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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꿈을 그리다. [고대문화 펌]

스포트라이트
누군가에게 애니메이션에 대해 물으면, 그 반응은 참 다양하다.

피규어가 죽 늘어서 있는 어두컴컴한 방에서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20대 초반의 남자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고, 초등학생들이 오후 6시 정도면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보는 것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으며, 미야자키 하야오등을 예로 들면서 발달한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해서 한참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문화콘텐츠’가 한국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유망 산업처럼 여겨지는 요즘은 특히 원소스 멀티유즈가 가능한 대표적인 문화콘텐츠로서 애니메이션을 바라보는 시각이 두드러진다.

대한민국을 ‘세계 5대 문화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정부의 발표에도 애니메이션은‘핵심콘텐츠’의 하나로서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과정은 무척 복잡하지만 간단하게 정리하면 기획-연출-작화-완성의 네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기획단계에서 주인공의 그림과 성격이 정해지고 그에 따라 각본이 나오면 연출단계에서 스토리보드를 만들고, 작화단계에서는 ‘원화’와 ‘동화’의 두 파트로 나뉘어서 그림이 그려진다.

완성단계에서는 배경을 넣고, 채색을 하고, 촬영과 편집과정을 거친다.

크게는 전 단계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들을, 작게는 작화단계에서 ‘원화’와 ‘동화’를 그리는 사람들을, 우리는 애니메이터라고 부른다.

 

애니메이터
금천구 가산 디지털단지 내에 있는 한 애니메이션 회사를 찾았다.

주로 미국 회사의 하청을 받아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는 회사다.

입구에 들어서서 왼쪽에는 연출과 작화가 이루어지는 방들이 모여 있었고, 오른쪽에는 채색이나 배경작업, 편집 등이 이루어지는 방들이 모여 있다.

제작과정에 따라 공간배치를 해둔 듯하다.

원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무실에 들어섰다.

사무실은 책상 다섯 개로 가득 차있었고, 각각의 책상은 칸막이가 높게 설치되어 있었다.

책상 한 편에 컴퓨터가 놓여있다던가, 가족사진이 하나 붙어있다던가 하는 점은 여느 사무실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그렇지만 책상 벽을 가득 메우고 있는 캐릭터 설정 자료들이나, 책상 위를 굴러다니는 타임 테이블이나, 라이트박스밑에서 조명광선이 올라오는 작업대 등은 확실히‘그림 그리는 사람의 자리’라는 것을 보여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애니메이션계에 투신(?)하여, 이제원화 감독을 맡고 있는 김유성 씨의 책상에는 파란 해파리 괴물 캐릭터가 붙어 있었다.

옆자리에서는 자동 연필깎이로 연필을 깎는 소리가‘드르륵’들린다.
“네, 이 방에서는 원화를 그리고 있어요.

원화는 스토리보드에 적혀 있는 대로 캐릭터가‘연기’를 하게 만드는 작업이라고 보시면 되죠.

여기, 견본 캐릭터를 바탕으로 해서, 캐릭터의 표정이니, 동작이니 하는 것들을 직접 그려내는 겁니다.

동화는 원화와 원화를 부드럽게 연결해주는 그림들이지요.”
김유성 씨는 커피 한 잔을 내 앞에 내려놓으면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설명부터 하기 시작했다.

애니메이터들은 크게 ‘원화맨’과 ‘동화맨’으로 나누어져 있다.

아무래도 상황에 맞는 캐릭터들의 움직임을 그려야 하는 원화맨 쪽이 보다 숙련된 노동이 필요한 분야이다.

그래서 애니메이터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은 2년에서 3년 정도 동화 일을 배운 후에야 원화 일을 시작할 수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한 회사에 원화맨이 10명 정도라면 동화맨은 50명이 넘게 있는 구조라서, 원화맨이 되었다가 다시 동화맨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허다하단다.

한 달에 작업량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김유성 씨는 고개를 갸웃한다.
“애니메이션 일은 전체적으로‘이거다!’하고 말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요.

작업량도 어떤 작품이냐에 따라서 많이 달라지니까. 보통 네다섯 명의 원화맨들로 이루어진 한 팀이 한 달에 10분 분량의 애니메이션을 만든다고 보시면 될 거에요.

10분 분량이라고 하면 감이 잘 안 오나? 음, 회사에 따라 또다른데, ‘카툰네트워크’는 7000~10000장, ‘니켈로디언’은15000장 정도가 들어가죠.”
동작이나 표정이 얼마나 복잡한가에 따라서 필요한 원화의 수도 바뀐다고 했다.

7000장이니, 15000장이니 하는 것들은 원화와 동화를 합한 수량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애니메이터들은 어느 정도의 수입을 얻을까.
 

“우리 원화맨들은 좀 잘나가면 월 250에서 300정도는 벌수가 있어요.

비수기를 고려한다고 해도 연봉 3000정도는 어떻게 벌 수가 있는데. 동화하는 친구들이야 많이 힘들 거예요. 그 친구들, 한 달에 100은 가져갈 수 있으려나?”
김유성 씨 옆자리에서 ‘드르륵’ 연필을 깎던 원화맨 한 분이 말했다.

그 ‘잘나간다는’ 원화맨들도 경력이 20년은 족히 되는 사람들임을 생각하면, 그리 벌이가 좋은 직업은 아니다.
“사실 대부분의 애니메이터들은 계약서도 없이 일해요.

회사에서는 우리를 프리랜서라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냥 비정규직 노동자죠. 이 애니메이션이 좀 웃긴 게, 제가 일을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그림의 단가가 다르지가 않아요.

그래서 예전에는 진짜 잘나가는 직업이었지만, 요즘은 정말 빠듯합니다.

그게 한국에서는 창작을 하지 않고, 외국에서 하청을 받아오는 OEM방식으로 하고 있어서 그런 거예요.

외국 회사가 작품 단가를 높이지 않으니까.”
애니메이터들의 글을 찾아 읽다보면 유난히‘창작’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창작’이야기가 나온 김에 그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그는 인터뷰를 하는 시간을 통틀어 가장 반짝거리는 눈빛으로‘창작에 대한 꿈은 모든 애니메이터들이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먹고 사는 게 힘들다보니까, 쉽게 나설 수가 없어요.

창작하는 애니메이터들은 진짜 밥 굶으면서 일한다고 하더라구요.

저도 아이들이 있는데 그럴 수는 없죠.

그래서 요즘은 3D 애니메이션 공부를 하고 있어요. 3D를 하면 혼자서도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거든요.”
한국의 애니메이션 회사들도 조금씩 창작 쪽에 관심을 보이고 있단다.

중국이나 동남아가 애니메이션 시장에 뛰어들면서, OEM으로 한국 애니메이션 회사가 수익을 얻기는 앞으로 더욱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창작 애니메이션이 성공을 거두게 되면, 지금보다는 훨씬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아이들이 자신이 힘들게 만든 애니메이션을 볼 때 가장 행복하다는 그는 ‘이제 창작을 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다.’며 웃었다.

나이 마흔 먹은 아저씨의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천진한 웃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 2의 삶
“어서 오세요, 우리 가족의 축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김유성 씨를 만나고 온 다음 날,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근처의 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박현주 씨를 만났다.

그는 오랜만에 휴일을 맞아 두 딸과 함께 외출을 나온 참이었다고 했다.

근처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오랫동안 앉아 있을 수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오후를 보내는 것이 박현주 씨 가족의 작은 ‘축제’라고 한다.

작달막한 키에 선한 인상을 가진 박현주 씨는 불쑥 나타난 불청객을 앞에 두고 조곤조곤한 어투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미국의 유명 애니메이션인 ‘심슨 가족’, 한국의 RPG 게임인 ‘포가튼 사가’의 작업에 참여했던 베테랑 애니메이터였다.
“애니메이션 일을 시작한 것은 25년 전이었어요. 와, 참 오래했구나…. 그때는 애니메이터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이라고 했고, 저도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무척 많았었죠.

남편이랑도 회사에서 만났어요.

남편은 원화 일을 하고, 저는 동화 일을 해 왔어요.”
동화를 25년 동안 했다는 박현주 씨의 이야기에,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보았던 동화맨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작업실에는 두 줄로 작은 책상들이 촘촘하게 놓여 있어 그 가운데를 지나가기가 힘들 정도였다.

동화맨들은 그 자리에 앉아서 부지런히 연필을 움직이고 있었다.

맡은 분량을 완성하면 입구 쪽에 앉아 있는 작업감독에게 가져오고, 다시 일을 받아서 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이 반복되고 있었다.

흡사  ‘공장’을 보는것 같았다.
“동화맨들은 그렇게 일하죠. 다행히 저는 일을 오래하다 보니까 재택근무를 할 수 있었어요.

그래도 시간이 곧 돈으로 연결되는 애니메이터 일이잖아요. 일거리를 받아와서는 하루 종일 그리고 있어야 했어요.

아이들을 돌볼 시간도 없었죠. 한 달에 보통 1000장 정도 그렸나?

그것도 한 달 동안 여유 있게 1000장을 그리는 게 아니라, 며칠 만에 몇백 장을 그려내서 가지고 가면 또 일을 받아서 며칠 안에 몇백 장을 그려가는 식이에요.

전적으로 미국이나 일본 회사의 방영 스케줄에 맞추어야 하는 것이니까, 그렇게 일이 불규칙하다고 하더라구요. 그나마 일이 계속 있으면 다행이죠. 비수기에는 일이 떨어져서, 아무것도 못할 때가 많았죠.”
김유성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쉽사리 믿을 수 없었던 것은 20년 동안 단가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20년이라면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 계산하기도 아찔해지는 긴 시간이 아닌가. 그래서 박현주 씨에게 이를 다시 물어 보았다.
“네, 제가 일을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동화 한 장당 단가는 거의 비슷해요.

IMF니 뭐니 해서 경제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돌면‘고통분담’의 차원에서 단가가 도리어 떨어지는 경우는 있었지만요.

미국 일은 선이 단순하니까 장당 600원 정도를 받았구요,

일본 일은 선도 복잡해서 장당 1200원 정도를 받았어요. 그래도 받는 돈은 비슷해요,

일본 일은 단가가 비싼 만큼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한 장을 잡고 30분 넘게 씨름하는 일도 자주 있죠.”
떨어질 줄은 알아도 올라갈 줄은 모르는 임금과 나빠지기는 해도 좋아지지는 않는 노동환경 속에서 박현주 씨가 오랫동안 애니메이션 일을 해올 수 있었던 것은 언젠가는 멋진 창작 애니메이션을 하나 만들 수 있으리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한국 애니메이터들이 가장 많이 듣는 비판이 실력이 없어서 남의 나라 작품이나 만들고 있지 않느냐는 거예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비판하기 전에 실력을 키우라고 이야기하죠.

하지만 저는 한국의 애니메이터들에게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는 전 세계 곳곳의 애니메이션 작업을 다해왔어요.

미국, 일본, 프랑스, 캐나다 할 것 없이 말예요.

한국의 애니메이터들은 지금 전 세계에서 어떤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끌고 있는지, 그런 애니메이션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전문가들이란 말예요.
좋은 창작 애니메이션을 만들지 못하는 것은 좋은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크죠.

혹시 ‘오세암’이라는 애니메이션 아시나요?

그 애니메이션을 보면 캐릭터의 움직임이 어색한 부분이 많아요.

스님이 산을 올라가는 장면에서 가방이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거나. 그건 제작비가 부족하다보니까 충분하게 동화를 넣지 못해서 생긴 일이었어요.”
그렇게 자신이 하려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박현주 씨였지만, 작년 말 애니메이션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떨어지는 단가와 불안정한 수입으로는 네 명 가족이 먹고사는 데에도 빠듯해진데다, 20년 넘게 일하면서 쌓인 피로감이 팔에 부담을 주기 시작한 것이었다.

곧장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섰지만, 그림만 그릴 줄 아는 45세 여성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이 없었다.
“처음으로 애니메이션을 한 것이 후회가 되었어요.

신물 나는 애니메이션 판, 꾸역꾸역 참으면서 일해온 것이 어리석게 느껴졌죠. 그러다가 우연히 포스터를 보고, 만두 만드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지난 4월, ‘명인만두’의 수습사원으로 들어간 그는 이제만두 가게 직원으로서 제2의 삶을 시작하고 있다.

일이 무척 고되기는 하지만, 예전에 비해 생활이 많이 안정되었고 나름의 보람도 느끼고 있노라고 말했다.

마음이 복잡해져서 잠시볼펜을 내려놓고 있는 나에게 박현주 씨는‘이 집 아이스크림이 참 맛있다’면서 한 스푼 먹어볼 것을 권했다.

자신의 젊음을 오롯이 바쳐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하게 된 일이 아무리 즐겁고, 보람이 있다고 해도 마음 한 편에 자리 잡고 있는 아쉬움이 사라질 리가 만무하다.

미소를 짓고 있는 그의 모습이 괜스레 더 안타깝게 느껴졌다.

 


꿈을 향하라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간간히 흩뿌리던 날, 이번에는 용산으로 향했다.

지금까지 만나본 두 명의 애니메이터로부터, 그들이 어떤 상황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들었던 의문은 왜 그들은 그런 조건 아래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그 조건을 어떻게 개선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용산역에서 철도 웨딩홀 쪽으로 난 골목으로 들어가자 저 멀리서 누군가가 손을 들어 인사를 한다.

전국 애니메이션 노동조합 위원장인 유재운 씨다.
“이 동네가 원체 복잡해놔서요. 미리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꽤 어울리는 회색 개량한복 차림을 한유재운 씨는 휘적휘적 걸어서 허름한 건물 3층으로 들어갔다.

작은 사무실에서 몇 명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전화를 받고 있었다.

자신이 속한 단체의 사무실이라면서, 그는 의자 하나를 가지고 와서 앉을 것을 권했다.

우리는 무릎을 마주하고 앉았다.

애니메이터에게 관심을 보여주어서 참으로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하면서 자료를 주섬주섬 챙겨오고, 달큰한 커피도 한 잔 타온다.

앞서 인터뷰했던 김유성 씨의 선배이기도 한 그는 99년 전국 애니메이션 노동조합을 결성한 이래 애니메이터들의 노동조건을 위해 투쟁해왔다.

오랫동안 투쟁활동을 해와서인지는 몰라도, 그의 말에는 거침이 없었다.

듣는 사람이 다 시원시원해 질 정도다.
“네, 애니메이터들 많이 힘듭니다. 우리들 노동조건이야 더 말하면 가슴만 아플 뿐이지요.

단가 이야기니, 철야를 밥먹듯이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 보셨을 겁니다.

노조 처음 만들고 했을 때는 단가로 싸우고, 노동조건으로 싸우고 했지만, ‘문제는 구조다’라는 생각이 요즘은 많이 듭니다.

무엇보다도 한국의 애니메이션 산업은 외국의 하청을 받기만 한다는 것이 문제이지요.”
인터뷰에 응해 주었던 애니메이터들이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였다.

외국 기업의 하청만 받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왜 한국은 창작 애니메이션을 만들지 않고, 하청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는 애니메이션 산업 자체가 가지는 특성에 상당부분 그 이유를 찾을 수가 있다.

애니메이션은노동 집약적이면서도 대규모의 자본을 요구하며 투자 위험도가 높은 산업이다(주 : 신병현,‘ 애니메이션 산업의 노동과정에 대한 탐색적 연구’, 한국산업노동학회). 인건비가 많이 드는 산업이다 보니, 애니메이션이 일찍부터 발달했던 나라들은 한국이나 중국, 동남아 등 인건비가 저렴한 지역에 하청 생산기지를 적극적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한국은 무려 40여 년 전부터 하청 애니메이션 생산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25분짜리 일본 애니메이션 한편을 만들기 위해서 드는 비용은 3억 3천만 원 정도이다(주 : 2004년 제작된‘건담 SEED DESTINY’기준). 애니메이션 한 시리즈 당 25편 정도임을 감안하고 보면, 제작비용은 80억 원을 훌쩍 넘어가게 된다.

그렇게 엄청난 비용을 투자해서 만든다고 해도, 그 성공을 확신할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다 보니 한국의 애니메이션 회사가 자체 제작을 나선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 되는 것이다.
“한국은 하청 애니메이션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유명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도 한국 애니메이터들이 상당부분 제작에 참여했죠. .

외국 기업이 하는 일이라고는 기획단계 정도입니다.

반대로 한국의 창작 애니메이션은 말라가는 겁니다. 한국에 300개 정도 애니메이션 회사가 있는데 말입니다.

그 중에 창작을 하고 있는 회사는 심형래 씨의‘영구아트무비’를 비롯해서 몇 군데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하청 위주의 애니메이션 산업이 애니메이터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다는 것일까. 유재운 씨는 이미 식어버린 커피를 홀짝, 하고 마시더니 이야기를 계속했다.
 

“하청은 그 대금이 꽤 복잡하게 들어옵니다.

제작 진척 정도에 따라서 30%, 30%, 30%, 10% 이렇게 지불이 되죠. 또 하청이라는 게 한 회사가 다른 회사에 주는 것만 말하는 게 아니에요.

하청을 받은 큰 회사가 또 작은 회사에게 하청을 주기도 해요.

이러다 보니까 어느 한 군데에서 돈이 안 들어오면 여러 회사의 애니메이터들은 한꺼번에 임금체불이 되는 겁니다.

다른 곳에서 돈이 들어오면 먼저 체불된 것부터 갚게 되는 과정이 몇십 년 계속되다보니 임금체불이 일상적으로 일어나죠.
또 있어요.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이나 동남아의 애니메이션 회사들과 경쟁을 하려면, 애니메이터들의 인건비를 일정수준 이상으로 올리는 것이 불가능해집니다.

요즘 단가가 떨어진다고 하죠? 그럴 수밖에요.

중국과 동남아 지역에서 받는 수준의 단가로 하청을 받아 오거든요. 참, 기가 찰 노릇입니다.
애니메이터가 그 뭐냐, ‘후리랜서’라는 이야기는 들었습니까? 그것도 참 몹쓸 거지요.

우리는 법적으로‘개인사업자’라는 겁니다.

회사와는 도급계약을 맺은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연금도 못 받고, 퇴직금도 못 받고, 4대 보험 보장도 못 받았어요.

‘ 개인사업자’들은 법적으로 회사에서‘해고’된 것이 아니라 계약이 종료된 것으로 처리된다는 점 때문에 애니메이터들은 쉽게 쫓겨나기도 했단 말입니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의‘판도’가 바뀔 때마다 수많은 애니메이터들이 한꺼번에 일자리를 잃기도 하고, 가끔은 일이 넘쳐나서 며칠 밤을 새는 것이 예사였습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한동안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할지를 몰라서 종이컵만 자근자근 씹고 있었다.

언젠가 보았던 애니메이션에 나온 거대한 괴물 로봇이 내 눈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그‘구조’라는 괴물 로봇과 8년 동안 싸워온 그는 어떻게 싸움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것일까.
“애니메이터들이 노조를 중심으로 기업과 계약을 하는 방법이 있지요.

노조가 기업과 애니메이터 간에 중간자 역할을 하는 것이죠.

기업에서 일이 들어오면, 노조는 그 단가를 일정 수준 이상이 되도록 협상을 하고, 협상 후에 애니메이터에게 일을 넘겨주는 겁니다.

하청 구조 자체를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라도, 이렇게 하면 애니메이터는 자신의 생계를 충분히 꾸려 나갈 정도의 일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가 있을 겁니다.

물론 대부분의 애니메이터들이 노조활동에 많이 참여한다는 선행되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 것이긴 합니다만.”
유재운 씨는 구조 자체를 바꾸기 위해 모범적인 창작 애니메이션 회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

노조에 속한 애니메이터들이 중심이 되어서 회사를 꾸리는 것이다.

작품 제작 계획을 모두에게 공개해서 각 애니메이터들에게 돌아갈 이익을 명시하고, 경영에도 애니메이터가 참가하는 방식의 회사를 구상하고 있었다.

우선은 자본금이 적으니, 작은 사업부터 시작할 생각이라고 했다.

몇 명의 애니메이터들이 뜻을 모아캐릭터를 만들고 웹툰을 그리는 회사를 차릴 예정이란다.
“실력 하나는 자신이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애니메이터들이 모인 이 회사를 잘 운영해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자 합니다.

우리가 만든 애니메이션이 성공을 거두어서, 한국 애니메이션에 가능성이 있음을 보이면 지금보다 더 많은 기업들이 창작에 투자를 시작하겠지요.

애니메이션의 창작이 많이 이루어지면, 애니메이터들의 임금도 한국 상황에 맞게 현실화될 것이고, 우리들도 그렇게 원하던 ‘창작’을 마음껏 할 수있지 않겠습니까.”
그는 더 많은 애니메이터들이 모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구조’라고 하는 거대한 ‘괴물 로봇’을 상대하는 일이니, 많은 사람이 있어야 함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일이 잘 되면 말입니다,

언젠가는 우리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애니메이션 한 편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일년에 도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목숨을 버리나요.

그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아파요.

그 사람들이 왜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우리의 삶이 이렇게 힘든지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괜찮지 않습니까? 하하.”
김유성 씨에게서 볼 수 있었던 그 ‘천진한’ 웃음을 유재운 씨에게서도 볼 수 있었다.

 

스태프 롤
집으로 돌아와 늦은 점심으로 빵 한 조각을 씹으면서 어제 받아두었던 애니메이션을 켰다.

발달된 인터넷(!)의 영향인지, 일본에서 방송된 애니메이션은 불과 몇 시간 뒤면 한국에서 받아볼 수가 있다.

어느덧 25분짜리 애니메이션 한 편이 끝나고, 엔딩 테마곡이 흘러나왔다.

캐릭터들의 멋진 일러스트 위로, 작품을 만든 스태프들의 이름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자 4글자로 이루어진 일본인들의 이름 사이사이에 영어로 적힌 한국인의 이름들이 눈에 띄었다.

지금까지 취재해왔던 사람들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지만, 내 머리 속에서 그 숱한 애니메이터들의 노동을 다시 떠오르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자신의 손으로 멋진 애니메이션 하나 만들어 보겠노라는 꿈을 안고 애니메이션 판에 뛰어든 사람들이다. 인터뷰를 했던 모든 사람들은 혼자서 일을 하는 애니메이터의 성격상, 하나로 뭉쳐서 무엇인가를 해내는 일은 무척이나 힘들다고 말했다.

하지만 애니메이터들은 무엇보다 자신들의 ‘꿈’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

애니메이션 노동조합의 게시판에 적혀 있던, 그리고 내가 애니메이터 취재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던, 어느 애니메이터의 이 한마디 문장이 바로 그 증거이다.
“그대, 꿈을 향하고자 하면 그대 앞의 억압에 저항하라.”

 

주성|편집위원|encl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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