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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때리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민주버스조직은 아는 동지는 알고 모르는 동지는 모르겠지만 박사훈 전 본부장과 이정훈 초대 위원장이 20년을 현장에서 발로 뛰며 만들어낸 조직이다.

이들의 활동비는 어떻게 조달됐는가하면 한달은 이 사람이 일해서 반으로 나누고 다음달은 저 사람이 일해서 반으로 나누고 하는 방식이었다.

현장에서 그 누구도 실천하지 못하는 아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열악한 환경과 여건속에서 땀과 피와 눈물로 민주버스를 일구어 낸것이다.

맨 처음 노조사무실은 지하실 이었다

그 후에 지상으로 올라왔다. 얼마나 표정이 기쁘던지 나조차 기뻤다.

그리고 대림동 공공운수노조에 합류하면서 지금의 민주버스본부가 건설된 것이다.

이런 일조차 기뻐하고 동지들과 막걸리 한잔하는 그런 소소한 기쁨들이 민주버스 내부에는 깔려있었다.

복수노조가 허용되면서 한국노총에서 무더기로 민주버스로 조직변경을 하면서 여기서기 싸음이 벌어지는제 박사훈 전 본부장과 홍정순 총무부장은 온갖 잔업과 철야도 마다않고 이 싸움들에 맞서 싸웠다.

그리고 많은 한국노총 소속 동지들이 민주노총으로 이동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러나 지난 선거기간동안 최종선거본부에서 저질른 온갖 마타도어와 유언비어 살포는 문제삼지 않겠다.

다만 문제는 이런 피와 땀과 눈물로 일구어낸 민주노조 내부에서 부당해고가 발생한 것이다.

누가 봐도 명백한 사안이 아닐뿐더러 그런 사소한 일로 해고를 자행하는것은 자본가와 별 다를바 없다는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만약 이일로 부당해고를 거부하는 버스동지들이 공공운수노조앞에서 집회를 한다면 아마 굉장히 보기 좋을 것이다.

거기다가 점거까지 들어가고 본부장 집기 따 빼버리고 업무정지를 시킨다면 이건 그야말로 기가막힌 그림이 될 것이다.

한 술 더떠 부당노동행위와 부당해고로 관할 노동부에 제소가 들어간다면 적들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민주노조는 이런게 아니다.

제발 최종본부장 정신좀 차리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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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없이 죽어가는 노동자들 (박래군-경향신문 칼럼 펌)

 

 

 

 

 

 

 

 

소리 한번 지르지도 못하고, 유서도 남기지도 않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죽음들이 벌써 스물두 번째다.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이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공장 점거 옥쇄파업에 들어간 지 닷새가 지난 2009년 5월, 40대 초반의 엄씨는 정리해고 명단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해고돼야 한다는 점에 많이 힘들어하다 스트레스로 인한 뇌출혈로 죽었다.

조합 간부의 아내였던 30대 초반의 박씨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보고 싶으니까 잠깐이라도 왔다가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경찰과 용역이 막고 있어 회사 밖으로 나갈 수 없었던 남편은 결국 아내가 죽은 뒤에야 장례식장으로 갈 수 있었다.

77일의 파업 기간 중에 5명이 죽어갔다.

 

 
 

 

 

2012년에 들어와서도 죽음은 끊이지 않았다.

해고 칼바람을 비켜가지 못했던 중증장애인 40세의 황씨는 집 화장실에서 목을 맸고, 36세의 김씨는 차에 연탄불을 피웠다.

조합원의 아내 최씨는 남편에게 보고 싶으니 빨리 들어오라고 독촉을 한 뒤 집에 온 남편이 옷을 갈아입는 사이 아파트 베란다에서 떨어졌다.

2011년 1월, 서씨는 거제도에서 용접일로 근근이 버티고 살다 자가용 안에 연탄불을 피우고 세상을 하직했다.

이혼했던 그의 뒤로 두 아이가 남았다.

무급휴직자 임씨는 잠자다 돌연사했고, 열다섯 번째 희생자인 강씨는 급성심근경색으로 죽었다.

그해 5월11일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있던 김진숙씨는 “질병으로 15명이 죽어갔다면 원인도 찾고 처방도 찾아내려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누군가가 15명을 연쇄 살인했다면 온 국민이 나서서 범인을 잡아 법정에 세웠을 것이다.

원인도 알고 범인도 아는 살인에 대한 거대한 묵계”라는 글을 트위터에 남겼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은 치유프로그램을 진행했고, 가수 박혜경과 방송인 김제동도 나서서 노동자와 그 가족들과 함께했다.

사람들은 돈도 모으고, 마음도 모았다. 한동안 죽음의 행렬은 끊어졌다.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은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투쟁에 연대했고, 재능과 유성기업 노동조합의 투쟁에도 힘을 보탰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연대에 그들은 늘 앞장섰다.

2011년 10월부터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았던 이들마저 죽음의 길을 택했다.

희망퇴직 후 대인기피증을 보이던 김씨가 집에서 목을 맸다.

그의 휴대폰에는 자신의 사진 2장과 친구 한 명의 전화번호만 있었다.

19번째 죽음은 정리해고자 아내의 죽음이었다.

그 뒤 ‘희망의 텐트’가, ‘희망 뚜벅이’가 이어졌다.

2012년이 되었다.

1월20일, 회사의 요청으로 계약직으로 근무하던 강씨는 재해고된 뒤 심적 고통을 겪다 심장마비로 죽었다.

그리고 지난 3월30일 77일의 파업 투쟁을 같이했던 올해 만 36세의 정리해고자 이씨는 쌍용자동차 출신이라는 낙인 끝에 일자리를 얻지 못하자 자신이 살던 김포의 임대아파트 23층에서 투신했다.

이렇게 조용히 그들은 죽어갔다.

누구보다 살고 싶었을 그들이었고, 그들의 가족이었을 것이다.

정리해고자 2646명, 징계해고자 44명, 징계자 72명, 비정규직 노동자 19명 등. 그들은 단 한 명도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복직 약속은커녕 블랙리스트를 돌려 해고자들의 전업조차 가로막는 잔인함, 빨갱이라는 손가락질과 냉대가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아갔다.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분향소가 대한문 앞에 차려졌다.

오는 22일이면 “함께 살자”며 옥쇄파업에 돌입한 지 3년, 1095일이 된다.

3년이 되기 전에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 분들은 대한문 앞으로 오시라. 11일에는 김제동, 변영주, 김진숙, 심보선, 진은영, 김선우, 송경동, 박재동 등이 함께하는 콘서트와 정태춘·박은옥, 김여진, 김미화, 정지영 등 수많은 이들이 함께하는 바자회가 열린다.

18일에는 4대 종단이 스물두 번째 죽어간 이씨의 49재를 지내고, 19일에는 추모대회가 열린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곁에 서고, 그들의 손을 잡아주자. 그리고 정부와 회사가 책임지라고 분명히 말하자. 조용히 죽어가는 이들이 더 이상 없게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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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받아라 자본가들이여, 그리고 노동자들이여!

보리출판사는 지금 ‘6시간 근무제’ 실험 중

시사저널 | 노진섭 기자 | 입력 2012.03.25 11:17

1980년대 < 9 to 5 > 라는 팝송이 나왔다.
오전 9시에 출근하고, 오후 5시 퇴근하는 봉급생활자의 시계추 같은 삶이 노랫말에 담겨 있다.
이 노래는 직장인들의 공감을 받아 세계적으로 유행했다.
이처럼 출퇴근 시간은 불문율이 된 지 오래다. 이 불문율을 깨는 일은 신문에 날 정도로 이슈거리였다.
삼성이 1993년 출퇴근 시간을 오전 7시와 오후 4시로 바꾸었고, LG전자는 1995년 출퇴근 시간을 직원이 정하도록 했다.
이런 출퇴근 시간의 변화는 신문에 대서특필될 정도로 세간의 관심을 샀다.
그러나 하루 8시간 근무라는 근간에는 예나 지금이나 큰 변함이 없다.
근로자나 경영자 모두 8시간 일하고 봉급을 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개인과 가족생활은 물론 사회가 8시간 근무제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이 틀은 쉽게 깨지지 않을 것처럼 단단하다.
 

미국 켈로그의 6시간 노동제 본떠

최근 보리출판사가 하루 6시간 근무제를 도입하면서 이 틀을 깼다.

이 회사의 임직원은 지난 3월1일부터 오전 9시에 출근하고 오후 4시에 퇴근한다.

점심 시간 한 시간을 빼면 일하는 시간은 6시간이다.

주 5일제 근무는 오래전부터 지켜왔기 때문에 주당 근무 시간도 기존 40시간에서 30시간으로 줄었다.

미국과 캐나다 등 외국에는 6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회사가 있지만 국내에서는 처음 있는 사례이다.

6시간 노동제는 선진국에서는 이미 여러 기업이 도입했다.

대표적인 곳이 1930년대 이 제도를 도입한 미국 켈로그라는 회사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1985년 중단되었지만, 이를 기록한 책( < 8시간 VS 6시간-켈로그의 6시간 노동제 1930~1985 > )이 계기가 되었다.

보리출판사의 전 직원이 지난해 5월부터 이 책을 읽었다. 이후 토론회를 열고 6시간 근무제를 마련했다.

지난 1988년 설립된 이 출판사는 지난 20여 년 동안 어린이 책, 생물 세밀화 그림책 등 3백여 권을 펴냈다.

살림살이가 그렇게 넉넉하지 않은 데다 대표를 포함한 직원 수도 32명이다. 대기업의 일개 부서에도 못 미치는 규모이다.

하루 8시간이 아니라 10시간을 일해도 부족할 판에 근무 시간을 2시간이나 뚝 잘라냈다.

퇴근 시간 이후에 일을 더 하면 그 시간만큼 적립해두었다가 휴가로 쓸 수 있다. 연장 근무를 너무 오래 하면 6시간 근무제의 의미가 없으니 연장 근무 시간도 월 18시간 이내로 묶어두었다.

일을 적게 하니 월급이 줄어야 마땅한데, 월급을 줄이지도 않았다.

일의 양은 같은데 일할 시간이 줄어들면 일의 강도가 세지기 마련이다.

일의 양은 부서마다 달라서, 오후 4시에 퇴근해도 지장이 없는 부서가 있는가 하면 일에 압박을 받는 부서도 있다. 이 회사는 일 자체를 줄여 일의 강도도 낮추기로 했다.

한 해에 20권의 책을 낸다면 한두 권 덜 출간하는 식이다.

영업 부서도 하루에 5~6곳의 서점을 관리하던 일을 3~4곳으로 줄일 수 있다.

이 출판사만의 콘텐츠에 매력을 느낀 마니아층이 두텁다. 실제로 지금까지 내놓은 책 중에 절판된 책은 2종뿐일 정도로 꾸준히 팔린다.

이들에게 마케팅력을 집중하기로 했다.

처음 시행하는 제도이니 만큼 처음에는 삐걱거릴 터이다.

그래서 6개월 동안 완충 기간을 두었다. 특히 첫 한 달 동안은 아무런 평가를 하지 않기로 했다.

막내 사원이 '칼 퇴근'을 해도 눈치를 주지 않기로 한 것이다.

6시간 일하면서 스스로 체험하는 시간을 둔 셈이다. 6개월 후에 모여 평가하기로 했다.

겨우 보름 남짓 지난 지금, 이미 몇몇 장단점이 생겼다. 일을 줄여도 그날 해야 할 일은 있게 마련이다.

빨라진 퇴근 시간 전에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 더 긴장하고 집중해서 일을 처리하는 직원들이 나타났다.

중간에 커피를 마시며 잡담을 나누고, 인터넷으로 연예인 가십거리도 보지만, 그런 시간이 예전보다 크게 줄어들었다.

능률이 오른 셈이다.

부작용도 나타났다. 연장 근무 시간을 적립하는 것에 문제가 생겼다.

연장 근무를 하지 않으면 일하지 않는 직원으로 비칠까 우려된다는 소리가 나왔다.

직원에게 압박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6개월 동안, 일을 줄이지 못하거나 연장 근무가 밥 먹듯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여기저기 고치고 개선하더라도 6시간 근무제를 포기하지는 않을 심산이다.

자기 실현의 시간 찾으면서 삶에 큰 변화

이쯤 되면 다른 직장인들은 부러워한다.

지난 3월13일 오후 4시 퇴근하기 시작하는 이 회사 직원들을 사무실 창문 너머로 쳐다보는 다른 회사원들의 눈빛에 부러움이 묻어났다.

이 상황을 다른 시각에서 보면, 다른 회사 근로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줄 수 있다.

이 출판사도 그 점을 잘 안다.

그럼에도 이 사실을 언론 등을 통해 알리는 이유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서다.

자기 실현의 시간을 줄여야 할 정도의 노동은 '나쁜 노동'이라는 메시지이다. 개인의 삶이 풍요로워야 일도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8시간 근무에 묶인 고정관념을 바꿔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그렇다고 8시간 근무제가 잘못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 시간마저 잘 지켜지지 않는 현실이 문제라고 한다.

주 40시간 노동이 법으로 정해져 있지만 예외 규정과 편법 등으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말단 사원이 눈치를 보지 않고 퇴근 시간에 사무실을 나서기란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어림없다.

누구의 탓으로 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근로 시간을 늘리더라도 임금을 더 받겠다는 근로자와 추가로 직원을 고용하지 않고도 많은 양의 일을 처리하려는 고용인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측면도 있다.

그러니 제조업계의 초과 근무나 연차 휴가 수당이 임금 총액의 11.8%를 차지할 정도이다.

또 한국 근로자의 노동 시간은 10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010년 취업자 기준 1인당 노동 시간은 연간 2천1백93시간으로 OECD 국가 평균(1천7백49시간)보다 4백44시간이나 많다.

자기 실현은 접어두고라도, 많은 근로자가 일과 돈에 얽매여 있으니 삶이 풍요로워질 수 없다.

이런 면에서 보리출판사 임직원들은 자기 실현의 장을 연 셈이다.

고작 두 시간 일찍 퇴근하지만 삶에는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늘 밤에만 밟아보던 집 주변 골목길을 낮에 접하는 기분이 좋다고 한다.

또 어린아이를 저녁도 못 먹이고 어린이집에 맡겨야 했던 일도 없어졌다. 가족이 모여 넉넉한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직원도 있다.

병원에도 가고, 야간 대학에 다니고, 취미 생활을 즐기려는 직원들이 생겼다.

무엇보다 가족과 회사를 더욱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 회사는 20여 년 전 책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만든 출판사이다.

일반 회사처럼 이 출판사에도 경영인이 있고 말단 직원이 있지만 소유자는 없다.

모든 임직원이 주인인 셈이다.

 

"8시간 근무제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으면…"
조혜원 보리출판사 기획부장 인터뷰

 



ⓒ 시사저널 임준선
 
보리출판사 대표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요청했더니 대표는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모든 임직원이 협의한 일이라는 말이다. 조혜원 보리출판사 기획부장이 6시간 근무제 정착을 총지휘한다.

일을 많이 해야 매출도 늘고 직원의 삶도 좋아지지 않을까?

한국이 외국보다 일을 많이 해서 개인의 삶이 풍요로워졌는가? 그렇지 않다. 경쟁적으로 살다 보니 일과 돈에 묶인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8시간 근무제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면 좋겠다. 특히 기업인과 정책 책임자들에게 이 메시지를 분명히 보내고 싶었다.

6시간 근무제에 대한 주변 반응은 어떤가?

대다수 사람은 8시간 근무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당연한 것을 바꾸니 주변에서 관심이 많다. 연봉이 많은 회사를 보면 부러워하지만 놀라지는 않는다. 그런데 근무 시간을 줄이면 놀라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더 놀라운 사실은 임금을 줄이지 않은 점인 것 같다. 많은 사람이 시간과 돈에 묶여 살아왔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노동 시간과 일을 줄이면 삶은 행복해진다.

6시간 근무제로 과연 삶이 행복해질까?

일하는 시간을 줄인 만큼 일도 줄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 강도가 세져서 오히려 삶이 힘들어진다. 그래서 6개월 동안 이 제도를 실험하고 있다.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잘못된 부분은 개선할 생각이다.
 
노진섭 기자 / no@sisapress.com

Copyright ⓒ 시사저널(http://www.sisapres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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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파주출판도시에 있는 보리출판사 직원들이 퇴근 시각을 알리는 시계를 들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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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간 근무제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으면…"
조혜원 보리출판사 기획부장 인터뷰

 



ⓒ 시사저널 임준선
 
보리출판사 대표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요청했더니 대표는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모든 임직원이 협의한 일이라는 말이다. 조혜원 보리출판사 기획부장이 6시간 근무제 정착을 총지휘한다.

일을 많이 해야 매출도 늘고 직원의 삶도 좋아지지 않을까?

한국이 외국보다 일을 많이 해서 개인의 삶이 풍요로워졌는가? 그렇지 않다. 경쟁적으로 살다 보니 일과 돈에 묶인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8시간 근무제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면 좋겠다. 특히 기업인과 정책 책임자들에게 이 메시지를 분명히 보내고 싶었다.

6시간 근무제에 대한 주변 반응은 어떤가?

대다수 사람은 8시간 근무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당연한 것을 바꾸니 주변에서 관심이 많다. 연봉이 많은 회사를 보면 부러워하지만 놀라지는 않는다. 그런데 근무 시간을 줄이면 놀라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더 놀라운 사실은 임금을 줄이지 않은 점인 것 같다. 많은 사람이 시간과 돈에 묶여 살아왔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노동 시간과 일을 줄이면 삶은 행복해진다.

6시간 근무제로 과연 삶이 행복해질까?

일하는 시간을 줄인 만큼 일도 줄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 강도가 세져서 오히려 삶이 힘들어진다. 그래서 6개월 동안 이 제도를 실험하고 있다.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잘못된 부분은 개선할 생각이다.
 
노진섭 기자 / no@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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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이 더 낫다.

명진 스님, 간만에 도심 복판에

[윤재석의 '쾌도난마']<44> '수박은 수박대로, 호박은 호박대로 살자'

윤재석 언론인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02-24 오후 5:09:05

신랄한 비판으로 현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다, 조계종 총무원의 압력에 따라 서울 삼성동 소재 봉은사 주지에서 물러난 명진(明盡) 스님이 서울 도심 한 복판에 나타났다. 23일 저녁 7시 경향신문 별관 4층 금속노조 강당.

근저(近著) '중생이 아프면 부처도 아프다' 북 콘서트를 위해 전국을 유랑하고 있는 그가 도심에 나타난 건, 문화다양성포럼과 언론소비자주권캠페인이 공동 주최한 사랑방좌담회 특강을 위한 것.

명진은 '수박은 수박대로, 호박은 호박대로 살자'를 화두로 한 한 시간여에 걸친 특강에서 특유의 거침없는 독설로 좌중을 휘어잡았다. 다음은 명진 스님의 법문 요지.

제가 말을 심하게 한다, 독하게 한다는 말 많이 듣는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우선 내 태생이 거칠기 때문이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서울공고를 다녔는데, 그 때 철조망 클럽의 일원이었다. 나중에 레인보 클럽으로 이름을 바꿨지만, 지금의 일진회라고 보면 된다. 거기서 잔뼈가 굵었기에 거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난 중이다. 거둬 먹일 처자식이 없다. 눈에 뵈는 게 없다. 임진왜란 때 중이 가장 용맹스럽게 싸운 것도 홀몸이었기에 가능했다.

MB가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하겠다고 했는데, 난 MB를 하나님께 봉헌하고 싶다. 물론 그렇게 하면 난 하나님으로부터 천벌을 받을 거다. 왜 그런 인간을 봉헌했느냐고.

반포대교를 지날 때마다 나는 분노한다. 이른바 '세빛 둥둥섬'. 그건 서울시민 세금 쳐들여 만든, 아무 실효성 없는 그야말로 '세금 둥둥섬'이다. 어느 날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저 세금둥둥섬을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앨커트래즈 같은 교도소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시설을 잘 정비해서 세금 포탈한 자, 세금 마구 낭비한 자들을 가둬 두는 그런 교도소 말이다.

불교 일화 얘기하겠다.
당(唐) 현종(玄宗) 때 단하(丹霞)라는 고승이 계셨다. 객승으로 운수행각(雲水行脚)하던 중 어느 추운 겨울 밤 낙양 혜림사(慧林寺)에 들어가 하룻밤을 묵게 됐다. 그런데 요사채에 난방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단하는 불전(佛殿)의 목불을 가져다 불을 피웠다.
이를 본 원주(院主)가 벌컥 화를 내자, 단하가 막대기로 아궁이를 쑤시며 하는 말.
"사리(舍利)를 찾으려고."
원주가 "목불에 무슨 사리가 있소!"하자, 단하 왈 "사리도 안 나오는 부처가 무슨 부처, 생불 따습게 하는 게 더 낫지."
참부처를 찾는 화두로 빈번히 쓰이는 사례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아닌가. 명품, 화장 등으로 위장스스로를 돋보이려 하지만 그게 자신의 본질은 아니지 않은가. 호박이 수박보다 훨씬 유용한 식물인데도 우리 호박들은 자꾸만 수박처럼 보이기 위해 줄을 긋곤 한다. 모과 역시 마찬가지. 못생겼지만, 향기롭고 차로 끓여마시면 어느 과실보다 격조 높은 과실이다.

학력, 재력, 인맥으로 얽힌 우리 사회가 MB와 같은 전과자를 지도자로 뽑는 건 어느 면 당연한 귀결이다. 그런 사회에선 오직 가진 자만이 득세할 수밖에.

MB정권 출범 2년이 됐을 때, 평화방송에서 그래도 정부에 대한 덕담 한 마디 해달라고 해서 이렇게 얘기했다.
"어서 3년이 지나가기를…."

일전에 백지연과의 대담(tvn의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에서 그래도 MB의 업적 좀 얘기해달라고 해서 천민자본주의의 폐해를 확실하게 보여줘 20~30대의 투표의식을 높여준 것, 박원순, 문재인, 안철수정직한 이들이 정치에 나설 분위기를 만들어 준 것은 MB의 큰 공로라고 했다.

"잘 살아 보세"라고만 했지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없는 사회, 그게 우리의 현주소다.

그러니 SK그룹 오너 형제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검찰에 불려가고, 삼성과 CJ간 재산싸움이 벌어지고, 한화 회장 김승연은 몽둥이 들고 설치고. 그렇게 해서 재벌들이 받은 형량이 27년인데 한 사람도 감옥 안 가고 등등.

어떻게 사는 게 과연 잘사는 걸까.
2012년은 모든 것이 바뀌는 전환점이 돼야 한다. 천민자본주의가 횡행하는 걸 그대로 두어서는 안된다.

나는 '이단(異端ㆍheresy)이 되자!'란 말을 즐겨 쓴다. 이단 하면 나쁜 것으로, 특히 개신교에선 상종 못할 종자로 치부하는데.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라는 뜻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단이 되자는 거다.

종교인들이 사기를 많이 친다. 사기가 달래 사기냐. 남을 속이면 사기지. 천국과 지옥에 대한 얘기를 해 보자. 신부, 목사, 중 공히 천국과 지옥을 내세워 곧잘 사기를 친다. 그리고 천국 가려면 헌금을 많이 내야 한다고 협박한다.

천국이 그렇게 좋다면 자기는 왜 안가나, 그 좋은 곳에. 모르니까 용감하게 사기 치는 거다.불교에서 해탈을 얘기한다. 근데 해탈이란 게 별 거 아니다. 단하 선사의 목불 태우기처럼 모든 고정관점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해탈이다. 내가 부처를 위해, 내가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한 부처 나를 위한 하나님을 모셔야 한다. 맛있는 거 생기면 나부터 먹고 식구부터 챙겨라. 그게 이기적인 게 결코 아니다.

해탈을 위해 또 하나 중요한 것. 자아에 들어있는 불필요한 힘을 빼야한다. 무림 고수, 프로골프선수, 프로야구선수의 공통점은 팔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다는 거다. 그렇게 되면 겸손해진다. "내가 깨달은 건 내가 아는 게 없다는 거다"라는 소크라테스의 고백은 그래서 진솔하게 다가온다. 모든 앎으로부터 해방된 자유, 그게 해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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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을 가지고 지랄을 해라 지랄을 해!

그제 특수고용노동자 재능교사 한분이 오랜 암투병중 사망했습니다. 

지난 8일 분신해 치료중이던 울산 현대자동차 노조원이 안타깝게도 숨을 거뒀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 8일 분신을 시도해 몸 70%가 화상을 입어 중태에 빠졌던 신모(44)씨가 15일 오전 3시께 사망했다고 밝혔다.

신씨는 분신 직후 인근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부산 화상전문 병원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으나 끝내 숨졌다.

신씨의 분신 직후 현대차 노조는 지난 10일부터 ‘관련 책임자 엄중 처벌’, ‘현장탄압 대책’, ‘대표이사 공개사과’, ‘현장탄압 기구인 공장혁신팀 해체 등 6가지 사안을 요구하며 엔진 사업부 조업을 중단했다. 이후 11일 현대차 노사는 분신한 신씨에 대한 산재처우에 준하는 지원을 하고, 공장혁신팀 업부 중 현장 통제로 인식되는 업문에 대해서 조정하기로 하기로 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합의를 했다.

한편 노조는 신씨의 장례를 노동조합장(5일장)으로 치르기로 하고 17일 대의원대회를 열어 장례절차를 논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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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3주기네요.

용산참사 3주기 추모대회, 19일 서울역서 개최

개발지역 순회, 용산다큐 등...15일부터 20일까지 추모주간

참세상 편집팀 2012.01.05 16:31

▲  이윤엽, 나규환, 전미영 작가의 용산참사 추모비


1월 20일, 용산참사가 발생한지 3주년이 된다.

또 다른 용산참사를 막기 위한 수많은 과제들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용산참사 열사를 추모하고 진상규명을 촉구하기 위해 ‘용산참사 3주기 추모 준비위원회’가 구성됐다.
 

 

용산참사 진상규명 투쟁에 함께했던 제 단체와 시민들이 함께 참여해 구성된‘용산참사 3주기 추모 준비위원회’는 추모 주간 일정을 1월 15일부터 1월 20일까지라고 밝혔다.

 

추모주간이 시작되는 15일 오전 10시에는, 용산참사 현장 남일당 방문 및 개발지역 순회 일정이 예정되어있으며 16일 오후 1시에 홍대역 카톨릭청년회관 cy씨어터에서 용산다큐 상영회가, 17일엔 국회 앞에서 강제퇴거금지법 발의 기자회견이 예정되어있다.

 

이어 18일 오후 3시에는 cy씨어터에서 용산참사 관련 공개 좌담회, 오후 7시엔 북 콘서트 및 출판기념회, 19일엔 동시다발 릴레이 1인 시위를 비롯 오후 저녁 7시엔 서울역에서 '용산 3주기 추모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20일 오후 12시에는 마석모란공원 열사묘역에서 용산 3주기 추모제를 여는 것으로 추모 주간 일정이 모두 마무리된다.
 

 

이원호 용산참사 3주기 추모 준비위원회 사무국장은 <참세상>과의 통화에서 "도시개발의 피해자인 생존 철거민들의 즉각적인 사면 및 석방"을 요구했다.

또한 "1월 15일부터 시작되는 추모 주간에 서울시장이 직접 참여하여 입장을 확실히 밝혀줄 것을 공식 요청"했지만 현재 답변이 없는 상황이라 전했다.
 

 

추모주간은 용산참사 열사들을 추모하고, 진상규명 및 3년 가까이 억울하게 구속되어 있는 철거민(참사 생존자)들의 석방을 촉구하며, 용산참사 재발방지를 위한 강제퇴거금지법의 제정을 촉구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추모주간 일정
- 15(일) : 남일당 방문 및 개발지역 순회 - 10시~ / 용산참사 현장
- 16(월) : 용산 다큐 상영회 - 1시~ / 홍대역 카톨릭청년회관 CY 씨어터
- 17(화) : 강제퇴거금지법 발의 기자회견 / 국회(예정)
- 18(수) : 공개 좌담회(용산참사 3년...) 3시~ / CY 씨어터
북 콘서트 및 출판기념회- 7시~ / CY 씨어터
- 19(목) : 동시다발 릴레이 1인시위견
용산 3주기 추모대회- 7시~ / 서울역(예정)
- 20(금) : 용산 3주기 추모제- 12시~ / 마석모란공원 열사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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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모를 그대들 고맙습니다. [김진숙 부산본부 지도위원]

한국사회 올해의 인물 김진숙
목숨 하나 살려야 한다는
그 애절함들이 만든 기적
누가 상상인들 했겠습니까

 

 
» 김진숙씨가 지난 21일 저녁 부산구치소 앞에서 열린 송경동 시인 등 희망버스 참가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목도리를 다시 매고 있다. 크레인 농성 중 트위터로 친구가 된 ‘영도희야’씨가 김진숙씨에게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있다. 부산/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한겨레>는 ‘올해의 인물’로 309일간 고공 크레인 농성을 통해 노동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사회적 연대의 소중함을 일깨운 김진숙씨를 선정했다. 그를 만나러 부산에 갔던 ‘희망버스’는 올해 한국 사회가 길어올린 가장 값진 성과물 중 하나다. 김진숙씨가 309일의 크레인농성을 되돌아보고 희망버스 탑승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글을 보내왔다. 국내 분야별 ‘올해의 인물’은 10면에서 만날 수 있다.

영도 바람은 유명하다. 일명 똥바람. 크레인은 24시간 흔들렸고, 바람이 심한 날은 토하기를 여러번.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난 어느날, 거짓말처럼 바람멀미가 멈췄다.

걱정하고 응원하던 수많은 사람들의 박수와 눈물 속에 크레인을 내려와선 땅멀미에 시달렸다.

흔들리는 땅, 갑자기 커진 사람들. 멀찍이만 보이던 사물과 차들이 눈앞에서 번잡을 떠는 어지러움. 이번엔 땅 위에서 토했다.

땅멀미가 웬만큼 가라앉자 방향감각이 문제가 됐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법도, 계산하는 법도 새로 익혀야 했다. 그러면서 비로소 309일이 만만한 시간들이 아니었음을 깨달아 가고 있다.

힘든 날이 왜 없었겠는가. 그런 날은 크레인 위에 심은 상추, 치커리, 딸기, 방울토마토. 파르르 떠는 그 어린 것들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니들도 힘들지?”

추워서 힘들지 않으냐고, 이 더위를 쇳덩이 위에서 어떻게 견디냐고 사람들은 걱정하고 또 했다.

그러나 정작 힘든 건 사람으로부터 왔다.

끊임없는 강제침탈의 시도들, 한진 자본은 85크레인만 끌어낼 수 있으면 정리해고를 성공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다.

자고 나면 불거지던 공권력 투입설이 시간이 지나면서 구체화되더니 특공대가 84호 크레인을 면밀히 정찰하고 가는 걸로 기정사실화되었다.

그런 움직임들이 트위터를 통해 알려지고, <알자지라>를 시작으로 외신들의 보도가 이어졌다.

‘공’권력으로는 더이상 어찌해볼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동원된 게 ‘사’권력이었다.

6월27일. 공권력의 힘을 빌려 조합원들을 쫓아내고 크레인을 완벽히 접수한 용역들. 그날부터는 매일매일이 전쟁이었다. 크레인을 둘러싼 용역들은 시도 때도 없이 크레인으로 뛰어올라왔고, 그게 여의치 않자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가리기 위해 크레인을 바닷가 쪽으로 끌고 가려는 작전이 매일매일 새롭게 펼쳐졌다.

크레인의 전기는 물론 주변의 전기까지 다 끊어진 깜깜절벽. 몸을 던지겠다는 의사를 행동으로 표현하는 걸로 저들의 시도를 저지할 수밖에 없었다.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하고, 그만 끝내고 싶은 유혹들.

 

그때마다 천사가 파견한 듯한 사람들이 왔다.

서울에서, 인천에서, 수원에서, 대전에서, 광주에서, 전주에서, 목포에서, 청주에서, 충주에서, 마산에서, 울산에서, 진해에서, 제주에서, 독일에서, 영국에서, 핀란드에서, 일본에서, 홍콩에서…. 그 먼 곳에서 달려와 온종일, 혹은 며칠씩 크레인만 바라보던 사람들, 퇴근하자마자 달려와 크레인을 바라보며 밤을 새우던 사람들, 매일 저녁 백배서원을 올리던 사람들.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이 잉태한 웃음은 희망버스라는 기적을 낳았다.

희망버스가 오지 않았다면, 그리고 희망버스가 한번으로 그쳤다면 2003년의 상황은 반복되었을 것이다.

1월6일 새벽, 크레인에 오르던 순간, 이미 삶과 죽음은 내 선택이 아니었다.

강제침탈의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내가 크레인에서 몸을 던지겠다는 움직임을 보이자 저들은 바로 3, 4도크에 그물을 쳤다.

‘사람 목숨 하나쯤이야’ 할수록 그 목숨 하나를 살려야 한다는 애절함들. 그 애절함으로 만들어낸 희망버스. 희망버스의 모습은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다.

1차 750명이 2차에선 1만명이 되리라고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사람의 얼굴을 겨냥해 뿌려대던 최루액, 색소 섞은 물대포, 그리고 무차별적인 연행과 폭력. 저들도 두려웠던 것이다.

무참할수록 시간의 흐름은 더디다.

그 길었던 밤과 새벽들, 어둠이 주던 공포, 누우면 몸을 펼 수도 없었던 춥고 작은 공간, 아홉 걸음이면 허공에 닿던 좁고 위태로운 난간. 그 좁은 곳에서 일어난 일상치곤 너무나 다양했던 시간들. 매일매일 시시각각이 달랐던 309일. 아무 기약이 없었던 크레인에서 기다림을 가르쳐준 희망버스. 쇳덩어리 위에서도 푸른 잎을 키워낸 바람과 햇살들.

내가 반평생을 싸웠듯 앞으로도 싸움은 이어질 것이다.

해고자들은 복직을 기다리고 있고, 저들은 민주노조를 무력화시킬 복수노조를 꿈꾼다.

재능, 쌍용자동차, 전북고속, 강정 등 희망을 기다리는 곳은 너무나 많다. 그러나 희망버스를 탔던 우리 스스로 놀랐듯이 우린 엄청난 힘을 가진 사람들이다. 희망버스가 가진 가장 큰 힘은 각자 다른 깃발을 들고도 한 버스에 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아닐까.

송경동, 정진우가 출감하는 날, 맘껏 소리지르며 승리를 기뻐하자. 그리고 또다른 승리를 위해 희망을 싣고 달려보자.

2011년 12월22일 김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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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동지 힘내세요.

아버지 영혼의 올가미, 그리고 가족, 동지

[칼럼] 아버지와 저희 가족이 받는 고통 반복돼서는 안 됩니다


필자
  
지난 2008년 현대미포조선 사내하청 용인기업 30여명의 노동자가 해고기간 5년 3개월 만에 대법원에서 승소해, 판결에 따른 조속한 복직을 요구하는 투쟁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저희 아버지를 비롯한 15명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이 투쟁에 함께 연대했습니다.

4개월이나 지속된 연대투쟁은 사내하청노동자들의 전원 정규직 복직 합의로 종결됐습니다. 하지만 투쟁 과정에서는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연대투쟁을 벌였던 현대미포조선 정규직 노동자 15명의 대표였던 저희 아버지(김석진 현대미포조선 현장노동자투쟁위원회 의장)께서 현대중공업 경비대에 집단 심야테러를 당한 것입니다. 도저히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2009년 1월17일 오후 11시 30분경, 오토바이 헬멧으로 복면한 약 50~60명의 현대중공업 경비대는 소화기와 쇠파이프, 각목으로 무장하고 현대중공업 소유의 소각장 옆 인도에 설치된 농성장에 쳐들어와 소화기를 뿌려 앞을 볼 수 없도록 만든 후 아버지를 지목해 집중적으로 테러를 가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됐고, 경비대는 농성물품과 수대의 차량을 부수고, 농성장 주변 물품 모두를 불태우고 도주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저희 가족의 참혹한 시련이 시작됐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약 1년간 상해치료를 받았습니다. 정신과 치료도 병행했습니다. 아버지 옆에서 지켜보는 저희 가족에게는 눈으로 보고도 차마 믿기 힘든 사실이었습니다. 거대권력 앞에서 일개 노동자가 아무리 힘없고 약한 존재라고는 하지만 여태껏 보아왔던 그 어떤 탄압보다도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당시 농성장 주변에는 전경차 1대와 30여명의 경찰병력이 배치돼 있었지만 그 누구도 불법테러를 자행하고 있는 현대중공업 경비대를 저지하거나, 현행범으로 체포하지도 않았으며 심야테러 후 몇 시간이 지나서 경비대는 경찰들이 보는 앞에서 승용차 20여대를 나눠 타고 유유히 공장 문을 빠져 나갔습니다.

탄압은 이후에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 경비대와 경찰 권력을 능가하는 정신적인 탄압은 현대중공업과는 관련이 없는 제3의 인물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법원이 저희 아버지에게 명한 업무방해금지가처분으로 인해 제3의 인물들의 소속을 이 글에서 언급을 할 수는 없지만, 저희 가족들을 위협하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자택감시를 하고 외출 시 미행을 하고, 아버지를 비방하는 현수막을 설치하는 등 그들은 입에 담기조차 힘든 수많은 악행들을 자행했습니다. 인권이 중시되는 오늘날 사회에서는 도저히, 상식적으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비인간적인 악행을 공공연히 자행해 온 것입니다.    

위 사건과 관련해 국회에서는 2009년에 국회 진상조사와 경찰청 국정감사가 열렸고, 2010년에는 울산지방경찰청 국정감사와 2011년에는 노동부 국정감사가 열렸습니다. 이처럼 강력한 사회적 고발과 문제제기가 이루어졌지만 가해자인 현대중공업은 현재까지도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경찰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22일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에 정몽준 의원에게 보내는 항의서한을 접수한 후 일인시위에 나선 필자.


저와 저희 가족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를 향한 거대자본의 말도 안 되는 탄압이 유효하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고, 그 무엇보다 엄정하고 공정해야 할 공권력인 법과 경찰의 도덕의식 부재와 나태함, 권력에의 동조를 보고 겪으며 엄청난 좌절과 실망을 거듭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굳은 결심을 가지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앞이 보이지 않는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저희 가족은 현대중공업 심야테러사건의 진실을 반드시 밝혀내고 현대중공업과 경찰청에 분명한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몇 년 동안이나 해결되지 않고 있는 이 사건으로 인해 저희 아버지는 극도의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시며 최근에는 장기적으로 지속된 경찰, 검찰, 법원 조사와 재판, 벌금, 징계, 상해치료, 정신과치료로 인해 취업치료가 불가능해 병가휴직을 내고 병원치료를 받고 계십니다.

저희 어머니 또한 아버지와 함께 투쟁하시다 모 노무관리자에 의해 상해치상을 당해 병원치료를 받는 등 저희 가족의 수난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 법원에 의해 저희 어머니에게 상해치상을 가한 노무관리자가 벌금형을 받은 바도 있습니다.

세계적 대기업인 현대중공업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 요구에 심야테러를 가하고 이에 책임을 묻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제3의 인물들이 나서서 아버지에게 온갖 정신적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그 연장선으로 개인에 대한 참혹한 탄압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역시 그 누구도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이 같은 일이 노동현장에서 절대 되풀이돼서는 안 됩니다.

투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최근 12월 울산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대중공업경비대 심야테러 문제 해결을 위한 울산시민대책위원회'를 준비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책위원회가 구성되면 3년간 서울과 울산을 오가며 외롭게 싸워 오신 아버지와 어머니 저희 가족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희망이 될 것입니다. 잘못된 사실은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 사회 노동현장의 현실이며 제대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노동현장은 점점 더 암흑이 되어 갈 것입니다. 이제는 단결한 노동자의 힘을 보여줘야 할 때입니다. 주체적이고 당당하게 불의 앞에서 맞서는 노동자야말로 진정한 노동자의 모습일 것이며 우리 사회의 미래를 밝혀줄 전구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울산지역과 전국에 계시는 많은 노동자분들의 연대와 지지를 호소합니다.
  
[울산노동뉴스]  김소연(성공회대 학생) / 2011-12-22 오후 8:5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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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조금 민망합니다. 제가 사회를 보고 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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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교육감을 즉각 해임하라 [전교조 성명서]

 

 

 

 
 


   
 
 

 

[성명] 안○○ 전 광주교육감 해임은 피해자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참회이자 예의
안○○ 전 교육감도 스스로 사퇴하고 피해자들에게 머리 숙여 사죄해야
  

1. ‘도가니!’

한편의 영화와 소설이 현실적으로, 사법적으로, 역사적으로, 영원히 묻혀 버릴 뻔 했던 사건을 기어이 불러내 우리들의 양심을 깨우고 있다.

당시의 사건은 이제 우리 사회의 병든 구석구석을 비추며 진정한 참회와 새로운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아직도 우리 사회가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와 양심’이 살아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2. 전교조는 인화학교 사태 당시 중심에서 아이들과 함께 60여일의 천막수업을 진행하며 농성을 전개했고, 범시민적 대책위를 구성하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법인인가 취소를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파면’이라는 가혹한 징계와 책임자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뿐이었다.  

3. 그 처절한 아픔의 순간마다 늘 그 가운데는 광주시교육청이 있었고, 그 장본인이 바로 현재 교과부 학교교육본부장인 안○○ 전 교육감이다.

우리는 그 아비규환의 처절한 현장을 방조하고 사태를 악화시킨 책임자로 그를 지목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이를 채용하여 인화학교 사태의 대책을 맡긴 이명박정부의 도덕성이 도대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4.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화학교 성폭력사건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의지를 보여준 적이 없으며 오히려 철저하게 방조하였다.  

5. 성폭력 사건을 인지한 후에도 사법당국과 경찰만 바라보고 있을 뿐 관리감독 관청의 책임자로서 책임 있는 조치를 한 적이 없다.

관련자와 책임자에 대한 고발조치는 물론이고 징계한번 내린 적이 없다. 여론에 떠밀려서 마지못해 한 감사에서도 ‘성폭력 사건은 법에서 판단할 일’이라며 상황을 덮기에 급급했다.

마땅히 장애의 특성과 성폭력사건이 갖는 중대함에 비추어 특단의 조치를 취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구조적인 대책을 세웠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관리감독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또한 당시 공립특수학교 설립을 계획 할 때도 청각장애 교육시설을 배제하여 현재의 인화학교 존립의 정당성을 만들어주기까지 했다.  

6. ‘성폭력사건은 경찰에서 처리할 일이고 그 결과가 나오면 그때 판단하겠다’라는 것이 당시 광주교육청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이것은 결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선량한 교육자의 태도가 아니다.  

7. 특히, 용서할 수 없는 것은 법의 심판을 받거나 법망을 피해간 성폭력 관련자들을 버젓이 학교에서 아이들과 생활할 수 있도록 방조하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미온적이고 안일한 조치들은 그 후에 2건의 성폭력 사건이 재발하는 원인이 되었고, 그 사건의 처리과정에서도 법인의 입장에서 미온과 은폐로 일관하였다.

당시에 전교조 교사들이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수없이 많은 탄원서를 제출하였지만 돌아오는 것은 징계의 위협뿐이었다.  

7. 안○○ 전 교육감이 한번이라도 관리감독 기관으로서 단호하고도 즉각적인 조치를 했더라면, 한번만이라도 아이들 편에 서서 교육관청으로서의 책임 있는 태도를 보였다면, 인화학교의 피해자들은 물론 영화와 소설을 통해 이 같은 참상을 접한 수많은 국민들이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8. 우리는 이명박정부가 ‘도덕 정부론’을 내세우며 ‘도가니’사태 해결을 모색하는 모습을 보면서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주민들의 선택을 받지 못해 교육감 선거에서 낙선한 인사를, 인화학교를 도가니로 몰아넣은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사람을 어떻게 초중등교육을 총괄하는 고위직인 본부장에 사실상 특채하고, 더 나아가 그에게 대책을 세우라고 할 수가 있는가. 이는 학생을 성폭행한 교장을 집행유예로 풀어준 것보다도 더 지독하고 무서운 일이다.  

9. 지금이라도 교과부는 인화학교 사태를 방조해 이 지경에 이르게 한 안○○ 전 광주교육감을 학교교육지원본부장직에서 즉각 해임할 것을 촉구한다.

그것이 인화학교를 도가니로 만든 데 대한 교육 당국으로서 최소한의 참회이자 예의일 것이다.

또한 안○○ 전 교육감 역시 교육자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이 남아있다면 스스로 사퇴하고, 인화학교 피해자들에게 머리 숙여 사죄하기를 진심으로 충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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