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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을 포기한 평택주민들 | ||||||||||||
평택주민들 주민등록증 반납하던 날 이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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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에서의 첫 아침. 눈이 가득 내렸다. ‘니가 이사온 걸 환영하는 눈 인가보다’ 평화바람 오두희 언니가 앞마당 눈을 쓸며 말했다. 나도 이제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주민이 되었다는 생각에 조금은 설레는 아침이었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길을 조심조심 걸어 마을회관 앞으로 모였고, 주민들과 함께 평택시청으로 갔다. 오늘은 팽성주민들이 대한민국정부에 주민등록증을 반납하는 날이다. 주민등록증을 반납하고 이제 더 이상 대한민국 국민이 아님을 선언하러 가는 것이다.
평택시청앞에 사람들이 모였다.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해주신 평택시장님께 감사드립니다” 김지태 위원장님의 농담 섞인 말씀으로 기자회견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위원장님의 표정은 침통해 보였다. 주민등록증을 반납하기로 한 오늘, 주민들은 평택시장과의 면담을 요청했었다. 갯벌을 일구어 만든 농토를 주민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모두 국방부에게 내어준 평택시장과의 만남을 요청한 것이었다. 평택시장은 면담을 거부했다. 주민들과 할말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는 김지태위원장님 말씀대로 평택시장이 만든 자리이기도 했다. 평택시와 대한민국 정부는 주민들이 이렇게 싸울 수 밖에 없도록 끝간 데 없이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맛좋기로 이름난 평택쌀을 자랑하고 다닌다는 평택시장은 거친 바다가 기름진 옥토로 변하기까지 주민들의 대안 없는 노동을 상상이나 하고 있는 걸까. 그 땅에서 올해도 내년에도 농사짓고 살고 싶다는 주민들은 평택시장에게 ‘평택시민’이 아니었다. 주민들은 스스로 포기했다. 스스로 거부했다. 이제 더 이상 평택시민도 아니고 대한민국 국민도 아니다. 이제 대추리 주민들은 독립을 선언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주민들은 시청으로 들어가 주민등록증을 반납하려고 했다. 하지만 평택시는 그것조차 막아섰다. 평택시 직원과 경찰들은 문을 막고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시장실로 들어가기 위해 1시간동안 직원들에게 요구하고 몸싸움을 했지만 결국 주민등록증을 반납하지 못했다. 성난 주민들은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불태웠다. 백성들을 짓밟고 제국주의 군대에게 땅을 내 주어 전쟁기지를 만드는 나라의 국민이기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주민등록증을 태우고 다시 한번 시장실로 들어가려 했지만 평택시청은 끝내 주민들의 의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같은 차에 타신 방승률 할아버지는 ‘서글프지만 어쩌겠어. 이제 정부나 시의 간섭 안 받고 살 수 있게 된 거지. 참다운 인생을 살려면 고향을 지켜야지’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도 어김없이 비닐하우스로 모여 525일째 촛불을 밝힌 마을주민들은 이제 독립선언을 했음을 확인했다. 이제 정부도 미군도 팽성주민들을 내쫓을 수 없다. 경찰이든 미군이든 마을에 들어오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대추리는 춥다. 눈이 와서 더 추운걸까. 마을회관에는 ‘입춘대길’이 나붙었는데 눈이 하얗게 덮힌 황새울 들녘은 아직도 겨울이구나 싶었다. 내 마음을 아셨는지 이민강 할아버지가 한 마디 하신다. ‘봄눈은 빨리 녹는겨...’ 봄눈. 그래 봄눈이었다. 대추리에는 이미 봄이 왔고 황새울 들녘은 포근한 봄눈이 감싸고 있었다. 촛불집회에서 김지태위원장님이 말씀하셨다. ‘주민등록증 없어도 사는 데 하나도 지장 없어요. 동요하지 말고 불안해하지 말고 그냥 평온하게 살아가요’ 평온하게 살아가는 게 쉽지 않은 대추리에서 이렇게 살아가다 보면, 촛불 꺼뜨리지 않고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승리하는 봄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 봄을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대추리로, 도두리로 모여야 한다. | ||||||||||||
* 진재연님은 사회진보연대 집행위원으로 지난 2월 6일부터 미군기지 이전을 막는 투쟁에 함께 하기 위해 평택 대추리 주민이 되었습니다. 진재연님은 이후에도 대추리 소식을 일기 형식으로 참세상에 꾸준히 알려올 예정입니다. | ||||||||||||
2006년02월08일 11:16: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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