발은 권할 만한 게 못 된다. “안데르센 동화들은 굉장히 다양한 결말 구조를 갖고 있다. <인어공주>나 <장난감 병정>은 비극적으로 끝난다. 개작을 하더라도 원작의 맛은 살리는 게 좋다.” 어떤 세속적인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끝나는 원작 <인어공주>의 썰렁한 결말이 감동을 주는 것은 인간사회의 암울한 현실이 잘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안데르센은 사회의 부조리에 신음하는 한 개인의 지독한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도 자신의 꿈과 품위를 잃지 않고 꿋꿋이 삶을 버티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솔직하고 박진하게 들려준다.”

민담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화소(이야기 요소)를 첨삭할 때는 다양한 시각에서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정치적 올바름’이나 ‘페미니즘 정신’에 어긋난다고 해서 화소를 함부로 편집했다가 이야기에 담긴 옛사람들의 지혜와 문화적 가치를 훼손하고 서사의 짜임새를 엉성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부장제나 계급주의, 기독교주의 등에 저항한 현대의 많은 작가들 작품, 예컨대 “제임스 핀 가너의 <정치적으로 올바른 베드타임 스토리>나 바버라 워커의 <흑설공주 이야기>도 예술성과 철학적 깊이가 부족해 원작보다 낫다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그는 말한다. 기유 미사오, 안나 이즈미 같은 일본작가들이 쓴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 같은 이른바 ‘잔혹동화’들은 상술에 찌들어 원작을 자극적 방식으로 훼손한 “형편없는 싸구려 소설”이라고 비판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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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를 바꾸며

  • 분류
    잡기장
  • 등록일
    2009/11/04 14:41
  • 수정일
    2009/11/04 14:41
  • 글쓴이
    강 아래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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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이 지금까지의 내 아이디 였다.

어떤사람은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내 이면을 나타내는 것이라 풀이하기도 했다.

난 단지 세상의 모든것이 변하며, 흐르는 것이라 생각했고 늘 푸르른 소나무처럼 썩지 않기를 바라는 맘에서 '흐르는 강물처럼'  줄여서 '흐강'이라는 아이디를 썼다.

 

이제 아이디를 바꾸려 한다.

 

흐르는 감물처럼이 내 의식의 상태를 나타낸 것이라 한다면 '강아래강'은 내 무의식의 본능과 직관을 나타내는 것이다.

 

나에게 더 이상 이성과 합리화의 세계는 희망과 재미가 없다.

 

그래서

 

이성에서 감성으로 ,  합리화에서 비합리화의 세계로 나아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강아래강    ...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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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목록

공옥진(KBS스페셜)을 보고..

  • 분류
    잡기장
  • 등록일
    2009/11/01 21:26
  • 수정일
    2009/11/01 21:26
  • 글쓴이
    강 아래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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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옥진 선생은 정말 광대임을 느끼게 하는 동영상이다.

 

재수없게 .... 그 누구냐.... 문화부 장관.....   정말 재수없다. 

 

공옥진 선생과 아주 대비가 되어서 좋았지만 그래도 그건 아니다... 낄때가 있지...

 

 

 

왜 공옥진선생은 광대의 끈을 놓지를 않을까.

 

승화의 한 예로 공옥진 선생의 춤을 예로 들수 있을 것 같다. 

 

얼마나 슬픔이 깊었으면  몸이 그 지경이 되고도 춤을 놓지 못할까...

 

춤 출때의 정신상태는 거의 완전히 '공감 또는 몰입' 상태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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