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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여성주의의 위기가?”

  • 분류
    단상
  • 등록일
    2011/05/23 17:50
  • 수정일
    2015/05/06 18:49
  • 글쓴이
    푸우
  • 응답 RSS

제가 본문에서 어떤 사람이나 단체를 인용하거나 언급한다고 그 사람이나 단체를 지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1. 여성의 발화


지난 번에 저는 “여성이 자신의 언어로 제대로 발화할 수 없기 때문에 느껴야 하는 불편함”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습니다[여성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관계]. 이에 대한 구체적인 예시로서 ‘진보신당 연대회의 강령(2009년 정기당대회 2차 회의에서 채택)’을 들어보겠습니다.

 

강령은 본문 <23.>에서부터 <26.>까지 여성주의와 여성에 대한 당의 입장 및 목표를 설명해줍니다. 여기서 진보신당은 “성적 불평등을 해결하고 성별에 상관없이 모두 다 자유롭고 평등하며 연대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설 것”이라고 공언하며 “다양한 영역에서 성 차별적인 문화를 뿌리 뽑고 여성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데 앞장”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막상 본문의 나머지 영역은 “여성의 목소리를 복원”하기 용이한 형식으로 작성되었다고 보기 힘듭니다.

 

예컨대 본문 <7.>에서 “인권은 모든 사람의 권리”라고 할 때 그 “사람”은 과연 여성과 남성을 모두 포함한 것일까요? 혹은 본문 <14.>에서 호명되는 “노동자”는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를 모두 지칭하는 ‘중립적 언어’일까요? 많은 분들께서 한국어의 저런 명사들이 성 중립적이라고 생각하시지만, 과연 우리는 ‘여성 노동자’, ‘여고생’, ‘여선생’, ‘여검사’, ‘여경찰’, ‘여성 소방관’, ‘여배우’, ‘여성 정치인’, ‘여성 CEO’에 대응되는 의미로서의 ‘남성 노동자’, ‘남고생’, ‘남선생’, ‘남검사’, ‘남경찰’, ‘남성 소방관’, ‘남배우’, ‘남성 정치인’, ‘남성 CEO’라는 단어들을 사용하던가요? 아니면 그냥 편하게 ‘노동자’, ‘고등학생’, ‘선생’, ‘검사’, ‘경찰’, ‘소방관’, ‘배우’, ‘정치인’, ‘CEO’라는 단어들을 사용하던가요? 예시는 무궁무진합니다. ‘여왕’은 있어도 ‘남왕’은 없고, ‘여군’은 있어도 ‘남군’은 없습니다.

 

이 언어체계에서 여성은 ‘보편적인 남성’에 비해, 혹은 ‘보편적인 남성’과는 달리 항상 특수한 자리, 내지는 자리없는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뿐입니다. 예컨대 진보신당이 본문 <14.>에서 “노동자”를 호명할 때, 여성은 과연 그 “노동자”가 자신도 포함하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을 (전적으로는 아니더라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강령을 ‘여성 강령 하나, 남성 강령 하나’ 해서 두 개라도 만들자는 것이냐고 물으신다면, 바로 그렇다고 대답하겠습니다. 물론 두 개의 강령을 만든다는 것은 무척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일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1986년에 이탈리아 공산당이 “여성헌장”을 발표한 적이 있으며, 사실은 (근대적 인권의 토대를 쌓은)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에 대한 선언(1789)”이 발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성의 권리와 여성시민의 권리에 대한 선언”이 나온 바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선 200년 전에 “인간”의 권리가 선언된 후부터, 거의 항상 “여성”의 권리도 “뒤따라” 선언되어 왔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그런 선언들에서 “여성”이 “인간”에 포함되지 못했음을 보여 줍니다.

 


2. 여성주의의 위기?


여하간 여성은, 아무런 장치 없이 자신의 언어로 발화하기가 힘듭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성주의 진영에서는 여성들의 내레이션을 듣고, 그것을 번역(translation)하는 데 일정부분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박가분 씨가 본인의 글[슈리의 글과 논쟁을 읽고서 – 맑스주의의 아포리아]에 덧글을 달며 한 문제제기가 상당히 중요해지는 것은 바로 이 맥락에서입니다. “이를테면 집창촌 여성의 입장이 정확히 무엇인지, 그들의 욕망이 무엇인지에 대해 여성주의자들 자신도 모르는 점이 있다”, “그들[성매매 여성들]을 공론의 장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돕는 데 여성주의자들의 역할이 있는데, 그들이 그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 의문[이며] 솔직히 말해서 잘 못했”다는 문제제기 말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여성주의자들이 성매매 여성들의 발화를 듣고, 번역하는 작업에 실패했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주의 이론이 그 발화를 듣고 번역하는 데 더 이상 적합하지 않거나, 그 역시 공백을 가지고 있다면 이것은 “여성주의의 위기”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간략하게나마 그 문제제기를 검토해보겠습니다.

 

잠시 사족을 덧붙이자면, 이 문제제기에 대한 검토는 약간 다른 맥락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실 제가 보기에 이브리님께서 하신 문제제기의 핵심은 “이론가의 윤리”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즉 이론가는 자신이 다루려는 문제에 대해 “최대한 정확히 확인하고”, “성실한 조사”를 한 뒤에 글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박가분 씨께서는 여기에 대해 “이 점[성매매 여성들이 공적인 장에 나오기 힘들다는 점]에 대한 고려 없이 근거 없는 판단을 한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고려 없이 근거 없는 판단”을 한 행위가 “이론가의 윤리”에 어긋난다는 점도 동의를 하시는지요? 왜냐하면 정작 여기에 대한 대답은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박가분 씨께서는 “공정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며 여성주의자들도 잘 모르는 부분이 있다는, 바로 문제의 그 언급을 하셨습니다. 물론 저는 그것이 중요한 문제제기라는 생각이 들어 그것을 검토하려고 하지만, 한편으로 저 부분에 대해 고려를 해야지만 “공정”해지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듭니다. 왜냐하면 이브리님의 문제제기에 따르면 “고려 없이 근거 없는 판단”을 했는지 여부가 중요한 이유는 그 이론가와 그 이론가가 글을 쓰는 대상의 발화 조건이 동등하지 않기 때문이지, 그 이론가와 다른 이론가와의 관계가 어떻기 때문이 아닙니다.

 

어쨌거나 박가분 씨께서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아서는, “고려 없이 근거 없는 판단”을 한 것이 적어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에는 동의하시는 것 같습니다. 마침 박가분 씨의 문제제기를 검토하는 이 과정이, 과연 박가분 씨 본인은 “고려 없이 근거 없는 판단”을 했는지 안 했는지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여성주의의 위기”라는 문제제기를 다루겠습니다. 박가분 씨의 글에 등장하는 “여성주의자들”이라는 단어가 약간의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여성주의에도 많은 입장이 있기 때문에 “여성주의자들 자신도 모르는 점이 있다”라고 말을 할 때,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여성주의자들이] 잘 못했”다고 할 때 그것이 모든 여성주의적 입장이 전부 다 그렇다는 것인지, 여태까지 가장 큰 세력을 형성했던 여성주의 진영이 실패했다는 것인지에 대한 구분은 필요한 것 같습니다(일단 별다른 단서를 안 붙이신 관계로 전자라고 보겠습니다). 무엇보다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성매매 특별법)’을 추진했던 여성 관료들이 반드시 여성주의자는 아니라는 점은 일단 지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매매 특별법의 ‘실패’를 ‘성매매 문제에 대한 여성주의의 실패’로 볼 수 없다는 것은 어느 정도 분명합니다.

 

“집창촌 여성의 입장이 정확히 무엇인지, 그들의 욕망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성매매 집결지 여성의 입장이 단일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은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가분 씨도 이 부분은 인정하셨습니다(“아마 성매매 여성들이 공론장에 나올 수 있게 된다면, 아마 저 두 부류[공창제에 반대하는 성매매 여성과 찬성하는 성매매 여성]의 여성들 사이의 간극이 있을 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그렇다면 애초 “집창촌 여성의 정확한 입장”을 여성주의자들이 과연 알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가능합니다. 물론 “단일한 입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정확한 입장”이 존재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다만 이를 인정하는 경우, 여성주의 진영에서 그 나름대로 “정확한 입장”을 전달하려고 할 때, 성매매 집결지 여성들이 “단일한 입장”을 지니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그 정확성을 공격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번 벌로와 보니 벌로의 『매춘의 역사』처럼 유의미한 정리는 분명히 있어 왔으며, 국내에서도 ‘전국 성노동자연대(이하 전성노련)’나 ‘민주성노동자연대(이하 민성노련)’ 등지에서 꾸준히 성매매 여성들의 비교적 “정확한 입장”을 전달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나의 예시로, 민성노련이 2004년부터 2006년까지 활동한 경과를 “성노동운동 행동일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성노련이나 민성노련 활동가 분들이 박가분 씨가 지칭하는 “여성주의자들”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이론가로 “여성주의자들”을 한정짓더라도 꽤 많은 “여성주의자들”이 적어도 이런 ‘다양한 입장’의 공존에 대해 상당히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예컨대 정희진 씨의 『페미니즘의 도전』이라는 책을 보더라도, 성매매 여성들의 입장이 다양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언급들이 있습니다. 또, 성매매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든 감정적 동요 없이는 읽기 힘든, 성매매 여성들의 수기인 『너희는 봄을 사지만 우리는 겨울을 판다』만 보아도, 성매매 여성들의 (적어도 일부) 입장을 인지하고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든 대중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여성주의자들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 제시를 통해 여성주의자들이 성매매 여성들로 하여금 공론의 장에 나오도록 돕는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에 대한 박가분 씨의 의문을 어느 정도는 해소시켜 드렸기를 바랍니다. 어쨌거나 여성주의자들의 ‘도움’을 받아 한국에서 성매매 여성들의 수기가 나왔으며, 이것은 성매매 여성들이 공론의 장에 적어도 하나의 경험을 제출한 행위입니다.

 

결국 아직 여성주의자들이 성매매 여성들의 입장을 파악하고, 그녀들의 욕망을 파악하고, 그녀들의 욕망을 전달하는 것을 “잘 못했다”고 단정지을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3. 윤소영 씨의 문제?


추가로, “만일 윤소영이라면 성매매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전 그가 거기에 딱히 발언할 필요가 없다고 봐요.”라고 박가분 씨께서 하셨는데, 이미 현재하는 윤소영 씨의 대답이 있기에 알려드립니다. 출처는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개정판)』, 361에서 363페이지 입니다.

 

“성노동자는 성을 판매하는 여성이 스스로 제기한 개념입니다. 성매매가 더 이상 형법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핵심인데, 판매자가 아니라 구매자만 처벌한다는 것은 별로 중요한 쟁점이 아닙니다. 대신 성노동자라는 개념은 성매매가 상법이나 노동법 같은 민법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요. 그래서 성매매도 일반적인 상거래나 노동으로 취급해준다면, 성노동자가 스스로 성매매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주장하는 셈이에요.

 

물론 성노동자라는 개념을 사용한다고 해서 미성년자의 경우나 인신매매의 경우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요.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성노동자가 사기와 협박 같은 강제 때문에 성매매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빈곤으로 인한 자발적인 성매매가 대부분이라는 주장이에요. 미성년자나 인신매매 같은 비자발적인 성매매가 확산되는 것은 오히려 금지론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략)


어쨌든 페미니즘 안에서 상당히 오래된 논쟁이지만, 가정주부는 ‘좋은 여자’이고 성매매여성은 ‘나쁜 여자’라는 어처구니없는 편견부터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성매매여성의 처지가 부인보다 ‘못할 것은 없고 오히려 더 정직하다’(no worse, more honest)는 울스톤크라프트의 주장에 대해서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제 생각으로 아직도 금지론을 주장하는 남한의 얼치기 페미니스트가 심각하게 자기 반성해야 할 대목인 것 같습니다.”

 

뿐더러 윤소영 씨와, 윤소영 씨가 관련된 ‘사회진보연대(이하 사진연)’에서는 단순히 가족임금 체제에 대한 비판으로 그 여성주의적 문제의식을 한정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성적 차이의 윤리’라는, 보다 여성주의에 고유한 지점 역시도 꾸준히 언급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2004-2005년도 당시에 사진연에서 성매매 특별법과 관련하여 활발한 논쟁[0718 성매매 회원토론회 자료글]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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