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여행준비

from 잡기장 2008/08/23 05:41

수요일에 국립의료원에 가서 황열병 주사를 맞고 의사한테 풍토병에 대한 설명을 듣고 말라리아약을 한달치를 받았다.

 

여행에 대한 준비도 안했지만 막상 주사를 맞으려고 부산을 떨면서 아프리카에 간다는 실감이 난다.

아프리카 중서부 지역인 가나를 중심으로 토고, 배닝, 코트디브아르, 적도기니,나이지리아, 카메룬 등을 둘러볼 예정인데  얼마나 다닐지는 현지에 가서 결정하려고 한다.

 

이 번 여행의 목적은 아프리카와의 공정무역을 준비하기 위한 사전 준비이다.

12월 알프레도가 와서 함께 공정무역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중고 컴퓨터를 보내주기로 결정하고 4월에 한 컨테이너 물량을 보낸 것을 기점으로 눈에 보이는 것은 없지만 숨가쁘게 진행되었다.  

 많은 메일과 채팅, 샘플을 받고 공정무역에 대한 상호간의 공부를 하면서 처음부터 상호간에 신뢰를 기반으로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날 수 있기에,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운동으로 자리잡기 위해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하에서 그것도 가까운 제 3세계 아시아 지역도 아닌 하필이면 아프리카냐 물으면 딱히 지금은 할 이야기가 없다.   그것에 대한 해답을 찾기위해 이 번 여행이 개인적으로 어렵지만 강행하는지도 모르겠다. 

 

한 쪽에서 너무나 애절하기에 그것을 애써 외면할 수 없다고나 할까?  

에스페란토를 하면서  친해진 사람들과 상호 소통은 서로를 알아감이 깊어질수록  서로를 위해 뭔가를 해 줘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없지만 그 쪽도 만찮가지,  하지만 서로가 주고 싶어한다. 

그것이 우리네가 말하는 '정'같은 것이다.   

 

얼마전에는 호주의 산도르라는 친구가  선주민(아보리게나)에 이주를 해서 부인 헬라나는 코알라 환경보호운동가이고 자기는 선주민 교육운동을 하는데  아보리게나 언어가 사라져가고 있는 상태에서 이방인인 자기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친다는 것이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영어교육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기에- 국가의 방치, 무관심)  너무나 힘들다고 시간이 있으면 와 줄수 있냐고 간절히 이야기를 한다. 

 

어느 민족이나 부모세대가 못배웠으면 아이들에게만 이라도 자신들의 고통을 전가시키지 안으려고  교육을 시키기를 원하지만  그것은 부모 마음이고 배우는 대상인 아이들에게는 무엇을 배운다는 것이 다가오지 않나 보다.   배우지 않아도 국가에서 보조금이 나와 사는데에 지장이 없으니 힘들여 무엇을 배운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커다란 노동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계급적 출세를 위해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그배움의 과정을 극복한 소수의 사람들만이 사회의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리잡는다.    공동체의 탈락한 사람들에게 복지이라 미명아래 혜택을 주고 있지만  어쩌면 발달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 얄량한 혜택의 시혜가 개인들을 더욱 고립시키고 피폐하게 만든다고 생각도 든다.   보이지 않게 분리된 장벽안에 갇혀진 사회에서 그들이 누리는것은 철저한 개인의 망가짐이다.  

 

일본의 아이누족의 투쟁은 발달된 일본 자본주의와의 처절한 싸움이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의 기본은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하고 교육하는 것이다.  그것을 일국가는 소수민족어, 표준어, 국어의 형태로 탄압하고 있다.   각국의 부는 한편으로는 선주민들의 자치권을 인정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선주민들을 동화시키는 정책을 펴고 있다.  캐나다, 미국의 인디언들이 그렇고 하와이 선주민들은 알로에 하와이를 외치면서 하와이댄스와 미국의 다국적 기업이 만든 호텔에서 호텔종업원, 택시기사로 대부분 생활하고 있다.  

 

이와는 조금 다르지만 제주도의 선주민들도 비슷한 환경에 처해있다고 본다.   부모세대들은 먹을 것 없어 고생했지만 자식들은  땅값이 올라  손에 돈은 들어오지만 결국 그 돈을 쓰고 나면 제주도에서 할 것이라고는 택시기사 하면서 관광안내를 하던가 대기업들이 지어놓은 호텔 등에서 일하는 처지가 된다.     제주도가 발전하면서 투자와 자본이 커질수록 자신들이 터전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과거 뛰어놀던 한라산 자락에 돈을 내고 들어가야하고,  바다 역시 마찮가지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국가가 선주민들을 어떻게 동화시켰고 지역을 어떻게 황폐화 시켰는지 이웃나라들의 역사를 통하여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소수가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그런 공동체가 건강한 사회이다.     그런 공동체를 지키는 싸움은 사회운동내에서나 국제연대에서도 중요하다.   그것은 소수의 공통의 운동이고 함께 공통되기 운동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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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3 05:41 2008/08/23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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