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우연히 오늘 엠피쓰리를 컴퓨터로 듣는데 다들아시는 알다시피 루이스 암스트롱의 노래가 흘러 나왔다.
언제 들어도 마음을 원더풀하게 만드는 노래이다.
그러나
나는 한때 저 노래를 이해를 하지 못했다. 어떻게 이 세상이 원더풀한 세상인가...
이 세상은 바뀌어야 할 세상인데..
근데 요즘은 생각이 바뀌었다.
'맞아 이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이야 "
바뀌어야 할것은 변하지 않았지만 아름다운 세상보다는 작다는 것을 느낀다.
전에는 바뀌어야 할 것들이 크고 아름다움이 작은 줄 알았다..
요즘 나의 신조는 정치는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 해야 한다는 것이 소신이다.
정신이 건강하고 아름답게 보는 사람만이 진정한 변화를 할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I see trees of green, red roses too
푸른 나무숲, 또한 빨간 장미꽃 바라보네
I see them bloom for me and you
당신과 나를 위해 그들이 피어남을 보네
And I think to myself, what a wonderful world
그리고 혼자 생각하길,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And I think to myself, what a wonderful world
그리고 혼자 생각하길,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I see skies of blue and clouds of white
푸른 하늘과 흰구름들도 바라보네
The bright blessed day, the dark sacred night
밝고 복받은 낮, 어둡고 성스런 밤
And I think to myself, what a wonderful world
그리고 혼자 생각하길,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The colours of the rainbow, so pretty in the sky
하늘의 무지개 색들 너무 고와서
Are also on the faces of people going by
지나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나타나네
I see friends shaking hands, sayin' "How do you do?"
친구들 서로 악수하고, 인사 나누네
They're really saying "I love you"
실로 그들은 "당신을 사랑해"하고 말하네
I hear babies crying, I watch them grow
아이들 울음소리 들리고, 그들이 자라남을 보네
They'll learn much more than I'll ever know
내가 알 수 있는 그 이상으로 그들은 배우게 되겠지
And I think to myself, what a wonderful world
그리고 혼자 생각하길,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And I think to myself, what a wonderful world
그리고 혼자 생각하길,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A Wonderful world...A wonderful world...
댓글 목록
관리 메뉴
본문
날카로운 직관과 살아있는 감정이 그냥 주어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불교적으로 보면 돈오점수(돈오점수-한자가 생각이 안남)로 마음의 관조 깨달음에 대한 마음공부 일 겁니다.
이것을 해석하는 어떤 학자의 견해는 어느 선수행의 대가에 대하여 그가 돈오점수를 깨친것을 또한 학자 자신의 이론적 깨달음으로 자신의 이성을 정립하더군요
돈오점수란 오(悟)와 수(修)에서 수행자는 어쩌면 자신의 마음의 직관(돈)이 고통의 시간 득도의 시간을 통하여 어느날 지혜로움의 마음의 본질을 보게되는 것 같습니다.그것은 사물과 관계를 있는 그대로 인간의 기의(문자적 표현의 이성)를 배제한 그야말로 흐강(흐르는 강)을 본다는 겁니다.그러나 흐강은 물과 천이 어루러진 구성이 강입니다.강에 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이 흐강이지요 그럼으로 강이 물이 없다면 존재할수 없고 천이 없다면 강이 아니겠지요 즉 직관과 감정도 이성과 분리된 그것만의 독특함은 아닐 겁니다.
돈오점수에서 선(禪지식,깨달음)을 획득하는 것에서 수행자는 오를 더욱 강조했다고 할수 있습니다.물론 오와 수는 불과분의 관계이지만 오를 강조하는 수행자는 깨달음의 경지 높은 수준의 득도 대하여 수행자로서 오를 중요시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론의 깨달음은 오(悟)는 수(修)를 통하여 끝없는 수행속에서 깨달음의 지혜가 주어진다는 겁니다.
돈오점수의 개념 구성에서 단 한번의 득도의 힘(돈오)이 직관과 살아있는 감정의 지혜의 도구가 아니라 끝없는 수행에서 오가 쌓이며(점수)그것이 돈오의 지혜작용의 이성과 감성이 어우러진 돈오점수로 즉 깨달음으로 나타 난다면 여기서 오와 수에 대하여 어느것이 우선 이다고 말할수는 없지요
그럼으로 이론과 수행은 이성과 감성이 상대적 분리가 아니라 하나라는 것 아닙니까?
직관과 감정은 남의 말을 들을수 있는 힘이며 보다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돈오점수라는 이성과 감성이 어우러지는 공부는 그야말로 인간을 존중하는 힘이 되겠지요
어쩌면 기존의 기의적이고 기표적인 이성의 오류에서 탈피하는 노력이 있어야 그 고통의 시간으로 해체와 비움이라는 새로운 미학적 직관이 마음에서 우러 나겠지요
그것은 바로 인간의 본질로 회심하는 새로운 이성은 아닙니까?
인간은 배제 할수록 소외 될수록 고독 합니다.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사회적 관계에서 존재감을 느낄때 행복합니다.그럼으로 그 고독은 누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것이지요(마음의 주체로 보면)
그러나 그것을 탈피하기 위하여 대화의 소통이 단순히 커뮤니티적인 인터넷의 대화는 아니죠 그런 의미에서 진보블러그란 대화의 힘이 무한 하면서도 진보한 커뮤니니가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전에 진보란 가장 인간적인 것이라고 여기서 소통한적이 있습니다.그럼으로 진보란 역사적으로 앞으로 나아 간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봅니다.인간과 자연이 가장 행복해 질수있는 인간의 깨달음이 이성과 감성의 수준이 될 것이며 그것이 사회화 되는 것이 진보 이겠지요
-커뮤니티는 계속 이어지는 거죠
관리 메뉴
본문
네.. 그렇게 생각하시는 군요..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관리 메뉴
본문
인본주의 커뮤니티는상담체와 대화체이다
듣는다,이해한다
인간을 위해서....
내가 상담이라는 생명없는 빈깡통을 차버렸을때
"왜이래요"
디지털의 커뮤니케어션이 아니라면
내가 커피를 마시고 종이컵을 던졌을때
"왜이래요...."
여러 반응의 현실의 커뮤니티가 액션화 되어서 나타 나겠지요
이것이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상담과 대화를 넘어서는 인간의 관계가 나타나는 것이지요
그러나 디지털의 세계에서는 보다 수동적인 커뮤니티로 인간의 관계가 만들어 진다는 겁니다.
"배워야 할 자유"는 상담의 기능이나 대화의 기능을 넘어서는 인간의 관계를 위한 풍부한 자료와 노력이 없이는 대상이 되는 것이지요
마빡을 치며 "돈오돈수(삶은 樂일까 修일까)!"
영 다른 내용으로 똑 같은 문장으로...말해 보시죠
관리 메뉴
본문
현/ 궁금한것이 있는데요.. 저한테 뭐 원하는 것이 있나요?혹시나 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