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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실명제와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다시 총선이 눈앞에 다가오면서 새삼 떠오르는 이슈가 있다. 바로 인터넷 실명제이다. 2005년 한나라당 원희룡, 이재오 의원 등이 공직 선거법을 개정하면서 도입되어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부터 적용되고 있다.

 이 법은 이번 4.9 총선에서도 바로 오늘부터 4월 8일까지 적용되어 이 기간 동안 인터넷 언론사에 댓글을 달거나 게시판에 글을 쓸 때 실명인증제시스템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실명제와 관련된 논의는 심심찮게 제기되어왔었다. 익명성을 무기로 한 수많은 네티즌들이 한 개인(주로 연예인이나 정치인 그리고 범죄자)의 인격을 모독하는 댓글을 달고, 특정 담론에 대한 일 방향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등에 대한 대안으로 실명제가 등장한 것이다.

 

 

 궁금한 질문은 세 가지일 것 같다. 왜 공직선거법안에 인터넷 실명제가 포함되어 있는가? 그리고 왜 실명제를 선거 기간 외에는 실시하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과연 실명제를 도입하면 악성 댓글과 광적인 여론몰이는 없어지는가? 이다.

 

 

 첫 번째 물음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소위 대한민국의 기득권 세력들은 유난히 기이한 현상에 직면해야 했다.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온라인을 통해 집결되고 그 힘이 대통령을 만들어 내고 그 마저도 끌어내려 ‘정치적 결단’(탄핵)을 내렸지만 인터넷 여론 앞에 힘없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기성 정치세력들은 인터넷이 가지고 있는 실질적 힘 앞에 너무나 무력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런데 그러면 인터넷을 통한 자율적인 정치세력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텐데 오히려 인터넷을 ‘얼마나’ 통제할 것인가로 머리를 굴렸다.

 요컨대 이는 ‘전근대적’ 보수 권력 집단의 선택이다. 이들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이해할 생각도 받아들일 생각도 없다. 그저 문서와 도장 그리고 판사봉으로 이루어진 교통형식만을 추구하고 그 것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통해 권력을 유지해야 하는 그네들에게 기존의 선거 판도를 완전히 뒤엎는 새로운 형태의 참여 형식은 일단 막고 봐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선거기간 외에는 (인터넷 언론사 외에는) 실명제를 실시하고 있지 않는가? 이것도 역시 간단하다. 국내 소위 대형 포털 사이트들이 이미 사실상 잠재적 실명제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원가입을 하는 동시에 주민등록번호를 통한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야 하는 시스템을 차용하고 있는 포털사이트들이 굳이 댓글을 달고 게시판에 글을 쓰면서 일일이 실명을 확인 하고 달아야 하는 실명제를 실시할 이유가 별로 없다.

 그렇게 되면 아마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저항감에) 댓글의 개수가 급격히 감소할 것이고 댓글을 보고 다시 댓글을 다는 재미로 들어오던 많은 회원들이 이탈 할 것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지로 기업의 가치를 평가받는 포털 사이트들은 망할 것이다.

익명의 공간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혹은 남의 의견을 공격하는 댓글을 다는 행위자체가 이미 보편화된 상황에서 이런 실명제는 인터넷 미디어 자본과 정치권력간의 전략적인 선택이고 일종의 타협이다.

 

 그렇다면 실명제를 도입하면 악성 댓글이나 광적인 여론몰이는 사라지는가? 확인할 수 있는 통계자료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실명제가 이런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기 되었다는 점에 있다.

 

 

 빌렘플루서의 커뮤니케이션 구조론에 따르면 담론의 구조는 4가지로 나눌 수 있고 대화의 구조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담론의 구조와 대화의 구조는 서로 다양한 짝짓기로 결합하여 작동한다.

담론의 구조중 하나로서 ‘피라미드 구조’가 있는데 이 구조는 어감에서 느껴지듯 위계질서를 갖는 담론 구조로서 상명하복식의 의사결정 형태를 띤다. 이 구조는 군대, 교회, 파시즘, 공산주의 형태의 정치정당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며 한 정보에 집중되는 효율성은 있지만 대신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정보는 차단시켜 버린다. 이런 구조를 ‘선택’했던 체제들이 몰락했다는 것은 역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인터넷은 분명 이런 망해버린 커뮤니케이션 구조가 아니다. 인터넷은 말 그대로 망으로 이루어져 있는 공간이다. 정보를 제공하는 자와 정보를 제공받는 자의 관계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리고 상호간의 자율적인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낸다.

 

 

 우리는 어떤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상상해야하는가? 인터넷이 스스로 지닐 수밖에 없는 정보의 방대함과 자율적인 상호 접근성 이것은 빌렘 플루서가 말한 대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실현을 가능케 하는 시스템이다. 물론 완벽한 시스템은 없다. 자율성에 잠재된 폭력성은 언제 어떻게 발현될지 모른다. 그것이 아마도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구조에는 그에 알맞은 대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인터넷 실명제는 ‘피라미드형 담론 구조’속 권위자의 새로운 등장이다. 인터넷을 잡담만을 가능케 하는 공간으로 바꾸려는 기획이고 불만을 저항으로 상상을 현실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작지만 큰 타격이다.

 

 

- 사실 그 대안이 무엇일지는 잘 모른다. 그리고 그 대안이 건강한 댓글 문화 캠페인이나, 자정운동 과 같은 것들이라고 ‘쉽게’ 얘기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철학의 부재, 혹은 윤리의식의 상실등과 같은 공허한 담론으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보다 구체적인 대안제시가 실명제와 같은 과거로의 기획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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