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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11/27
    리처드 닉슨의 암살!(1)
    키노
  2. 2006/11/16
    Moral Issue
    키노
  3. 2006/11/08
    PD수첩이 던지는 질문!
    키노
  4. 2006/11/02
    '너'에게 묻는다!
    키노
  5. 2006/11/02
    전환의 계곡
    키노

리처드 닉슨의 암살!

 

 

 

정직하게 살고 싶었던 한 소시민.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삶에 순응하기 위해서는 거짓말도 해야 하고 경쟁이라는 이름의 무례함도 감수해야 하며 착한 것이 무능력함으로 이어지는 세태 앞에 사랑하는 가족과도 헤어져야 하는 '인생낙오자'로 규정되는 세상.

지도자는 더 큰 거짓말과 더 큰 폭력으로 '그것이 국가의 발전과 안녕을 지키는 일'임을 강변하는 사회!

<리처드 닉슨의 암살(The Assassination Of Richard Nixon)>의 배경이 된 74년의 미국사회와 현실의 대한민국은 너무도 닮아있다.

인디언들의 저항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사회적약자(주로 흑인사회)들의 인종차별철폐와 권리보장요구. 반전주의자들의 외침에 "안보위기상황에 무감각한 자유주의자들이 사회를 소요로 몰고 있다!" 며 폭력으로 화답하던 시기의 모습은 어쩌면 30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 사회와 전혀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다가온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전혀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 않는 이유는 '숀 펜'이 온 몸으로 전하려 했던 소시민의 절규가 우리에게 일상화되어 있는 탓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 당시의 미국사회보다 더 철저히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천민자본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거기에 '안보장사' 가 훌륭한 서포터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우리는 서민을 위해 일한다!"는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보수기득권 세력에 대해 무한신뢰를 보내는 '정상적인 인식파괴'가 휩쓸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그보다도 훨씬 못할지도 모르겠다.

한나라당을 대표한다는 강재섭은 토론에 나와 너무나도 태연히 "노무현 정부의 정책실패로 인한 서민들의 고통"을 이야기한다.

그들의 절대적 지지기반인 서울강남과 부유층을 위시로 하여 '종부세납부거부운동'이 한창이다.
이미 대부분 한나라당의원으로 이루어진 기초단체에서는 '부자들 세금깍아주기운동'에 온 몸을 던진바 있다.

강재섭은(한화갑이나 신국환 역시 마찬가지이고) "부동산문제의 해법은 공급을 늘려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나라당 의원들 거의 모두! 그리고 그들의 절대적 지지충성층이 '부동산투기의 주범'임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알면서도 모른척 하거나....,


가족들로부터까지 외면당하는 '현실부적응자'는 결국 백악관을 공격하기로 마음 먹는다.

영화는 실화를 배경으로 한 까닭에 그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어떻게 취급되었는지는 재차 거론하지 않겠다.


'현실의 고통으로 과대망상증에 걸린 한 정신병자의 소행'을 바라보는 감흥은 무척이나 고통스럽다.

'혁명적인 가치인식의 변화'없이 우리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이루고 일상의 무례함을 없애고 존중받으며 고르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일까!

볼리비아의 뻬드로 뻬냐 지역 협곡에서 사로잡히던 '체 게바라'의 모습을 인질을 풀어주고 사살당하며 쓰러지는 '숀 펜'의 모습에서 발견했다면 과도한 것일까!


무장봉기가 아니어도 '가진 자를 위한 철학'에 지배되고 있는 세상을 바꾸어낼 수 있는 방법은 너무나도 많이 있다.

그 출발이 '사회에 대한 관심과 가치권리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임을..,
 
'열심히 일하고 착하게 사는 사람들이 짓밟히거나 좌절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 적당히 순응하며 버텨서는 악순환만 되풀이할 뿐이라는 진리'를...,


영화를 통해 한번 더 확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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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al Issue

 

 

앨 고어 주연(?)의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를 보았습니다.

뭐 그렇다고 영화에 대한 평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이러한 미국의 독선적이고 야만적이면서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태도에 대한 분노와 함께 문제가 어디 있는지를 뻔히 알면서도 허둥대는 '멍청한 국가'의 실체를 자주 목격해왔던 탓이기도 합니다.
영화에 대한 평론가들의 찬사가 웃기는 것은 '놀랍고도 감동적이며 공포스러운' 경험이 얼만큼의 반성과 변화로 이어질 것인가에 대한 회의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오랜시간 체계적이고 치밀한 연구과정을 통해 그리고 실질적인 학술탐사활동을 통해 문제점의 원인을 찾고 대안을 모색하는 이들의 헌신이 '한탕주의'와 '사기극'으로 온갖 오명을 뒤집어쓴 우리 과학계에 전하는 메시지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연구하는 젊은 과학자들이 많이 있는데도 말이죠.



영화에서 앨 고어는 자주 반복적으로 'Moral Issue!'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의 외침은 문제 해결의 출발선이 어떤 인식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미국민들의 자기성찰을 촉구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정치적이슈!'가 아닌 '도덕적이슈!'


어제 '집권야당'의 의원들께서는 국회의장석을 장악하고 "헌법수호!"를  외치셨습니다.
그덕에 우리 헌법은 수호되었고 적어도 11월말까지는 백기항복을 받아냈습니다.

그들에게는 좌파적성격이 짙어보이는(?) 헌재소장을 막아내는 것이야말로 '도덕적이슈'에 충실한 행동입니다.

연관지어 '사학법재개정'을 통해 사학의 명예를 되찾고 사학재단의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일 또한 '도덕적이슈'에 가장 부합하는 행동이라고 믿고 있을 겁니다.

법인세를 최대한 낮추어 세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무엇보다 기업의 경쟁력확보와 경영활동에 이바지하는 '도덕적이슈'임을 강변하고 있습니다.

뭐 그외에도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정도로 해두죠.

'집권여당'은 어떤가요.

노동, 환경, 농업, 인권, 경제정의, 사회복지....,

이 모든 것을 후퇴시키거나 가치파괴하는데 4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물론 대부분 군사독재정권을 거쳐 문민정부와 국민의정부라는 시점에서부터 발화되어 고착화되어 있었거나 구조적으로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던 분야들입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좌파정권'께서는 그러한 문제점을 치유하거나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고 극단적으로 방치하거나 악화시켰습니다.

사회양극화는 해결의 방법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심각해지고 있고 부동산광풍에 찢긴 가슴을 매일매일 어루만져야 하는 서민들의 고통은 증대하고 있습니다.




위에 제시한 것들 모두 '도덕적이슈'에 관한 문제입니다.

도덕적이슈가 사회구성원들의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가의 여부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몫은 결과적으로 일반대중의 것입니다.

자신의 계급에 기반하여 제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도덕적이슈'인지 판단해야 하고 그에 기반하여 자신의 이익에 충실한 정치세력을 지지해야 당연한 거겠지요.

그러나 앨 고어가 세계를 돌며 '도덕적이슈'임을 강변하는 것이 사안의 중요도를 설득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우리는 도덕적이슈가 무엇인지를 판단할 수 없는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들을 설득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사실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 든 '공포'는 당장 토건대통령을 자임하는 자가 내년 연말에 특집프로그램으로 인생을 조명하는 끔찍한 상상의 현실화입니다.

'경부운하'를 다룬 뉴스 밑에 이런 댓글이 달려 있더군요.

"차라리 남한의 동과 서를 뚫어 동해의 물고기들과 서해의 물고기들의 일상적인 접선을 허하라!"

 

 


차기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을 묻는 질문에 '경제성장과 일자리창출'을 과반 이상의 국민들이 첫번째로 꼽았습니다.

그에 대한 답변은 '고용없는 성장과 노동을 끊임없이 소모품화하는 비정규직일자리의 확대'
로 돌아온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도 '근본적대안'에 대해 고민하기를 무척이나 싫어합니다.

'각성'이 부족한 다수의 서민계급은 그렇다하더라도 늘상 "수구보수꼴통들의 집권만은 막아야 한다!"며 비지론을 설파하던 이들의 인식수준은 더욱 심각한 위험성입니다.
벌써부터 그러한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먹고사는 문제' 즉 열심히 일한만큼 합당한 몫과 권리를 보장받고 자본과 지배권력의 이익만을 위해 복무하는 정책과 제도들을 온전하게 '고르게 잘 살 수 있는 대안'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것!'
그것이 우리 앞에 당장 놓여있는 '도덕적이슈'입니다.

'아픈 국민은 누구라도 돈이 많던 적던 구분짓지 않고 고르게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당장 우리 앞에 놓여있는 '도덕적이슈'입니다.


"대출받아 샀던 집이 거품이 빠지면서 헐값이 되고 은행빚을 갚지못해 그 집마저 압류당한 한 일본인은 지금 친구집 쪽방을 빌려 겨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제 '시사투나잇'을 통해 확인한 부동산거품붕괴의 실상입니다.

미친 정부와 건설족들에 의해 '제집마련의 꿈'이 점점 사라지는 서민들의 가슴앓이를 치유해 주는 것! 그리고 황새 따라간다며 빚내서 '부동산의 재테크'를 똘똘한 가정경제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다수의 뱁새들의 정신을 차리게 하고 결과적으로 더 큰 재앙에서 구출하는 것!
그것이 당장 우리 앞에 놓여있는 '도덕적이슈'입니다.

사회양극화의 주범인 비정규직확산을 중단시키고 탈루를 일삼는 전문직들과 재벌들에게 명확한 세원확보와 증세를 통해 사회적책임을 다하게 하는 것!
결과적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통해 소비가 늘고 늘어난 소비를 통해 내수시장이 안정화되는 사회양극화를 줄이고 사회복지예산을 확보하는 노력!
그것이 당장 우리 앞에 놓여있는 '도덕적이슈'입니다.

추운 겨울 교문밖에 서서 '내 자식의 사회계급번호를 앞자리에 두게해달라!'며 기도하는 어머니의 반복되는 끔찍한 광경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왜곡되는 야만을 끝내게 하고 대학이 고시학원으로 변질된 재미없는 코미디를 중단시키는 것!
입시위주의 교육을 끝내고 최소한 독일과 프랑스 정도의 무상교육체계를 서둘러 마련하기 위해 더이상 암세포가 온 몸으로 전이되기 전에 칼을 드는 것!
그것이 당장 우리 앞에 놓여있는 '도덕적이슈'입니다.


무척이나 많군요.

이상적이거나 '진보적이슈'가 아니라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고 사회구성원으로서 나와 내 자식의 미래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도덕적이슈'들입니다.

당신의 지혜롭고 현명한! 하지만 단호한 정치적판단이 '도덕적이슈'들을 해결하는 토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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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이 던지는 질문!

 

PD수첩 700회 특집을 보았습니다.
특히 오늘 '다시 시작하는 PD수첩'을 통해 스치듯 지나는 장면 하나하나가 때로는 아리게, 때로는 분노로 가슴을 헤집어 놓습니다.


오늘 오후 지역의 한 시장입구에서 '한미FTA반대서명운동'을 진행했습니다.

한 상인은 서명을 진행한지 한참이 지나도록 옆에 서서 못마땅한 표정으로 투덜대더니 곁으로 와서는 '노무현정권에 대한 분노'와 '집회에 동원되는 사회불만세력'에 대해 일장훈시를 늘어 놓습니다.

애초에 그분과 토론할 생각이 없었던 터라 짧지만 차분하게 '한미FTA가 재래시장 상인을 포함하는 서민들에게 어떤 피해를 안기는가'에 대해 설명을 드렸습니다.

영 마뜩치 않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이내 서명에 동참해 주셨습니다.


PD수첩을 통해 사회양극화의 원인이 어디에 있으며 서민들의 박탈감과 불신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는 확연히 드러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기란 일반대중이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 노릇입니다.

'본인이 영악하지 못해서 이 사회의 경쟁구조에 부적응한 것'을 자책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저렇게 지긋지긋한 가난을 내 가족에게 부담지울 수는 없다'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배계급으로 이동해야 한다며 의지를 다잡는 이도 있을 겁니다.

물론 "이 잘못된 사회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며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는 분도 계시겠지요.


세상을 바꾸는 일은 비교적 간단합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의지를 지닌 정치세력을 원내로 보내면 됩니다.

이쯤 되면 "저 넘이 또 민주노동당 홍보하려 드네?"라고 짜증스러워 할 분이 많이 있겠으나 별 수 없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일! 즉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구조'를 만들어내는 일은 엄청난 희생을 각오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보수기득권이 누려왔던 '부의 대물림 권리'
'사회적책임을 회피하고도 당당하게 살 권리!'
'온갖 법의 허점을 이용해 탈세를 자행하고도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권리!'
'서민들의 혈세로 회생한 기업에 아무렇지도 않게 경영일선에 복귀할 수 있는 권리!'
'언제라도 병역을 회피하거나 국적을 포기할 수 있는 권리!'
가장 중요한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권리'를 빼앗아 사회적 약자들의 극단의 삶부터 치유하는 일을 시작으로 온통 뒤틀리고 야만이 당연시되는 보편적 상식의 틀을 바꾸어내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김대중과 노무현에게..., 아니면 나름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희생했노라!"고 자위하는
386의 일부 정치철새들에게 기대를 걸어 보았지만 결국 모두 배반당했습니다.

그들 모두 "피지배계급의 억울함을 달래고 잘못되어가는 사회구조를 변혁하겠노라!"고 소리쳤지만 아주 신속하게 지배계급의 품으로 휘휘 달려갔습니다.

그런 반복된 교훈은 결국 다수의 선한 의지를 무기력하게 만들거나 종속본능을 외려 가속화시키는 병리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 총선이후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을 자위하던 민주노동당의 내부도 곪아들기 시작했습니다.

'잘만 하면 의원자리 하나 꿰찰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왜! 무슨 이유로 진보정당을 창당했는지, 그 험난한 시절을 견뎌내며 소팔고 집팔아 빚 갚으며 잃지 않았던 소중한 꿈"들에 반복적으로 생채기를 내던 이른바 비지론자들이 몰려 들어와 당의 주요 자리를 하나 둘씩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지난 총선을 기점으로 민주노동당은 더이상 진보정당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확연히 '진보정당의 자랑스러운 이름'이 아닙니다.

어느 분은 "민주노동당의 당적을 지닌 열우당원들을 내치지 않는다면 진보정당임을 감히 말하지 말라!"라고 말합니다.

이쯤 되니 " 어라! 저 넘이 당홍보할 줄 알았더니 이제 지네 당 치부를 드러내고 떠드네?"라고 판단하실 분도 있을 겁니다.
"남 걱정하지 말고 니네 당 단도리나 잘해!"라고 속으로 외치는 분들도 몇 보이는군요.
^^


뭐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니 숨길 이유가 없는 거지요.



다시 PD수첩 이야기입니다.
이제 'PD수첩이 던진 질문'에 응답해야 할 차례입니다.

한달 생활비인 26만원을 반납하고 자살한 한 장애인의 죽음을 보며...,
도저히 아이를 기를 수 없어 시설에 맡기는 아비의 눈물을 보며...,
사랑하는 자식에게 반찬 살 돈이 없어 간장으로 비빈 밥을 먹이는 한 어미의 눈물을 보며...,
철거반원이 해머로 부수는 허름한 집안에서 공포에 질린 얼굴로 울먹이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500만원을 받고 쫓겨난 땅위에서 나누는 정부와 건설업자와 투기꾼의 욕망의 잔치를 보며...,

사실 전 분노하지 않습니다.


PD수첩이 700회가 지난 시점과 IMF를 극복한 자랑스런 2만불국가의 자화상은 시간은 분명 이동시켰으며 드러난 이미지의 화려함으로 포장되고는 있으되 위에 너절하게 써놓은 구질구질한 가난의 흔적들은 여전히 확대재생산되고 있습니다.



'진보는 잔인해야 한다!'

뉴질랜드가 지금처럼 복지국가로 자리잡은 내면에는 노동당집권 이후 사회변혁과정의 잔인무도함에 기반했습니다.

그 사회변혁과정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그리고 사회가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노동당은 차기선거에서 보수당에게 패했지만 보수당조차 다시 과거로 회귀할 수 없었습니다.

충격 이후의 신뢰는 반복되는 실체로 드러나며 노동당 집권의 사회체제가 어떤 정치철학과 가치우선 위에 정립되어 있으며 그 존중되는 사회구성원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뉴질랜드 국민들에게 인식시켰습니다.


친일잔재의 역사적청산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안보장사 한번'이면 엎드려 자던 개새끼도 사주경계 태세에 들어가는, 갖고 놀기 편한 대상이 즐비한 현실에서...,
사회 구석구석 실핏줄처럼 엮여있는 몸바쳐 충성하는 계산된 공중전화조직과 "기업하기 좋은 나라! 국가의 안녕을 위해 하찮은 권리따위는 잠시 잊고 살아도 된다!"는 주장에 고개 끄덕이는 '착한 대중'이 즐비한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뉴질랜드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잔인하고 확고한 '야만과 모순들'과의 처절한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견뎌내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 싸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상주의라고 핀잔이나 듣는 '최소한 영국식 NHS정도의 무상의료체계'와
'최소한 독일처럼 거의 무상으로 대학까지 다닐 수 있으며 입시지옥이 아니라 전문지식을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체화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
'국민이라면 누구나 최소한 두다리 뻗고 쫓겨날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주택정책!'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약자들이 최소한 박탈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권리보장이 가능한 시스템'
'노동이 더이상 소모품이거나 자본의 이익극대화를 위해 이용되는 가치가 아니라 사회발전의 거대한 축으로 인정받고 합당한 댓가를 지불하는 구조'를 위해 다시 시작하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결국 진보정당의 창당 시점과 그 창당에 진정성을 가지고 주축으로 참여했던 이들의 인식 그 초기단계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적당히 개혁세력임을 강변하며 뒤로는 군사독재시절의 공안정국을 뺨치는 이중성으로 철저히 자본에 귀속된 자유주의 보수에 의해 자행된 '배반당한 서민들의 파괴된 삶'을 되돌리려면 보다 명확하게 보다 잔인할 정도의 의지를 전제하며 수구보수기득권과 싸울 수 밖에 없습니다.

대선을 기점으로 총선을 정점으로 보다 분명한 '사회체제'를 향한 실천들이 가시화될 것입니다.


그렇게 새로 시작하는 이들을 향해
'조롱을 보내는 자신'이거나
'어깨를 툭 쳐주는 동의의 인식'이거나...,

그 선택은 스스로의 가치판단에 따른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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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묻는다!

 

가장 최근의 정당지지율조사에서 '드디어'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이 6%대로 진입했습니다.
이제 민주당에도 밀려 완연한 만년 4당으로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총선시점에서 20%에 육박하던 지지율은 2기 지도부가 반토막을 냈고 3기지도부가 그나마 있던 지지율을 반토막 냈습니다.

 

물론 온전히 지도부만의 책임은 아닐겁니다.
당내 좌파든 우파든 아니면 후원회원의 실천에 머물고 있는 무정파의 '존재만 당원'들 모두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사석에서 늘상 일본정치를 반면교사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일본정치는 현재 완벽히 보수정당화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 일본민중들의 우경화가 기반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상식적 분석입니다.

 

그러나 그 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일본노동운동의 쇠퇴와 이른바 사회주의 정당들의 '닭짓'에 민중들이 등을 돌리고 '민주적 사회주의'로 진행될 수 있었던 기회를 제 스스로 발로 걷어차 버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 민주노동당이 고스란히 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어느 분이 제가 어느 사이트에 올린 글 밑에 이런 댓글을 달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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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철회로 넘어가기 까지 딱.. 1cm 정도 남겨 두고 있습니다. 지난 총선때 이후로 민노당은 철저하게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요딴 걸로 구설수에나 오르내리고.. 간첩단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게 아니고.. 이 사건 전까지 민노당이 언론에 뭐 색다르게 이슈화 됐던적이 없다는게 문제입니다.
삼성 파일 공개하던 모습 하나 만으로 지금까지 버틴건데.. 정말 이제 지지 철회 까지 얼마 안남았습니다.
그리고 여기와서 매번 느끼는건데.. 쩜만 공부했다 하면 유식하고 복잡한 언변으로 논점만 흐려 놓는 사람들도 짜증납니다. 말꼬리 잡아서 논점 흐리기도 보고 있자면 지겹구여.. 점 지발 지발점 잘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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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민주'노동'당의 구성원이 되었으며 왜 민주노동'당'에서 희망을 꿈꾸고 있는 것일까요?

왜 우리는 스스로 '진보연'하면서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고 외치고 "이유 있는 핵은 진보다!"라고 삽질을 하고 있는 걸까요?

 

어느 하청노동자가 산재로 입원했다가 퇴원해서 복직이 거절되자 자살한 사건이 바로 며칠 전에 벌어졌는데...., 2년이 넘도록 거리를 헤매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신음소리가 바로 곁에서 들려오는데....,
왜 우리는 김정일군부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는 걸까요.(아니라구요?)

 

직장에서 짤리고 수중에 남은 돈과 빌린 돈을 모아 식당 하나를 차렸지만 월세 내기도 힘들어서 절망하고 있는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숨을 헐떡이는 아이를 부둥켜안고 눈물 흘리면서도 병원비를 걱정하는 '야만적인 제자신'을 증오하는 부모들이 넘쳐나는데....,

 

왜 우리는 틈만 나면 자유주의보수정당을 찍으라고 강변하는 저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자랑스런 인자들에게 능멸당하며 '진보정당'의 깃발을 움켜쥐고 있는 걸까요?

 

 

확인되고 있다시피 '민족통일'은 당내자주파가 별 짓을 다해도 북한군부가 원하지 않습니다.
여전히'미제식민지인 남한'이지만 '적화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쯤은 김정일군부가 더욱 잘 알고 있습니다.
체제보장을 최우선으로 마르고 닳도록 '위대한 영도자'로 군림해보려는 계획들로만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대치와 긴장은 유지되어야 하고 미국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것만이 목적화되어 있습니다.

 

 

'이유있는 핵'을 주장하던 분들은 "미국의 약속불이행과 압박이 원인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핵무장은 김일성 생존시점부터 진행되어 왔던 것이고 심지어 박정희도 핵무장을 추진했던 바 있습니다.
고스란히 대입시키면 박정희의 핵무장도 '자주국방'인 것이고 '이유있는 핵'입니다.

 

 

결론입니다.

왜 우리는 '당'하고 있는걸까요?

 

아니 다시 묻겠습니다.
왜 우리는 '진보정당이자 민주노동당' 하자면서 '민족통일당'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 왜 우리는 "민족통일은 니들 소설이고 우리는 철저히 정치적판단으로 체제유지하겠다!"는 '핵'움켜쥔 옆동네 친구의 손을 섬섬옥수 바라보듯 하는 걸까요?

 

 


'너'에게 묻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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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의 계곡

 

조희연교수가 레디앙에 '절망을 급진적열망으로'라는 좋은 글을 기고했습니다.
시간되시는 분은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3542

본문중에 "우리는 아직 '전환의 계곡'에 도달하지 못했다."라는 구절에 동의합니다.

몇번을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계급적각성'이 기반되지 않는 한국사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재벌과 보수기득권, 강남을 위시로 하는 이 땅의 부자들은 철저히 그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치세력이 어디인지 그 정치세력의 집권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고한 '계급적각성'위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대다수의 계급적인식은 어찌된 노릇인지 그들의 이익에 복무합니다.

그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 끊임없이 스스로를 종속시켜 나갑니다.

검단신도시 발표가 나간 이후 검단지역의 대다수 부동산을 소유한 이들은 '축제분위기'입니다.
웃기는 노릇은 부동산거품이 결국 상대적박탈과 피해를 수반한다는 판단 없이 그저 "왜 나는 진작 부동산을 소유하지 못했나!"라는 자책이 피지배계급을 휩쓸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강남의 아파트 한채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3대가 저축을 해도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는 역설적으로 '사회적 공범'이 되어가는 대다수 서민계급의 보편적 인식을 비웃고 있습니다.

며칠전 KBS '시사투나잇'을 보니 서울의 어느 분양아파트에서 임대아파트 아이들의 통학로옆에 쳐 놓은 철조망에 아이들이 얼굴을 다쳤더군요.

임대아파트 주민들은 항의했지만 분양아파트 주민들은 생까고 있고 그 흉물스런 철조망은 여전히 계급적 장벽으로 둘러쳐져 있습니다.

철저하게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이성과 사회적가치'를 파괴하는 현상에 대해 이 사회의 피지배계급은 일시적으로 분노할지 모르지만 지배계급으로 상승하기 위해서 또한 인식을 추동합니다.

결과적으로 다수인 사회적약자의 연대를 통해, 계급적판단에 기반한 정치적 선택을 통해 몰가치적이고 비이성적인 사회구조를 돌려놓겠다는 의지를 찾기란 쉽지 않은 노릇입니다.
아니 어쩌면 노력도 해보지 않은채 미리 불가능하다고 여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이들이 "대한민국은 '전환의 계곡'에 깊숙히 들어와 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웃자란 민주주의의 사회적발전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느냐!"라고 강변하기도 합니다.

그럴까요?

며칠전 하청노동자로 일하다 산재를 입어 치료를 받고 퇴원한 후에 다시 일하려던 이가 복직이 거부되자 자살했습니다.

1년이면 3천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죽고'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이다시피 한 노동자들이 90%에 육박합니다.

올 한해만 상장기업들이 엄청난 흑자를 거두었다지만 오히려 고용은 줄고 있고 그 고용마저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재앙이 될 것이 뻔한 한미FTA협상이 일방적이고 졸속적으로 추진되고 있음에도 대다수 국민들의 '인식의 민주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처럼 정치사회적으로 '전환의 계곡'으로 향하던 물줄기는 그 방향을 되돌리고 있는 중입니다.

아니 이미 거꾸로 흐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토를 모두 밀어서 평지로 만들거나 강따위는 화물이동에 필요한 수단일뿐이므로 갈아 엎고 뚫어버릴' 기세의 토건대통령이 탄생할지도 모르는 시기에 살면서, 술먹고 여기자를 주물러도, 술집에서 난동을 부려도, 피감기관에서 버젓이 골프를 쳐도 지지율은 변함없이 그들을 사랑해주는 기가막히는 현상을 매일 목격하면서 '전환의 계곡'에 들어와 있음을 말하는 것은 참 웃기는 일입니다.


'진보개혁'하겠노라고 사기만 치다가 자유주의보수의 비극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노무현과 열우당의 사기극에 치를 떨면서도 결국 변화를 위한 실천보다는 물꼬를 돌리는 길에 합류해버리고 마는 피지배계급의 상태는 우회전하여 거침없이 거꾸로 달리는 '반공,보수,친미종속,신자유주의강화'의 얼굴에 더할 나위없는 격려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내년 대선을 바라보는 입장을 보아도 상식적판단을 하고 있다고 믿는 많은 분들조차 지지율이 파 놓은 함정에 빠져 이미 '대세는 기울었음'을 자조섞인 분석으로 내어 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분석따위는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립시다.

누가! 어느 집단이 집권하느냐의 여부보다 계급적 각성없이 한없이 끌려들어가기만 하는 인식파괴현상을 막아서는 노력이 얼만큼 시도되는가의 여부에 따라  전환의 계곡으로 물꼬를 돌릴 여지는 충분합니다.

함께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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