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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내 반성폭력 운동 -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집단성폭력을 중심으로

  • 분류
    단상
  • 등록일
    2011/09/13 13:59
  • 수정일
    2015/05/06 18:48
  • 글쓴이
    푸우
  • 응답 RSS

자비님의 [고려대학교 의학대학 성폭력 사건에 대한 학내 대학생 운동권 대응 평가] 에 관련된 글.

 

 

안녕하세요, 고려대학교 생활도서관 운영위원으로서 고려대학교 반성폭력연대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김푸른솔입니다. 자비님의 글을 읽으면서, 몇 가지 이야기할 지점들이 있어서 조금 말해보고자 합니다. 단, 이것은 연대회의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의견일 뿐, 연대회의 공식 입장은 아니라는 점을 미리 밝힙니다.

 

 

1. 성폭력을 정의내리기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집단성폭력 사건이 외부에 공개되고 난 후 학교 내외에서는 가해 남학생들을 징계하고 처벌하라는 목소리가 굉장히 크게 나타났습니다. 그 중 으뜸은 가해 남학생들에 대한 출교처분 촉구였습니다. 저는 당시 그런 요구들이 상당히 불편했습니다. 가해 남학생들을 특별한 개인으로 취급하고, 고려대학교 사회 자체는 그들과 무관하고, 그들을 책임질 필요가 없다고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성폭력을 여성에 대한 구조적 폭력이자 극단적 폭력이라고 본다면 가해 남학생들과 고려대학교 사회를 분리시키는 일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특히 이번 사건이 예외적이었다고 말하기는 더 힘듭니다. 제 주위에만 하더라도 성폭력 경험을 호소하는 고려대학교 학생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 모든 사건들이 공론화되거나 공개되지는 않았고, 그냥 잊히고 말지만, 그 사건들은 분명히 일어났습니다. 그 여성들의 경험은 성폭력이 유별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굳건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저는 고려대학교에 ‘속해 있는’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성폭력에 노출되어 있으며, 일부 여성들이 성폭력이 지닌 구조적이고 극단적인 성격 때문에 오히려 그 사실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고려대학교라는 공간이 어떤 공간인지, 정말 성폭력이 예외적으로만, 이례적으로만 일어나는 공간인지를 알아보고, 고려대학교라는 사회를 변혁시키기 위한 기반을 다지는 일입니다. 바로 그런 생각들을 가지고 반성폭력연대회의를 통한 반성폭력 운동을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2. 성폭력에서 구도의 문제

 

자비님께서는 이번 사건이 “가해자와 비가해자 구도로 명료하게 적과 아군이 구분된 상황”이라고 평가하십니다.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저는 그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며, 그 생각, 즉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고 가해자와 비가해자 사이에 명료한 구분이 가능하다는 생각이야말로 공동체 명예회복으로서의 출교처분을 주장하는 일련의 사람들의 생각과 이어져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은 기본적으로 고려대학교 사회는 비가해자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해자들을 도려내는 것으로 고려대학교 사회의 ‘정상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고의 틀을 제공해주기 때문입니다. 다만 자비님께서는 가해자 측에 “학교 조직” 정도를 추가하는 수준입니다.

 

이 때 자비님께서 반성폭력연대회의의 활동을 비판하는 지점을 “문제는 이 두 대안 모두 시간과 인력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고, 대부분의 학생에게 동의를 이끌어낼 수 없는 작업이며, 설사 이끌어내도 영속적인 강제력을 가지지 못하는 대안이라는 점이다.”로 잡으시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사실 자비님께서는 “우리 모두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깨닫지 못한 무뢰배와는 달리 모든 학생이 반성해야 한다는 교과서적인 구도” 자체에 동의하지 못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아니라고 하신다면 사실 자비님의 글 자체, 특히 연대회의에 대한 비판 자체가 별 맥락이 없다는 것도 같이 인정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보다 근본적인 입장 차이가 있는 것이고, 그것을 실천에서의 성공 가능성 여부로 환원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해 보입니다. 더구나 이제 막 실천에 들어가기 시작한 상황에서 벌써부터 실패를 단언하는 것은 근거도 없을 뿐더러 별 의미가 없습니다.

 

여하튼 여기서 오히려 집중해야 할 지점은 바로 자비님과 저 사이에 놓인 이 입장 차이입니다. 즉 어떤 구도를 설정할 것인지의 문제입니다. 제가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가해자와 비가해자 구도로 명료하게 적과 아군이 구분된 상황”은 현상 진술에 지나지 않으며, 성폭력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말해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성폭력이 구조적인 원인을 지니기에 적과 아군이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는데도, 남근지배적 경제에 의해 끊임없이 “적과 아군이 구분된 상황”으로 연출된다면, 그런 연출에 집착하는 것은 성폭력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실제로도 그런 “적과 아군이 구분된 상황”을 이용한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언론에서 성폭력 사건이 공개될 때마다, 모두들 분개해서 “적”을 매우 공격하는데 집중하지만, 성폭력이 줄어들었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없습니다. 사실 고려대학교에서도 지난 90년대 후반, 2000년대 중반에 “적”에 대해 분개하는 많은 운동이 있었지만 성폭력은 꾸준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해자와 비가해자 구도”로서의 구도를 상정하는 것은 그다지 적절하지 않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저는 성폭력에 있어서 그런 식의 구도를 제시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애초 성폭력은 구체적 가해자와 비가해자로 환원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학교라는 공간에서 일어났다고 교육기관을 매우 비판한다고 온전히 설명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성폭력은 문자 그대로 ‘성’의 문제이자 ‘폭력’의 문제로서 여성과 남성 사이 관계맺음의 문제이며, 여태까지 남성이 여성에게 구조적 폭력을 행사해왔다는 하나의 보고이자 현실입니다. 남성 모두를 고려대학교 사회로부터 몰아내는 것이 적절한 해결책도 아니고, 여성 모두가 고려대학교 사회를 기피하는 것 역시 마땅한 해결책이 아니며 둘 다 물리적으로도 가능하지 않다면, 고려대학교 사회 자체를 변혁의 대상으로 삼는 것만이 일종의 “구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3. 반성폭력 운동의 문제

 

성폭력이 구조적인 문제이며, 여성과 남성 사이 관계맺음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이 있어야 비로소 완전한 해결을 모색할 수 있는 문제이기에 반성폭력 운동은 한시적이고 즉각적이기 힘듭니다. 물론 모든 일을 다 해내면 좋겠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조건들을 아주 외면할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학내에서 반성폭력 운동을 한다는 것은 바로 학생사회를 바꿔나가려는 시도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해자들에 대한 징계에 소홀하겠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그 징계에 매몰되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는 합니다. 때문에 저는 반성폭력연대회의가 비록 징계 절차가 끝났더라도 다양한 사업을 통해 학내 반성폭력 운동의 필요성을 환기시키고, 관련 활동들을 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설령 그것이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고, 도저히 성공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 이유만으로 운동 자체의 모든 의의를 앗아가는 것은 분명 부당한 공격입니다. 왜냐하면 이 운동을 지속시키는 이유는, 물론 그것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기도 하지만, 지금 여기에 반성폭력 운동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이고 급박한 요청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 요청에 화답하는 것이 우스꽝스럽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 요청을 외면하는 것만큼은 도저히 못 하겠기에 하는 활동이기도 합니다. 즉, 반성폭력 운동 자체를 성공하느냐 마느냐로 평가내릴 수는 있겠지만 그 활동을 하는 이유 자체를 성공 여부만 가지고, 이유가 있다 없다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징계절차가 끝나서 학생들이 성폭력을 자신과 무관한 문제로 치부하려는 이 시점, 그러나 아직까지 구체적 사건에 대한 잔상이 남아있는 이 시점이 바로 활동이 가장 필요한 시점입니다. 제가 가장 경계하는 것이 징계가 끝났으므로 모든 후속조치는 무의미하다는 식으로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지금 여기서 바로 여기가 시작이라고 말하는 것이, 가부장제와 남근지배적 경제, 처벌주의와 징계주의를 넘어서는 반성폭력 운동입니다.

 

 

정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대중이 애당초 여성주의에 관심을 갖긴 하던가요? 반성폭력에 열광한 적이 있긴 하던가요? 그런 관심이 충만했다면 애당초 성폭력이 이렇게 빈번히 발생하지도 않겠지요. 그런 관심과 조건들을 창출해내는 것이 지금 하는 반성폭력 운동의 목표입니다. 그것을 이미 현재하는 조건들로 간주하고 한 적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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