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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덧글로 넘어가려고 했으나, 할 이야기가 더 많아졌고, 어차피 논의를 진행할 것이면 트랙백 형식으로 정리된 것이 낫겠다 싶어가지고, 초비님의 글[또다시 의문들]에 달렸던, 새로운 질문을 포함한 덧글들도 여기에 옮겨 놓겠습니다. 또한, 다행히도 초비님께서 저 글에서 칸트에 대해서 질문을 하셨고, 저도 그 칸트에 대해 할 말이 약간 남아있습니다.
저는 지난 글[여성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관계]에서 슈리님의 글[언어의 애매성을 넘어서: 푸우님께 응답하며] 중 "서론에서부터 <2.>까지는 제가 논쟁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하며 그 이유로 슈리님께서 저에게 보다 자세한 설명을 해주셔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언급한 칸트의 동해보복설에 대해 슈리님께서 "도대체 칸트의 저작들 중 어디서 저런 구절들을 뒷받침할 근거들을 끌어내시는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칸트 독해에 비추어 볼 때, 푸우님의 주장은 섬뜩할 정도로 터무니없습니다."라고 말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슈리님께 더 자세한 설명을 요청할 일이 아니라, 제가 문헌적 근거를 제시해야 제대로 해결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꾸준히 문헌적 근거를 찾아보았습니다. 몇 가지 유의미한 발견을 했지만, 네이버 백과사전에서의 '형벌의 본질'에 대한 언급이나 형법 교과서에서 언급되는 칸트에 관한 이야기는, 칸트에 대한 1차 독서가 아닌 관계로 만족하지 않으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참에 드디어 칸트의 『윤리형이상학』에서 관련 구절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불행히도 『윤리형이상학』은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에 (『윤리형이상학 정초』랑 헷갈리지 않길 바랍니다. 저는 여기서 헷갈려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했습니다) 영어본으로 대체하려고 했으나, 그것을 구하는 것 역시 쉽지 않아 일단은 인터넷에 올려진 『윤리형이상학』의 영어본의 주소를 링크해 드리겠습니다.
Kant on Punishment
"Hence it may be said: "If you slander another, you slander yourself; if you steal from another, you steal from yourself; if you strike another, you strike yourself; if you kill another, you kill yourself." This is the right of retaliation (jus talionis); and, properly understood, it is the only principle which in regulating a public court, as distinguished from mere private judgement, can definitely assign both the quality and the quantity of a just penalty."
저 위의 구절을 해석하면 jus talionis, 그러니까 탈리오 법칙, 그러니까 동해보복이야말로 유일하게 정당한 형벌이라고 칸트가 주장하고 있음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이 부분에 대해 더 이상 "섬뜩"함을 느끼지 마시기 바라고, 혹여나 미래에도 누군가가 슈리님에게 칸트의 동해보복설을 언급하더라도 너무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번만 더 말하자면, 그래서 성매매를 "슈리님의 칸트주의적 방식"으로 분석하면 조금 난감해지지 않나 싶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초비님의 글에 달린 덧글들을 붙여놓겠습니다.
초비:
티스토리 아이디가 없는 관계로 여기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슈리님은 푸우님의 문제제기를 전혀 듣지 않은 채로 문제를 이상하게 봉합하려고 하고 계십니다. 푸우님의 두 번째 글은 가부장제 폐지야 말로 자본주의 폐지 투쟁이며 노동계급 투쟁의 진지를 구축하는 투쟁이라는 글을 인용하고 계신데요. 즉 여성주의-젠더영역, 특수성/ 마르크스주의-경제영역, 보편성이라는 도식 자체가 틀렸다는 것이죠. 여성주의는 그 자체로 경제 영역의 문제이며 여성을 경제적 계급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여성주의와 무관한 마르크스주의 맥락이란, 마르크스주의와 무관한 여성주의와 마찬가지로,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성해방 없는 보편해방이라는게 애초에 논리적으로도 실제적으로도 가능하지가 않다고요. 푸우님도 글 첫머리부터 보편성과 특수성을 중요한 논점이라고 쓰고 계신데, 슈리님은 여기에 대한 답변을 전혀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운동 내의 성폭력 문제 같은 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성주의가 필요하니까 여성주의와 맑스주의를 '같이' 말해보자, 공산주의 운동이 흥하면 "특수"한 영역들의 해방이 잘 이루어 지지만, "특정" 정체성을 가진 사회 구성원 지위향상은 보편해방과 직결이 안되니까 계급문제가 더 중요하다. 하지만 "여성주의 '뿐 만' 아니라 공산주의적 가치'도' 추구하신다면" (거기다가 바디우를 인용할 정도로 급진적이면?) 현실적 사안에 의견이 갈릴 일 없으니까 괜찮다, 라고 대답하시는 건데, 님 글로 판단해 보면 여성주의/마르크스주의를 여전히 별개로 보고 계시는 겁니다.
초비:
푸우님은 여성주의자는 공산주의자고 공산주의자는 여성주의자들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슈리님의 글은 제가 보기에는 전혀 푸우님의 문제제기에 대한 답변이 아닙니다. 바디우든 지젝이든 주판치치든 누굴 인용하든 간에 핵심적인 논지가 서로 갈리는데요. 물론 여성주의는 그냥 젠더 문제라고 생각하는 좌파도 운동권 성폭력 문제 덮어두자는 주장에는 같이 반발할 수 있죠. 근데 개별사안에서 연대할 수 있으면 이론적 기반 따위 그냥 퉁치고 넘어가도 되나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이면 애초에 첫 글은 왜 쓰신 건지 전 모르겠습니다.
푸우:
저도 슈리님의 글에 반응을 하고 싶었는데 트랙백을 보내기는 애매하고, 티스토리 아이디가 없어서 덧글은 달 수 없어서 망설이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초비님께서 이런 공간을 마련해 주셔서 더 추가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우선 저도 초비님께서 하신 질문에 대한 대답은 듣고 싶습니다.
추가적인 질문도 있습니다. 저는 분명히 슈리님이 운동권 내 성폭력 문제에 대해 반대할 수도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러므로 슈리님이 운동권 내 성폭력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계시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정말 질문하고 싶은 것은, 그렇다면 슈리님이 "자본주의 타도가 제일 원칙"이라는 전략을 취소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최소한 수정이라도 하시고 싶은 것인지의 여부입니다. 혹은 아예 "자본주의 타도가 제일 원칙"이라는 전략이 그런 운동권 내 성폭력의 문제와 무관하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분명히 그 전략과 운동권 내 성폭력 사이의 관계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것인데, 슈리님께서는 마치 본인은 애초부터 거기에 반대하므로 별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말씀하셔서 저에게 상당한 무안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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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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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비님의 댓글은 뭘 말씀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그러는 본인은 여성주의와/맑스주의를 별개가 아닌 동일한 것으로 보는 것처럼 말씀하시는 군요. 그러나 제가 봤을 때 초비님 역시 그것을 별개로 보긴 마찬가지입니다. 슈리를 제하고서, 일단 저와 초비님 사이의 견해차는 분명해 보이는데, 그것을 단지 누군가의 '독단'의 문제로 손쉽게 환원하려는 욕구가 엿보여서, 매우 불편해집니다. 실제로 슈리가 독단적인 태도를 보인 부분이 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런 누군가의 '태도'의 문제를 제하고서라도, '보편적 해방'의 관점에 대한 맑스주의와 여성주의의 전망 간의 간극이(그것이 적대적이든 비적대적이든) 남아 있고, 그 부분을 제대로 정식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간극을 누군가의 독단 때문에 일어나는 것으로 손쉽게 치부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지금까지 푸우님이 슈리님과 주고받은 논쟁 중에서 첫번째와 두번째 포스팅까지는 대략 동의하는 부분도 있었는데, 이 글은 좀 논점에서 벗어난 것 같군요. 확실히 슈리님의 사과가 부족했나봅니다. 솔직히 저도 슈리의 철학에 대해 우위를 두려는 태도에 식겁했었지만, 이것도 동일한 방식으로 대응하려는 것으로 보이네요.
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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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분// 간단히 말하겠습니다.1. "사과가 부족"했냐고 저한테 물으시는 것 같은데, 제가 사과를 받긴 했던가요? 그리고 제가 사과 자체를 요구한 적이 있기라도 하나요?
2. 전 한 번도 슈리님의 "철학에 대해 우위를 두려는" 태도 문제를 걸고 늘어진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동일한 방식으로 대응"한다는 게 뭐가 문제인지요?
3. 그리고 이게 정말 "동일한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입니까? 굳이 말하자면 슈리님은 저에게 어떤 인용도, 자세한 설명도 없이 자신의 말이 '무조건적으로' 옳다고 한 반면, 저는 최선을 다하여 제가 했던 말의 문헌적 근거를 찾아서 제시해줬습니다.
박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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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문제제기가 부적절했다면 사과드립니다. 제가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우선 저 자신이 슈리의 태도에 문제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포스팅이었다면, 제가 주제 넘게 간여할 사항은 아니죠.theh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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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개인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포스팅"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이죠? 이상하군요. 푸우님은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신 것 같은데요. 트랙백을 건 걸 봐도 혼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포스팅이라고 볼 순 없을 것 같고요.반대로, "개인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포스팅"을 봤는데, 그 포스트가 부적절하면 그에 "간여"하는 것이 "주제 넘는" 일인가요?
어느 쪽으로 생각해도, 박가분님의 세 번째 문장은 이해가 안 가네요. 두 번째 문장도 그다지 쓸 필요 없었던 문장 같구요. 그냥 첫 번째 문장만 써놓고 가셨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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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명을 바꿨는데 박가분님이 언급하신 초비입니다. 제 댓글은 슈리님이 왜 푸우님과의 명확한 이론적 적대를 정리하지 않은 채로, '당신은 나와 현실적 사안에 대한 의견이 같을 것이다' 라는 전혀 무의미한 발언만을 남기고 논쟁을 끝내려는 듯한 태도를 취하셨는지 궁금하다고 쓴 겁니다. 제가 푸우님의 의견을 잘못 이해했을 수는 있겠는데, 저 두 개의 댓글에서 제 의견을 표명한 건 아닌데요.이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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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서 말씀드리면 박가분님의 말씀대로 저 역시 여성주의와 맑스주의가 완전히 동일한 것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저는 다만 여성주의에서 계급은 부차적인 것이고 젠더가 핵심적인 것이다 라는 명제에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만약 여성문제에서 계급문제가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것이라면, 여성주의와 마르크스주의가 서로 동일한 범주를 말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실제로 그 둘을 완전히 분리시켜 하나만 적용할 수 있는 사안은 아주 드물거나 아예 없을 것입니다. 저는 푸우님의 글을, 여기에 대해서 마르크스주의에서 어느 순간 여성주의와 무관해지는 지점이란 없다고 대답하는 유물론적 여성주의의 입장으로 읽었습니다. 이 독해에 대한 오류를 지적해 주실 거라면 기꺼이 듣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